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401 - Chapter 410

508 Chapters

제401화

“너는 우리 영안후부 전체를 큰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송정희가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금영은 그런 송정희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도대체 송정희와 배명월의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금영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제게 죄를 묻지 않으신 것은 그분이 너그러우신 덕입니다. 배명월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면... 부인께서는 폐하께서 너그럽지 않은 분이라 여기시는 겁니까? 그리고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그놈의 황후가 될 운명 말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춘추가 한창이신데 입만 열면 예언 타령이니, 설마 폐하께서 하루빨리 붕어하시기라도 바라는 겁니까?”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내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러니 두 사람 모두 앞으로는 언행을 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게다가 지금 이 집에는 궁에서 나온 교습상궁들이 머물고 있지 않습니까? 혹여 이런 불경한 얘기가 한마디라도 궁에 흘러들어간다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은...”금영은 짐짓 말을 흐리며 송정희를 응시했다.“어차피 부인께서는 저를 남양으로 시집보내려 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안후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일 테지만, 명월이에게는 꽤 큰 치명타가 될 것입니다.”금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정희의 등줄기로 서늘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배명월은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금영을 향해 쏘아붙였다.“지금 누굴 겁주는 거야? 너 혼자만 똑똑하고 남들은 다 멍청한 줄 알아!”금영은 배명월을 흘끗 쳐다보았다.“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하지만 네가 스스로 그리 생각한다면야...”배명월이 이를 빠득 악물었다.“배금영! 감히 미래의 태자비인 내게 이따위로 말해?”마침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교습상궁들이 다가왔다.앞장서 걸어오던 공난심이 싸늘한 목소리로 꾸짖었다.“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손을 내밀거라!”“왜, 왜 이러세요?”배명월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공난심을 바라보았다.공난심이 얼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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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배명월은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지 눈빛에 억울함이 가득했다.그러자 공난심이 배명월을 흘끗 보았다.“왜 그러는 것이냐? 내 회초리가 부당하게 느껴지느냐?”배명월은 이를 악물고 금영을 바라보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상궁께서 벌하신 것은 당연히 옳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저만 벌하시고 언니는 벌하지 않으십니까?”배명월이 차갑게 웃으며 쏘아붙였다.“방금 언성을 높인 건 저 하나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언니의 목소리도 저 못지않게 컸습니다. 상궁께서 언니도 같이 벌해 주셔야 제가 진심으로 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리고는 당장이라도 금영의 몸을 꿰뚫어 버릴 듯 흉흉한 기세로 노려보았다.금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 혼자 매를 맞은 것이 분하여 금영까지 진흙탕으로 끌어내리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금영이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농이 과하구나. 지금 미래의 태자비로 내정된 것은 너이고, 상궁도 궁에서 너를 가르치라고 보낸 분이 아니냐?”금영은 짐짓 여유로운 어조로 뼈 있는 말을 던졌다."부인께선 날 남양으로 시집보내려고 하시는데, 태자부에 발을 들일 일도 없을 내게 상궁께서 무슨 가르침을 내리시겠느냐?"공난심은 그 말을 듣자 단호한 얼굴로 거들었다."큰 아가씨의 말대로 나와 여기 있는 상궁들은 모두 폐하와 황후마마의 뜻을 받들어 온 것이니, 너만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다."금영의 입가에 어린 웃음이 한층 짙어졌다."너에게 내려진 황실의 그 큰 은혜를 내가 감히 가로챌 수는 없지 않겠느냐? 실컷 누리거라."공난심이 일말의 동요도 없는 얼굴로 배명월을 향해 고했다.“일각 뒤, 계당에서 계속해서 의규 수업을 하겠다.”공난심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애초에 금영을 벌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금영은 멀어지는 공난심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남은 사람들에게도 가벼운 목례를 남기고는 우아하게 몸을 돌렸다.