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911 - Chapter 920

941 Chapters

제911화

예쁘장한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하지만 출장 때문에 운동화 대신 굽이 가는 힐을 신고 왔다는 사실은 깜빡했다.경사를 오르며 힘을 너무 준 탓에 뒤꿈치를 제대로 디디지 못해 뒷굽이 미끄러지면서 넘어질 뻔했다.노현우가 재빨리 손을 뻗어 김지유의 허리를 감싸고 품으로 끌어당겼다.끌려온 힘 때문에 둘 다 뒤로 밀려 길가 벤치에 털썩 앉고 말았다.노현우가 벤치에 주저앉았고 김지유는 그대로 무릎 위에 올라앉은 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얼떨떨해하던 김지유는 나지막한 노현우의 웃음소리에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노현우가 손을 아래로 내려 김지유의 발목을 만지며 부드럽게 물었다."삐끗했어요?""아, 아니에요……"노현우의 손바닥은 따뜻했다.단단한 손으로 김지유의 가느다란 발목을 어루만지자 뼈밖에 잡히지 않았다.김지유를 안았을 때는 허리가 손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잘록했는데 아까 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얼핏 봤던 실루엣은 제법 볼륨감이 있었다.노현우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묘한 웃음기가 섞였다."지유 씨가 이 경사를 너무 얕봤나 보네요.""운동화 안 신은 걸 깜빡했어요……"어쨌든 김지유 본인의 잘못이었기에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괜찮아요, 고마워요."김지유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노현우는 허리를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손등이 살며시 뺨을 스쳤지만 피하지 않았다.이 시간에는 공원에 들어오는 관광객이 적었고 대부분 조명이 환한 실내 포토스팟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벤치 주변의 조명은 높은 나무 덩굴에 가려져 있었고 늘어진 가지마다 작은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꽃송이마다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노현우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김지유에게 가볍게 입을 맞췄다.입술만 가볍게 닿았다가 금세 끝난 입맞춤이었다."가요."노현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고 김지유를 보는 눈빛에도 스스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김지유가 당황하며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둘 다 약속이나 한 듯 스치듯 짧았던 입맞춤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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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 공세에도 고아현이 반박하는 건 허설아와 관련된 질문뿐이었다.고아현이 차분하게 말했다."연예계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그곳은 저와 맞지 않아요.""이번 기회에 많은 분이 동물 보호 활동에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니까요."말을 마친 고아현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병원을 떠났다.권씨 집안 본채 안, 허설아는 러닝머신 위에서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곁을 지키던 허민정은 TV에 나오는 고아현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감탄했다."참 야무진 아가씨네. 착한 아이야."허설아가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따라 웃었다."내 안목이 원래 좋잖아."허설아가 고아현을 홍보 대사로 밀어붙였을 때 회사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과거 악성 기사가 너무 많아 앞으로의 브랜드 이미지에 안 좋다는 이유였다.하지만 허설아는 이번 콘셉트가 고아현에게 꼭 맞다고 생각했다.고아현한테는 거칠고 자유로운 매력이 있었다.TV 속에서 빈틈없이 아름답던 여배우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더 고아현 삶의 테마와 색깔을 찾은 듯 빛났다.허설아는 그런 고아현을 보며 기뻐했다.광고를 본 권정민은 고아현에게 몇 번이나 연락했지만 영화배우로 타고난 얼굴을 낭비하지 말고 연예계로 돌아오라는 얘기뿐이었다.고아현은 거절했다.폐부종이 다 낫는 대로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일에 계속 몸담을 생각이었다.임신 기간 내내 체중 관리를 엄격히 한 허설아의 영양사가 짜준 식단표를 처음 봤을 때 허민정은 미간을 찌푸리기까지 했다.꼭 다이어트 식단 같았다.이미 마른 편인데 임신을 하고도 다이어트를 하다니 이해되지 않았다.허민정은 영양학과에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요즘은 산모와 아이 모두를 위해 이렇게 관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임신 기간 동안 허설아의 체중은 5kg밖에 늘지 않았고 그마저도 거의 배에만 붙었다.요즘 권지헌도 집에서 일했다.서재에서 나온 권지헌이 다가와 러닝머신에서 내리는 허설아를 부축하며 물었다."힘들어?""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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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다른 집 같으면 이 이름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할 거예요."