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531 - Chapter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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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1화

그럼에도 금영은 살며시 눈을 접으며 나지막이 답했다."신첩은 폐하께서 반드시 그리하실 것이라 믿사옵니다."황제는 치미는 욕정을 간신히 누르며 손을 들어 금영의 흐트러진 옷자락을 여며 주었다. 마음에 둔 여인을 눈앞에 두고도 차마 건드릴 수 없으니, 그로서는 몹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 다음 황제는 다시 금영을 품에 안았다. 허나 감히 힘을 주지는 못했다. 자신의 힘 때문에 금영이 다치기라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의 욕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낮게 잠긴 목소리가 금영의 귓가에 닿았다."금영아."금영은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방금 폭풍우가 지나갔다고 생각했거늘,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다시 마음이 동한 듯했다.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신첩은... 아직 회임한 몸이옵니다."금영에게는 황제보다 복중의 아이가 더 중했다. 그녀는 한순간의 쾌락 때문에 아이가 상하길 바라지 않았다.무엇보다 금영은 이 일에서 그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머릿속에 황제와 치렀던 두 번의 경험이 떠올랐다. 처음은 약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탓에 고통만 남았고, 두 번째는 그저 속절없이 끌려가다 견디기 버거워 끝내 그만해 달라 애원했던 기억뿐이었다.황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눈을 감거라."금영이 이해하기도 전에, 황제는 이미 그녀의 옷자락에 달린 비단 끈을 풀어 금영의 두 눈을 가려 버렸다.이윽고 곁에 누운 황제의 숨소리가 가빠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숨결이 금영의 귀 뒤를 스치며 머리칼을 가볍게 흩트렸다.금영의 몸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황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허나 이 순간에는 움직일 수도, 볼 수도 없었다. 또한 황제를 자극해서도 안 되었다.기나긴 침묵이 흐른 후였다. 황제가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나직이 불렀다."금영아."금영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네."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가 침상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속으로 기가 막히는 한편 의구심이 일었다. 분명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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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금영은 잠시 고민한 후, 이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폐하와 함께 있고 싶사옵니다."설령 지금 황제에게 서운함과 앙금이 남아 있다 한들,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 그를 멀리 밀어낼 수는 없었다. 황제의 마음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향해 있지 않다고 해도, 그와 멀어지는 것보다 어떻게든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미 궁에 들어온 마당에 부질없이 자존심을 세우며 겉돌기만 한다면, 끝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뿐이었다.더군다나 그녀가 입궁한 것은 애틋한 정 따위를 나누기 위함이 아니었다. 살아남아서, 황후에게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르게 하러 온 것이었다.회귀 전에는 지나치게 곧고 꺾일 줄 몰랐기에 끝내 처량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에 따라 몸을 굽힐 줄도 알게 되었다.황제는 금영이 자신에게 의지해 오는 것을 느끼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는 참을성 있게 금영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다가, 친히 흐트러진 그녀의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금영은 황제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한 채 조용히 뒤를 따랐다. 그러던 중 작은 돌멩이 하나를 밟았고, 무심결에 툭 차 버린 돌멩이가 맑은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튕겨 나갔다. 그 기척에 황제가 뒤를 돌아봤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금영의 손을 지긋이 쥐었다. 그리고는 넓고도 단단한 손바닥으로 금영의 손을 빈틈없이 감싸고는 걸음을 맞춰 함께 나아가기 시작했다.어느덧 두 사람은 현청전에 다다랐고, 그제야 금영은 그가 향하던 곳이 어디였는지 알아차렸다. 입궁하기 전에는 심심치 않게 드나들며, 내전까지 발을 들인 적이 있는 바로 그 장소였다.다만 황제의 비로 입궁한 후로는 단 한 번도 그가 이곳으로 그녀를 이끈 적이 없었다. 