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701 - Chapter 710

710 Chapters

제701화

서씨 가문과 태후를 뒷배로 둔 서 황후와 맞서는 데 있어, 금영은 사실 그다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지금처럼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며 이따금 서 황후를 한 번씩 짓밟아 주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좋은 결과였다.다행히 앞날은 길었고, 그녀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언젠가는 반드시 서 황후를 완전히 제 발아래 짓밟을 것이다.식사를 마친 뒤, 황제는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아직 살펴보지 못한 상소문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평소라면 대부분 현청전에서 정사를 처리했겠지만, 오늘은 금영과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이에 황제는 손복안에게 명하여 상소문을 모두 금영이 머무는 소녕전으로 옮겨 오게 했다.금영은 곁을 지키며 황제를 위해 먹을 갈았다.황제의 미간이 점점 깊이 좁혀지는 것을 본 금영이 물었다.“폐하, 강남의 홍수가 심각하옵니까?”처음 귀신이 되었을 무렵, 그녀는 배명월에게서 삼 장 이상 떨어질 수 없었고 조정의 일에도 접할 수 없었다.그녀는 홍수에 관한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고, 전생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했는지는 더더욱 기억나지 않았다.그러나 또 다른 일 하나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머지않아 적국이 서북 변경을 침범했다.다행히 그때는 황제의 몸이 아직 건강했다. 그는 친히 군을 이끌고 안성으로 출정했다. 황제는 즉위하기 전부터 군영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황제가 직접 군을 이끌자, 단 한 번의 전투 만에 적군은 패퇴했다.그녀는 배명월을 따라 황제가 개선한 뒤 열린 축하연에도 참석했었다.황제가 말했다.“짐은 이미 태자에게 가서 이 일을 수습하라 명했다.”태자는 황위를 이을 후계자였다. 이러한 진휼은 민심을 얻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황제가 먼저 말하지 않았더라도, 태자가 스스로 나서 진휼을 맡겠다고 청했을 터였다.금영은 잠시 생각한 뒤, 말을 고르며 아뢰었다.“요즘 대녕에 우환이 끊이지 않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외적의 침입을 경계하셔야 하옵니다.”“북융은 우리를 멸하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사옵니다. 이처럼 좋은
Read more

제702화

금영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며 문득 가슴이 불안해졌다.회귀한 지도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생각해 보면 전생에 황제에게 닥쳤던 그 재앙까지, 어찌 아직도 삼 년이나 남았겠는가?“무슨 일이냐?”금영의 낯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황제가 손에 들고 있던 자호필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금영이 나직이 말했다.“폐하, 부디 용체를 잘 보전하시옵소서.”황제는 금영의 말이 다소 뜬금없다고 여겼다.그러나 이내 표정이 조금 굳어졌고, 목소리도 낮게 가라앉았다.“설마 짐이 나이가 들었다고 여기는 것이냐?”황제는 전에는 제 나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지만 금영과 함께하게 된 뒤로는 저도 모르게 그런 것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금영은 황제가 오해했음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설명했다.“신첩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사옵니다. 그저 폐하께서는 한 나라의 군주이시니, 국사를 돌보느라 고생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암중에서 폐하를 시해하거나 해치려는 자도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사옵니다.”금영이 말을 이었다.“신첩은 폐하께서 지나치게 무리하시거나 누군가의 암해를 당하실까 염려되옵니다.”황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너는 어찌 짐이 무탈하기를 바라지는 못하느냐?”금영은 물빛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폐하께서는 매사에 더욱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만일 폐하께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신첩은…”황제의 가슴이 순간 조여 왔다.금영이 이 말을 하는 모습이, 마치 진심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는 듯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금영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폐하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신첩은 다른 이들처럼 이 깊은 궁에 남아 쓸쓸히 수절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든 궁을 나갈 것이옵니다.”황제가 물었다.“궁을 나간 뒤에는 어찌할 생각이냐?”금영이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당연히 다른 사내에게 재가해야지요!”황제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거졌다.“배금영, 대체 누구에게 시집갈 생각이냐?
Read more

