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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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송정희는 말을 마치고 금영의 반응을 살피며 미소 지었다.“너는 언니니까 당연히 동생에게 양보해 줄 거라 생각한다.”금영은 옅게 웃었다. 송정희는 평소 금영의 성정을 잘 알았기에, 당연히 그냥 넘어가 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금영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똑바로 송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동생에게 안성당을 양보하는 것이 아까운 것은 아닙니다만….”금영이 잠시 말을 멈추더니 차갑게 말을 이었다.“이곳은 할아버지께서 머물던 거처로, 저에게 내려주신 곳이지 않습니까?”송정희는 여전히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싸늘하게 굳었다.그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금영아, 잊지 말거라. 명월이도 네 할아버지의 손녀야.”송정희는 금영의 반응이 못마땅했다. 처음부터 배명월을 잃어버리지 않고 품에서 키웠다면, 금영이 선대 영안후의 관심을 받을 일도, 안성당을 물려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안성당은 그저 원래의 주인으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그런데 금영이 불만을 내비치니, 달가울 수가 없었다.물론 키운 정이라고, 송정희도 금영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배명월에게 진 마음의 빚이 너무나도 컸다. 그녀는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것이라면 배명월에게 안겨주고 싶었다.송정희는 금영을 바라보았다. 겉으로는 여전히 온화하고 자애로운 얼굴이었지만, 목소리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금영아, 넌 분별력이 있는 아이이니, 내 결정을 지지해 줄 것이라 믿는다.”그리고는 옆에 있던 이숙에게 말했다.“금영을 운향각으로 안내하거라.”그러자 이숙이 손짓하며 말했다.“큰아가씨, 이쪽입니다.”금영은 잠시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안내할 것 없다. 길은 내가 더 잘 아니까.”말을 마친 금영은 송정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에 송정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거 봐. 이제는 기본적인 예의도 안 지키는 구나.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한게 분명해.”이숙이 옆에서 그런 그녀를 달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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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회귀 전, 처음 배명월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금영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떠한 불만도 표시하지 않았다.배명월이 영안후 부부의 친딸인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것이 분에 넘치는 것들이었고 응당 다시 제 주인을 찾아간다고 해도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하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손 놓고 모든 것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은혜를 입었다 해도 저들 때문에 한 번 죽기까지 했으니, 갚을 것은 이미 다 갚았다고 생각했다.무엇보다 이들 또한 순수한 마음으로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었다. 모든 행동에는 계산된 의도가 들어 있었다.과거 이들이 금영을 데려다 키운 것은 딸을 잃은 송정희를 달래기 위함이자, 황실과 혼인을 맺어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 줄 여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황실의 혼사가 영안후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금영 덕분이었다. 영안후부에 딸이 없었다면, 태자는 진작 다른 명문가의 여식과 혼약을 맺었을 것이다. 뒤늦게 배명월이 돌아왔다고 해도, 느닷없이 황실에 가 태자와의 혼약을 정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을 터였다.그러니 의미가 큰 안성당만큼은 더욱 내줄 수 없었다.금영이 해수에게 말했다.“대문에 가서 기다리다가, 궁에서 하사품을 가져온 사람이 오거든 안성당으로 보내거라.”해수가 의아했다.“하사품이라니요?”금영은 설명하지 않았다.“그냥 시킨 대로 하면 된다.”“예.”해수는 어릴 때부터 특별 교육을 받으며 자란 시녀였다. 일 처리 능력도 당연히 일반 시녀와 비교할 것 없이 뛰어났다.처음 금영이 해수를 의심하면서도 끝까지 내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해수는 금영이 왜 이런 지시를 내리는지 알지 못했지만, 분부대로 대문으로 가 대기하기 시작했다.그렇게 한참, 정오가 되기 직전에 멀리서 황궁 사람들로 보이는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선두로 손복안이 모습을 드러냈다.손복안이 해수를 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선물을 보내셨는데, 큰아가씨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해수가 말했다.“그렇다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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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배명월은 손복안을 바라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손복안은 내무부 대총관으로 황제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배명월도 그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문득 소한이 태자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이 정도 인물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거니 하고 스스로 납득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태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성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배명월은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만약 금영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영안후가 보았다면 분명 버릇없다며 꾸짖었을 테지만, 영안후부 사람들 대부분이 배명월에게 관대했다. 그래서 이런 행동도 그저 사랑스럽게만 여겼다.