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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1화

이때, 큰 부인 백씨가 두 며느리를 데리고 노부인에게 다가왔다.“늦어서 송구합니다, 어머니. 오늘 집에 목공이 오기로 해서 그들을 기다리다 보니 조금 늦었네요.”백씨는 심정호의 정실 부인으로 분가하기 전에는 집안의 넷째였지만 분가한 이후로는 심씨 가문의 큰 부인으로서 집안 살림을 장관하고 있었다. 비록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와 고귀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녀는 영국공부의 막내딸로 대범하고 사려가 깊으며 시어머니인 심씨 노부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백씨는 오자마자 노부인을 위해 매화차를 따르고 노부인의 어깨를 주물러드렸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노부인의 곁에 앉아 있는 고윤희를 보더니 물었다.“이쪽이 어머니께서 전에 말씀하셨던 고 소저겠군요?”친근한 백씨의 태도에 고윤희는 바짝 긴장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행했다.백씨는 미소를 지으며 친근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참으로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네요.”백씨는 눈치가 꽤나 빠른 사람이었다. 시어머니처럼 높은 신분을 가진 분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씨 가문처럼 가난한 집안의 규수를 집으로 불렀을 리가 없었다. 그녀도 들은 말이 있어 일부러 눈도장을 찍으러 온 거였다.그런데 고윤희를 보니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이 없었다. 비록 이해는 되지 않지만 백씨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기에 더욱 친근하게 고윤희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다과회는 그렇게 점심 때가 되어 끝이 났다.심씨 노부인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물었다.“연수 너는 시댁에서 잘 지내고 있느냐.”심씨 노부인은 과하게 소박한 계연수의 차림을 보며 분명히 시댁에서 잘 지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쌍한 것.’노부인은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에 계연수가 힘들다고 말한다면 그녀를 위해 사씨 가문에 압력을 넣어줄 수도 있었다.‘그 댁 노부인은 그래도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니 서신 한통 정도 보내면 알아듣겠지.’노부인의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계연수에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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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장씨는 계연수를 두둔하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단지 계연수의 화리로 딸의 혼사에 영향을 주기 싫었을 뿐이다.이 참에 심서준이 나서서 일을 해결해 주었다는 것을 피력하여 고씨 가문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했다.얘기를 들은 심씨 노부인은 멈칫하더니 계연수에게 물었다.“너 사 시정과 화리했니?”‘서준이가 무슨 도움을 줬나 했더니 이거였었군.’계연수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때 당시 사씨 가문에서 첩실을 들이지 않을 거라고 약조한 것과 이번 사건의 자초지종을 간략하여 설명했다.심씨 노부인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계연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얘기를 들어보니 그쪽에서 먼저 잘못한 게 맞구나.”노부인은 남의 상처를 들추는 얘기는 계속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백씨도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점심 때가 되어 노부인은 고윤희 일행에게 같이 식사할 것을 권했다.백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부인의 의견을 물었다.“큰댁 식구들도 이 참에 불러 같이 식사할까요?”노부인은 담담한 시선으로 며느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간단히 먹자꾸나.”눈치 빠른 백씨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직 혼사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괜히 서둘렀나 싶기도 했다.식사가 끝난 후, 장씨와 고윤희는 심씨 노부인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노부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인을 시켜 그들을 배웅하게 했다.노부인은 멀어지는 계연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서준이 녀석이 뭘 도와줬나 했더니….’만약 이런 사정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장씨 일행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에 뭐 하고 화리한 후에야 관심을 두는 건지….’한편, 큰 부인 백씨는 친히 일행을 대문 밖까지 배웅했다.백씨는 가는 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윤희에게 살갑게 대해주었다.심씨 가문의 큰 부인이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춰 대해주니 장씨는 속으로 좋아서 죽을 것 같았다.어찌 그렇지 않겠는가.심씨 노부인이 딸을 마음에 들어하시니 집안의 귀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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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그는 저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번에는 숙부인 심서준의 눈치가 보여서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그의 시선은 조용히 계연수를 관찰했다.비록 군영에서 살며 여인들과 그리 많이 접촉한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여인은 유달리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아들의 속사정을 모르는 백씨는 장씨 일행에게 작별을 고했다.계연수도 사내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다시 숙이고 장씨의 뒤로 몸을 숨겼다.사내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이 날 것 같은데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심정우는 뒤로 피하는 계연수를 보고 자신이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시선을 돌려 어머니의 곁으로 가서 섰다.그렇게 인사가 다 오간 후, 장씨 일행은 뒤돌아서 밖으로 향했다. 심정우는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걷는 자태마저 어여쁘구나.’수수한 은비녀 하나만 꽂았을 뿐인데도 윤기가 찰랑이는 머리카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저 처자는 누구입니까?”