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801 - Chapter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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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1화

해수는 밖으로 나가 연고를 가져온 뒤 복령을 불러왔고, 자신은 직접 문밖을 지키고 섰다.금영은 이미 곤히 잠든 아기 황자를 한번 바라본 뒤 복령에게 손짓했다.복령이 곧 금영 앞으로 다가왔다.“마마, 무슨 분부가 있으시옵니까?”그러자 금영은 아무 말 없이 복령의 손부터 끌어당겼다.생칠이 피부에 닿으면 단순히 붉은 발진만 돋는 것이 아니었다.몹시 가렵고 따가워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복령의 손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아마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고 한동안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하지만 물에 담갔다고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증상이 더욱 심해져 있었다.금영은 연고 뚜껑을 열고 작은 나뭇조각으로 연고를 조금 떠 복령의 손등에 조심스럽게 발라 주었다.복령이 깜짝 놀라 황급히 말했다.“마마, 노비가…… 노비가 직접 하겠사옵니다.”“본궁이 하마.”금영은 짧게 답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본궁은 그저 생칠을 조금만 묻혀 발진 몇 개만 돋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쩌다 손이 이 지경이 된 것이냐?”그랬다.이번 생칠 사건은 서 황후의 계책도, 현비의 계책도 아니었다.처음부터 금영이 던져 놓은 미끼였다.금영은 궁 안에서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그것만으로도 시기와 질투를 사기에 충분한데 이제는 황자까지 낳았다.금영이라고 어찌 모르겠는가.이 후궁에는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자도, 아기 황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를 바라는 자도 결코 적지 않았다.차라리 자신을 노린다면 막아 내기라도 쉬웠다.정작 두려운 것은……그 모든 음모와 술수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황자에게 쏟아붓는 것이었다.언제 어떤 수단으로 염아를 해칠지 모르는 자들을 마냥 기다릴 바에는, 차라리 빈틈 하나를 일부러 내보이는 편이 나았다.그들에게 손을 뻗을 기회를 주고, 숨어 있던 자들을 제 발로 모습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이다.이번 일이 이 지경까지 커지고 나니 안 첩여라는 앞잡이는 물론이고, 여비도 현비도, 심지어 서봉전을 한 발짝도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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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한 번 크게 놀란 사람은 비슷한 것만 보아도 몸을 사리게 마련이었다.금영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현비와 서 황후가 다음번에 또 다른 꿍꿍이를 품으려 할 때마다 이번 일을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지는 것.이번 한 번으로 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금영은 복령의 손에 연고를 모두 발라 준 뒤 나직이 말했다.“이번에는 네가 고생이 많았다.”복령이 고개를 저었다.“마마를 위해 하는 일이니 노비는 조금도 힘들지 않사옵니다.”아무리 속이 깊어도 복령은 고작 열다섯이나 열여섯 살 된 아씨였다.아직 사람을 재고 따지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나이였다.금영이 조금 따뜻하게 대해 주자 어느새 마음을 다해 그녀를 따르게 되었다.물론 금영 역시 제 곁에 둔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잘해 주었다.전생에 겪은 일 때문에 처음에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경계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한번 제 사람이라고 인정한 뒤에는 이야기가 달랐다.금영은 그런 사람에게라면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 주었다.이 후궁에서 금영 같은 주인을 모시는 것은 겉으로는 어질고 온화해 보여도 속내를 종잡을 수 없는 서 황후를 모시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었다.금영은 손에 들고 있던 연고를 내려놓고 아기 황자 곁으로 다가갔다.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는 아직도 가시지 않은 두려움이 어렸다.복령이 조용히 말했다.“마마께서 미리 대비해 두셨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노비가 먹지도 자지도 않고 아기 황자를 지켜본다 해도 언제 어떻게 당할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옵니다.”복령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생칠은 마마께서 마련하신 수법이었지만, 안 첩여와 여비마마께서 아무 까닭도 없이 그 포대기에 손을 댄 것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좋은 뜻으로 그랬을 리는 없사옵니다.”그러다 문득 궁금하다는 듯 금영을 바라보았다.“마마께서는 두 분이 원래 어떤 수법으로 아기 황자를 해치려 했다고 생각하시옵니까?”금영이 담담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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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3화

