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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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확답을 들은 금영은 비로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보당을 얻은 것은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성과였다. 금영은 다시 단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그리고는 공손히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이어서 침상에 누워 있는 배명월에게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명월아, 너도 몸 조심하고."우아하고 단정한 모습, 금영의 행동은 지적할 곳 하나 없이 완벽하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배명월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배명월은 좀 전에 금영이 자신의 뺨을 후려치며 귓속말로 했던 협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토록 태연하고 뻔뻔한 모습이라니, 절로 이가 갈렸다.하지만 차마 태자가 있는 자리에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자신이 꾀병이었다는 것이 들통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배명월은 의기양양한 금영의 얼굴이 꼴도 보기 싫었지만,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금영은 마지막으로 태자를 향해 가볍게 몸을 숙여 물러가겠다고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그제야 태자의 시선이 침상에 누워 있던 배명월에게 향했다. 그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깨어난 것을 보니, 나도 이제 좀 안심이 되는구나."하지만 이 말이 끝이었다. 태자는 이것으로 할 일을 마친 듯, 망설임 없이 밖으로 향했다. 금영의 뒤를 따라 나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배명월은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금영아!"금영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뒤에서 태자가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태자는 그녀에게 역병 같은 존재였다.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에, 못 들은 척 더 걸음을 빨리했다. 어떻게든 그를 따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자는 포기할 줄 모르고 집요하게 따라왔다."금영아! 잠깐만 서 보거라!"태자가 크게 외쳤다.그럼에도 금영은 멈추지 않았고, 그와 멀어지기 위해 더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탓에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이내 갑작스러운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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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금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태자 전하, 전 그런 약속한 적 없습니다."금영은 앞으로 황제의 후궁으로 들어갈 예정인데, 애정은커녕 의리도 없는 태자와 더 얽히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러자 태자가 어색하게 웃었다."이런… 난감한 모습을 보여 드려, 송구합니다."그 모습을 보며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굳이 따지지 않았고, 그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다. 이만 물러가거라."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금영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그가 떠나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한편, 금영이 또다시 자신을 피할까 불안했던 태자는 그녀의 손목을 더 세게 붙잡았다."금영아!"금영은 황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목에 느껴지는 압박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태자를 바라보았다."태자 전하, 이게 무슨 짓입니까?"금영이 손을 빼내려 움직이며 말했다.하지만 그녀의 거부 어린 표정에도 태자는 힘을 풀지 않았다."금영아, 우리 아직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 않느냐?"아무리 손목을 비틀어도 빠지지 않자, 금영은 포기하고 지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우리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네요."그가 설림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어긴 순간부터, 두 사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였다.태자가 말을 이었다."내가 잘못했다. 네가 명월이를 미워해 나쁜 마음을 품은 줄 알고 오해한 것을 사과하마. 오늘 네가 명월이를 구해 준 것을 보니, 네가 여전히 내가 알던 금영이라는 것이 실감났다."그러면서 덧붙였다."넌 틀림없이 내가 좋아했던 배금영이 맞았다."이 말과 함께 태자의 눈에 애틋함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그런데 그 순간, 잠자코 있던 금영이 아주 거세게 손을 뿌리쳤다. 태자는 다시 그녀를 붙잡으려 했으나, 한발 먼저 금영이 차갑게 경고했다."태자 전하, 그만하시죠."그제야 태자는 그녀를 붙잡으려던 시도를 멈추고 다시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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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태자는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반사적으로 다시 반박했다."금영아, 그런 농담은 이제 그만 하거라. 나 말고 네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금영은 옅게 웃었다."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리도 제 마음을 확신하시는 것입니까?"물론 이 말은 황제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한 나라의 황제를 사랑할 만큼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태자를 확실하게 잘라야 했다.금영의 진지한 표정을 읽은 태자는 잠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지어낸 말이라면 이런 표정이 나올 리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달래듯 다시 말했다."그럴 리 없다."온 도성이 알았다. 금영은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자객을 막아 준 여인이라는 것을. 웬만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이를 마음에 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당황한 태자의 얼굴을 본 금영은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전하,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습니다."