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71 - Chapitre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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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서 황후가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황제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황후, 많이 한가한가?”그제야 황제의 얼굴에 노기가 서린 것을 본 서 황후가 서둘러 무릎을 꿇고 말했다.“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지만 신첩이 이러는 것은 태후마마의 염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궁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아직 한창이실 나이에 후궁을 이토록 오래 멀리하시는 것은 아니 될 일이옵니다.”황제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지금 짐을 탓하는 것인가?”서 황후가 급히 말했다.“신첩이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신첩은 그저 폐하의 옥체가 염려되어 말씀드렸을 뿐이옵니다. 지금 있는 후궁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새로 간택하시는 것은 어떠하옵니까?”황제는 서 황후를 내려다보다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비꼬았다.“하! 참으로 마음이 어질구려.”그 말에 서 황후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황제가 다시 차갑게 말했다.“돌아가 사흘간 근신하게.”황제의 호통에 서 황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궁녀 조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황후마마께서도 걱정되어 드린 말씀이온데….”하지만 황제는 듣기 싫다는 듯 곧바로 잘랐다.“방자하구나. 네가 감히 여기서 입을 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그러자 서 황후가 서둘러 궁녀 조씨에게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낸 뒤, 조용히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그럼 물러가겠습니다.”돌아가는 길.서 황후의 안색은 매우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흘 근신이라는 벌 자체가 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황후는 중궁의 주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설령 가벼운 벌이라 해도, 황제가 직접 내린 이상 체면이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한편, 황제는 서 황후가 물러간 뒤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평소에 그였다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후궁을 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지를 만난 뒤에, 좀처럼 다른 여인에게 불길이 끓어오르지 않았다.황제는 영지를 떠올리며 식어버린 찻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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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현비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네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확실히 나와 소종에겐 나쁠 것 없겠다."*금영은 궁 안의 복잡한 사정 따위 알 리 없었고, 개운하게 일어나 이른 아침부터 입궁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막 문을 나서려던 찰나, 영안후와 마주치고 말았다.영안후가 금영을 바라보며 손수 챙겨온 손난로를 내밀며 말했다."날이 차니, 따뜻하게 이거라도 가져가거라."하지만 금영의 품에는 이미 난로 하나가 안겨 있었다. 연꽃무늬 비단 보자기에 싸여 있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예전에 황제가 선물했던 손난로였다.물론 그 사실을 아는 이는 금영과 해수뿐이었다. 금영은 영안후가 내민 손난로를 직접 받지 않고, 해수에게 가볍게 눈짓했다. 그러자 해수가 조용히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었다.금영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아버지."영안후는 그 모습에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당연히 자신이 손수 손난로를 챙겨주면 금영이 기꺼워하며 받아 들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영안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조반은 들었느냐?"금영이 답했다."아직입니다.""어찌 조반도 안 들고 길을 나서려는 것이냐?"영안후가 미간을 좁혔다."여봐라! 어서 금영이 들 조반을 가지고 오너라!"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였다."늦을까 걱정할 것 없다. 이따 나도 조회에 들어가야 하니, 함께 가자구나."금영은 그런 영안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하실 말씀이 있으시거든, 바로 꺼내셔도 됩니다."그러자 영안후가 머쓱하게 웃었다."별다른 것은 아니고... 이번에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으니, 마음이 많이 상했을까 걱정되어 보러 온 것뿐이다."그제야 금영은 영안후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폐하께 쓸데없는 말씀을 올릴까 염려하시는 것이라면,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영안후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역시 너밖에 없다. 예전엔 이 아비가 잘못했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보상해주마."영안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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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두 사람은 함께 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갈림길이 나왔고, 헤어질 때가 되었다. 금영이 가는 곳은 외간남자의 출입이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소녕전이었다.맹운산이 못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금영아, 이제 나도 궁에 드나드니까 누가 괴롭히면 꼭 말해!”그러자 금영이 답했다.“고마워.”맹운산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우리 사이에 너무 깍듯한 거 아니야?”너무 깍듯하면 되레 남처럼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는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그때, 주변을 지나가던 황제의 눈에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채 둘을 빤히 바라보았다. 붉은 담장 아래 선남선녀가 마주 선 모습은 제법 그림이 좋았다.손복안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배금영 아가씨와 맹운산 아닙니까?"