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421 - Chapter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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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1화

현청전에 감돌던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흩어지고, 밤은 깊어만 갔다. 이때, 붉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 하나가 현청전 입구로 다가왔다.손복안은 생각할 것도 없이 앞을 막아섰다.“누구냐!”여인이 공손히 예를 올리며 답했다.“서봉전에서 시중드는 궁녀입니다. 황후마마의 명을 받들어 폐하께 해장탕을 올리러 왔습니다.”손복안은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로 대꾸했다.“폐하께서는 이미 침소에 드셨다.”황제가 실제로 잠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청전 안에 금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금영은 오늘 손복안에게 미리 서신을 보내, 궁에서 황제를 기다리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었다.현청전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나, 금영은 예외였다. 그녀는 황제가 친히 하사한, 궁궐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옥패를 지닌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전 안에서 황제를 기다릴 수 있었다.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제법 미모가 뛰어났다. 황제가 아닌 다른 사내였다면 단번에 눈길을 빼앗겼을지도 모를 정도였다.여인이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간청했다.“태감, 한 번만 편의를 봐주실 수 없겠습니까? 황후마마께서 각별히 분부하신 일입니다...”손복안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나를 더는 곤란하게 만들지 말거라. 나는 그저 직분에 따라 폐하의 명을 받들 뿐이니, 이만 돌아가거라.”손복안이 가볍게 손을 휘저어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냈음에도 여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말을 보탰다.“하지만 이 해장탕은...”“해장탕은 나에게 맡기면 된다.”손복안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그는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결코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노련함을 보였다.결국 여인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서봉전.서 황후는 차갑게 가라앉은 안색으로 앉아 있었다. 타오르는 촛불이 그녀의 얼굴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황후마마,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쉬셔야 합니다.”환옥이 낮은 목소리로 권했으나, 황후의 눈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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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황제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금영은 그의 얼굴을 살피기 위해 살며시 몸을 뒤로 물렸다.그러나 그 기척에 황제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당황한 금영이 서둘러 눈을 감으며 바르게 누웠으나, 황제는 이미 그녀가 깼음을 눈치채고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금영아.”금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황제가 나직이 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계속 자는 척한다면, 짐이...”‘짐이 뭐? 대체 어쩌시려고.’덜컥 겁이 난 금영은 서둘러 눈을 떴다. 그러고는 침상 안쪽으로 몸을 구르듯 피하며 경계 어린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지금 너무 쉽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신선함이 떨어질 터였다. 황제가 언제까지 자신에게 흥미를 가져 줄지도 알 수 없었다. 어제 거사를 치렀다 해서 그가 마음을 완전히 굳혔으리라는 확신도 부족했다.그래서 차라리 황제가 자신에게 품은 죄책감을 이용해 마음을 흔들어 놓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쉽게 얻은 것일수록 쉽게 질리는 법이니, 남녀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수였다.물론 금영이 처음부터 이런 심계를 부릴 줄 알았던 것은 아니다. 태자비로 내정되었을 당시 영안후부에서 받았던 혹독한 교육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비록 태자와의 혼례는 무산되었으나, 어차피 입궁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세상 물정 모르는 처녀처럼 마냥 순진하게 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작은 토끼가 늑대를 경계하듯 긴장한 그녀를 보자, 황제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짐이 그토록 무서우냐?”그 물음에 금영은 무언가 떠오른 듯 순식간에 얼굴을 붉혔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무엇을 떠올렸는지 짐작한 황제는 저도 모르게 낮게 웃었다. 동시에 지난밤, 제 품에 단단히 붙들린 채 눈꼬리를 붉히며 매혹적인 목소리로 저를 부르던 그녀의 잔상이 스쳤다.황제의 목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가라앉았다.“금영아, 옷을 제대로 입거라.”어제는 자신이 조금 지나쳤던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었을 어린 그녀에게 혹여 상처를 주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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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외전으로 들어선 순간, 금영은 황제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부드럽게 달래던 황제가 외전에서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위엄을 뿜어내기 시작했다.어젯밤 자신과 함께 밤을 보낸 사내와 황제가 동일 인물이라니, 금영은 낯선 느낌에 자기도 모르게 딱딱하게 인사를 건넸다.“폐하를 뵙습니다.”그녀의 얼굴에 서린 긴장감을 읽은 황제가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무릎을 꿇으려던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앞으로 짐과 단둘이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울 필요 없다.”곧이어, 손복안이 밖에서 찬들을 내오기 시작했다. 금영은 법도에 맞게 황제의 맞은편에 앉아 함께 수저를 들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식사를 마쳤고, 황제가 먼저 금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자. 짐이 후부까지 데려다주마.”금영은 조금 놀란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데... 