잠시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배명월은 길상을 뜻하는 옥여의 한 짝과 귀한 진주가 박힌 머리 장식, 그 밖에도 화려한 궁중 물건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속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태자가 자신을 달래려 이렇게 많은 선물을 보내오다니, 자신의 작전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배명월은 곧바로 손복안에게 말했다.“돌아가시면 태자 전하께 마음 잘 전달받았다고, 감사하다고 꼭 전해 주세요.”그 말을 들은 손복안은 멈칫하며 이상한 눈빛으로 배명월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태자 전하요?”그러자 배명월이 의아하게 물었다.“네, 태자 전하요. 이 물건들 모두 태자 전하께서 저에게 보낸 것이 아닙니까?”손복안은 그동안 셀 수 없는 사람들을 겪어왔고 이런 무례도 처음은 아니었기에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배명월에게 상황을 자각시켰다.“큰아가씨는 어디에 계십니까? 어째서 아직도 폐하의 하사품을 받으러 나오지 않으시는 겁니까?”이때, 안성당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송구합니다, 태감.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그와 동시에 금영이 안으로 들어왔다.배명월은 놀란 얼굴로 금영을 바라보더니, 이내 굳은 얼굴로 말했다.“네가 왜….”하지만 곧 주변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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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손복안이 말을 이었다.“물건을 모두 전해드렸으니, 그럼 전 이만 궁으로 복귀하겠습니다.”그런데 그가 막 떠나려던 찰나, 영안후와 송정희, 그리고 배경천이 안으로 들어왔다. 궁에서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손복안이 영안후에게 예를 올렸다.“영안후를 뵙습니다.”영안후는 마당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본 뒤, 손복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태감, 이것은 대체….”손복안이 웃으며 답했다.“폐하의 명으로 큰아가씨께 드리는 하사품들입니다.”“하사품이요?”영안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송정희 또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지 그에게 되물었다.“폐하께서 무슨 이유로 이 많은 하사품을 금영에게 내린단 말입니까?”손복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다시 미소가 담긴 얼굴로, 조용히 경고했다.“부인, 말씀이 지나치십니다.”황제가 누구에게 상을 내리든, 남에게 납득시킬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일반 환관이 아니었다. 황제의 최측근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무례로 다가왔다.그러자 금세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송정희가 고개를 숙였다.“제가 실언했습니다.”그제야 손복안은 다시 분위기를 풀었다.“괜찮습니다.”그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영안후께서는 참으로 복이 많으십니다. 큰아가씨 같은….”그러더니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그리고 둘째 아가씨 같은 훌륭한 딸들을 뒀으니 말입니다.”영안후가 웃었다.“과찬이십니다, 태감.”손복안이 말했다.“서둘러 황궁으로 복귀해야 하니,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손복안은 밖으로 향했다.금영은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해수에게 말했다.“해수야, 가시는 길 좀 배웅해드리거라.”안성당을 나온 해수는 금영이 미리 준비해 둔 은자 주머니를 꺼내 손복안에게 내밀었다.“작은 성의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손복안이 웃었다.“큰아가씨께서 매번 이리 예를 차리시는군요.”그러자 해수가 웃으며 말했다.“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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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금영이 말했다.“해수야, 폐하께서 내리신 하사품들을 운향각으로 옮기거라.”옆에서 그 말을 들은 영안후는 얼굴을 굳힌 채 송정희를 바라보았다.“당신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오!"송정희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러자 금영이 뒤늦게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니, 얼굴빛이 좋지 않으시네요. 아,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그리고는 말을 이었다.“해수야, 그만 옮기거라. 이 하사품들 명월이가 쓰도록 안성당에 두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배려 깊은 말이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의 표정은 오히려 전보다 더 굳어졌다.영안후부 안에서 송정희가 얼마나 배명월을 편애하든, 무엇을 퍼부어주던, 상관할 사람이 없었지만... 황실이 엮이는 건 다른 일이었다.아무리 송정희라고 해도 황제가 직접 내린 하사품을 함부로 배명월에게 넘길 용기까진 없었다.오랜 세월 관직에 몸담고 있었던 영안후 또한 어렵지 않게 돌아가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딱히 자신에게 오는 피해가 없었기에, 모르는 척 편애를 묵인했다.그러나 하사품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온 순간, 상황은 달라졌다.금영에게 내려진 하사품을 안성당으로 옮겼다는 것은, 황실에서도 그녀를 이곳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금영을 밖으로 내보내는 건 황실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게다가 소란이 커지면 집 밖으로 말이 새어나갈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호시탐탐 영안후의 몰락을 바라고 있을 적들에게 약점을 쥐여주는 꼴과 다를 바가 없었다.영안후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이때, 금영이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영안후는 결단을 내리고 금영을 불렀다.“거기 서거라.”금영의 시선이 영안후에게 향했다.“아버지, 더 당부할 말씀이 있습니까?”영안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사품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너도 나갈 필요 없다.”