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811 - Chapter 820

890 Chapters

제811화

금영이 협방전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아니……처음이 아니었다.귀신으로 떠돌던 때 한 번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그때 여비에게 순장을 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금영은 황제가 죽음을 앞두고 정신이 흐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여비를 순장시키는 데 동의할 수 있단 말인가.이 궁에서 어느 비빈이 석연치 않게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여비만큼은 함부로 죽게 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여비는 동이 출신이었다.동이는 비록 작은 나라였고 대량의 속국이었지만 상당히 부유한 데다 군세까지 강성했다.그러니 여비가 궁 안에서 아주 큰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차라리 상징적인 존재처럼 궁에 두고 대우할지언정 순장시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설령 언젠가 큰 죄를 저지른다 해도 동이로 돌려보내면 그만이지, 함부로 목숨을 거둘 수는 없었다.자칫 동이가 이를 빌미로 다른 마음을 품고 움직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대량은 이제 겨우 편안한 날을 조금 보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북융조차 아직 완전히 평정하지 못했는데 동쪽에서까지 분쟁이 일어난다면 제 발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때 금영이 협방전에 찾아왔던 것도 사실 여비가 죽은 뒤 귀신이 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아쉽게도……금영 자신을 제외하면 죽은 뒤 귀신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 생각에 이르자 금영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마치 자신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는 듯했다.“마마?”협방전에 들어온 뒤부터 금영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자 해수가 조심스럽게 불렀다.금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에 떠오른 묘한 느낌을 애써 떨쳐 냈다.다시 살아 돌아온 지도 벌써 일 년이었다.그 일 년 사이 금영은 입궁했고, 아이까지 낳았다.그러다 보니 귀신으로 떠돌던 시절의 감각도 어느새 마음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이제야 정말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실감이 점점 또렷해지는 듯했다.금영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자운이 문 앞에서 그녀를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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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금영은 담담하게 말했다.“해수야, 물건은 다시 거두어라.”애초에 연고를 가져온 것은 구실에 불과했다.금영이 이곳까지 찾아온 진짜 목적은 구 년 전의 일을 떠보기 위해서였다.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 수 있을지 생각하던 찰나, 여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제는 왜 본궁을 도와준 것인가?”금영이 여비를 바라보았다.여비가 말을 이었다.“그대가 어제 서둘러 안 첩여를 지목하지 않았더라면, 본궁은 자칫 황자를 해치려 했다는 죄까지 뒤집어쓸 뻔했네.”아무리 여비의 신분이 특별하다 해도 황자를 해치려 했다는 죄가 확실해진다면 황제 역시 그녀를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금영이 차분하게 답했다.“본궁은 여비마마께서 그런 분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여비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그대가 어찌 본궁이 아니라는 걸 아는가? 본궁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생칠로 그대의 아이를 해치려 했을 수도 있지 않나.”금영은 속으로 생각했다.당연히 알고 있었다.생칠은 애초에 자신이 꾸민 일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 사정까지 여비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다.금영은 여비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본궁은 아이를 잃어 본 어미라면 다른 어미에게까지 자식을 잃는 고통을 안기지는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사실 금영 자신도 그 말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이 세상에는 여비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서 황후 같은 사람도 있었다.제 자식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남의 자식이라면 거리낌 없이 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그 말을 들은 여비의 눈빛이 순간 아득해졌다.아마 오래전 잃었던 그 아이가 떠오른 모양이었다.금영이 그런 여비를 바라보며 물었다.“여비마마께서는 당시 누가 아이를 해쳤는지 알아내고 싶지 않으십니까?”여비가 금영을 바라보며 낮게 되물었다.“해쳤다고?”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천천히 물었다.“구 년 전,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마마께서는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여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었다.“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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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금영이 입을 열었다.“여비는 아이를 잃은 일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오늘 여비가 보인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해수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그 일이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진상을 알아보지 않으신 것이옵니까?”금영이 말했다.“그녀가 알아보지 않았다고 네가 어찌 아느냐?”“본궁은 공 상궁이 남몰래 돕고 있는데도 알아낸 것이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여비야 오죽하겠느냐.”후궁의 비빈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세력이 있었고, 뒤를 받쳐 줄 가문도 있었다.하지만 궁에서 안하무인으로 구는 여비를 보면 정작 곁에 쓸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 듯했다.