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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1화

계연수의 말이 끝나자 심서준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는 옅게 웃음을 흘렸다.그 웃음을 보면서도 계연수는 그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가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후원이 편안해야 남자가 앞마당에서 마음 놓고 정사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그래서 자신은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심서준이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지켜주듯, 자신 또한 아무 쓸모 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심서준은 시선을 내려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부드럽고, 맑은 눈. 마음속 생각이 그대로 비치는 듯한 얼굴.그는 입술을 다물었다. 소리 없는 한숨이 가볍게 스쳤다.길고 곧은 손끝이 그녀의 뺨 위에 닿았다. 고요하고 깊은 눈빛은 마치 고인 물처럼 잔잔했다.한참을 바라보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괜찮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낮고, 담백한 음성.웃지 않는 얼굴에는 차분한 위엄이 배어 있었다.그 눈빛을 마주한 계연수는 더 이상 일어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그의 드러난 가슴에 계연수는 도저히 시선을 둘 수 없어 그대로 얼굴을 이불 속으로 파묻어버렸다.그 모습을 본 심서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의 턱을 잡아 들어 올리며 말했다.“빛을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왜 숨는 것이냐?”마치 꾸짖는 듯한 말투에 계연수는 잠시 멍해졌다.그리고 그의 무심한 듯 나른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작게 말했다.“아니에요.”심서준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가 손을 놓았다.원래는 이 아침, 조금 더 그녀를 품에 안고 있고 싶었지만 계연수는 이미 현숙한 부인의 모습으로 마음을 다잡은 듯했다.그 모습이 어쩐지 나른하게도, 또 묘하게 빛나 보였다.그때, 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을 알리는 시녀의 목소리였다.그러자 심서준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그 노파는 계연수를 순순히 따르게 하려고 일부러 남겨둔 것일 뿐, 아니었으면 진작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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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계연수는 막 잠에서 깨어나 아직 정신이 몽롱했다.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눈앞에는 이미 세면 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섯, 여섯 명의 시녀가 그녀 앞에 서 있었고 한 명은 타구와 찻잔을 들고 와 아침에 입을 헹구라 권했다. 그 차에는 청염과 박하, 정향이 더해져 있었다.곧이어 알맞게 데운 물이 담긴 놋대야가 내어져 손을 씻게 했고 다시 적셔 둔 비단 면수건이 건네졌다. 모든 과정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이어졌고, 한 사람이 물러나면 또 다른 시녀가 다가와 신을 신겨 주고 옷을 가져와 어떤 것을 입을지 고르게 했다.계연수는 예전 규중에 있을 때, 시녀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느긋하게 몸단장을 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마치 나무 인형처럼, 누군가가 밀어주듯 정해진 순서대로 하나하나 움직여야 했다.그녀가 아무렇게나 하나를 가리키자 시녀들은 곧바로 분주하게 움직였다.정신이 조금 돌아왔을 때는 이미 그녀는 화장대 앞 수놓인 방석 위에 앉아 있었고, 몸에는 입을 것들이 모두 단정히 갖춰져 있었다. 발치에는 시녀 하나가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에 옥 장식을 달아주고 있었다.방 안은 끝내 조용했고 계연수조차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곁에는 또 다른 어멈이 여러 개의 향고를 받쳐 들고 공손히 어떤 향을 쓰겠느냐 물었다. 상자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계수나무 기름, 말리 기름, 난향 고약, 한련초 연고까지. 계연수조차 모르는 것도 있었다.어멈은 이것들이 모두 궁중에서 쓰는 최고급 물건이며, 심서준이 특별히 그녀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 설명했다.계연수는 다시 아무거나 하나를 짚었다. 그러자 어멈은 나머지를 치우게 하고,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에 정성스럽게 향을 발랐다. 손길이 능숙해 본래 윤기 나던 머리칼이 한층 더 빛을 머금었다.계연수도 그 손길이 편안하게 느껴져, 심가의 하인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거울을 들여다보던 그녀의 시선이 목덜미로 향했다. 옷깃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붉은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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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심서준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아 있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늘 그렇듯 묵직한 엄정함이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 계연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다 됐습니다.”심서준은 다시 시선을 내려 그녀의 옷깃 쪽을 훑었다. 반쯤 가려진 붉은 자국이 은근히 드러나 있었고, 고개를 숙인 채 수줍어하는 모습까지 더해지자,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묘하게 당겨졌다.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걸어 나섰다. 심서준은 곁을 따르는 진 상궁을 한 번 흘끗 보더니, 살짝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문하는 주인의 눈빛을 보고 그가 왜 못마땅해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침에 그 노파가 사람을 부르려 할 때 자신도 막아보려 했지만, 자신은 황후 마마의 심복이라며 후작부 규범을 가르치러 왔다고 내세우니 기세가 만만치 않아 결국 막지 못했다. 괜히 주군의 눈총이 자기에게 돌아올까 싶어 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뜰을 나설 즈음, 문 앞의 노파가 말했다. 노부인이 이미 두 번이나 사람을 보내 재촉했다고.심서준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반응하지 않았지만 계연수의 마음은 살짝 조여들었다.