그녀는 황제가 후궁들은 물론 모든 여인의 현청전 출입을 엄격히 금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또다시 자신을 위해 전례를 깨뜨릴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금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눈앞의 사내를 가만히 뜯어보았다. 그러자 그 시선을 느낀 황제가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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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상소의 내용은 다름 아닌 그녀의 고집 센 부친인 영안후가 올린 후계자 책봉에 관한 안건이었다.금영이 예상했던 대로, 영안후가 후계자로 낙점해 올린 이름은 배경연이었다.황제는 금영을 슬쩍 바라보며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금영은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영안후부의 후계자를 세우는 일은 조정의 대사이온데, 신첩이 어찌 감히 섣불리 의견을 내겠사옵니까."황제는 나직이 탄식했다. 금영은 지나치게 사리를 잘 알아 도리어 사람의 마음을 애틋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만약 다른 비빈들이었다면 황제가 이만큼 기회를 열어 주었을 때 넌지시 그 흐름을 타며 제 잇속을 챙겼을 터였다.황제는 마치 금영에게 세상 이치를 일러 주는 윗어른처럼 차분히 말했다."금영아, 네가 비록 후궁에 머물고 있으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결코 짧지 않다. 궁 바깥에 네가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하나쯤은 반드시 두어야 하는 법이다."금영은 황제가 자신에게 이토록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남녀 간의 부질없는 애정을 배제하고 본다면, 그녀의 처지를 깊이 헤아려 다방면으로 마음을 써 줄 만한 인물은 확실히 황제뿐이었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금영은 조금 냉정해졌다. 황제가 한 여인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곁에 머무는 것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황제가 곁에 앉은 금영을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그러니 금영아, 네가 보기엔 영안후부에서 누가 가장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자 같으냐?"영안후부의 속사정은 황제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훤히 꿰뚫고 있었다.당연히 금영이 회양에서 도성으로 돌아온 이후, 그 가문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와 설움을 당했는지도 모를 리 없었다.과거 선대 영안후의 공덕을 기리고 금영의 체면을 보아 넘겨 주었을 뿐, 송정희가 금영을 핍박하여 죽음으로 몰고 가려 했던 그날 영안후부의 작위는 진작 박탈당했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그러니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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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황제는 금영보다 훨씬 크고 장대했기에, 이렇듯 그녀를 품에 가두듯 안을 때면 금영의 가녀린 체구가 유독 자그마해 보였다.한편 그녀는 다시금 제왕의 용포 아래에서 묵직하게 전해지는, 좀처럼 억누르지 못한 욕망을 고스란히 느꼈다.금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마땅히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할 황제가, 매번 이토록 사람을 곤란하게 구니 속으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황제는 끝내 금영을 온전히 품지는 못했지만, 금영의 얇은 봄옷은 이미 몇 군데 매듭이 풀려 다소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들끓는 욕망을 가라앉히려 숨을 고르다가, 이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너를 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금영은 붉어진 얼굴로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녀는 차마 황제와 눈을 마주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자칫 잘못 눈길이 얽혔다가는 또다시 그가 이성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바로 그때였다. 문밖에서 손복안의 다급하고도 곤혹스러운 음성이 정적을 깨뜨렸다."태자 전하, 폐하께서는 지금... 접견하시기 다소 곤란하시옵니다."이어서 태자의 서늘하게 굳은 목소리가 안으로 흘러들었다."안에 알리지도 않고서, 아바마마께서 나를 접견하고 싶지 않으신지 네놈이 어찌 그리 확언하느냐?"손복안이 다시 난처하게 뜸을 들였다."그것이..."태자 전하가 하필 이 미묘한 시점에 황제를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그야말로 제 발로 불길 속에 뛰어드는 격이었다.허나 손복안은 일개 태감의 신분에 불과했기에 뜻을 굽히지 않는 태자를 끝내 힘으로 막아설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체념 섞인 어조로 덧붙였다."소인이 즉시 폐하께 알리겠나이다."손복안이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안에 있던 두 사람도 이미 모든 것을 들은 뒤였다.황제는 곁에 앉은 금영을 가만히 주시했다.