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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춘귀의 모든 챕터: 챕터 611 - 챕터 620

721 챕터

제611화

계연수는 최은조의 말을 듣다가, 마치 두 사람이 예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것처럼 느껴져 문득 물었다.“아가씨께서는 제 부군과 예전부터 친하셨나요?”최은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저 서로 아는 사이였을 뿐이죠. 심 후작께서는 제 오라버니와 워낙 친분이 깊으셨거든요. 오라버니도 예전에 심가 족학에서 공부하셨고요. 가끔 오라버니가 저희 자매들을 함께 데리고 가곤 했는데,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요.”“제가 심 후작을 처음 본 건 일곱 살 때였어요. 그땐 심 후작께서 이미 열세 살이셨는데… 참 차갑고 단정한 소년이셨죠. 누구에게나 무심했고 얼굴도 늘 엄숙했어요. 저희 최가 규수들도 인사만 나눴을 뿐, 그 외에는 거의 말을 섞지 못했어요.”“그 뒤로도 심 후작께서 종종 부친을 따라 평남후부에 들르시긴 했지만, 제가 심 후작과 나눈 말이라고 해봐야 열 마디 남짓이에요.”계연수는 최은조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눈가에는 잔잔한 웃음이 어려 있었고, 목소리는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흐르듯 이어지는 말투는 이상하리만치 쉽게 믿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계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겨우 열 마디 남짓한 사이였는데, 심서준은 어째서 혼인을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사실은, 오래전부터 마음이 있었던 걸까.하지만 그녀는 곧 스스로 생각을 끊어냈다.지금 와서 그런 걸 따져본들 아무 의미도 없었다.애초에 자신과 심서준의 혼인부터가 서로 사랑해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 않은가. 굳이 이런 일로 마음을 쓰고 따질 필요도 없었다.심서준도 결국 사람이다. 젊은 시절 누군가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더구나 최은조는 성품이든 용모든, 충분히 사람 마음을 끌 만한 여인이었으니까.무엇보다 그녀 몸에 밴 그 담담하고 서늘한 분위기는, 솔직히 심서준과 꽤 닮아 있었다.계연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함께 최은조의 규방으로 향했다.최은조는 정말 몸이 좋지 않은 듯했다. 방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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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창밖으로 스며든 옅은 햇살 한 줄기가 방 안으로 비쳐들어와 최은조의 창백한 얼굴 위에 내려앉았다.그 모습은 마치 세상 어떤 욕심도 품지 않은 사람처럼 담담하고 맑아 보였다.계연수는 최은조가 정말 이 그림의 가치를 모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값으로 따지자면 그야말로 천금을 줘도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런데도 최은조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마치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처럼.계연수는 또 문득 생각했다.최성군은 정말 여동생을 아끼는구나. 조금 전에도 그녀의 몸 상태를 세심히 챙겼고, 이런 귀한 그림마저 아낌없이 내어줄 정도였으니.계연수는 당연히 받을 수 없었다.그녀는 먼저 그림의 가치를 이야기한 뒤 조용히 말했다.“이건 최 세자께서 아가씨께 주신 선물이잖아요. 아가씨를 위한 마음이니 제가 받을 수는 없어요.”최은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리 귀해도 결국 그림 한 폭일 뿐이에요. 저는 심씨 부인만큼 그림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요. 제게 있어봤자 오히려 아까운 작품이죠. 어쩌면 심씨 부인 곁에 있는 게 이 그림에게도 더 좋은 일일지 몰라요.”그러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시녀에게 그림을 내려오라 시켰다. 정말 그대로 계연수에게 보내줄 생각인 듯했다.계연수는 황급히 만류했다.이건 거의 강제로 보물을 안겨주는 수준이었다. 손님으로 와놓고 어찌 남의 귀한 그림까지 들고 갈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최은조는 오히려 계연수를 붙들며 웃었다.“심씨 부인, 사양하지 마세요. 제게는 심씨 부인과 가까워지는 게 저 그림 한 폭보다 훨씬 중요하거든요. 저는 심씨 부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심 후작께서 그토록 아끼시는 사람인데, 어찌 좋은 분이 아니겠어요. 이 그림을 부인께 드리는 것도, 결국 이 그림에게 좋은 주인을 찾아주는 셈이에요.”말을 마친 최은조는 시녀가 내려온 그림을 직접 받아 조심스럽게 말아 올린 뒤 계연수 손에 건넸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용했다.“심씨 부인, 제 마음이에요. 부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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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아가씨의 필치는 기운의 흐름이 조금 부족해요. 준법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에만 치우쳐 있어, 그림 속 기세와 의경이 옅어진 겁니다. 