과거, 금영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억지로 죽음을 강요당하고 한 달이 지난 시기였다. 태자는 십 리에 달하는 붉은 비단을 늘어뜨린 채 아주 화려한 혼례 행렬을 꾸려 배명월을 맞아들였다.그리고 신혼 첫날밤,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를 금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언니가 살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배명월이 눈물을 머금은 채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태자가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했던 말이 있었다."오늘 같이 경사스러운 날에, 다른 사람 때문에 네가 슬퍼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구나."일말의 자비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금영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그녀는 더 이상 이 상황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전하,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금영은 그대로 몸을 돌려 큰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번만큼은 태자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태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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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위명이 아부하듯 말을 덧붙였다."참으로 인자하십니다. 선대 영안후께서도 저승에서 이 소식을 듣게 된다면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하지만 황제는 이 대화를 더 길게 이어가고 싶지 않은 듯, 더 대꾸하지 않고 산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위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아직 상처가 다 회복되지 않았는데, 더 요양하지 않으시고… 내려가시면 더욱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한편, 금영이 침실에 도착했을 즈음, 영안후도 자리를 떠났고 방 안에는 송정희 모녀만 남게 되었다.송정희가 침상에 누워 있는 배명월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이번에는 좀 경솔했다, 명월아. 어쩌다가 또 그 아이에게 휘둘리게 된 것이냐?"배명월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천천히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춰 보였다.이불 속엔 계화떡 한 접시가 숨겨져 있었는데, 이미 부서져 침구 곳곳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 덕에 이불이 들춰지자마자 달콤한 향이 사방으로 퍼졌다.배명월도 금영에게 협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무려 뺨을 열여덟 번이나 맞았다.불길한 기운은 무슨, 이번 기회를 틈타 자신에게 복수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금영이 귓가에 대고 했던 협박을 똑똑히 기억했다. 계속 기절한 채로 있게 될 경우, 태자가 보는 앞에서 이불을 들춰 숨겨진 계화떡을 보여주며 꾀병인 것을 증명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니 아무리 분해도 참고 금영이 벌려 놓은 판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금영은 어째서인지 이불 속에 계화떡이 숨겨져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배명월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어머니. 이렇게 맛있는 계화떡을 여기서 처음 먹어 본 데다가… 아침도 먹지 못한 탓에… 어쩔 수 없이…."그 말을 들은 송정희는 더 이상 배명월을 나무라지 못했다. 오히려 안타까움에 눈물이 맺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불쌍한 내 새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이 계화떡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간식이었다. 그런 음식을 영안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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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송정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아무리 영안후께서 진보당을 허락했다고 해도 이 어미는 두고 볼 생각은 없다!"그러자 배명월이 불쌍한 표정을 지은 채 송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어머니, 괜히 저 때문에 이런 일로 화내지 마세요. 그럼 저도 마음 아파요."역시 친자식은 다르다고, 부모의 마음부터 살피는 것이 아주 기특했다.송정희가 배명월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물었다."아프지 않느냐?"배명월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어머니. 전 정말 괜찮아요."그러나 말과 달리 표정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배명월이 송정희의 환심을 사는 동안, 금영은 오랜만에 느끼는 후련함에 아주 기분이 상쾌했다. 물론 이 일로 영안후 사람들이 더욱 자신을 미워하게 될지도 몰랐지만, 중요하지 않았다.*한편, 다시 이전에 부상당했을 때 머물렀던 동굴로 돌아온 황제는 아주 천천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동굴 안은 떠났던 날 그대로 보존되었고, 마른 장작 또한 그대로 있었다. 그 풍경을 본 황제는 자신이 함께 했던 여인이 신기루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위명은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황제는 구출된 뒤 곧바로 함께 있었던 여인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 동굴을 계속 살피도록 했다. 하지만 위명이 작산 행궁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그 여인을 찾는 데 실패했다. 위명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황제는 손에 끼고 있던 검은 옥반지를 빼내 동굴 안 푸른빛을 띤 돌 위에 올려놓았다.만약... 그녀가 다시 찾으러 온다면 이 물건은 하나의 징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매정한 아가씨는 그를 보는 순간, 토끼보다도 더 빨리 달아날 테니 아마 이곳을 다시 찾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행동했다.*황제가 다시 황궁으로 돌아올 때쯤, 손복안 또한 내무부 소속 인원들 몇몇을 데리고 금영의 처소에 도착했다."큰 아가씨."손복안이 매우 공손한 태도로 금영을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요즘 금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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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금영은 서둘러 감사 인사를 전했다."