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511 - Chapter 520

714 Chapters

제511화

이때, 배경천이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아버지, 곧 후계자를 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일을 빌미로 어머니를 모셔 오는 건 어떻겠습니까?"거기까지 말한 배경천은 잠시 멈칫했다가 말을 이었다."이제 금영과 명월이 모두 황실로 시집을 갔는데, 설마 폐하께서 이 일로 저희 가문을 어찌하시기야 하겠습니까? 특히 금영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저희를 함부로 벌하실 순 없을 겁니다."영안후는 잠시 고민하다가 확실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금영도 영안후부의 핏줄이었다. 아무리 황제라도 함부로 그녀의 가문을 내치진 못할 터였다. 이렇게 결론이 나자 영안후는 말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내가 다시 한 번 고심해 보마..."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걸어 들어오던 금영이 입을 열었다."고민하실 것 없습니다."금영은 일부러 통보도 없이 불쑥 찾아온 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탁자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가로 쏠렸다.아주 화려하고 귀하게 차려입은 금영이 해수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못 본 지 불과 며칠 만에 그녀는 몰라보게 아름다워져 있었다. 본래도 빼어난 외모이긴 했다. 허나 영안후부에 있을 때는 사방이 가시밭이라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었는데, 이제는 황제가 물과 거름을 듬뿍 주어 그 꽃봉오리가 완연하게 만개해 있었다."금영아,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영안후가 놀라면서도 내심 반색하며 다가가 그녀를 부축하려 들었다. 마치 회임한 딸을 진심으로 아끼는 다정한 아비처럼 말이다. 하지만 손이 닿으려던 순간, 금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친근한 손길을 피했다.곁에 있던 해수가 주군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끼어들었다."영안후, 엄연히 신분의 차이가 있사옵니다. 아무리 마마의 부친이시라 하나, 황실의 법도에 따라 먼저 예부터 올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영안후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제야 그는 금영이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궁인들을 대동하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마 황궁 사람들이 지켜보
Read more

제512화

결국 배명월과 다른 사람들도 금영에게 예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금영은 얼핏 보이는 소매 안에서 배명월이 주먹을 꽉 쥔 모습을 발견했다. 쌓인 분노가 상당한 것 같았다. 곧이어 시선이 뒤에 있는 배경연과 배경천에게도 향했다. 배경연은 딱히 표정에 큰 동요가 없었지만, 배경천은 이 상황이 상당히 불만인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금영이 영안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이제 일어나 말씀하십시오."당장은 그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했다. 아직 그의 협조가 필요한 일들이 있으니, 너무 그를 깎아내리면 금영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너무 몰아붙였다가 그가 자포자기하면 곤란했다.영안후에게 일어나도 좋다는 말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금영의 뒤에 서 있던 채아가 해수의 모습을 흉내 내며 날카롭게 꾸짖었다."영안후께 하신 말씀이지, 마마께선 아직 다른 분들께 일어나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금영은 그런 채아를 힐끗 바라보긴 했으나,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결국 배명월과 다른 사람들은 굴욕스럽게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이때, 누군가가 금영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었다.그녀는 우아한 기품을 뽐내며 태연히 자리에 앉았다. 이건 배명월이 백날 교육을 받아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자태였다.영안후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본 다음에 다시 금영에게 말을 걸었다."그런데 마마께선 오늘 어찌 이곳에 오신 것입니까?"어느새 호칭부터 달라져 있었다. 영안후는 황궁에 있어야 할 그녀가 갑자기 후부에 나타난 연유가 궁금했다. 황비가 된 여인이 다시 친정에 돌아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금영은 영안후를 힐끗 바라보았다. 바뀐 호칭이 가소롭긴 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영안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방금 전에 명월이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송 부인을 다시 후부로 모셔 오려는 생각인 것 같던데... 사실입니까?"영안후는 금영이 이렇게 묻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Read more

