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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심씨 저택으로 방문하는 날이 돌아왔다. 장씨는 일찍이 계연수의 처소에 사람을 보내 일찍 출발할 테니 미리 준비하고 있으라고 재촉했다.계연수는 오늘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님을 알기에 치장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하물며 그녀는 이제 화리한 여인이니 소박하게 단장하는 게 맞았다. 비록 과부처럼 완전히 존재감 없이 다니지는 않겠지만 화려한 차림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그녀는 준비를 마치고 먼저 어머니를 찾아갔다. 가림막을 걷어젖히고 안방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평소처럼 침상에 누워계시지 않고 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의자에 앉아 계셨다.계연수는 서둘러 어머니의 곁으로 다가갔다.고씨가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항상 화려한 차림으로 돌아오던 딸이었는데 지금은 한결 수수해진 옷차림을 하고 온 것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계연수가 입고 있는 옷은 그녀가 처녀 시절에 입던 것이었다. 비록 몇 번 입지는 않았지만 궤짝에 보관한지 네다섯 해가 되었기에 다소 낡아 보였다.고씨는 딸을 향해 손을 내밀며 이틀 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솔직하게 말해다오. 예전에 넌 번번이 기쁜 얼굴로 돌아왔지만 그건 모두 나 보라고 꾸며낸 것이었느냐?”계연수는 잠시 멈칫하다가 어머니의 앞에 마주 앉아 시선을 맞추며 진실을 털어놓았다.“차마 어머니께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고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걱정 끼치기 싫어서 그 집에서 잘 지낸다고 이 어미를 속였단 말이냐?”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계연수를 끌어안고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그 자식이 그렇게 너를 홀대했는데 어째서 어미에게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그 망할 자식이 너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왜 참고만 있었느냐….”계연수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씨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렇게 심하진 않았어요.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고요.”고씨는 목놓아 울음을 터뜨렸다.“다 이 어미가 못난 탓이다. 네가 그 수모를 당했는데 네게 힘이 되어 주지도 못하고 그 자식이 너를 함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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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장씨는 심서준의 얼굴을 본 적 있었다. 그날 사람들 틈에서 그가 걸어오는 순간 그의 앞에 사람들이 무릎을 꿇던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참으로 고귀하고 귀티가 나는 사람이라 감히 시선을 마주할 수도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그녀는 계연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렇게 고귀하고 높으신 분이 왜 그날 하필 계연수를 도와주었을까?비록 두 사람 사이에 별다른 접점은 없어 보였지만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면 심서준처럼 고귀한 신분을 가진 분이 왜 그날 하필 그 길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장씨가 생각을 굴리는 사이, 계연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용모가 빼어나신 분이야. 그렇게 준수하신 분은 거의 본 적이 없지.”고윤희가 수줍은 얼굴로 물었다.“그럼 셋째 오라버니와 비교하면요?”계연수는 잠시 멈칫하고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 심서준은 그녀가 봤던 중 가장 준수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웃으며 말했다.“그건 잘 모르겠는걸.”장씨는 낮은 소리로 고윤희를 훈계했다.“이따가 심씨 저택에 도착하면 절대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고윤희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지만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장씨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예전에 심씨 노부인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으니 이따가 분위기도 좀 띄우며 살갑게 굴거라.”계연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심서준은 도찰원 대청에서 공무를 보고 있었다. 근래 많은 공무와 안건이 쌓여 있었다. 어사대에서 올라온 안건도 있었는데 전에는 치밀하게 하나하나 모두 확인했지만, 오늘은 어쩐지 귀찮고 짜증만 치밀었다.잠시 후, 부하 왕청이 석림현 안건에 관한 서신을 보내왔다.펼치고 내용을 확인한 그는 피식 냉소를 지었다.‘때맞춰 왔군.’문하가 싱글벙글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공무에 집중하고 있는 그를 보고 조용히 옆으로 비켜섰다.심서준은 고개를 들어 문하를 힐끗 보고는 싸늘하게 물었다.“무슨 일이냐.”문하는 다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작은 소리로 고했다.“고씨 가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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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어멈은 옆에 있는 계연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가 따라온 것이 조금 놀랍지는 했지만 그래도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심씨 노부인의 곁에서 오랜 시간 모시다 보니 자연히 계연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단지 지난날 그렇게 사랑스럽고 생기 넘치던 소녀가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어엿한 미인으로 성장할 줄이야. 비록 옷차림이 다소 소박하기는 하지만, 워낙 미모가 출중하다 보니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매력이 있었다.노부인의 처소인 인덕원에 도착하자, 어멈은 친히 가림막을 열고 장씨 일행은 안으로 안내했다.노부인의 심복이 친히 가림막을 열어주자 장씨는 놀랍기도 하고 황송해서 얼른 고윤희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손씨 어멈은 뒤에 선 계연수를 잠시 바라보았다.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 걷는 모습이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사씨 가문의 며느리가 오늘 왜 이곳까지 방문했는지 의아했지만 어멈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심씨 노부인의 거처는 역시나 일반 집과 비교할 수 없었다. 