금영은 황제의 지척에 바짝 다가앉은 채, 마치 바깥에 누가 왔든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황제는 손을 들어 금영의 흐트러진 옷자락을 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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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태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가슴을 짓누르는 정체 모를 답답함을 간신히 억눌렀다.그가 무거운 입술을 떼며 어렵사리 고했다."부황, 소자가 오늘 이리 찾아온 것은 위위시경의 후임 인선에 관한 일 때문이옵니다."전임 위위시경이 승진하여 다른 자리로 옮겨 가면서, 그 직위가 공석이 된 터였다.위위시경의 품계는 종삼품으로, 비록 일품이나 이품의 고관들에 비할 바는 못 되고 국공이나 친왕 같은 존귀한 신분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으나, 궁과 도성의 경비를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그러니 태자 역시 그 자리에 제 사람을 올리고자 욕심 낼 수밖에 없었다.현비와 이황자를 상대하려면 힘이 필요했다. 그들은 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며 조정에서 세력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태자가 오늘 이렇듯 몸소 현청전까지 찾아온 것도 오직 이 일을 매듭짓기 위함이었다.황제는 탁자 아래로 금영의 손을 꽉 쥔 채, 고개를 들어 태자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태자가 황제의 안색을 살피며 서둘러 말을 이어 나갔다."소자가 천거하고자 하는 자는 오경이라는 자이옵니다. 성정이 강직하고 우직하여 족히 중책을 맡길 만한 재목이옵니다."황제는 태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위위시경의 자리는 서두를 것 없다. 차라리 위위소경 자리를 먼저 채워 당분간 그 대행을 맡기는 편이 나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태자가 조심스레 반문했다."그 말씀은 혹... 마음에 두신 적임자가 있으신 것이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영안후부에서 조만간 후계자를 새로 세울 터인데, 그리 되면 마땅히 먼저 도성에 남아 관직을 지내야 할 터. 그를 이 위위소경의 직분에 봉하는 것이 좋겠구나."곁에서 듣고 있던 금영의 눈동자가 순간 미세하게 빛났다.황제는 후계자의 지위뿐만 아니라 위위소경이라는 요직까지 통째로 배경원에게 내어 줄 심산이었던 것이다.배경원은 본래도 군에 몸담고 있었으니, 이 자리는 그의 능력을 더 돋보이게 해 줄 터였다. 게다가 위위소경이 비록 종사품에 불과할지라도 배경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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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황제는 금영을 품에 안은 채 위엄 어린 목소리로 경고했다."짐의 사람이 되었으니, 이만 마음을 접거라. 더 이상 다른 사내를 마음에 품는 건 용납할 수 없다."상대가 태자라 해도 안 될 일이었다.금영은 짐짓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폐하, 신첩은 억울하옵니다!"황제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무엇이 억울하단 말이냐?"그는 좀 전까지만 해도 태자가 떠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금영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황제는 금영이 예전에 태자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맹운산에게도 마음을 둔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그는 금영의 과거를 받아들이고, 그녀에게 시간을 주어 천천히 진심으로 자신에게 다가오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금영은 서둘러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신첩의 마음속에는 오직 폐하뿐이옵니다."황제는 한참 동안 깊은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의 거짓말을 꿰뚫어 본 듯했으나, 끝내 들추어내지는 않았다.태자는 현청전에서 소식을 들은 뒤, 현청전을 나서자마자 배명월을 마차에 태워 함께 영안후부로 향했다.예전의 영안후부에는 이렇다 할 인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황제는 분명 영안후부를 중용하려는 뜻을 보이고 있었다.태자는 영안후부를 더 단단히 끌어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는 영안후와 배경연을 만나자마자 웃으며 말했다."영안후, 첫째 공자, 진심으로 축하하오."영안후의 얼굴에 곧장 화색이 돌았다."혹 궐 안에서 좋은 소식이 있었습니까?"이미 소식을 들은 배명월이 웃으며 말했다."전하의 말씀으로는, 부황께서 아버지께서 올리신 후계자 책봉 상소를 윤허하셨을 뿐 아니라, 오라버니에게 중요한 관직까지 내려 주셨다 하옵니다!"영안후는 마음이 더없이 후련해졌다.얼마 전 금영의 일로 황제에게 질책을 받고, 송정희마저 자음암으로 보내지는 수모를 겪었다.하지만 집안에는 경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말은 즉, 영안후부가 여전히 황제의 두터운 성은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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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하지만 금영은 여전히 황제를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애정과 권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권세였다.