황제가 사람을 보내 배명월을 훈계하게 한 것은 맞겠지만, 공난심에게 대놓고 배명월을 핍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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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배명월이 이를 빠득 갈며 으름장을 놓았다.“감히... 상궁께 고자질할 생각은 아니겠지?”금영이 가볍게 비웃었다.“하면, 어쩔 것이냐?”분을 참지 못한 배명월이 송정희를 보며 억울한 듯 울먹였다.“어머니! 배금영이 또 저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송정희가 얼굴을 굳히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책망했다.“금영아, 나는 네가 십여 년 길러준 은혜를 알기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네 동생이 밖에서 떠돌며 힘들게 산 것을 가엾게 여겨, 몇 걸음만 더 양보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 아이가 밖에서 얼마나 몹쓸 고생을 했겠느냐...”하지만 송정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영이 차갑게 말을 잘랐다.“그렇지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겠지요. 허나 명월이는 제가 낳은 자식도, 제가 잃어버린 동생도 아닙니다. 그 아이의 고생이 저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부인께서 정 마음에 빚이 있다 여기신다면, 지금이라도 재계하고 불공을 드리며 아이를 위해 기도하시지요. 아니면 조상 사당에 무릎 꿇고 죄를 비셔도 좋고요.”정곡을 찔린 송정희는 말문이 막혀 부들부들 떨었다.“너, 너…!”영안후를 비롯한 후부 사람들은 늘 금영이 명월의 복을 가로채 누렸다며, 그녀가 명월에게 크나큰 빚을 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금영이 아니었다. 배명월이 겪은 풍파 역시 금영이 자초한 일이 아니었다.“게다가 아버지께서 애초에 저를 적녀로 들이신 것이, 오직 잃어버린 딸을 향한 대부인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까? 더 큰 이유는... 흠천감이 영안후부에서 황후의 운명을 타고난 적녀가 나올 것이라 예언했기에, 그 예언을 끼워 맞출 딸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 아닙니까?”금영이 비수 같은 말을 던졌다. 단순히 핏덩이를 잃은 슬픔 탓에 자신을 거뒀을 리 없었다. 영안후가 얼마나 뼛속까지 계산적인 인간인지 금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은 영안후의 체면을 단숨에 진흙탕에 처박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노로 영안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배금영! 감히 웃어른 앞에서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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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상당히 멀리 걸어 나왔음에도, 영안후의 매서운 꾸중 소리는 끊이지 않고 메아리쳤다.금영의 입가에 옅은 비웃음이 번졌다.'그토록 바라던 자리니, 어디 한번 직접 겪어 보라지.'사람들은 모두 금영이 태자비로 정해진 뒤 얻은 화려함과 총애만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뒤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견뎌야 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송정희는 금영이 제 친딸의 운명을 훔쳐 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제 금영은 그 모든 것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배명월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참이었다.*명절이 지난 뒤 이레 동안은 조회가 열리지 않았다.그럼에도 황제는 여전히 바빴다. 신하들이 올린 상소를 평소처럼 처리해야 했고, 조상과 하늘에 드리는 제사도 빠짐없이 규례대로 치러야 했다. 그래서 온종일 금영을 찾을 짬을 낼 수 없었지만, 대신 저녁 무렵 위명을 시켜 영안후부에 은밀히 다녀오게 했다.영안후부 뒷문.위명은 찬합 하나를 해수에게 건넸다.해수는 주변을 살피고 사방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레 물건을 받았다.“위 총령, 감사드립니다.”해수가 고개를 숙였다.위명이 무심한 얼굴로 답했다.“저에게 감사할 거 없습니다. 저는 그저 폐하의 명을 받들어 움직일 뿐입니다.”말을 마친 위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해수는 묵직한 찬합을 품에 단단히 안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볼세라 찬합을 옷자락에 감추며 걷는 꼴이, 영락없이 한밤중에 몰래 정인과 물건을 주고받은 사람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찬합은 금영의 탁자 위에 놓였다. 금영이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그 안에는 궁에서 직접 만든 듯한 다과 몇 가지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모두 지난날 그녀가 현청전에 머물 때 즐겨 먹던 것들이었다.