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61 - Chapitre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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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영안후는 금영의 말을 듣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당연히 금영이 털어놓은 사실 중에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내용은 모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영안후는 조금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태자는 물론 황제까지 얽힌 일이었다. 아무리 배짱이 크더라도 이런 일까지 꾸며 낼 순 없을 거라 여긴 것이다.영안후의 표정이 점점 거무죽죽 시커멓게 변했다.금영은 그런 그를 살피다가, 당장이라도 용서를 빌려는 듯 몸을 낮췄다."아버지,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경솔했던 탓에 후부에 큰 화를 불러왔습니다..."송정희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당연히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줄로만 착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대인, 금영이는 역시 철이 덜 들었습니다. 태자 전하와 혼약도 맺어놓고, 이런 소동을 빚다니... 크게 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영안후가 서둘러 금영이 무릎 꿇는 것을 막으며 싸늘하게 송정희를 바라봤다."소동이라고 하였소?"그러자 송정희가 말했다."예, 그렇습니다. 소동이라 불러도 부족할 정도로 큰 사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엄히 교육하려 했는데... 대인의 얼굴을 봐서, 조금은 가볍게 벌하도록 하겠습니다."영안후는 금영을 똑바로 세우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네 잘못이 아니다."그러자 송정희의 시선이 금영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금영의 얼굴을 뜯어봤다. 마치 영안후가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찾듯이 말이다.'이번엔 또 무슨 말을 했지? 설마 내 짐작이 틀렸을 리가...'금영은 고개를 숙인 채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영안후가 생각보다 냉정하고 이해득실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실감한 순간이었다. 결국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이 아니라, 영안후부의 앞날뿐이었다.과거 그녀가 죽었을 때도 그는 별로 슬퍼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오히려 기회가 주어지자, 망설임 없이 배명월을 태자비 자리에 밀어 넣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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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그제야 송정희는 배명월도 지금 후부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금영이 저토록 기고만장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배명월을 끌어들이려는 게 분명했다.송정희가 차갑게 말했다."명월이의 외출은 내가 허락한 것이다.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아,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너는 외출할 때 내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그 말을 들은 금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송정희는 그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무엇이 어긋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영안후가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며 끼어들었기 때문이다."나는 명월이가 철이 없는 것이 나이가 어려서, 또는 밖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소. 그런데 이 일을 그대도 알고 있었다고?"영안후가 격노한 목소리로 송정희의 이름을 불렀다."송정희! 그대가 지금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녕 모른단 말이오!"송정희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봤다.하지만 금영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그 시선을 피했다. 물론 그렇다고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곧 다시 고개를 든 금영은 단정한 얼굴로 영안후의 팔을 붙잡으며 나직이 말했다."아버지,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부인께서 명월이가 무엇을 하러 나갔는지 알고 계셨다 해도, 그 뒤에 벌어진 일까지는 짐작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이 한마디에 송정희는 속이 뒤집혔다. 금영이 영안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느닷없이 꾸지람부터 들었는데, 저런 말까지 덧붙이니 대놓고 약을 올리는 것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송정희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금영은 실제로 그녀를 약 올리기 위해 이 말을 꺼낸 것이었다.회귀 전, 죽음으로 내몰렸던 그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송정희가 해수를 저토록 몰아붙인 것도 단순히 괴롭히려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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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처음부터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날벼락이 떨어진 듯, 영안후의 말이 배명월의 귀에 사정없이 내리꽂혔다.배명월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이내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송정희 역시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입을 열었다."대인,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명월이를 잃어버린 뒤로, 전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는데... 이제야 겨우 되찾게 된 아이를, 아버지라는 사람이 어찌 이런 매정한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송정희는 소중한 제 딸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아비인 영안후가 이토록 매정하게 몰아붙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금영은 한쪽에서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녀 역시 부모의 작은 정 한 자락이라도 얻고자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이들의 외면과 죽음뿐이었다.