서 황후나 현비가 굳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황제와 조정의 대신들이 여비가 대량 조정 안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결국 여비는 겉으로만 화려할 뿐 실속은 없는 처지였다.그런 그녀가 혼자 힘으로 구 년 전의 진상을 밝혀내려 했으니 어찌 쉬웠겠는가.물론 금영이 여비에게 접근한 것도 동정해서는 아니었다.이 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넘쳐 나는 동정심이었다.금영에게는 여비를 칼로 삼아 서 황후를 찌를 생각도 있었다.“이제 여비가 본궁이 호의로 내민 연고를 받아들였으니, 오늘 본궁이 한 말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언젠가 본궁을 믿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금영이 옅게 웃었다.구 년 전의 일이 순조롭게 파헤쳐진다면 꽤나 볼 만한 판이 벌어질 터였다.게다가 구 년 전에는 금영이 아직 입궁하기도 전이었다.아무리 일이 커져도 그 불똥이 금영에게 튈 까닭은 없었다.이제는 그저 여비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협방전을 나온 금영은 곧장 돌아가지 않고 어화원으로 향했다.그동안 좀처럼 밖을 나서지 못해 답답함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사실 아이를 낳고 산후 몸조리를 시작한 뒤에만 외출을 삼간 것이 아니었다.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한 뒤부터 금영은 이미 바깥출입을 크게 줄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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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해수가 웃으며 말했다.“마마께서 뭐가 그리 무서우시겠사옵니까.”“저분들이 먼저 마마께 실례를 범했으니 마음이 불안해서 겁을 먹은 것이옵니다.”말을 마친 해수가 앞쪽을 바라보다가 눈을 반짝였다.“마마, 저기 보시옵소서. 앞에 납매 한 그루가 있사옵니다. 가서 한번 보시겠사옵니까?”금영은 방금 전의 일을 그다지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그대로 천천히 납매나무 아래로 걸어갔다.노란 옥을 빚어 놓은 듯한 꽃들이 때맞춰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가지와 꽃잎 위에는 아직 희끗희끗 눈이 쌓여 있어 더욱 운치가 있었다.금영은 한동안 납매꽃을 바라보았다.볼수록 마음에 들었다.그녀는 뒤따르던 내관에게 분부했다.“가서 가위 하나 가져오너라.”오늘 금영을 따라나선 내관은 모두 넷이었다.한 명을 보내도 곁에는 아직 셋이나 남아 있었다.금영은 납매나무 아래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마침 이날 태자도 태후와 서 황후께 문안을 올리기 위해 궁에 들어와 있었다.태후의 처소로 가려면 어화원을 가로질러야 했다.길을 걷던 태자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멀지 않은 납매나무 아래 두 사람이 서 있었다.그중 한 사람은……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금영이었다.태자의 발걸음이 잠시 굳었다.본래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뜻밖에도 방향을 틀어 금영 쪽으로 걸어갔다.뒤따르던 신귀안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전하, 여기는 어화원이옵니다! 원비마마 곁에는 시종들도 있사옵니다. 혹시 폐하께서 아시기라도 하시면……”태자는 담담히 말했다.“원비마마도 이제는 내게 웃어른이시다. 마주쳤으니 문안을 올리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겠느냐.”신귀안은 태자의 뒤를 따르면서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하필이면 왜 저분께 문안을 올리겠다는 것인가!예전의 신귀안은 태자에게 금영까지 태자부로 들이라 여러 차례 부추긴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의 금영은 아무런 뒷배도 없는 서녀에 불과했다.세월이 흐르고 형세가 달라진 지금, 금영은 이제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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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그렇게 생각하자 태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씁쓸함이 조금 가셨다.대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달콤함과 애틋함이 피어올랐다.금영의 마음속에 이토록 자신이 자리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 그녀를 제 곁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금영은 이 벽옥 팔찌의 진짜 내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사실 황제는 금영에게 수많은 진귀한 물건을 내렸고, 팔찌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그런데 금영은 이 벽옥 팔찌가 조부가 자신에게 남긴 선물이라 여겼다.그래서 더욱 뜻깊게 생각해 줄곧 손목에 차고 다녔던 것이다.조부는 해마다 금영의 생일이 되면 선물을 하나씩 마련해 주곤 했다.조부가 세상을 떠난 그해에도 저택에 금영의 선물을 남겨 두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금영이 저택으로 돌아온 뒤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당시 금영의 처지도 난처해진 터라 굳이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그런데 올해, 조부의 책상 위에 있던 목함이 뜻밖에 나타났고 그 안에는 이 벽옥 팔찌가 들어 있었다.그 때문에 이런 오해까지 생기고 만 것이다.금영은 태자가 여전히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싸늘하게 말했다.“태자전하께서 가지 않으시겠다면 본궁이 가겠습니다.”태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그저 이곳을 지나던 길에 원비마마를 뵙고 문안을 올리러 왔을 뿐이옵니다. 마마의 흥을 깨뜨릴 생각은 없었사오니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태자가 손을 놓자 눌려 있던 나뭇가지가 가볍게 흔들렸다.순간 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우수수 떨어져 금영의 머리 위를 하얗게 덮쳤다.금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태자는 정말 자신과 상극인 모양이었다.전생에는 태자와 혼약을 맺었다가 결국 그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그런데 이제는 혼약도 사라졌건만 마주치기만 하면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다.정 누구 하나 괴롭혀야겠다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는가.이를테면 배명월이라든가!해수가 서둘러 금영의 머리와 옷자락에 묻은 눈을 털어 주었다.금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에서 끓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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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금영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신첩은…… 조금도…… 우연 같지 않사옵니다.”