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주문춘귀: Bab 341 - Bab 350

368 Bab

제341화

고준안은 곁에 앉아 작은 탁자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차를 달이고 있는 계연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제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고씨는 그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슬쩍 바라본 그 한 번의 시선에 담긴 뜻을 어머니로서 단번에 알아차렸다. 고준안의 눈은 분명 계연수를 향하고 있었다.그녀는 문득 지난번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어머니는 고준안이 먼저 혼담을 꺼냈지만 계연수가 거절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그 무렵 고씨는 이미 계연수와 함께 휘안현으로 떠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고준안은 경성에서 벼슬길에 오른 몸이니 괜히 그의 앞길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딸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그러나 그 길은 그녀의 병환으로 무산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고준안의 마음은 아직도 변치 않은 듯했다. 그는 딸이 한 번 시집갔다 돌아온 과거도 개의치 않았고 이토록 정성을 다했다. 예전부터 늘 묵묵히 자신을 돌보아주기도 했다.이런 인품이라면… 혹여 이 혼사가 이루어진다 해도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그날 오후, 고준안은 남아 일을 거든 것도 모자라 밖에 나가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 해가 완전히 져 어둠이 내린 뒤에야 함께 저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대문을 나서는 순간,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계연수의 집 앞에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서 있었던 것이다.고준안은 그 마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 오후 길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마차였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곁에 서 있는, 남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에게로 옮겨갔다. 낮에 계연수에게 먼저 말을 건 인물이었다.심부의 마차. 심 후작의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계연수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인가?그는 무심코 다시 한 번 마차를 훑어보았다.그 순간, 창가의 휘장이 스르르 걷혔다.어둠 속에서 젊고 고귀한 얼굴이 드러났다. 서늘한 눈동자가 곧장 그를 향했다. 그 안에는 냉담함과 어딘가 모르게 내려다보는 듯한 기색이 스쳐 있었다.그 한눈에 가슴 깊숙이 묘한 압박이 내려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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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마차 안에 들어서는 순간, 심서준에게서 배어 나오는 서늘하고도 깊은 침향의 향이 먼저 감돌았다.안은 어둑했다. 가운데 작은 탁자 위에 상아 팔각등 하나가 고요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심서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현색 옷자락은 어둠에 스며 거의 윤곽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 존재감만은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마차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었다. 침수향목으로 짜인 차체는 그의 기질처럼 은은한 고아함을 품고 있었다. 사방 벽에는 자개가 촘촘히 박혀 있어 어두운 불빛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고 내벽에는 은실로 검은 월라에 수놓은 망천도(辋川图)가 한 폭 가득 펼쳐져 있었다.계연수는 감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차벽에 두었다.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그림자 때문에 지금 그의 표정이 얼마나 엄숙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심서준의 시선은 단정히 앉아 있는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유독 자신의 앞에서만 그녀는 언제나 이토록 긴장해 있었다.오늘 낮, 다른 사내 앞에서 웃으며 편안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앞에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웃은 적이 없었다.심서준은 몸을 바로 세웠다. 어둠에서 얼굴이 조금 더 드러났다. 그리고 곁에서 제법 묵직한 상자를 하나 꺼내 계연수 앞으로 내밀었다.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상아등에 새겨진 학 그림자가 상자 위에 어른거렸다. 그 위에 얹힌 그의 손가락은 유난히 또렷하고 고왔다.“무엇입니까?”계연수가 조심스레 물었다.“열어보십시오.”상자를 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안에는 가지런히 포장된 약첩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계연수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심 대인,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제게도 은자가 있습니다.”이명유 일로 손에 들어온 돈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 어머니의 약값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심서준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진 태의에게 아가씨의 어머니 병세를 물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다 하더군요. 이 약을 거절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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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그녀는 심서준 앞에 선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아까 내뱉은 그 한마디가, 어쩌면 심서준에게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가늘게 떨리던 속눈썹이 한 번 흔들리더니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훗날 제가 심 대인께 도움이 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습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인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희고 가느다란 목선이 옅게 드러나 있고 부드러운 잔머리가 목덜미에 흘러내려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봄날처럼 연하여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여린 햇살 아래의 풍경처럼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분위기였다. 