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241 - Chapter 250

340 Chapters

제241화

맹운산을 내보낸 뒤, 금영은 텅 빈 다실을 한 번 훑어본 다음 병풍 뒤의 구석진 자리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겨울이라 산길 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월로사 안은 평소보다 한산했다.황제가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듬성듬성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들이었다.월로상을 지키고 있던 도사는 그가 신분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단번에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도사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이런 귀인들은 대개 씀씀이가 큰 법이었다. 그러니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얹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도사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입을 열었다.“인연을 구하러 오셨습니까? 저희 월로사는 영험하기로 이름난 곳입니다.”황제는 그런 도사를 잠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대신 위명이 앞으로 나서며 담담히 말했다.“사람 한 명을 찾고 있다.”그 말을 들은 도사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사람을 찾으신다라... 당연히 여인이겠군요. 역시 들어오실 때부터 귀한 인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연이 맺어지지는 못했군요.”위명은 그 말을 듣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연 제 입으로 영험하다 할 만했다.영지라는 여인과 황제 사이엔 분명 몇 차례 인연이 닿긴 했으나, 아직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도사는 그런 위명의 반응을 보며 속으로는 미소를 지었고, 겉으로는 조용히 차를 마셨다.남녀가 함께 월로사를 찾아왔다면, 대개는 소원이 이루어진 데 감사를 전하거나 서로의 인연이 더 견고해지기를 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혼자 왔다면 십중팔구 상대에게 상처를 입은 경우였다.월로사 도사 노릇을 하면서 이 정도도 읽어내지 못한다면, 도복을 벗고 차라리 속세로 돌아가는 편이 나았다.하지만 위명과 달리 황제는 이런 현혹하는 말에 쉽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이번에도 말 한마디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붉은 비단을 위명에게 건넸다.위명은 그것을 건네받은 뒤, 곧바로 도사에게 내밀었다.“월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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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황제는 몰랐겠지만, 금영과의 만남은 단 한 번도 우연이었던 적이 없었다. 모두 그녀의 계획 속에 있었다. 그만큼 오늘 같은 우연은 금영에게도 몹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금영은 상당히 난감했지만, 한편으로는 월로사에서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었다.다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어떤 신분으로 황제와 마주해야 할지 고민됐다. 배금영의 신분으로 만나는 것은 문제의 요지가 많았다. 미래의 태자비가 정체 모를 사내와 함께 월로사를 찾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뒷감당하기 어려웠다. 금영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곧 단단해진 눈빛으로 상황을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황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흐린 날씨 탓에 다실 안도 어둑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도 화로에 숯불이 넉넉하게 타오르고 있어 공기만큼은 제법 따뜻했다.방 안에 들어선 황제는 추위를 막으려 걸쳤던 망토를 벗어 한쪽에 내려놓고,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선에 병풍 하나가 들어왔다.붉은빛 도는 나무 틀 안에는 정교한 자수가 놓인 비단 한 폭이 끼워져 있었다. 그 위에는 한 줄기에서 함께 핀 연꽃과 짝지어 노니는 원앙이 수놓아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시구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비목(比目: 짝을 이뤄 다니는 상상 속 물고기)처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고, 신선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원앙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영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문득 그의 눈빛이 굳어졌다. 시선을 지긋이 두고 바라보자 병풍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황제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다실 안에 자신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한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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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눈처럼 희고 백자처럼 매끈한 피부, 맑은 눈동자에 아슬하게 맺힌 눈물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저절로 무르게 만들었다."폐하, 이 손 좀... 놔주십시오."금영이 나직이 입을 열자, 황제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놓으라고? 그러면 또 달아나려고?"금영은 배금영의 신분으로 그를 만날 때면 일부러 목소리를 한층 낮추고, 더 단정하게 들리도록 조절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달랐다. 뭐라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여린 기색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마치 비를 한 차례 맞고 난 뒤의 작약처럼, 건드리기만 해도 쉽게 흔들릴 것 같은 그런 여린 음정이었다."폐하, 아픕니다."금영이 다시 말했다. 그제야 황제는 손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었다. 그러자 흘러내린 소매 아래로 붉게 자국이 남은 손목이 드러났다.황제의 눈썹이 한층 더 깊게 모였다. 그리 세게 쥔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 이런 흔적이 남다니, 피부가 몹시 여린 듯했다."폐하께선... 여긴 어쩐 일이시옵니까?"금영은 눈을 깜빡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도망치려 했던 일이 다시 화제로 오르길 바라지 않는 듯했다. 황제의 표정만 봐도 그가 이 행동에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진국공부에서의 마지막 만남 역시 도망으로 끝났으니 말이다.