태감께 수고를 끼쳤네요. 감사합니다."그러면서 해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태자비로 예정된 금영을 보필하기 위해 해수는 어릴 적부터 차별화된 교육을 받아 왔던 탓에 금세 그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 서둘러 품에서 은자 주머니를 꺼냈다."날씨도 추운데, 여기까지 걸음하시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건 저희 아가씨께서 드리는 작은 성의이니, 부디 사양하지 말아 주세요."손복안은 헛기침을 하며 주머니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느껴지는 묵직함이 전해졌고, 적잖은 은자가 들어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소인은 그저 심부름 하는 아랫사람일 뿐입니다. 아가씨께서 정말 감사해야 할 분은 폐하이십니다."비록 혼례를 치른 것은 아니지만, 황실에선 이미 그녀를 태자비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감사 인사를 황제에게 전한다면, 여러모로 득이 될 부분이 많으리라 판단해서 하는 조언이었다. 그러니 가능한 황제를 직접 알현해 마음을 전하라는 뜻이었다.금영이 손복안을 바라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태감."그러자 손복안이 웃으며 답했다."걱정 마십시오. 소인도 따로 폐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렇게 손복안은 떠났고, 금영은 방 안에 가득 놓인 물건들을 보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해수는 선물 받은 당사자보다 더 기뻐하며 눈을 반짝였다."아가씨, 폐하께서 이토록 귀중한 물건들을 하사하시다니… 예비 태자비로서 더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금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황제와 그런 일까지 있었는데, 지금 상황에 예비 태자비로서 입지가 높아진다고 해도 득이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해수를 완벽하게 믿을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굳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그러다가 문득 손복안의 말이 걸렸다. 직접 황제를 알현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던 말. 그녀는 배금영의 신분으로 황제와 마주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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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운소전.황제는 붓을 든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손복안은 안으로 들어오며 그에게 알렸다."폐하, 영안후부의 큰아가씨께서 찾아오셨사옵니다."그러자 황제는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손복안을 쳐다보며 가볍게 손짓했다. 들여보내라는 뜻이었다.곧이어 금영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비록 도성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작산 행궁 또한 황제가 머무는 곳으로 매우 단정하면서도 우아하게 꾸며져 있었다.은은한 용연향(龙涎香: 향유고래에서 얻는 귀한 향료)이 피어오르고 있는 방, 황제는 천천히 손에 쥐고 있던 붓을 흑목 책상 위에 올려놓는 모습이 보였다.금영은 그를 보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영안후부의 배금영, 폐하를 알현하옵니다."황제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금영을 바라보았다. 가냘프고 여린 모습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여전히 전처럼 흰 여우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흰 면사가 드리워져 있었다.금영이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송구합니다, 폐하. 신녀의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폐하를 뵙는 자리에서 면사를 쓰게 되었습니다."황제는 원래부터 금영에게 제법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그는 잠시 금영을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다."그 말을 들은 금영은 다시 한번 예를 갖추며 말을 이었다."폐하, 내려주신 하사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그러자 황제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짐이 내린 하사품이 마음에 들었느냐?"금영의 모습을 보고 있던 황제는 문득 선대 영안후가 떠올랐다. 금영은 강인한 인상이었던 선대 영안후와 달리 꽤 연약하고 섬세해 보였다.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건넬 때마다 평소답지 않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혹시라도 그녀를 놀라게 할까 자기도 모르게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황제는 몇 해 전 금영을 처음 보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금영은 아직 성년이 되기 전이었고, 지금처럼 여위지도 않았었다. 궁중 연회 자리였는데 양갈래로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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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그는 금영을 보자 놀라움과 기쁨이 동시에 떠오른 얼굴이 되었다.“금영아, 너도 여기에 있었느냐?”황제는 살짝 의아했다. 당연히 금영이 여기 있는 줄 알고 찾아온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었다.하지만 태자의 얼굴에 가득 띈 기쁜 기색을 보고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제법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공교롭게 자신을 같은 때에 찾아왔으니 말이다.하지만 금영은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태자와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예의가 없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법, 최대한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전하, 전 오늘 폐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태자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은혜라니? 설마 혼례 날짜를 청하러 온 것인가?’이때 금영의 눈에 발치에 떨어진 종이가 들어왔다. 거기엔 지(芝)가 적혀 있었는데, 황제를 닮아 필체에서부터 위엄이 느껴졌다. 