금영은 황제가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이때, 찬합 맨 아래 칸이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안에는 금박을 뿌린 종이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금영은 무심한 얼굴로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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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금영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배명월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역시 교습상궁들의 가르침은 다르군. 너도 이제 제법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 아주 단정하고 현숙해 보여.”배명월의 얼굴이 푸르게 질려갔다. 어제부터 쏟아진 회초리 세례에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공난심의 매질은 지독하리만큼 노련해 살점이 터져 나갈 듯 아픈데도 몸에는 멍 자국 하나 남지 않았고, 어디 가서 억울함을 호소할 길조차 없었다.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숨을 삼키며 금영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속으로는 독기 어린 다짐을 되새겼다.'며칠만, 딱 며칠만 참자. 천한 계집의 소생 주제에... 남양으로 시집만 가봐라, 평생 도성 땅은 밟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앞청에 이르렀다. 아직 손님들이 도착하기 전인지, 청 안에는 인상이 각박해 보이는 중년 여인과 그 곁에 선 미모의 소녀 뿐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예를 올리기도 전, 중년 여인의 시선이 배명월에게 꽂혔다. 위아래를 훑는 눈빛에는 노골적인 멸시가 서려 있었다.“겉보기에는 법도를 아는 것 같긴 한데, 눈동자를 굴리는 꼴이 영 정신 사납구나. 하긴 서출 출신이니 어쩌겠어? 그래도 염이와의 혼례는 넷째가 간곡히 부탁하는 체면을 봐서라도 일단 허락하마.”중년 여인은 무어라 혼자 중얼거리더니, 다짜고짜 배명월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낚아채듯 잡아 올렸다. 그러더니 광택조차 다 죽은 투박한 옥팔찌 하나를 명월의 손바닥에 억지로 쥐어주었다."이것은 정혼의 증표다!”그제야 금영은 중년 여인의 신분을 짐작했다.송정희가 말한 먼 친척 집안의 어른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하는 투로 보아, 배명월을 자신으로 착각한 듯했다.금영은 예상치 못한 재미난 구경거리에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았다.배명월은 그제야 중년 여성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힘껏 옥팔찌를 내던졌다.곧이어 쨍그랑 소리와 함께 옥팔찌가 바닥에 부딪히며 두 동강 났다.그러자 중년 여인이 얼굴을 굳히며 쏘아붙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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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송정희가 서늘한 안색으로 금영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무엇 하느냐? 어서 외숙모께 인사드리지 않고."평소의 금영이었다면 허명숙에게 예를 올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방금 전 상황이 꽤 통쾌했던 터라, 이번만큼은 순순히 송정희의 말을 따랐다.반면, 배명월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그녀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송정희 앞으로 걸어 나갔다."아무리 언니를 시집보내는 일이 급하다지만, 아무나 후부 안으로 들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어 비꼬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덧붙였다."이토록 눈치 없는 사람을 들였다가, 귀한 손님들이 불쾌해하기라도 하면 어찌하시려고요?"그 말에 허명숙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은 미안하다마는, 말이 너무 지나치구나. 아무리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지 않겠느냐?"허명숙은 미소 뒤에 칼을 숨긴 송정희나 서 황후에 비하면 차라리 투명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적들에게 단련된 금영에게, 이렇듯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대는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그만하거라, 명월아. 이분은 네 외숙모이자 장차 네 언니의 시어머니가 되실 분이다. 언니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송정희가 부드럽지만 엄하게 타일렀다.그러자 방금 전까지 허명숙의 무례함에 치를 떨던 배명월의 눈동자에 이질적인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자신이 모시게 될 시어머니는 제국의 정점에 선 서 황후였다. 자애로운 미소 뒤에 막강한 권세를 품은, 그야말로 고귀함의 결정체와도 같은 존재였다. 반면, 제 눈앞에서 채신머리없이 굴고 있는 허명숙은 한눈에 보아도 성정이 드세고 각박해 보였다.비교조차 아까운 시댁의 격차를 확인하자, 명월의 입가에는 마침내 서늘한 만족감이 어렸다.금영이 시집간 뒤 겪게 될 고된 시집살이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배명월은 금영이 자신보다 못한 곳으로 시집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혼인 후에도 매일같이 시달리며 괴로워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허명숙은 바닥에 떨어진 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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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유진설이 어떻게 생각하든, 금영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이미 벗이었다. 