꾸밈없는 진심, 겸손함, 안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그 부드러움. 그 모든 것이 심서준의 시선을 붙들었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 위에 머물렀다. 장대한 체구가 조금 앞으로 기울어지며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섰다.그녀의 눈꺼풀 위로 시선이 내려앉는다. 은은하고 따뜻한 향기가 어둑한 마차 안을 맴돌며 번졌다. 그 향기 속에서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묘한 온기가 피어올랐다.그는 낮고 약간 쉰 음성으로 물었다.“무엇이든… 이라 하였습니까?”계연수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곧장 먹빛처럼 짙은 두 눈과 마주쳤다.그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의 그림자 안에 완전히 감싸여 있다는 것을.순간 심장이 북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계연수는 떨림을 억누르며 지극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은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깊게 그녀를 응시한 뒤, 짧게 말했다.“좋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아마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그는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두 사람 사이 작은 탁자 위의 상자를 가리키며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가씨를 위해 가져왔습니다.”계연수는 그제야 탁자 위의 작은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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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심서준은 계연수의 눈동자에 어른거리는 옅은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슴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어릴 적, 그녀가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계연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소리 내어 울었고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곤 했다.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눈물이 맺혀도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수많은 억울함을 삼킨 사람처럼, 더는 울음을 밖으로 흘리지 않는 얼굴이었다.심서준이 낮게 물었다.“왜 슬퍼하는 겁니까?”그와 그녀 사이의 과거 때문일까? 아직도 두 사람의 지난날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서늘한 손끝이 계연수의 턱에 닿았다.그녀는 순간 굳어졌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눈물이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다.이러고 싶지 않았다. 심서준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억제할 수가 없었다.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더 시렸다. 그녀는 목이 잠긴 채 떨리는 음성이 겨우 흘러나왔다.“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심서준의 손끝이 멈췄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굳어 있던 숨이 서서히 풀렸다. 그는 배꽃에 빗물이 맺힌 듯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낮게 탄식했다.“다 지난 일입니다.”계연수는 고개를 숙인 채 수놓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그리고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지난 일이지요.”목소리 끝에 가느다란 쉰 기운이 묻어 있었다.손수건에 얼굴을 가린 채, 그녀는 여전히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다만 어깨선 아래로 떨어진 기운과 낮게 깔린 눈빛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심서준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울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계연수 또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밀려오는 감정을 애써 눌러 담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심 대인, 오랜만에 먹어보았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그리고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고맙습니다.”심서준은 충혈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안의 빛은 유난히 또렷했다.그는 한동안 말을 잊은 듯 바라보다가 다시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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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그녀는 뒤뜰의 작은 회랑에 걸터앉아 있었다. 뒷마당으로는 산들바람이 잔잔히 불어왔다.장 선생의 편지는 길지 않았다.계연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렸다. 편지에는 계연수의 두 개 점포가 모두 이미 매각되었으며 그림 한 점 역시 좋은 값에 팔렸다고 적혀 있었다. 은자의 액수가 적지 않으니 직접 와서 받아 갈지, 아니면 사람을 보내 전해 줄지 묻는 내용도 함께였다.계연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직접 가는 편이 낫겠다고 마음먹었다.돈을 받는 일은 순조로웠다.장 선생은 묵직한 돈주머니를 그녀의 손 위에 올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송문남가에 있던 점포는 위치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 거리 자체가 값이 높은 곳은 아니지요. 장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큰돈을 받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인근 점포들보다는 조금 높게 쳐서 은 구백 냥에 팔았어요. 그리고 성북의 다른 한 곳은 그보다 못해, 육백 냥에 넘겼습니다.”계연수는 송문가의 점포가 본래 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값에 팔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장 선생.”장 선생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별말을 다 하십니다. 제가 도운 게 뭐 있겠습니까.”그는 이어 지난번 그림 값 사백여 냥을 그녀에게 건네며 의미심장한 어조로 덧붙였다.“당신 그림은 매번 화루에서 가장 높은 값에 팔립니다. 정말로 경성을 떠날 생각이라면, 몇 점 더 그려 두십시오. 그 사람도 분명 사 갈 것입니다.”그 말 속에 숨은 뜻이 스며 있었다.계연수는 그동안 매년 포산루에 서너 점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그림 값이 결코 낮지 않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장 선생, 조금 더 분명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장 선생은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말을 지나치게 흘렸다는 걸 깨달은 듯 급히 말을 돌렸다.“그저 한 말입니다. 