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여 어머니 백씨에게 물었다.심정우는 백씨의 막내아들로, 글공부에 영 재능이 없어 열세 살 나이에 군영으로 갔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는데도 혼인을 하지 않고 군영에서 일하는 세가 자제들과 노는 것을 즐기고는 했다.이제 경력이 쌓여 군영에서도 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년처럼 신중하지 못하고 유치한 면이 있었다.큰 부인 백씨는 곱지 않게 아들을 흘기고는 웃으며 말했다.“잊었니? 어릴 때 너희 만난 적도 있는데?”심정우는 어머니의 말에 일순 당황하며 물었다.“언제요?”백씨가 말했다.“계씨 가문의 딸이야. 어릴 때는 아버지와 함께 너희 할아버지를 보러 자주 왔었지. 벌써 잊은 게니?”심정우는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어릴 적에 그 겁 많고 소심하던 꼬맹이가?’심정우는 어렸을 적에 계연수와 몇 번 마주친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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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심정우는 잠시동안 추억에 잠겼다. 아마 아홉 살 이후부터는 한 번도 그녀와 마주친 적이 없는 듯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사람인데 어릴 때보다 더 어여쁜 모습으로 자라 있을 줄이야.‘나중에 사씨 가문에 시집을 가서 시정 부인이 되었다고 했었지.’심정우가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어머니 백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아이도 참말로 인생이 고달픈 아이야. 사 시정하고 화리하고 앞으로 더 힘들어질 텐데.”심정우는 흠칫하며 충격에 빠진 얼굴로 다급히 물었다.“화리를 했다고요?”백씨는 못마땅한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니? 너와 무슨 상관이라고?”“지금 네가 걱정해야 할 건 하루라도 빨리 공적을 세워 장군으로 부임하는 것이야.”심정우는 재빨리 어머니의 곁으로 다가가 세상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물었다.“언제 화리했습니까? 그 사씨 가문에서 무슨 나쁜 짓을 했길래요?”“제 기억에 연수는 어릴 때도 온순하고 겁 많은 아이였는데 분명히 그 집에서 수모를 겪었을 거예요.”백씨는 시큰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마 며칠 전에 화리한 것 같구나. 경성에 화리한 여인이 몇이나 된다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연수 걔도 분명 문제가 있어.”백씨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싸늘한 말투로 계속해서 말했다.“참 기구한 팔자야. 힘이 되어줄 친정도 없으니 시댁에 순종하고 조용히 살 일이지. 자존심만 내세워서는.”“고작 부군이 첩 하나 들였다고 화리하는 건 그 애도 아집이 심한 게야.”심정우는 멍하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이 마주친 순간 수줍게 고개를 숙이던 계연수를 떠올렸다.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그래도 아직 어린데….”백씨는 시큰둥한 얼굴로 코웃음칠 뿐이었다.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한번 화리한 여인은 재가가 힘들었다.경성에서 좀 잘나간다는 세가라면 절대 화리 이력이 있는 처자를 집으로 들이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생각에 심취해 있는 아들을 싸늘히 노려보다가 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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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계연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녀는 외숙모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다급히 마차에서 내리고 어멈을 따라 측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심서준의 처소 밖으로 도착하자 어멈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나으리는 안에 계십니다. 나으리의 서재는 하인들이 함부로 못 드나들게 되었으니 소저, 안으로 드시지요.”‘공무가 바쁘시다더니 아직 저택에 계셨구나.’그녀는 어멈에게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정교하게 꾸며진 정원을 걷고 있자니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어릴 적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던 자신을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의 눈빛, 그리고 그가 아끼던 벼루를 실수로 엎질렀다가 서재에서 쫓겨났던 그날.그 후로 그녀는 다시 그곳에 가려 하지 않았다. 심 수보가 들어가보라고 재촉할 때면 그녀는 건성으로 응답하고는 서재 밖 정원에 숨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사죄의 의미로 먹을 갈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그의 서재에 다시 드나들게 되었다.지난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니 먼 옛날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편안함으로 다가왔다.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많은 것이 변했고 마음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유독 심서준만은 변함없이 냉담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서재 밖에는 시중을 드는 시녀 한 명 없었다. 계연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내실 밖에서 걸음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그를 불렀다.“심 대인.”잠시 후, 안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계연수는 길게 숨을 들이마신 후, 안으로 향했다.심서준은 창가에 서 있었다. 검은 옷이 원래 인정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존귀하고 냉담한 분위기에 쓸쓸함을 더했다. 계연수는 순간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누구한테 시선을 주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이 냉랭하게 굴던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심서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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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심서준에게서 오는 위압감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했다. 예전처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을 때는 간신히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오자, 계연수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황급히 뒤로 물러선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심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에서 냉기가 출렁이고 있었다.