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691 - Chapter 700

751 Chapters

제691화

조금 전 집사가 했던 두서없는 말까지 떠오른 권서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권정열이 손을 들어 안쪽 방을 가리켰다."저기 있어, 가 봐."권서진이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진하윤의 배는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고 어디에 난 상처인지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권서진이 놀라 울음을 터뜨리며 진하윤한테 달려가 매달렸다."엄마! 이러지 마, 엄마 왜 이래?"허설아와 권지헌도 방으로 들어와 정신없이 허둥대는 권서진을 보더니 피가 흐르는 진하윤의 상처를 막으려 했다.진하윤이 손을 올려 권서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울지 마, 엄마는 이제 얼마 없어. 너와 지혁이 볼 수 있어서 엄마는 행복해."권서진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거대한 두려움이 권서진을 집어삼켰다.가족을 잃는다는 공포가 거대한 맹수처럼 권서진을 삼키려 달려들었다.진하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황량했던 이십여 년을 보내고서야 겨우 되찾은 엄마의 사랑을 눈앞에서 잃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서진은 순간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공포에 사로잡혔다.허설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권지헌의 팔을 붙잡고 물었다."구급차는 어디까지 왔어? 좀 더 서두르라고 할 수 없어?"진하윤이 고개를 저었다."필요 없어. 나...... 독약까지 먹었어."권서진은 믿을 수 없었다."엄마!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야!""온 집안 식구들 밥에 독을 탔어. 그리고 영감도 몇 방 찔렀고 영감한테 남은 지분 전부 너한테 넘긴다는 합의서에 사인도 받아냈어. 권정열 지분은...... 지혁이한테 줄 거야."진하윤은 이미 기력이 다해 목소리 실낱처럼 가늘었지만 마지막 숨을 끌어모아 유언을 정확하게 전하려 애썼다."이건 오래전부터 생각해 둔 거야.""유언장은 서랍 안에 있어."진하윤은 권서진과 다른 손을 붙잡고 옆에 엎드려 있는 권지혁을 바라봤다.진하윤의 인생은 어쩌면 천하의 웃음거리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하윤은 만회하고 싶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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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2화

유언장 마지막 줄은 읽는 권지혁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진하윤은 지분 양도 증명서와 권정열과의 이혼 협의서까지 준비해 놓았다.사인은 했지만 구청에 제출한다 해도 정식으로 인정받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진하윤은 자기 자식들과 부모님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다.소녀 시절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인생의 절반 넘는 시간을 원한에 목매고 살아온 진하윤은 비로소 깨달은 게 있었다. 과거를 내려놓으려면 이혼을 해야만 했다. 진하윤은 자신과 아이들을 농락해 온 권호성이 편안하게 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권정열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다.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가 잘못이었다. 진민국과 최시연이 진하윤을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운 탓에 낭만과 풍류만 좇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그러니 권정열 같은 한량한테 빠진 건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권지혁은 유언장을 빠르게 훑은 뒤, 숨을 깊게 들이쉬며 겨우 슬픔을 가라앉혔다.이내 허둥지둥 눈물을 닦아내고 진하윤이 목숨과 맞바꾼 것들을 조심스레 챙겼다.그리고 욕실에 가서 물을 받아온 뒤, 떨리는 목소리로 권서진을 불렀다."서진아, 가서 엄마 깨끗한 옷 좀 가져와. 엄마 깔끔하게 보내드려야지."권서진의 몸에도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독약을 삼킨 진하윤은 하반신을 가누지 못하는 데다 칼에 찔린 상처와 피로 온몸이 엉망이었다.그토록 외모에 신경 쓰던 진하윤이었는데, 이런 모습이면 속상해할 게 분명했다.권서진은 얼굴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아내고는 자기 몸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진하윤의 옷장에서 옷을 찾았다.옷장 문을 연 순간. 진하윤 옷은 몇 벌 없고 어린 아이 옷이 크기별로 잔뜩 걸려있었다.가격표도 떼지 않은 그대로였다.거기엔 '서진이 다섯 살 생일', '지혁이 일곱 살 생일'이라고 적혀 있었다.설에 권씨 가문에 돌아올 때까지 옷들이 쭉 걸려 있었다. 별장에 갇혀있던 시절에도 진하윤은 해마다 권서진과 권지혁의 생일에 입을 옷을 사두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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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3화