아무리 그가 성군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한들, 황제는 결국 황제였다. 온 천하가 제 것과 다름없는 사내에게, 번번이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애쓰는 존재는 금영이 처음이었을 것이다.물론 황제가 정말 마음만 먹었다면 끝내 그 여인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늘 단정하고 공손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던 금영이 바로 그 인물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더구나 황제는 한 번도 금영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고, 제 눈앞에서 이런 일을 꾸밀 만큼 대담하리라고도 여기지 못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대상이 실은 제 발아래 숨어 있었던 것이다.황제는 차갑게 코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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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당연히 금영은 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 없었다.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사람은 쉽게 손에 넣지 못할수록 더 간절해지는 법이었다. 그러니 더욱 황제에게 제 진심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황제는 그런 반응을 보고 제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그는 입가에 옅은 조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누구와 함께 왔지? 어디 한 번 내 앞에 데려와 보아라. 어떤 사내인지 내가 직접 봐야겠다.”그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내이기에, 황제인 자신이 먼저 내민 입궁의 기회조차 마다했는지 알고 싶었다.그러자 금영이 서둘러 대답했다.“호, 혼자 왔습니다.”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두 번 해 본 일도 아니었으니, 한 번 더 그를 속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녀와 함께 이곳에 온 이는 둘도 없는 벗, 맹운산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그 이름을 솔직히 밝힐 수는 없었다. 그건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찍는 것과 다름없었다.맹운산은 떠나기 전, 귀한 여우털이니 직접 사람을 불러 말리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당장은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 금영은 어떻게든 그가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금영은 황제와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망칠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번 만남은 그저 황제에게 영지라는 여인을 다시 떠올리게만 하면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다시 배금영의 신분으로 돌아가, 황제의 마음속에 불씨를 지피는 일이었다.그래야 훗날 정체가 드러났을 때, 황제가 제 체면과 원칙보다 그녀를 향한 총애를 더 중히 여기게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황제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그래?"그는 틀림없이 금영이 자신의 정인을 감싸려고 거짓을 고하고 있다고 여겼다.그 순간, 황제는 이유 없이 가슴 한켠이 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한 번도 여인에게 이런 식으로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금영은 그를 거절한 것도 모자라, 마음에 다른 사내까지 품었다.낮빛이 어두워지며, 저절로 목소리에 서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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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금영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상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혹시 황제가 자신 때문에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갔다. 그러나 금영은 곧 그 추측을 거두었다. 황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다 한들, 하필 이 시간에 자신이 월로사에 들렀다는 것까지 내다보았을 리는 없었다.금영으로서는 맹운산이 그 비단에 무엇을 적었는지 알지 못 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효험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그 비단 띠를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매달아 두었다. 비단 띠 자체는 단단히 묶여 있어 쉽게 풀릴 일이 없었지만 겨울철 나뭇가지는 본디 쉽게 부러지기 마련이었다. 비단 띠를 매단 가지가 매서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꺾였고, 그 탓에 비단 띠도 함께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금영은 황제의 깊은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음을 느끼며, 서서히 불안해졌다. 도무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작 황제 자신도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분명히 알지 못했다. 그는 예전부터 금영이 자신만 보면 마치 토끼가 매를 본 듯 달아나는 것이 못마땅했다. 언젠가 붙잡게 되면 왜 매번 자신에게서 도망치려 하는지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고 보니, 겁먹은 토끼처럼 잔뜩 움츠린 금영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에야 황제가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짐이 벌써 몇 해째 후궁을 선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금영은 눈을 한 번 깜빡이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황제가 후궁에 그다지 마음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소문으로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보통 황제라면 삼 년에 한 번 작은 선발을 열고, 오 년에 한 번 큰 선발을 여는 것이 예사였다. 심한 경우에는 일 년에 두 차례나 선발을 여는 황제도 있었다.그러나 그는 달랐다. 황위에 오른 지 이미 수년이 지났지만, 후궁을 선발한 횟수는 손에 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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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길고 짙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금영은 맑은 눈동자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폐하께서는 이 대량의 주인이십니다. 