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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Kapitel

제271화

황후는 묘한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처자가 이렇게 단호한 면이 있을 줄이야.그녀가 또 물었다.“화리하고 앞으로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아니면 화리하기 전부터 미리 대비를 해두었다든가.”황후는 계연수가 화리하기 전부터 동생과 뭔가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계연수 같은 여자를 절대 동생 곁에 계속 둘 수 없었다.비록 압박에 가까운 질문이었지만 계연수는 여전히 차분하게 대답했다.“사 시정이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한번 믿음을 저버린 사람은 두 번도 저버리게 되어 있지요. 저는 대비책을 준비한 적 없고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황후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다시 계연수에게 물었다.“그럼 앞으로 어찌 할 생각이냐? 재가할 생각은 있느냐?”말을 마친 황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너는 워낙 용모가 빼어나니 만약 그럴 마음이 있다면 내가 중매를 서줄 수도 있다. 좋은 가문은 어렵겠지만, 평범한 집안이라면 문제없을 것이다.”말을 마친 황후는 어느새 문밖에 와서 서 있는 심서준을 바라보았다.동생이 올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황후는 고윤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요하게 계연수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동생을 바라보았다.이 순간 황후는 계연수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동생이 마음을 접을 것 같았다.옆에서 듣고 있던 장씨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황후가 중매를 서준다니, 이만한 영광이 없었다. 장씨는 기대에 찬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봤다. 이렇게 되면 계연수가 자연스럽게 고씨 저택에서 나갈 수 있을 테니 장씨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계연수는 황후의 제안이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담담하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저는 재가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일 경성을 떠나 둘째 삼촌네 댁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내전이 고요해졌다.장씨는 이 좋은 기회를 저버린 계연수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황후께서 친히 중매를 서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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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그의 눈에 비친 감정이 그녀를 당혹스럽게 했다.다행히 심서준은 잠깐 걸음을 멈췄을 뿐, 곧바로 걸음을 돌려 황후에게로 다가갔다.계연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슴이 옥죄이는 느낌은 여전했다.그녀는 심서준이 준 귀걸이를 떠올렸다. 그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심서준과 황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궁인들이 다가와 그들을 편전으로 안내했다.계연수는 저도 모르게 심서준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뒷모습마저 꼿꼿하고 쉽게 범접하지 못할 냉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어제 보았던 그의 온화함은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궁인들을 따라 편전으로 와서 앉은 계연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편전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고 궁인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장씨와 고윤희는 여전히 단정하게 앉아 감히 말도 못하고 있었다.잠시 후, 밖에서 궁인 한 명이 들어오더니 계연수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장씨와 고윤희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궁인들도 있는데 물어볼 수도 없어서 계연수는 다급히 일어섰다.밖으로 나온 계연수는 오던 길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자신을 안내하는 궁인의 모습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물었다.“황후께서 저를 부르신 건가요?”궁인은 질문에 대답도 않고 어딘가로 계연수를 데리고 가더니 문밖에서 걸음을 멈추었다.“계 소저, 안으로 들어가세요.”계연수는 주저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안은 작은 불당이었는데 황후가 평소에 염불을 외우고 기도를 드리는 곳이었다.향로에서는 향이 타고 있고 안에는 뒷짐을 진 신서준이 서 있었다.관복을 입은 모습은 고결하고도 싸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계연수는 심서준을 본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두 사람 사이에 근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의 곁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소년 시절의 심서준은 지금보다도 더 냉혹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서재에 들락거려도 말 한번 걸어주지 않던 사람이었다.조용함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계연수도 그의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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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심서준은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은 이 순간 그녀를 안아 향내 가득한 제단 위에 앉히고 그녀가 입고 있는 이 보수적인 치마저고리를 벗긴 후에 그녀를 거세게 안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부처님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안고 싶었다.그녀를 위해 방황하고 그녀의 생각에 잠을 못 이루던 수많은 밤을 모조리 그녀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그는 혼자 고통받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이렇게 원하고 애통한 마음을 그녀도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내가 그렇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데도 너는 참으로 쉽게 떠난다는 말을 하는구나.’내일이면 그녀는 경성을 떠나 머나먼 곳으로 가서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연을 끊겠다고 말했다.