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551 - Chapter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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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1화

또다시 번개가 밤하늘을 가르며 번쩍였다. 순식간에 대낮처럼 환해진 방 안에서, 금영은 그제야 찾아온 이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보았다.황제였다. 그는 비바람을 맞아 엉망이 된 차림새였지만, 금영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평온하고도 온화했다.황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짐이다. 겁내지 말거라.”그녀는 그제야 참았던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그를 불렀다.“폐...하?”황제가 조용히 답했다.“그래, 나다.”금영은 그제야 불을 밝히려 신발을 찾아 침상 가장자리로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버선발이 침상 밖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황제가 먼저 다가와 그녀를 만류했다.“괜찮다. 얌전히 침상에 있거라.”그 말에 금영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황제의 명이니 거부할 수는 없었으나, 이 다정한 당부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황제는 탁자 앞으로 걸어가 촛불을 밝혔다. 그 순간, 은은하고 따스한 빛이 방 안을 채웠다.금영은 마침내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고,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님을 실감했다. 정말로 황제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금영을 보며, 황제는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명색이 황제의 후궁이 거처하는 처소인 만큼, 회랑에는 밤새 자리를 지키는 궁녀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허나 갑작스러운 행차로 금영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던 황제는 엄히 기척을 죽이라 명했었다. 그럼에도 끝내 그녀가 깨어난 것을 보니, 결국 노력은 빛을 보지 못한 듯했다.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짐이 너를 깨운 것이냐? 아니면 이미 깨어 있었던 것이냐?”금영이 촉촉한 물기가 맺혀 있는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아니옵니다. 깨어난 지는 좀 되었사옵니다.”분명 부드럽고도 차분했으나, 듣는 이로 하여금 묘한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였다.황제는 깊은 눈빛으로 금영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달래듯 나직하게 말했다.“짐이 무심했구나. 입궁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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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2화

황제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짐은 그리 쉽게 병들지 않는다.”그 당당한 말에 금영은 속으로 남몰래 쓴웃음을 삼켰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삼 년 뒤에 병으로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다.한때 금영은 황제가 작산행궁 설산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몸이 상해서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줄로만 알았다. 거기에 오랜 기간 자식을 보지 못한 것까지 더해져, 그의 몸에 원래부터 남모를 깊은 병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렇게 곁에서 가까이 지내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황제는 아주 건강했다. 설령 설산 동굴에서 예전처럼 몇 시진을 홀로 버텼다 한들, 허망하게 일찍 죽을 몸이 결코 아니었다.그렇다는 것은 황제의 죽음 뒤에 분명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는 뜻이었다.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 금영은 이미 영혼이 되어 떠돌아다닌 지 삼 년째 되던 해였다. 그래서 상태가 너무나 불안정하고 정신도 흐릿했던 터라, 당시 상황이 온전히 기억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대체 어떤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폐하, 우선 젖은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금영이 말하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겉옷을 풀어 냈다.겉옷 안에 입은 흰 비단옷 역시 흠뻑 젖어 있었다. 몸에 바짝 달라붙은 옷 위로 그의 단단하고 힘 있는 가슴이 어렴풋이 드러났다.황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얇은 비단옷마저 벗어 내리자, 그의 몸이 금영의 눈앞에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금영은 그와 두 차례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자세히 황제의 몸을 본 적은 없었다.촛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몸에는 여러 줄기의 흉터가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칼에 베인 듯한 상처며 화살에 맞은 듯한 상처, 깊은 상처와 얕은 상처가 뒤섞인 모습이었다. 귀하게만 자랐을 것이라 여겼던 제왕에게 이런 흔적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하지만 이 상처들을 제외하면 황제의 몸은 아주 훌륭했다. 가슴은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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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황제는 금영을 품에 안고 누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밤이 깊었다. 이제 쉬거라. 네가 자꾸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아무리 짐이라도 견디기 쉽지 않다.”그의 목소리가 거문고 줄 끝에 남은 울림처럼 귓가를 맴돌며 그녀의 마음을 조용히 떨리게 했다.금영은 본래 키가 작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늘씬하고 보기 좋은 축에 속했다. 하지만 넓은 황제의 품에 안겨 있으니, 평소보다 한층 더 작고 사랑스러워 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몹시 추웠으나, 지금 금영은 사방에서 뜨거운 열기가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밖에서는 천둥과 번개 소리가 더욱 잦아졌고, 비바람도 한층 거세졌다. 하지만 그 매서운 비는 더 이상 금영의 마음 위로 쏟아지지 않았다.다만 이 비는 그녀만을 비껴갔을 뿐, 다른 이들의 몸 위로는 여전히 차갑게 쏟아지고 있었다.힐방궁 안.여비는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방 안에 꿇어앉아 있었다.방 안에는 촛불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오직 그녀 앞에 놓인 화로 속 불씨만이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빛을 내고 있었다.그때 문이 열렸다.여비의 곁을 지키는 궁녀 자운이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차가운 바람이 함께 밀려들었다. 화로 속 불씨는 잠시 크게 살아나는 듯하더니, 곧 완전히 꺼져 버렸다. 남은 재가 바람을 타고 흩날리며 여비의 옷과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그러나 여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마마, 폐하께서는 소녕전으로 가셨사옵니다.”자운이 작은 목소리로 고했다.여비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 눈빛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서 황후와 현비가 이 일을 알게 된 것은 이튿날이었다. 서 황후는 다음 날 봄놀이를 핑계로 후궁들을 모두 황실 정원인 어화원으로 불러 모았다.황후가 부른 이상, 금영 역시 가지 않을 수 없었다.금영이 도착했을 때, 서 황후는 이미 현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신첩도 마침 답답하던 참이었사온데... 황후마마께서 먼저 봄구경을 나오자 하시다니, 마음이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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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여비가 비웃듯 말했다.“어젯밤 밤 깊은 시각, 폐하께서 거센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힐방궁을 나가셨사옵니다. 그렇게까지 가셔야 할 곳이라면...”안빈이 놀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설마 폐하께서 여비마마를 두고 소녕전으로 가셨단 말입니까?”그렇게 순식간에 금영은 모두의 표적이 되었다. 금영은 후궁들이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얼마나 추악하게 서로를 헐뜯으며 싸워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막 입궁한 자신을 겨냥하는 일에서만큼은, 무섭도록 단결심을 보여주고 있었다.금영은 다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궁에 발을 들인 이상,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녀는 굳이 이들과 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들이 함부로 자신을 휘두르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금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소녕전에 오신 것은 사실입니다.”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금영이 이렇듯 거리낌 없이 인정하자, 사람들은 금영을 바라보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질투와 원망을 담았다.서 황후는 마침내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금영에게 훈계했다.“너를 꾸짖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어젯밤 비바람이 거셌고, 폐하께서는 이미 힐방궁에서 쉬고 계셨다. 그런데 어찌 폐하를 소녕전까지 가게 만들 수 있단 말이냐? 너무 철없는 행동이었다. 여비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작은 일이라 쳐도, 폐하의 몸이 얼마나 귀하신데 혹여 고뿔이라도 드셨다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금영은 서 황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폐하께서 어디로 가고자 하시는지는 신첩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옵니다.”그러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뿐만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폐하께서 어느 전각에 머무실지는 결정하지 못하시지 않사옵니까?”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그대로 서 황후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서 황후의 얼굴은 여전히 단정하고 온화해 보였으나, 눈빛에는 어느새 분노가 가득 이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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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5화