권지혁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밖에서 구급차 소리가 울렸다.권지혁이 밖으로 나가 사람들한테 권정열과 권호성을 차에 싣게 한 뒤 돌아와서 말했다."형, 나 먼저 좀 다녀올게."살릴 가망은 거의 없었지만 다들 여기서 사고가 난 채로 두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았다.권지헌이 권지혁을 바라봤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훌쩍 자란 것 같았다.이제는 일을 할 때도 앞뒤 사정을 헤아리고 꼼꼼히 따질 줄 알게 되었을 것이다.다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권지헌이 고개를 끄덕이며 권지혁의 어깨를 두드렸다."가봐. 사람 보낼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대신 처리해 줄 거야.""고마워, 형."권지혁은 진하윤을 한참 바라보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별장을 떠났다.저 멀리 하늘에 어둠이 점점 걷히며 희뿌연 모습을 드러냈다.여명이 어둠을 몰아낸 자리에는 한 줄기 햇살이 검은 안개를 뚫으며 동이 트기 시작했다. 허설아는 회사 업무를 맡기고 바로 장례 업체에 연락을 취했다.날이 좀 더 밝은 뒤에야 권정우한테 전화를 걸어 박희수한테 천천히 알리고 나중에 한번 와달라고 부탁했다.처음엔 어안이 벙벙해 있던 권정우는 한참 만에 한숨을 내쉬었다."그래, 고생했다. 네 어머니한테는 내가 말할게."그 말을 들은 박희수가 세수를 하다 말고 돌아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나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데?""진하윤이 떠났대. 애들이 뒷수습 다 했으니 우리도 오래. 아버지하고 셋째도 병원에서 응급 처치 중이라니까 내가 먼저 가볼게."박희수가 알겠다며 짧게 답했다.당황스럽고 놀라긴 했지만 온갖 풍파를 겪어온 사람답게 금세 마음을 추슬렀다.허설아와 권지헌이 밤새 그 일을 처리하느라 돌아오지 못했다는 걸 알고 박희수도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민국한테 전화를 건 권지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다만 이유는 교통사고로 둘러댔다.한꺼번에 세 사람이 떠났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진하윤과 권정열의 이혼 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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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4화

세상의 모든 일이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더군다나 눈앞에서 가족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한테는.권서진은 양준우가 왜 여기 왔는지 알 수 없었다.몇 번 만났을 때 권서진은 늘 화려하고 눈부신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초췌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 마치 의지할 곳을 잃은 물고기 같았다.자존심과 자부심이라는 이름의 비늘은 모두 뜯겨져 나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 알맹이만 남은 물고기가 돼 있었다.양준우는 이런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양준우가 머리 위의 우산을 기울여 권서진에게 씌워주었다. 빗줄기가 그리 굵지는 않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부슬부슬 흩날렸다.권서진의 뜨거운 눈물이 양준우의 손바닥을 타고 늘씬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양준우는 가슴이 아려왔다. 눈앞에 있는 이 장미는 화사하고 당당하게 피어났어야 했다. 지금처럼 시들어가는 모습은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양준우가 나직이 말했다."자책하지 마요. 미리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예요."권씨 가문이 외부에 공개한 이유는 교통사고였다. 때문에 양준우도 진하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고 있었다.그런 일은 권서진이 하느님이라 해도 미리 알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몸을 떨고 있는 권서진을 본 양준우는 마음을 다잡고 팔을 내밀어 꼭 껴안았다. 그리고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울어요."눈물은 이미 다 말라 있었다.권서진은 남자의 품이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권서진이 양준우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여기 어떻게 온 거예요?""진씨 가문에서 우리 엄마한테 연락했어요. 엄마가 꼭 가보라고 하셨거든요." 처음엔 양지현도 권서진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양현성이 위독한 틈에 양준우가 무슨 핑계든 만들어서 권서진과 함께 병문안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병원에 와서 연기하는 거라도 좋다고 생각했다.심지어 권서진은 너무 차갑고 양준우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며 못마땅해하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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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5화

