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411 - Chapter 420

508 Chapters

제411화

옆에 있던 영안후가 입을 열었다.“폐하, 다실로 자리를 옮겨 말씀을 나누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그러자 황제가 무심히 답했다."피곤하니, 그대들은 이만 물러가 보게."모두가 예를 갖추고 물러나려던 찰나였다. 황제가 금영을 응시하며 무심히 한마디를 던졌다.“너는 남거라.”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금영에게 쏠렸다. 당혹스럽고 뜻밖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금영의 심장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 거세게 뛰었다.‘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 설마 우리의 관계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려는 건 아니겠지?’금영의 불안한 낯빛을 읽은 황제는 더 놀려 댈 마음이 사라졌고, 평온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선대 영안후가 남긴 병서 고본이 몇 권 있다고 들었다.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금영이 얼른 대답했다.“알고 있습니다.”“그럼 가져오너라.”황제가 담담히 명했다. 그제야 상황을 납득한 영안후는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다른 사람들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황제의 태도를 보고 이 상황을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이때, 옆에 있던 손복안이 거들었다."자, 여러분. 이만들 물러가시지요."안성당에는 안 그래도 시종이 몇 없었는데, 손복안이 남은 이들마저 모두 물리게 되자 금영과 해수, 황제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곧이어 해수조차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물러났다.금영은 황제의 분부대로 병서를 가져오려 밖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황제를 스쳐 지나가려는 찰나, 불쑥 뻗어 나온 손이 금영의 손목을 가볍게 낚아챘다.걸음을 멈춘 금영이 의아한 눈빛으로 황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폐하?”“또 짐을 피하려고?”어조는 평온했으나,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제왕의 위압감에 금영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신녀가 언제 폐하를 피하려 했습니까..."“그럼 왜 나가려고 한 것이냐?”그러자 금영이 조심스레 상기시켰다.“방금 폐하께서 신녀에게 병서 고본을 가져오라 명하지 않으셨습니까?”그 말에 황제가 실소를 터뜨렸다."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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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어느덧 거리가 너무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금영은 얼굴이 뜨겁다 못해 그대로 익어 버릴 것만 같았다.“폐하, 이만 신녀를 놓아 주시겠습니까? 차라도 내오겠습니다.”금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제야 황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놓아 주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듯 제 손끝을 가볍게 매만졌다. 그곳에는 아직 금영의 온기가 머물러 있었다.금영은 조금 전 맹운산과 유진설이 쓰던 찻잔을 치우고, 새로 차를 우려 황제에게 바쳤다.“폐하, 차를 내왔습니다.”금영의 태도는 흠잡을 데 없이 공손했지만, 황제는 그것이 못마땅한 듯 입을 열었다."짐과 단둘이 있을 때는 굳이 이렇게까지 예를 차릴 것 없다. 편히 있거라."하지만 금영은 여전히 얌전하게 대답했다.“네.”말은 저리 하셔도, 그녀가 정말 방자하게 군다면 황제가 과연 자신을 계속 어여삐 여길까 싶었다.황제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작게 혀를 찼다. 전에는 장점으로 여겨졌던 모습이었으나, 지금은 금영이 지나치게 엄격한 법도 아래 길러진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세상에 날 때부터 이토록 조심스러운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단 한 번이라도 금영이 생기 있고 활발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요 이틀, 별일은 없었느냐? 잘 지냈고?"황제의 질문에 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황제가 과장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잘 지냈다니, 참으로 무정하구나. 짐은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더냐?"금영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황제가 이내 말을 이었다."되었다. 짐은 그저 요 이틀간 널 번거롭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금영은 고개를 저었다.“없었습니다. 폐하의 성은 덕분에 신녀는 평안히 지냈습니다.”실제로 금영은 꽤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영안후부에서 그녀를 쫓아내듯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뒤를 받치고 있는 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 해도 당장 그에게 자신의 구체적인 상황을 고자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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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배명월과 함께 예를 올린 뒤, 태자가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부황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명월이 소자에게 부황을 뵙게 해달라 간곡히 청하기에 함께 들었사옵니다.”황제는 태자에게는 아직 어느 정도 인내심을 발휘했으나, 배명월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싸늘하게 물었다.“무슨 일로 왔느냐?”준비해 둔 말이 있었던 배명월이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폐하께서 신녀에게 교습상궁들과 귀한 물건들을 하사하신 것은 물론, 신녀가 좋아하는 금귤까지 챙겨주신 그 은혜에 감사 인사를 올리고자 찾아왔사옵니다.”그러자 황제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툭 던졌다.“짐은 네가 무엇을 즐겨 먹는지 모른다.”순간 배명월의 얼굴빛이 어둡게 가라앉았지만, 곧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폐하께서 제 조부님을 그리워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신녀는 복이 박해 조부님을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하여 폐하께 조부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여쭙고 싶었습니다.”