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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춘귀의 모든 챕터: 챕터 621 - 챕터 630

721 챕터

제621화

은은한 불빛이 방 안을 부드럽게 감쌌다.몽롱하게 번지는 빛 아래, 방 한구석에서는 향이 타오르고 있었고, 가느다란 연기가 계연수 뒤편으로 아른아른 번져갔다.오늘 계연수는 꽤 정성껏 단장한 모습이었다.평소에는 분을 거의 바르지 않던 얼굴도 오늘은 유난히 희고 맑아 보였고, 머리에 꽂은 옥비녀는 그녀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연분홍빛 봄옷은 오밀조밀한 몸선을 은근히 드러냈고, 화려한 백화 문양은 그녀를 마치 금지옥엽보다도 더 귀하게 보이게 했다.심서준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제야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한편 사금희는 평남후부 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후작부인을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아무리 바깥에 둔 첩이라 해도 정실부인과 같은 체면을 누린다는 건, 어느 정실이든 견딜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끝내 후작부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심부 사람들만 심부 마차에 올라타 떠나갔을 뿐이었다.사금희는 적잖이 실망했지만, 곧장 서둘러 사가로 돌아가 임씨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전했다.요즘 임씨는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이명유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와 문안을 드리며, 사옥현을 설득해 다시 함께 살게 해달라는 소리나 늘어놓고 있었다.이제 임씨는 이명유 얼굴만 봐도 역겨웠다.자기 욕심 때문에 자기 아들에게 그런 약까지 먹여놓고, 그 탓에 삼 년 동안 손주 하나 안겨주지 못했다 생각하면 미움 위에 또 미움이 쌓였다.게다가 지금은 아들 관직까지 강등되었다. 노부인에게도 미움을 샀고, 부군도 자신을 외면했다.집안 살림을 맡던 권한마저 노부인이 이방에 넘겨버린 뒤로, 이제는 하인들까지 그녀를 비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은혜도 모르는 여우같은 년을 들였다는 말까지 돌았다. 예전엔 멀쩡하던 며느리를 억지로 몰아내더니, 결국 관아에까지 고발해 화리하게 만들었다고.주변 사람들 시선마다 묘한 뜻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좋은 며느리를 스스로 내쫓아 집안을 어지럽히고, 집안 운까지 끝장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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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사금희는 어머니 말을 듣고 나서야 잔뜩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그래, 계연수가 지금 아무리 심 후작 총애를 받는다 해도 결국 첩실일 뿐인데.위에는 엄연히 정실부인이 있는데, 지금처럼 나서서 설치다간 앞으로 후부에서 편할 리가 없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사금희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그녀는 손수건을 꽉 움켜쥔 채 이를 악물듯 말했다.“나중에 심 후작에게 버림받게 되면, 그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임씨는 사금희 표정을 한번 바라보다 물었다.“로원 쪽은 어떠냐?”사금희는 다시 분한 얼굴로 이를 깨물었다.“부군이 요 며칠째 집에도 못 들어오고 있어요. 도찰원 사람들이 며칠 간격으로 진무사에 들이닥쳐 권책을 뒤지고, 작은 실수 하나만 잡혀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니 부군도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예요. 몇 번이나 심 후작을 만나보려 했는데 번번이 거절당했고, 결국 다른 줄이라도 잡아보려고 소개받을 사람을 찾고 있대요. 이대로 가다간 끝이 안 보인다고요. 요즘 부군은 매일마다 떨면서 지내요. 도찰원에서 대체 어디까지 캐낸 건지 몰라서요. 나중에 한꺼번에 숙청당할까 봐 겁내고 있어요.”말할수록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예전엔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분명 계연수 그 계집이 뒤에서 수작 부리는 거예요. 옥현의 관직이 강등된 일도 원래 심 후작이 맡아 심리한 사건 아니었습니까?”임씨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손은 의자 팔걸이를 세게 움켜쥔 채였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낮게 입을 열었다.“이제는 저 계집이 제대로 기세등등해졌구나.”그러고는 눈을 뜨고 사금희를 바라보았다.“시간 날 때 직접 심부에 가서 심씨 부인을 만나봐라. 난 절대 못 믿겠다. 자기 부군이 다른 여자를 저렇게까지 총애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정실이 어디 있겠느냐.”사금희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전에 심부로 몇 번이나 첩자를 보냈는데 답이 안 왔어요. 듣자 하니 심씨 부인이 궁에 들어갔다가 얼마 전에 돌아왔다는데… 그래도 답조차 안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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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사옥현은 여전히 문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사실 그는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관직에서 밀려난 일이 억울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분명 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이었다.게다가 심서준과 직접 마주한 적은 많지 않았지만, 대리시와 도찰원은 원래 왕래가 잦았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도 적잖이 들어왔다.그는 매사 엄정하고 공정한 사람이었다.심서준에게 여인을 바치며 비위를 맞추려는 자도 적지 않았지만, 만약 정말 여인 몇 마디에 흔들려 사사로운 원한으로 공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을 적으로 돌리고도 무사할 리 없었다. 진작 탄핵당했을 것이다.사옥현은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한순간 깨달았다.왜 계연수가 차라리 첩실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자신을 떠나려 했는지.이 집안 사람들은 여전히 모든 잘못을 그녀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예전의 자신까지도 포함해서.