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1071 - Chapter 1080

1103 Chapters

제1071화

“여비는 원래 그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옵니다. 이런 수를 써서 신첩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까지 해냈을 리 없사옵니다. 이 일은 분명 배금영이 뒤에서 꾸민 것이옵니다!”서 황후는 금영의 이름만 입에 올려도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금영의 살점 한 조각을 물어뜯고 싶을 만큼 분하고 원망스러웠다.“폐하께서 요즘 신첩을 멀리하시고 어마마마와도 마음이 멀어지신 데에는 배금영의 수작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옵니다!”서 황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내 눈시울까지 붉히며 다시 입을 열었다.“어마마마께서는 예전에 신첩에게 그 아이에게 괜한 수를 쓸 생각은 하지 말라 이르셨지 않사옵니까. 그래서 신첩은 이제 그 아이를 어찌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사온데, 오히려 저쪽에서 신첩을 죽이려 들고 있사옵니다!”서 황후로서도 당장 금영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그래서 이 틈에 금영과 태후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속셈이었다.태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되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마.”태후는 곧 서 황후에게 경고하듯 말했다.“그보다 너야말로 오늘부터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거라. 황제에게 꼬투리를 잡힐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매섭게 몰아붙이던 태후는 이내 한마디를 덧붙여 달랬다.“한동안 잠잠히 지내다 이 일이 잦아들면 자연히 괜찮아질 것이다.”서 황후는 태후를 바라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어마마마, 오늘 대체 무슨 수를 쓰신 것이옵니까? 무슨 수를 쓰셨기에 여비가 갑자기 신첩을 물고 늘어지는 일을 그만둔 것이옵니까?”태후가 증거를 찾아내긴 했지만, 그 증거로 알 수 있는 건 두약해 역시 결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도뿐이었다.여비의 성정대로라면 그 정도로 물러설 리가 없었다.끝까지 서 황후를 물고 늘어졌어야 했다.그런데 마지막 순간 여비가 돌연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서 황후는 손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태후는 그 말을 듣고 서 황후를 바라보며 무겁게 말했다.“그 일은 네가 알 필요 없다.”“너는 한 가지만
Read more

제1072화

금영의 손끝이 살짝 멈칫했다.그녀는 황제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신첩 여기 있사옵니다.”금영은 내심 조금 불안했다.오늘 서봉전에서 그녀는 어떻게 해야 제 몸을 지킬 수 있을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하지만 끝내 여비가 홀로 서 황후를 상대하게 두고 볼 수 없어 몇 번이나 나서서 말을 보탰다.황제라면 이미 눈치챘을지도 몰랐다.오늘 벌어진 이 소동에 자신도 한몫했다는 것을.그런 생각이 들자 금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신첩이 잘못했사옵니다.”말과 함께 무릎을 꿇으려 했다.하지만 끝내 무릎은 바닥에 닿지 못했다.황제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황제는 손에 살짝 힘을 주어 금영을 단단히 붙잡아 세웠다.덕분에 금영은 더 이상 몸을 낮출 수 없었다.금영의 아름다운 눈망울에 옅은 물기가 어렸다.어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그때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되었네. 짐이 자네를 벌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황제의 표정은 차분하고 온화했다.그 얼굴 어디에서도 노여움이나 비꼬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그제야 금영은 알았다.황제는 정말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그렇다면 자신이 지나치게 걱정한 것일까?황제는 오늘 일에 자신의 손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아니면……모든 것을 알고도 자신에게 화낼 생각이 없는 것일까?두 경우는 전혀 달랐다.금영은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폐하께서는…… 신첩이 괜한 일에 나섰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옵니까?”말은 일부러 에둘러 했다.어느 쪽으로 해석되어도 빠져나갈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괜한 일에 나섰다는 말은 처음부터 자신이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었고, 오늘에서야 여비의 사정을 알고 마음이 쓰여 몇 마디 거들었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황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짐이 자네를 무엇 때문에 탓하겠나?”“여비를 대신해 나선 것 때문인가? 아니면 예전에 황후에게 그토록 시달렸으니 이제는 되갚
Read more