신녀가 어찌 감히 폐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신녀는 그 모두를 성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금영의 말은 황제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풀이되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 여인은 거스를 수 없었다. 황제는 이 나라의 주인이었다. 그러니 원하는 여인이 누구든 얼마든지 품을 수 있었고, 궁에 들이는 일 또한 어렵지 않았다.황제는 그동안 억누르고 타이르기만 했던 자신의 태도를 후회했다. 좋게 대해 주었더니 도리어 자신을 만만히 여기는 듯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자꾸만 처음 그녀와 만났던 때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지곤 했다. 나랏일도 아닌 이런 일에 이토록 마음을 써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되면, 이번에는 단단히 혼을 내 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그리고 마침 그때가 왔다. 황제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금영을 향해 몸을 숙였다. 거스를 수 없는 성은이 무엇인지, 이 여인에게 똑똑히 알려 줄 생각이었다.하지만 순진무구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달아올랐던 열기가 서서히 식기 시작했다.그녀는 이미 다른 사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또한 궁에도 들어오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억지로 자신의 뜻대로 상황을 밀어붙인다면, 그건 무뢰한이나 다름없었다.황제는 원래 예의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충동이 치밀었다고 해도, 이성을 되찾은 이상 계속 밀어붙일 수 없었다.금영은 황제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찼다. 황제가 정말 사내가 맞긴 맞는 것인지 순간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줬는데도, 그는 끝까지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금영은 어렵사리 찾아온 이 기회를 쉽게 놓칠 생각이 없었다. 금영은 뒤늦게 자세가 너무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처럼 벌떡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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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황제는 제 가슴을 밀어내려는 가느다란 손을 붙잡은 채, 살짝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그러고는 짙은 열기를 머금은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숨 쉬어라."금영은 물에 빠졌다가 막 건져진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눈썹을 내렸다. 품에 끌어안고 보니, 그녀의 몸이 얼마나 가냘픈지 새삼 실감이 났다.황제는 당장이라도 금영을 으스러질 듯 강하게 끌어안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는 아주 자연스레 자줏빛이 도는 금영의 옷깃에 손을 올렸다.하지만 그때, 금영이 옅은 열기가 배어 나오는 붉어진 눈으로 서둘러 옷깃을 붙잡았다."폐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황제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더니 이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낮고 위협적인 웃음을 터트렸다."짐을 먼저 유혹한 것은 너였다."황제가 못을 박듯 분명히 말했다. 금영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저는... 저는 그런 적 없사옵니다."그러자 그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몰아붙였다."그런 적 없다고? 직설전에 먼저 발을 들인 것은 누구지? 방금 전에도 먼저 입을 맞춘 것도 너이지 않느냐?"금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당장 숨어들 기세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눈앞에 있는 황제의 품에 고개를 파묻었다.황제는 겁먹은 작은 짐승처럼 잔뜩 웅크린 금영을 바라보며, 차마 더는 손을 대지 못했다.그를 붙든 것은 늘 예의를 중히 여기고 스스로를 다스리던 평소의 성정이나 성군으로서의 절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제야 금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작고 여리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 잘못 건드렸다가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작약꽃 같았다. 황제는 한순간의 욕망으로 그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품 안에서 가늘게 떠는 금영을 바싹 끌어안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겨우 가슴속 들끓는 열기를 눌러 삼킨 뒤, 달래듯 입을 열었다."다 괜찮으니, 한 가지만 약조하거라. 반드시 궁에 들어오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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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황제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품에 안긴 금영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물었다."뭐라? 기군망상같은 부정한 죄라고?"그 표정을 본 금영은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우 한 차례 정을 나누고,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몇 번 가졌다고 해서 달라질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잠시 금영에게 옅은 흥미를 느꼈을 뿐, 마음이 깊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금영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신녀가 실언했습니다."금영의 얼굴빛이 좋지 않은 것을 본 황제는 제 기세가 지나치게 매서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태도 탓에 다시 움츠러든 금영을 보며, 황제는 낮은 한숨과 함께 한 걸음 물러났다."선을 넘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짐이 반드시 너를 지켜주마."하지만 이 정도 말로 안도할 금영이 아니었다. 미래의 태자비가 황제의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이미 선을 넘은 일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더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그러나 황제는 여전히 금영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을 이었다."