진짜 산수 속 운무는 이렇게 멈춰 선 듯 답답하면 안 되거든요.”말을 마친 계연수는 문득 자신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한 건 아닌가 싶어 최은조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덧붙여 좋게 말해주려던 순간, 최은조가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조금의 불쾌함도 없었다. 오히려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전 몸이 약해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그림 속에 담긴 진짜 산수를 본 적도 많지 않고요. 규방 안에서 옛 그림들만 따라 그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신운까지 담아내긴 어려운 것 같아요.”그러고는 다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전 아직도 처음 심씨 부인의 그림을 봤을 때를 기억해요. 그 그림은 정말 영기가 흐르는 듯했거든요. 그때 부인께서는 겨우 열두 살이셨는데도, 그림 속 풍경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당시 저희 자매들이 서로 먼저 보겠다고 다퉜을 정도예요.”계연수는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아버지는 휴무일만 되면 늘 그녀를 교외로 데리고 나가 구름과 안개를 보여주곤 했다. 때로는 지방으로 공무를 나갈 때조차 그녀를 함께 데려가, 안탕산의 용추를 보게 하고 폭포 아래 부서지는 물보라를 보여주었다.그 장면들은 지금 떠올려보아도 너무 선명했다. 그리고 늘 웃으며 말하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옆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산수만큼 자유로운 것은 없다며, 속박받지 않는 산천을 많이 봐야 마음도 넓어진다던 말.계연수는 한동안 말없이 멍하니 있었다.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최은조 역시 계연수에게 스며든 갑작스러운 슬픔을 느낀 듯했다. 그녀는 얼른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자신의 소장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몇 마디 더 나누기도 전에, 바깥에서 시녀가 들어와 전했다.심서준과 최성군이 마당 밖에서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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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최은조의 손목은 마치 쇠붙이 같은 손에 붙들린 듯했다.최성군의 손아귀가 워낙 단단했던 탓에, 그녀의 얼굴은 순간 더 창백하게 질렸다.마당 안의 시녀들은 이미 이런 광경에 익숙한 듯했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했고, 조용히 나가 문까지 닫아두었다.최은조는 그대로 최성군에게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서재까지 끌려갔다.최성군은 벽 쪽을 힐끗 보자마자 얼굴이 단번에 굳었다. 자신이 선물했던 그림이 사라져 있었다.그는 곧장 최은조를 긴 책상 가장자리에 밀어붙였다. 큰 체구가 그대로 그녀 위로 드리워졌다. 얼굴빛은 몹시 좋지 않았다.“내가 그렇게 공들여 찾아준 생일 선물이었는데, 넌 그냥 남 줘버린 것이냐?”등 뒤는 단단한 책상 끝이 막고 있었고, 앞에는 최성군의 단단한 몸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최은조는 피할 곳이 없었다. 결국 정면으로 그의 시선을 받아내며 차갑게 말했다.“오라버니께서 제게 주신 거라면, 이제 제 물건 아닌가요? 제가 누구에게 주든 그것까지 오라버니께서 간섭하실 건가요?”최은조의 “오라버니”라는 호칭을 듣는 순간, 최성군의 안색은 더욱 짙게 가라앉았다.그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한 손으로 최은조의 허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목소리에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난 늘 네 뜻 맞춰줬다. 이 몇 년 동안 내가 너한테 잘못한 적 있었느냐? 넌 여전히 이렇게 고집만 세구나. 아까도 네 몸 생각해서 먼저 들어와 쉬라고 한 거였다. 헌데 넌 굳이 심씨 부인까지 데리고 왔지. 오늘 내가 겨우 시간 낸 건데, 일부러 심씨 부인을 끌어들인 것이냐? 내가 널 찾으러 오는 게 싫어서?”허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최은조는 고통에 속눈썹을 떨었다.그녀는 최성군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오라버니께서 절 위한다는 게… 이런 마음을 품는 거였나요? 절 위한다면서 제 혼사를 막아온 거였고요? 지금은 오라버니께서 세자라 집안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죠. 제가 열다섯이었을 때, 이미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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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심 후작의 가문과 신분은 경성 안에서도 견줄 이가 없었다.예전에 자신과 혼담이 오갔던 사내들처럼, 최성군이 마음대로 망쳐버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그래서 그녀는 생각했었다.자신이 심 후작에게 시집가기만 한다면, 최성군 역시 어쩔 도리가 없을 거라고.그녀와 심 후작은 서로 필요한 것을 얻는 관계가 될 뿐이었다.