데려다주신다고요?”그러자 황제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왜, 돌아가기 아쉬운 것이냐? 네가 정 원한다면 짐과 더 머물러도 상관없다만.”장난스러운 어조였으나, 찰나의 순간 황제는 진심으로 그녀를 현청전에 가둬두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금영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아,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신녀는 그저 국사 때문에 바쁘실 폐하께서 굳이 시간을 할애해 신녀를 데려다주겠다고 하시니, 잠시 당황했을 뿐입니다. 쉴 틈도 없으실 텐데, 다른 사람을 붙여 주셔도 됩니다. 폐하를 번거롭게 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황제는 금영이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고 다시 웃었다.“정무가 아무리 바빠도,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다. 가자."어느새 달이 완전히 사라진 밝은 아침이 되었다. 손복안은 금영이 현청전에 드나드는 것을 숨겨주기 위해 일부러 널찍한 검은 망토를 준비했다.이 망토는 금영의 몸을 완전히 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자까지 달려 금영의 얼굴 전체를 덮을 수 있었다.그 대신 금영은 겨우 자신의 발아래 정도만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금영은 망토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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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그런데 아직 현청전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기도 전이었다.금영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폐하를 뵙습니다.”곧이어 서 황후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금영의 마음이 바짝 조여들었다.'서 황후가 갑자기 여긴 무슨 일이지?'그녀는 정식으로 입궁한 것도 아니었고, 서 황후와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서 황후의 뒤에는 궁비와 내관들 외에도 붉은 옷차림을 한 여인도 함께 있었다. 바로 지난밤 궁녀의 신분으로 해장탕을 올리러 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간 서지안이었다.서씨 가문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차고 넘쳤지만, 서 황후가 굳이 그녀를 고른 데는 이름에 지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황제는 금영이 긴장한 것을 알아차렸고 소매에 가려진 손가락으로 금영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며 안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런 다음, 평소보다 더 차갑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서 황후를 바라봤다.“일어나게.”그러더니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황후는 서봉전에서 쉬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현청전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서 황후는 눈을 살짝 내리깔며 눈 속의 음산한 기색을 감추었다.'무슨 일로 왔느냐고?'당연히 황제가 평소와 달리 일찍 아침상을 들이게 한 것도 모자라, 여인이나 좋아할 법한 연근전병까지 내오라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거기에 지난밤 손복안이 서지안을 돌려보낸 일까지 연결되자, 누군가가 현청전에서 밤을 보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게다가 서 황후는 어제 일부러 황제의 술에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약까지 탔다. 황제가 잠시 충동적으로 누군가를 안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도 그 정체 모를 계집이 황제와 함께 현청전에서 나올 줄은 서 황후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서 황후는 속에서 분노가 치솟았지만, 황제가 보는 앞에서 보통 여인처럼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결국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감춘 채, 여느 때처럼 온화한 눈매로 황제와 그 곁에 있는 수상한 여인을 바라봤다.하지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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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황제가 서 황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황후가 신경 쓸 일은 아니네. 이 아이의 일은 짐이 알아서 할 것이네.”서 황후는 그 말을 듣고, 얼굴에 띠고 있던 현량하고 숙덕한 기색을 하마터면 유지하지 못할 뻔했다.황제가 저렇게까지 말하다니, 분명 저 천한 계집의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뜻일 터였다.황후인 자신이 장악하지 못하는 여인이 한 명 더 생긴다는 것은 곧 내명부의 주인으로서 체면이 무너짐을 의미했다.더구나 태자도 있었다.그녀가 황후로서의 위엄을 잃는다면 그 영향은 고스란히 태자에게도 미칠 터였다.서 황후는 금영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앞으로 이 아이를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황제가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명백한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황후, 자꾸 선을 넘지 말게.”그렇게 말한 황제는 금영의 손을 가볍게 당기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자.”금영은 황제를 따라 밖으로 걸어가면서도 잊지 않고 살짝 몸을 낮추어 서 황후에게 예를 표했다.서 황후가 계속해서 온화하고 현숙한 척하려 한다면, 그녀도 또한 단정하고 예의 바른 연기를 이어 나가야 했다.황제와 금영이 함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서 황후는 더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렸다.예전에는 그저 풍문을 따라 의심한 것에 불과했다면, 오늘은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영지라는 계집이 정말 실존했던 것이다."천한 것!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되기만 하면... 반드시..."서 황후는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 가득 증오가 치밀었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저 여인을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그런데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궁녀 조씨가 끼어들었다.“황후마마, 벽에도 귀가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이곳은 어디까지나 현청전 근처였고, 서봉전이 아니었다.서 황후는 결국 마음속의 불길을 다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이 소식을 경춘궁에도 전하라!”그녀가 차갑게 명령했다. 