제513화

첩의 위패를 사당에 올린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하지만 뒷말이 이어지자, 사람들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배금영! 황비가 되었다고 어머니를 이리 모욕해도 된다고 착각하지 마라!"배경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금영을 꾸짖었다.그러자 금영이 차갑게 웃었다. 고작 말 한마디에 이 정도로 반응하다니, 배경천은 정말 머리에 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이때, 해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채아가 먼저 일갈했다."마마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이건 황실을 향한 모독입니다!"곧이어 영안후의 벼락같은 꾸짖음도 날아왔다."경천아, 당장 영비 마마께 사과드리지 못하겠느냐!"그러자 배경천이 핏대를 세우며 대들었다."제가 무슨 못할 말을 했습니까? 감히 어머니더러 첩이 되라고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송정희같이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정실부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모욕이었다.금영도 물러서지 않고 반박했다."그러면 설마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돌아오는 것을 제가 허락할 거라 생각하셨습니까?"그리고는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 이치를 따지는 사람입니다. 둘째 오라버니께서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이 일은 없는 것으로 하지요."송정희가 자음암에서 계속 고생하든 말든, 그녀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송 부인과 상관없이 제 어머니의 위패는 사당에 세울 것입니다."금영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어머니? 그 뜻은 설마..."영안후가 살짝 멈칫했다. 공식화하지 않았을 뿐이지, 금영이 이 호칭을 쓴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생모를 영안후부의 정실로 대우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금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어머니께서 비록 세상을 떠나시긴 했지만, 저를 열 달이나 품어 낳아주신 분이지 않습니까. 위패 정도는 당연히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황비가 되셨다 한들 첩을 정실 자리에 올릴 자격은 없습니다! 이건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Read more

제514화

금영은 미소를 머금고 배명월을 바라보았다."명월아, 잠시 기다려 보거라. 내 어머니를 정실로 모시는 날인데 오라버니들과 네가 자리에 없어서야 되겠느냐? 함께 향을 올리고 예를 표해야지."금영이 가볍게 웃었다. 그동안 천출이라며 얼마나 손가락질을 해댔을지 불 보듯 뻔했다. 이제는 저들이 자신의 친모에게 예를 올릴 차례가 되었다. 금영은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동시에, 이것으로 저들의 기세를 제대로 꺾어놓고 싶었다."정말 정도를 모르고 날뛰는구나!"배명월이 이를 갈며 금영을 노려보았다.금영은 분노한 그녀를 평온하게 바라보다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정도를 몰라 날뛰든 말든, 네가 무얼 할 수 있는데?"이 말이 떨어지자, 배명월은 속에서 활화산이 터진 듯했다. 정말 당장이라도 금영에게 달려들어 자신이 겪은 유산의 고통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금영은 배명월이 얼마나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끝낸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조심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배명월을 자극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가 가만히 있을 위인도 아니었다. 이건 결국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악연이었다. 금영은 구천을 떠돌며 고통스러웠던 삼 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배명월에게 겪게 해 주고 싶었다.그녀는 상석에 앉아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영안후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권력의 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새삼 실감했다.이제 막 황비가 되었을 뿐인데도, 자신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이용해 먹던 가족들을 아주 쉽게 짓밟을 수 있었다. 금영은 이 감각에 조금씩 매료되어 가는 자신을 느꼈다.그녀는 황후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한 번도 그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어서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비가 된 것만으로도 이만한 권력을 누릴 수 있는데 황후가 된다면 훨씬 큰 황홀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사당 밖.금영은 미리 준비해 둔 빈 위패를 제사단상 위에 올려놓은 뒤, 영안후를 바라보았다."수고스러우시겠지만 이 위패의 이름
Read more

제515화

금영이 말했다."이제 모두 저와 함께 어머니께 예를 올리시지요."영안후가 위패에 이름을 적고 금영의 친모를 정실부인으로 올린 뒤, 향을 피우고는 뒤로 물러난 다음이었다. 금영은 앞장서 제사 단상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배경연과 배경천, 배명월은 바로 그 뒤에 서 있었는데, 제각기 다르나 모두 이 상황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들이었다.배명월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먼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배경연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배경천만이 목을 뻣뻣이 세운 채 끝까지 버텼다."나는 영안후부의 적자다. 어찌 천한..."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안후가 그를 뒤에서 걷어찼다."입 다물거라!"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분수를 모르고 말썽이라니, 영안후는 그가 정말 한심했다.금영은 몸을 돌려 배경천을 한 번 바라보았다. 배경천은 영안후에 의해 억지로 무릎이 꿇린 상태였다. 그녀는 아주 만족스럽게 다시 위패를 향해 향을 올렸다."어머니, 딸이 향을 올립니다."하지만 뒤에 꿇어앉은 이들은 벙어리가 된 듯 입만 뻥긋거리며 쉽사리 어머니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금영은 굳이 강요하지 않고 예를 마친 뒤, 해수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되었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형벌이라도 받듯 표정을 구기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한편, 금영은 사당 밖 먼 곳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왜 아직도 오지 않지?'마침 이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 사람이 사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금영의 셋째 오라비, 배경원이었다.그는 도성으로 돌아온 뒤 서교대영에서 직책 하나를 얻었는데, 마침 막 영내에서 돌아온 참이었다.배경원이 금영을 보고 예를 올렸다."영비마마를 뵙습니다."금영은 그가 무릎 꿇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온화하게 말했다."셋째 오라버니, 앞으로 저를 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예를 갖추실 필요 없습니다."부드럽게 셋째 오라버니라 부르는 목소리에 배경연과
Read more

