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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주문춘귀: Kapitel 261 – Kapitel 270

368 Kapitel

제261화

“여기 남고 싶지 않은 게냐? 아니면 준안이가 싫은 게냐?”“준안이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는 너도 알지 않느냐.”계연수는 걱정이 가득 담긴 노부인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외할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고집을 피워 감행한 일의 결과를 타인과 함께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사옥현과 화리할 때부터 여기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어요.”계연수는 눈을 내리깔고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준안 오라버니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저도 준안 오라버니가 좋아요. 하지만 그건 단지 여동생으로서 좋아하는 거지 다른 마음은 한 번도 품은 적 없어요.”계연수의 말이 끝나자 병풍밖에서 뭔가가 툭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계연수는 놀라서 병풍 뒤를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씨 노부인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연수야, 싫다고만 하지 말고 다시 잘 생각해 보거라. 준안이와 너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정도 있고 서로에 대해 잘 알기에 절대 너를 서운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계연수는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이미 혼인할 마음을 접었습니다. 앞으로 그저 어머니 곁에 있고 싶을 뿐이에요.”고씨 노부인은 처음 보는 외손녀의 단호한 태도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노인은 병풍 밖을 힐끗 바라보고는 아쉽고도 애처로운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한참 후, 노부인은 나지막이 다시 물었다.“정말 다시 생각해 볼 수 없겠느냐? 준안이는 네가 그렇게 좋다는데.”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예. 어머니와는 모레 떠나자고 이미 말씀드렸어요.”고씨 노부인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왜 그리 서두르느냐?”계연수는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제가 여기 있으면 민폐만 끼칠 테니까요.”고씨 노부인은 맏며느리 안씨의 태도가 결국 계연수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 처소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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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2화

계연수는 놀란 얼굴로 고준안을 바라보았다.그가 왜 외할머니께 그런 말을 했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단지 날 보살피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계연수는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봐도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그녀가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외숙모의 말에 상처 받아서가 아니었다.떠나기로 한 것은 예전부터 마음속으로 계획해오던 일이었다.그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준안 오라버니, 오해 마세요. 저 외숙모가 하신 말씀을 한 번도 마음에 담아둔 적 없어요.”말을 마친 계연수는 고개를 들어 살며시 고준안을 바라보았다.“사실 사씨 가문에 있을 때부터 이미 어머니를 모시고 경성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고준안은 뒷짐을 지고는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연수야, 내가 널 돌봐주마.”'“국자감에서 꽤 많은 인맥을 쌓았다. 왕 대인도 나를 무척 신뢰하고 있고. 국자감에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다. 내년에는 순천부 향시에 참가할 생각이다. 만약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고과만 잘 받으면 왕 대인의 추천으로 육부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고준안은 초조한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연수야, 내 비록 사옥현처럼 뛰어난 가문도 없고 출세길이 그 사람처럼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내가 노력하여 일을 도모한다면 최대한 네가 사는데 불편함이 없이 해줄 수 있어.”“나도 널 지켜줄 능력이 있다.”말을 마춘 고준안은 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짙고 검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음침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계연수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을 보고 저도 모르게 뒤로 뒷걸음질쳤다.어쩐 일인지 지금 이 시각 고준안의 눈빛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주변이 고요하고 어둠이 두 사람을 감쌌다. 계연수는 몸을 낮춰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준연이 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오라버니는 더 좋은 사람을 맞이할 수 있어요. 외숙모께서도 오라버니가 더 좋은 인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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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3화

계연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오라버니, 죄송해요.”결국 다시는 혼인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어둠 속에서 고개를 숙인 계연수의 말간 얼굴은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앵두처럼 빨간 입술과 아른거리는 안개처럼 가녀린 모습은 누구라도 품에 꼭 안고 싶을 것이다.등 뒤로 숨긴 고준안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너무 힘을 준 탓에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졌지만 얼굴은 예전과 다름없는 너그럽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연수야, 너를 원망하는 게 아니다. 어서 가서 쉬거라.”계연수가 고개를 드니, 고준안의 눈빛은 또다시 예전처럼 온화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마음을 놓고 가벼운 미소를 짓고는 등을 돌렸다.고준안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계연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돌렸다.처소로 돌아오니 용춘이 서둘러 다가와 손난로를 새로 갈아주었다.“소인이 보기에 준안 도련님도 괜찮은 분 같아요. 성품도 온화하셔서 사 시정보다는 훨씬 나은 분 같은데 왜 아가씨는 굳이 떠나시겠다는 건가요?”“도련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먼 길을 갈 필요도 없을 텐데요. 휘안현에 가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계연수는 손난로를 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촛불이 그녀의 한쪽 뺨을 비췄다. 고개를 숙이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림을 펼치고 붓을 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준안 오라버니는 좋은 분이야. 하지만 정말 내가 준안 오라버니와 혼인한다면 외숙모는 어쩔 것 같니? 과연 내가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용춘이 멈칫하더니 말했다.“하지만 노부인께서는 도련님이 큰 부인을 설득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계연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서 말했다.“아마 당장은 오라버니가 찾아가서 설득하면 겉으로는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큰어머니 마음속에 과연 원망이 없을까? 정말로 오라버니가 그렇게 하길 바라실까?”그녀는 다시 시선을 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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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4화