짐에게 고하거라. 어느 집안의 여식이냐? 당장 사람을 보내 교지를 내리겠다. 소의의 자리가 낮다면, 빈으로 봉해 줄 수도 있다."그가 즉위한 뒤 곧바로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금영이 입궁할 뜻만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그렇게 해 줄 생각이었다. 이 점만 보아도 금영을 향한 그의 은총이 얼마나 남다른지 알 수 있었다.황제의 후궁들은 하나같이 이름난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의 혼사는 오직 조정을 다스리고 공신들을 달래기 위해서만 치러졌다. 그러니 이처럼 사사로운 이유로 빈을 들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금영은 한참 침묵하다가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차갑고도 단단한 기세로 말했다."신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폐하께서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오직 저 한 사람에게만 진심을 주실 것이 아니라면, 빈의 자리든 뭐든 신녀에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신녀는 후궁의 어떤 자리도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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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황제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금영은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하지만 입술만 꾹 앙다문 채, 받아드리진 않았다. 황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만 울거라."황제가 낮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금영이 억울한 목소리로 되받았다."신녀가 언제 황후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까? 어찌 이리도 매섭게 신녀를 몰아붙이십니까?"금영은 억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제야 황제도 반쯤 체념한 듯 다시 품 안에 있는 금영을 달래기 시작했다."그래, 짐이 다시는 그리 몰아세우지 않으마. 그러니 이만 눈물을 그쳐다오."평소의 황제였다면, 여인이 우는 모습만 봐도 질색하며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금영에게만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금영이 황제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고집스럽게 말했다."신녀는 궁에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황제가 낮게 대답했다."알겠다. 두 번 말할 필요 없다."그는 자신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한 여인에게 한 번도 아닌 벌써 몇 차례나 거절당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금영은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황제가 내민 손수건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자신의 옷소매에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붉어진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신녀를 놓아주실 수 있으십니까?"그 말을 들은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차갑게 물었다."또 도망치려는 것이냐?"사실 금영은 이미 오늘 이뤄야 할 목적을 모두 이뤘다.황제와 입도 맞췄고, 화도 돋웠고, 다투기도 했으며, 울고 웃고 한바탕 소란도 벌였다. 이 정도면 적어도 며칠은 자신을 잊을 수 없을 터였다. 황제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속이 뒤집히고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날 것이다. 동시에 손에 넣지 못한 것에 마음이 어지러워질 것이다.그러니 어서 맹운산이 돌아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와 마주치는 순간, 정체가 들통날 테니 말이다.금영이 다시 눈시울을 붉히며 황제를 바라봤다."폐하, 신녀는 도망치지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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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황제가 품에서 금영을 놓아주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거리를 벌이고 밖으로 향했다.곧이어 쾅 하고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는 화가 치밀어오르다 못해 웃음이 터졌다.금영이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명이 돌아왔다."폐하, 송구합니다. 찾지 못했습니다."위명이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월로사를 엎다시피 샅샅이 뒤졌으나, 그 어디에도 영지라는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황제가 말했다."찾지 않아도 된다.""예?""방금 전까지 짐과 함께 있었다."위명이 놀란 눈으로 황제를 바라봤다."그렇다면, 드디어 만난 것입니까?"황제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놀란 위명이 자기도 모르게 추궁하듯 물었다."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만나셨다면서 왜 붙잡아 두지 않으셨습니까?"황제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제야 위명은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주제도 모르고 순간 자기도 모르게 주군에게 따지듯 물어 버린 것이다. 위명은 제가 무례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이 일 때문에 마음고생한 것만 떠올려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영지라는 여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런데 황제가 그 여인을 만나고도 그냥 보내줬다니, 속이 타들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위명은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비록 성정이 다소 거칠기는 했으나, 잘못을 빌 때만큼은 태도가 한결같이 바르고 빨랐다.황제가 차갑게 명했다."이제 막 나갔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입구를 지키며 절대로 눈을 떼지 말거라.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살펴 내게 보고하거라."위명이 눈을 크게 떴다."폐하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복했습니다!"황제가 그녀를 놓아준 것은 결코 무심코 한 일이 아니었다. 일부러 경계를 풀어 주어 방심하게 만든 뒤, 그 뒤를 밟아 정체를 밝혀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야말로 그 여인이 누구인지, 더는 빠져나갈 구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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