사옥현은 갑자기 더는 그녀들과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밤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온몸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 목소리도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막막한 밤빛만 바라보며, 계연수가 아직 이 집에 있었던 시절을 떠올렸다.그때의 사가는 늘 평온하고 화목했다. 이렇게 끝없이 사건이 터지는 일도 없었다.그리고 그는 마음 한구석에서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그 시절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자신이 제 손으로 놓쳐버렸다는 걸.*계연수와 심서준이 심부로 돌아왔을 때는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심서준은 먼저 앞채 서재로 향했고, 계연수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방에 들어온 계연수는 다시 한번 ‘답가도’를 조심스럽게 펼쳐 바라보았다.한참을 들여다본 뒤 다시 정성껏 말아 용춘에게 건네며 창고에 잘 넣어두라고 시켰다. 그러고는 장안 위에 올려둔 첫 번째 공필화를 긴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내일 심서준이 궁으로 들어갈 때 황제께 올릴 그림이었다.정리를 끝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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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심서준의 눈빛은 짙고도 어두웠다. 마치 그의 청을 거절하는 일이, 그에게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꼭 자신이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계연수는 그런 시선 아래에서도 끝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허리가 아직도 욱신거려요.”심서준은 살짝 침상 휘장을 걷어 올렸다가 다시 조용히 계연수 얼굴을 바라보았다.확실히 피곤해 보였다.그제야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결국 자신이 그녀를 너무 좋아한 탓이었다. 늘 부족하게만 느껴져 밀어붙이다 결국 사람을 지치게 만든 것이다.오늘 평남후부에 다녀온 일만으로도 그녀는 꽤 피곤했을 터였다.심서준은 다시 휘장을 내려놓고 손을 그녀 허리 위에 올렸다. 더는 억지로 굴지 않고 낮게 물었다.“태의를 불러볼까?”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심서준은 그녀의 그 ‘며칠’이라는 말을 듣고 낮게 음성을 흘렸다. 손끝은 그녀 아랫배를 천천히 문지르며 말했다.“자거라.”계연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하지만 눈앞의 품은 따뜻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심서준 품 안으로 조금 더 몸을 파고들었다.*다음 날, 심서준이 떠나기 전 계연수는 그를 붙잡고 말했다.자신의 그림을 황제께 전하고 금작약 화분도 함께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심서준은 막 단장 중인 계연수를 잠시 바라보았다.볼빛이 붉고 생기가 넘치는 게 푹 잔 얼굴이었다.그는 짧게 고개만 끄덕인 뒤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반쯤 나갔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더니 문하를 불러 말했다.오늘 안으로 여자가 좋아할 만한 물건 하나를 구해오라고. 자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반드시 준비해두라고 했다.문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이 천하의 난제가 어째서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자기는 장가도 가지 않았는데 어찌 안단 말인가. 설령 갔다 해도 여자 마음이야 바닷속 바늘 아닌가.후작부인 정도 되는 사람이 비단이며 옥이며 보석이며 없는 게 어디 있겠는가.문하는 울상이 된 얼굴로 차마 말도 못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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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들어서는 순간, 그 얼굴이 서서히 시야 안으로 선명하게 들어왔다.맑고 깨끗한 부용화 같은 얼굴이었다.머리 위 점취 보요가 걸음에 따라 은은히 흔들렸고, 우아하게 옮겨지는 걸음마다 단정하고 품위 있는 향기가 번져 나왔다.그 모습을 본 사금희는 온몸이 크게 떨릴 만큼 충격을 받았다.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눈앞의 사람이 정말 계연수가 맞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한 번 더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백씨는 사금희가 놀란 얼굴로 일어선 모습을 힐끗 바라보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사금희는 계연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채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끝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그 말이 떨어지자 계연수 곁에 서 있던 방 어멈이 냉랭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로씨 부인, 말씀을 조심하시지요. 그리고 손도 내려주시고요. 계속 저희 부인께 무례하게 구신다면, 제가 사람을 불러 그대로 내쫓을 수밖에 없습니다.”방 어멈은 원래 심서준의 처소를 맡아 관리하던 큰 어멈이었다. 계연수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한 뜰 전체를 책임졌던 사람인 만큼, 백씨조차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몸에 밴 기세 자체가 평범한 어멈들과는 달랐다. 옛말에서도 공경후부에서 총애받는 노복은 웬만한 하급 관리보다 더 위세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사금희 부군이 예전 같았으면 기세로 버텼겠지만, 지금은 로원이 위태로운 처지였고, 자신 역시 심가에 부탁하러 온 몸이었다.그런데 어멈 하나에게 꾸중을 듣자, 오히려 겁부터 났다.방 어멈은 눈빛이 날카롭고 기세가 엄중했으며, 허리와 어깨를 꼿꼿하게 세운 모습까지 범상치 않았다. 평범한 하인이 이런 위엄을 풍길 리 없었다.계연수를 향해 뻗었던 손끝도 어느새 힘없이 내려가 있었다.사금희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입을 벌린 채, 아직도 방금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부인?저 어멈이 계연수를 부인이라 불렀다.