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521 - Chapter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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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1화

오늘 태후에게 곤욕을 치를 때만 해도 금영은 그런대로 버틸 만했다. 하지만 황제가 이리 다정하게 마음을 써 주자 금영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다과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결국 참았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그 모습을 본 황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손을 뻗어 금영의 눈물을 닦아주었다."태후마마께서 너를 곤란하게 한 것이냐?"황제가 물었다.금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신첩을 곤란하게 하지 않으셨사옵니다."할 말이 없어서 굳게 입을 다문 것이 아니었다. 황제가 이 황위에 굳건히 앉을 수 있었던 데는 태후의 크나큰 희생이 있었고, 그렇기에 황제는 늘 태후를 지극히 공경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태후를 험담했다간 황제를 난처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고작 이런 하찮은 일로 황제가 자신을 위해 태후를 탓할 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라는 말이 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황제는 분명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했음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입을 굳게 다물수록, 황제는 그녀가 더 큰 서러움을 겪었다고 여길 것이다.황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태후마마께서는 겉보기엔 온화하지만 성품이 곧은 분이라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필시 간악한 자들의 헛소리를 듣고 너를 이리 대하신 것일 터, 짐이 나서서 잘 말씀드릴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태후마마께서도 자초지종을 아시면 더는 너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황제가 다정하게 말하자 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폐하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 저 또한 태후마마께서 결코 사리 분별에 어두운 분이 아니심을 믿사옵니다."거기까지 말한 금영은 넌지시 칭찬의 말을 덧붙였다."태후마마께서 폐하를 이토록 훌륭하게 낳아 기르셨으니, 마마께서 얼마나 대단한 여인이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사옵니까?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적에도 늘 말씀하셨사옵니다. 태후마마만큼 그 자리에 어울리는 기품을 가지신 분도 드물다고,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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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금영은 통 입맛이 없었으나,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조금씩 조금씩 받아먹었다. 황제 또한 인내심을 발휘해 계속해서 그녀에게 죽을 떠먹여 주었다.따뜻한 마죽이 뱃속으로 들어가서인지 금영은 몸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창백하던 안색에도 조금씩 혈기가 돌기 시작했다.하지만 죽 한 그릇을 채 다 비우기도 전에 손복안이 밖에서 들어왔다.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폐하..."황제가 담담한 낯으로 물었다."무슨 일이냐?"손복안은 금영의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쭈뼛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여비마마께서... 폐하의 행차를 청하셨사옵니다."금영에게 죽을 떠먹이던 황제의 손이 미세하게 멈칫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금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마음이 쓰이신다면 다녀오세요. 신첩은 이제 한결 나아졌사옵니다."황제가 손을 뻗어 금영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이 원사를 문밖에 대기시키도록 하마.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를 부르거라."말을 마친 황제는 금영을 깊이 바라보고는 덧붙였다."일찍 쉬거라."황제의 검은 곤룡포 자락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금영은 문가를 응시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금영도 잘 알고 있었다. 제왕이 오직 한 여인만 총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날이 이토록 빨리 찾아올 줄은 미처 몰랐다.그녀의 손에 들린 채 반쯤 남은 마죽이 하얀 사기그릇을 넘어 손바닥으로 온기를 전해 왔으나, 금영은 도리어 열 손가락 끝이 시리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예전에 영안후부에서 은퇴한 상궁을 데려와 법도를 배울 때, 상궁이 여러 번 그녀에게 당부했던 것이 있었다. 제왕의 일시적인 변덕을 결코 진심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다른 사람들에겐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며 해로하는 것이 쉬운 일일지 몰라도, 오직 제왕만은 그럴 수 없는 법이었다.