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이들 사이를 갈라놓았을 뿐인데, 예전에는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존중과 신임이 돌아왔다.그제야 금영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탱하는 것이 정 같은 연약한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훗날 황제의 총애를 받아 언젠가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다시는 이런 대접을 받지 않아도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영안후가 조소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이리 싸고 돌다니, 참으로 어리석구려. 이 모든 것이 결국 그대가 너무 저 아이를 오냐오냐 키운 탓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소? 거기 누구 없느냐! 부인을 방으로 데려가 스스로 돌아보게 하거라! 그리고 배명월은...."분노가 가득한 그의 시선이 배명월에게 향했다."자음암으로 보내, 조용히 수양하게 하거라."자음암은 비구니들이 머무는 사찰로, 문제를 일으킨 귀녀들이 사실상 유배되듯 보내지는 곳이었다.그 말을 들은 송정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배명월 역시 영안후부로 돌아온 지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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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기군망상의 죄 금영과 배명월, 그리고 태자가 함께 저지른 일이었다.하지만 황제가 아무리 노했다 한들 제 아들인 태자를 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영안후 역시 이 일을 두고 태자에게 따져 물을 자격은 없었다.하지만 금영과 배명월은 그의 권한 아래에 있는 딸들이었다. 배명월에 대한 처분은 이미 정해졌고, 이제 남은 것은 금영뿐이었다. 물론 영안후도 금영이 이 일로 얼마나 억울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가 얽힌 일인 만큼, 그대로 넘기기에는 망설여졌다.“아버지께서 이 일로 크게 상심하실까 걱정됩니다.”금영이 영안후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자 영안후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결국 자신을 가장 염려하는 딸이 누구인지 새삼 실감한 것이다. 그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회양에서 돌아온 뒤로 몸이 많이 상한 것을 알고 있다. 먼저 돌아가 쉬거라. 남은 일은 내가 처리하마.”금영이 고개를 숙였다.“네, 아버지.”송정희와 배명월 모녀는 그런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입안에 피 맛이 번질 만큼 입술을 꽉 악물었다.*금영은 해수를 부축해 방 안으로 돌아왔다. 형구에 눌려 시퍼렇게 멍든 해수의 손을 본 금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많이 아프지?"금영은 진작 해수에게서 의심을 거둘걸, 뒤늦게 후회했다. 그동안 해수가 보여준 충심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이런 모진 고초까지 겪게 만들다니, 너무나 미안했다.해수는 그저 몸종일 뿐이었다. 과거에 큰오라비한테 시집갔다고 해도, 스스로 결정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해수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아가씨. 저는 거친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금영은 서랍 안에 두었던 효과 좋은 연고를 꺼냈다."상처에 이 약을 잘 바르거라."그러자 해수가 궁금한 듯 물었다."아가씨, 그런데 어떻게 어르신의 마음을 바꿔 명월 아가씨를 벌하게 하신 것입니까?"금영은 오늘 있었던 일을 해수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황제와 있었던 일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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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그 말을 들은 배경천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배경천은 바보가 아니었다. 금영의 말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곧장 받아치지는 않고, 그저 차갑게 금영을 노려보았다.금영이 살짝 웃었다.“뭘 그렇게 노려봐요? 저 때문에 벌을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뭐, 이 방식이 한 번쯤은 통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명월이를 감쌀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말을 마친 금영은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듯한 배경천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재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문은 곧바로 열렸다.금영이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리자, 배경천만 눈보라 속에 홀로 남겨졌다.영안후는 잿빛으로 가라앉은 안색을 한 채, 촛불이 켜져 있는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가 한숨을 내쉰 뒤 금영을 바라보며, 전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밤도 깊었는데 여기까진 어쩐 일이냐?"금영은 그런 영안후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오늘 일로 아버지께서 많이 상심하셨을 것 같아, 저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뵈러 왔습니다.”영안후는 그런 금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운 얼굴에는 걱정과 근심이 짙게 어려 있었다. 그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자신이 잘못 판단한 듯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금영을 보며, 회양에서 삼 년을 보내는 사이 성정이 많이 비뚤어졌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는 태자비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누가 가장 규범을 지키고 있었는지는 더없이 분명해졌다.역시 특별히 궁에서 은퇴한 상궁을 데려다 교육시킨 보람이 있었다. 시골에서 자란 배명월과는 천지 차이였다.금영은 영안후의 찻잔에 찻물을 채워주려 주전자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올리고 보니, 안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주전자가 비워질 정도로 차를 마신 것 같았다.금영이 안타까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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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영안후는 금영이 먼저 한 발 물러서자 살짝 놀랐다."