‘내가 뭘 또 잘못한 걸까?’그녀는 당장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녀는 당황한 듯 주먹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도와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으리. 외숙모가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이만 나가볼게요.”심서준은 애처롭게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최대한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한번 확인해 보지 않아도 됩니까?”계연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서준의 치밀함과 정직함을 믿었기에 확인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안에 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그녀는 조심스럽게 화리서를 펼쳐 관청의 인장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이제 사씨 가문, 그리고 사옥현과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안도하는 마음이 커서일까, 그녀는 심서준이 불과 한 걸음 거리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다시 감사인사를 하려던 그녀는 문득 오늘만 해도 이미 여러 번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계연수는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속으로 그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또 언젠가는 자신이 그에게 뭔가 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그녀는 복잡한 심경을 안고서 멍하니 심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점점 숙어지는 그의 고개를 보고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다.심서준도 동작을 멈추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눈빛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살짝 벌어진 통통한 입술은 그에게는 마치 말없는 초대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이미 자유의 몸이었다. 그녀가 먼저 한걸음 다가오기만 한다면 그들 앞에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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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빨갛게 달아오른 볼은 꿈에서 보았던 모습과 겹쳐졌다.하지만 정갈하고 연약한 외모에 반해 눈빛에 깃든 강인함이 더 눈에 띄었다.이곳을 떠나려는 그녀의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심지어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조차 펼쳐보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장 바로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어했다.심서준은 그동안 그녀 앞에서 억눌러왔던 무심한 태도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이 순간 오직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로 인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듣게 하고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원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그러나 결국 그는 그녀를 잡아두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자유의 몸이고 그녀의 의지가 자신을 떠나고 싶어 하는데 강요할 수는 없었다.그래도 그에게는 아직 천천히 다가갈 시간이 있었다. 화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시점에 그녀에게 자신을 받아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그는 그녀에게 천천히 정리할 시간을 주고 천천히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하리라 다짐했다.심서준은 손에 든 그림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그 순간 그는 그녀의 표정이 확연히 편안해지는 것을 보았다. 굳었던 어깨에 긴장이 풀리고 떨림도 멈추었다.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깊이 바라보며 말했다.“가져가서 보세요.”계연수는 그림을 품에 안고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 채로 서재를 나왔다.심서준은 창가에 서서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위태로운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계연수가 마차로 돌아왔을 때, 장씨는 짜증이 잔뜩 섞인 얼굴을 하고 있다가 그녀가 품에 안은 그림을 보고 물었다.“그건 뭐니?”계연수가 답했다.“심 후작께서 필요 없는 그림을 처리하신다 하셨는데 마음에 들어서 한부 가져왔습니다.”마차가 출발하자, 장씨는 고개를 돌려 고윤희가 안은 상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안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하구나. 어서 열어보렴.”고윤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급히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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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일부러 나를 보러 오신 걸까.’그렇게 생각하니 고윤희는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온 일행은 고씨 노부인의 처소로 향했다.방 안에는 둘째 부인네 식솔들도 함께 있었다. 다른 식구들도 오늘 심씨 가문에 다녀온 것에 대하여 궁금증을 드러냈다.장씨는 한가운데 자리 잡고 고윤희의 손을 잡은 채, 신이 나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심씨 노부인이 얼마나 살갑게 고윤희를 대해주셨는지, 그 집의 시녀와 어멈들이 얼마나 공손했는지, 심 후작이 특별히 공무를 제치고 집에 들른 것과 큰 부인 안씨가 선물을 준 것까지 세세하게 이야기했다.이야기를 들은 식구들은 모두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둘째 부인 유씨는 우쭐대는 장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편치 않았다.장씨의 큰아들 고용은 글공부에 재능이 없어 상단을 따라 지방으로 장사를 하러 다니느라 일년내내 집에 돌아오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 고준안은 유능한 인재였다. 게다가 이번에 셋째인 고윤희에게까지 이런 큰 복이 굴러들어왔으니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팔자는 타고나는 거랬으니 어쩌겠는가.