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951 - Chapter 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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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1화

금영은 옅게 웃었다.서 황후의 행동이 유난히도 유치하게 느껴졌다.그래도 한 나라의 국모인데, 설마 지금 이 수라상에서 자신과 황제의 총애를 두고 다투려는 것인가?금영은 살짝 눈을 내리깔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제는 그런 금영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직접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놓아 주었다.“금영아, 입맛이 없느냐?”서 황후의 낯빛이 순간 굳어졌다.문득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금영과 서 황후가 은근히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태자는 줄곧 금영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그 시선은 금영을 꿰뚫기라도 할 듯 집요했다.금영이 웃으며 말했다.“폐하, 신첩은 예전에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믿게 되었사옵니다.”그러고는 다시 한마디를 덧붙였다.“아무래도 저희는 결국 한 식구가 될 운명이었나 보옵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폐하와 황후마마, 태자전하까지 모두 신첩과 한 식구가 되었으니 말이옵니다.”서 황후의 얼굴이 또다시 어두워졌다.한 식구라니!대체 누가 배금영 저 천한 계집과 한 식구가 되고 싶단 말인가!황제는 한 손을 아래로 내려 금영의 손목을 가볍게 쥐었다.금영은 자신이 조금 전 너무 노골적으로 말을 꺼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아마 황제도 그만 장난치라는 뜻으로 자신을 말리는 것이리라.하지만 금영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한마디를 더 보탰다.“어쩌면 이것도 인연이겠지요. 황후마마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사옵니까?”서 황후가 미소를 지었다.“원 귀비 말이 맞구나. 우리에게는 분명 인연이 있지.”“그런데 황후마마께서는 어찌 수라를 들지 않으시옵니까? 입맛이 없으신 것이옵니까?”금영이 눈을 깜빡이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서 황후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했다.“조금 전에 다과를 많이 먹어서 영 입맛이 없구나.”금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태자를 바라보았다.“그렇다면 태자전하께서는 아직 수라를 들지 않으셨으니 조금 더 드시옵소서.”금영은 일부러 태자를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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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2화

곁을 따라가던 조씨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조씨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며 조심스레 두 사람을 말렸다.“황후마마, 태자전하, 하실 말씀이 있으시더라도 서봉전으로 돌아가신 뒤 말씀하시옵소서. 이곳은 어화원이옵니다. 혹여 다른 이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옵니다.”조씨가 한참을 달래고 만류한 끝에야 겨우 두 사람을 서봉전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서봉전에 돌아온 뒤, 서 황후는 태자를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부자는 둘 다 배금영 저 천한 계집에게 혼이라도 빼앗긴 것이냐! 너는 본궁을 어미로 여기기나 하는 것이냐!”태자는 순간 멈칫했다.서 황후가 사람을 두고 저토록 험한 말을 입에 올릴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한참 뒤에야 태자가 입을 열었다.“어마마마, 소자가 어마마마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잘못이옵니다. 하지만 오늘 일은 금영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사옵니다.”서 황후도 그제야 조금 이성을 되찾은 듯 얼굴이 한결 누그러졌다.“나도 화가 치밀어 그랬다. 하지만 네가 아직도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다면 결국 화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그러나 태자는 말했다.“아바마마께서는 금영이보다 연세가 많으시니, 언젠가는 때가 오지 않겠사옵니까.”서 황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태자를 바라보았다.태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배금영 저 천한 계집 때문에 이 아이가 이토록 정신을 놓아 버렸단 말인가?서 황후는 손을 치켜들어 태자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태자!”태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어, 어마마마?”그제야 서 황후도 정신을 차렸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배명월이 아니라 태자였다.조금 전의 기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서 황후는 힘없이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조씨가 서둘러 말했다.“태자전하, 부디 황후마마를 탓하지 마시옵소서. 마마께서도 전하를 염려하셔서 그러신 것이옵니다.”서 황후가 손을 내저었다.“돌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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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다만 신들이 이런 사소한 다툼에 직접 나서지 않을 뿐이었다.황제가 말했다.“그렇다면 금영이는 오늘 짐이 무섭다고 느꼈느냐?”금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예?”황제가 웃었다.“짐이 오늘 태자에게 서가의 일을 조사하게 하지 않았느냐. 짐이 너무 매정해서 아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그제야 금영은 황제의 뜻을 알아차렸다.잠시 말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폐하, 신첩은 폐하께서 태자전하를 위해 그러신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겉으로만 보면 황제가 태자를 서가를 베어 내는 칼로 쓰려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실상은 달랐다.황제는 단 한 번도 태자를 바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그렇기에 오히려 태자에게 결단을 내리고 서가와 선을 긋도록 몰아붙이는 것이었다.그래야 훗날 서가가 무너진다 해도 태자는 여전히 태자로 남을 수 있었다.서가 때문에 함께 휘말리는 일도 없을 터였다.무엇보다 황제가 이토록 서가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단지 대량의 강산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태자를 위해서이기도 했다.태자는 황제만큼 냉정하고 단호한 성정이 아니었다.훗날 태자가 황위에 오른다면, 서가에게 휘둘리고 억눌릴 가능성이 컸다.황제는 조금 뜻밖이라는 듯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이는 짐이 태자를 위해 이러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짐은 네가 속으로 짐을 인정머리 없는 아비라 여길 줄 알았는데.”금영은 황제의 곁에서 먹을 갈고 있었다.그녀는 손을 뻗어 황제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당장의 일만이 아니라 먼 훗날까지 헤아려야 한다고 하지 않사옵니까.”“폐하께서는 좋은 아버지이시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옵소서. 태자전하께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폐하의 깊은 뜻을 알아주실 것이옵니다.”황제가 낮게 코웃음을 쳤다.“그리 좋은 아비도 아니다.”“짐이 오늘 태자를 남겨 함께 수라를 들게 한 것도, 짐과 금영이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하려던 것이었다. 다시는 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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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4화