“본분이라……”황제는 그 말을 듣고 입가에 옅은 비웃음을 머금었다.“황후는 안 첩여의 일도 그대가 말하는 본분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가?”말을 마친 황제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설마 이 일조차 모르는 척할 생각은 아니겠지?”그 말을 들은 순간 서 황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상처받은 얼굴로 황제를 바라보았다.“신첩도 알고 있사옵니다! 궁 안이 이토록 떠들썩한데 신첩이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사옵니까!”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목소리가 흔들렸다.“설마 폐하께서는 이 일이…… 신첩이 사람을 시켜 벌인 짓이라 의심하시는 것이옵니까?”서 황후의 얼굴에 서러운 기색이 짙어졌다.“폐하, 신첩은 십여 년 동안 황후의 자리를 지키며 늘 몸가짐을 삼가 왔사옵니다. 총애를 두고 남들과 다툰 적도 없고, 그동안 후궁도 별다른 풍파 없이 평온하지 않았사옵니까. 신첩이 어떤 사람인지 폐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옵니다.”“그런 신첩이 어찌 안 첩여를 시켜 황자를 해치려 하겠사옵니까?”말을 마친 서 황후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폐하! 정 신첩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얼마든지 벌하시옵소서! 신첩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사옵니다!”하지만 서 황후는 속으로 알고 있었다.황제가 지금 당장 자신을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을.황제에게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심뿐이었다.확실한 증거는 없었다.정말 자신을 가리키는 증거가 있었다면 황제가 이렇게 직접 찾아와 묻고 경고하는 데서 그쳤겠는가.“신첩이 무슨 말씀을 드린들 폐하께서 믿어 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안 첩여가 예전에 신첩에게 붙으려 했던 것은 사실이오나, 신첩이 금족령을 받은 뒤 후궁의 형세가 달라지자 곧 현비에게로 돌아섰사옵니다.”“그러니 이제 그 여인이 무슨 짓을 저질렀든 정말 신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사옵니다!”말을 이어 가던 서 황후는 급기야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황제는 눈앞에서 울고 있는 서 황후를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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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4화

태자가 입을 열었다.“어마마마, 방금 소자가 아바마마께서 서봉전에서 나오시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아바마마께서 어마마마의 안부를 살피러 오신 것이옵니까?”안부를 살피러 왔다는 표현은 참으로 절묘했다.서 황후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간신히 미소를 짜냈다.“그래.”태자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옵니다. 보아하니 아바마마께서 소인배의 이간질에 넘어가 어마마마를 의심하신 것은 아니었나 보옵니다!”서 황후는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이간질에 넘어가지 않았다고?정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면 황제가 어찌 황후의 자리까지 거론하며 그녀를 경고했겠는가!태자는 아직 서 황후의 이상한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어마마마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요? 오늘 넷째 아우의 만월연에서 누군가 넷째 아우를 해치려 했사옵니다!”“그나마 금영이가 미리 사람을 시켜 넷째 아우를 소녕전으로 돌려보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큰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옵니다.”태자는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한 듯한 얼굴이었다.서 황후는 눈앞의 태자를 바라보았다.관자놀이의 핏줄이 꿈틀거렸다.그녀는 이를 악문 채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넷째 아우라? 제법 살갑게도 부르는구나!”그제야 태자는 서 황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태자가 목소리를 낮췄다.“어마마마, 소자는 어마마마께서 금영이 입궁하여 원비가 된 일을 아직도 못마땅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금영의 탓이 아니옵니다.”“금영 역시 아무 잘못 없이 휘말렸을 뿐이옵니다.”태자가 이토록 금영을 감싸고도는 모습을 보자 서 황후와 배명월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되었다. 본궁은 피곤하구나. 태자도 이제 궁을 나가 보거라!”서 황후는 원래도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그런데 태자까지 찾아와 금영을 두둔하니 속이 더욱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분노가 치밀어 올라 가슴속이 들끓었고 입안에는 비릿한 피 맛까지 감돌았다.정성 들여 키운 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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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5화