길을 걸을 때 계연수는 심서준보다 반 걸음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따라갔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침착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곧 마주하게 될 심가 어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계속 궁리하고 있었다.생각에 잠긴 채 걷다가, 이마가 심서준의 등에 부딪히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심서준이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봤다. 멍하니 올려다보는 눈동자, 방금 부딪힌 충격에 머리의 비녀와 귀걸이가 흔들리며 꽃가지처럼 떨렸다. 그 모든 것이 유난히 사랑스러워, 눈을 떼기 어려웠다.문득 어젯밤, 품 안에서 느껴지던 부드러운 온기가 떠올라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는 그대로 끌어 정당으로 향했다.정당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심서준의 큰 아버지 집안까지 일찌감치 모두 도착해 있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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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심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수많은 시선이 쏠린 자리에서 이를 악물고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찻잔을 받아 들고는 몇 마디 훈계와 부부 간 화목을 당부하는 말을 건넸다. 이어 손수 계연수의 목에, 손바닥 반쯤 되는 크기의 가보인 비취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그것으로 며느리를 인정하는 뜻을 보인 셈이었다.하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며 분노를 삼켰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반드시 계연수에게 체면을 세워주어야 했기 때문이다.계연수는 공손히 감사 인사를 올린 뒤, 다시 심 수보께 차를 올렸다.심 수보는 빙그레 웃으며 찻잔을 받아 들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들이 이 아이를 남다르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도 애써 두 사람을 이어보려 했고, 이 아이를 자꾸 아들 곁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하지만 그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고고하고 오만한 기질을 지니고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이 그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조차 알지 못했다.다행히도 한 바퀴 돌아 결국 인연이 맺어졌다. 그 생각에 심 수보의 마음은 그저 벅차오를 뿐이었다.화리니 아니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의 일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인연이고, 인과일 뿐이었다.그는 본래 속박 없는 성정이었지만 예전에 계연수의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일은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 계연수가 심가에 들어온 것을 보니 더없이 기뻤다.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아들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타고난 성미가 차갑고 고고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는 가까이 다가서기조차 쉽지 않고, 어쩌면 평생 누구 하나 마음에 들이지 못할지도 모른다.그는 아버지로서 늘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아들이 평생 차가운 돌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사람으로 태어나 단지 살아 있기만 하는 것이, 과연 온전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그래서였다. 아직 작고 앳된 계연수가 아들의 소매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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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계연수는 정당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따금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유심히 살피기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건네기도 했다.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은 네댓 살쯤 된 어린 아가씨들과 어린 도련님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연수를 에워싸고 구경했다.백씨가 몇 번이나 웃으며 떼어내려 했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계연수 또한 성격이 부드러워, 작은 아이 하나를 안아 들고 몇 마디 장난을 건네며 달래주었다.그러다 심정우 앞에 이르렀다. 그 곁에 서 있던 어린 후손들은 하나같이 계연수를 향해 “오숙모”라 부르며 인사를 했지만, 심정우만은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멍하니 계연수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백씨는 그의 이런 엉뚱한 태도가 어른들 앞에서 예의에 어긋날까 걱정되어 웃으며 어깨를 살짝 밀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냐? 오숙모 보니 반가워서 그런 것이냐?”계연수 역시 심정우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다. ‘조카’라는 말은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웠고, 심서준처럼 이름을 그대로 부르자니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심정우는 눈시울이 따끔해지고 목이 메어왔다. 도무지 ‘숙모’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요 며칠 그는 군영에 붙잡혀 있었다. 계연수를 만나러 가겠다고 휴가를 청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운(漕運: 세곡이나 물자를 수로로 운반하는 것)의 군량을 감독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오숙부의 혼례 소식을 듣고서야 겨우 돌아와 축하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다.형에게서 오숙부가 계연수를 부인으로 맞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일찍 와,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 했다.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보니 온몸이 돌덩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그때 맞은편에서 차갑게 내려앉는 시선이 느껴졌다. 