순식간에 태화전 안의 분위기가 들끓기 시작했다.서 승상의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다.황제는 아무 말 없이 찻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그 모습을 본 손복안은 곧바로 뜻을 알아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정숙하시옵소서!”그제야 황제가 여러 신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태자의 몸으로 스스로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청했는데, 짐이 이를 막는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태자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지 않겠는가?”말을 마친 황제는 다시 서 승상을 바라보았다.목소리는 뜻밖에도 제법 온화했다.“서 승상, 경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서 승상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결국 난처함을 감춘 채 두 손을 모아 황제를 향해 아뢸 수밖에 없었다.“폐하의 말씀이 지당하시옵니다.”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짐이 태자의 청을 윤허하겠다. 삼사에 명하노니 반드시 태자의 조사에 협조하도록 하라.”조회가 끝난 뒤.황제는 태자를 잠시 남겨 두었다.그는 태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태자, 오늘은 짐을 실망시키지 않았구나. 앞으로도 짐을 실망시키지 말거라.”태자는 평소 누구보다 위엄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하더니, 순간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솟구쳤다.‘아바마마께서 나를 이토록 높이 평가하고 계셨단 말인가?’‘그렇다면 내가 택한 길이 옳았던 모양이다!’*그 시각 서 승상은 이미 서 황후를 만나러 서봉전에 와 있었다.황실에 시집온 뒤에는 혈육의 정보다 신분의 높고 낮음이 앞서는 법이었다.이를테면 영안후가 금영을 만나면 신분에 맞게 깍듯이 예를 갖춰야 했다.하지만 그런 법도는 영안후처럼 무능한 사람에게나 온전히 통하는 것이었다.서 황후는 자신이 황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태자 역시 태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 모두 서가의 세력 덕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서가의 세력이 아니었다면 황후의 자리가 어찌 자신에게 돌아왔겠는가.서가를 잃고 나면 무슨 힘으로 현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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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왜겠느냐?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 폐하께서 우리 서가를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하신 게다. 이제 우리 서가를 치려 하시는 것이야!”서 승상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서 황후가 달래듯 말했다.“아버지, 너무 깊이 생각하시는 것일 수도 있사옵니다. 폐하께서 근래 본궁과 마음이 멀어지셨다 해도 태후마마께서 계시지 않사옵니까.”“폐하께서는 태후마마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서가를 어찌하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얼마나 효심이 깊으신지는 아버지도 잘 아시지 않사옵니까.”서 황후의 생각은 단순했다.하지만 오랜 세월 관직에 몸담아 온 서 승상이 황제가 태자를 앞세워 서가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조정에는 이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서가를 향해 불어오는, 뼛속까지 도려낼 듯 매서운 바람이었다.근엄하고 위엄 있는 인상의 서 승상은 차갑고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효심이라.”“무정하기로는 황실만 한 곳도 없다.”서 승상의 목소리가 한층 싸늘해졌다.“황후, 태후께서 우리 서가를 앞으로 이십 년이나 더 지켜 주실 수는 없다.”생각해 보면 황제가 즉위한 지도 어느덧 이십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태자가 태어난 해 선황이 승하했고, 황제가 그 뒤를 이어 황위에 올랐다.당시에는 조정 안팎이 어지럽고 정세도 불안했다.황제가 서가를 중용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있었다.서 황후는 서 승상의 말투가 유난히 무겁다는 것을 느끼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아버지, 그렇지 않을 것이옵니다. 태후마마의 몸도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사옵니다. 분명 오래도록 장수하실 것이옵니다.”서 황후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더구나 본궁도 있고, 태자도 있지 않사옵니까.”서 승상은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자신의 딸이 어쩌다 이토록 답답해졌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그 말을 하고 나니 서 황후 역시 마음이 불안해졌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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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그때가 닥친다면, 앞으로 어느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서 승상조차 그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설마 정말 그날이 닥치고 나서야 앞날을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적어도 미리 대비책은 마련해 두어야 했다.서 승상의 표정은 갈수록 무거워졌다.서 승상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가 서봉전으로 와 서 황후에게 문안을 올렸다.서 황후는 태자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조금 전 네 외조부가 다녀가셨다.”그 말을 들은 태자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그다지 뜻밖이라는 기색도 없었다.서 황후가 눈썹을 찌푸렸다.“태자, 이번 일은 네가 너무 지나쳤다. 어찌 제 손으로 서가의 살을 도려내려 하는 것이냐?”태자는 서 황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정색했다.“어마마마! 소자는 태자이옵니다. 마땅히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집안을 뒤로해야 하옵니다.”“더는 말씀하지 마시옵소서. 소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사옵니다.”그러고는 서 황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어마마마께서는 늘 현명하신 분이시니 소자의 뜻을 이해해 주실 것이옵니다. 그렇지 않사옵니까?”서 황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곧 다시 입을 열려 했다.“태자……”태자는 서 황후가 또 무슨 말을 꺼낼까 염려한 듯 먼저 말했다.“소자는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그 시각 어화원에서는.이황자와 요영지가 현비를 모시고 함께 거닐고 있었다.봄이 찾아오자 궁 안의 사람들도 하나둘 밖으로 나와 바람을 쐬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이황자는 조회에서 있었던 일을 한창 실감 나게 늘어놓고 있었다.“모비마마, 소자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사옵니다. 저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태자전하께서 먼저 제 손으로 자신을 찌르지 않으셨사옵니까!”이황자가 다시 말했다.“아무래도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옵니다. 제 손으로 서가를 뒤흔들 생각을 하다니 말이옵니다!”현비는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사방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목소리를 낮췄다.“그게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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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7화