배명월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호기심을 눈망울에 담았다. 윗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가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금영은 황제의 뒤편에 서서 말없이 눈썹을 내리깔았다.배명월이 갑자기 안성당까지 찾아와 만남을 청한 의도는 자명했다. 황제의 환심을 사서 태자가 금영을 측비로 들이는 일을 원천 차단하려는 속셈일 터였다. 아울러 선대 영안후의 진짜 친손녀가 누구인지 황제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돌아온 황제의 반응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네가 진정 선대 영안후의 손녀라면, 직접 뵐 기회가 없었더라도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설령 들을 기회가 없었다면 네 언니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짐에게까지 온 것을 보니, 평소 네가 조부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만하구나.”거기까지 말을 마친 황제는 불쾌함이 역력한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태자, 너는 고작 이런 일로 짐을 찾아온 것이냐?”예상치 못한 황제의 질책에 태자는 당황하며 어찌할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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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황제이시니, 신녀의 처소에 이리 오래 머무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금영의 입에서 기대하던 답이 돌아오지 않자, 황제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여전히 무정하구나."*다시 사흘이 지난 밤이었다. 평범한 외형의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영안후부 밖에 멈춰 섰다. 금영은 해수의 도움을 받아 은밀히 거처를 빠져나와 마차에 올랐다.황제는 이미 한참 전부터 안에서 금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그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금영은 황제와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두어 자리를 잡았다.순간 황제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금영은 단 한 번도 먼저 서슴없이 다가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머금으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짐이 특별히 네 기분을 풀어주려 왔으니,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 말해 보거라."함께하는 시간이 쌓여야 금영도 자신에게 조금 더 의지하게 될 터였다. 황제는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 또한 평범한 사내처럼 그녀를 위로하고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아닙니다. 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이윽고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작거리보다 더 화려하고 번화한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려던 찰나, 손복안이 세심하게 가면 두 개를 내밀었다. 거리 어디에서나 흔히 볼 법한 평범한 물건이었다.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진 만큼 거리는 이미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화려한 복장을 한 이들 사이로 가면을 쓴 사람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금영은 황제의 얼굴에 씌워진 익살스러운 악귀 가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뻔했다."폐...""나를 임연이라 부르거라."황제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금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임... 임연."오랫동안 누구도 부르지 않았던 이름이 금영의 입술을 타고 흐르자, 황제의 눈매가 만족스럽게 휘어졌다.거리는 인파로 매우 붐볐다. 사람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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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이번 행차는 군무와 관련된 일이라 손복안은 동행할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손복안이라도 궁에 남아 있다면, 금영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터였으니까.*눈 깜짝할 사이에 또 사흘이 지났고, 어느덧 정월 대보름이 되었다. 금영은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며칠간 황제가 직접 오지는 못해도 사람을 보내 늘 서신을 전해준 덕분에 소식은 끊이지 않았지만, 더 이상 궁에서 하사품이 내려오지도 황제의 얼굴을 직접 보지도 못했다.그제야 금영은 자신이 은근히 황제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손수 수놓은 향낭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넋을 놓았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자, 황제의 탄신일이기도 했다. 그가 오늘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조한 만큼, 분명 얼굴을 볼 수 있을 터였다.그런데 이때, 해수가 밖에서 호들갑스럽게 뛰어들어왔다."아가씨! 아가씨! 큰일 났습니다!"금영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냐?"해수가 숨을 몰아쉬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청혼... 청혼하러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금영은 뜻밖의 소식에 당황했다."정월 대보름이 지난 뒤에 다시 의논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벌써 왔단 말이냐?"벌써 청혼이 쏟아지다니, 아예 의논조차 거치지 않고 자신을 시집보내려는 심산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본래 명문가의 여식이 혼인할 때는 먼저 중매인을 통해 의사를 타진한 뒤에야 정식으로 청혼식을 올리는 법이었다.금영은 그 직전에 황제가 이 일을 알게끔 손을 쓸 작정이었다. 그런데 곧바로 청혼부터 들어오다니, 계획이 크게 어긋나고 말았다. 그만큼 송정희의 마음도 조급해진 듯했다.해수가 울상이 되어 덧붙였다."아가씨, 직접 가 보시면 아실 겁니다. 앞청이 아주 난장판입니다!""난장판이라니?"