처음에 그녀가 황제에게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눌 수는 없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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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황제가 처소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그를 맞이하는 여비의 목소리는 청아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구슬픈 기색이 짙게 서려 있었다."신첩은... 폐하께서 오지 않으실 줄 알았사옵니다."그러자 황제는 여비를 응시하며 짐짓 다정한 음성으로 달랬다."짐이 약조하지 않았느냐. 마땅히 와야지."여비가 나직이 속삭였다."궁에 새사람이 들었으니, 폐하께서 이내 신첩을 잊으신 줄로만 알았사옵니다...."황제가 다가가자, 자리에 앉아 있던 여비가 몸을 일으키려다 가볍게 휘청이며 파르르 떨었다. 그 위태로운 모습에 황제가 황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해 앉히며 물었다."어찌 이리도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냐?"여비가 붉어진 눈시울로 황제를 올려다보며 애달프게 속삭였다."폐하께서는 앞을 향해 나아가실 수 있을지 모르나, 신첩은 그럴 수가 없사옵니다. 신첩은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갈가리 찢어질 듯 아프옵니다."*같은 시각, 소녕전.황제는 금영에게 일찍 쉬라 일렀지만, 그녀는 침상에 누워서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머리로는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며 이성을 다잡았다 여겼다. 허나 적막하고 깊은 밤, 홀로 덩그러니 누워 있자니 어쩔 수 없이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 시려왔다.그때, 수강궁에서 금영이 쓰러질 뻔했던 일로 내내 마음을 졸이던 해수가 상태를 살피러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금영이 아직 깨어 있는 것을 보자, 해수가 안타까운 얼굴로 권했다."마마, 정 폐하께서 돌아오시길 원하신다면, 소인이 힐방궁에 가 마마의 옥체가 다시 불편하시다고 기별을 넣겠사옵니다. 폐하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면 당장 달려오시지 않겠사옵니까?"금영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그럴 것 없다."당장 여비와 척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이를 핑계로 황제의 발걸음을 붙잡는 얄팍한 수작은 한두 번은 통할지 몰라도, 매번 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이리저리 뒤척이는 사이, 어느덧 자정이 훌쩍 지났다. 금영은 황제가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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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금영은 어젯밤 잠을 설친 탓에 평소보다 다소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거울 앞에 앉자 해수가 머리를 빗어 내리며 단장을 돕기 시작했다.이때, 채아가 밖에서 들어오며 알렸다."마마, 소인이 방금 밖에서 들었사온데, 폐하께서 막 힐방궁을 나서시며 손복안 태감을 시켜 여비마마께 하사품을 내리셨다 하옵니다."그 말을 들은 해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채아를 향해 낮게 꾸짖었다."누가 너더러 그런 것을 알아보라고 하였느냐!"사실 해수도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굳이 금영에게 전하지 않았다. 홑몸도 아닌 금영이 이런 심란한 얘기를 듣게 되면 마음이 상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금영이 입궁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면 모를까, 아직 칠 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어진 일이었다. 황제가 영안후부에 몸소 행차하여 금영의 입궁을 청하기까지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녀가 입궁하자마자 마치 딴사람이 된 듯 곧바로 다른 후궁에게 걸음을 돌렸다. 이는 금영의 처지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처사나 다름없었다. 만약 자신이 금영이었다면 분명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해수의 호통에 채아가 입술을 달싹이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소인이 괜한 말을 하였사옵니다. 마마, 벌하여 주시옵소서."금영이 고개를 돌려 채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담담히 말했다."일어나거라."그러고는 해수를 향해 차분히 말을 이었다."네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리 호통쳤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겠다고 소녕전 문을 영원히 걸어 잠글 수는 없지 않느냐?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보단 이 편이 낫다."진심이었다. 아무리 현실이 잔인할지라도, 금영은 눈과 귀가 먼 채 살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서 황후 또한 금영의 일거수일투족을 악착같이 주시하고 있었다. 적과 맞서려면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서 황후가 그렇듯, 금영 역시 이 황궁에서 살아남으려면 늘 귀를 열어 두고 궐내의 동태를 살펴야만 했다.