제703화

이것이야말로 진정 반가운 소식이었다.두 번째 반가운 소식은 수강궁에서 병을 요양하던 태후가 이제 막 큰 병에서 회복했다는 것이었다.다만 이 일은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었다.금영은 태후의 병이 진짜였는지 거짓이었는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요 며칠 조정과 후궁의 분위기는 지나치게 가라앉아 있었다.이에 중궁의 권한을 잠시 대리하고 있던 현비가 황실 연회를 마련했다.금영도 당연히 연회에 참석해야 했다.황실 연회는 요화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금영은 조금 일찍 도착했다. 현비만 먼저 와 있을 뿐, 다른 이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금영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랑 아래에 서 있었다.그때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원비마마!”금영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머리를 높이 하나로 묶은 유진설이었다.유진설은 다른 여인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고 활동하기 편한 붉은 무복만 입고 있었는데, 모습이 무척 단정하고 날렵했다.그런데 유진설의 곁에는 맹운산도 함께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맹운산의 눈길은 곧 금영의 눈에 띄게 불러온 배로 향했다.유진설이 팔꿈치로 맹운산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말을 마친 유진설은 몸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마치 금영과 맹운산을 위해 망을 봐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금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이곳은 다름 아닌 황궁이었다.입궁하기 전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눈과 귀를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의 금영은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비였다.얼마나 많은 시샘과 원망 어린 눈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금영과 맹운산이 마주쳤다는 사실도 머지않아 황제의 귀에 들어갈 터였다.그러나 이미 마주친 이상, 이제 와 피하려 해도 늦었다.금영과 맹운산은 한때 벗으로 지냈다.사실 금영은 지금도 맹운산을 자신의 소중한 지우로 여기고 있었다.맹운산이 금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금영아, 사흘 뒤면 신은 부친
Read more

제704화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금영은 여비와 마주쳤다.금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맹운산과 이야기를 나눌 때 유진설도 곁에 있었으니, 딱히 법도에 어긋난 일은 아니었다.하지만 여비라는 사람은 달랐다.금영에게 여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과도 같았다.입에 담지 못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여비는 금영을 힐끗 바라보더니 비꼬듯 말했다.“자네의 죽마고우를 만난 모양이군. 입궁한 것을 후회하는가?”금영은 말없이 여비를 바라보았다.역시 그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 없었다.금영이 불쾌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여비마마, 말씀을 삼가십시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어찌 이리 헛소문을 퍼뜨리십니까? 폐하께서 문책하실까 두렵지도 않으십니까?”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던 중, 금영은 여비의 시선이 자신을 넘어 먼 곳으로 향하는 것을 알아챘다.금영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서 황후가 태후를 부축한 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태후는 좀처럼 황실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그러나 오늘 연회에는 태후가 큰 병에서 회복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도 있었기에 태후를 모신 듯했다.이 광경을 본 여비가 목소리를 한층 높였다.“원비, 폐하를 들먹이며 본궁을 겁주려 하지 말게. 폐하께서 자네를 총애하신다 해도, 자네 때문에 본궁을 벌하시리란 법은 없네.”서 황후도 두 사람의 언쟁 소리에 이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서 황후는 태후에게 무어라 아뢴 뒤,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황후마마를 뵈옵니다.”금영과 여비가 함께 예를 올렸다.서 황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오늘은 황실 연회가 있는 날인데, 두 사람은 여기서 어찌 이리 소란을 피우는가?”여비가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원비가 맹 소장군과 사사로이 만났기 때문이옵니다. 신첩이 몇 마디 일러 주었더니,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이옵니다.”금영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거졌다.“본궁은 그저 맹 소장군과 유 아씨를 우연히 만나 두어 마디 나누었을 뿐이옵니다. 어찌 황실 연회에서 마주쳐 문안을 올리는 이마다 사사로이 만났다고 하시
Read more