허민정도 따라 웃었다."나도 기쁘죠. 그런데 연희 이름도 지헌이와 설아가 그대로 두기로 했잖아요. 둘째는 그래도 지헌이 성을 따라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허민정은 이름을 다 지었다기에 당연히 출생신고 할 이름은 권씨 성을 따를 줄 알았다.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권씨 집안에 미안했다.권씨 집안은 허설아와 연희한테 나무랄 데 없이 잘해주었다.박희수가 어머나를 외치며 말했다."내 말은 연희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권씨 성을 따라야 한다는 거예요. 설아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낳은 아이잖아요.""지헌이가 아무리 잘해도 애 낳는 고생까지 대신할 수는 없어요. 게다가 설아는 연희를 혼자 낳았잖아요."박희수한테는 흔한 시어머니 고집 같은 게 없었다.허설아와 권지헌이 행복하게 잘 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환하게 웃는 박희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기품 있고 아름다웠다."나도 엄마 성을 따랐고 설아도 사돈 성을 따랐는데 그게 뭐 어때서요? 우리 집에 들어와서 아이까지 낳아주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잖아요. 뻗어주는 건 큰 은혜잖아요. 정 마음에 걸리면 지헌이도 설아 성을 따르라고 해요."박희수는 마음이 넓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어차피 아이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처음에는 박희수도 조금 마음에 걸려서 혼자 고민했지만 권정우의 한마디에 생각이 싹 바뀌었다."애가 열여덟 살 돼서 당신 성 따라 박씨로 바꾸고 싶다고 하면 어떡할 건데?"생각해 보니 그런 횡재가 따로 없었다.그제야 박희수는 중요한 건 아이가 무슨 성을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성을 따라야 더 관계가 가까워지냐는 것임을 깨달앗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권씨 집안에 아이가 몇 명 더 생기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연희가 있으니 나중에 연희 자식은 반드시 권씨 성을 따를 게 분명했다.허민정은 할 말을 잃었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정말 권지헌까지 허씨로 성을 바꾸면 세상이 뒤집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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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한여름날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시끄러운 매미 울음소리에 송수정은 짜증이 확 났다.점점 불러오는 배를 내려다보던 송수정이 손을 얹고 혼잣말했다."애만 낳으면 준서도 나를 버리지 못할 거야……"송수정은 여전히 아이로 노준서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요즘 노준서는 송수정이 아이를 낳겠다고 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심지어 산전 검사를 받으라며 돈까지 주었다.하지만 송수정과 결혼하거나 혼인신고를 하겠다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았다.노준서가 집에 돌아오자 송수정은 허리를 짚어 불룩해진 배가 더 도드라지게 하며 다가갔다. "준서야, 왔어……"노준서가 송수정을 힐끗 보았다.솔직히 송수정은 얼굴이 제법 예뻤고 임신하고도 못생겨지기는커녕 피부가 뽀얗고 발그레하게 혈색이 돌아 더 예뻐 보였다.노준서는 슬슬 짜증이 났다.노준서의 시선이 송수정의 배를 스쳤다. 배 속에는 노준서의 아이가 있었다.노준서는 송수정이 아이를 낳든 말든 상관없었다.하지만 송수정이 살갑게 다가오자 또 짜증이 치밀었다.노준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진짜 낳을 거야?"송수정이 노준서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그래도 우리 아이잖아, 차마 지울 수가 없었어…… 사람 찾아서 초음파 사진 봐달라고 했는데 아들이래!"마음이 답답해진 노준서는 송수정의 손을 뿌리치며 건성으로 대꾸했다."나는 너와 결혼 안 할 거야. 낳고 싶으면 낳아, 그리고 네 선택이니까 네가 책임져."송수정이 억울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책임지라니, 대체 뭘 어떻게 책임지라는 거지?자기 한 몸 먹여 살리기도 힘든데 갓난아기까지 키우라는 건가?"준서야……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우리 책임질 생각이 없다는 거야?"노준서가 싸늘하게 송수정을 바라보았다."내가 낳으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네가 굳이 낳겠다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그래도 네 아이이기도 하잖아……""나는 앞으로 아이가 더 있을 거야. 부모가 바라지도 않는데 태어난 아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노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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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남자의 눈빛에 송수정은 소름이 끼쳤다.노준서가 데려온 남자가 왠지 불편하게만 느껴졌다.게다가 떨어질 줄 모르는 끈적한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노준서가 송수정을 끌어당겨 옆에 앉히고 소개했다."