그 소리에 두 사람도 고개를 돌렸고, 현색 장포를 걸친 황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둘은 서둘러 앞으로 나가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폐하를 뵙습니다.""폐하를 뵙습니다."두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겹쳤다.황제가 말했다."일어나거라.""감사합니다, 폐하."또다시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그러자 황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직이 물었다."함께 입궁한 것이냐?"두 사람 모두 잠시 당황했지만, 금영이 먼저 입을 떼었다."신녀는...."하지만 이때, 맹운산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오늘 황자 전하들과 함께 활쏘기 수업이 있는 날이라 입궁하던 중, 궁문에서 배금영 아가씨를 만나게 되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황제가 다시 물었다.“둘이 제법 가까워 보이던데.”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황제는 일전에도 금영과 맹운산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맹운산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금영의 혼사는 황제가 직접 정한 것인 만큼 쉽게 흔들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금영이 눈밖에 나는 일이 생길까 불안해졌다.맹운산이 어색하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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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금영은 현청전에서 나온 뒤, 먼저 서책을 소녕전에 가져다 두고 서둘러 서봉전으로 향했다. 황제와 마주친 탓에 서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기 다소 늦은 시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 황후가 달갑지 않더라도 아직은 몸을 낮춰야 할 시기였다.그런데 서봉전에 이르기도 전에, 이번에는 유진설과 마주치고 말았다.회귀를 겪으며 금영은 유진설을 다시 보게 되었으나, 적어도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유진설은 몇몇 귀녀들과 함께 걸어오다 금영을 보았지만, 일부러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금영은 미소를 머금은 채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유진설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유진설은 요즘 들어 자신과 마주칠 때마다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금영을 보며 기분이 묘했다. 오죽하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정말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그 지점에 이르자 유진설은 순간 닭살이 돋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서봉전으로 가던 금영을 불러세웠다. “문안 인사 가는 거라면, 헛걸음이야.”금영은 걸음을 멈추고 유진설을 돌아보았다.그러자 유진설도 그녀를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황후마마께서 적어도 사흘은 불공을 들이실 거라며,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대.”불공이라, 말은 그럴듯했지만, 금영은 직감적으로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님을 알아차렸다.유진설이 금영을 흘겨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가보든가.”안 그대도 유진설은 몇몇 귀녀들과 함께 서봉전에 문안 인사하러 갔다가, 한바탕 핀잔을 듣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금영이 또 한번 가게 된다면, 공연히 민망한 꼴만 당할 게 뻔했다. 그 말을 들은 금영은 웃는 얼굴로 유진설 쪽으로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유진설 아가씨의 말씀인데, 제가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유진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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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기분이 좋아진 첫 번째 이유는, 벗은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는 말처럼 유진설과의 사이가 한결 누그러졌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유진설이 전해 준 서 황후의 소식에 있었다.서 황후가 근신에 처해지다니, 과거에는 없던 일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대로라면, 서 황후는 태후가 되기까지 황제에게 이토록 꾸지람을 듣거나 벌을 받는 일이 없었다. 금영은 운명이란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서 황후든 자신이든, 아니면 황제든, 그녀가 되살아온 순간부터 모든 것은 이미 달라지기 시작했다.지금은 서 황후가 겨우 근신에 처한 것이 전부였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선화전에 도착하자, 공난심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예법과 규율을 익히기 위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에도 금영은 공난심에게 불려가 혹시 더 꾼 꿈은 없는지 추궁을 받았다. 하지만 없다고 답하자, 공난심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그러나 금영은 그것이 폭풍 전의 고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오후가 되자 황제는 침상에 몸을 기댄 채 잠시 낮잠을 청했다. 황제가 된 뒤로는 피를 흩뿌리며 전장을 누비는 악몽이 아니면, 거의 꿈을 꾼 적이 없었는데, 아주 드물게 다른 꿈이 나타났다.꿈속에 황제는 영지를 처음 만났던 직설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날처럼 불쑥 나타난 영지가 갑자기 그의 목을 휘감더니, 물기 어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아찔한 관계를 맺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황제는 침상에 기대앉은 채 옷을 입고 있는 영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렇게 모든 것이 그날의 기억처럼 반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가 망토를 걸친 순간 무언가 달라졌다. 영지의 어깨에 그에게도 익숙한 붉은 여우털 망토와 면사가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황제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화들짝 눈을 떴다.그러자 방 안을 지키고 있었던 손복안이 놀라 걱정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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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황제는 옷을 갈아입은 뒤에도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아 한참 밖에서 찬바람을 쐬었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나도록 안으로 들 기미가 없자, 곁을 지키던 손복안이 조심스레 나섰다."