당신 그림을 사는 이는 여럿이니 더 그려 두라는 뜻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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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계연수는 사금희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그녀 쪽으로 성큼 다가오는 사금희의 얼굴에는 여전히 오만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몇 걸음 만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냉소를 흘리며 첫마디를 던졌다.“고부를 나왔다고 들었다.”계연수는 담담히 되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사금희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며 이를 악물었다.동생에게 그런 큰일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명유가 무려 삼 년이나 약을 먹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궁의 태의까지 불러 진맥했으나 약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그 방면이 이미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말뿐이었다.사가 안은 그야말로 뒤집혀 있었다. 이명유를 가둬 두었지만 울며 불며 소리친 탓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오늘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고가를 찾았었다. 계연수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이제 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해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이런 상황에서 다른 여인이 과연 시집오겠는가?남은 희망은 결국 계연수뿐이었다.게다가 이혼한 여자의 삶이 얼마나 초라하겠는가? 어쩌면 고맙다며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고가의 문 앞에서 들은 말은 뜻밖이었다. 계연수는 이미 그곳에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사금희는 차갑게 계연수를 훑어보았다. 병약한 어머니까지 데리고 있으니 고가에서도 마뜩잖았겠지. 생각해 보라, 어느 집이 평생 과부와 이혼녀를 먹여 살리겠는가? 쫓겨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다.그러나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이제 계연수는 선택지가 없을 터였다. 고분고분 따라와 사가로 돌아가는 수밖에. 그리하면 동생이 매일같이 그녀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요 며칠 사옥현은 방에 틀어박힌 채 출근과 귀가만 반복하며 어디에도 나가지 않았고 누가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았다. 그늘이 짙게 내려앉은 얼굴에 노부인 또한 애가 타 있었다.더구나 어머니는 집안 살림권을 빼앗겨 셋째 숙모에게 넘어갔고 아버지는 연말에 돌아오면 휴처하겠다고까지 했다. 어머니는 눈물로 노부인께 매달렸고 노부인은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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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예전의 계연수는 사금희를 어느 정도는 양보해 주었다. 사가의 아가씨였으니 겉으로나마 화목을 유지하고 싶었고 일까지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더는 그녀의 체면을 세울 생각이 없었다.계연수는 담담히 사금희를 바라보았다.“그 말씀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억을 잃지 않으셨다면 제가 이미 사가와 아무런 연이 없다는 것은 알고 계셔야지요. 저는 사옥현 나으리께도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는 저를 찾아와 얽매지 말아주십시오.”말을 마치자 더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마차에 올랐다.밖에서는 사금희의 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길 한복판이었고 무엇보다 체면을 중히 여기는 그녀였기에 크게 고함치지는 못했다. 계연수는 그녀의 표정이 어떤지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사실 그녀 역시 사가와 완전히 등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금희의 남편은 북진부사의 지휘사였으니 마음먹고 보복하려 든다면 구실 하나만으로도 고부와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쯤은 어렵지 않았다.경성은 그런 곳이었다. 권세 앞에 등 뒤가 비어 있는 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조차 없었다. 사금희의 성정이라면 그런 일도 못 할 사람은 아니었다.계연수는 마차를 서둘러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익살을 부리려던 용춘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용춘은 입을 삐죽이며 말을 꺼내려 했으나 계연수의 낮은 음성이 먼저 흘러나왔다.“지금은 말하지 말거라.”용춘은 의아해하며 그녀를 보았다. 계연수의 시선이 마차 뒤편을 향해 있었다.“아가씨, 무엇을 보시는 겁니까?”계연수가 낮게 답했다.“사금희의 마차가 뒤따르고 있어.”용춘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왜 따라오는 겁니까?”계연수는 조금 전의 말을 떠올리며 속삭였다.“무슨 이유든,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는 알게 해선 안 돼.”곧 마차를 북성 쪽으로 돌리게 했다. 그곳은 골목이 복잡하고 사는 이들 대부분이 넉넉지 않아 낯선 마차가 눈에 띄기 쉬운 곳이었다. 사람을 따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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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안에서 어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는 연수의 마음을 안다. 그 애는 나를 데리고 휘안현으로 가 좋은 날을 보내고 싶어 하지. 휘안현으로 가는 게 큰 형님 집에 얹혀 눈치 보는 것보다는 낫겠지. 게다가 경성에 남아 있으면 사가 사람들이 또 찾아와 소란을 피울까 걱정이기도 하고. 그 애는 모든 걸 다 헤아려 두었다. 이제는 예전과 다르다. 전에는 무슨 일이든 내 품에 안겨 투정 부리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나를 지켜 주겠다고 한다. 헌데 내가 어찌 그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겠느냐? 지난번에도 나 때문에 길을 미뤘지 않았느냐? 이번에는 더 늦출 수 없다. 내 몸은 괜찮다. 조금만 나아지면 떠나자꾸나.”휘장을 들려던 계연수의 손이 공중에서 굳었다.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며 젖어 들었으나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뒤뜰 회랑의 정자에 앉아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발아래 푸른 연못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모두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하늘은 어느새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으나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도 춥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곁에 있던 용춘이 말했다.