자신의 이 불쾌감을 현비도 느끼길 바랐다.*황제가 금영을 데리고 몇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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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황제는 서 황후와 정이 깊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후궁을 질서 있게 다스려 온 것은 높이 샀다.금영은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공손하고 예의 바르니, 괜찮을 거라고? 그 서 황후가?'그 여자는 이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서 황후는 음험하고 악독한 것은 물론 아주 비열하고 파렴치한 인물이었다.하지만 황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도 회귀를 겪지 않았다면 몰랐을 테니 말이다.금영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황후마마께서는 물론 훌륭하신 분입니다. 다만 신녀의 신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신녀가 정말 입궁하게 된다면 세간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텐데... 어젯밤 신녀를 입궁시키겠다 하신 일은 없던 일로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황제는 금영이 또 물러서려는 말을 듣고, 기가 막혀 웃었다.“이런 식으로 또 빠져나가려고?”금영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신녀는 폐하께서 신녀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을 짊어지시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황제는 화가 나는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너는 남 생각할 줄밖에 모르는구나.”금영이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신녀도 아무에게나 이러지는 않습니다."그 말을 듣자 황제는 문득 맹운산을 떠올렸다. 그날 이 아이가 맹운산이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한 일을 숨긴 것도, 아마 맹운산을 생각해서였을 터였다.'참 사려 깊기도 하지.'그는 기분이 상했다.금영은 그의 기분이 언짢아진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방금 입궁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자신이 그만큼 황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던 것이었다.그러니 처음에는 노한다 해도,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 금방 기분을 풀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금영은 속으로 조용히 교습상궁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군주의 마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과 같다더니, 역시 헤아리기 어려웠다.그러니 더욱 그의 총애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마차는 한참 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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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후부 근처에 이르자, 금영은 먼저 길가에서 대추떡을 팔고 있던 상인에게 은자 하나를 건넸다. 그런 다음 안성당과 가장 가까운 담장 아래에서 몇 번 외치게 했다.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가 몰래 후부 밖으로 빠져나왔다.“아가씨! 드디어 돌아오셨군요!”해수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안에서 내가 어젯밤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느냐?”해수가 고개를 저었다.“어제 어르신과 부인께서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다행히 안성당으로 들르는 일은 없었습니다. 아가씨, 방금 제가 옆쪽 뒷문으로 나왔는데,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쪽으로 들어가시면 될 듯합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해수를 따라 후부 안으로 향했다.사실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들킨다 해도 금영은 딱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다만 황제가 그녀가 억울할 일 없게 입궁할 방도를 잘 마련하겠다고 한 이상, 당장은 쓸데없는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금영이 뒷문에 이르렀을 때, 배경천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오히려 해수가 긴장한 얼굴로 황급히 예를 올렸다.“둘... 둘째 공자님을 뵙습니다.”하지만 배경천이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금영이 나섰다.“오라버니께서는 왜 이렇게 수상하게 다니십니까? 설마 어젯밤 내내 부로 돌아오지 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해수는 곧장 눈을 크게 뜨고 금영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서 배경천을 추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금영은 다시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어젯밤엔 또 어느 기루에서 밤을 보내셨습니까?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지금 오라버니를 대유 심가의 여식과 혼인시키려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라버니께서 기루를 드나들고 외실까지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 아버지께서 가만히 계실까요?"배경천은 금영이 이렇게 말하자 곧바로 답했다.“나는 그저 잠시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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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비록 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그래도 제 딸이니... 시집을 보내려 합니다."영안후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그런데 폐하께서는 왜 굳이 금영의 일을 물으시는 거지? 설마 장평군주부와 맹 소장군이 청혼하러 온 것을 들으신 건가?'만약 그렇다면 황실의 체면을 너무 깎은 일이었다.“폐하께서 그 아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신다면, 바로 남양으로 시집보내 평생 도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영안후는 얼른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장평군주부와 맹씨 가문은 좋은 혼처이긴 했지만, 황제의 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물론 공식 석상에서 황제가 금영을 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영안후는 아주 철석같이 황제가 금영에게 노했다고 확신했다.