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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계연수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따라가듯 심서준의 뒤를 따랐다.심서준은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 그녀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계연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가 입은 검은 비단 옷자락 뿐이었지만 그것이 은은한 압박처럼 느껴졌다.심서준은 사람이 없는 가산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가오는 계연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연약하고 부드러운 몸선, 연분홍이 스민 연노랑 옷자락. 봄날의 따뜻한 기운 속에서 그녀는 은은한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 향은 그가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달콤함과도 닮아 있었다.계연수가 채 다가오기도 전에, 그는 더는 참지 못한 듯 손을 뻗어 그녀를 당기더니 그대로 품에 끌어안았다.긴 팔이 그녀를 단단히 감싸 쥐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서 나는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직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계연수의 눈빛을 내려다보며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가산에 그녀를 밀어붙인 채, 깊게 입을 맞췄다.이틀 동안 그녀를 보지 못했다. 이틀 뒤면, 그녀는 온전히 그의 사람이 된다. 억지로라도 붙잡은 인연이지만 평생 놓을 수는 없었다.마음속에서 파도가 일듯 감정이 들끓었다. 단 한순간도 더 참을 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 그녀를 붙잡고 깊이 입 맞추고 싶을 뿐이었다.계연수에게 이런 입맞춤은 낯설었다. 거칠고도 밀어붙이는 힘, 숨을 쉴 틈도 없이 휘말리는 감각. 그녀는 완전히 그의 흐름에 휩쓸려 있었다.이토록 가까운 접촉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그녀의 손이 조심스레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입술은 얼얼하게 아팠고, 혀는 얽혀 빠져나올 수조차 없었다. 입이 벌어진 채,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잠식당하고 있었다.계연수는 작게 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는 어느새 물기가 맺혔다. 그의 가슴을 밀어내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심서준은 몸속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밀어내는 힘이 분명히 전해졌지만, 그의 손은 그녀의 허리를 놓지 않았다.오히려 더 깊이 끌어안고 눈을 낮게 가라앉힌 채 그녀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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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계연수는 그의 부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가 아니었다.게다가 그녀는 심서준을 자연스레 두려워하고 있었다. 감정이 싹틀 여지도 없이, 마음속은 모순과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심서준의 손끝이 계연수의 젖은 눈가에 닿았다. 그 눈 속에 담긴 거부와 두려움은 너무도 선명했다. 방금 전의 순간 역시, 감정에 휩쓸린 것은 오직 그녀뿐이었던 듯했다.그는 그녀의 몸에 깃든 욕망을 끌어내려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심서준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몸 안에 들끓던 열기를 억지로 눌러 담았다. 그리고 계연수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 채,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아무도 오지 않는다.”계연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손으로 그의 옷깃을 꼭 쥐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심 대인, 다음에는 그…”그 뒤의 말은 끝내 잇지 못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심서준은 잠시 멈췄다. 길게 내려앉은 그녀의 속눈썹을 내려다보며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지금 이 순간, 그녀를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혼례를 치르고 나면, 그때는 달라질 테니까.그는 짧게 답했다.“그래.”그 말에 계연수는 겨우 안도했다.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이곳은 승안후부의 후원이었다. 혹여 하녀라도 들이닥친다면 이렇게 그의 품에 기대 있는 모습은 결코 좋게 보이지 않을 터였다.그러나 심서준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등을 단단히 짚고 있었다.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 남은 희미한 이빨 자국. 다시 그녀의 약간은 불안해 보이는 눈을 바라보며, 낮게 말을 이었다.“이틀이나 못 봤는데 나한테 할 말은 없느냐?”계연수의 머릿속이 잠시 텅 비었다. 그러고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없습니다.”심서준은 담담히 눈썹을 들어 올렸다. 듣기 좋은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다니, 지나치게 솔직했다.그는 아직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손끝으로 천천히 닦아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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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계연수는 처음에는 승안후부에서의 생활이 어딘가 낯설고 불편할 것이라 여겼다.그러나 막상 지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승안후부 사람들은 대체로 온화했고 특히 여인들은 더욱 정겹게 대해주었다.밤이면 진가옥이 슬그머니 그녀의 방으로 찾아와 수다를 떨었고 소씨는 틈틈이 들러 따뜻하게 안부를 묻곤 했다.그 덕에 계연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곳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다만, 진가옥은 수다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늘 궁금한 것이 많았다. 특히 계연수가 어떻게 심서준과 알게 되었는지는 늘 화젯거리였다.그녀는 몰래 계연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심 후작은 보기만 해도 무섭잖아요. 늘 얼굴이 굳어 있고, 말투도 차갑고… 전 그런 사람한테 시집 못 갑니다.”그러고는 또 덧붙였다.