이쪽은 내 친구 설 대표님이야."송수정은 얌전히 인사했다.설 대표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뻗어 송수정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송수정이 피하려 하자 노준서가 오히려 앞으로 떠밀었다.송수정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경악한 채 노준서를 쳐다보았다.노준서의 속셈을 송수정은 당연히 알 수 있었다.노준서가 태연하게 말했다."착하지,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집까지 제공해 줬잖아. 이 집안에 조금은 보탬이 돼야지.""하지만 나는……""이렇게라도 안 하면 설 대표님이 널 거들떠도 안 볼걸."송수정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는 기분이었다.손발이 덜덜 떨렸지만 노준서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친 순간, 두려움을 억누르며 설 대표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노준서는 그제야 만족스러워했다.식사를 마친 설 대표가 송수정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송수정이 설 대표의 팔을 붙잡고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저 뭐 좀 사올게요, 바로 밑이라 금방 다녀올게요."설 대표에게 돈을 받아내려는 속셈이었다.뭘 살 거냐고 묻자 송수정은 아무렇게나 둘러대고 설 대표의 팔을 끌어안고는 노준서를 쳐다보며 말했다."아니면 네가 사다 줄래?"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사다 줄 여유가 없었던 노준서는 송수정의 신분증을 가져가며 경고했다."허튼수작 부릴 생각 하지 마.""무슨 수작을 부려. 나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잖아."그건 노준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노준서는 휴대폰을 돌려주고 돈을 조금 이체한 뒤 빨리 다녀오라고 했다.송수정은 순순히 따르는 척 설 대표의 팔을 붙잡고 아쉬운 듯 애교까지 부리며 전혀 거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그 모습에 노준서도 경계를 풀었다.문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세워 탄 송수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출발, 출발해주세요……"그제야 정작 도망치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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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울면서 계속 하소연하는 송수정은 입만 열면 노준서의 잘못을 늘어놓았다.송원영은 비서에게 물을 가져오게 해 송수정에게 마시라며 건넸다.카펫 위에 주저앉은 모습을 보니 민지강이 차마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지금 송수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한쪽 발은 맨발이고 다른 쪽에는 발에 맞지도 않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발목에는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가슴팍에는 요리하다 묻은 얼룩까지 남아 있었다.얇은 티셔츠 아래로 불룩한 배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과거의 일과는 상관없이,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그저 밑바닥까지 내몰려 엉망이 된 여자였다.송원영은 재촉하지 않았다.휴대폰으로 비서한테 자기 카드로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해 송수정한테 가져다주라고 했다."일단 일어나. 오늘 노준서 씨와 싸운 거야?"송수정은 결국 멘탈이 무너지고 말았다."언니는 걔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몰라! 어떻게 그럴 수가……"송수정은 이를 악물고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털어놓았고 송원영은 듣는 내내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노준서가 미친 걸까?노현우는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노준서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속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노가 치밀었다."이봐요, 지금 하는 말 전부 책임져야 해요! 준서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송수정은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아니라고요? 뭐가 아닌데요? 당신이 임신한 것도 아니고 다른 남자한테 팔릴 뻔한 것도 아니잖아요, 여기서 무슨 중립인 척이에요!"노현우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관자놀이를 짚었다.그때 계약서 출력을 마친 김지유가 송원영 비서가 주문한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송원영이 턱짓으로 음식을 송수정에게 주라고 했다."일단 먹어. 다 먹으면 내가 데려다줄게.""싫어, 나 안 돌아가. 나 데려가면 안 돼!"송원영은 김지유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김지유가 놀라며 짧게 탄성을 터뜨렸다.노준서가 다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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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오랜 세월 함께 지낸 노현우지만 노준서의 이런 목소리는 처음이었다.