제705화

금영은 입술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해수가 곧바로 아뢰었다.“여비마마께서 원비마마께 아이를 품을 운은 있어도 낳을 운은 없다고 하셨사옵니다.”여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이 천한 계집종아, 너는 늘 흑백을 뒤바꾸는구나. 본궁이 언제 원비의 이름을 입에 올렸느냐? 그 말은 본궁 자신을 두고 한 것이었다. 본궁은 팔자가 사나워 여덟 달이나 아이를 품고도 온전한 아이를 낳지 못했다. 이번에 원비가 회임한 것을 보고 그저 본궁의 기구한 운명이 떠올랐을 뿐이다.”금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일찍 세상을 떠난 그 아이는 여비에게 그야말로 목숨을 지켜 주는 부적이나 다름없었다.서 황후도 서둘러 분위기를 수습하며 말했다.“폐하, 금영이 오해한 것이 분명하옵니다. 여비는 분명 금영을 지목하지 않았사옵니다.”황제가 서 황후를 바라보며 호통쳤다.“수강궁에서 금족령을 받고 있어야 할 네가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이냐?”서 황후의 표정이 다소 난처해졌다.“태후마마께서 신첩에게 곁을 지키라 명하셨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황실 연회가 끝나면 신첩은 다시 수강궁으로 돌아가겠사옵니다.”황제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태후의 뜻이라 하니, 이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제는 금영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금영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금영아, 억울한 일이 있다면 숨김없이 말하거라. 짐이 네 억울함을 풀어 주마.”금영은 여비와 서 황후를 차례로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한통속이 되어 있었다.더구나 여비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방금 한 말에서 누구를 지목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금영이 입술을 다물었다가 말했다.“신첩은 억울한 일이 없사옵니다.”금영은 여비를 바라보았다.본래는 일찍 죽은 그 아이를 들먹여 여비의 아픈 곳을 한 번 찌르고 싶었다.그 일이 여비의 가슴에 박힌 가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잠시 생각한 끝에 결국 그러지 않
Read more

제706화

금영은 여기서 계속 소란을 피우며 황제가 서 황후를 엄벌하게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옹졸해 보일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차라리 당당하게 서 황후를 위해 간청하는 편이 나았다.겉으로는 용서를 구해 주는 듯 보이겠지만, 실상은 서 황후를 다시 한번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모두에게 서 황후가 잘못을 저질렀으나 자신이 너그러이 용서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황제가 금영을 바라보았다.어찌 금영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겠는가.그러나 황제의 눈빛에는 금영을 향한 너그러움이 서려 있었다.황제는 금영의 뜻에 맞추어 말을 이었다.“원비는 본래 마음씨가 곱다.”“황후가 이간질하여 원비의 태교에까지 지장을 주기는 했으나, 원비가 더는 따지지 않겠다 하니 이 일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라.”황제는 서 황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황후, 어서 원비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서 황후는 이미 황실 연회에서 이 일을 꺼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뭇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황제가 자신더러 배금영 그 천한 것에게 감사하라 하다니.이는 분명 자신을 깎아내리고 배금영을 치켜세우려는 것이었다.앞으로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대하란 말인가.차라리 계속 금족령을 받는 편이 나았다.그러나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서 황후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고맙구나, 원비. 예전에 본궁이 그토록 너를 아껴 준 보람이 있구나.”이는 오히려 금영을 깎아내리는 말이었다.금영이 은혜를 저버리고 입궁하여 황후와 총애를 다투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금영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황후마마, 별말씀을 다 하시옵니다. 지난 정을 생각해서라도, 다음에 폐하께 또 벌을 받으시면 신첩이 다시 황후마마를 위해 간청드리겠사옵니다.”서 황후는 금영의 말에 화가 치밀어 가슴이 답답해졌다.그때 태후가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에는 황후뿐만 아니라 지안도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황제, 이제 지안에게 정식으로 품계를 내려주시지요. 그래야 앞으
Read more

