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681 - Chapter 690

751 Chapters

제681화

하물며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송씨 집안은 망했고 권씨 집안은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은 기세였다.송동건은 감히 권지헌을 건드릴 수 없었다.허설아가 하는 뼈 있는 말들도 꾹 참고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송수정이 옆에서 나섰다."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언니가 불효막심해서 그래요.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서 엄마, 아빠는 좁은 집에 살게 하고 우리 일자리도 안 알아봐 주잖아요!"허설아가 혀를 찼다."손발 멀쩡한 사람이 혼자서 일자리 하나 못 찾아요? 요즘 세상에 가만히 서서 밥 받아먹겠다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송원영 씨가 꼭꼭 씹어서 입에 넣어줘야 삼킬 거예요?"송수정이 눈을 부릅떴다."어, 어쩜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해요!"허설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그쪽은 그 얼굴로도 잘만 다니는데 내가 말 좀 심하게 하는 게 어때서요?"허설아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막돼먹은 친척들 앞에서 져본 적이 없었다.연중근과 정선주 같은 사람들조차 허설아한테 탈탈 털려서 입을 닫아야 했다.어설픈 여우짓밖에 할 줄 모르는 송수정은 상대도 아니었다. 송수정은 약이 바짝 올라 발만 동동 구를 뿐 대꾸 한마디 하지 못했다.허설아가 권지헌의 손을 잡고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송씨네 식구들만 그 자리에 남아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가게 입구 카운터.권지헌이 계산하려는데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친구분이 이미 계산하셨어요."서은석이 가게 밖에 서서 권지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계산하려던 서은석은 사장님이 룸 번호를 묻는 순간 송씨네 식구들의 낯짝이 떠올라 아예 권지헌의 룸 번호를 얘기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정머리라곤 없는 인간들한테 공짜 밥을 먹여줄 필요는 없었다. 밖으로 나온 허설아는 송원영의 얼굴과 팔에 아직 가라앉지 않은 붉은 두드러기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괜찮아요. 자고 일어나면 가라앉아요."이 정도 알레르기는 송원영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런 일을 한두
Read more

제682화

서은석은 진심이었다.송원영을 아끼는 마음이 담긴 눈빛이었다. 처음에 서은석은 송원영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아무리 처지가 딱하다 한들 권서진 정도려니 했다.하지만 송원영의 삶을 알아갈수록 서은석이 알지 못했던 곳에서 송원영 혼자 견뎌온 것들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어둠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서은석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부담 가질 필요 없어. 지헌이 결혼식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결혼하고 싶어진 거야."권지헌과 허설아의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행복한 분위기에 감동했을 것이다. 심지어 나도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할 정도였다.너무 벅찬 행복이 오히려 서은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저도 모르게 송원영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었다.송원영이 시선을 내린 채 양고기 때문에 생긴 두드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가라앉고 있었지만 여전히 보기 흉했다."행복하긴 했죠."송원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누구나 그런 행복을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허설아한테는 보물처럼 아껴주는 가족이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아픈 몸으로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언제 쓰일지 모를 영상까지 남겨주었다. 송원영은 그 순간에야 뺨을 한 대 맞고 정신이 번쩍 든 기분이었다.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는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어서 모든 게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그런데 송원영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것이다. 허설아의 부모가 허설아를 대하는 모습, 허설아와 권지헌이 연희를 대하는 모습, 혹은 서은석의 너그러움과 자상함까지 전부 다 사랑이었다. 그런 것들이 송원영의 마음 깊은 곳에 증오가 싹텄다. 그 증오는 나이를 먹는다고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뼛속 깊이 파고들어 낙인처럼 새겨졌다.떠올리기만 해도 뼈를 에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도무지 떨쳐낼 수 없는 증오였다. 송원영은 눈가가 시큰거려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고개를 들
Read more