배명월은 두 팔로 태자의 목을 감싸 안았다.그러나 그 눈빛 깊은 곳에는 예전과 같은 맹목적인 연정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어쩌면 처음부터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태자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었는지도 몰랐다.그녀가 진정 원했던 것은 태자라는 자리였다.오늘 만월연에서 배명월은 아직 태기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수모를 당했다.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지금의 몸으로는 회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어떻게든 태자를 유혹해 단 한 번이라도 동침할 수만 있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회임할 수 있었다!반드시 아이를 가져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태자부에서 그녀의 입지는 갈수록 위태로워질 것이고, 서 황후의 괴롭힘도 날이 갈수록 심해질 터였다.그 생각이 들자 배명월의 눈빛에 단단한 결의가 서렸다.태자는 품에 안긴 배명월을 바라보다 손을 들어 그녀의 눈썹과 눈매를 천천히 쓸어 보았다.그 손길이 너무도 다정하자 배명월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녀 역시 저도 모르게 수줍은 기색을 드러냈다.그때 태자의 낮고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너와 금영은 결국 자매인데…… 어찌 얼굴도 성정도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는 것이냐?”태자가 아쉬운 듯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조금이라도 닮았더라면 좋았을 것을.”태자가 문득 이런 말을 꺼낸 것도 오늘 만월연에서 누가 누구를 닮았는지를 두고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이황자는 자신과 닮지 않았고, 배명월 역시 금영과 닮지 않았다.그런데……사람들은 하나같이 금영의 아이가 자신과 어딘가 닮았다고 했다.그 생각이 떠오르자 태자의 가슴이 순간 조여 왔다.그 아이가 자신과 금영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태자의 말을 들은 배명월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하지만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야 했다.“전하께서 언니를 이토록 진심으로 생각해 주시니, 언니께서 아신다면 분명 크게 감동하실 것이옵니다.”생각해 보면 그 말은 제법 영리했다.배명월이 이 자리에서 입만 열면 금영을 헐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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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6화

금영은 그 말을 듣자 표정이 진지해졌다.그제야 공 상궁이 입을 열었다.“궁 안에 실제로 두 태의라는 분이 있었사옵니다. 말수가 적고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툴렀지만, 맡은 일만큼은 성실하게 하던 분이었사옵니다. 줄곧 약방에서 일하며 약재를 관리했는데, 구 년 전 어느 날 밤 당직을 서야 할 사람이 갑자기 서둘러 궁을 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사옵니다.”그 두 태의가 바로 복령의 부친이었다.공 상궁이 말한 내용은 복령에게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금영이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었다.정말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 아니라면 공 상궁이 이 깊은 밤에 직접 찾아왔을 리 없었다.금영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렇다면 두 태의는 사라지기 전까지 주로 어떤 일을 맡고 있었는가?”공 상궁이 감탄 어린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마마께서는 역시 총명하시옵니다.”단번에 핵심을 짚어 낸 것이다.공 상궁이 말을 이었다.“두 태의는 평소 약방에서 드나드는 약재를 관리했사옵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협방전에 계신 분의 약재를 고르고 처방에 맞춰 약을 짓는 일을 맡았사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금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구 년 전이라면…… 설마 그때가……”답은 이미 눈앞에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때라면 여비가 아이를 가졌던 시기가 아니던가?공 상궁이 다시 말했다.“두 태의가 사라지고 보름 뒤, 여비마마께서는 죽은 아이를 낳으셨사옵니다…… 당시에는 길고양이를 마주쳐 놀라는 바람에 태기가 크게 흔들렸다고 알려졌사옵니다.”금영은 공 상궁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홀연히 사라진 태의.그리고 때를 채우지 못하고 죽은 아이를 낳은 비빈.이 두 가지가 얽혀 있다면 그 뒤에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금영이 자꾸 사람의 악의를 먼저 의심한다고 탓할 수도 없었다.그녀는 애초에 이 궁 안에 마음 놓고 믿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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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7화