정말... 그리 생각하느냐?"금영은 속으로 냉담하게 웃었다.자신의 생각 따위 정말 중요한 건 아닐 터였다. 오늘 그녀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어도, 영안후는 배명월을 자음암으로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해도, 배경천과 송정희가 가만히 있을 위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송정희 뒤엔 송씨 가문이 있었다. 영안후로서도 그들의 체면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금영이 얌전히 웃으며 말했다."사실 저도 명월이의 처벌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폐하와 마주칠 줄은 그 아이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상황이 이리 되길 명월이도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잠시 뜸을 들인 금영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일은 어차피 저희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영안후는 금영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네가 고생이 많다."금영이 조용히 답했다."아버지의 근심을 덜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그러더니 말끝을 살짝 바꾸었다."다만, 한 가지만 더 건의드리고 싶은 것이 있사온데, 괜한 참견이라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영안후는 금영에게 과하다 할 정도로 인내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 기회였다.그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편하게 하거라. 부녀지간에, 너무 예를 차릴 거 없다."금영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사실 태자 전하께서 명월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 일 자체만 봐서는 그리 나쁠 것은 없습니다. 물론 저의 두 자매가 동시에 태자부에 들어가는 것은 영안후부 체면이 다소 상할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람들도 받아들이게 될 테니, 큰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그녀는 목을 축인 다음, 다시 차분히 말을 이었다.“하지만 황제께서는 명월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듯합니다. 명월이가 태자 전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 또한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이를 고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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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금영의 말을 들은 영안후는 순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그는 다시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렇다면 네가 보기엔 어떤 혼처가 좋을 것 같으냐?"금영은 잠시 말을 가다듬은 다음 입을 열었다."진국공부의 적장손이 어떨까 싶습니다. 듣기론 나이도 젊고, 용모도 뛰어나며, 학식 또한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했으니,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영안후는 눈꺼풀이 가볍게 떨렸다."하지만 진국공은 현비 쪽 사람이지 않느냐...."그가 꺼리는 것은 혼처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배후였다.금영은 영안후의 염려를 짐작한 듯 미소를 지었다."예, 그러니 더더욱 명월이를 그 집안과 혼약을 맺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태자 전하를 대신해 진국공부의 동향을 살필 수 있을 테니까요."여기까지 말한 금영은 잠시 뜸을 들인 뒤, 한마디 덧붙였다."무엇보다 훗날 조정의 형세가 갑자기 뒤바뀌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동아줄이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영안후는 금영의 말을 다 듣고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갈래 생각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한참 지난 뒤, 다시 금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이렇게까지 우리 가문의 사정을 헤아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금영이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저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가문의 영욕을 먼저 생각하라 가르치셨고, 전 한 번도 그분의 말씀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금영이 선대 영안후를 들먹이자, 영안후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의심도 비로소 사라졌다. 아무리 그녀의 말이 조리 있더라도, 그 뿌리가 확인되지 않았다면 선뜻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금영은 영안후가 보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영민했다. 그래서 살짝 경계가 되는 반면, 이런 총명함을 가졌기에 태자에게 시집가서도 후부의 영화와 지위를 오래 붙들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러나 진실은, 선대 영안후는 한 번도 이런 말을 금영에게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몇 번이고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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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사실 금영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영안후는 차마 배명월을 쫓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금영의 마음부터 달래야 했다. 그러니 일단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금 전 금영이 보인 태도 역시 너그러웠으니, 명분도 충분했다.배경천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금영이가요? 금영은 명월이가 당장이라도 없어지길 바랄 텐데, 명월이를 위해 나서줬다고요?"영안후가 차갑게 말했다."믿지 못하겠으면 다시 돌아가 무릎 꿇거라. 금영이가 들였던 청을 없었던 것으로 하마."그제야 배경천도 영안후의 말을 믿게 되었다. 그가 복잡한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명월이를 위해 나섰느냐?"금영이 담담히 답했다."왜일 것 같습니까?"배경천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금영 옆에 있던 해수가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오늘 제가 밖에 잠시 심부름을 갔다가 둘째 공자님께서 무릎 꿇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이 사실을 아가씨께 알리게 되었는데, 아가씨께서는 이 말을 듣자마자 식사도 마다하고 곧장 이리로 오셨습니다."