사금희는 그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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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제 부군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법을 굽혔다고 하셨지요? 증거는 있으신가요? 만약 증거가 없다면, 전 오히려 로씨 부인께서 무고로 제 부군과 제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정 안 되면 통정사에까지 올려 이야기해볼 수도 있고요. 어떠세요?”계연수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예전 사가에 있던 시절의 부드럽고 온화한 기색이 없었다.지금의 그녀는 후부인의 위엄과 냉정함을 그대로 두르고 있었다.얼굴 역시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채 차갑게 굳어 있었고, 사금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담담하고 싸늘했다.그 눈빛에 사금희는 갑자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무엇보다 계연수가 너무 큰 죄목을 씌웠다.사금희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연수가 심서준의 정실부인이라니.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이혼한 여인인 계연수가 어떻게 대장공주의 총애를 얻고, 또 심가 같은 가문에 들어갈 수 있었단 말인가. 심지어 황후마저 그녀를 무척 아낀다고 들었는데...왜? 대체 어떻게?사금희는 이제 단 하나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수 앞으로 다가갔다. 눈앞 사람을 더 자세히 확인하려는 듯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너… 정말 심 후작에게 시집간 것이냐?”계연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곁에 있던 하녀 추향과 추운이 곧바로 앞으로 나서 사금희를 막아섰다.계연수는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들어 사금희 눈앞에 내보였다.“이 편지는 로씨 부인께서 직접 쓰신 거죠. 필체도, 서명도 전부 로씨 부인의 것이고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당에 제출할 증거가 됩니다. 저와 제 부군을 모함한 증거 말이에요. 헌데 로씨 부인 쪽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사금희는 눈을 크게 뜬 채 계연수 손에 들린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 안의 내용은 일부러 과장해 적은 것이었다. 후작부인이 계연수를 미워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데 이제 와 그 편지가 오히려 계연수 손에 쥔 증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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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사금희는 멍하니 계연수의 말을 듣고, 또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기억 속 계연수는 언제나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숨겨져 있던 날이 드러난 듯했는데, 그 기세만으로도 사금희는 등골이 서늘해졌고 저도 모르게 두려움마저 느껴졌다.계연수는 여전히 단정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살짝 내려뜨린 눈으로 사금희를 바라보며, 이월의 눈송이처럼 가볍고도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옥현이 정말 억울한지, 또 로원이 정말 그렇게 깨끗한 사람인지는 로씨 부인 본인이 제일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그 가볍게 흘려보낸 듯한 한마디는, 오히려 천근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사금희는 그대로 몸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기 부군이 결코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하지만 조정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정말 손에 먼지 하나 묻히지 않았단 말인가.사금희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계연수를 노려보았다.“그럼 심 후작은 깨끗합니까? 그건 또 당신이 어떻게 아는데요?”계연수는 옅게 웃었다.“전 제 부군 일을 함부로 간섭하지 않아요. 헌데 적어도 저는 떳떳하니, 도찰원에서 조사한다고 해서 혼자 겁먹고 미친 소리부터 늘어놓지는 않죠. 세상 모든 일이 남이 자신에게 빚진 것처럼 돌아가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결국 본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예요.”사금희는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너무 차가워서, 더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넋 나간 눈으로 다시 계연수 손에 들린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이번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밖에서 함부로 떠들지 않을게요. 정말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이번 일만… 그냥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는 찾아와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그 편지도 제가 오해해서 쓴 거였어요… 밖에 떠벌린 적도 없으니 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후작부인…”사금희는 편지를 쓸 당시엔 이런 결과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로원에게 시집오며 율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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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사금희는 거의 떠밀리다시피 전청 밖으로 내보내졌다.그렇게 심부 대문 앞까지 쫓겨나듯 나오고서야, 무정하게 대문이 닫혀버렸다.사금희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 심부의 높다란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떨군 채, 곁의 시녀에게 넋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너… 방금 제대로 본 게 맞느냐? 정말 계연수가 맞았어?”사금희의 발걸음은 허공을 딛는 듯 휘청거렸다. 아직도 꿈을 꾼 것만 같았다.시녀는 사금희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 작게 입을 열었다.