“고모는 모르겠지만, 경성에 있는 여자들은 다 심 후작을 좋아하는데 아무도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그런 눈빛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꼭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니까요. 정말 무섭습니다.”계연수는 웃음을 머금었다.진가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심서준은 웃지 않을 때면, 분명 잘생긴 얼굴임에도 묘하게 위압적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게다가 그에게는 타고난 듯한 냉담함과 거리감이 있어 누구도 먼저 그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진가옥은 다시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정말 하나도 안 무섭습니까?”촛불이 잔잔히 흔들렸다. 그 따뜻한 빛 아래서 계연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자신이 그를 두려워해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달랐다.겉모습은 여전히 차갑고 위압적이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면 그리 무서운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답했다.“전에는 좀 무서웠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요.”진가옥은 환하게 웃었다.“이제 곧 시집가니까 더는 안 무섭겠네요.”계연수도 따라 웃으며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이튿날 아침, 계연수는 소씨에게 이끌려 혼례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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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한순간 분위기는 금세 떠들썩해졌다.계연수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위해 작은 그림을 한 폭씩 그려주고 그 위에 도장을 찍고 글씨까지 더해 주었다.아이들은 그것을 보물이라도 얻은 듯 품에 꼭 안고는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누가 더 예쁜지 떠들어댔다.그 모습에 주변에서 구경하던 이들까지 웃음을 터뜨렸다.승안후부 이방의 부인 담씨는 여러 어린아이들에게 둘러싸인 계연수를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소씨에게 말했다.“전에 볼 땐, 시어머님께 총애를 받는다 해도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는 아가씨네요. 무엇보다 성품이 참 좋고, 태도가 단정하면서도 여유가 있어요. 곧 심가에 시집간다고 해서 괜히 높은 집안에 올라탔다며 거들먹거리는 기색도 없고요.”소씨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예전에 계 대인께서 살아계실 때는 이 아가씨도 경성에서 제법 이름이 있었지. 다만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앞에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보거라. 그림을 그리는 솜씨며 말투며, 얼마나 차분하고 예의 바른지.”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덧붙였다.“굳이 ‘높은 집안에 올라탔다’고 할 것도 없다. 이 아가씨는 본래 교양이 깊은 사람이라, 계 대인의 일만 아니었다면 심가와 혼인할 자격은 충분했을 거니까.”“이런 아가씨라면 누구라도 좋아하게 되지요. 게다가 저렇게 고운 얼굴이니, 심 후작이 마음을 두는 것도 이해가 가고요.”담씨는 다시 한 번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진가옥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고 있었고 그 곁에서 두 며느리가 웃으며 말을 나누고 있었다.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계연수의 태도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억지로 꾸민 기색 없이 그저 편안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욱 사람을 끌어당겼다.담씨는 고개를 끄덕였다.“과연 큰 형님 말씀이 맞네요.”*그렇게 승안후부에서 이틀이 흘렀고 어느덧 내일이면 혼례를 올리는 날이었다.계연수는 조금 긴장된 마음에 오후 낮잠을 자려 했지만 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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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이튿날 아침이 되자, 승안후부는 이른 시각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계연수는 새벽부터 용춘과 들어온 하인들에게 깨워져 몸을 씻고 향을 피운 뒤,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고 단장을 했다.하인은 길한 말을 이어갔다.“첫 번째 빗질은 부부의 인연을 끝까지 이어지게 하고, 두 번째는 백년해로를 약속하며, 세 번째는 자손의 번창함을 뜻합니다.”계연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마음에는 큰 파문이 일지 않았다.이번은 그녀의 두 번째 혼인이었다.첫 번째에는 설렘으로 가득 차 얼굴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훨씬 차분했다.소녀처럼 들뜨는 마음은 없었으나 그 대신 전보다 훨씬 깊은 안정감이 자리하고 있었다.방 안에는 승안후부의 후작부인과 둘째 부인이 서서 분주하게 손을 보태고 있었고 계연수가 단장을 마치자 함께 혼례복을 입혀주었다.복잡한 절차가 이어진 끝에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는 이미 사시를 넘긴 뒤였다.진홍색 혼례복은 몸에 묵직하게 얹혀 있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 현실감이 희미하게 흐려졌다.담씨와 소씨의 부축을 받으며정당으로 향하자 상석에는 영경공주와 고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계연수는 두 사람에게 차를 올렸고 영경공주는 환한 웃음으로 여러 축복의 말을 건넸다.계연수는 공손히 답한 뒤,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고씨가 직접 그녀의 머리에 붉은 덮개를 씌웠다.이어서 방 안의 사람들 역시 하나둘 앞으로 나와 축복과 이별의 말을 건넸다.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밖에서 관사가 들뜬 목소리로 들어와 말했다.신랑이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심 후작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고 했다.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수를 둘러싸고 대문 앞으로 향했다.그때의 계연수는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그저 사람들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징과 북 소리가 울려 퍼지고 주변에서는 축하의 말이 쏟아졌지만 그녀의 귀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단지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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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붉은 덮개가 천천히 들리자 눈앞에 드러난 것은 연꽃처럼 곱고 맑은 얼굴이었다.