제683화

하지만 일단 돈을 쏟아부었으면 반드시 결과를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송원영은 열이 나도 무용 수업을 끝까지 들어야 했고 피아노 연습을 마쳐야 했다.다섯 살 때부터 여자애는 살이 찌면 예쁘지 않기에 밥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심지어 신발도 한 사이즈 작은 걸 신어서 발이 너무 빨리 자라지 못하도록 조여야 했다. 발이 너무 크면 보기 싫으니까.공부도 열심히 해서 자신의 가치를 더 명확히 드러내야 했다. 높은 학력에 예쁜 외모, 얌전한 성격, 다재다능함까지 결혼 시장에 내놓을 송원영의 카드였다.하지만 누구도 송원영한테 뭘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옷이든 남자든 마찬가지였다.오직 눈앞의 이 남자만이 끝없이 추락하던 송원영의 영혼을 꽉 안아주었다. 서은석은 송원영의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송원영조차 지나쳐버린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서은석은 송원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조금 놀랐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주차장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한여름에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짓궂은 웃음이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 다 땀에 젖어 몸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송원영이 땀에 두드러기가 덧날까 봐 걱정된 서은석은 품에서 살며시 떼어내고 고개를 살짝 숙여 물었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안고 싶어서요.""집에 가서 실컷 안아."서은석이 팔을 내밀자 팔뚝에는 벌써 모기한테 물린 자국이 다섯 개나 생겼다. "이러다간 병원 모기들한테 뷔페를 차려주겠어."송원영은 다급하게 서은석을 잡아끌고 차에 올랐다.집에 돌아와서는 약 상자에서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을 찾아 서은석의 팔에 발라주었다.서은석은 주방에서 라면을 끓였다.송원영이 휴대폰을 꺼내자 부재중 전화가 십여 통이나 와 있었다. 전부 송동건의 연락이었다. 문자에도 배은망덕하다느니, 철이 없다느니, 가족을 등쳐먹는다느니 하며 송원영을 꾸짖는 말뿐이었다.게다가 송수정과 송민우한테 일자리를 찾아주되 너무 내놓기 부끄러운 건 안 되고 월급도
Read more

제684화

다 큰 어른 둘이 마주 앉아 라면을 먹었다.나름의 별미였다.설거지하기 귀찮았던 두 사람은 아예 한 그릇에 담아 같이 먹었다.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먹다 보니 온몸에 땀이 났다.그런데도 송원영은 마음이 한없이 든든했다.송원영의 집은 확실히 좀 작았다.주방도 작고 거실도 작고 침실도 작았다.서은석이 주방에 있을 때는 송원영이 들어가기도 비좁을 정도였다.면을 한 입 먹던 송원영은 문득, 서은석의 가족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반면 서은석은 몇 번이나 송씨네 식구들에게 불려 다녔고 꿍꿍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미안한 생각이 든 송원영이 입을 열었다."은석 씨, 집에 가족이 어떻게 돼요?""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 우리 할머니와 지헌이 할아버지가 친남매셔. 할아버지는 성격 아주 좋은 요리사고."서씨 집안 계열사인 외식 사업은 한창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서 어르신을 요리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서은석 정도였다."형제자매도 몇 명 있고 난 여섯째야. 집안에 별별 일 하는 사람이 다 있는데 난 그중에서 제일 능력 없는 편이지. 큰형 말로는 내가 지헌이 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닐 줄밖에 모른대." "우리 집으로 이사 가자는 건 본가로 가자는 말이 아니야, 그러니 가족들과 마주칠 일 없어."서은석은 송원영이 가족들을 만나는 게 걱정돼서 묻는 거라고 생각했다.그건 서은석이 용납할 수 없었다. 송원영이 또 다른 가족들과 엮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런 울타리에 가둘 생각도 없었다.송원영이 짧게 대답했다.밥을 다 먹고 휴대폰을 보던 송원영은 서은석이 어느샌가 또 입금한 기록을 발견했다. 여전히 자발적 증여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송원영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주방에서 분주하게 설거지 중인 남자를 바라보았다."은석 씨, 돈은 왜 보냈어요?"서은석이 그릇의 물기를 닦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사랑이 있는 곳에 돈이 가는 거래."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숫자도 아
Read more