어둡게 깔린 눈동자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을 저버렸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고 억눌렀던 감정들이 터져나오려 하고 있었다.계연수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그의 옷자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것처럼 온몸이 화끈거렸다.마침내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폭풍우가 이는 듯한 요동치는 그의 눈빛을 마주하자 계연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녀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서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러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심 대인, 저를 찾으셨습니까.”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심 대인이라는 칭호에 심서준은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날아갈 것 같았다.‘내 마음을 거절하고서 너는 어찌 그리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느냐.’거절했으니 이제 다시 만나지도, 매달리지도 말라는 의미일까.그의 이성은 거의 나가버린 상태였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녀는 아무런 반항도 못할 것을 알았다.어쩌면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멀지 않은 곳 편전에 그녀의 외숙모와 여동생이 있지만 아무도 그녀를 구해주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하면 그녀를 이곳에 묶어둘 수 있을까.긴 침묵이 흘렀다.계연수는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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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계연수는 이런 모습의 심서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그는 냉담하기는 해도 절대 이렇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그녀는 그가 왜 이러는지 의아하기만 했다.냉담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나 때문에 떠나시는 겁니까?”심서준이 보기에 계연수는 원래 나약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필시 그를 거절한 것 때문에 뒷감당이 두려워 서둘러 도망치려는 것이리라.계연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진작부터 삼촌네로 가기로 계획했었습니다.”심서준은 치미는 분노를 강제로 누르며 다시 물었다.“다시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겁니까.”‘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걸까.’계연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담담한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해본 소리일 거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어머니와 이미 상의가 끝난 일입니다. 여기에 남지는 않을 거예요. 아버지의 고향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혼인도 다신 하지 않을 거예요. 어렵게 사씨 가문에서 해방되었는데 좀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심서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고요한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듯하면서도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다.그는 한참 지난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다.“소저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그러고는 다시 한번 눈에 힘을 주고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이만 가보십시오.”계연수는 심서준의 냉담한 눈매를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하듯 싸늘했고 더 이상 자신과는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왜 사람을 불러 놓고 영양가 없는 얘기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에게는 늘 존경스럽고 감사한 사람이었기에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심 대인, 앞으로 건강하십시오.”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침묵이었다.심서준은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고 있었다.계연수는 더욱 긴장되어 원래 하고 싶었던 작별 인사들이 단 한마디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귀걸이가 생각나 품에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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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황후는 싸늘한 표정으로 계연수에게 물었다.“내일 떠난다 했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예, 그렇습니다.”단호하게 떠나겠다고 말하는 계연수를 보며 황후는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녀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하던 동생의 모습이 겹쳐졌다. ‘속을 알 수 없는 아이구나.’물론 황후는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러나 대화가 끝난 후에도 계연수가 홀연히 떠난다고 하니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한편으로는 동생이 계연수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있어서 안도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계연수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다른 사내의 부인으로 살았던 사람이고 심씨 가문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가문은 부인의 출신을 따지지는 않아도 결백한 여인이어야 했다.계연수는 전혀 요구사항에 부합되지 않았다.그러니 떠나는 게 맞았다.동생이 연모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었으니 황후는 더 이상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는 고윤희에게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윤희는 정말 흔하디 흔한 세가의 딸이고 이렇다 할 재능도, 한눈에 기억할 만한 출중한 외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성격도 딱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고윤희보다 뛰어난 여인은 경성에 많고 많았고 그녀는 정말 평범한 처자였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그녀가 계연수를 조금은 닮았다는 점이었는데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보니 그 생각도 사라졌다.