봄구경을 구실로 모두를 이곳에 불러낸 만큼, 서 황후는 이 명분을 끝까지 이어 가야 했다.정원 안에는 꽃과 풀이 무성했고, 봄기운이 완연했다.황제를 바라보는 후궁들의 눈빛은 더없이 애틋하고 다정했다. 모두들 이 기회를 틈타 황제의 눈길을 끌려는 속셈이었다.예전에는 황제가 후궁 처소에 드나드는 일이 드물었으니, 모두가 마음을 접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영비뿐만 아니라 여비까지 총애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랫동안 잠잠했던 후궁들의 마음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금영이 아이를 가진 일은 후궁들에게 또 다른 기대를 품게 했다.바깥에서 떠돌던 소문과 달리 황제는 여전히 자식을 볼 수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얻어도, 이 쓸쓸하고 깊은 궁궐 안에서 의지할 데가 생길 터였다.후궁들은 저마다 제 아름다움을 드러내려 애썼다. 누군가는 연꽃처럼 사뿐히 걸었고, 누군가는 복숭아꽃 향을 맡으며 최대한 제 얼굴을 화사하게 보이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 표정에 옅은 후회가 어려 있었다. 오늘은 황후를 보러 오는 자리였던 만큼, 황제가 올 줄은 몰랐기에 충분히 꾸미지 못한 탓이었다.금영은 그 자리에 서서 온 정원에 가득 핀 꽃들을 바라보다가, 살짝 눈을 내리깔아 제 봄빛 치맛자락을 보았다.바로 그때, 손 하나가 문득 뻗어 와 금영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금영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하지만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안빈은 갓 피어난 복숭아꽃 가지 하나를 꺾어 수줍게 황제가 있던 쪽으로 내밀었다.“신첩, 폐하께 바치고자 봄을 담은 이 가지를 꺾어 왔사옵니다...”봄을 담은 가지라, 듣기는 좋았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뜻이 담긴 듯했다.그러나 고개를 들어 보니, 황제는 이미 금영을 데리고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허망하게 흩날리는 꽃잎 몇 가닥뿐이었다. 안빈이 멍한 표정을 짓다가 불만을 쏟아냈다.“영비마마께서도 참 너무하십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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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6화