금영은 공 상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 흐릿한 눈동자는 금영을 보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녀를 통해 오래전의 옛 주인을 바라보는 듯했다.금영은 문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예전에 그녀는 공 상궁에게 선 귀비의 혼이 자신의 몸에 깃들었다고 거짓말한 적이 있었다.그렇게 해서 공 상궁을 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그때는 그저 공 상궁을 붙잡아 둘 수단이 필요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이제 와 생각하니 마음에 영 걸렸다.역시 사람은 마음에 거리낄 짓을 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한번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고 나면, 언젠가는 스스로 그 죄책감과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공 상궁이 나직이 물었다.“원비마마, 요즘은 저희 마마를 다시 꿈에서 뵌 적이 없으시옵니까?”선 귀비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이십 년 가까이 흘렀다.그런데도 공 상궁은 여전히 선 귀비를 두고 저희 마마라 불렀다.그 깊은 주종의 정은 마음을 뭉클하게 할 정도였다.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겉으로는 서 황후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고, 궁의 법도와 규율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며 누구에게도 좀처럼 자비를 보이지 않는 공 상궁에게 이토록 한결같고 뜨거운 충심이 남아 있을 줄을.금영은 입술을 달싹였다.한참이 지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상궁, 본궁은 이미 오래도록 선 귀비마마를 꿈에서 뵙지 못했네.”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하지만 본궁이 아는 선 귀비마마라면, 진범을 찾아 원수를 갚는 것보다 상궁이 무사하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더 바라실 걸세.”“상궁도 이제 연세가 적지 않네. 혹 궁을 나가고 싶다면…… 본궁이 자리를 마련해 주겠네. 궁을 나간 뒤의 살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금영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사실 계속해서 선 귀비가 꿈에 나타난다고 거짓말하기만 하면 공 상궁을 얼마든지 제 곁에 붙잡아 둘 수 있었다.궁 안에서 공 상궁 같은 숨은 패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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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8화

복령은 아기 황자를 해수에게 맡긴 뒤 금영을 찾아왔다.금영은 조금 전 공 상궁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복령에게 전해 주었다.복령은 멍하니 눈을 깜빡일 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공 상궁이 알려 준 것도 결국 앞으로 더 파고들어 볼 만한 단서 하나에 불과했다.정작 그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복령은 아직 나이도 어렸고 후궁의 복잡한 암투를 겪어 본 적도 없었다.지금으로서는 그저 막막하고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한참이 지나서야 복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공 상궁의 말씀은…… 부친의 일이 여비마마와 관련이 있다는 뜻이옵니까?”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것이다.”그러다 문득 한마디를 덧붙였다.“본궁도 안다. 너희가 여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궁 역시 그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여비는 워낙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성정이었다.금영이 입궁한 뒤로 얼마나 여러 번 속을 뒤집어 놓았는지 모를 정도였다.금영은 입궁한 뒤 줄곧 서 황후를 상대하는 데 마음을 쏟았고, 다른 비빈들과는 되도록 원만하게 지내려 했다.그런데 여비만큼은 금영을 마주칠 때마다 독설을 퍼붓고 먼저 시비를 걸어 왔다.금영이라고 남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여비가 지긋지긋한 것은 당연했다.하지만……금영 역시 생각 없이 감정부터 앞세우는 사람은 아니었다.여비는 입으로는 모질고 독한 말을 서슴지 않았지만, 정작 지금까지 금영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친 적은 없었다.오히려 몇 차례 은근히 경고를 해 준 적까지 있었다.한두 번이라면 우연이라 넘길 수도 있었다.하지만 금영이 아이를 낳던 날, 여비는 일부러 그 물을 엎어 버리며 바깥에서 들여온 물조차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그때부터 금영은 그것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금영은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제 사람들이 여비를 지나치게 미워한 나머지 섣불리 일을 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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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9화