가는 길에 계연수는 생각에 잠겼다. 고준안이 어머니를 위해 많은 은자를 썼으니 받기만 하고 답례를 안 할 수는 없었다.하물며 이틀 후면 경성을 떠나게 될 테니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거리로 나가 점포를 정리하고 또 그를 위한 답례를 마련하려면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하지만 다행히 짐은 이미 이틀 전에 정리해 두었고 사실 가져갈 것도 별로 없었기에 짐정리를 할 시간은 덜었다.공기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햇살이 제법 밝게 비추고 있어서 어제처럼 흐릿하고 칙칙한 날씨는 아니었다. 계연수는 털 망토에 손난로까지 들고 있어서 그리 추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계연수는 장씨와 마주치기 싫어서 일부러 늦게 노부인의 처소를 찾았다. 장씨가 자신을 마주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서니 장씨를 비롯한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방에 모여 있었다.고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보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녀에게 손짓했다.“안 그래도 부르려 가려던 참이었다. 마침 잘 왔으니 이리 와서 앉거라.”계연수는 웃어른들에게 예를 행한 뒤 고씨 노부인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할머니, 무슨 일 있나요?”계연수는 뒤늦게 방 안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특히나 큰 외숙모 장씨는 굉장히 미심쩍고도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고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히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침에 궁에서 사람이 왔는데 황후마마께서 너와 윤희를 궁으로 부르셨다고 하는구나. 큰외숙모와 셋이서 같이 가거라.”찻잔을 들려고 손을 뻗던 계연수가 잠시 멈칫했다. 만약 황후께서 고윤희만 불렀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심씨 노부인의 뜻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황후가 왜 자신까지 불렀는지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고씨 노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황후마마께서 어찌하여 저까지 부르셨을까요?”고씨 노부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건 나도 네게 묻고 싶구나. 예전에 심씨 저택에 갔을 때 황후마마와 만난 적이 있느냐?”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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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5화

고윤희의 질문에 계연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후마마의 생신 연회 때 부모님과 함께 궁에 간 적이 있었다.하지만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흐릿했다.“궁중 예절이 복잡하긴 하지만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면 별 문제는 없을 거야. 폐하도 인자하신 분이니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고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연수의 팔짱을 꼈다.“그럼 내일 제 곁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마세요. 언니가 있으면 덜 긴장할 것 같아요.”계연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그래야지.”일어날 때가 되자 고윤희는 계연수의 손을 잡고 자신의 처소로 가서 이야기 좀 하자고 초대했다. 계연수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고윤희의 표정을 보고 묵묵히 따라나섰다.“언니, 심 후작은 어떤 분인가요? 평소에도 그렇게 과묵하고 냉담한 분인가요?”밖으로 나오자마자 고윤희가 물었다.“혹여… 주변에 나으리와 친하게 지내는 여인은 있었나요?”수줍게 얼굴을 붉히는 고윤희의 표정을 보며 계연수는 회상에 잠겼다.사실 그녀는 비록 어릴 때 심씨 저택을 자주 드나들며 그와 마주친 적도 많지만 심서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고윤희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도 거의 없었다.그러나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고윤희의 마음도 어느정도 이해는 갔다.지난번에 심씨 노부인이 그녀를 초대한데 이어 황후까지 친히 궁으로 불러주셨으니, 어쩌면 거기엔 나름의 깊은 뜻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혹시 심씨 가문에서 정말로 고윤희를 며느릿감으로 점찍은 것일까? 문득 고윤희에게는 뜻이 없다고 말하던 심서준의 서늘한 말투가 떠올랐다. 계연수는 기대로 가득한 사촌동생의 얼굴을 보며 한순간 마음이 착잡해졌다.막 입을 열려는 찰나, 장씨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오자마자 장씨는 고윤희의 손을 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여기서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내일이면 궁으로 가서 황후마마를 알현하게 될 터인데, 어서 가서 준비는 하지 못할 망정.”“사람을 통해 알아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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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화