독약을 투여한 것만 봐도 진하윤이 정말 모질게 마음먹은 듯했다. 자기 목숨까지 걸고서라도 권호성과 권정열한테 독을 먹이려 했으니까.권씨 가문이 체면 때문에라도, 게다가 본인이 직접 유언장까지 남긴 이상 권지헌이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거라는 걸 진하윤은 알고 있었다.조사를 한다 해도 밖에서 상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것으로 결론 날 것이다. 설령 진실이 드러난다 해도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권지호는 으스러질 듯 이를 악물었다. "권지헌이 우릴 그냥 살려둘 것 같아?" 권지민이 차분하게 말했다."적어도 이런 최악의 결말은 아닐 거야. 형은 감히 죄를 짓지 못할 테니까." 권지헌은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다.허설아와 연희를 위해서라도 천벌 받을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권지민의 농담 한마디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 향까지 피우러 가는 사람이니 그만큼 신경 쓰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그러니 두 사람도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권지민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형수님한테 베푼 은혜는 남아 있을 거고 덕을 쌓고 싶어 하는 지헌이형은 어떻게 하진 않을 거야." 권지호가 차갑게 웃었다.다들 모르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면 형제들 가운데 속내가 가장 검은 사람은 다름 아닌 권지민이었다.권지호는 그저 권호성 손에 쥐어진 말에 불과해서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었다.하지만 권지민은 달랐다. 권지민은 계산적이라 허설아를 좋아하면서도 행동하기 전에 먼저 득이 되는지부터 따졌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이었다. 세상에 권지민의 호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권지호가 코웃음을 쳤다."괜히 말려들지 말고 적당히 해. 나중에 난 모른 척할 거니까.""걱정 마, 죽지 않으면 살겠지. 지금은 무엇보다 형이 제일 걱정이야. 할아버지도 없는데 주얼리 라인 지킬 수 있겠어?"권지혁과 권서진이 그렇게 큰 먹잇감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셋째 집안에 큰 변고가 생겼고 둘째 집안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권지헌이 어느 편을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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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6화

장례식이 끝난 뒤, 진민국은 권씨 가문과 상의해 진하윤의 유골함을 서경시로 가져가기로 했다.딸을 고향에서 잠들게 하고 싶었다. 이미 권정열과도 이혼해서 이제는 권씨 가문 며느리가 아니었지만 여전히 진민국의 딸이었다.최시연이 울면서 진민국에게 쏘아붙였다."하윤이가 고집 세서 그동안 집에도 안 돌아온다고 하더니 당신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연락 못 하게 막지 않았으면 진작 집에 데리고 와서 이런 일도 없었을 거잖아!" 최시연이 때리는 걸 묵묵히 맞고 있는 진민국은 순식간에 확 늙어버린 것 같았다. 진민국은 진하윤의 유골함을 직접 안고 별장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며 조심스레 말했다. "하윤아, 이제 계단 내려가니까 조심해. 아빠 뒤 따라와.""아빠랑 집에 가자." 마치 어릴 적 진하윤을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닐 때 같았다.진민국이 너무 애지중지 키운 탓에 진하윤은 커서 무엇이든 손쉽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권정열과 결혼하려 할 때, 한 번이라도 말렸더라면.진하윤과 권정열의 사이가 틀어져 온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 집에 데리고 왔더라면.그때 그 알량한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그랬다면 이렇게 자식을 앞세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진민국은 더 이상 이런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단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유골함에 눈물을 흘리면 딸이 편히 잠들지 못할 테니까.그 모습을 보며 몸을 돌린 최시연은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왔다.차에 오르기 전, 진민국이 권서진을 보며 말했다. "서진아,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이 외할아버지가 숨이 붙어있는 한, 너와 네 오빠를 지켜줄게."이 또한 진하윤의 유언이었다.권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차에 타는 진민국 내외를 배웅하러 온 권지혁은 산길이 험하니 가는 길에 꼭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했다.사람들을 다 배웅한 뒤, 권정열과 권호성의 장지에 관련한 일은 모두 권정우가 맡아 처리했다.권정열은 이혜숙 곁에 묻혔고 권호성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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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7화

