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계단에 주저앉아 있던 여인에게 비스듬히 다가가더니,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어이쿠, 이리 고운 아가씨가 어쩌다 이런 곳에서 혼자 울고 계시오?"“무, 무슨 짓입니까!”여인이 놀라 외치며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사내의 완력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갑작스러운 소란에 고개를 돌린 금영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좀 전 허명숙 곁에 서 있던 송연화였다. 그녀가 미처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유진설이 불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금영 역시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비록 송연화나 허명숙에게 티끌만큼의 호감도 없었으나, 후부 안에서 외간 사내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당장 그 손 놓으십시오!”금영이 먼저 서슬 퍼런 목소리로 가로막았다. 유진설이 직접 나서서 구설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어라? 누군가 했더니 이 집 장녀 아니시오?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시오.”사내는 금영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금영은 그제야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선무후의 아들, 사준헌이었다. 평소 서왕 세자와 어울려 다니던 질 나쁜 무리 중 하나였으니, 그 됨됨이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데 태자에게 다리가 부러진 뒤 자취를 감춘 서왕 세자와 달리, 그 수하들은 여전히 활개 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금영은 송연화를 살폈다. 그녀는 배명월이 깨뜨린 옥팔찌를 손에 꼭 쥔 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이쪽으로 오거라.”금영의 부름에도 사준헌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금영을 조롱했다.“괜히 정의로운 척 끼어드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시오. 당신은 이제 미래의 태자비가 아니지 않소? 아, 정 갈 곳이 없다면 내 특별히 아버지께 청해볼 테니, 내 측실로 들어오는 건 어떻소?”사준헌의 눈이 금영을 아래위로 훑으며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냈다.그 파렴치한 발언에 정작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것은 유진설이었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다리를 휘두르려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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