평소 단정하던 얼굴에 화장이 더해지고 이마에는 매화 장식이 얹혔다.가늘게 휘어진 눈썹, 봄빛이 스며든 듯 윤이 도는 눈동자, 단아한 콧날과 붉은 입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아름답고도 은은한 매혹을 자아냈다.특히 계연수가 덮개가 올라가는 순간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어 올리자 그 눈빛은 마치 사람의 혼을 끌어당기는 듯 깊고 아득했다.그 한순간 심서준의 손길마저 멈칫했고, 그 눈에 이끌린 듯 숨이 살짝 막혔다.보석과 진주, 붉은 혼례빛 아래에서 드러난 얼굴은 화사하면서도 그 안에 은근한 수줍음이 스며 있었는데 그것은 오롯이 계연수만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었다.덮개가 걷히자 곁에 있던 수모는 붉은 비단을 덮은 쟁반을 들고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나으리, 이제 합근주를 드실 차례입니다.”그제야 심서준은 시선을 거두고 입술을 다문 채 옥빛 술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계연수에게 건넸다.계연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기가 어려워 술잔을 받으며 살짝 그를 올려다보았다.붉은 혼례복을 입은 심서준. 여전히 차가운 기색이 서린 얼굴이었으나 깊은 눈동자는 오롯이 그녀만을 향하고 있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시선에 닿는 순간 심장이 괜히 더 세게 뛰었다.어쩐지 이 순간의 그는 더 낯설고 위압적으로 느껴졌다.결국 그녀는 시선을 떨군 채 더는 그를 보지 못했다.곧 두 사람의 팔이 교차되었고 심서준의 뜨거운 숨결이 뺨 가까이 스쳤다. 코끝에는 그의 향이 스며들었다.계연수는 숨이 조여드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손에 든 술을 단숨에 넘겼다.양은 많지 않았지만 입안에 퍼지는 씁쓸함과 매운 기운에 조금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그때 곧장 눈앞에 찻잔 하나가 내밀어졌다.길고 단정한 손과 함께 귓가에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한 모금 마시거라. 속이 좀 편해질 것이다.”계연수는 급히 받아들었다.수모는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넋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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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심서준은 한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밖을 향해 짧게 한마디를 내렸다.잠시 후, 작은 상차림이 방 안으로 들여왔다.사람들이 물러나자 심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수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계연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지만 곧 그의 손이 등을 받치며 멈추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인 채 어딘가 갈피를 잡지 못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먹빛 같은 눈동자가 깊게 내려앉으며 낮게 물었다.“그렇게까지 나를 두려워하느냐.”계연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빛을 등지고 서 있는 그의 얼굴과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은 평소보다 더 위압적으로 느껴졌다.심서준은 좀처럼 웃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 얼굴엔 늘 엄정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계연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심서준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녀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고 곧 손을 들어 그녀 머리 위에 얹힌 무겁게 내려앉은 신부관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관이 벗겨지는 순간, 계연수는 온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제야 어깨에 힘을 빼고 숨을 놓을 수 있었다.그제서야 그가 다가온 이유를 이해했다.계연수는 그를 올려다보며 작게 말했다.“심 대인, 감사합니다.”심서준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먼저 좀 먹거라.”그제야 계연수는 급히 작은 상으로 향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붉은 혼례복을 입고 검은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채였다. 관을 벗긴 머리에는 장식 하나 없었지만 오히려 그 수수함이 그녀를 더 맑고 단아하게 만들었다.상 위의 음식은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심서준은 그저 옆에 앉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 시선을 견디며 계연수는 억지로라도 끝까지 먹었다.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헹구자 심서준은 다시 한 접시의 연자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 시선이 그녀를 향한 채, 말했다.“신혼날 밤에 이걸 먹으면 자손이 많아진다 하더구나.”마치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던지듯, 담담하고 건조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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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할 때인 듯했다.용춘이 밖으로 나갔다가 옷을 들고 들어왔는데 손에 들린 것은 얇은 잠옷뿐이었다.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시간에 목욕을 마치고 다시 겉옷을 입을 리는 없으니까.계연수는 잠옷 차림으로 안으로 들어섰다.겹겹이 드리운 장막 너머의 내실, 그곳에는 이미 심서준이 옷을 갈아입은 채 앉아 있었다.연한 달빛 같은 색의 옷차림, 병풍 옆 귀비침에 기대 앉아 손에 든 책을 느슨하게 넘기고 있었다.그녀가 들어오는 기척에 그는 책을 내려놓았다.계연수가 이렇게 잠옷 차림으로 그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어딘가 숨을 곳을 찾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그 기색을 알아차린 듯, 심서준이 낮게 말했다.“늦었다. 먼저 가서 눕거라.”계연수는 무심코 되물었다.“그럼… 심 대인은요?”심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얇은 옷 한 겹만 걸친 그녀는 화장도 모두 지워진 상태라 한층 더 맑고 부드러워 보였다.검은 머리칼이 풀어진 채 가느다란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그 시선이 그녀의 살짝 젖은 옷깃에 닿는 순간, 심서준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끓어오르는 듯했다. 