제707화

황제가 냉랭하게 말했다.“태후마마의 뜻은 감사히 받겠사오나, 소자는…”황제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곁에 있던 지안이 더는 참지 못했다.연달아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안은 당황하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태후마마, 황후마마,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안은 또다시 헛구역질했다.태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왜 이러느냐? 병이라도 난 것이냐?”그 모습을 본 금영은 잠시 멈칫했다.문득 머릿속에 대담한 추측 하나가 떠올랐다.예전 같았으면 이 모습을 보고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지안의 상태는 아무래도 회임한 여인과 흡사하지 않은가?서 황후의 낯빛도 순간 미묘하게 변했다.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떠올린 듯했다.서 황후가 곧바로 외쳤다.“태의!”마침 이 원사가 황실 연회에 참석하고 있었다.이 원사는 황급히 앞으로 나아가 지안의 맥을 짚었다.잠시 뒤, 이 원사가 아뢰었다.“지안 아씨께서 회임하셨사옵니다.”황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모두가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지안은 줄곧 궁에 머물고 있었는데, 회임했다는 말인가?대체 누구의 아이란 말인가?연회석에 앉아 있던 배명월은 고소하다는 듯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이 망신당하는 모습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표정이었다.배금영 저 천한 것이 전에는 태자부의 측비가 회임했다고 자신을 비웃더니, 이번에는 저 천한 것이 당할 차례였다!이 원사의 말을 들은 금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황제를 올려다보았다.황제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표정만으로는 기쁜지 노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금영의 시선을 느낀 황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금영의 눈빛에 서린 의심을 알아챈 황제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쥐었다.손에 가벼운 통증을 느낀 금영의 마음속에 형언하기 어려운 서러움이 치밀었다.‘이 못된 사내가, 도
Read more

제708화

서 황후는 수강궁에 머무는 동안 지안이 황제의 시침을 들 기회를 여러 차례 마련해 주었다고 여겼다.지안의 뱃속 아이도 아마 그때 생겼을 터였다.지안은 말을 반쯤 꺼내고도 더는 이어 가지 못했다.진실을 털어놓았다가 황후에게 맞아 죽을까 두려웠던 것이다.곁에 서 있던 이 원사가 가볍게 헛기침한 뒤 조심스럽게 아뢰었다.“달수를 따져 보면, 지안 아씨의 뱃속 아이는 이미 두 달이 넘었사옵니다.”한 달 전 수강궁에서 황제와 합방했다면, 설령 정말 황제를 모셨다 해도 두 달이 넘은 아이가 생길 수는 없었다.사람들은 이 원사의 말을 따라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지금은 유월 말이었다.두 달여 전이라면 사월이었다.사월이라면 춘산 사냥터에 머물던 때가 아닌가?서 황후는 순간 멈칫하더니 지안을 흘겨보며 꾸짖었다.“무엇을 그리 우물쭈물하느냐? 어서 말하지 못할까!”서 황후가 거듭 추궁했다.“말해 보거라! 춘산 사냥터에 있을 때 이미 폐하의 승은을 입었던 것이냐?”지안은 서 황후의 물음에 온몸을 흠칫 떨었다.이제는 더욱 입을 열지 못했다.황제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황후! 그만하라! 저 아이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짐에게 물어라. 짐이 누구에게 승은을 내렸는지는 짐이 누구보다 잘 안다!”황제가 다시 차갑게 못 박았다.“똑똑히 들어라. 짐은 저 아이에게 승은을 내린 적이 없다!”황제의 단호한 대답을 들은 금영도 속으로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금영이 막 한마디 보태어 서 황후를 궁지로 몰려던 순간, 현비가 한발 앞서 입을 열었다.현비의 단아한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폐하께서 승은을 내린 적이 없다고 하셨으니, 당연히 사실일 것이옵니다. 다만 지안이 회임했다면, 뱃속 아이의 아비가 누구인지 밝혀야 하지 않겠사옵니까?”현비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황후마마, 지안은 마마의 곁에 있던 사람이며 마마께서 직접 입궁시킨 아이이니, 마마께서도 사정을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겉으로 보기에 현비는 이 일을 염려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서
Read more