황제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그 웃음소리가 텅 빈 현청전 안에 울려 퍼지자, 구석에 서 있던 손복안도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손복안은 조용히 영안후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어리석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황제가 웃음을 뚝 그치고 서늘하게 물었다."짐이 그 아이에게 노했다고, 누가 그랬는가?"영안후는 황제의 의중을 헤아리려 했지만,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그때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금영의 혼사는 짐이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들어온 청혼은 모두 거절하게."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금영을 비로 봉하고 싶었다.하지만 금영은 파혼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지금 금영을 입궁시키면 황제 때문에 파혼했다는 입방아에 오를 터였다.황제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금영이 비난받는 일은 최대한 줄여 주고 싶었다.그러니 어쩔 수 없이 시기를 조금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태자가 혼례를 치른 뒤가 되어야만 했다.다만 그 과정에서 영안후를 한 번 눌러 두지 않으면, 비의 교지가 닿기도 전에 서둘러 금영을 시집보내 버릴지도 몰랐다.영안후는 현청전을 나올 때까지도 정신이 멍했다.'폐하께서 좀 전에 뭐라고 하셨지? 금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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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보아하니 폐하께서도 제가 하루빨리 태자부로 시집가기를 바라시는 모양이에요.”배명월이 이어 말했다.예전엔 황제가 금영을 총애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톡톡히 알려주고 싶었다.금영은 배명월의 말을 듣고, 황제의 생각을 짐작했다. 태자가 먼저 혼례식을 올려야 쓸데없는 추문이 덜 붙을 터였다.금영이 생각에 빠진 듯하자, 배명월이 다시 말했다.“언니, 저 축하해 주실 거죠?”그제야 금영은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웃었다.“당연히 축하해 줘야지.”배명월은 그 말을 듣고 금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쯤 되면 분명 불쾌해했어야 했다. 하지만 금영의 얼굴엔 조금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배명월은 그 반응에 표정을 굳혔다. 설마 태자의 말처럼 금영이 정말 마음을 달리 먹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설마 정말 맹 소장군의 가문에 시집가려는 건 아니겠죠?”배명월이 코웃음을 쳤다."꿈도 꾸지 말아요. 오늘 아버지께서 조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모든 청혼을 거절했으니까요!"하지만 금영은 이번에도 흔들림 없는 얼굴로 물었다.“그래서 용건은 끝났느냐?”배명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금영이 이어 말했다.“다 했으면 물러가거라.”금영은 이 소식에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배명월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역겨웠다.배명월은 그 말을 듣고 금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화나셨어요? 사실은 아직도 신경 쓰이는 거죠?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 봤자 늦었어요. 이제 언니는 태자 전하께 시집갈 수도 없고, 맹 소장군과 혼인할 수도 없어요.”그러더니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말했다."...애초에 처음부터 이렇게 됐어야 했어요. 앞으로는 밑바닥에서 평생 절 우러러보며 살게 될 거예요!"*서 황후는 매화를 다듬고 있었다.이때, 대총관 이전이 밖에서 들어와 서 황후를 바라봤다.“황후마마.”“무슨 일이냐?”서 황후가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이전이 공손히 손을 모으고 말했다."방금 내무부 쪽에서 소식이 들려왔는데, 폐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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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금영은 법도에 맞게 자리에 앉은 뒤, 검은 옷을 입은 황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폐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그러자 황제가 금영을 흘끗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왜? 짐이 오는 것이 싫으냐?”금영이 얼른 말했다.“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만... 처리하실 국사가 많으실 텐데, 요 며칠 자꾸 신녀를 찾아오시니... 혹여 신녀 때문에 국사를 그르치실까 걱정될 뿐입니다.”황제의 목소리는 맑고 차가웠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옅은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네가 여인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구나."금영은 의아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그러자 그가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네가 사내였다면, 짐은 너를 내관으로 들여 짐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인 뒤에 부드럽게 금영을 안심시켰다."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짐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쳐 두었다. 오늘은 봄 햇빛이 좋으니, 짐은 그저 너와 함께 봄나들이를 나와 보고 싶었다.”*지란원.취옥이 배명월을 바라보며 알렸다.“아가씨, 오늘 큰아가씨께서... 또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으셨습니다.”배명월은 그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꼴 좋다! 내가 태자부로 시집가게 되니,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구나! 그런데... 요즘 병을 핑계로 드러눕는 일이 너무 잦은 것 같지 않느냐?”배명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보내 안성당을 바짝 지켜보게 해라.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내게 알리고.”*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흘러 배명월의 혼례까지 이레만 남게 되었다.배명월이 혼인하게 되자, 영안후부의 장남이 마침내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이른 아침부터 금영은 영안후부 사람들과 함께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고풍스러운 마차 한 대가 천천히 영안후부 정문 앞에 멈춰 섰다.곧이어 청의를 입은 한 사내가 천천히 마차에서 내려왔다.그의 눈매는 훤하고 시원스러웠으며, 온몸에는 문인다운 기품은 물론 움직임 하나하나도 무척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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