"다들 나는 앞으로 정략결혼으로 가문에 도움을 가져다주는 거 말고는 아무 가치도 없는 권씨 가문이 버리는 아이라고 했어요."권서진이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눈가를 따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내 인생도 그냥 말 잘 듣고 쓸모 있는 인형 노릇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새언니를 만났어요.""엄마도 돌아왔고요.""엄마가 나를 데리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만나러 갔고 얘기도 많이 나눴어요. 이제야 내 삶에도 봄날이 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겉보기엔 화려하고 눈부신 권서진도 보통 사람은 겪어보지 못한 힘든 고민이 있었다.권서진에게 처음으로 믿음과 호의를 느끼게 해준 사람은 허설아였다. 허설아 덕분에 권지헌이 진하윤과 권정열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했었다. 하지만 결국 오래전 묻어둔 화근이 한꺼번에 터지고 만 것이다. 오래전 쌓인 원한과 미움은 진하윤의 마음속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원한의 깊이는 어느새 권호성을 보기만 해도, 권호성이 권서진과 권지혁에게 꿍꿍이를 부리려고 할 때마다 지옥에 끌고 가고 싶을 정도로 깊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면 본인도 그 지옥 속에 있어야 했다.권서진도 알고 있었지만 내려놓을 수 없었다."교통사고라고는 했지만 사실이 아닌 거 알고 있죠?"양준우도 어느 정도 내막을 알고 있었다.몰랐다 해도 권호성의 시신을 본 순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권씨 가문에서 말하지 않으면 양준우도 굳이 묻지 않았을 것이다.권서진이 먼저 말을 꺼내자 그제야 양준우가 답했다. "네.""엄마는 나와 오빠를 위해서 그랬던 거예요. 그러고 보면 양준우 씨를 알게 된 것도 다 엄마 덕분이었네요. 엄마는 내가 빨리 시집가서 누군가 나를 지켜줬으면 했거든요."양준우가 조심스럽게 운전하며 말했다."알아요. 그날 서진 씨 오빠가 얘기해줬어요."양씨 가문에서 식사할 때도 권서진은 이런 일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권서진이 마음에 걸려하는 사람은 오직 진하윤뿐이라는 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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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8화

셋째 집안의 장례를 마무리한 뒤. 회사로 돌아온 허설아가 컴퓨터를 켜자마자 권서진이 보낸 디자인 도안이 한가득 도착해 있었다.전화위복이라도 된 건지 영감이 샘솟은 모양이었다.àl'aube의 새 시즌 주얼리 디자인뿐만 아니라 골드 브랜드의 메인 라인 디자인까지 마친 뒤였다.웨딩을 테마로 별과 달을 주요 모티브로 삼고 레이스 기법을 더해 예술 작품처럼 보였다."생각해 봤는데 결혼할 때는 대부분 무거운 금 장신구를 사지만 막상 나중에는 하고 다니기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래서 무게가 있어도 일상에서 쓸 수 있는 골드 라인과 가벼운 무게의 정교한 시리즈를 같이 디자인했어요."허설아는 디자인 도안을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 금 장신구는 왠지 촌스럽다고 여겨져서 좋아하지 않는 허설아조차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허설아는 디자인 도안을 모두 승인했다."권율 그룹 쪽에 입찰이 필요한 오더가 있는데 우리도 참가할까요?""참가해야죠.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낙찰되면 특혜니 뭐니 말이 나올까 봐 걱정되고 떨어지면 또 쪽팔리잖아요." 컴퓨터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고 있으니 권서진의 말투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권율 그룹의 주얼리 라인은 권지헌 소관이 아니었지만 큰 결정은 다 권지헌을 거치게 돼 있었다.이번 입찰 건은 허설아도 알고 있었다. 어제 조민규가 이미 자료를 보내줬지만 미처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자료를 열어보고서야 권서진이 왜 욕심을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오더를 따낼 수만 있다면 서브 브랜드는 골드 시장에서 판로와 인지도 걱정이 없을 정도였다.브랜드를 하나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돈을 들여 유명인을 모델로 써서 화제를 끌어모으거나 이미 화제성을 가진 곳에 노출시키는 방법뿐이었다. 모델은 허설아도 당장은 고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권율 그룹 입찰은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한번 해봐요, 손해 볼 것도 없잖아요. 서진 씨 디자인 믿어요.""좋아요, 그럼 우리도 참가해 봐요. 그런데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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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9화