제685화

권서진이 고기만두를 먹으며 우물우물 말했다."사랑은 알겠는데 금전적 매력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결혼 예물로 주고받는 금붙이는 보통 신부 재산이잖아요. 사랑을 믿고 결혼 생활을 즐기되, 정 안 되면 돈이라도 남는 거니까요."권서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골드 제품 디자인은 영 감이 오지 않아서 아는 게 너무 적고 타깃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몇 번 작업한 디자인 시안도 번번이 허설아한테 퇴짜를 맞았다.권서진이 어릴 때부터 접해온 건 하이엔드 주얼리였기에 그런 디자인은 막힘없었지만 골드 제품은 확실히 서툴렀다.디자인 영감이 생긴 권서진은 바로 장비를 이용해 시안을 몇 장이나 그려냈다.그중 몇 장을 허설아한테 보냈더니 이번에는 퇴짜 대신 수정 흔적이 가득한 피드백이 돌아왔다. 미술 전공인 허설아는 디자인 시안에 상당히 엄격했다. 일반인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군더더기도 한눈에 보아내고 수정했다. "전에 도안들보다는 낫네요, 그래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거예요." 권서진은 허설아가 수정한 부분들을 다시 손보았다.시안을 다 그리고 나니 바깥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땅거미가 내려앉고 하늘은 빨간 노을에 물들어 있었다.권서진이 목을 꾹꾹 누르며 휴대폰을 집어 들자 양준우한테서 부재중 전화 몇 통이 와 있었다. 문자도 한 통 있었다. [회사 앞에서 기다릴게요.]문자를 보낸 시각은 두 시간 전이었다.권서진은 설마 두 시간을 그냥 기다렸겠냐며 깜짝 놀랐다. 문자를 보낸 뒤로는 전화도 하지 않았다.벌써 밤 8시가 됐으니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퇴근 카드를 찍고 주차장 대신 곧장 회사 정문으로 향했다.평범한 폭스바겐 한 대가 비상등을 켠 채 길가에 서 있었다. 늦게 퇴근하던 직원이 자기가 부른 콜택시인 줄 알고 다가갈 정도였다.전에 권서진의 차를 들이받았던 바로 그 차였다.어렴풋이 기억은 났지만 양준우가 정말 마냥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다가가서 차 문을 연 권서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기사님, 번호
Read more

제686화

말을 꺼낸 순간, 좁은 차 안은 묘한 정적에 휩싸였다.순간 양준우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뭐라고요?""무례한 부탁인 거 알아요. 할아버지가 편찮으신데 내가 결혼하는 걸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것도 콕 집어서 서진 씨랑 결혼하라고 하시네요."권서진은 순간, 잠이 덜 깬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오늘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디자인 작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걸까? 사람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지경이었다.'지금 장난하는 거야?'권서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당연히 안 되죠. 결혼할 사람이 필요하면 많고 많을 텐데, 왜 하필 나예요?"전에 맞선에 응했던 건 어디까지나 진하윤이 들볶고 권호성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서였다.지금은 권호성도 별장으로 옮겨졌다. 권지헌은 자기가 허락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도 권호성과 연락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제는 권호성도 권서진한테 수작을 부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결혼이라는 최악의 수로 자기 자신을 지킬 필요도 없었다.양준우는 잠시 침묵했다.권서진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할아버지가 서진 씨를 콕 집어 말씀하시니 나도 방법이 없었어요. 잠시 동안만 결혼했다가 시간이 좀 지나서 갈라서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지금 장난해요?! 잠이 덜 깼어요?" 양준우가 서류 하나를 꺼내 권서진한테 내밀었다."서진 씨한테 주는 보상이에요."열어보지 않아도 안에 뭐가 들었을지 알 수 있었다.양준우의 자산을 증명할 돈이나 부동산, 지분일 게 뻔했다.하지만 권서진은 필요없었다. 권서진이 두툼한 서류를 집어 들더니 양준우한테 던졌다."내가 돈 몇 푼에 영문도 모르고 재혼녀가 되어줄 것 같아요? 잠깐만 결혼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생각이면 혼인신고서를 위조하면 되잖아요?""생각해 봤는데 할아버지가 조사하실 거예요.""하! 그럼 이혼하면 할아버지가 조사 안 하실 것 같아요? 양준우 씨, 머리가 잘못된 거 아닌지 병원부터 가봐요. 나 갖고 장난치지 말고요."권
Read more