결국 금영은 유진설 때문에 안성당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인적 드문 곳으로 향했다.유진설은 눈앞의 금영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다짜고짜 손을 내밀었다.“배금영, 솔직히 말해 봐. 너 무슨 분을 쓰는 거야? 어떻게 내 얼굴보다 더 매끈해 보이지?”그러더니 느닷없이 금영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만져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분노에 찬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동시에 누군가 유진설의 손목을 낚아챘다.고개를 돌려보니 맹운산이었다. 그는 타고나길 피부가 하얗고 입술이 붉은데 옷차림도 밝으니 어디서나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내가... 뭐 어쨌는데?”유진설은 서슬 퍼런 맹운산의 기세에 잠시 움찔했다. 그러자 맹운산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봤다.“금영아, 저 여자가 널 때리려 하는데 왜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금영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빨리 그 손 놔. 진설 아가씨가 언제 날 때리려 했다고?”“금영아, 무서워할 거 없어. 태자 없어도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어. 그 누구도 감히 널 함부로 괴롭히게 두지 않을 거야!”맹운산이 차갑게 말하자 유진설이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지켜준다고? 그럴 능력 있으면 어디 계속 붙어 있어 봐! 아니면 내가 날마다 괴롭힐 거니까!”“감히!”“내가 못 할 것 같아?”유진설이 차갑게 웃으며 맞섰다.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금영이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맹운산, 일단 그 손 놔줘. 진설 아가씨는 날 때리려던 게 아니라, 내가 무슨 분을 썼는지 만지려 했던 것뿐이야.”금영이 분명히 말했으나 맹운산은 도무지 믿지 않았다.“이 여자가 시비 걸어온 게 어디 한두 번이야? 이번에도 분명 무언가 핑계를 대서 널 괴롭히려 한 게 분명해! 금영아, 괜히 나 걱정할까 봐 저 여자를 감쌀 필요 없어. 오늘은 나도 못 참아!”그 말에 유진설도 이성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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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사내는 계단에 주저앉아 있던 여인에게 비스듬히 다가가더니,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어이쿠, 이리 고운 아가씨가 어쩌다 이런 곳에서 혼자 울고 계시오?"“무, 무슨 짓입니까!”여인이 놀라 외치며 사내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사내의 완력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갑작스러운 소란에 고개를 돌린 금영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좀 전 허명숙 곁에 서 있던 송연화였다. 그녀가 미처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유진설이 불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금영 역시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비록 송연화나 허명숙에게 티끌만큼의 호감도 없었으나, 후부 안에서 외간 사내에게 희롱당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당장 그 손 놓으십시오!”금영이 먼저 서슬 퍼런 목소리로 가로막았다. 유진설이 직접 나서서 구설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어라? 누군가 했더니 이 집 장녀 아니시오?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시오.”사내는 금영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금영은 그제야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선무후의 아들, 사준헌이었다. 평소 서왕 세자와 어울려 다니던 질 나쁜 무리 중 하나였으니, 그 됨됨이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런데 태자에게 다리가 부러진 뒤 자취를 감춘 서왕 세자와 달리, 그 수하들은 여전히 활개 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금영은 송연화를 살폈다. 그녀는 배명월이 깨뜨린 옥팔찌를 손에 꼭 쥔 채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이쪽으로 오거라.”금영의 부름에도 사준헌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금영을 조롱했다.“괜히 정의로운 척 끼어드는 모양인데, 착각하지 마시오. 당신은 이제 미래의 태자비가 아니지 않소? 아, 정 갈 곳이 없다면 내 특별히 아버지께 청해볼 테니, 내 측실로 들어오는 건 어떻소?”사준헌의 눈이 금영을 아래위로 훑으며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냈다.