목소리도 한층 낮고 거칠게 변했다.“나는 신경 쓰지 말거라.”잠시 그녀를 훑어보던 그는 덧붙였다.“침상은 이미 정리해두었다. 가서 바로 자면 된다.”그러고는 다시 한 번 깊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는 먼저 씻고 오겠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몸을 숙여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연수야, 자연스럽게 행동하거라. 안에는 아직 시중드는 이들과 궁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그 말에 계연수의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은 촛불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를 믿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오롯이 그녀를 향한 집요한 소유욕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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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계연수는 문밖에 시중드는 이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 마찬가지로 잠옷 차림인 심서준을 힐끗 바라보며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그는 침상에 올라 두터운 장막을 천천히 내려뜨렸다.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이불이 미묘하게 흔들렸고 계연수는 자신의 곁, 아주 가까운 곳에 심서준이 누워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느꼈다.머릿속이 여전히 아득했다.이렇게 자신이 그와 같은 침상에 누워 있을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그녀가 미처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에 잠겨 있던 그때, 한 손이 뻗어와 그녀의 허리를 단숨에 끌어안았다.몸이 자연스럽게 침상 가운데로 끌려갔다. 곧이어 따뜻한 체온이 밀착되듯 다가왔다.어둠 속에서 그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느냐?”계연수의 몸이 굳어버렸다.본능적으로 손을 그의 가슴 위에 얹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심서준은 문득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에 숨결을 흘리며 나직하게 말했다.“첫날밤인데 이렇게 조용히 보내려는 것이냐?”계연수는 순간 멍해졌다가 곧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너무 조용한 것도 이상하긴 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그… 궁에서 온 분은 아직 안 가셨습니까?”심서준의 손이 그녀의 허리 뒤를 부드럽게 쓸었다.그는 낮게 답했다.“문 밖에 있다. 안에서 나는 소리는 다 들을 수 있겠지. 그 여인은, 며칠 전 궁에서 보내온 사람이다. 너에게 예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지.”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마디 덧붙였다.“황제의 사람일 것이다.”실상은 황후 측에서 보낸 사람이었지만 그는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계연수는 그 말에 완전히 설득된 듯 더욱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그녀는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일부러 만들어낸다는 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심서준은 품에 안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가볍게 숨 쉬는 몸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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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그날 밤, 계연수는 자신이 어떻게 잠들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단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심서준의 손길 아래에서 무너져 내리듯 힘을 잃었던 그 순간뿐이었다.아침이 밝고 계연수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몸은 온전히 그의 품 안에 감싸여 있었다.그녀는 천장을 가린 장막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전날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지금 당장이라도 땅이라도 파고 들어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아직 밖에서 부르는 소리는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조급해지고 있었다.오늘은 심가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라 늦잠을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의 팔이 느껴지자 계연수는 순간 생각이 스쳤다.어젯밤, 바로 이 손이...그녀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심서준의 방에는 첩도, 시중드는 여인도 없다고 들었는데 그는 어떻게 그런 일들을 알고 있었던 걸까.그녀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그런 식으로도 가능한 것이었구나.’생각이 점점 깊어지자 몸이 다시 뜨거워졌다.계연수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끊어냈다.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허리에 얹힌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아주 살짝 움직였을 뿐인데 뒤에서 안고 있던 심서준이 그 기척에 눈을 떴다.잠에서 막 깬 듯한, 나른하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일어났느냐.”계연수의 몸이 굳었다.“네.”심서준의 시선이 그녀의 희고 부드러운 목덜미에 머물렀다. 그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더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어젯밤, 잘 잤느냐?”그 말 한마디에 계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어물거리며 넘겼다.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그녀에게서 은은히 풍기는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네가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계연수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저… 좋아한 거 아니에요.”어젯밤 그는 계연수가 내는 소리가 너무 얌전해 밖에 있는 노파에게 들리지 않을 거라며,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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