제687화

아무리 결혼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진다 해도 영문도 모른 채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었다. 양준우도 할 말은 다 한 상태였다. 거절당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권서진이 이렇게 과격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양준우는 휴대폰을 꺼내 양지현과의 대화창을 열고는 음성 메시지를 재생해 권서진의 귀에 가져다 댔다."준우야, 할아버지 중환자실에 실려 가셨어."이어 양현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는 괜찮다. 이제 늙었으니 살 날이 하루하루 줄어드는 거 아니겠니.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게 준우 네 혼사다. 서진이를 데리고 들어와야 내가 눈을 감겠는데." 그다음은 양준우가 보낸 메시지였다."서진 씨 저랑 결혼 안 할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저희는 지금 그냥 친구 사이예요."수화기 너머에서 양현성의 심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다음 음성 메시지는 30분이 지난 뒤였다. 양지현의 목소리였다. "너 왜 할아버지 화를 돋워? 멀쩡하시던 분이 또 한바탕 응급처치를 받으셨잖아!""네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는데 할아버지 화나게 하지는 마!"양준우는 알겠다는 답장만 보냈다. 양지현은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지 한마디를 더 보냈다."알긴 뭘 알아? 퇴근하면 서진이 데리러 가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정을 좀 붙여봐!"양준우는 더이상 답하지 않았다.휴대폰을 가져간 양준우가 말했다. "군 병원에 있는 전우한테 전화해서 확인했는데 할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가신 건 사실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휴대폰에 진료 기록도 있어요."그 말을 듣고 나서야 권서진의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하지만 여전히 화는 풀리지 않았다.양준우와 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돌아가면 서진 씨가 나랑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할아버지한테 말씀드릴게요."권서진이 머뭇거렸다."어르신이 화나서 또 응급실 들어가시는 거 아니에요?""그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양준우도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다.양현성의 몸까지 어떻게 할
Read more

제688화

권지혁이 챙겨온 저녁밥은 미애 이모가 만든 음식이었다.어릴 때부터 먹고 자란 손맛인데도 지금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꼭 소금간이 빠진 음식 같았다.몇 술 뜨다 말고 권서진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전화해서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차 안에서 양준우가 보인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가 떠올랐다.권서진은 마음이 너무 뒤숭숭했다.걱정한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양씨 집안에서 모셔 올 의료진 정도면 믿을 만할 테니 권서진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 이상은 권서진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설마 그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여서 결혼이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그럴 수는 없었다.게다가 이미 친구 목록에서 지워버린 뒤였다.게임을 끝낸 권지혁은 권서진이 제대로 닫지도 않고 소파 위에 던져둔 가방을 발견하고 정리해 주었다.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가 툭 떨어졌다.봉투를 열어 보니 일련번호까지 죽 이어진 빳빳한 신권 지폐가 가득했다.누가 봐도 일부러 은행에 가서 뽑은 것이 분명했는데 이렇게 많이 이어진 신권을 구하려면 인맥까지 동원했을지도 몰랐다. 이만큼 이어진 신권을 구했을지도 몰랐다."너 투자은행으로 이직하게? 지폐 연구하기 시작했어?"권서진이 몸을 뒤로 젖혀 거실 불빛을 빌어서야 권지혁의 손에 들린 두툼한 봉투를 발견했다.서경시에 갔던 날, 양현성이 권서진한테 주었던 첫인사 선물이었다.차에서 내릴 때 분명 양준우 차에 두고 내렸는데?언제 또 가방에 넣어둔 거지?권서진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렇다고 양준우를 다시 추가하기는 싫었기에 아예 전화를 걸었다."지난번에 할아버님이 주신 봉투, 언제 가져갈 거예요?""할아버지가 준 거니까 그냥 받아요. 그 돈 없다고 내가 못 사는 것도 아니고 서진 씨도 팔자 바꿀 정도는 아니잖아요."권서진도 성질이 났다."직접 가지러 오든가, 아니면 그쪽 사무실로 보내든가 할 테니 알아서 선택해요."이런 돈봉투가 사무실로 배달되면 감찰 조사를 받을 게 뻔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Read more