“날이 금세 흐려지네요. 비가 올 듯해요.”이른 봄에는 비가 잦다. 계연수는 그저 가볍게 대답할 뿐이었다.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 등 뒤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연수야.”계연수는 놀라 돌아보았다. 고준안이 바로 곁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언제 오셨어요?”고준안이 웃으며 답했다.“조금 전에 먼저 고모를 뵈었지. 네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줄 알았는데, 부엌에 물건을 두러 갔다가 왕 어멈이 네가 돌아왔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여기로 와 보았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연못을 바라보았다.고준안은 그녀 곁에 앉아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둘째 숙부께서 보내신 편지다.”계연수는 서둘러 몸을 틀어 받아 들었다.편지를 펼치니 둘째 숙부가 출발은 했는지 묻는 말로 시작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병세를 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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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계연수는 멍하니 고준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도 진지했고 지금 자신에게 건네는 말들이 이미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헤아려진 끝에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고준안이 얼마나 이를 악물고 공부해 왔는지. 그는 국자감에서 해마다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그대로 유임될 만큼 인정받았다는 사실도.앞길이 환히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찌 자신을 따라 휘안현으로 가겠다는 말인가.계연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런 말씀 마세요. 저를 따라오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다시 혼인할 생각도 없습니다.”잠시 숨을 고르고 덧붙였다.“아마 평생, 다시는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고준안의 몸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하늘은 어느새 어둑해졌고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잔잔하던 공기가 금세 빗소리로 채워졌다.고준안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연수야, 나를 짐이라 여길 필요도, 무엇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어머니와도 이미 상의했고 어머니께서도 허락하셨다. 네가 휘안현에서 평생을 산다면 나도 그곳에서 평생 네 곁을 지키겠다. 설령 네가 평생 혼인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내가 조금이라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계연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낮고 단단한 그의 목소리는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늘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는 그림자 같았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이 분명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준안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니 앞날을 약속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의 앞길을 꺾고 싶지 않았다.자신은 여인이니 휘안현에 평생 머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때 찬란한 가능성을 지녔던 고준안이 그곳에서 평생을 묶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그의 마음은 고마웠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계연수는 자세를 바로 세우고 더욱 또렷한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오라버니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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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계연수는 그 일을 떠올렸다. 어릴 적 그녀는 유난히 먹을 것을 밝히는 아이였다. 많이 먹으면 항상 배를 잡고 앓아누웠기에 어머니는 밤에 더 먹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몰래 밖으로 나갔다.그날도 밤에 먹었던 얼음피 녹두떡이 생각나 부엌을 뒤지러 갔다가 하필이면 고준안에게 들키고 말았다.그 기억에 계연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다 먹고 나니 온 집안이 우리를 찾느라 난리였죠. 오라버니께서는 큰 외숙부께 맞기까지 하셨잖아요.”고준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도 얼마나 놀라셨는지. 손바닥 스무 대를 맞았지. 손이 퉁퉁 부었었다. 그래도 덕분에 다음 날 새벽 글씨 연습은 면했지.”그가 그 일로 슬쩍 게으름을 피웠다는 사실에 계연수는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이내 입을 가리며 웃었다.웃음 끝이 한결 가벼워졌고 마음의 무게도 조금은 옅어졌다.고준안은 그녀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섯, 일곱 살 무렵의 계연수는 아직 여물지 않은 눈 덩이처럼 동그랗고 통통한 아이였다.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어느새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는 여인이 되었다.사가에서 마음을 바꾼 것인지 오늘 오전에 찾아왔다. 그리고 심가의 그 인물까지.앞으로 또 누가 있을까?고준안은 입술을 가만히 다물었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계연수와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가 바라던 공명 또한 결국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없다면 공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담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 누각 위에서 심서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계연수가 고준안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옷자락이 거의 스칠 듯 가까이 선 모습.고준안은 이곳을 드나드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고 계연수 또한 그의 방문을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고 편안했으며 가벼웠다.반면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만 계연수를 볼 수 있었다.그 두 사람의 그림자가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다. 먹빛 비가 무겁게 내리며 세상을 젖게 만들었고 빗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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