동시에 왠지 모를 압박감이 심장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금영은 이 글자가 우연히 적혔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이때, 금영을 따라 태자의 시선도 아래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금영은 혹시라도 그가 무언가 눈치챌까 얼른 몸을 숙여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 다음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앞으로 두어 걸음 나아갔다.“폐하.”그런데 옆에 있던 손복안은 종이를 대신 전달해 줄 의사가 없는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금영은 할 수 없이 두어 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자 황제는 흑목 책상을 향해 곁눈질 했다. 마치 여기다가 두고 가라는 듯이.금영은 그의 뜻에 따라 공손히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얼른 뒤로 물러섰다.배금영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황제와 가까이 마주 선 것은 처음이었다. 금영은 혹시라도 실수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조마조마하며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모든 일을 마친 금영은 지체 없이 예를 올렸다.“폐하, 그럼 신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그 모습을 본 태자가 말했다.“금영아, 곧 나갈 테니 급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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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운소전을 나온 태자는 곧바로 금영을 찾으러 갔다.금영이 일부러 황제에게 환심을 산 것이 맞다면, 자신도 그에 대한 보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금영을 만나기도 전에 길에서 배명월과 마주치고 말았다.태자가 배명월 앞에 서며 물었다.“의식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추운 날 어디를 다녀오는 것이냐?”그러자 배명월이 밝게 그를 불렀다.“태자 전하!”그러고는 순진한 얼굴을 연기하며 물었다.“이쪽으로 오신 걸 보니… 언니를 만나러 가시는 길인가요?”그는 굳이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태자였다. 어떤 여인을 만나든 그녀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금영은 태자비로 내정된 사람이었다.태연한 태자의 태도를 본 배명월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럼… 얼른 가보세요. 더 이상 시간 빼앗지 않을게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무척 서러워 보였다.그러자 태자가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갑자기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은 것이냐?”그때 옆에 있던 취옥이 옆에서 설명했다.“의식을 되찾은 후로 많이 불안해하십니다. 좀 전에도 막 잠들었다가 악몽을 꾸셨는지 놀라 깨어나셨습니다.”그 말에 태자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전에 금영이가 무언가 안 좋은 것이 너에게 붙었을 수도 있다고 했었지… 지금 보니 그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겠구나. 확실히 무언가 일반적이진 않아 보이네.”그러자 배명월이 고개를 저으며 애써 강한 척 말했다.“괜찮아요, 태자 전하. 얼른 언니 만나러 가보세요. 전 혼자라도 괜찮아요.”연약하면서도 억지로 버텨보려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이 말을 남긴 채 배명월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휘청하며 몸이 쓰러질 듯 흔들렸다. 다행히도 완전히 넘어지기 전에 태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붙잡았고,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태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됐다. 먼저 너부터 방에 데려다주도록 하마.”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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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위명은 난처한 얼굴로 황제에게 있는 그대로 고했다.“폐하, 소인이 무능하여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황제는 이 상황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드는 듯 표정이 가라앉아 있었다.느닷없이 나타나더니, 안개처럼 사라졌다. 정말 토끼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토끼 굴이라도 판 것인지 이토록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줄은 그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한참을 침묵하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다시 황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거라.”찾고자 하는 사람은 찾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자 위명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폐하, 그럼 더 찾지 않으시는 겁니까?”황제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찾으면 찾을수록 더 깊숙이 숨어버리는 듯하니… 내버려 두려는 것이다. 그러면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니까.”위명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하지만 무언가 걸리는지 잠시 머뭇거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허나… 끝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주제 넘게 여쭙습니다. 이 행궁을 샅샅이 뒤져도 나오지 않는데… 그 여인, 정말 사람이 맞긴 한 겁니까?”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제의 차가운 시선이 내리꽂혔다. 위명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괜히 함부로 입을 놀린 자신의 혀를 당장이라도 깨물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다음 날, 금영은 마차에 올라 도성으로 돌아가는 행차에 합류했다.하지만 마차엔 그녀뿐만 아니라 배명월도 함께 탑승해 있었다. 금영은 배명월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고 얼른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한시라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작산 행궁에서 다시 수도로 돌아가는 길은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였다. 거기에 눈까지 쌓였으니, 어쩌면 이틀이 걸릴지도 몰랐다.어느덧 해질녘, 원래라면 관역(官驿: 공무 숙소)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스무 리나 남아 있었다. 이 속도라면 당장은 도착하기 어려워 보였다.금영은 마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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