그날 그녀가 직접 심 후작을 찾아갔을 때,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자신은 심 후작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없다고.그저 심 후작의 부인이 되어 후원을 정갈히 돌보고, 현명한 안주인이 되겠다고. 자식 역시 양자를 들이면 그만이고, 심가의 재물에도 욕심이 없으며, 단지 몸을 의탁할 안정된 처소 하나만 원한다고.그런데 뜻밖에도 심 후작은 정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지금 와 생각해보면, 만약 그때 아버지에게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혼사가 정말로 성사되었을지도 몰랐다.그랬다면 최성군 역시 지금처럼 미친 듯이 그녀를 붙들고 늘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최성군이라 해도 심 후작을 상대로는 어찌할 수 없었을 테니까.다만 그녀는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 다시는 심 후작처럼, 최성군을 막아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지금 이 순간에도 최은조는 최성군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독점욕이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설령 평생 혼인하지 않는다 해도, 전 어머니 곁에 남을 겁니다. 오라버니와 그런 곳으로 갈 생각은 없어요.”최성군은 최은조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 거절의 표정은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이 몇 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써왔다.좋은 말로 달래보기도 했고, 강압적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하지만 최은조는 마치 감정 없는 돌덩이처럼, 끝끝내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고작 이름뿐인 사촌 남매 관계일 뿐이었다. 평남후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그런데도 최은조는 그 신분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았다.단 한 걸음도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고, 그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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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최성군의 손아귀 힘은 몹시 셌다.무예를 익힌 데다 변방에서 직접 사람을 죽여본 사내였고, 그의 아래 깔린 사람은 깊은 규방 안에서 자라온 연약한 여인이었다.최은조가 어찌 그 힘을 버텨낼 수 있겠는가.최은조는 그에게 몇 번이나 이렇게 눌려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아픔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그제야 최성군 손끝의 힘이 조금 느슨해졌다.최은조 눈에는 분명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 속 고집만은 여전했다.“진 아가씨는 천성이 밝고 맑은 사람이에요. 마음도 단순하고, 좋은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자랐고요. 저와도 잘 지내주고, 복잡한 계산 없이 사람을 대하는 드문 분입니다. 그분은 오라버니를 좋아해요. 눈에도 마음에도 오직 오라버니뿐이죠. 그런 여인이라면 오라버니와도 잘 어울릴 거예요. 정말 두 분이 이어질 수만 있다면, 전 바…”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성군의 낮고 거친 호통이 그녀 말을 끊어버렸다.“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말거라.”최은조는 그 목소리에 그대로 움찔했다.양손은 어느새 머리 위로 붙들려 있었고, 최성군 눈에는 핏발까지 서 있었다.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최은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계례를 치르던 그날 밤을.그날 처음으로 그녀는 최성군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똑똑히 깨달았다. 그는 끝내 그녀에게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 집요한 집착만으로도 이미 그녀를 숨 막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그리고 바로 그날 이후. 그는 그녀 처소의 시녀들을 전부 바꿔버렸다.오랫동안 곁에 두었던 몸종조차 핑계를 만들어 내쫓았다.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사내와 말을 섞는지까지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있었다.한때 자신을 아껴주고 언제나 다정하게 대해주던 오라버니는, 그 밤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이 사 년 동안 최성군은 틈만 나면 그녀 처소를 찾아왔다.예전에는 그래도 사람들의 눈을 조금은 의식했지만 최근 들어 그는 다른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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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내가 널 책임지지 않을 것 같으냐? 정실 자리를 약속했는데, 대체 뭘 더 원하는 것이냐?”