실내에 놓인 장식품 하나하나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그들은 곧바로 따뜻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 안은 정갈함에 굉장히 신경을 쓴 듯했는데 넓지는 않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고담목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고귀한 기품을 더했다.심씨 노부인은 상석에 있는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었고 신변에는 나이 어린 시녀가 노부인의 어깨를 주물러드리고 있었고 또다른 한명은 노부인의 발치에서 털담요를 무릎에 덮어 드리고 있었다.장씨는 우아한 실내 장식과 심씨 노부인의 위엄 넘치는 모습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얼른 고윤희를 이끌고 노부인의 곁으로 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예를 행했다.한 번도 이렇게 귀하신 분을 따로 만난 적이 없는 고윤희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뵌 적은 있지만 그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떨지 않았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심씨 노부인의 시선은 가장 먼저 계연수에게로 향했다.계연수의 소박한 옷차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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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이 선물은 계연수가 준비한 것이었다. 그녀는 심서준에게 무언가를 직접 선물할 수 없어서 차라리 이참에 노부인에게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 하지만 노부인은 부족한 것 없는 분이니 손수 만든 향낭이 정성을 담기에 좋다고 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이었다.그러나 장씨는 그녀가 직접 선물을 드리는 게 내키지 않았기에 계연수의 향낭을 고윤희가 전달하기로 했다.계연수는 선물을 전달하기만 하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어머니의 부름을 들은 고윤희는 푸른색 향낭을 심씨 노부인에게 건네며 공손히 말했다.“이 향낭은 제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안에 매화향을 넣었으니 마음에 드시나 한번 봐주십시오, 노부인.”옆에 있던 어멈이 다가와서 향낭을 받아 노부인에게 건네며 말했다.“노부인, 이 자수 좀 보십시오.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정교한 자수는 처음 봅니다.”장차 후작 부인이 될 수도 있는 처자라 어멈이 다소 과장한 것은 있지만 자수가 정교한 것도 사실이었다.심씨 노부인은 향낭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위에는 하얀색 선학이 생동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수많은 수공예품을 보아온 노부인이지만 이 수놓이 솜씨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노부인은 코끝에 대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향낭 속에 든 매화향이 솔솔 코끝을 간지럽혔다. 이걸 몸에 달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매화향이 퍼질 것 같았다.선물은 노부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심씨 노부인은 저도 모르게 고윤희에게 호감이 생겼다.아들이 좋아하는 처자이니 수놓이 솜씨가 부족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저택에는 수놓이만 전문 담당하는 시녀가 있으니 심씨 가문의 며느리는 굳이 이런 일을 직접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수놓이 솜씨로 보아 고윤희는 아마 온화하고 세심한 성격일 테니 노부인은 마음에 들었다.심씨 노부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윤희를 세세히 관찰했다. 단정한 자태에 작은 얼굴과 부드러운 인상, 얼핏 보면 계연수와 비슷한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계연수가 옆에 앉아 있으니 대조를 해보면 둘은 또 완전히 다른 유형이었다.계연수는 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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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심서준이 안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방 안은 고요해졌다.고윤희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장씨의 재촉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난생 처음 보는 귀티가 흐르고 준수한 사내의 모습에 고윤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심 후작의 외모가 준수하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심서준의 모습은 그녀의 예상을 훨씬 초월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신감이 없어지고 기가 죽었다.무수히 연습했던 표정과 몸짓도 심서준을 앞에 두니 저절로 얼굴이 화끈거리고 고개가 숙어졌다. 그녀는 간신히 작은 소리로 그에게 예를 올렸다.심서준은 고윤희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계연수는 조용히 한켠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었다.빛을 등지고 서 있어서 그녀의 표정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유난히도 유약해 보였다.그는 슬며시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만 끄덕였다.심씨 노부인은 아들이 고윤희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아쉽게도 아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하지만 아침 일찍 도찰원으로 갔던 아들이 공무도 팽개치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보면 아예 마음이 없는 건 아닌 듯했다. 그는 평소에 어떤 일을 있어도 일을 내팽개치는 사람이 아니었다.심씨 노부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의 차리지 말고 다들 편히 앉거라.”장씨와 고윤희가 황급히 자리에 앉았고 계연수도 조용히 말석에 자리하고 앉았다.심씨 노부인은 심서준을 바라보며 인자하게 물었다.“이 시간에 어떻게 시간이 나서 여기까지 온 게야?”심서준은 시녀가 건넨 찻잔을 받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심씨 노부인은 어차피 그에게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돌려 고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나랑 이야기나 하다 가려무나.”고윤희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예, 할머니.”심씨 노부인은 수시로 눈치를 살피며 심서준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고윤희를 보고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작은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대범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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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사실 노부인은 힘이 없는 작은 집안의 처자를 들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심씨 가문은 이미 너무도 큰 권력을 쥐고 있었다. 