제516화

배경원이 위패를 제자리에 놓은 직후였다. 금영은 영안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 슬하에는 아들이 없는 데다 저는 궁에 매인 몸이니, 훗날 향을 올리고 제사를 챙길 사람이 없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셋째 오라버니를 어머니 명의로 입적해 저의 친오라비로 삼아주십시오."영안후는 입술을 달싹이며 거절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이제 금영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황비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도 배경천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배금영! 위패를 세우겠다는 것까지는 우리가 막지 않았지 않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제사를 받들 사람이 없다고? 엄연히 나와 큰형님이 있거늘, 어찌 또 셋째를 적자로 들이려 하는 것이냐!"금영은 그런 배경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실소를 터뜨렸다."그러면 둘째 오라버니께서 제 어머니 명의 아래 들어가시겠습니까?"배경천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출신도 알 수 없는 천한 여인의 적자로 들어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금영은 분개하는 그를 보며 속으로 차갑게 비웃었다.그녀는 배경천이 자신의 혈통에 대해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정말 제 어머니 밑으로 입적하게 만든다면, 아마 분통이 터져 죽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애초에 그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배경천 본인도 질색하겠지만, 금영이 더욱 원치 않았다. 험한 꼴을 보여 구천에 계신 어머니를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그녀가 후부로 돌아와 이 일을 벌이는 데는 분명 다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황제에게 말했던 것처럼, 직접 아이를 품는 고단함을 겪고 나니 자신에게 생명을 준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금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영안후를 바라보았다."아버지, 제 뜻에 따라 주실거죠?"금영은 거절 따위는 상상도 하지 않는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물었다. 영안후는 결국 체념한 듯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예… 마마의 뜻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금
Read more

제517화

이 말을 들은 금영은 배명월을 바라보며 웃었다."혼인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아주 깊은 깨달음이 있었나 보구나. 왜 그러는 것이냐? 설마 태자 전하께서 너를 홀대라도 하셨느냐?”금영의 말은 그대로 배명월의 아픈 곳을 찔렀고, 그녀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그 모습을 본 금영은 친절히 한마디 덧붙였다."아이를 잃은 지도 얼마 안 되었을 텐데, 화는 덜 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러다 괜히 몸만 더 상하게 되면 너만 손해가 아니겠느냐? 자칫 앞으로 영영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리면 어떡하느냐?”조금 전의 말이 배명월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라면, 이번 말은 아예 칼날을 살에 박아 넣고 휘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금영은 더는 배명월을 상대하지 않고 밖을 향해 걸어갔다.그런데 막 후부의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태자가 빠른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금영을 발견한 태자가 걸음을 멈추고는 뜻밖이라는 듯 중얼거렸다."금영?”금영은 담담하게 태자를 흘끗 바라보았다.태자는 무심코 내뱉았다가 황급히 호칭을 바꾸었다."영비마마,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금영이 무심하게 답했다."제집에 제가 돌아온 것이 무언가 이상합니까?”이제 태자는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이 밀려왔다. 금영은 그를 더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해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태자가 갑자기 손을 뻗어 금영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금영이 놀란 눈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전하!"태자는 멈칫했다. 그제야 눈앞의 금영이 더 이상 자신이 함부로 손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슬며시 손에 힘을 풀고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너는... 아니, 마마께선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없으십니까?"그리고는 금영이 답하기도 전에 다급히 말을 이었다.“다 알고 있습니다. 부황과 그런 사이가 된 것, 본인의 뜻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아직도 절 마음에 두고 계시지요?”금영은
Read more

제518화

태자는 시선을 들어 금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다.처음 그녀와 황제와 있었던 일을 알았을 때만 해도 마음속엔 분노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무함과 상실감만이 가득했다. 태자는 그제야 금영을 완전히 잃어버렸음을 실감했다.배명월은 태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마중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정문에 도착하자 태자가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다.배명월은 그의 시선을 따라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마치 금영이 탄 마차가 영안후부 문밖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태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전하!"태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복잡한 표정으로 배명월을 보았다."명월아."어찌 되었든 명월은 그의 아이까지 잃은 몸이었다. 비록 그녀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완전히 매정하게 내칠 수는 없었다.배명월이 웃으며 말했다."전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신첩을 데리러 오신 겁니까?"태자의 눈빛이 가볍게 흔들렸다."그래."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역시 금영이 영안후부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참지 못하고 한번 보러 온 것뿐이었다. 궁 안에서는 금영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금영은 태자와 마주친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태자가 오만하게 군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그녀는 궁으로 돌아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어느새 금영도 은근히 황제와 만나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하지만 금영이 입궁해 소녕전으로 돌아가기도 전이었다. 뜻밖의 인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영비마마, 태후마마께서 수강궁으로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찾아온 사람은 웃음기 하나 없는 백발의 늙은 상궁이었다. 얼핏 보니 공 상궁과 연배가 엇비슷해 보였다.이런 나이까지 궁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결단코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금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손씨, 태후 곁에서 몇 번 본 적 있던 인물이었다.태후는 줄
Read more