제1073화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빛을 가라앉혔다.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되었네. 딱히 더 할 말도 없군.”황제라는 자리에 있는 이상 평범한 사람처럼 마음속 감정을 남들 앞에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금영은 황제의 품에 기대어 있다가 나직이 물었다.“태후마마 때문이옵니까?”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순간 소녕전 안의 공기가 조금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금영은 황제의 가슴을 살짝 밀며 그의 품에서 일어나려 했다.“신첩이 쓸데없는 말을 하였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하지만 황제는 팔에 힘을 주어 금영을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그녀가 품에서 빠져나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잠시 뒤 황제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또 뭘 용서해 달라는 것인가?”“자네 마음속에서 짐이 그리도 속 좁은 사람인가? 고작 자네 말 한마디 때문에 죄를 물을 사람으로 보이는가?”금영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어찌 되었든 신첩이 태후마마의 일에 함부로 말을 보태서는 안 되었사옵니다. 신첩이 분수를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황제의 목소리가 순간 서늘해졌다.“짐이 보기엔 분수를 지키지 못한 사람은 어마마마이시네.”황제가 이런 말을 남들 앞에서 입에 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오늘 금영이 먼저 그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 내자, 황제 역시 더는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황제는 오늘 현청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눈빛을 깊게 가라앉혔다.그 모습을 본 금영은 금세 알아차렸다.황제는 이미 태후에게 적지 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금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폐하, 신첩은 오늘 태후마마께서 황후마마를 감싸신 일 때문에 폐하의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하지만 태후마마께서는 폐하의 어머니이시지 않사옵니까. 세상의 어머니들은 대개 제 자식을 아끼는 법이옵니다.”금영은 잠시 말을 고른 뒤 다시 이었다.“태후마마께서 그리하신 데에도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을 것이옵니다.”“그리고 신첩은 믿사옵니다
Read more

제1074화

여비는 이미 협방전으로 돌아온 뒤였다.그녀는 전각 안에 걸린 영산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초점 잃은 눈빛은 마치 넋이라도 빠진 사람 같았다.곁에 있던 자운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마마, 대체 어찌 그러시옵니까?”“오늘은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에게서 살점 한 조각이라도 뜯어내어 아기 황자의 혼백을 위로하자고 하지 않으셨사옵니까?”자운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여비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염주만이 떠올랐다.그리고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던 손 상궁의 말도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여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본궁은 태후마마를 뵙고 싶다.”자운이 순간 멈칫했다.“마마?”바로 그때 밖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손 상궁께서 여비마마를 뵙고자 하시옵니다.”여비가 유폐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의 출입까지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게다가 손 상궁은 태후의 사람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손 상궁이 안으로 들어왔다.여비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손 상궁이 자운을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물러가 있거라.”자운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노비가 여기 남아 마마를 모시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손 상궁의 차가운 시선이 여비에게 향했다.그제야 여비가 자운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자운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낮췄다.“노비, 물러가겠사옵니다.”전각 안에 아무도 남지 않자 여비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섰다.그녀는 손 상궁의 손을 덥석 붙잡고 다급히 물었다.“그 염주가 어찌 태후마마의 손에 있는 것이냐?”손 상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태후마마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옵니다. 그 염주가 빛 한 번 보지 못한 채 묻혀 있는 것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하시어 친히 아홉 해 동안 고이 보관해 오셨사옵니다.”말을 하던 손 상궁이 잠시 뜸을 들였다.“태후마마께서 말씀하시길, 마마께서 고분고분 뜻을 따르신다면 훗날 반드시 그 염주를 온전한 모습 그대로 돌려주시겠다고 하셨사옵니다.”“하지만 마마께서 또다시 태후마마의 심기를
Read more