송수정이 두려움을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준서야, 나 무서워……네 아이잖아! 설 대표님 때문에……아이한테 영향 줄까 봐 걱정되지도 않아?"그 말을 들은 송원영이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리며 웃었다.송수정도 아주 구제 불능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런 순간에 노준서한테서 말을 끌어낼 줄 알았다.노준서는 송수정 옆에 노현우가 있다는 걸 알 리 없었다."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아이 낳으라고 한 적 없다고! 네가 낳기로 했으면 그 대가도 네가 감당해야지!""설 대표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복인 줄 알아. 요즘 운이 좀 안 좋다고 그 아이로 액땜하려는 거라고."송수정이 목메어 말했다."하지만 네 아이잖아……"노준서는 차갑고 잔인했다.사형 집행인이라도 된 듯 몇 마디 말로 송수정 배 속 아이의 운명을 정해버렸다."나는 앞으로 아이가 더 생길 거야. 송수정, 넌 내 아이를 낳을 자격도 없어."송수정은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노현우가 손을 뻗어 전화를 끊었다.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노준서가 뱉은 몇 마디 말만으로 온몸이 굳고 소름이 돋기 충분했다.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동생을 이제야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임신부로 액땜하는 건 강성시 유흥가에서 흔한 일이었다.노현우도 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사업하는 사람들이 액운을 임신부 배 속 아이한테 떠넘기는 짓을 액땜이라 불렀다.그때만 해도 노현우는 코웃음을 치며 평생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운명의 부메랑이 되돌아와 노현우의 뺨을 후려친 것처럼 화끈거리도록 아팠다.노준서의 말을 끝까지 들을 용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대체 어디서 저런 천박한 짓을 배운 걸까?자리에서 일어나던 노현우는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김지유가 다가와 부축하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갈라진 목소리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송수정은 허겁지겁 배달 음식을 먹었다.먹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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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송수정이 애처로운 얼굴로 송원영을 바라보았다."언니, 나 안 믿는 거 알아. 그래도……"송수정도 결국 말끝을 흐리고야 말았다.어릴 때부터 대놓고, 아니면 몰래 송원영한테서 얼마나 많은 걸 빼앗았는지 셀 수도 없지만 그래도 너무했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곁에 있던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는 게 이렇게 아프고 두려운 줄 몰랐다.이제야 잘못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송수정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송원영한테 미안하지만 자신도 이미 벌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었다.송원영은 송수정을 힐끗 쳐다볼 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송수정이 잘못을 뉘우치든 말든 상관없었다.과거의 일도, 송씨 집안 사람들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송원영이 옆에 있던 메모지를 집어 들고 딱 잘라 말했다."돈은 보내줄 테니까 차용증 써.""응. 꼭 갚을게."수술비가 얼마나 드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송원영이 망설이는데, 노현우가 다가왔다."제가 낼게요.""노 대표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노현우가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준서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제 탓이에요. 이분 수술비와 앞으로 필요한 영양비는 제가 낼게요."노현우는 송수정한테 입금용 QR 코드를 받아 천만 원 정도를 입금했다."이 정도면 될까요?""네, 충분해요. 그런데 누구세요……"노현우를 쳐다보는 송수정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자세히 보니 노준서와 조금 닮은 얼굴이었다.지금 송수정은 노준서와 관련된 모든 것이 진심으로 두려웠다.노현우가 차분하게 말했다."준서는 제 동생이에요. 그동안 제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가르침에 소홀한 탓이에요."예전 같았으면 노현우 같은 엘리트에게 송수정이 먼저 다가갔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 모든 남자를 멀리하고 싶었다.뒤로 조금 물러나 휴대폰에 입금된 금액을 확인하던 송수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 누군지 알겠다. 노준서가 당신한테서 비룡 그룹 기밀을 빼내 팔아넘길 거라고 했어요."