배경천은 또다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나 때문에?"금영이 낮게 말했다."그건 과한 짐작입니다."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곧바로 밖을 걸어 나갔다. 하지만 해수는 곧바로 따라가지 않고, 뒤에 남아 배경천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오늘만큼은 저도 한마디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그간의 정이 어디로 갔겠습니까? 둘째 공자님께서 예전에 아가씨를 위해 똑같이 무릎을 꿇으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서주신 것인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의심부터 하시는군요. 제가 아가씨였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해수는 서둘러 금영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금영을 함부로 대할 사람도, 해수를 괴롭힐 사람도 없었다.홀로 남은 배경천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자리에 멍하니 굳었다.영안후는 아무리 가문이 중요하더라도, 자식들 사이가 나쁘길 바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배경천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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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주윤안에게 시집갔던 여인은 성정이 꽤 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다. 배명월이 그에게 시집가게 된다면, 분명 같은 결말을 맞게 될 터였다.물론 금영은 배명월이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다 해도 순순히 주윤안에게 시집갈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배명월의 마음속에는 태자 말고 다른 혼처 따위 들어설 자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또한 태자 역시 이 혼사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그러니 이 혼사가 실제로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금영이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이 일을 빌미로 삼아 태자와 배명월을 한 번 더 몰아붙일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서봉전.태자는 궁으로 돌아온 뒤,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서 황후를 찾아갔다."모후를 뵙습니다."서 황후가 태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이 늦은 시각에 어쩐 일이냐?"태자는 서 황후가 탕약을 든 궁녀와 함께 어딘가로 갈 채비를 한 모습을 보고 물었다."폐하를 뵈러 가시는 길이십니까?"서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폐하께서 금광사에 다녀오지 않았느냐? 시각을 보니, 곧 돌아오실 듯하여 몸을 덥히는 탕약을 좀 가져가려던 참이었다."태자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제가 폐하를...."서 황후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태자를 보며 물었다."왜 그러는 것이냐? 할 말이 있다면, 얼른 하거라."그러자 태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오늘 금영과 함께 월로사에 다녀왔습니다."태자는 자세한 상황을 생략했다. 괜히 진실을 알게 된다면, 서 황후가 배명월을 못마땅하게 여길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서 황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월로사라고? 명색이 태자라는 녀석이 여인을 데리고 월로사로 가다니, 어찌 이리 체통 없이 행동할 수 있느냐?"하지만 곧 표정을 가다듬으며 복잡한 기색으로 태자에게 말을 이었다."그래도 둘의 정이 깊어 보이니, 한시름 놓이는구다."서 황후는 자신이 품은 독한 마음을 귀한 아들에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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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오셨습니까, 폐하?”서 황후가 웃으며 예를 올렸다.그러자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여긴 어쩐 일인가?”서 황후는 미소를 머금은 채, 온화하고도 단정한 태도로 말했다."추우셨을 것 같아 몸을 녹이는 탕약을 가지고 왔습니다. 폐하께서 벗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부디 옥체부터 돌봐주십시오. 폐하께서도 상처가 나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황제는 그런 서 황후를 한 번 쳐다본 다음 그대로 현청전 안으로 들어섰다.서 황후가 얼른 뒤를 따르며 나직이 말했다."송구합니다, 폐하. 신첩이 너무 말이 길었지요? 하지만 저에겐 폐하가 황제이기 전에 신첩의 지아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부인으로서 염려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렇게 말하며 서 황후는 먼저 자신이 두르고 있던 겉옷을 벗은 다음, 손수 황제의 망토를 벗겨 옆에 있던 궁녀에게 넘기고는 황제를 끌어안았다.그 순간,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오늘은 짐이 좀 피곤하니, 황후도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하게."그 말을 들은 서 황후의 몸이 순간 굳었다. 얼굴에도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서 황후는 이 나라의 국모였다. 차마 볼썽사납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손을 풀고 조용히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황제의 몸에서 은은하고도 맑은 향이 풍겨왔다. 그것은 평소 황제에게서 맡을 수 있는 향도 아니었고, 절에서 흔히 쓰는 향내와도 달랐다.서 황후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마주하자 그의 입가 한쪽에 희미한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황제가 금영에게 입을 맞췄을 때, 숨이 막힌 금영이 버둥치며 남긴 흔적이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부라 해도 서 황후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그는 황제였고, 평범한 사내처럼 한 사람만 바라보며 살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그렇기에 서 황후는 애써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미소를 지었으나, 속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서 황후는 황제가 하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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