제1075화

여비는 평소 영산도 앞에 향을 피우는 일만큼은 늘 직접 챙겼다.그만큼 각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지 여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은 향을 피우지 마라.”자운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예?”여비는 피곤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본궁이 좀 지쳤다.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자운은 오늘따라 제 주인이 유난히 이상하다고 느꼈다.손 상궁이 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다녀간 뒤로 여비는 한층 더 이상해졌다.몹시 괴로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처럼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듯한 죽은 기색이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수강궁.밖에 나갔던 손 상궁이 돌아와 태후에게 복명했다.“태후마마, 분부하신 말씀은 모두 전하고 왔사옵니다.”손 상궁이 목소리를 낮춰 아뢰었다.그러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다만 여비마마께서는 원 귀비마마를 해칠 생각이 없는 듯하옵니다.”태후의 목소리가 살짝 가라앉았다.“곧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손 상궁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태후마마, 예전에는 황후마마께 원 귀비마마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차라리 경춘궁 쪽을 더 경계하라 하지 않으셨사옵니까?”태후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조금 전 머리가 아프다며 연약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태후가 담담히 말했다.“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하지만 감히 여비와 손을 잡고 황후를 끌어내리려 들었으니, 나도 더는 저 아이를 그냥 둘 수 없지.”단순히 총애를 두고 다투는 정도였다면 태후 역시 굳이 나설 생각은 없었던 듯했다.하지만 오늘 금영과 현 귀비가 벌인 일은 태후가 정해 둔 선을 넘어 버렸다.태후가 싸늘하게 말했다.“황제는 이제 갈수록 황후를 용납하지 못하는구나. 그렇다면 나도 황제가 그리 애지중지하는 계집애를 용납해 줄 이유가 없지!”태후의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본 손 상궁이 얼른 달랬다.“태후마마,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태후의 표
Read more

제1076화

금영이 협방전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내관 차림의 몇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길을 막았다.금영은 뜻밖이라는 듯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귀비의 자리에 오른 뒤로 궁 안을 제멋대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가 감히 그녀의 앞길을 함부로 막는 일도 거의 없었다.해수가 얼굴을 굳히며 호통쳤다.“방자하다! 지금 누구의 앞을 막고 있는지 알고는 있느냐?”앞장선 내관이 황급히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소인이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원 귀비마마이신 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다만 폐하께서 여비마마께 근신을 명하셨으니 누구도 함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사옵니다.”금영은 그 말을 듣자 조금 우스워졌다.아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니.그렇다면 어제 손 상궁은 어떻게 들어갔단 말인가?금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래도 본궁이 꼭 들어가겠다면 어찌할 테냐?”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등 뒤에서 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 귀비는 이제 궁규까지 무시할 셈이냐? 참으로 위세가 대단하구나.”목소리 자체는 더없이 온화했다.하지만 그 온화함 속에는 묘하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냉기가 배어 있었다.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기운이었다.서 황후가 후궁에서 이제 막 도를 튼 요괴라면, 눈앞의 태후는 천 년은 묵은 요괴라 해도 과하지 않을 듯했다.금영은 곧 얼굴에 공손한 미소를 띠었다.몸을 돌린 그녀는 태후 앞에 무릎을 꿇어 예를 올렸다.“신첩이 어찌 감히 그러겠사옵니까. 태후마마를 뵙사옵니다.”태후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감히 못하겠다고? 내가 보기엔 못 할 짓이 없어 보이는구나.”그러고는 금영을 한번 흘겨보며 물었다.“그런데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금영이 공손히 대답했다.“신첩이 어제 서봉전에서 여비마마를 거들어 몇 마디 했다가 오히려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린 듯하여, 직접 찾아와 사과드리려 했사옵니다.”물론 되는대로 둘러댄 말이었다.허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하지만 금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
Read more