현비가 대체 어떻게 가르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예전에는 그토록 오만하고 제멋대로 굴던 요영지가 어느새 제법 얌전하고 현숙한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금영 역시 어화원에서 현비와 마주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금영이 먼저 미소를 띠고 예를 올렸다.“현 언니.”현비도 곧 답례했다.“금영 동생.”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이황자도 한마디 했다.“원 귀비마마.”요영지는 옆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황자가 힘을 주어 요영지를 한 번 잡아당기자, 그제야 요영지는 속에 든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원 귀비마마.”금영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이황자전하와 이황자비께서는 그리 예를 차리지 않으셔도 되옵니다.”그러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예전에 본궁과 이황자비가 선화전에서 함께 예법을 배운 적도 있지 않사옵니까. 함께 배운 인연이 있는데, 이제 와 이리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본궁도 영 익숙하지가 않사옵니다.”요영지는 이를 악물었다.속으로는 벌써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좋은 것은 다 차지해 놓고 이제 와 생색은 다 내는구나!’마침 서봉전에서 나온 태자도 어화원에 이르렀다.금영과 현비가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본 태자는 별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그러다 가까이 다가온 뒤에야 자신의 행동을 의식했는지 표정을 가다듬었다.태자는 이황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둘째 아우, 봄볕이 이리 좋은데 나와 함께 마장에 가서 말을 타지 않겠느냐?”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태자가 이황자를 찾아온 것 같았다.그렇게 둘러대면 딱히 어색할 것도 없었다.이황자가 문득 웃었다.“형님께서 오늘은 참 운치가 있으시군요.”그러고는 은근히 비꼬듯 한마디를 덧붙였다.“오늘 조정에서 대의를 위해 친족까지 쳐내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탄했사옵니다.”태자는 금영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간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온몸에 밴 분위기는 여전히 온화하고 단정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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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8화