심정우는 멍하니 오숙부의 눈과 마주쳤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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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황후 마마가 떠나려 하자, 사람들은 또다시 나가 전송해야 했고 번거로운 절차가 한차례 더 이어졌다.밤이 되어 연회가 열리자 심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곁에 앉히고, 반대편에는 백씨를 앉혔다. 백씨는 자리에서 사방으로 눈치 좋게 움직이며 분위기를 띄우고, 노부인을 살뜰히 모셔 기쁘게 했으니, 말수가 적은 계연수는 자연스레 어딘가 서툴러 보였다.계연수로서도 백씨 같은 성정을 흉내 낼 수는 없었다.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이고도 여전히 빛나는 얼굴, 조금도 지친 기색 없는 그 모습은 더욱 따라 하기 어려웠다.그녀는 본래 내성적인 편이었기에 백씨의 영리하고 능숙한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이 자리에는 각 방의 부인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중 계연수만이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노부인을 모시는 일에서도 백씨만큼 능숙하지 못했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결국 그녀는 몰래 힘을 빼고, 조용히 음식이나 집어 들었다. 어차피 배도 몹시 고팠으니 말이다.다만 그녀는 새로 들어온 며느리였기에,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말을 붙였고, 잔을 들어 술을 권했다. 결국 먹는다 해도 제대로 먹지는 못했다.연회가 끝난 뒤에도 한차례 더 인사와 응대가 이어졌다. 나이는 어리고, 서열은 높으니, 어느 쪽으로도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계연수가 노부인의 곁에 앉자 그녀는 계연수에게 곁눈질 했다.노부인은 담담히 말했다.“시집왔으면 이런 자리도 익숙해져야지. 이런 것도 아직 못 하겠느냐?”계연수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응했다. 피곤했지만 몇몇 사촌 형수들과도 말을 나누었다.그들은 후손들의 앞날을 이야기하고, 손주들의 귀여운 일화를 나누며, 후택 살림과 첩을 다스리는 법까지 입에 올렸다. 계연수는 때때로 몇 마디씩 맞장구를 쳤다.이야기가 자식 문제로 넘어가자 모두들 더욱 흥이 올라, 계연수에게 하루빨리 아이를 가지라 권했다.계연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다.하지만 중간에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갔다가, 두 사촌 형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말을 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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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계연수는 말없이 진 상궁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 말의 뜻은 분명했다. 황후 마마가 그녀를 곁에 붙여 두어, 시시각각 언행을 살피게 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궁으로 전해질 지도 모른다.하지만 계연수는 그녀를 억지로 내쫓는 건 불가능했기에 결국 그저 참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지만, 심서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곁에 있던 어멈에게 물으니 그가 서재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계연수는 잠시 망설였다. 서재로 가 안부를 묻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을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순간, 어멈이 다시 입을 열었다.“나으리께서 잠시 후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부인께서는 먼저 쉬시라 하셨습니다.”그제야 계연수는 마음을 놓았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에 정신이 몽롱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화장대 앞에 앉아 하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머리를 풀고 향유를 발랐다.사실 심서준이 방에 없으니, 그녀는 훨씬 숨이 트였다. 다만 이곳 하녀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물든 듯,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엄숙한 기운만 띠고 있었다. 막 들어온 계연수로서는 괜히 몸을 더 단정히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수다를 좋아하는 용춘마저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모든 준비가 끝나고 침상에 앉았을 때, 하인들은 모두 물러나 휘장 밖에 서 있었다.심서준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터라, 그제야 주종 둘은 조용히 속삭일 수 있었다.용춘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뜰의 하녀들은 어쩜 다 돌덩이 같을까요? 오늘 안에서 큰 하녀랑 좀 친해져서 이것저것 물어보려 했는데,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제가 열 마디를 하면 겨우 몇 마디만 돌아오더라니까요.”계연수는 장미 향이 더해진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입안 가득 향이 퍼지고, 몸도 따뜻해지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하루 종일 유지하던 단정한 태도도 느슨해져, 어깨가 내려가고 허리도 풀리며 공작과 모란이 수놓인 커다란 방석에 몸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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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그는 낮게 쉰 목소리로 물었다.“방금 왜 웃고 있었느냐?”계연수는 감히 방 안의 하녀들이 심서준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두고 웃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눈길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핑계를 둘렀다.“그냥… 차가 맛있어서요.”심서준은 그런 계연수를 내려다보며 미묘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등 뒤에서 자신을 두고 한 말에는 웃음까지 터뜨리면서, 정작 앞에서는 이런 식으로 얼버무린다니.하지만 따져 묻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그녀 마음속의 자신이란, 원래 그런 존재였으니까.그는 손끝으로 계연수의 매끈한 턱선을 천천히 쓸어내렸다.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자 목울대가 한 번 굴러갔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이제 자야지.”