아들이 세력가와 혼인을 한다면 오히려 도처에서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눈앞의 처자는 참하고 예의도 바르니, 아들만 좋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노부인은 장씨의 아첨하는 표정도 그리 밉게 보이지 않았다.노부인은 아까부터 말이 없는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입을 열었다.“앉아서 얘기만 했더니 조금 지겹군. 차라리 정원 앞에 있는 매화원으로 가서 풍경이나 감상하며 이야기하는 게 낫겠네. 마침 매화가 곱게 피었으니 윤희의 꽃꽂이 실력도 구경할 수 있고 일석이조겠군.”갑작스러운 친근한 호칭에 장씨는 입이 찢어졌다.“차라리 그게 낫겠네요, 노부인.”그녀는 고개를 돌려 고윤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따가 노부인께서 실망하시지 않게 잘해야 한다.”고윤희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조금 전 심씨 노부인의 친근한 호칭을 듣고 거의 심씨 집안 문턱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몰래 심서준이 있는 곳을 곁눈질해 보았다. 그저 잠깐 보았을 뿐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런 사내와 혼인하고 매일 같이 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졌다.고윤희는 입술을 깨물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심씨 노부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고윤희는 눈치 있게 다가가서 노부인을 부축했다.노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윤희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고 그녀와 나란히 앞장서서 걸었다.계연수의 앞을 지나치던 노부인은 그제야 그녀가 떠오른 듯, 그녀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옷을 왜 이렇게 소박하게 차려입었을까.’어쨌거나 어릴 때부터 지켜봐온 후배였기에 노부인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연수도 왔구나.”계연수는 공손히 예를 행했다.“예, 노부인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심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심코 물었다.“네 어머니는 좀 괜찮아졌느냐?”계연수는 다소곳하게 답했다.“예, 많이 좋아지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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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심서준은 그녀와 한 뼘 떨어진 곳에 있었다.‘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그는 일부러 그녀를 보지 않고 시선은 전방에 고정한 채로 무심한 듯 걷고 있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심씨 노부인은 고윤희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장차 심서준과 고윤희가 혼인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다.그것은 질투가 아니라 왠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그녀는 한 번도 심서준이 다른 여인과 여생을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근래 들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준 그이지만 늘 차갑고 무심하게 보이던 사내의 곁에 다른 여인이 서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 없었다.‘아마 경성을 떠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테지.’그의 입장에서 보면 괜찮은 혼인이 될 수도 있었다. 고윤희는 꽤나 참하고 선한 아이였다.심서준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계연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간 잘 지내셨습니까?”계연수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예.”심서준의 시선은 까만 머리카락 아래 언뜻언뜻 보이는 그녀의 하얀 귓불에 닿았다. 그는 문득 통통한 저 귓불을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귀걸이를 한 그녀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그날 마차에서 그의 품을 파고들 때 귀에서 귀걸이가 찰랑이던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졌던 기억이 있었다.그가 물었다.“오늘은 왜 귀걸이를 안 하고 오셨습니까?”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정중하게 답했다.“이제는 그런 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요.”심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럴 리가요.”계연수는 그가 왜 이런 사소한 질문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솔직하게 심경을 이야기했다.“화리한지 얼마나 됐다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 합니다.”심서준은 그제야 시선을 내려 살짝 색이 바랜 그녀의 저고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빨갛고 탐스러운 입술에 시선이 갔다.그는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귀걸이를 한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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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고윤희는 그 말을 듣고 그제야 불쾌했던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하긴, 어릴 때 아는 사이였다면 인사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지.’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부인의 팔짱을 꼈다.“그럼 저희도 여기서 잠깐 기다릴까요?”노부인이 웃으며 말했다.“아니다. 우리가 먼저 가자꾸나. 이따가 사람을 시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시게 하면 된다.”고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계연수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그녀의 각도에서 바라보면 키 큰 심 후작이 아담한 체구의 계연수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을 것처럼 보였다. 고윤희는 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일었다.‘내게는 저리 살갑게 다가오시지 않더니.’