금영이 자세히 묻기도 전, 영안후가 사람을 보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곧장 따라나섰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청에 이르기도 전부터 시끌벅적한 고함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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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송정희의 날 선 꾸짖음이 날아왔다.“배금영! 감히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여?”청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송정희는 이 난장판이 맹운산과 유진설이 제 감정에 취해 벌인 철없는 짓이라고 확신했다.곁에 있던 배명월 역시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언니, 설마 이런 소동을 피우면 남양으로 시집가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죠?”처음 혼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 금영이 왜 그리 담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뒤에서 몰래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파둔 모양이었다.“맹 소장군이야 어릴 적 정 때문이라 쳐도, 유진설 아가씨 마음까지 어떻게 얻었는지는 참 의문이네요. 하지만 언니, 혼약은 양쪽 가문의 약속뿐만 아니라, 예법에 맞는 중매인도 있어야 성립되는 법이에요. 고작 이런 소란으로 정해진 혼사를 뒤집을 순 없어요.”참다못한 유진설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배명월을 매섭게 쏘아붙였다.“네가 뭔데 참견이야!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입 다물고 있어!”영안후 역시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상대 가문들의 체면을 생각해 최대한 예를 차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명월이 말대로 혼사는 양가 어른들의 승낙과 중매인의 중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자네들이 금영과 각별한 사이인 건 알겠으나, 이런 행동은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그러더니 금영을 차갑게 바라보며 덧붙였다."어서 두 사람을 말리지 않고 뭐 하느냐? 혼사는 이리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때, 맹운산이 한 걸음 나서며 단호하게 말을 가로챘다."저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전 이미 부모님께 모든 결정권을 위임받았으며, 진심으로 금영에게 청혼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옆에 있던 유진설도 한마디 거들었다."어머니께서도 제 동생의 혼사는 제가 결정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제멋대로라지만, 집안 어른의 허락도 없이 이런 일을 벌였겠습니까?"사실 가문의 어른들이 직접 나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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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그 사이, 송염과 그의 일행이 대청으로 들어섰다.금영은 송정희가 자신을 위해 제대로 된 혼처를 마련했을 리 없다는 것쯤은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하나 실제로 마주한 몰골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관이었다. 송염은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는 물론이요, 몸가짐에서도 명문가 자제다운 품위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진한 분내와 함께 여인의 향기가 역하게 풍겼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의 얼굴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낙인이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여인의 입술 자국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방금까지 화류가에서 방탕하게 노닐다 온 기색이 역력했다.안 그래도 끓어오르던 맹운산의 분노가 송염의 꼴을 보자 결국 폭발했다.“이런 자에게 금영을 시집보내려 하다니, 정말 너무들 하시는 것 아닙니까!”유진설 역시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송염은 그제야 제 얼굴에 묻은 입술 자국을 뒤늦게 문질러 지우더니, 금영과 배명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배명월은 혐오감을 숨기지 않은 채 경계하며 금영을 가리켰다.“배금영은 이쪽입니다!”송염은 금영을 마주한 순간 잠시 멈칫하더니, 어설프게 예를 올렸다.“송염, 금영 아가씨를 뵙습니다.”대청 안을 가득 메운 시선에 금영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영안후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송염과 혼사가 정해지긴 했으나, 명망 높은 가문의 자제들이 둘이나 금영에게 청혼해 오자 망설여졌다.그때 송정희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두 사람은 이만 돌아가게.”하지만 유진설은 물러서지 않고 금영을 똑바로 응시했다.“부인, 혼사에 부모의 의견과 중매가 중요하다지만 당사자의 마음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설령 거절을 당하더라도, 금영이 직접 말하지 않는 한 물러설 수 없습니다.”금영은 유진설과 맹운산을 번갈아 보며 차분히 입을 뗐다.“저를 도우려 하시는 그 마음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이 청혼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그러자 참다못한 맹운산이 외치듯 말을 가로챘다.“금영아,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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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정월 대보름, 상원절.해질 무렵, 예고 없이 봄눈이 내렸다.일행은 눈보라를 맞으며 말을 몰았고, 마침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궁문 앞까지 이를 수 있었다.그리고 황제는 현청전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요화전으로 향했다.벌써 사흘이나 금영을 보지 못해 마음이 조급해진 탓이었다.*황제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하자, 순간 연회장에 정적이 흘렀으나, 이내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황제는 조용히 사람들을 쭉 훑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고 싶었던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금영은 입궁하지 않은 건가?'하지만 곧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상석에 앉았다.