서 황후는 생각할수록 증오가 치밀었다.그 시각 금영은 황제에게 이끌려 계속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결코 느린 편이 아니었고, 금영은 몸이 무거운 탓에 점점 따라가기 버거워졌다. 결국 그녀가 작게 소리쳤다.“폐하!”어느새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한적한 곳까지 도달했다. 물론 이따금 몇몇 내관과 궁녀들이 지나가곤 했지만, 손복안이 적절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모두 물렸다.황제는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금영은 그대로 그의 가슴에 안기다시피 부딪혔다. 황제는 조심스레 그녀를 부축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금영의 얼굴을 살폈다.“금영아, 싫으면 앞으로 이런 부름은 거절해도 된다.”황제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그녀는 한 번도 그에게 힘들다고 내색한 적이 없었다. 금영은 빠르게 후궁들 사이에 녹아들었고, 여러 위기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였다.금영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싫지 않았사옵니다. 게다가 후궁의 주인이신 황후마마께서 직접 봄구경 나들이에 초청하셨는데, 신첩이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사옵니까?”황제가 다시 물었다.“방금 저들이 너를 난처하게 하진 않았느냐?”금영이 잠시 망설였다.“난처하게 한 것은 아니옵고, 다만...”그러자 황제의 얼굴이 살짝 가라앉았다.“다만 무엇이냐?”금영이 입술을 살짝 깨문 뒤 말했다.“폐하, 다른 후궁들에게도 조금 더 자주 가 주실 순 없겠사옵니까?”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는 아침 조회를 마치자마자 금영이 서 황후의 초대를 받고 다른 후궁들과 꽃구경 갔다는 소식에 급히 이곳까지 찾아왔다. 그가 금영만 총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괜한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금영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다른 곳으로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질투하고 총애를 다투는데,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대체 금영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기는 한 것인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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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7화

금영은 겁먹은 듯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황제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정말이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짐은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낮에 황제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그래서 날이 어둑해질 무렵, 금영은 저녁 수라도 들지 않은 채 조용히 황제를 기다렸다.하지만 해수는 여전히 조금 걱정스러운 듯했다.“마마, 폐하께서 정말 오실까요?”요 며칠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힐방궁으로 향하던 황제였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말하던 중, 통전을 알리는 내시의 목소리가 울렸다.“황제 폐하 납시오!”해수의 얼굴이 단번에 활짝 피었다.“마마! 폐하께서 오셨사옵니다!”금영은 몸을 일으켜 직접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한 발 빨리 황제가 안으로 들어오며 예를 올리려는 금영을 부축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탁자 앞으로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식사부터 하자.”그리고는 먼저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금영의 그릇에 덜어 주었다.“요즘 많이 야위었구나.”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를 제 곁으로 데려와 보살피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전보다 더 마른 것 같았다.금영은 원래 식욕이 별로 없었으나, 그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수라를 다 들고 나니,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금영은 황제가 겉옷을 벗고 쉴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늘은 왜 힐방궁에 가지 않는지 묻지 않았다.그 시각 힐방궁.여비는 진작 아랫사람들에게 분부를 내린 상태였다.“전각 문을 닫아라.”자운이 물었다.“마마, 폐하를 기다리지 않으시옵니까?”그러자 여비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폐하께서 또 오실 것 같으냐?”황제가 그동안 힐방궁을 방문했던 건 죽은 아이, 린아의 여덟 살 생일이자 여덟 번째 기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 지났으니, 금영을 두고 다시 힐방궁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그 뒤로 또 보름이 지났고, 소녕전만 제외하고 후궁 모두 다시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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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8화