태자를 택했다면 지금처럼 단숨에 황비가 되는 통쾌함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더구나 태자비가 되었다면 황제의 비호도 잃었을 테니, 오늘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컸다.*황제가 금영에게 푹 쉬라 일렀듯이 그녀는 제대로 숙면을 취했다.그가 처음 소녕전에 머물지 않았을 때만 해도 금영은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현실을 받아들이자 모든 것이 수월해졌다.겨우 사내 때문에 밤낮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일 수는 없었다.이튿날 아침, 궁 밖에서 소식이 들려왔다.오늘 후부에서 영안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를 연다는 소식이었다.금영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허영심 많은 제 부친이 단순히 생일만 축하하려 연회를 열 리가 없었다. 아마 궁에서 교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김에, 모두에게 영안후부의 위세를 보여 주려는 속셈일 터였다.그러니 금영도 집으로 돌아가 그 구경을 하고, 직접 셋째 오라버니에게 축하를 건네고 싶어졌다.그녀와 배경원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으니, 앞으로 기회를 찾아 조금 더 왕래해야 했다."해수야, 준비하거라. 후부에 다녀와야겠다."금영이 분부하자, 해수가 말했다."마마, 지난번 사사로이 후부에 다녀오셨다가 태후마마의 심기를 거스르셨사옵니다. 오늘도... 후부에 가시려는 것이옵니까?"금영이 살짝 웃었다."본궁이 태후마마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후부에 다녀와서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태후마마께서는 본궁을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다."그래도 해수가 걱정스레 물었다."그래도 황후마마와 폐하의 허락을 맡아야 하지 않을까요?"금영은 궁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용이 새겨진 검은 옥패를 꺼내 보였다. 황제는 그녀가 입궁한 뒤에도 언제든 출궁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것은 그녀 스스로 궁중의 법도를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속 답답하게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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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태자는 고개를 저으며 퍽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나는 네가 그리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금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알 수 없었다.태자가 다시 말을 덧붙였다."더구나 네가 이 일을 부황께 고한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만약 다른 이들이 네가 나와 아직도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너에게도 좋을 것이 없을 테니까."그 말은 사실이었다.금영이 입궁한 일 자체가 이미 천하의 비난을 무릅쓴 일이었다.여기에 금영과 태자가 여전히 얽혀 있다는 소문까지 퍼진다면, 사람들은 평소 단정하기로 이름난 태자를 탓하기보다는 그녀가 부자를 이간질했다고 여길 터였다.금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태자를 바라보았다."그러니까 태자 전하께서는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금영아, 나는 그런 뜻이 아니다. 그저 네가 안타까울 뿐이다. 부황에겐 늘 나랏일이 최우선일 텐데, 어찌 너에게 진심을 주실 수 있겠느냐? 요즘 나는 자주 예전의 우리를 떠올린다."태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얼굴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그 모습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리워하는 기색이었다."우리가 혼인교지를 받고, 함께 전각 앞에서 은혜에 감사드렸을 때가 생각난다. 너는 그때도 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었지. 그때 나는 반드시 평생 너에게 잘 대해 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 뒤, 내가 자객의 습격을 받았을 때도 너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던져 나를 지켰다. 금영아, 난 네가 나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어찌 미련이 남지 않았겠느냐?"태자는 말을 하면서도 금영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해수가 재빨리 금영의 앞을 막아섰다.그러자 태자가 그녀를 바라보며 꾸짖었다."비켜라!"이어 그는 곧장 손을 뻗어 해수를 옆으로 밀쳐냈다.금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태자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을 물린 것이 분명했다.태자가 그녀에게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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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그 사람은 맹운산이었다. 