황제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우연이 아니라고?”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금영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황제의 눈동자에 짙게 내려앉은 어둠에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이게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얼마 전 진국공부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지 않았던가.우연이 아니라고 해 봐야 황제가 믿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금영 자신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황제가 금영을 바라보다 문득 서늘하게 웃었다.그 웃음에는 평소의 온화함이 조금도 없었다.대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냉기가 배어 있었다.그제야 금영은 새삼 깨달았다.황제가 아무리 자신에게 다정하다 해도, 천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황제의 위엄은 함부로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금영은 그저 오늘 있었던 일을 먼저 솔직히 털어놓으려 했을 뿐이었다.훗날 누군가 이 일을 빌미 삼아 자신에게 덫을 놓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은……자신이 너무 먼 앞날까지 걱정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판국에 무슨 훗날을 걱정한단 말인가.당장 눈앞의 고비부터 넘기기 어려워 보였다.황제가……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황제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짐에게 말해 보거라. 둘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느냐?”금영이 깜짝 놀라 황급히 답했다.“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사옵니다!”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위험한 기색이 번졌다.“그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금영이 서둘러 덧붙였다.“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사옵니다! 태자전하께서 그저 신첩에게 문안을 올리셨을 뿐이옵니다.”“예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느냐?”금영은 그 말을 듣자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했다.예전이라니!자신과 태자의 과거는 이제 금영에게도 전생처럼 아득한 일이었다.대체 태자와 무슨 옛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단 말인가.금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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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금영이 막 책상 앞까지 걸어갔을 때였다.밖에서 손복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폐하, 태자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금영의 발걸음이 그대로 멎었다.안색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누…… 누가 왔다고?’‘태자 저 재앙 덩어리, 수강궁으로 간 것 아니었나? 그런데 어찌 벌써 현청전까지 온 거지?’금영은 고개를 돌려 황제를 한번 바라보았다.황제의 얼굴은 먹물이 뚝뚝 떨어질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현청전 안의 공기마저 숨이 막힐 만큼 무겁게 내려앉았다.황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금영은 조금 전 그가 했던 말대로 먼저 물러날 생각이었다.금영이 전각 문 앞까지 걸어가 손을 뻗었다.막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뒤에서 황제의 손이 뻗어 와 금영의 손을 그대로 문 위에 눌러 잡았다.금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문 쪽으로 밀렸다.황제는 곧바로 몸을 숙여 금영에게 바짝 다가왔다.그리고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목소리에는 어쩐지 억울하고 서운한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가지 마라.”금영은 기가 막혔다.억울한 사람은 자신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먼저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이제 와서는 마치 자신이 지아비와 아이를 버리고 달아나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금영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한마디도 채 꺼내기 전에 황제의 뜨거운 입술이 먼저 내려앉았다.손복안은 안으로 통보를 올린 뒤에도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자 태자를 슬쩍 바라보았다.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태자를 돌려보낼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던 참이었다.그런데 마침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위명이 손복안을 한번 흘끗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폐하! 태자전하께서 뵙기를 청하시옵니다!”‘저 간신배, 아까는 목소리를 어찌나 작게 냈는지 폐하께서 아예 못 들으신 모양이군!’위명은 외치고 난 뒤 제법 뿌듯한 얼굴로 손복안을 바라보았다.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잘 보고 배우십시오!’손복안은 어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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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태자의 목소리가 전각 안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금영은 맑은 두 눈에 엷은 물기를 머금은 채 눈앞의 황제를 바라보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황제의 가슴이 순간 조여 왔다.조금 전 자신이 금영을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황제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스쳤다.금영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다.금영을 괜히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었다.평소 단정하고 온화하며 행동 하나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자신은 대체 금영에게 무슨 화를 내고 있었단 말인가.황제는 천천히 금영을 놓아주며 나직이 말했다.“짐이 잘못했다. 금영아, 네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거라.”그런 황제를 보자 금영은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날 것 같았다.