최은조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최성군은 원래부터 최은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입에 머금으면 녹아버릴까 두려울 정도로 아끼는 사람이었다.사실 그는 최은조에게 심한 말을 한 적도 거의 없었다. 입맞춤조차 고작 두세 번뿐이었다.최은조가 번번이 그의 마음을 밀어내도,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게 최은조의 성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그녀에게는 은혜와 예법이 하늘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이윽고 그는 손을 놓아주었다. 목소리도 한층 부드러워졌다.“오늘도 겨우 잠깐 얼굴 본 거다. 이따 밤에는 또 연회가 있어서 오래 있지도 못해.”최은조는 손목을 놓아주는 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석양은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붉은 빛 아래 선 최성군은 준수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눈빛에는 숨기지 못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최은조는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가끔은 정말 더는 버티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또 가끔은, 세상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그 순간 그녀 몸은 다시 넓은 품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이마 위로 따뜻한 손이 내려앉았고 귓가에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오늘 보니 전보다 좀 나아진 것 같더구나. 궁에서 만진환을 구해왔는데, 몸 보하는 약이다. 넌 원래 몸이 약하지 않느냐. 예전부터 늘 병치레했고. 그러니 매일 챙겨 먹거라. 자꾸 풍한 드는 것도 좋지 않다. 오늘 밤엔 앞채에 나가 사람들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밖의 일은 내가 처리하마. 조금 있다 약 보내줄 테니 너는 먹고 일찍 자거라.”최은조는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었다.그 말 속에는 단 한 마디도 그녀를 걱정하지 않는 말이 없었다.문득 예전이 떠올랐다. 최성군은 변방에서 돌아올 때마다 늘 자매들에게 먹을 것과 장난감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웃고 있는 그 눈빛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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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손에 이끌려 평남후부를 나섰다.그리고 두 사람만 따로 마차에 올랐다.심서준은 무심하게 화축을 하인에게 넘기려 했지만, 계연수는 그림을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얼른 그림을 다시 끌어안으며 말했다.“이건 운유자의 ‘답가도’예요. 최씨 둘째 아가씨께서 제게 준 거고요. 정말 귀한 그림이니 제가 직접 들고 있을래요.”심서준은 그림을 품에 안고 있는 계연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뒤로 기대며 느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 그림, 원래는 내 거였다. 결국 집안 물건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셈이지. 그렇게 그림 수집하는 걸 좋아하면, 내 서재에 있는 것들도 다 네 것 아니냐?”계연수는 잠시 멍해졌다.그녀는 그 그림이 원래 심서준의 것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마지막엔 그 그림이 최은조의 방에 있었다는 게 더 마음에 걸렸다.괜히 생각하지 말자고 해도 자꾸 머릿속이 복잡해졌다.심서준은 마치 그녀 생각을 읽은 듯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최성군이 전에 내게 ‘답가도’ 진본이 있다는 걸 알고 직접 찾아왔었다. 내 손에서 그 그림을 사가겠다고. 내가 그림은 많이 모으지만 그렇다고 돈이 아쉬운 사람도 아니니 처음엔 거절했지. 헌데 그놈이 틈만 나면 찾아와 졸라대더군. 어딜 가도 마주칠 정도였어. 나중엔 다친 다리까지 끌고 또 찾아왔길래, 안 주면 끝이 없겠다 싶어서 넘겼다. 물론 공짜로 준 건 아니고, 꽤 크게 대가를 치르게 하긴 했지만.”그제야 계연수는 이해했다.무장인 최성군이 그림 수집까지 안다는 게 조금 의외였는데, 알고 보니 심서준에게서 얻어간 것이었다.그리고 또 떠올랐다.최성군처럼 위압적이고 엄한 사람이, 그림 한 폭 때문에 심서준을 그렇게 붙잡고 늘어졌다는 모습이.솔직히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게다가 그 그림은 결국 최은조에게 선물된 것이었다.오라버니로서 저 정도까지 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계연수는 어쩌면 시험해보려는 마음도 조금 담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 그림은 최 세자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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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그러면서 심서준의 손끝이 계연수의 뺨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목소리에는 짙은 음울함과 가라앉은 기색이 어려 있었다.“연수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거라.”