채아가 몸을 일으키며 우물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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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사실 황제가 후궁을 찾는 횟수가 줄긴 했지만, 아예 발길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후궁들은 아이를 갖지 못하거나, 갖더라도 무사히 낳지 못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서 황후의 수작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서 황후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악독한 인간이었다.곁에서 나란히 걷던 서 황후가 입을 열었다."듣자 하니, 간밤에 폐하께서 힐방궁에 드셨다더군."그 말을 뱉으며 서 황후는 금영을 힐끗 살폈다. 어떻게든 흔들리는 기색을 찾아내려는 속셈이었다.그러나 금영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신첩은 폐하께서 간밤에 어디에 가셨는지 알지 못하옵니다."말을 멈춘 금영이 덧붙였다."게다가 폐하께서 어디로 발걸음하시든, 기쁜 마음으로 받드는 것이 후궁으로서의 도리가 아닙니까? 폐하께서는 신첩 혼자만의 지아비가 아니오라, 궐 안 모두의 주인이시니까요."금영의 대답에 서 황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본래 질투에 눈이 먼 금영의 꼴을 구경한 뒤, 타이르는 척하며 속을 긁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너그럽게 나오니, 도리어 황후인 자신보다 훨씬 더 국모다운 태도였다.서 황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토록 사리에 밝다니 참으로 기특하구나. 기왕 이리 된 김에 본궁과 함께 힐방궁에 들러 여비에게 축하 인사나 건네는 것이 어떻겠느냐?"그리 말하며 아주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폐하께서 힐방궁에 발길을 끊으신 지 오래였는데, 이번에 여비가 다시 총애를 얻었으니 마땅히 축하해 주어야지."금영은 서 황후가 이른 아침부터 소녕전까지 찾아와 굳이 자신을 밖으로 끌어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단한 함정을 파려는 수작이 아니었다. 그저 총애를 빼앗겨 비참해진 꼴을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금영이 나긋하게 대답했다."신첩, 황후마마의 뜻에 따르겠사옵니다."힐방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두 사람은 금세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침 내무부 사람들이 전각 안으로 끝없이 하사품을 나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 광경을 본 서 황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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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마마의 염려에 감사드리옵니다. 간밤에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서 황후가 금영을 힐끗 보더니 덧붙였다."금영아, 네 몫까지 여비가 폐하의 시중을 들었으니 마땅히 여비에게 고맙다 인사해야지."서 황후의 말은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금영더러 여비에게 감사를 표하라니, 이는 그저 금영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는 수작만이 아니었다.‘내가 회임했다 한들, 황제께서 다른 후궁을 찾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는 걸 과시하고 싶은 모양이군.’동시에 여비의 자존심을 짓밟는 말이기도 했다. 비록 성은을 입었다 하나, 결국 금영의 회임 덕에 얻어걸린 기회였음을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 껄끄러웠던 두 사람을 철천지원수로 만들어 버리려는 속셈이었다.허나 자격지심에 눈이 먼 여비는 이 이간질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금영을 쏘아보며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폐하를 뫼시는 것은 후궁의 당연한 본분이거늘, 어찌 영비에게 감사 인사를 받겠사옵니까?"금영의 대응은 여비보다 훨씬 유려했다."여비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폐하의 발걸음은 오로지 폐하의 뜻에 달린 일이오니, 신첩이 여비마마께 감사를 표하는 것은 도리어 무례가 아니겠사옵니까? 설마 황후마마께선 매번 근심을 덜어 준 수많은 비빈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하셨단 말씀이옵니까?""이런 무엄한!"조씨가 서슬 퍼렇게 호통을 쳤다. 그러자 금영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신첩은 그저 황후마마의 하문에 답했을 뿐이옵니다. 만일 신첩의 말에 과오가 있다면 마마께서 벌하여 주시옵소서."서 황후가 조씨를 날카롭게 흘겨보자, 조씨는 감히 더 입을 열지 못했다.서 황후가 다시 나긋하게 입을 열었다."네가 복중에 폐하의 아이를 품고 있는데, 틀린 말을 하지 않았음은 차치하고 설령 틀린 말을 했다 한들... 본궁이 어찌 너를 벌할 수 있겠느냐?"그러더니 금영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녀의 아랫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금영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하며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서 황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왜 그러느냐? 