그러자 금영은 배명월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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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금영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었지만, 영안후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그가 알고 있는 황제는 결코 이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기가 가까워지면 궁에서 하사품이 내려오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개 황후의 이름으로 내려온 것이지, 황제가 직접 나선 전례는 거의 없었다.영안후가 말을 잇지 않자 금영은 그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여기서 말을 길게 늘어놓는 건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마침내 영안후가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너에게 하사품을 내렸다고 해서 괜히 우쭐해질 생각은 말아라. 폐하께서 아끼는 것은 네가 아니라, 네 뒤에 있는 이 영안후부라는 배경 때문임을 늘 명심해야 할 것이다.”금영은 살짝 눈을 내리깐 채, 속에서 치솟아 오르려는 조소를 감추고 공손히 대답했다.“네,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영안후는 금영의 태도가 계속 공손하자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너는 곧 태자비가 될 몸이니 앞으로 더욱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금영은 다시 답했다.“네.”당부를 마친 영안후는 소매를 털며 자리를 떠났다.“들어가세요, 아버지.”금영과 배명월, 그리고 배경천이 동시에 그를 배웅했다.영안후가 떠나고 나자 송정희는 심문하듯 금영을 샅샅이 살폈고,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어린 나이에 이토록 심계가 깊을 줄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구나.”하지만 금영은 아무것도 모른 척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여유롭게 한마디 돌려주었다.“다 어머니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그 말을 들은 송정희는 가슴 한가운데가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한편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배명월은 불만스러워도 안성당을 떠날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금영은 여러 시종들이 모여 배명월의 짐을 하나하나 밖으로 옮기는 모습을 마당에서 지켜보며 매우 유쾌한 기분을 느꼈다.하지만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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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안성당을 나온 배명월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그 모습을 본 배경천은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많이 억울하지, 명월아? 이번엔 정말 배금영이 선을 넘었다는 것,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제 그만 울거라.”배경천이 달래듯 말했다. 그러자 배명월이 눈물을 머금은 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아… 아닙니다. 억울하다니요… 오라버니께서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는데,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그 모습을 본 배경천은 금영을 향해 더욱 이를 갈았다.“배금영은 정말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네가 누렸어야 할 적녀의 자리를 대신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너를 이토록 시기하다니. 하지만 명월아, 걱정 말거라. 나도 더 이상 저 건방진 모습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배경천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의 위로에도 배명월은 기분이 나아질 줄 몰랐다. 그녀는 배경천을 배웅한 뒤, 새로 배정받은 거처 지란원의 방 안에서 짜증스레 분을 삭였다.이때 취옥이 다가와 차를 따르며 말을 걸었다.“아가씨, 차라도 한 모금 드시면서 목이라도 축이십시오.”하지만 배명월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고, 내밀어진 잔을 홱 쳐냈다. 그러자 챙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놀란 취옥이 서둘러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그런 다음 허둥지둥 깨진 찻잔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뒤, 잔해를 모두 치운 취옥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가씨, 이만 노여움을 푸세요. 이러다 몸까지 상할까 걱정됩니다.”그렇게 배명월이 분풀이를 하고 있을 때, 금영은 조용히 해수가 쌓인 짐들과 하사품들을 차례로 방 안에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녀가 의도했던 대로였다.해수가 감탄하며 말했다.“역시 큰아가씨이십니다. 이런 묘수로 다시 안성당을 되찾으실 줄이야, 정말 놀랍습니다!”물론 금영도 자신이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만약 황제가 이 시기에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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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눈 깜짝할 사이 도성으로 돌아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도성은 곧 있을 진국공의 생일 연회로 떠들썩했다.진국공은 조정의 기둥 같은 중신으로, 나이는 선대 영안후보다 조금 더 많았다. 그만큼 인망이 두터워 많은 중요 인사들이 그의 연회에 초대되었고 영안후부도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예전 금영의 성정이었다면, 굳이 이런 자리에 나가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그 첫 번째로 말할 것 같으면, 배명월이었다. 금영은 한 번 더 인파가 많은 곳에서 배명월의 기세를 눌러 속을 뒤집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 두 번째로는, 황제였다. 금영은 회귀 전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진국공의 생일 연회가 열리던 날, 황제 또한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때는 금영이 죽은 뒤 여러 날이 지난 후였다. 태자비의 신분을 증명하는 봉황 비녀에 영혼이 묶여, 강제로 배명월에게 끌려다니는 처지가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 연회였다.