그 파렴치한 발언에 정작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것은 유진설이었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다리를 휘두르려던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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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송연화는 눈물을 참으며 금영을 향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금영 언니, 정말 감사합니다.”금영은 송연화와 깊이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타일러 보냈다.“혼자 이런 곳에 있지 말고, 사람 많은 곳으로 다니거라. 다음에도 오늘처럼 운이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같은 시각, 연회 자리에 앉아 있던 배명월은 홍비가 귓가에 전하는 소식을 듣고 표정을 싸늘하게 굳혔다.“쓸데없는 참견들을 했군!”낮에 허명숙이 금영과 배명월을 혼동한 탓에 배명월은 상당한 망신을 당했다. 그래서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손을 써 두었건만, 금영이 또 나타나 일을 망쳐 놓은 것이다.*맹운산은 며칠간 금영을 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도 맺힌 듯, 한시라도 떨어지기 아쉽다는 기색으로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그 탓에 금영은 끊임없이 투닥거리는 유진설과 맹운산을 대동한 채 후부 안을 한 바퀴 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연회장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마침 옷을 갈아입으려 나오던 배명월과 마주치고 말았다.배명월은 맹운산과 유진설을 향해 예법을 갖추어 인사했다.“유진설 아가씨와 맹 소장군을 뵙습니다.”맹운산은 배명월을 흘끗 보더니 차갑게 대꾸했다.“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굳이 저한테 그렇게 예 차릴 필요 없습니다.”배명월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비죽이 입을 열었다.“맹 소장군께서는 저희 언니를 참 살뜰히도 챙기시네요. 그런데... 언니가 곧 시집간다는 건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거리를 두시는 편이 좋을 듯하네요.”그 말을 들은 맹운산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아, 네가... 시집을 간다고? 누구한테?”“이런, 모르셨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언니를 위해 송연화를 도운 건가요? 그렇다면 언니가 시집갈 상대가 바로 송연화의 오라비라는 것도 몰랐겠네요.”배명월이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지길 바랐고, 금영이 곧 혼인한다는 사실을 알면 맹운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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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유진설이 입을 열었다.“연회장은 너무 소란스러워. 좀 조용한 곳 없어? 우리 같이 차나 마시자.”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저를 따라 안성당으로 가시죠.”안성당은 선대 영안후가 생전에 머물던 처소였던 만큼 장소가 넓었고, 다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맹운산도 그 말을 듣고 한마디 거들었다.“선대 영안후께서 돌아가신 뒤로 안성당에는 꽤 오래 못 가봤는데, 나도 같이 가도 돼?”그날 맹운산의 고백을 거절한 뒤로 금영은 그와 마주할 때마다 어딘지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 맹운산이 그녀를 도와준 것은 물론, 평소와 다름없이 담백한 태도를 보여주자 더는 지난 일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금영은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고, 이제 와서 그 일 때문에 오랜 인연을 가차 없이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결론을 내린 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발길을 돌려 안성당 다실에서 차를 나누게 되었다.금영이 맹운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맹운산, 오늘 도와준 건 고맙지만 앞으로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진 마. 사준헌은 질이 좋지 않아. 이 일로 분명 언젠가는 너에게 복수하려 들 거야.”그러자 맹운산이 코웃음을 쳤다.“내가 그놈을 무서워할 것 같아? 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앞으로 그 누구도 널 괴롭히지 못해!”그의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다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 복도를 지나던 황제의 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목소리가 새어 나온 다실 위로 차갑게 내려앉았다.곁을 따르던 영안후가 어색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곳에는 금영이 머물고 있습니다.”황제에게 선대 영안후와의 추억은 연회장을 빠져나올 완벽한 명분이 되었다.영안후가 그곳에 금영이 머물고 있음을 알리며 조심스레 만류했음에도, 황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영안후는 황제의 이러한 행동을 그저 선대 영안후를 향한 지극한 그리움 때문이라 믿었다. 워낙 각별한 사이였던 데다 이미 몇 차례 방문한 전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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