한편 계연수는 일행이 점점 멀어지자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 심서준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저희도 이만 저쪽으로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어쨌거나 오늘 노부인이 그들을 초대한 목적은 심서준과 고윤희를 이어주기 위함일 텐데 둘이서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무래도 보기가 좋지 않았다.심서준은 힐끗 그쪽을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계연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그 일이 있고 며칠만에 보는 그녀였다.어머니와 고씨 가문 일행이 떠나고 귀찮은 어멈과 시녀들도 없이 지금 이곳엔 오로지 그와 그녀 둘뿐이었다.심서준은 아무 말없이 나른한 시선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소박한 차림에 연지도 찍지 않았지만 그녀의 몸에서 나는 난꽃 향기에 취할 것 같고 자꾸만 그날 자신의 품을 파고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매일 밤 그리움에 사무쳤다.애달프고 아쉬운 감정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예전에 그녀가 물에 빠졌을 때는 사람을 살린다고 입만 가져다 댔을 뿐인데도 그는 그날의 감촉을 5년이나 기억했다. 그날 그 달콤한 맛을 제대로 맛본 후에는 더 이상 그녀를 놓을 수 없게 되었다.그녀의 미세한 표정 하나하나도 깊게 생각하게 되고 그녀가 했던 말 한마디도 무수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그는 그녀를 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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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생전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화가의 그림이었기에 계연수도 그 그림이 궁금했다.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앞에서 심씨 노부인이 그를 기다리고 계셨다.오늘의 주인공은 심서준이니 그림을 본다고 그의 시간을 뺏을 수는 없었다.게다가 그녀는 화리한지 얼마 안 된 이혼녀이니 심서준과 단둘이서 그의 서재에 들어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앞에서 노부인과 외숙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금 전에 노부인께서 제게 할 말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심서준은 계연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담담히 한마디 했다.“나는 거기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계연수가 놀라며 물었다.“왜죠?”심서준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오늘 이 시간에 여기로 온 것은 그대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계연수는 고개를 들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나와 서재에 가기 싫다면 매화원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난 고 소저에게 마음이 없으니까요.”계연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여전히 무표정한 그의 얼굴을 보고 괜한 김칫국을 마시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 그는 아까부터 빤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계연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그가 매화원에 가지 않더라도 그를 따라 서재로 갈 수는 없었다.이제 그들은 더 이상 어리지 않고 그와 단둘이 그의 서재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어차피 그녀는 경성을 떠날 것이고 더 이상 누구와 마음을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 손수건을 돌려줄 적절한 시기가 지금일지도 모른다. 이게 아마 마지막 기회일 테니 그가 받든, 안 받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계연수는 깨끗이 빨은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목소리가 떨렸다.“지난번에 제게 빌려주신 손수건입니다. 급하게 가느라 돌려드리는 것을 깜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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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그녀는 심서준이 방금 자신의 앞을 막고 서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모습을 어멈이 보았을 것이고 괜히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었다.시정 부인이라는 호칭도 당황스러웠다. 심씨 노부인은 아직 그녀가 화리한 걸 모르고 계신 걸까.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계연수는 공손한 태도로 어멈에게 말했다.“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이 어멈은 노부인의 심복으로 비록 하인이긴 하지만 집안에서 꽤나 입지가 있는 분이었다.심서준은 자신에게 예를 행하는 계연수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그녀가 뒤돌아선 순간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어멈은 시녀를 시켜 계연수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고 심서준의 앞으로 다가와 공손히 고했다.“노부인께서 매화림에 들어서면 길을 잃기 쉬우니 나으리께서 고 소저를 데리고 구경을 시켜주라 하셨습니다.”심서준은 냉랭한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 전의 따뜻한 눈빛은 어디로 가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어멈을 내려다보았다. 어멈은 차가운 분위기에 감히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심서준은 뒷짐을 지고 서서 멀어지는 계연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깐 감정을 추스르고는 싸늘한 시선으로 어멈을 바라봤다.놀란 어멈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라 벌을 서듯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매화림 옆에는 누각이 지어져 있었는데 복도에는 화로가 타고 있었다. 매화나무 가지가 정자까지 뻗어들어와 운치가 있었다. 계연수가 정자에 도착했을 때, 심씨 노부인은 고윤희 모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부인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고윤희는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대화에 녹아들었다.계연수는 자신에게 관심이 끌리지 않도록 조용히 장씨의 곁으로 다가갔다.심씨 노부인은 혼자 온 계연수를 보고 조금 전 전갈을 보냈던 어멈에게 물었다.“서준이는?”어멈이 답했다.“나으리께선 급한 공무가 있으시다며 먼저 돌아가셨습니다.”사실 이것도 어멈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다. 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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