“정말 신첩 마음대로 해도 되옵니까?”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금영의 화만 풀린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이상하게도 늘 먼저 화를 내는 쪽은 황제였지만, 금영이 서럽고 속상한 얼굴을 하는 순간 아무리 큰 잘못이라도 전부 자신의 잘못이 되고 말았다.황제는 이미 금영을 놓아준 상태였다.그런데 이번에는 금영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먼저 두 팔을 뻗어 황제의 목을 감쌌다.살짝 힘을 주어 그 고고한 머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더니 그대로 황제의 어깨를 힘껏 깨물었다.전각 안은 숯불을 넉넉히 피워 따뜻했고 황제가 입은 옷도 그리 두껍지 않았다.갑작스레 제대로 한입 깨물린 황제가 통증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말소리라면 일부러 낮출 수 있었겠지만, 미처 참지 못한 그 신음은 희미하게나마 문밖까지 새어 나갔다.밖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손복안에게는 이제 웬만한 일쯤은 놀랍지도 않았다.그래도 그는 저도 모르게 태자를 한번 바라보았다.태자전하는 설마 원비마마께서 지금 현청전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태자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바닥에는 노란 납매 꽃잎 몇 장이 흩어져 있었다.금영이 안에 있었다.태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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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황제는 금영을 가로로 안아 들고 내전으로 향했다.태자에게 금영이 이미 자신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닫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금영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현청전 문밖에서는 더 이상 안쪽의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그곳에 무릎 꿇고 있는 태자의 마음은 여전히 칼로 베이는 듯 아팠다.하늘에서는 눈송이가 소리 없이 흩날렸다.태자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 하나하나가 천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차디찬 눈발이 날리는 전각 밖과 달리, 현청전 내전의 침상 주위에는 어느새 따스한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마지막에 이르러 금영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분명 황제와 자신은 화가 나 있지 않았던가?서로 언짢아했고, 다투기까지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어쩌다……그 화풀이가 황제의 침상 위까지 이어진 것이란 말인가?나중에도 금영은 그 까닭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다.그저 자신이 바다 위의 작은 배가 된 것만 같았다.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작은 배.나직하고 부드러운 숨소리 사이로 어느새 봄날 같은 한때도 서서히 막을 내렸다.금영은 황제의 품에 기대 누운 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아무래도 소문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황제는 예전에 전장을 누비며 싸우다가 역시 몸을 상한 듯했다.그러니 후궁을 좀처럼 찾지 않았던 것도 이해가 갔다.예전에 자신과 함께했던 두 번은……아마 처음이라 새로웠던 탓에 평소보다 욕심을 조금 더 부렸던 것이겠지.지금의 모습이 오히려 평소의 상태일지도 몰랐다.하지만 황제의 체면이 있으니 금영은 당연히 이 일에 대해 입 밖에 낼 생각이 없었다.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황제는 그녀가 계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황제가 품 안의 금영을 내려다보며 나직이 물었다.“왜 자꾸 짐을 보는 것이냐?”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물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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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태자는 여전히 현청전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어깨 위에는 어느새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곳에 무릎을 꿇은 지도 벌써 두 시진 가까이 되어 가던 참이었다.전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태자가 고개를 들었다.마침 흰 여우털 외투를 걸친 금영이 안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금영의 발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그러나 이내 눈을 밟으며 태자의 앞을 그대로 지나갔다.처음부터 끝까지 태자에게 단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태자는 금영이 지나간 자리에 선명하게 남은 발자국을 바라보았다.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쓰라림이 어렸다.그때 전각 안에서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너라.”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에 태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신귀안이 황급히 다가와 부축하려 했다.하지만 태자는 신귀안의 손을 뿌리쳤다.그리고 눈이 가득 쌓인 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힘겹게 제힘으로 일어섰다.태자가 전각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황제는 이미 책상 뒤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책상 위에는 납매 한 아름이 한창 곱게 피어 있었다.은은한 향기가 현청전 안을 가득 맴돌았다.“아바마마.”태자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잔뜩 메말라 있었다.황제가 태자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짐이 어찌하여 너를 벌했는지 아느냐?”그 말을 들은 태자가 황급히 해명했다.“아바마마, 모두 소자의 잘못이옵니다. 소자가 원비마마께 말을 걸지 말았어야 했사옵니다. 이 일은…… 원비마마와 아무 상관이 없사옵니다.”조금 전 금영은 전각 안에서 나왔고, 이제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설마 아바마마께 이미 벌을 받은 것인가?황제가 눈을 들어 태자를 바라보았다.젊은 태자의 눈매와 이목구비는 자신을 쏙 빼닮아 있었다.황후와 평범한 부부처럼 남녀 간의 정을 나눈 적은 없다 해도, 황제는 여전히 태자를 아꼈다.태자는 그의 첫 아이였다.황제가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 가르치고 길러, 훗날 나라를 맡길 생각으로 세운 태자였다.금영과 얽힌 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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