그러자 서 황후가 기다렸다는 듯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말을 건넸다.“상원절에 폐하의 생신까지 함께 맞이하게 되다니, 이보다 더 경사스러운 날이 또 있겠습니까? 폐하, 부디 만수무강하시고 늘 평안하소서.”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술잔을 받아 마셨다.그러자 서 황후가 말을 이었다."사실 눈 때문에 일정이 하루 미뤄졌다고 해서, 많이 걱정하고 있었는데...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에 돌아오셔서 참 다행입니다."어느새 서 황후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벌써 몇 해째 황제의 생일은 그녀의 주관이었다.이때, 태자가 배명월을 데리고 황제에게 나아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서 황후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신첩이 이미 흠천감에 명하여 태자와 명월의 혼기를 다시 잡게 했습니다. 금영이 출가한 뒤, 두 사람의 혼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황제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는 서 황후를 바라보며 물었다.“금영이? 출가?”서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는 아직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지금 영안후부에서 금영의 혼사를 의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 듯합니다. 오늘 금영의 사촌 오라비와 혼사가 오가던 중에, 장평군주부와 맹장군부 쪽에서도 영안후부로 청혼을 넣은 모양입니다. 심지어 한바탕 다툰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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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현청전에 이르자, 문 앞을 지키던 손복안이 보였다. 그는 안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황제를 맞이했다.“오셨습니까, 폐하? 소인이 아뢸 것이...”그러나 기분이 극도로 나빴던 황제는 현청전 문을 열고 들어가며 차갑게 말을 잘랐다.“듣고 싶지 않으니, 물러가거라.”손복안은 당혹감에 멈칫하며 한쪽에 서 있던 위명에게 속삭였다.“설마 또 폐하의 심기를 거스른 건 아니겠죠?”위명이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제가 아니라 손 태감께서 무언가 잘못한 거 아닙니까?"그러자 손복안은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로 전각 안을 바라보며 반박했다.“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현청전에 들어선 황제는 곧바로 겉옷을 벗어 던지고 내전으로 향했다. 연거푸 술을 들이켰기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막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그가 서늘하게 호통쳤다.“누구냐!”방 한쪽에서 사람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술기운 탓에 시야가 흐릿했지만, 그림자로 상대가 여인이라는 것쯤은 알아볼 수 있었다. 황제의 표정이 단번에 험악하게 굳어졌다. 그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차갑게 내뱉었다.“당장 나가거라!”그는 허락 없이 내전을 침범하는 행위를 가장 혐오했다. 일전에 이와 같은 일로 침소를 범한 궁녀에게 곤장 여든 대를 내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자, 그는 책임자인 손복안에게도 중형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그때, 상대가 짧게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황제는 그 느릿한 움직임에 다시 신경이 긁혔고 크게 꾸짖었다.“무얼 꾸물거리는 것이냐! 어서 나가지 않고!”그제야 인영이 고개를 들며 억울함이 서린 목소리로 답했다.“네, 폐하. 얼른 물러가겠습니다.”익숙한 목소리에 황제는 그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설마... 금영이냐?”하지만 금영은 이미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린 뒤였다. 다급해진 황제가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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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금영은 손으로 침상을 짚으며 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황제와 거리를 좁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너는 아직 짐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시집가고 싶으냐?"그가 가늘게 눈을 뜬 채 물었다. 전에 선택할 권리를 주긴 했지만, 다른 사내를 골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술기운에 평소의 냉정함을 잃은 황제는 자신의 소유욕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어서 대답하거라.”황제가 다시 한 번 금영을 다그쳤다. 조금만 더 그를 자극하면 오늘이야말로 선을 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셋 중 누군가를 고른다면, 폐하께서 사혼 교지라도 내려주실 생각입니까?”그 순간 황제의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고, 목소리에는 전보다 더 짙은 노기가 실렸다.“배금영!”그는 평소대로 그녀를 이름이나 아명이 아닌 성까지 붙여 불렀다. 진심으로 분노한 듯했다.하지만 금영은 순진한 얼굴을 고수한 채 답했다.“신녀, 여기 있습니다.”매혹적인 붉은 옷에, 발그래진 뺨, 거기에 물기 어린 눈동자까지, 오늘 금영의 모습은 여느 때보다도 매혹적이었다.안 그래도 황제는 연회장에서 나온 순간부터 머릿속엔 온통 금영뿐는데 이렇게 불까지 붙이자, 점점 자제심이 바닥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당장 현청전에서 나가거라.”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제는 조금도 침상 곁에서 비켜서지 않았다.일단 명령이 떨어졌으니, 금영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침상에서 내려오려던 찰나, 다리에 힘이 풀렸고 중심을 잡기 위해 다급히 손을 뻗은 곳은 다름 아닌 황제의 몸이었다.그녀의 손길이 닿는 순간, 황제가 애써 붙들고 있던 이성은 완전히 바닥났다. 금영의 발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황제가 그녀를 다시 품으로 낚아챘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금영은 황제와 침상 사이에 완벽히 갇히고 말았다.곧이어 황제가 몸을 숙였고, 뜨거운 숨결이 금영을 빈틈없이 감쌌다. 처음엔 어떻게 대응해야 그를 더 홀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금영이었으나, 그의 입술이 닿는 순간 모든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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