제709화

서 황후는 지안이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고 현비에게 살려 달라 청할 줄은 미처 몰랐다.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등을 돌린 듯한 모습에 서 황후는 체면이 땅에 떨어진 것 같아 몹시 분노했다.현비 역시 지안이 갑자기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줄은 몰랐다.현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지안 아씨, 본궁이 자네를 돕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네. 하지만 자네는 황후마마의 사람이니, 이 일을 어찌 처리할지는 결국 황후마마께서 정하셔야 하지 않겠는가.”지안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신녀의 뱃속 아이는… 이황자전하의 아이이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좌중이 일제히 경악했다.현비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 황후가 곤경에 빠진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그러나 지안의 말을 듣자 순간 굳어 버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금영 역시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웃음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꾹 다물고 참던 그때, 아랫자리에 앉아 있던 여비가 연달아 웃음을 터뜨렸다.“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로군요. 현비마마와 황후마마께서 사돈지간이 되실 줄은 미처 몰랐사옵니다.”현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서 황후의 낯빛도 그에 못지않게 험악했다.사돈은 무슨 사돈이란 말인가!두 사람은 궁에서 오랜 세월 겉으로는 웃고 속으로는 서로를 견제해 왔다.그런 두 사람이 어찌 사돈지간이 되기를 바라겠는가?현비가 어찌 제 아들이 서씨 가문과 얽히는 것을 달가워할 수 있겠는가!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 황후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불똥이 제게 튀었다.현비가 기뻐할 리 없었다.서 황후 역시 조카딸 하나의 생사 때문에 현비와 진심으로 손을 잡을 사람이 아니었다.지금 서 황후가 느끼는 것은 모욕감과 배신감뿐이었다.서 황후는 갑자기 지안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지안아, 말해 보거라. 이황자가 억지로 너를 범한 것이 아니냐? 사실대로만 말하면 본궁이 너를 위해 나서 주겠다!”금영은 서 황후를 힐끗 바라보았다.저것이 어찌 지안을
Read more

제710화

황제는 금영의 말을 듣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서 금영아, 너는 어찌했으면 좋겠느냐?”서 황후와 현비의 시선이 동시에 금영에게 향했다.누구도 이 일과 한발 떨어져 있던 금영이 먼저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금영은 탁자 아래에서 황제의 손을 끌어다 불러온 제 배를 만지게 한 뒤, 지안을 바라보며 아뢰었다.“지안의 뱃속 아이가 황실의 핏줄일 가능성도 있사오니, 우선은 궁에 머물며 몸을 돌보게 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이황자전하께서 돌아오신 뒤에 이 일을 다시 판단하시면 될 듯하옵니다.”황제 역시 서 황후와 현비의 다툼에 진력이 난 참이었다.그가 차갑게 명했다.“원비의 뜻대로 하라.”속마음을 말하자면, 예전의 금영은 지안이 하루라도 빨리 출궁하기를 간절히 바랐다.누가 자신과 총애를 다투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여인을 궁에 남겨 두고 싶겠는가?하지만 지금의 금영은 두렵지 않았다.지안의 뱃속에는 이미 소종의 아이가 있었다.황제가 아무리 분별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런 지안과 다시 얽히는 짓까지 할 리는 없었다.무엇보다 황제가 지안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어찌 오늘까지 아무 일도 없었겠는가?이번만큼은 선심을 쓰는 편이 나았다.지안의 일을 정리한 황제가 차갑게 말했다.“황후는 궁인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으니 금족령을 계속 받거라!”황제가 다시 덧붙였다.“태후마마의 병환도 나았으니, 예전처럼 서봉전에 머물러라.”“현비는…”황제가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대도 스스로 잘못을 돌아보거라. 소종이 돌아오면 이 일까지 함께 처결하겠다!”황실 연회가 끝나기도 전에 황후와 현비가 모두 벌을 받았다.오직 금영만이 황제의 곁에 앉아 있었다.조금 전의 볼거리가 워낙 흥미로웠던 터라, 금영은 온종일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았다.황제는 일을 처결하고 나자 더는 이곳에 머물 마음이 들지 않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그러나 한 걸음 만에 다시 돌아서더니 금영에게 손을 내밀었다.뭇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금영은 자리에서 일어
Read more
PREV
1
...
66676869707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