그 자리에서 배명월은 또다시 태자 앞에서 금영을 그리워하는 척 연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이 우연히 황제의 눈에 들어갔다.금영은 그때 황제가 보였던 반응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황제는 쉽게 굴복하지 않는 금영의 곧은 성정을 칭찬하며 안타까워했고, 동시에 그런 언니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배명월을 대견하게 여겼었다.그리고 바로 그 일이 있고 난 뒤, 서 황후가 기다렸다는 듯이 배명월을 태자비 자리로 올리자고 건의했고 황제는 별 다른 의심 없이 허락했다.금영은 절대로 그 상황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치밀하게 계획된,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한 배명월의 계략이 분명했다.하지만 금영은 이번에 죽지 않았고 배명월이 그 계책을 꾸밀 이유도 없어졌다. 그 덕에 이 기회는 온전히 금영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이번에 그녀는 단순히 황제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아닌, 제대로 자신의 존재를 마음에 각인시킬 작정이었다. 금영은 붉은 여우 털로 만든 망토를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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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물론 금영도 배명월이 정말 모자라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 비교를 통해 송정희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드러내며 금영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 한 것이다. 하지만 배명월은 처음부터 계산을 잘못했다.금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사실 난 네가 혹시라도 내 망토를 달라고 할까 봐 살짝 걱정했었다.”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물론 나는 얼마든지 너에게 양보할 수 있다. 하지만 궁에서 내려온 물건이고, 어디까지나 미래의 태자비인 나에게 하사된 것이니… 자칫 네게 주었다가 분수에 넘치는 옷을 입었다고 사람들의 질타를 받을까 염려했을 뿐이다.”금영의 말이 이어질수록 배명월의 얼굴도 시시각각 변했다. 배명월은 몹시 화가 났지만, 주먹을 꽉 쥔 채 간신히 참았다.하지만 눈은 정직했다. 이미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이건 연기가 아닌, 정말 분에 이기지 못해 나온 것이었다.그런데 배명월이 먼저 금영을 도발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송정희가, 그제야 차갑게 입을 열었다.“아무리 자랑을 하고 싶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동생 앞에서 이렇게 철없이 굴 수 있느냐?”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냉담했다.금영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니, 오해입니다. 제가 언제 자랑을 했습니까? 전 그저 명월이를 생각하는 마음에 한 말일 뿐입니다.”송정희가 차갑게 말했다.“너는 태자 전하와의 혼약이 어떻게 맺어진 것인지 잊었느냐? 그런데 감사하기는커녕 명월이의 가슴을 이리도 후벼 파다니, 정말 정도를 모르는구나.”금영은 얼굴을 굳혔다.“제가 태자 전하와 혼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 폐하의 교지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하지만 폐하께서 혼약 교지를 내리실 때 명월이는 후부로 돌아오지도 못한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제가 왜 명월에게 감사함을 느껴야 합니까?”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게다가 그때 가장 이 혼약이 필요했던 건 영안후부 아닙니까? 그래야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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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금영은 곧바로 해수에게 지시를 내렸다.“가서 맹 소장군을 붙잡아 예전에 자주 보던 곳으로 날 만나러 오라고 전하거라.”해수는 놀란 눈으로 금영을 바라봤다.“아가씨, 그건….”금영은 미래의 태자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외간남자와 밀회를 약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니, 만약 누가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큰 비난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금영은 재촉하듯 해수에게 눈짓했다.해수는 그 모습에 감히 더 묻지 못하고 서둘러 전갈을 전하러 갔다.그 즉시 금영도 약속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맹 장군은 금영의 조부가 살아있던 시절, 종종 후부를 방문해 담소를 나누던 사이였고 그때마다 맹운산도 함께 데려왔었다.두 사람은 늘 바둑을 두며 병법 얘기나 군사 얘기를 나눴고 어린 금영과 맹운산에겐 이 시간이 상당히 고역이었다. 결국 둘은 함께 꾀를 내어 몰래 영안후부 밖으로 빠져나가기까지 이르렀다.그 방법이 바로 안성당 근처에 있는 개구멍이었다.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금영은 미래의 태자비로 낙점되기 전이었고, 종종 그 개구멍으로 밖을 들락거렸다.하지만 혼인 교지가 내려진 뒤로는 한 번도 그 구멍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금영은 개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간 다음, 맹운산에게 부탁해 진국공부까지 데려다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그런데 막 몸을 숙여 기어나가려던 순간, 담장 위에서 갑자기 낮은 웃음 소리가 들렸다.금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익숙한 그림자, 맹운산이 담장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남자가 입기엔 다소 밝은 진홍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도 붉은 비단으로 묶여 있었지만 조금도 여린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소장군의 호칭에 걸맞은, 젊은 장수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외형이었다.맹운산이 입을 열었다.“다 큰 처녀가 되었는데도, 넌 왜 별로 달라진 게 없어? 아직도 개구멍이나 드나들 생각을 하다니.”그러더니 금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덧붙였다.“요즘 살도 좀 찐 거 같은데, 정말 그 개구멍을 통과하려고?”금영은 고개를 내려 자신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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