계연수는 그림을 자주 그렸고 예전에 그녀의 아버지도 벼루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셨기에 제법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옆에 놓인 다른 벼루로 옮겼다.희미하게 청람색 무늬가 드리워진 청화연 벼루였는데 질감이 부드러운 최강급 벼루였다.자잣거리에서 이렇게 좋은 벼루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계연수가 웃으며 손을 뻗으려던 찰나, 기다란 손가락이 그녀를 지나쳐 그 벼루를 집어들었다.계연수가 멈칫하고 고개를 드니 언제 온 건지, 심서준이 눈앞에 서 있었다.그는 청색 바탕에 금사로 수놓인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는 그녀가 고르려던 벼루를 들고서 여전히 서늘한 표정을 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계연수는 다급히 예를 행했다.심서준은 벼루를 들고서 계연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도 그 아련하고 가녀린 분위기를 가릴 수는 없었다.그는 무심한 척 그녀에게 물었다.“사촌 오라비에게 선물하려고요?”이 사람은 대체 언제부터 저기 서 있었던 것일까? 계연수는 혹여 자신이 실례되는 말은 한 적 없는지 곰곰이 기억을 되새기며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은 성의 없는 그녀의 대답에 조금 전 비싸더라도 최고를 선물해 주고 싶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라 기분이 불쾌해졌다.사씨 가문에서 맨몸으로 나와서 옛날에 입던 낡은 의복을 걸치고 다니며 자신은 제대로 된 장신구 하나 마련하지 않으면서 비싸더라도 괜찮다니.그만큼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일까.그는 그날 도찰원 입구에서 고준안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오르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심서준은 복잡한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계연수는 그의 시선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워낙 훤칠한 키에 종잡을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 존재감 자체만으로 압박감을 주는 그의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혹시 이 벼루가 마음에 들어서 내 의중을 떠보려는 건가?’만약 심서준이 벼루를 원한다면 그냥 주고 다른 걸 고르면 될 터였다.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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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그의 손은 서늘한 기운을 띠고 있었지만 살갗에 닿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 같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원래는 그렇게 단정한 사람인데 왜 오늘은 이리 경솔하게 구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행동이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그러고 보니 그날 장 선생네 갔을 때도 손목을 잡았었지.’가슴이 미친듯이 두근거리는데 머리 위에서 그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이걸 내게 주면 사촌 오라비는요? 그 사람에게는 선물 안 하실 겁니까?”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손을 놓아주었다. 계연수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무시하며 예의 바르게 답했다.“나으리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당연히 드려야지요. 오라버니께는 새로 사드리면 됩니다.”심서준은 음울한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하얗고 말간 얼굴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조금 전 치밀었던 질투심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그녀에게 그 사촌 오라비라는 사람은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그의 서늘한 눈빛에 마침내 온기가 드리웠다.계연수는 멍하니 웃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심서준은 거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어릴 때부터 그는 냉담하고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리 귀하지도 않은 벼루 하나 때문에 웃음을 짓다니. 계연수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거리감이 느껴지던 근엄한 얼굴에 미소가 깃드니 이토록 온화하고 준수해 보일 줄이야. 눈빛도 한결 누그러져 보였다.그렇게 이 벼루가 마음에 든 것일까.어쨌거나 그에게도 감사 인사를 해야 하니 마음에 드는 벼루를 선물할 수 있어서 그녀도 속으로 기뻤다.계산을 하러 갔더니 조금 전에 용춘이 괜찮다고 했던 벼루까지 해서 총 이백오십 냥이었다. 계연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용춘을 불렀지만 옆에 있던 용춘은 거의 울상을 지으며 은자를 점주에게 내밀었다.계연수는 왠지 수치심이 들어 재빨리 용춘의 팔을 꼬집으며 눈치를 주었다.심서준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얌전하기만 한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다는 게 새롭고 또 사랑스럽게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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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8화

그의 목소리에서는 평소의 냉담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계연수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그의 눈빛도 더 이상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고고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홀릴 것 같이 매력적이고 고결한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고 코끝에는 심서준 특유의 침향이 느껴졌다. 여전히 차가운 향이었지만 예전과 같지 않은 듯했다.그녀는 심지어 심서준이 자신을 유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머릿속은 하얘졌다.그의 시선을 견디기 벅차고 대낮이라 대로 위에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계연수는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예.”심서준이 물었다.“내게 더 할 말이 없습니까?”계연수는 머리가 혼란스러워 그저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저었다.부드러운 면사포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서준은 회피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온화했던 눈빛이 서서히 식어갔다. 순수하고 말간 얼굴에는 그 어떤 그를 향한 연모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그럼에도 그는 가슴이 뛰고 잡아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평소의 자제력마저 잃고 바짝 긴장하여 그녀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와는 달리 전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심서준은 시선을 내리깔아 표정을 감춘 후, 작은 소리로 말했다.“내일 나도 궁에 갑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 면사포를 다시 그녀의 얼굴에 씌워주고는 뒤로 물러서서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뒤돌아섰다.계연수는 멀어지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직도 그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기다린다니, 대체 무슨 뜻일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거리에 사람들이 오가며 시끌벅적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심서준의 늠름한 뒷모습이 서서히 사라져 갔고 그녀의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이 뛰고 있었다.집으로 돌아간 계연수는 용춘을 시켜 벼루를 고준안에게 가져가도록 했다. 그가 아직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시녀를 시켜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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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9화