제1077화

“황제 앞에서는 그렇게 말도 잘하더니, 지금은 어째서 입을 다물고 있느냐?”태후가 금영을 흘끗 바라보았다.금영은 태후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눈매를 고분고분하게 내리깔았다.“신첩은 그저 이 일이 신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황후마마께서는 평소 신첩을 살뜰히 대해 주셨사오니, 신첩 또한 그 은혜에 보답해야 마땅하지 않겠사옵니까. 어찌 황후마마의 후의를 저버릴 수 있겠사옵니까?”금영이 다시 공손히 말을 이었다.“그러니 태후마마께서 신첩을 오해하신 것이옵니다.”그제야 금영은 태후가 굳이 이곳에서 자신을 막아 세우고 곤란하게 만드는 이유를 알아차렸다.태후는 일부러 자신이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자신이 불만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태후는 곧바로 쓰러진 뒤, 금영 때문에 기절했다고 몰아갈 수도 있었다.그렇게 되면 황제는 어떻게 생각할까?황제가 이번에도 금영을 감싸 준다 해도, 귀비인 그녀가 태후에게 무례를 범했다는 사실만으로 조정의 신하들이 들고일어나 비난할 명분은 충분했다.황실에는 예로부터 후궁이 정사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법도가 있었다.하지만 후궁에서 정말 패륜적인 일이 벌어지거나 요사스러운 여인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말이 돌기 시작한다면, 조정 신하들 역시 상소를 올릴 수 있었다.태후는 지금 제 몸을 직접 판에 올려놓은 것이었다.금영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서 황후를 위해서라면 태후도 참으로 몸을 아끼지 않는군.전에는 그저 태후와 서 황후가 각별한 데다 서가를 위해서라도 서 황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태후가 서 황후를 아끼고 감싸는 정도는 이미 집안의 이익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정말 서 황후가 그토록 소중한 것일까?조금 전 금영의 말은 분명 태후를 은근히 비꼬는 것이었다.하지만 겉으로만 놓고 보면 어디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서 황후가 정말 온화하고 어질게 금영을 대해 주었다면 금영 역시 당연히 그 호의를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Read more

제1078화

금영이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태후마마께서 과한 말씀을 하시옵니다. 폐하와 황후마마 사이의 일은 집안일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일이옵니다. 신첩처럼 일개 후궁에 불과한 사람이 어찌 폐하의 결정을 좌우할 수 있겠사옵니까?”“신첩은 태후마마께서 황후마마를 아끼시는 마음이 크시다 보니 잠시 마음이 흐트러지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그러니 방금 하신 말씀도 마음에 담아 두지 않겠사옵니다.”금영의 태도는 더없이 공손했고 말투 또한 너그러웠다.금영은 잘 알고 있었다.겉으로만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면 태후라 해도 지금 자신의 신분을 무시하고 함부로 죽이려 들 수는 없었다.기껏해야 벌을 조금 받고 억울한 일을 겪는 정도일 터였다.하지만 그것조차 금영에게는 딱히 손해가 아니었다.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할수록 황제는 더욱 마음 아파할 테니까.황제가 태후에게 직접 따져 묻지는 않는다 해도, 금영이 당한 만큼의 화살은 결국 몇 배가 되어 서 황후에게 돌아갈 터였다.태후가 서 황후를 위해 자신을 몰아붙일수록 서 황후의 자리도 그만큼 더 위태로워질 것이었다.그러니 지금 금영이 이토록 태연하게 태후를 상대할 수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금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다만 신첩은 황후마마가 참으로 부럽사옵니다. 태후마마처럼 친딸을 대하듯 아껴 주시는 어른이 곁에 계시니 말이옵니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태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조금 전 금영이 은근히 비꼬았을 때조차 이 정도로 크게 반응하지는 않았다.태후가 차갑게 말했다.“배금영, 끝까지 나와 맞서겠다는 것이냐?”금영은 조금 놀란 듯 태후를 바라보았다.말이 상당히 거칠었다.정말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가?금영으로서도 뜻밖이었다.아직 속에 쌓아 둔 말이 한참 남아 있었는데, 선황 때부터 후궁을 쥐고 흔들던 사람이 이 정도 말 몇 마디에 벌써 평정을 잃을 줄은 몰랐다.금영은 기세를 몰아 태후의 속을 조금 더 긁어 볼 생각이었다.바로 그때였다.옆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다급한 목
Read more