마장과 황궁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서쪽의 작은 쪽문으로 나가기만 하면 바로 닿는 곳이었다.마장에 도착하자.황제는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금영아, 말 타고 싶으냐?”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본래 말을 탈 줄 알았다.그녀의 조부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영안후였으니 말이다.다만 지난 봄에는 회임한 몸이라 말을 타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유일하게 한 번, 황제가 직접 그녀를 말에 태우고 잠시 거닐었던 것이 전부였다.그런 황제가 이렇게 말하니 금영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태자와 이황자는 이미 각자 탈 말을 골라 둔 상태였다.금영은 마장 안의 말들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비교적 온순해 보이는 말 한 마리를 골랐다.예전의 그녀라면 거침없이 말을 몰고 다니던 제멋대로인 아씨와 다름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신분도 달라졌고, 마음가짐 역시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금영과 황제가 말을 타고 나서자, 그쪽에서는 태자와 이황자가 먼저 말을 달려 나갔다.두 사람이 속도를 늦추었을 때, 문득 이황자가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보십시오. 부황과 원 귀비마마께서는 정말 금실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태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황자를 바라보았다.“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이황자는 웃으며 말했다.“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저 형님께 감탄하고 있을 뿐입니다.”“부황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마음에 둔 사람도 내어드리고, 외조부까지 직접 찌르셨으니 말입니다.”“방자하구나.”태자가 차갑게 말했다.“아, 맞다. 형님께서도 들어 두시면 좋을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이황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요즘 밖에서는 이런 말도 돌고 있더군요.”“원 귀비마마께서 선화전에서 규율을 배우시던 때부터 이미 부황과 연이 있었다고 말입니다.”이황자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요영지의 말을 듣고 떠올린 것이었다.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태자의 마음을 몇 마디 찔러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말 한마디로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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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9화

이 모함의 계책은 당연히 실패로 돌아갔다.이런 상황에서 태자의 잘못을 따질 수도 없었다.이황자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소자가 부주의하였사옵니다. 다행히 형님께서 구해 주셨습니다.”황제는 태자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형제를 아끼는 마음을 지녔으니 훌륭하구나.”두 사람은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말을 탈 마음은 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황제와 금영은 따로 걸었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물었다.“금영이는 방금 일을 어찌 보느냐?”금영은 황제가 요즘 들어 부쩍 자신에게 조정의 일과 황자들 사이의 일까지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만큼 자신을 더욱 믿고 있다는 뜻이었다.금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태자전하께서는 본래 경솔한 분이 아니시옵니다. 조금 전 이황자전하와 부딪힌 것도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닐 것이옵니다.”황제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너는 참 태자를 감싸는구나.”금영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폐하께서 물으신 것이 아니옵니까. 게다가 폐하께서도 태자전하께서 억울하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니옵니까?”황제는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칭찬했다.“태자는 요즘 확실히 많이 안정되었구나. 짐도 새삼 다시 보게 될 정도다.”“이제야 태자라는 자리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구나.”황제가 태자를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금영은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마음속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였다.황제는 태자를 믿고 있었다.태자가 훗날 황위에 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절대로 태자가 다음 황제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태자가 아무리 훌륭하게 해낸다 해도.서 황후 같은 독한 여인을 어머니로 둔 사람이 어찌 티 하나 없는 태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서 황후가 저지른 모든 일이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던가.모두 태자를 위한 일이 아니었던가.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서 황후는 자연히 태후가 될 것이다.그뿐만이 아니었다.태자가 금영에게 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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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화

금영은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어찌 알았느냐?”림 소의는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날 주 소의께서 신첩에게 만나자고 하셨기 때문이옵니다……”“신첩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주 소의께서는 몹시 다급한 얼굴로 달려오셨사옵니다. 그리고 신첩에게 자신이 무언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사옵니다……”림 소의는 그날의 일을 떠올리자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금영이 조금 궁금한 듯 물었다.“무엇을 보았다고 하였느냐?”림 소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하지만 그 말씀을 다 하시기도 전에 주 소의께서는 이 일에 신첩이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사옵니다. 그러니 어서 돌아가라고 하셨사옵니다.”“신첩이 미처 무슨 뜻인지 깨닫기도 전에, 주 소의께서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사옵니다.”“그리고 다시 주 소의를 뵈었을 때에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사옵니다.”림 소의의 눈가가 붉어졌다.그렇기에 그녀는 주 소의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신첩은 늘 생각하였사옵니다. 그때 신첩이 주 소의를 붙잡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고 말입니다.”“그랬다면 주 소의께서 죽지 않으셨을까 하고…….”림 소의가 말을 이었다.금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위로했다.“네가 자책할 필요는 없다.”“만약 주 소의의 죽음이 정말 누군가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면, 네가 그때 그녀를 붙잡았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오히려 너마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이는 사실이었다.만약 주 소의가 누군가에게 입막음을 당할 만한 일을 보았다면, 림 소의가 함께 있었다고 해서 주 소의를 지킬 수 있었을 리 없었다.그저 그 우물 안에 또 한 사람의 목숨이 더해졌을 뿐일 것이다.림 소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대체 주 소의께서는 무엇을 보셨기에 이런 화를 당하신 것인지 모르겠사옵니다.”금영 역시 알고 싶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하지만 지금 림 소의의 표정을 보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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