폐하, 이러다가 옥체가 상하겠습니다."그제야 황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청전으로 돌아와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가 저물 즈음이 되었고, 하늘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금영은 눈을 맞으며 소녕전으로 돌아와 먼저 목욕을 하고 몸에 밴 피로를 씻어 냈다. 그런 뒤, 다시 해수의 도움을 받아 나갈 채비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수가 망설이다가 물었다."아가씨, 또 나가시게요? 왜 침의가 아닌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신 겁니까?"이미 날은 완전히 저문 상태였다. 당연히 이 시각에 금영을 부를 이도, 소녕전에 찾아올 손님도 없었다.금영이 말했다."오늘 폐하께서 서책 여러 권을 주셨잖아. 읽다 보니 모를 곳이 몇 군데 있어 직접 여쭤보려고."해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금영이 책을 좋아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해서 황제께 직접 여쭈러 간다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런데 문득 해수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쳤다. 최근 들어 태자는 번번이 배명월만 감쌌고, 그 끝에 금영만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태자는 마치 이제는 금영을 더는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그 때문에 금영이 태자에게 냉랭하게 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해수는 속으로 불안했다. 이러다 두 사람이 정말 멀어지는 것 아닐까 걱정되었던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금영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명월과 겨루고 있었다. 배명월이 태자를 붙들었다면, 금영은 황제를 붙드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녀가 황제를 등에 업는 순간, 배명월이 아무리 태자의 마음을 얻는다 해도 황실의 일원이 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해수가 감탄 어린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참으로 신묘한 수를 두셨습니다."금영이 의아한 얼굴로 해수를 바라봤다."신묘한 수?"해수는 서둘러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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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황제의 위압감에 손복안은 결국 이를 악물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소인은 그저... 금영 아가씨를 만날 때마다 폐하께서 기분이 누그러지는 듯하기에... 그분을 불러 폐하의 무료함을 달래면 어떨까 싶어...."아무리 오래 황제의 곁을 모셔온 그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애써 무료함을 달랜다는 표현으로 말을 에둘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선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은 결코 이런 말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게다가 무료함을 달랜다는 표현 자체도 금영의 신분을 보면 크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황제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무료함을 달래? 네가 갓 궁에 들어온 신입도 아니고, 설마 금영의 신분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손복안이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답했다."다, 당연히 알고 있사옵니다. 예, 예비 태자비이시지요."황제는 화가 극에 달하다,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썩 꺼져라. 내일부터는 더 이상 짐의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된다."황제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자신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이런 음험한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이야, 정말 실망이었다.손복안은 겨우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몸을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났다."그,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황제가 다시 서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네 머릿속에 든 생각은 무덤까지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오늘 일을 듣게 된다면, 네 혓바닥부터 뽑아 버리겠다."손복안이 황급히 답했다."명심하겠사옵니다.""그럼 안 물러가고 무엇하느냐!"황제는 이제 손복안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그런데 손복안이 막 문을 나가려던 찰나, 문앞에 다다른 금영과 마주치고 말았다.그를 발견한 금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손복안은 그런 그녀를 아주 복잡한 얼굴로 바라봤다.금영은 그가 평소와 어딘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일단 용건을 먼저 밝혔다."손 태감, 폐하를 뵐 수 있을까요?"그 목소리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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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금영은 울먹이는 자신을 보고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황제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깨문 채 예를 올렸다.“그동안 폐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박복한 삶에 분수에 넘치는 것을 바랐던 듯합니다. 앞으로는 다시는 폐하를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금영은 더는 매달리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억지로 삼킨 채,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을 티내지 않기 위해 눈을 내리깔았다.도무지 황제가 갑자기 태세 전환한 이유가 짐작되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가 황제의 앞에서 금영에 대한 험담을 늘어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되었든 오늘은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금영이 떠난 뒤에도, 황제는 문을 닫으라는 명령도 내리지 못한 채, 한참을 결연하게 등을 돌리고 떠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거센 눈발이 금영의 어깨 위로 내려앉으며, 왠지 모르게 보는 사람을 하여금 저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탓에 황제 또한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아릿해졌다."