금영이 조금 전 덥다고 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방 안의 숯불이 너무 세게 타오르고 있었던 탓이다.황제가 들어올 때 바깥의 찬 기운도 함께 스며들어 처음에는 오히려 한결 시원해진 기분이었다.하지만 지금은……“더…… 더워졌사옵니다.”금영의 두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온몸이 불 위에 올려져 달궈지는 듯 뜨거웠다.황제의 눈빛은 갈수록 깊어졌다.그 검은 눈동자 속에도 불길이 번진 듯했다.커다란 손이 금영의 몸을 제 쪽으로 더욱 바짝 끌어당겼다.그 순간 금영은 황제의 몸속에서 억누르기 힘들 만큼 뜨겁게 들끓는 기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황제의 힘차고 빠른 심장 소리마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듯했다.황제가 낮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금영아, 짐을 유혹하지 말거라.”그토록 애써 참는 황제의 모습을 보자 금영은 문득 웃음이 날 것 같았다.생각해 보면 자신과 황제가 제대로 밤을 함께 보낸 것은 아무리 헤아려도 고작 두 번뿐이었다.그 밖의 친밀함은 그저 당장의 갈증만 잠시 달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나중에는 황제조차 그것마저 함부로 하지 못했다.한번 달래고 나면 오히려 갈증만 더욱 심해졌으니 말이다.결국 금영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맑고 청아한 웃음소리에는 평소와 달리 묘하게 부드럽고 애교 어린 기운이 묻어났다.금영은 두 팔로 황제의 목을 감싸고 발끝을 살짝 세웠다.그리고 황제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폐하.”황제의 몸이 순간 굳었다.그가 이를 악문 채 낮게 말했다.“배금영!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금영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신첩은 그저 어명을 거역하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궁금해서 그러옵니다.”“폐하께서는 신첩더러 유혹하지 말라 하셨지만…… 신첩은 그 명을 따르고 싶지 않사옵니다.”품 안의 금영은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대담하게 굴었다.마치 발톱을 세운 어린 짐승처럼 몇 번이고 황제가 간신히 지켜 내고 있던 마지막 선을 건드렸다.황제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배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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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0화

결국 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버렸다.금영은 황제에게 단단히 붙들린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의 거센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워낙 오랫동안 부부의 정을 나누지 않았던 탓도 있었고……아니, 애초에 제대로 경험해 본 적부터 많지 않았다.그래서인지 황제의 품에 완전히 붙들리고 나자 금영은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금영은 이 뜨거운 불길이 꽤 오래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조금 힘들더라도 참아 낼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뜻밖에도……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이 금세 잦아들었다.금영은 순간 어리둥절했다.‘폐하께서…… 설마 정말로……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겠지?’다행히 황제는 금영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오가는지 알지 못했다.알았더라면 오늘 밤이 이리 쉽게 끝나지는 않았을 터였다.황제는 그저 금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아직 몸이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라 여긴 것이다.태의가 괜찮다고 하기는 했지만, 궁의 태의들은 아무래도 황제의 뜻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궁비의 몸을 진심으로 얼마나 세심하게 헤아렸을지는 알 수 없었다.황제는 금영의 몸을 염려해 욕심을 거두고 일찍 멈춘 것뿐이었다.그런데도 엉뚱한 오해를 받고 있었으니 참으로 억울할 노릇이었다.그리고 그런 오해를 한 사람은 금영 하나만이 아니었다.문밖을 지키고 있던 손복안과 위명 역시 황제가 씻을 물을 들이라 명하자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위명이 작게 중얼거렸다.“폐하께서 들어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씻을 물을 들이라 하시는 겁니까……”손복안은 그 말을 듣자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러고는 얼굴을 굳히며 목소리를 낮췄다.“위 총령, 목숨이 아깝지 않으십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십니까!”손복안은 순간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전에 황제가 후궁을 찾지 않는 것이 몸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혹시 위명이 퍼뜨린 것이 아닐까 하고.입으로는 위명을 호되게 나무랐지만, 손복안의 머릿속에서도 어느새 엉뚱한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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