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시의 객방 안, 계연수는 얇은 홑옷 차림으로 침상 머리에 기대앉아 책을 펼치고 있었다. 절에서 인연을 맺어 받아 읽은 ‘법화현의’였다.두어 쪽 넘겼을 뿐,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지 않아 억지로라도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것이었다.내일이면 길을 떠난다. 앞날은 알 수 없고 한 번도 발을 디딘 적 없는 땅으로 향한다.어머니 앞에서는 담담한 얼굴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은 오롯이 제 힘으로 헤쳐가야 한다. 미지의 길은 두려움이기도 했으니 말이다.촛불이 가늘게 흔들렸다.계연수는 한 장을 더 넘겼으나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창밖의 폭우 소리만이 쉼 없이 들려왔다.빗소리가 창호지를 두드렸다.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었다.책을 덮어 머리맡에 내려놓고 막 눕기 위해 몸을 옮기려는 순간, 문가에 어렴풋한 그림자가 비쳤다. 길고 선명한 형체였다. 흔들리는 촛불 속에서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 아른거렸다.계연수의 심장이 단번에 조여들었다. 절이라 하여 도둑이 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그녀는 방 안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손에 잡힐 만한 물건을 찾으며 막 문밖의 사람에게 누구냐 묻으려던 찰나, 그 그림자가 움직였다.빗소리를 가르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전해졌다.“저입니다.”익숙한 음성이었다. 서늘하고도 낮은, 심서준의 목소리.그 순간, 계연수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몸이 살짝 휘청일 만큼, 단단히 조여 있던 마음이 풀어져 내렸다.왜 이 시간에, 이런 비 속에 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문밖에 선 사람이 심서준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걱정은 사라졌다.그녀는 흰 홑옷 차림이었다. 심서준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는 낮게 대답하며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긴 머리는 정갈하게 빗을 겨를이 없었다. 방 안에 거울도 없었으니 그저 흰 비녀 하나로 느슨하게 틀어 올린 뒤, 서둘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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