제1079화

덕분에 태자에게도 말을 이어 갈 기회가 생겼다.태자는 금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황조모마마와 어마마마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틀림없이 여비가 마마를 부추긴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마마의 성정에 어찌 어마마마께 맞서려 하셨겠습니까?”태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마마께서도 어마마마를 믿어 주십시오. 어마마마께서는 절대로 여비가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금영은 그 말을 듣고 뜻밖이라는 듯 태자를 바라보았다.예전에는 서 황후가 뒤에서 벌인 온갖 음험한 짓을 태자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고만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 보니……금영도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태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그의 마음속에서 서 황후는 그저 어질고 온화한 어머니일 뿐이었다.그러니 서 황후가 그 오랜 세월 후궁에서 제 본모습을 감추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어진 황후인 척하며 황제의 눈만 속인 것이 아니었다.제 친아들까지 완벽하게 속여 온 셈이었다.그 생각에 금영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금영이 웃자 태자는 잠시 넋을 잃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다 이내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띠며 물었다.“마마, 어마마마와의 오해를 풀 마음이 드신 겁니까?”금영은 금세 웃음을 거두었다.그리고 태자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태자 전하, 본궁이 웃은 건 전하께서 참 어리석다고 생각해서입니다.”“전하께서는 정말 어마마마께서 어질고 덕이 깊은 분이라 믿고 계십니까?”말을 마칠 즈음에는 다리의 저림도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금영이 손을 살짝 들자 해수가 곧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금영은 해수의 부축을 받으며 그대로 멀어져 갔다.태자는 저도 모르게 뒤따라가고 싶었다.하지만 이곳은 황궁이었다.사방 어디에나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오늘도 태후를 찾아왔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겨우 금영과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금영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태자의 눈에는 짙은 아쉬움이 어려 있었다.이제 두 사람 사이에서는
Read more

제1080화

황제는 여느 때처럼 흑단 탁자 뒤에 앉아 있었다.그 앞에는 여러 사람이 서 있었는데, 금영도 그중 몇몇은 알고 있었다.셋째 오라버니인 배경천을 비롯해 심장, 장안, 송염도 있었다.그 밖에도 금영에게는 낯선 얼굴이 둘 더 있었다.배경천이야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심장은 심연희의 친정인 심가 사람으로,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미 심가를 이끌고 있었다.장안은 예전에 금영의 입궁을 강하게 지지하면서 서가의 미움을 제대로 산 사람이었다.그리고 송염은……금영은 송염을 한번 흘끗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신하들이 일제히 금영에게 예를 올렸다.금영이 얼른 입을 열었다.“모두 예를 거두세요.”황제가 금영을 향해 손짓했다.“짐의 곁으로 오게.”금영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 예를 올리려 하자 황제가 먼저 손을 뻗어 그녀를 잡아 자리에 앉혔다.그러고는 눈앞의 신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아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금영이 들어오면서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이야기가 끊긴 터였다.황제가 그렇게 묻자 모두가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눈치였다.황제가 송염을 지목했다.“송염, 계속 말해 보게.”송염은 금영을 한번 바라보더니 잠시 말을 망설였다.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괜찮으니 말하게.”그제야 송염이 다시 입을 열었다.“신이 생각하기에 지금 대량은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번성하고 평온해 보이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모습에 불과하옵니다. 세도가문이 이대로 계속 세력을 키워 나간다면 언젠가는 나라의 근간까지 뒤흔들게 될 것이옵니다.”평소 조정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면 당장 누군가가 나서서 터무니없는 망언이라며 꾸짖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오히려 뜻을 같이하는 이까지 있었다.장안이 곧 말을 이었다.“세도가문 가운데서도 서가의 세력이 가장 크옵니다.”장안이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폐하께서는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시옵니까?”황제가 장안을 바라보았다.“짐이 요즘 태자에게 시키는 일을
Read more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