앞으로 다가가 김지수의 손에 든 종이를 낚아챘다. '임신 확인'이라는 글을 본 순간 허설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김지수를 바라봤다."언니한테 얘기했어?""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거 제 거 아니에요! 설아 언니, 이거 제...... 제 친구 거예요. 친구네 집에서 알게 될까 봐 무서워서 제 신분증으로 접수했어요. 못 믿겠으면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 진료받은 사람이 저인지 아닌지요.""친구?"김지수의 친구라는 아이는 누가 봐도 중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허설아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사실 확인을 위해 김지수를 의사한테 직접 데리고 가서 물었다. 진료받은 사람이 김지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오늘 일, 너희 언니한테 얘기할 거야."김지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 친구 나왔으니까 먼저 가볼게요. 설아 언니, 안녕히 가세요."김지수가 막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아이를 끌고 병원을 떠나려 했다.두 아이가 걱정됐던 허설아는 결국 다가가 말을 건넸다."차 갖고 왔으니까 학교까지 데려다줄게."그 여자아이는 누가 봐도 10대였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 허설아가 말을 꺼냈다. "이런 일은 꼭 부모님한테 말씀드려야 해. 혼자서 숨기거나 다른 생각하면 안 돼." 친구 여자아이가 입을 열었다."왜 낳으면 안 돼요?"허설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평소답지 않게 머릿속이 하얘졌다. "낳다니? 너도 아직 애인데 무슨 수로 낳겠다는 거야? 아이 아빠는 누군데? 같은 학교 친구야?""아니에요, 언니, 묻지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어요."아직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아이와 씨름할 필요가 없었다. 이 나이대 아이들은 대부분 사랑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공부하기는 싫어하고 아이를 낳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허설아 나이에도 아이를 낳으려면 꼼꼼히 따질 것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이일수록 더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인생을 결정하곤 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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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0화

허설아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 한 여자아이의 사생활에 관련되는 일이었기에 다짜고짜 떠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동생이 조기 연애하는 거 알고 있었어요?"조민규가 짧게 탄식했다. "전에 선생님이 얘기하셔서 알고는 있었는데 동생 말로는 그냥 애들 소꿉장난이라고 숙제나 같이 하는 정도라고 했어요."허설아는 분명 조민규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랑 만나는지는 알아요?""모릅니다. 혹시 무슨 일 있어요?"허설아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사람이라면 나쁜 소식이 반갑지 않을 테고 그 나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더 싫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민보영이 아이를 낳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머릿속에서 뭔가 툭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 일에 함부로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순간의 망설임 때문에 아직 어린 여자아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허설아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동생한테 한번 물어봐요. 학교까지 데려다준 언니가 전화했다고 말하고요.""나머지는 동생 사생활이니까 본인이 직접 말하려고 할지에 달렸어요." 허설아는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너무 대놓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여기까지가 조민규한테 줄 수 있는 힌트였다.알아챌 수 있을지, 없을지는 조민규의 몫이었다.전화를 끊은 뒤로도 허설아는 계속 이 일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연희가 떠올랐다.그때 마침 권지헌의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책상에 세워둔 허설아의 휴대폰 화면 속, 권지헌은 휴대폰을 든 채 커피머신 앞에 서 있었다.기계가 위잉 소리를 내자 권지헌은 미소를 띤 채 휴대폰 스피커를 손으로 막았다. 커피머신 작동 소리에 허설아가 놀랄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권지헌은 커피를 다 내리고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든 채 탕비실을 나섰다.마케팅팀 탕비실이라는 걸 허설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기 사무실에도 커피머신 있잖아?""이 층 회의실에서 회의가 있어서 끝나고 바로 커피 한 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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