제519화

금영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깊은 의문이 일었다.'누구를... 닮았다는 걸까?'이내 태후가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궁 밖에 머무는 동안, 네 소문을 익히 들었다."그 짧은 한마디만으로도 금영은 태후의 짙은 적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황제의 어미이자 황실의 큰어른으로서, 자신처럼 출신이 껄끄러운 후궁을 마주하고 기분이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만약 태후가 서 황후처럼 그녀를 보자마자 봄바람 불듯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면, 더 소름 돋게 무서웠을 것이다.금영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나직하게 말했다."태후마마, 용서하시옵소서. 이 모든 것이 신첩의 불찰이옵니다."이럴 때는 납작 엎드려 자세를 낮추는 것이 궐 안에서 살아남는 이로운 처세임을 금영은 잘 알고 있었다. 영안후부면 몰라도, 이 넓고 아득한 궁궐에서는 갓 입궁한 처지에 불과했다. 하늘 같은 태후와 정면으로 맞설 기반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말 없이 잘못을 인정하는 그 순종적인 태도가 퍽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되었다. 이미 입궁하여 황제의 핏줄까지 품었으니, 그저 본분을 지키며 조용히 지내거라. 괜한 풍파를 일으키지 말고."금영이 더욱 공손히 대답했다."태후마마의 가르침이 지당하시옵니다. 신첩, 뼛속 깊이 새기겠사옵니다."태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서늘하게 덧붙였다."어찌 되었건 너는 소한과 혼약했던 사이, 헌데 네가 입궁하자마자 황후가 병석에 누웠구나. 귀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제아무리 거짓이라 한들, 응당 불경을 필사하고 복을 빌어 네 몸에 깃든 흉험한 기운과 죄업을 씻어내야 할 것이다."말을 마친 태후가 매서운 눈으로 금영을 내려다보았다."그리하겠느냐?"자신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음을 알기에, 금영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신첩, 기꺼이 명을 받들겠사옵니다.""지필묵을 내오너라. 내 처소에서 불경을 필사하게 하라."태후의 명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궁녀가 두꺼운
Read more

제520화

금영은 파리한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들며 나직이 불렀다."폐하..."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엄하게 호령했다."황제!"황제는 그제야 걸음을 멈칫하며 태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태후마마."짧게 예를 갖춘 황제는 곧바로 애가 타는 얼굴로 금영을 내려다보며 물었다."금영아, 대체 어찌 된 것이냐?"금영은 눈앞에 짙은 안개가 낀 듯 시야가 흐릿하여, 눈앞에 있는 황제의 모습조차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가 가느다란 소리로 중얼거렸다."폐하, 신첩은... 괜찮습니다. 그저 잠시 현기증이 일어..."황제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이리 쓰러지고는 괜찮다니!"그때 곁에 있던 손 상궁이 날 선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영비마마, 멀쩡하시더니 어찌 갑자기 어지럽다 하십니까? 태후마마께서는 그저 불경을 필사하라 명하셨을 뿐이거늘, 마마께서 이리 구시니 마치 태후마마께서 몹쓸 짓이라도 하신 것 같지 않사옵니까?"참다못한 해수가 울컥하며 외쳤다."저희 마마께서는 지금껏 수라 한 술 뜨지 못하셨단 말입니다!""태후마마께서도 수라를 드시지 않았다. 끼니 좀 걸렀다 하여 이리 쓰러진단 말이냐?"손 상궁이 매섭게 맞받아쳤다.그 말을 들은 황제가 맹수 같은 눈길로 손 상궁을 쏘아보았다. 서릿발 같은 안색이었다. 손 상궁은 그 기세에 눌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황제는 더 이상 주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금영을 번쩍 안아 들고는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태후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다."황제!"황제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나, 금영을 품에 단단히 안은 채로 대답했다."태후마마, 금영이 몸을 가누지 못하니 소자가 먼저 데려가 어의에게 보이겠사옵니다. 죄는 그 후에 청하겠나이다."말을 마친 황제는 그대로 큰 걸음으로 수강궁을 빠져나갔다.황제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태후의 안색이 어둡게 굳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태후가 이 갈리듯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보았느냐? 저 꼴이 참으로 선황제
Read more
PREV
1
...
5051525354
...
7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