본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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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여비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여비가 눈시울을 붉히며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외려 변명 없이 순순히 인정했다."폐하, 신첩이 그리 말한 것은 사실이오나, 그저 영비를 염려하는 마음에 그리한 것이옵니다."황후도 옆에서 거들었다."폐하, 여비의 성정은 폐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사옵니까? 그저 말이 직설적일 뿐, 결코 악의를 품고 한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황제가 여비를 바라보자, 여비는 살며시 손을 들어 제 손가락을 매만졌다. 그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여비를 바라보는 눈빛에 묘한 연민이 서렸다."영비에게 사과하거라. 그러면 이 일은..."하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여비가 눈물을 터트리며 비련하게 말했다."폐하! 신첩은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사온데, 어찌 사과를 하라 하시옵니까! 신첩은 사과하고 싶지 않사옵니다!"말을 마친 여비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전각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황제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더니, 이내 여비를 따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황후는 곁에 서 있는 금영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너는 본궁과 함께 여기서 기다리자꾸나. 네가 입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하와 여비 사이의 옛일을 잘 모를 테지. 두 사람은 한때 몹시도 애틋한 사이였단다. 폐하께서 무려 꼬박 일 년을 여비만 곁에 두고 총애하셨지. 마치 지금 폐하께서 너를 아끼시듯 말이야."그리고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여비가 다시 총애를 얻었으니, 폐하께서는 또 여비에게 적잖이 마음을 쏟으실 게다. 하지만 이리 되면 네가 참 서운하겠구나. 이제 막 궁에 들어왔거늘 폐하의 마음이 벌써 다른 곳을 향해 버렸으니, 네 속이 오죽 상하겠니?"황후는 짐짓 몹시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금영은 엷은 미소를 띠며 대꾸했다."마마께서도 농이 지나치시옵니다. 일국의 국모이신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로 괘념치 않으시거늘, 일개 비에 불과한 신첩이 어찌 불쾌해하겠사옵니까?"그러더니 짐짓 호기심이 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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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황제가 금영의 손을 부드럽게 이끌자, 그녀는 조용히 종종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그렇게 어느덧 복숭아꽃나무 아래에 다다랐을 때, 황제가 걸음을 멈추고 금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깊고도 온화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폐하께서는 다른 여인에게도 이런 표정을 지으시겠지?'마침 산들바람이 불어와 복숭아꽃잎 하나가 금영의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연분홍 꽃잎이 먹물처럼 새까만 머리칼과 어우러져, 금영의 고운 미모가 한층 돋보였다.황제가 손을 뻗어 머리칼에 내려앉은 꽃잎을 다정히 떼어냈다. 그리고는 가만히 손바닥을 펼쳐 보였고,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미풍이 꽃잎을 싣고 날아올랐다.화창한 봄날의 더없이 애틋하고 아름다운 정경이었으나, 금영은 도리어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가운데 마른 가지에 붉은 비단이 나부끼던 월하노인의 사당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황제가 나직이 불렀다."금영아."이어 조심스레 물었다."기분이 상했느냐?"금영은 고개를 숙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남몰래 삼켜냈다. 그리고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얼굴을 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아니옵니다. 신첩이 마음 상할 일이 무엇 있겠사옵니까?"황제는 금영을 지그시 지켜보았다. 금영은 화난 듯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어젯밤 일에 대해 해명하고 싶어 입을 열었다."간밤에 짐이 힐방궁에 머문 것은..."그러나 금영이 황제의 말을 가로막았다."폐하, 굳이 설명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그녀는 굳이 황제와 여비 사이에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듣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자세히 알수록 마음만 더 다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신첩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이 나라의 제왕이시니, 자연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으실 것이옵니다."애초에 이리 될 것을 예상하고 입궁한 것이니, 이제 와서 가슴 아파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그녀는 이제 막 풋사랑에 눈뜬 철부지 소녀가 아니었다.'그래, 슬프지 않아. 