제689화

권서진은 고민 끝에 양준우가 결혼하자고 했던 일을 권지혁에게 털어놓았다.권지혁이 막 마셨던 커피를 그대로 소파에 뿜어버렸다. 권서진이 비명을 질렀다."내 소파에 물 묻으면 안 된단 말이야! 권지혁, 죽을래?!"권지혁이 허둥지둥 소파에 흘린 커피를 닦아냈다.다행히 천연 가죽이라 닦아내기만 하면 되었다."양준우가 너랑 결혼하자고 했다고? 보는 눈은 있네.""장난하지 말고!""사람은 괜찮아. 신원 조회 통과할 사람이고 집안도 깨끗하고 사람도 반듯해. 아무리 그래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하는 건 안 되지."하지만 권서진의 생각은 달랐다.양준우와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무례한 제안을 하는 걸 보면 인품도 별로인 듯했다. 어차피 지워버렸으니 앞으로 연락도 줄일 생각이었다.저녁에 자고 가기로 한 권지혁이 방을 막 정리했을 무렵, 진하윤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지혁아, 너희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 지헌이 불러서 이쪽으로 좀 와."권지혁은 부랴부랴 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권서진을 불러 함께 집을 나서며 권지헌한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허설아의 목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요? 잠깐만 기다려요. 지헌이랑 같이 갈게요."이 시간에 차를 몰고 별장까지 가면 한밤중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권지혁 남매도 한 차로 움직이기로 하고 권지헌이 운전대를 잡았다.조수석에 앉은 허설아가 권지헌한테 당부했다."피곤하면 나랑 바꿔.""지혁이 있으니까 너는 운전 안 해도 돼."별장으로 가는 길에는 구불구불한 산길이 있는 데다 권지헌이 한밤중에 허설아한테 운전을 맡길 리 없었다.다행히 차에는 권지혁도 타고 있었다.허설아가 앞쪽 도로를 바라보며 권지헌한테 물었다."할아버지가 뇌졸중이라며, 의사 안 불러도 돼?""그럴 필요 없어. 별장에 의사도 있고 장비도 있어. 의사 말로는 별일 아니래."정작 일이 난 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권지헌은 어쩌면 숨겨진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뒷좌석에 앉
Read more

제690화

권지헌이 다가가 권정열이 든 칼을 걷어차 버렸다.권호성은 그제야 믿을 구석이라도 생긴 듯 겁에 질린 얼굴로 권지헌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지헌아, 이 할아비 좀 살려다오!""구급차가 오는 중이에요."다만 언제 도착해서 권호성을 데려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은 차가 없는 밤이라 해도 몰기 힘든 길이었다.그 사실을 알고 있는 권호성은 단숨에 눈빛이 어두워졌다.권호성은 이해할 수 없었다.누구보다 화려한 여생을 보내야 했을 자신이 어쩌다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걸까. 또 언제부턴가 권지헌의 눈빛에서 존경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차가운 경계심만 남아 있었다. 마치 혈육이 아니라 권지헌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방어해야 할 낯선 사람이 된 듯했다. 그 눈빛에 권호성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권호성이 권지헌을 올려다봤다.권지헌도 고개를 숙여 권호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권지헌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가 문밖에서 차에 깔려 죽어가던 그때, 이렇게 권호성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가서 강아지를 구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하지만 권호성은 먼 훗날 권씨 가문을 이끌 사람으로서 모질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일에도 쓸데없는 미련과 정을 붙여서는 안 되며 마음만 약하게 할 뿐이라고 했다. 권지헌은 유리창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아지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해, 권지헌은 다섯 살이었다.강아지는 주인이 왜 구해주지 않는지 알지 못했다.권지헌은 권호성이 왜 자기를 나가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권지헌이 더없이 복잡한 심경이 담긴 시선을 내리깔았다. "할아버지."권지헌이 나직이 불렀다."할아버지가 저한테 모질어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권호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음을 모질게 먹으라고 가르친 건 분명 권호성이었다. 하지만 그 모진 마음의 화살이 언젠가 자기 자신한테 돌아오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권호성이 가슴을 움켜쥔 채 힘
Read more
PREV
1
...
6768697071
...
7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