계연수가 물었다.“그럼 어떻게 찾아서 가져왔느냐?”용춘이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의 인장을 기억하고 있어서 모두 열어보고 인장이 없는 것을 가져왔습니다.”계연수가 빙그레 웃으며 그림을 펼치려는데 용춘이 눈치를 보더니 귀걸이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아가씨, 조금 전에 그림을 펼칠 때 이게 들어 있더라고요.”계연수는 멈칫하며 용춘의 손에 들린 작고 앙증맞은 귀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손을 뻗어 귀걸이를 등불 아래로 가져갔다. 금실을 꼬아 만든 잠자리 모양에 옥장식이 박혀 있었다. 최상급 비취옥은 등불 아래에서 부드러운 빛을 뿜고 있었다.한참 동안 귀걸이를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예전에 그림 속에서 떨어졌던 옥패를 떠올렸다.순간 그녀는 넋이 나갈 것 같았다.용춘이 곁에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그림 속에 귀걸이가 왜 있죠? 누가 떨어뜨린 걸까요?”계연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귀걸이를 손에 꼭 쥐었다. 서늘한 촉감이 느껴지자,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그녀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누가 떨어뜨렸나 보네. 이 일은 입밖에 내지 말거라.”고개를 끄덕인 용춘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귀걸이는 돌려주실 건가요?”계연수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깊은 밤, 침상에 누운 계연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녀는 손을 뻗어 베개 밑에서 귀걸이를 꺼내 살펴보았다. 정교하고 귀한 귀걸이는 위에 박힌 비취옥만 해도 값어치가 상당했다.‘일부러 내게 보낸 걸까?’그녀는 오후에 그림에 대해 묻고 나서 그녀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물어보던 심서준을 떠올렸다. 마음에 드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것일까.‘그런데 왜 갑자기 귀걸이를 내게….’그녀는 귀걸이를 한 모습이 예쁘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계연수는 얕은 신음을 내뱉고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머릿속에는 온통 엄숙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얼굴뿐이었다.그처럼 고결하고 치밀한 사람이 그런 일을 했을 것 같지는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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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그렇게 장신구를 고르고 나니 상자 안에는 두세 개밖에 남지 않았다. 용춘은 보고 있자니 서글펐다.계연수는 거울을 통해 화장을 했는데도 확연히 수척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오늘 황후 안전에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눈 지압도 하고 차도 마셨다.밖으로 나가 보니 고윤희의 차림새는 지난번보다 훨씬 화려하고 정갈했다. 머리에는 금옥비녀를, 옥색의 단추까지 신경 써서 단아하고 품위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예전에 궁에서 일했다는 늙은 상궁에게서 많이 배운 모양이었다.장씨도 오늘은 평소와 확연히 달랐다. 색상이 단아하고 대범함을 잃지 않은 옷을 입으니 귀티가 저절로 나고 몸짓 하나하나 꽤 정돈되어 있었다.마차에 오르니 고윤희는 바짝 긴장하며 떨리는 손끝으로 계연수의 손을 잡았다.계연수가 괜찮다고 위안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연수는 고개를 돌려 피곤한 눈으로 기대에 찬 소녀의 눈망울을 바라보았다.‘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휘안현으로 가서 그곳에서 서화관을 여는 것, 이게 바로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황후궁밖에 다다르니 밖에서 궁인들이 일찍이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조용한 내실, 계연수 일행은 고개를 숙이고 공손하게 황후에게 예를 행했다.황후의 허락을 받은 후, 그들은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황후는 고윤희를 바라보았다. 다소곳하게 눈을 내리깔은 모습이 꽤 온순한 느낌을 주었다. 곧이어 계연수에게 시선을 주었다.몇 년 만에 보는 계연수의 모습에 황후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여전히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옥처럼 정갈하고 꽃처럼 요염한 모습이었다. 앳되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면 그녀가 한때 누군가의 부인이었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고윤희만 따로 보면 괜찮았겠지만 계연수를 옆에 세우고 비교를 하니 평범하게 보였다.지난번 어머니인 심씨 노부인에게서 심서준이 고윤희에게 마음이 있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지만 황후는 믿기지 않았다.오히려 그가 계연수를 도와 사씨 가문과의 화리를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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