티끌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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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황제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며 권했다."한 번 맛보거라. 입에 맞을지 모르겠구나."금영은 사실 통 입맛이 없었으나, 황제에게 우울한 인상만 남겨 주고 싶지는 않았다.또한 예전 교습상궁이 일러 준 말이 떠올랐다. 사내란 기분이 좋을 때나 가련한 여인에게 마음이 쓰이지, 매일같이 청승을 떨고 우울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인내심이 깊어도 질리기 마련이라고 말이다.그리고 오늘만큼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얄팍한 수단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자존심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녀는 오늘 이 참담한 심경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금영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황제가 내민 연근 완자 그릇을 받아들였다.입안에 퍼지는 식감은 부드럽고 쫀득하여, 예전에 하마터면 그녀의 목에 걸려 숨을 막히게 할 뻔했던 주양단자와는 완전히 달랐다. 적어도 이 부드러운 목 넘김이 사람을 질식시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은은한 단맛에 계수나무 꽃향기까지 감돌아, 금영의 생각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어제저녁 수라부터 통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 모든 걸 체념하고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덕인지, 좌우지간 무섭게 식욕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숨에 꽤 많은 양을 비워 냈다.결국 황제가 먼저 금영의 손에서 그릇을 내려놓게 하며 부드럽게 타일렀다."그리 입에 맞는다면 수라간에 일러 매일 가져오라 하마. 한 번에 너무 무리해서 먹어선 안 된다."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명심하겠사옵니다."금영이 수라를 드는 동안 해수는 문밖을 지키고 서 있었고, 위명 역시 그곳에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위명은 해수가 자꾸만 자신을 흘겨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참다못한 그가 마침내 툭 내뱉었다."뭘 그리 쳐다보는 것이냐?"상당히 투박한 말투였다. 해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뜻을 알아차리고는 대꾸했다."못생겨서 봅니다."황제가 금영의 속을 썩이는데, 그 수하인 위명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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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하지만 금영은 끝내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궁 안에서 황제마저 등 돌리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금영은 간밤에 잠을 설친 데다 황제의 품에 옥죄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금영은 정면으로 마주한 시선에 숨을 삼켰다.황제가 옆으로 누워 한쪽 팔로 머리를 괸 채, 깊고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금영은 아이를 품은 몸임에도 여전히 풋풋하고 앳된 태가 물씬 풍겼다. 잠시 상황을 파악하느라 멍해 있던 금영이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었다."폐하, 언제 깨어나셨사옵니까?"황제는 금영의 허리에 얹어 둔 팔에 힘을 주며 그녀를 더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잠겨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말해 보거라. 누구더러 개만도 못한 놈이라 한 것이냐?"금영은 숨이 멎는 듯했다. 그녀에게는 잠결에 속마음을 내뱉는 치명적인 버릇이 있었다. 언젠가 사고를 칠 줄은 알았지만, 하필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어쩌지?'가슴이 찔린 금영이 슬그머니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황제에게 불만이 가득하다 한들, 당사자의 면전에 대고 욕을 했다고 실토할 수는 없었다. 당황으로 뺨이 화끈하게 달아오른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말을 쥐어짜 냈다."신첩이 회양에 있을 때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었사옵니다. 방금 그 시절의 꿈을 꾸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개를 떠올린 듯하옵니다."황제가 금영을 힐끗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오호라. 그 개가 너를 무척 따랐던 모양이지?""아... 예, 그렇사옵니다."금영이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리자, 황제가 낮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짐은 분명 네가 그 '개만도 못한 놈'더러 썩 꺼지라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만."금영은 다시금 말문이 막혔다. 당장 태의를 불러 심신을 안정시키는 탕약이라도 지어 먹고 싶었다. 잠이 확 달아난 금영의 입술이 자물쇠를 채운 듯 무거워졌다. 깨어 있을 때는 단정하고 유순한 척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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