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녀는 외숙모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다급히 마차에서 내리고 어멈을 따라 측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심서준의 처소 밖으로 도착하자 어멈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나으리는 안에 계십니다. 나으리의 서재는 하인들이 함부로 못 드나들게 되었으니 소저, 안으로 드시지요.”‘공무가 바쁘시다더니 아직 저택에 계셨구나.’그녀는 어멈에게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정교하게 꾸며진 정원을 걷고 있자니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러웠다.어릴 적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뒤를 졸래졸래 따라가던 자신을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던 그의 눈빛, 그리고 그가 아끼던 벼루를 실수로 엎질렀다가 서재에서 쫓겨났던 그날.그 후로 그녀는 다시 그곳에 가려 하지 않았다. 심 수보가 들어가보라고 재촉할 때면 그녀는 건성으로 응답하고는 서재 밖 정원에 숨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사죄의 의미로 먹을 갈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그의 서재에 다시 드나들게 되었다.지난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니 먼 옛날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편안함으로 다가왔다.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많은 것이 변했고 마음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유독 심서준만은 변함없이 냉담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서재 밖에는 시중을 드는 시녀 한 명 없었다. 계연수는 천천히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내실 밖에서 걸음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그를 불렀다.“심 대인.”잠시 후, 안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계연수는 길게 숨을 들이마신 후, 안으로 향했다.심서준은 창가에 서 있었다. 검은 옷이 원래 인정미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존귀하고 냉담한 분위기에 쓸쓸함을 더했다. 계연수는 순간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누구한테 시선을 주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이 냉랭하게 굴던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심서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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