심서준은 계연수에 대한 마음을 접기 전까지는 타협할 사람이 아니었다.‘저 애가 떠난다고 하면 서준이도 타협할까.’황후는 더 이상 고윤희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장씨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그들을 돌려보냈다.장씨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황후가 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예상했는데 부른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돌려보낸단 말인가.게다가 황후는 고윤희에게 말도 몇 마디 걸지 않고 오히려 계연수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장씨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만약 그녀가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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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손보경은 그저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인데도 어릴 때부터 귀족가에서 길러진 귀티와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연장자인 장씨마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모께서 오늘 고씨 가문 큰 부인과 셋째 따님이 오신다길래 특별히 선주 특산품인 감로 전병을 가져왔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네요.”고모라는 말에 장씨는 정신이 아득해졌다.손보경이 청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외할머니가 영현현주입니다. 정확히 따지면 황후마마는 제게 사촌 고모님 되시지만, 워낙 저를 예뻐해 주시는 분이라 친근함을 나타내고자 고모라고 부른답니다.”‘영현현주라면 태후마마의 동생?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어.’장씨는 급히 정중하게 예를 행했다.“군주님의 호의는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 감로 전병을 맛보지 못하게 되었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맛보겠습니다.”손보경의 시선이 고윤희에게로 옮겨졌다.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용모도 감탄이 나올 수준이 아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어떤 성격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그저 흔하디 흔한 세가의 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그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젠가는 기회가 생기겠지요.”손보경의 시선이 계연수에게로 향했다. 스치듯 한번 봤을 뿐인데 자꾸 눈길이 갔다.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장씨에게 인사를 하고는 황후의 내전으로 걸음을 옮겼다.손보경은 간식을 들고 찾아온 손보경을 웃는 얼굴로 맞아주었다.“금지옥엽으로 자란 아가씨가 이런 것도 만들 줄 아는구나.”손보경은 젓가락으로 전병을 하나 덜어 접시에 담은 후 두 손으로 황후에게 받치며 말했다.“어머니께서 간식을 만드는 걸 무척 좋아하셨어요. 태후마마도 이 전병을 좋아하세요. 어차피 궁에서 한가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니 기쁘게 만들었죠.”“이건 선주에만 있는 감로 전병이랍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고모.”황후는 손보경의 여유로운 자태와 정갈하게 담긴 간식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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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손보경은 황후가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마침 오다가 마주쳤어요. 고 소저는 참 지혜롭고 온순한 사람 같아 보이던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네요. 다음에 또 오면 꼭 저를 불러주세요. 어쩌면 고 소저와 자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황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다.”한편 궁문을 나온 장씨 일행은 마차에 올랐다. 고윤희는 계연수의 팔짱을 끼며 궁금한 어투로 물었다.“방금 언니를 따로 부르신 분이 누구인가요?”계연수가 답했다.“황후마마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사씨 가문에서의 일을 물으셨어.”고윤희는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어째서 굳이 따로 불러내셔서 그런 말씀을….”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나도 모르겠어.”장씨는 계연수를 힐끗 보고는 고윤희를 나무랐다.“너는 오늘 심 후작도 계셨는데 그분한테나 말을 걸지 그랬느냐?”고윤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오늘 본 심서준의 낯빛이 너무 어둡고 차가워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감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고윤희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손수건만 꽉 쥐었다. 장씨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냉담해진 황후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대체 뭘 잘못한 걸까?마차가 저택 앞에 도착하자, 장씨는 딸을 데리고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계연수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문지기가 그녀를 보더니 다가와서 서신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서신을 펼쳐보니 점포 관리인이 보낸 거였다.내용을 확인한 계연수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그녀는 다급히 용춘을 시켜 다 그린 그림을 가져오게 했다. 가는 길에 포산루에도 들릴 예정이었다.용춘은 안색이 안 좋은 그녀를 보고 다급히 달려갔다.용춘이 그림을 가져오자 둘은 같이 마차에 올라 송무문으로 향했다.송무문은 남성과 황성으로 이어진 거리로 수많은 점포들이 줄지어 있었다. 계연수의 점포는 맨 안쪽에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에 있었다.위치가 그리 좋은 편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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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계연수가 도착했을 때, 점포의 두 장인은 청소하느라 바쁘고 점주는 의뢰를 받은 그림들을 하나씩 바깥으로 옮기고 있었다.점포 앞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코와 입을 가리고 도망치듯 지나갔다.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용춘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코를 가렸다.계연수는 자신이 오래도록 경영한 점포가 엉망이 된 모양을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명 점주는 계연수를 보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오셨습니까, 부인.”