그 말에 계연수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은 그녀의 미묘한 긴장을 눈치채고 손을 거두었다.계연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시선을 피하며 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어제처럼 구석에서 몸을 웅크렸다.어젯밤 신혼의 밤은 어찌어찌 넘겼으니,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난밤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자 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그와 마주하지 않으려 했다.심서준은 등을 돌린 채 누운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침상 위로 올라왔다. 휘장을 내리고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당겨 품 안에 눌러 안았다.계연수는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눈앞에는 헐렁하게 풀어진 그의 옷깃이 있었고, 그 아래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허리 뒤에 놓인 그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가볍게, 때로는 조금 더 깊이 옷자락 사이로 스며들 듯 닿았다가 다시 물러나며 일부러 애태우듯 맴돌았다.허리 옆은 특히 예민한 곳이었다. 그가 스칠 때마다, 계연수의 몸이 저도 모르게 가늘게 떨렸다.심서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계연수의 마음만 점점 더 흔들렸다.오늘도 바깥에 있는 진 상궁에게 들리게 해야 하는 걸까.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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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창밖에는 달이 나뭇가지 끝에 걸려 있었고, 나뭇잎은 바람에 스치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촛불은 얇은 비단 덮개 속에 감싸여, 입안에 머금은 듯 순하게 빛나는 별처럼 흔들렸다. 병풍 위로 겹쳐지는 그림자는, 막 새로 걸어놓은 수묵화처럼 번져나갔다. 산세는 부드럽게 이어지고, 구름 기운은 그 위를 가로질렀다.검은 머리칼이 흘러내릴 때마다 미세한 바람이 일었고, 거의 꺼져가던 향로 속 향연을 살짝 흔들어 놓았다.연기는 방향을 바꿔 동남쪽으로 흘렀다. 오늘 밤 길신이 머문다는 그 방향으로 말이다.양지옥 패옥이 발받침에 부딪혀 맑게 울렸다. 그 소리에, 휘장 고리에 걸린 달빛마저 흔들린 듯, 격자창 사이로 스며든 빛이 발목 위를 조용히 적셨다.향은 점점 느려지고 금빛 박산로에서 피어오르던 연기는 허공에 멈춘 듯 머물렀다.그 떨림은 마치 놀란 학 떼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그 속에서 떨어지는 한 마리 깃털은 그의 따스한 열기를 머금은 채, 손길에 젖어드는 것 같았다.자단목 조각의 모란 덩굴무늬는 손바닥에 닿아 이 흐르는 순간 속 유일한 잔물결이 되었다.비단 장막의 술은 빗줄기처럼 흔들리고 멀고 가까워지는 그림자는 달빛 아래 산 그림자처럼 겹쳐졌다.촛불이 서서히 어두워질 즈음, 심서준은 몸을 일으켜 휘장을 젖혔다. 손수건으로 젖은 손을 닦고는 품 안의 사람을 내려다보았다.계연수는 봄물처럼 풀어진 채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흰 얼굴에는 몇 가닥 머리카락이 얽혀 있었고 눈매에는 아직도 물기가 어렸으며 그가 남긴 입맞춤으로 붉어진 입술은 등불 아래에서 촉촉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가지런하던 옷깃은 흐트러져 그 아래 드러난 희고 매끈한 살결이 은은히 비쳤다.안쪽의 연분홍 모란무늬 속옷이 희미하게 드러나며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흔들리는 등불 아래, 그 모습은 그저 숨이 막힐 듯한 한 폭의 그림 같았다.심서준은 아직 원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움직였다.희고 단정한 얼굴 위로, 길고 짙은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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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입술 사이로 스며드는 그 은은한 아릿함이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또렷했다.계연수는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떴다.눈앞에는 그녀를 안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심서준이 있었다. 단정하고 고아한 얼굴은 더없이 엄숙해 보였다.하지만 어젯밤, 바로 그 단정한 얼굴의 사람이…계연수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이전에는 그와 이렇게 가까워진 적이 없었기에 그에게 어떤 감정도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이틀 밤, 그와 함께한 이후로 그녀는 분명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졌다는 것을.그렇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때, 심서준이 문득 눈을 떴다.계연수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마치 들킨 사람처럼 서둘러 눈을 감았다. 스스로도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그의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어젯밤, 분명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감각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사옥현은 그런 적이 없었다. 혼인 초에는 늘 서두르기만 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점점 그녀를 찾지 않게 되었으며 때로는 두세 달씩 아무 일도 없던 적도 있었다.계연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합방이란 게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그런데 그 모든 감각이 심서준의 손끝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깊이 당황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차마 그 감정을 인정할 수 없었다.심서준은 그녀의 등을 감싸 안으며 낮게 말했다.“아직 혼례 기간이다. 이 며칠 동안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더 자도 된다.”계연수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대답했다.“…네.”몸은 이미 지쳐 있었고 그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진 상궁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계연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정말 깊이 잠들어 버렸다. 그가 곁에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어쩌면 그에게 안겨 있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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