유씨는 그저 일찍 시집보낸 딸이 아쉬울 뿐이었다.상석에 앉은 고씨 노부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심씨 노부인의 눈에 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꼭 잡아야 한다.”고윤희는 수줍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장씨는 이미 한발은 심씨 가문 대문 안으로 들여놨으니 이제 그쪽에서 공식적으로 혼담을 청하러 오기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이 혼사가 정말 성사된다면 우리 가문도 달라질 거예요. 준안이의 혼사도 서두를 필요 없겠어요. 나중에 더 좋은 집안과 혼인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고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혼인은 어울리는 집안끼리 해야지. 귀한 댁 아가씨를 데려다가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면 어쩌려고?”장씨는 자신만만한 미소로 말했다.“제가 감당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나요? 준안이의 출세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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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고씨는 멍한 표정으로 계연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상심에 잠긴 눈으로 딸을 바라보다가 흐느끼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문득 옛날 시집 가기 전 딸의 어여쁜 모습이 겹쳐 보였다.세상물정 모르고 순하고 얌전하며 겁도 많지만 언제나 부모님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던 딸이었다.그런데 그 많은 일을 겪으며 지금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줄 알게 되었다.딸은 더 이상 어릴 적처럼 항상 어머니의 품에 숨어들고 밤중에 소나기가 울어도 잠들지 못하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고씨는 서글픔이 몰려왔다.사실 그해 그 혼사를 받아들였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사씨 가문에서 먼저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기에 받아들인 것이었다. 계연수는 어릴 때부터 성품이 여린 아니었기에 부모로서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계연수는 고씨를 닮아 순하고 여린 아이라 이런 성품으로는 장차 뒷방 여인들끼리의 다툼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직 조용한 집안만이 딸에게 알맞았다.고씨 부부는 딸이 시기와 질투에 시달리지 않고 평생 안온하게 지내기를 바랐다.안타깝게도 세간에 청렴하고 정직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사씨 가문조차 약속을 저버렸으니, 그녀도 부군도 결국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이다.고씨는 손을 뻗어 계연수를 품에 안으며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이 어미는 네 뜻을 따르마.”“네 삼촌네로 가서 살자….”계연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와 함께 더 이상 외조부 댁에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승낙하셨으니 한 가지 근심이 해결된 셈이었다.계연수는 어머니와 함께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어깨 위로 뜨겁고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계연수는 소리없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모른 척 내버려두었다. 마음속으로 불안하고 조금은 두렵더라도 어머니 앞에서는 불안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더 이상 어릴 적처럼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니의 품으로 숨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날이 저물 무렵, 계연수는 겨우 어머니를 달래고 함께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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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그러면 너와 네 어머니는 같이 이 집에 살 수 있지 않느냐. 이 할미도 너희를 좀 도와주고.”계연수는 충격에 빠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큰 외숙모 장씨가 이 일에 동의할 리도 없을 뿐더러, 자칫하면 집안에 큰 불란을 가져올 수 있었다. 게다가 외할머니의 강요에 의해 고준안과 강제로 혼인한다면 당사자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화리한 이유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이지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씨 노부인은 거절하려는 계연수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넌 아직 앞으로 얼마나 힘들어질지 몰라서 그런다. 네 삼촌네가 사는 곳으로 내려가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니?”“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좋은 사람일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설령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쪽도 형편이 넉넉치 않은 상인일 뿐이다. 네가 그런 용모로 시골에 내려가면 삼촌이 반드시 널 지켜줄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이 할미는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살 날이 멀었는데 그렇게 허투루 보내서는 안 돼.”떠나기로 작심했을 때, 계연수는 이미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휘안현에 가더라도 반드시 평안하고 순탄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남의 집에서 신세지며 눈치 보며 사는 것은 원치 않았다.서화관을 열 수도 있고 점포를 운영할 수도 있었다. 그녀도 바라는 삶이 있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계연수는 주저없이 고개를 저었다.“저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할머니. 하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네요. 외숙모와 준안 오라버니에게 죄 짓고 싶지 않아요.”고씨 노부인은 진작에 예상했던 답이었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는 이 할미가 무작정 너를 준안이에게 밀어준다고 생각하니?”계연수는 의아한 눈으로 노부인을 바라보았다.고씨 노부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원래는 남방에 사는 내 외조카에게 소개해 주려고 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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