문을 닫거라."손복안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속으로는 멀어져 가는 금영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 자신이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했더라면, 금영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오늘 꾸지람 덕분에 금영은 어쩌면 더 큰 화를 막아낸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오늘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는 본디 내시, 아첨하며 살아가야 하는 몸이었다. 오늘 한 행동도 결국 제 주인의 뜻을 헤아리고 비위를 맞추려다가 벌어진 일에 불과했다.손복안은 비록 벌은 받았지만, 발걸음은 오히려 한결 가벼웠다.하지만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위명은 그의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니, 손 태감, 분명 좀 전에 폐하께 큰 벌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왜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까?"손복안이 되물었다."좋아 보인다고요? 제가? 도대체 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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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황제는 꿈을 떠올릴 때마다 분을 삭이지 못했다.그도 요즘따라 자신이 평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두 불쑥 나타났다가 돌연 사라지길 반복하는 그 여인, 영지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잠잠했던 그의 마음이 한 여인 때문에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선 원인이었던 여인을 찾아내야만 했다. 이 감정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질지도 몰랐다.황제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위명!"밖에 있던 위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좀 전에 손복안이 벌 받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태도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분부하실 일이 있으십니까? 폐하의 명이라면, 죽음도 불사하지 않겠습니다!"위명이 바삐 충성을 드러냈다.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들어 위명을 바라봤다."목숨 걸 것까진 없다. 찾으라는 사람은 찾았느냐?"위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차라리 죽으라고 하는 편이 더 쉬웠을지도 몰랐다. 무슨 도깨비 불도 아니고, 황제는 자꾸 찾아내라 하지만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영지라는 여인, 황제에게 잘못 붙은 재수 없는 귀신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아니, 재수가 없는 것은 위명일지도 몰랐다. 그가 이를 악문 채 답했다."아직... 단서를 못 찾았습니다."황제가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녹봉을...."위명이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폐하, 올해 녹봉은 이미 다 깎여 없습니다."그러자 황제가 비웃었다."그렇다면 내년 것을 깎겠다."위명은 입을 다물었다. 이쯤 되면 녹봉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일하기 위해 자신이 녹봉을 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참으로 기구한 팔자였다.황제가 다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영지를 찾게 된다면, 이번에는 의사 따위 묻지 않고 바로 입궁시킬 것이다."예전에는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어린 아가씨를 핍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제는 봐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멋대로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혀 놓고, 자신은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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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눈 깜빡할 사이에 며칠이 흘렀다.황제는 더 이상 금영을 부르지 않았고, 금영도 굳이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늘 전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듯이, 때로는 낚시줄을 느슨하게 풀 줄도 알아야 대어를 잡을 수 있는 법이었다.금영에겐 황제는 반드시 낚아올려야 하는 대어였다. 처음부터 정을 바라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가 가져다줄 이익뿐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며칠 더 흘러갔고, 어느덧 태후의 생신 연회 날이 되었다.태후는 황제의 친모였다. 그만큼 그녀를 향한 황제의 효심도 대단했다.그리고 서 황후가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황제가 아직 태자였던 시절, 태자비를 정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바로 태후였다. 서 황후는 태후의 친정 조카였다.그렇게 황제가 즉위하게 되자, 서 황후의 입지도 더욱 단단해졌다.연회에 들어가기 전, 금영이 공난심을 찾아갔다."제가 부탁한 물건, 구해 오셨어요?"금영이 공난심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러자 공난심이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건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것이냐?"금영이 입을 열었다."제가 공 상궁의 일을 캐묻지 않았듯이, 공 상궁께서도 제 일을 알려고 하지 마시고 부탁한 일만 들어주시면 됩니다."선 귀비가 몸에 씌인 듯이 행동한 날 후로, 금영은 공난심의 약점을 하나 움켜쥐게 되었다. 그러니 겉으로만 거래로 보일 뿐, 사실상 공난심에겐 금영의 말을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공난심은 방 안 은밀한 곳에 숨겨진 칸을 열어 꾸러미를 꺼내 금영에게 건네주었다. 그 안에 있는 미향이야 뭔지 잘 알았지만, 그 외의 약초는 무슨 용도인지 짐작되지 않았다.금영이 꾸러미를 받고는 조용히 말했다."고마워요."금영은 공난심이 자신을 배신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일이 밖에 새어나가는 순간, 금영은 물론 공난심 또한 무사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궁 안에 부나 이익을 쫓아 들어오는 사람도 많았지만,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인 사람도 흔했다. 하지만 공난심처럼 목숨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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