이때 서 황후가 입을 열었다.“폐하, 마침 잘 오셨사옵니다. 안 그래도 폐하께 상의드리고 싶은 일이 있었사옵니다.”황제가 서 황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서 황후가 웃으며 물었다.“이틀 뒤면 봄 사냥 행사가 있지 않사옵니까? 후궁에서 누구를 선발해 수행하게 하실 생각이신지요?”그러더니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영비가 함께 가면 물론 좋겠지만, 지금은 몸이 무겁지 않사옵니까? 달수를 헤아려 보니 벌써 석 달이 되었으니, 차라리 궁에 남아 편히 몸을 보양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그 말을 들은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곧바로 반박했다.“그럴 필요 없네. 황궁에서 사냥터까지는 반나절 길에 불과하니, 영비도 데려가겠네.”마침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봄이었다. 관례에 따라 황제는 매년 조정 신하들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춘산 사냥터로 나가 말을 타고 사냥하며 군신 간의 정을 다지곤 했다.예로부터 내려온 규칙인 만큼, 황제는 이를 깨뜨릴 생각이 없었다. 금영 때문에 행사까지 취소했다는 말이 돌면, 결국 더 큰 화가 되어 돌아올 테니 말이다.서 황후가 옅게 웃었다.“폐하의 뜻대로 하겠사옵니다. 그렇다면 다른 후궁들 중 누가 함께 갈지는 폐하께서 따로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지요?”태후가 웃으며 옆에서 거들었다.“이번에는 저도 함께 갈 것입니다. 사람을 넉넉히 데려가야 더 떠들썩하고 좋지 않겠습니까?”그 말을 들은 황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듯 답했다.“그렇다면 나머지 인선은 태후마마와 황후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서 황후는 그 말을 듣자 또다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황제가 그녀를 존중해 이 권한을 준 것 같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금영이 가는지 아닌지만 신경 쓸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었다.태후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웃었다.“황제, 듣기로는 요즘 영비 한 사람만 총애한다더군요. 후궁에는 비빈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황제가 보위에 오르기 전부터 곁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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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9화

황제는 이 일을 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수강궁에 온 것도 별다른 용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태후에게 문안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말했다.“태후마마, 아직 처리해야 할 나랏일이 있어 오래 머물지 못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남은 서 황후는 태후를 바라보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태후마마, 보십시오. 폐하의 마음에는 이제 영비밖에 없지 않사옵니까? 신첩과 후궁의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으신 듯합니다. 하물며 간택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태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너무 질투하지 말거라. 폐하께서 누구를 총애하시든, 태자의 자리는 결국 소한의 것이 아니더냐?”태후는 그저 가볍게 서 황후를 달랬다.그러나 그 말을 들은 서 황후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번 춘산 사냥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지금의 국면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소녕전 안.금영은 해수에게 짐을 챙기라 분부했다.“사냥터는 분명 도성보다 따뜻하지 않을 테니 옷은 넉넉히 챙겨 가야 하옵니다. 그리고 지금 찬바람을 맞으면 안 되는 시기이니, 더욱 조심하셔야 하옵니다.”해수는 짐을 챙기면서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렇게 한참 짐 싸던 그녀가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마마, 지금 회임 중이신데 정말 이 행사에 가셔야 하옵니까? 폐하께 궁에서 쉬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분명 허락해 주실 텐데....”금영은 고개를 저었다.“가야 한다.”그러나 해수는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는 듯했다.“먼 길을 오가셔야 하는데, 혹시 위험하지는 않겠사옵니까?”금영은 해수의 걱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궁에 남아 있는다고 해서 더 안전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황제의 곁에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만에 하나 그도 없는 궁에 혼자 남았다가는 서 황후가 또 무슨 비겁한 수단을 써 해치려 할지 알 수 없었다. 황제의 보호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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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0화

그러나 서 황후가 바라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황제는 마차에 오른 뒤 곧바로 마부석에 앉은 위명에게 분부를 내렸다.“출발하거라.”마차는 서 황후의 곁을 지나 천천히 멀어졌다. 그녀는 홀로 그 자리에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서둘러 표정을 추스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금영이 해수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오르려던 찰나였다. 화려한 마차 한 대가 천천히 옆에 다가왔다.“워!”위명이 고삐를 바짝 당기며 말을 멈췄고, 곧이어 손복안이 금영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영비마마, 폐하께서 마차에 오르시라 하십니다.”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금영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해수의 부축을 받기도 전에, 황제가 마차의 문을 걷어 올리며 몸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금영의 손목을 잡더니, 조심스레 그녀를 마차 안으로 끌어 올렸다.그 광경을 본 서 황후는 완전히 표정이 무너졌고 가슴에는 묵직한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마찬가지로 답답해진 사람은 또 한 명 있었다. 바로 태자였다.태자는 금영과 황제가 다정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위에 돌덩이가 얹힌 듯 무거워졌다.모자지간이라 그런지 참 마음이 통하는 황후와 태자였다.황제의 마차 안에는 흔들림을 덜기 위해 일부러 두툼한 깔개가 더 깔려 있었고, 금영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과자와 꿀에 절인 과일까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황제는 다시 푹신한 베개 하나를 집어 금영의 등과 허리 사이에 받쳐 주며, 편히 기대게 했다.금영은 지금 회임한 상태였다. 그런 그녀를 궐에 홀로 남겨 두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황제는 금영을 제 눈이 닿는 곁에 두고 직접 보살피기로 마음먹었다.그의 세심한 배려는 마차가 도성을 벗어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황제는 금영이 행여 지치기라도 할까 염려하여, 중간에 있는 쉼터에 마차를 세우고 한참을 쉬어 갈 수 있게끔 해 주기까지 했다. 그 지극한 보살핌 덕분에 금영은 먼 길을 가면서도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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