명 점주는 아직 계연수가 화리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범인은 잡았나요?”비록 구석진 곳이긴 해도 주변에 점포도 적지 않은데 굳이 그녀의 점포만 피해를 입은 게 이상했다. 이는 분명히 그녀를 노리고 한 짓이었다.명 점주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아니요. 어제 점포에서 잠을 자던 장인이 자다가 냄새 때문에 깨서 나와 봤더니 안에 곳곳에 오물이 부어져 있더랍니다. 간판까지 모두 오물 투성이였어요.”계연수는 이미 떼서 아무것도 없는 간판 자리를 올려다보았다. 텅 빈 그곳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이 몰려왔다.명 점주가 게속해서 말했다.“점포에 이런 피해가 발생해서 손님들이 끊기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의뢰를 받고 족자에 끼워 넣은 그림들도 많은데, 아침에 손님이 그림을 가지러 왔다가 그림에 냄새가 묻었다며 배상하라고 하네요. 가격이 적당한 건 그렇다 쳐도 백 냥이 넘는 비싼 그림들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명 점주는 울상을 지으며 계연수를 바라봤다.“부인, 이제 어떻게 할까요?”계연수가 물었다.“관아에 신고는 했나요?”명 점주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아침에 남성 병마사로 가서 신고했는데 그저 대충 훑어만 보고 가더라고요. 포졸에게 범인을 꼭 좀 잡아달라고 은자까지 건넸는데 어렵다고만 했습니다.”“절도도 아니고 사람이 다친 것도 아니라 긴박한 사건이 아니라고 하더군요.”“이 골목에 족자 점포는 우리뿐이고 누구와 원한을 산 적도 없고 또한 밤이라 목격자도 없어서 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어요.”명 점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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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점주는 계연수의 제안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좋은 방법이네요.”계연수가 말했다.“이따가 품삯을 주고 일꾼을 몇 명 불러서 비누와 쑥으로 청소하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용춘을 시켜 은화 주머니를 점주의 손에 건넸다.“모든 지출은 일단 여기서 쓰세요. 장부만 잘 기록하고요.”점포의 장부는 이미 이틀 전에 정리가 되었고 양도의 마무리절차는 명 점주가 맡기로 했다. 만약 새 주인이 계속 족자 점포를 한다면 장인들은 계속 일할 것이고 만약 다른 점포로 바꿀 예정이라면 최근 며칠간 벌어들인 수익을 장인들에게 나눠줄 예정이었다.양도를 마무리하려면 일단 점포부터 깨끗이 청소해야 했다.명 점주는 곧바로 계연수의 분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계연수는 매화나무 아래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용춘이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가씨, 그냥 넘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내일이면 떠날 텐데 점포만 깨끗이 청소하고 양도해요.”시간이 촉박하니 계연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그녀에게는 이곳에 남아 낭비할 시간이 없었고 큰 외숙모는 그녀와 어머니가 고씨 저택에 오래 머무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는 눈치였다. 이미 내일 간다고 말까지 했는데 더 머문다고 하면 분명 다른 의도가 있다고 오해할 것이다.그러던 계연수는 코끝에 스치는 진한 향을 맡고 순간 멈칫했다.점포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명 점주를 시켜 새로 소장을 상세하게 쓰게 한 뒤, 다시 남성 병마사로 가서 신고하도록 했다.속으로 울화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이 일은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 이렇게 큰 원한을 가진 이는 사씨 가문 사람들밖에 없었다. 사옥현은 이기적이기는 해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 이렇게 치사한 짓은 안 할 터였다. 계연수는 이미 누군지 짐작이 갔지만 아직 증거가 없었다.명 점주는 계연수의 분부대로 사건 발생 시각과 현장, 훼손 물품과 가치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특히나 의심이 가는 부분과 조사 방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명 점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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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계연수는 바닥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정말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그러나 병마사 사람들이 공을 들여 조사한다면 분명 잡을 수 있을 것이다.범인은 분명히 근방에 사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야 순찰대의 눈을 피해 범행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가녀린 여인이 오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범행을 한 뒤에 도망치면서 거리에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수는 없었다.속에 찔리는 게 있는 자라면 분명히 사람들 눈을 속이려 했을 테니, 일단 몸에 묻은 냄새부터 숨기려 했을 것이다. 그러니 몸에서 진한 향이 나는 자가 가장 수상한 인물이었다.근방에 사는 건달들이나 한량들 중에 몸에서 진한 향이 나는 자를 조사한다면 실마리가 쉽게 풀릴 수도 있었다.하지만 당연히 변수는 존재할 터.계연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범인은 장사를 못하게 하려고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다.그녀가 가진 중에 가장 수익이 좋은 점포가 이곳이었다.어떻게 하면 보복할 수 있을까.하지만 계연수는 그녀의 점포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상대가 어떻게 이렇게 상세히 알았는지는 더 물어볼 여지도 없이 그 사람이 알려줬을 것이다.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치밀었다.그녀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으며 용춘에게 말했다.“난 괜찮으니 걱정할 것 없어. 병마사 사람들이 내가 제시한 방향대로 조사한다면 분명히 잡을 수 있을 거야.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비록 경성을 떠난다고 해도 뒤처리를 명 점주에게 부탁할 것이다.”용춘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포산루.계연수는 장 선생을 찾아 차후의 일을 부탁했다.그림을 받은 장 선생이 물었다.“정말 경성을 떠나시는 겁니까?”장 선생은 계연수가 화리한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을 금치 못했는데 사씨 가문처럼 귀하고 고상한 집안이 장남의 정실 부인이 나와서 그림 팔이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하지만 계연수가 이렇게 빨리 경성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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