계연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심서준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게다가 지금 심서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였다. 원래도 정을 읽기 힘든 봉목이었는데, 눈을 가늘게 좁히는 순간 서늘한 위압감이 고스란히 그녀를 짓눌렀다.조금의 감정 기복도 없는 것이 마치 죄인을 심문하는 사람 같았다.분명 목소리만 들으면 화가 난 것 같았지만, 그 엄정하고 냉담한 얼굴은 또 이상할 만큼 변함이 없었다.마치 그녀를 꾸짖으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계연수는 정말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애초에 그런 부분을 의식조차 하지 못했는데, 심서준이 갑자기 이렇게 엄하게 짚고 넘어오니 괜히 서러워졌다.게다가 먼저 최성군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은 사람도 심서준이었다.최성군에 대한 인상이 좋았던 건 사실이었다. 변방을 지켜온 무장이고,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계연수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서준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갑자기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나 싶었다.그녀는 그대로 얼굴을 돌려버렸다.마침 바깥 하늘도 어느새 황혼빛에 가까워지고 있어 마차 안은 더욱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심서준은 계연수가 끝까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을 하자, 낮게 비웃듯 웃었다.다른 사내를 쳐다보는 게 뭐 그리 당당한 일이라고.정작 부군은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시선은 줄곧 다른 남자만 좇고 있었다.자신은 그저 최성군이 그림 한 폭 때문에 귀찮게 굴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그녀는 곧바로 최성군 칭찬부터 하기 시작했다.누가 잘못했는지쯤은, 그녀도 속으로 다 알고 있을 터였다.문득 혼인한 뒤를 떠올려보니, 계연수가 자신을 “부군”이라 부른 적도 거의 없었다.밤에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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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심서준의 표정을 한번 살폈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결국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이 사람과 이 문제로 다투고 싶지는 않았다.다만 요 며칠 심서준과 함께 지내며 새삼 깨닫게 된 게 있었다. 이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강경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건 끝까지 밀어붙였고, 상대가 아니라 생각해도 좀처럼 뜻을 바꾸지 않았다.계연수는 괜히 이런 일로 심서준과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무엇보다 이 점만 빼면, 심서준은 그녀에게 정말 잘해주고 있었으니까. 늘 세심히 챙겨주고,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대해주었다.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심서준 무릎 위에 앉아있던 계연수의 표정도 조금 누그러졌다. 몸도 살짝 힘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그의 품 쪽으로 기대었다.화해의 기색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심서준 말에 대답을 한 건 아니었다.심서준 역시 그녀의 감정이 풀어진 걸 느끼자 그제야 속이 조금 가라앉았다. 적어도 자신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긴 한 모양이었다.부군인 자신을 좀 더 의식하고, 시선도 자신에게 더 머물렀으면 하는 건 원래 부인이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계연수가 한결 부드러워지자 심서준 표정도 따라 누그러졌다. 그는 손바닥으로 계연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물었다.“이따 어디 가서 먹고 싶으냐?”계연수는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답했다.“아무 데나 괜찮아요.”심서준은 그녀 등을 감싸 안듯 눌러 제 품에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둘이 이렇게 단둘이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드물었다.요즘은 특히 바빴기에 지금 이 순간이 심서준은 꽤 마음에 들었다.흔들리는 마차 안. 제 품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계연수. 오직 둘뿐인 공간.그는 계연수가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잡아 쥔 채, 손바닥을 천천히 주무르듯 만졌다. 그러다 가까이에 있는 그녀 얼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오후엔 무슨 얘길 했길래 그렇게 오래 있었느냐?”계연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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