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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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오늘 송원영은 짙은 초록색 슈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덕에 도자기 같은 하얀 피부가 더 도드라져 보였고 목에 건 진주 목걸이도 유난히 반짝였다.성숙한 매력에 회사 임원 특유의 날카로운 카리스마까지 넘쳤다.그 모습에 송수정은 순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눈가가 시큰거리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차오르며 시야가 흐려졌다.송수정은 거의 도망치듯 àl'aube를 빠져나갔다.송수정이 떠난 뒤 송원영은 하던 주문서를 마저 처리한 뒤에야 고개를 들어 맞은편 소파에 넋이 나간 채 앉아 있는 노현우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전에 노준서 씨가 지유 씨 휴대폰에도 몰래 프로그램을 설치한 적 있었어요. 노 대표님도 시간 날 때 휴대폰 한번 확인해 봐요."노현우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제자리에 서서 줄곧 쳐다보고 있던 김지유를 바라보았다.김지유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복잡한 눈빛이었다.김지유와 송원영이 근거 없는 추측으로 함부로 사람을 의심할 성격이 아니라는 걸 노현우도 알고 있었다.목이 바짝 타들어갔다.비룡 주얼리의 기밀 자료를 집에 가져오거나 개인 휴대폰에 저장해 둔 적은 없었다.하지만 최근 노준서가 자주 찾아온 건 사실이었다.집에서 몇 번 자고 가기도 했다.그동안 노현우의 서재에도 분명 들어간 적이 있었다.하나씩 떠올리자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와 노현우를 완전히 집어삼킬 듯했다.숨이 막힐 것 같았다.노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송원영이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에 사인했다."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계약서를 두 부로 나눠 한 부는 송원영에게 건네고 나머지 한 부는 노현우가 챙겼다.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보는 김지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송원영이 까딱하고 턱짓했다."따라가 봐. 지금 저 상태로 운전이나 하겠어? 지유 씨가 노 대표님 좀 데려다줘."서둘러 뒤쫓아 나간 김지유는 복도에서 노현우를 발견하고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처음엔 옆에 있는 김지유도 알아채지 못한 노현우였다.김지유가 팔을 붙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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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가는 내내 노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수석에 앉아 머리를 등받이에 기댄 채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지금 àl'aube 사옥은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주변에 유치원과 학교가 많았다.건영시 학교들은 하교 시간이 이른 편이라 벌써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많이 보였다.뛰어나와 저마다 부모 품에 폭 안기는 자그마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무척 사랑스러웠다.노현우의 입가에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문득 연희와 전서준이 떠올랐다.하나는 활발하고 하나는 얌전하고, 하나는 통통하고 하나는 날씬했지만 사이는 무척 각별해 보였다.참 재미있는 아이들이었다.김지유가 앞을 보며 물었다."회사로 갈까요?""아니요, 집으로 가요. 지금 상태로는 회사에 가 봐야 일이 손에 안 잡힐 거예요."노현우가 손을 뻗어 김지유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내비게이션 앱에 아파트 단지 주소를 입력했다."멀지는 않아요. 괜찮겠어요?""어차피 대표님 차 몰고 가는 건데 안 괜찮을 게 뭐 있어요."김지유가 따라나선 건 애초에 노현우를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다.집으로 가든 회사로 가든 상관없었다.권지헌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간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약간 귀찮아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고작 몇 시간 가지고,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 나 귀찮게 하지 말고.""물론 따로 보고할 일도 있어서 그래."전화기 너머 잠시 조용해지더니 부스럭거리며 옷 입는 소리가 들렸다.권지헌이 곁에 있는 허설아에게 다정하게 달래듯 말했다."일 좀 보고 올게, 잠깐만 기다려.""일 때문이면 내 걱정은 하지 마."권지헌은 고개를 숙여 허설아에게 입을 맞춘 뒤에야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 복도에서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목소리는 금세 차가워졌다.지극히 사무적인 태도였다. 아내와의 다정한 시간을 방해받은 불쾌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말해."노현우는 오는 길 내내 노준서의 변화를 걱정한 게 아니라 권지헌에게 어떻게 보고할지 고민하고 있었다.모든 걸 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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