두 사람은 꽃덤불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마주 보았다.거리가 있어도 금영은 맹운산의 눈빛에 담긴 걱정을 알아차렸다.결국 맹운산이 먼저 금영에게 다가와 예를 올렸다."영비... 마마를 뵙습니다..."그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영비마마라는 호칭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금영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일어나게."맹운산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지금은 차마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사실 금영도 맹운산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혈기왕성하고 마음이 곧은 청년이 열렬히 구애해 오는데, 그녀 역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에게는 선택할 여지 자체가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불운과 불행을 맹운산에게까지 옮겨 주고 싶지 않았다. 저조차도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롭게 살아가는 마당에, 다른 누군가를 또 이 고통 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영비의 자리에 오른 몸이었다. 아니, 설령 입궁하기 전이라 했을지라도 황제는 물론 태자까지 그녀를 쉽사리 놓아줄 리 만무했다.좀 전에만 해도 그랬다. 그녀가 황제의 여인이 되었음에도 태자는 여전히 그녀에게 매달리려 들었다.만약 그녀가 황제가 아니라 맹운산과 혼인했다면, 태자는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앞세워 또 무슨 짓을 벌였을지 알 수 없었다.한편, 금영의 뒤를 쫓아온 태자의 눈에도 유진설과 맹운산의 모습이 들어왔다. 태자의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이 맹운산에게 꽂혔다. 경고의 기색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태자는 곰곰이 좀 전의 금영의 태도를 되짚어 보았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을 수도, 또는 정말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금영의 연령과 성정으로 보아 황제처럼 나이 있는 사람을 마음에 둘 리 없다는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맹운산뿐이었다.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태자의 얼굴에 어린 적의는 더욱 짙어졌다.태자는 마치 자신이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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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금영은 불처럼 붉은 비단으로 지은 얇은 봄옷을 걸치고 있었다. 눈처럼 흰 피부와 빼어난 자태는 가히 절세가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제 막 열여덟을 지난 어린 여인이건만, 눈매와 얼굴빛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존귀한 기품이 느껴졌다.금영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배명월의 존재감은 한순간에 빛을 잃었다.그때였다. 주변에 있던 시종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금영에게 큰절을 올렸다."영비마마를 뵙사옵니다."화청 안에 있던 사람들 또한 모두 예를 보였다.금영은 아무 말없이 옅은 미소만 띤 채 배명월을 바라보았다.오직 배명월만이 멀뚱히 선 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쏠리자, 결국 마지못해 금영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그제야 금영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모두 일어나게."금영이 나타나자, 태자와 배명월이라 해도 가장 높은 상석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태자가 장차 황위를 이을 국본으로 더없이 존귀한 신분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금영은 신분상 한 항렬 위였다.그녀가 자리에 앉은 뒤에야 태자와 배명월도 자리에 앉았다.영안후도 배경연과 배경천을 데리고 화청에 들어왔다. 세 사람이 금영에게 예를 올리려 하자, 금영이 가볍게 손을 들어 막았다."예는 되었습니다. 셋째 오라버니는 어디 있습니까?"영안후는 본래도 배경원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핑계를 찾아 배경원을 몇 마디 꾸짖고, 서재에서 반성하게 해 둔 터였다.그런데 금영이 오늘 그를 찾을 줄은 미처 몰랐다.영안후가 곧 입을 열었다."어서 셋째를 데려오거라!"배경원이 왔을 때, 그는 며칠 전 금영이 보내 준 옷을 입고 있었다.구름무늬가 놓인 비단옷은 그의 몸에 꼭 어울렸다. 지나치게 소박했던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짙은 눈썹과 또렷한 눈매가 더욱 돋보였다. 그 용모와 기품만 놓고 보면, 이 자리에 있는 어느 세가 공자와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사람들이 막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누군가 급히 뛰어 들어와 알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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