“부인, 잘못 보신 거 아닙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사금희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한편 계연수는 전청을 나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그때 심씨 노부인 곁을 지키던 어멈 하나가 다가와 노부인이 부른다 전했다.계연수는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방향을 돌려 의덕거로 향했다.안으로 들어서자, 백씨가 노부인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둘째 도련님 며느리 진씨와 큰 도련님 며느리 최씨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심씨 노부인은 최씨의 아이인 복아를 품에 안은 채 웃으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방 안은 훈훈하고도 온화한 기운으로 가득했다.계연수가 들어서자 심씨 노부인 얼굴엔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노부인은 별다른 말 없이 계연수를 곁으로 부르더니, 앉으라 손짓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복아를 계연수 품에 넘겨주며 한 번 안아보라 했다.계연수는 아이를 안아본 적이 없었다.복아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였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노부인이 안아보라 하니 계연수는 몸을 살짝 숙여 조심스럽게 아이를 받아 안았다.작은 몸인데도 제법 묵직했다.복아도 계연수를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작은 손으로 계연수 목에 걸린 비취 목걸이를 붙잡고는 방긋 웃어 보였다.계연수는 그 모습이 귀여워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는 웃으며 복아 이름을 불렀다.최씨는 바로 옆으로 다가와 서 있었다.혹여 계연수가 아이를 잘못 안을까 염려되는 눈치였다.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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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백씨는 나가며 계연수 쪽을 한 번 흘끗 바라보았다.심씨 노부인이 지위 높은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완고한 노인이기도 했다. 효와 규율, 체면을 하늘보다 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백씨 자신도 수년간 저토록 정성껏 모셔왔건만, 아직까지도 완전히 노부인 마음에 들지 못했다. 그런데 계연수라고 다를 수 있겠는가.심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계연수는 조용히 곁에 앉아 있었고, 눈매는 잔잔하게 풀려 있어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노부인 얼굴엔 조금 전과 달리 엄한 기색이 어려갔다.“그 사람은 갔느냐?”그 말을 듣는 순간 계연수는 사금희가 찾아온 일을 이미 노부인이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돌려보냈습니다.”심씨 노부인은 곁눈질로 계연수를 흘겨보더니 냉하게 코웃음을 쳤다.“이혼까지 했으면서 어째 아직도 그 집안과 질척거리느냐? 이혼도 깔끔하게 못 해서 사람을 집안까지 찾아오게 만든 게냐?”계연수는 그 말에, 백씨가 이 일을 노부인에게 전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녀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저는 이미 깨끗하게 인연을 정리했습니다. 오늘 사금희가 찾아올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다만 형수님께서 사람을 안으로 들였고, 저도 한 번 만나 확실히 선을 긋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잘 처리하겠습니다.”심씨 노부인은 순간 멈칫했다.“네 형수가 들였다고?”계연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부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말했다.“그래도 결국 네 잘못이다. 네가 사씨 집안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으면, 그들이 다시 찾아왔겠느냐? 앞으로 다시는 사씨 집안 사람들과 엮이지 말거라. 바깥 소문이 아직도 모자라더냐? 사람들이 네가 예전에 사가에 시집갔던 일을 모를까 봐 겁나기라도 하느냐?”계연수는 천천히 눈을 들어 심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제가 한 번 시집갔던 일은 숨겨야 할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숨긴 적도 없고요. 저는 제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습니다. 숨길 일도 없고, 남이 무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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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밤이 되어 심서준이 돌아왔을 때, 그는 처소로 향하는 길에서 이미 오늘 사금희가 찾아왔던 일과 백씨까지 끼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순간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더니, 낮게 비웃음이 흘렀다.제 동생이 아직도 도찰원에 갇혀 있는데도, 저 집안은 여전히 조용할 날이 없었다.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드물게도 계연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심서준은 그녀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속을 읽을 수도 없었다.요즘 심서준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해야 계연수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그 생각뿐이었다.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자신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계연수는 심서준이 들어오자마자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았다. 아직 조복도 벗지 않은 걸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제가 옷 갈아입혀드릴게요.”심서준은 손을 뻗어 계연수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 뺨을 바라보았다.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고요하고도 아름다웠고, 따스한 촛불 아래선 사람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래서 자꾸만 그녀와 살을 맞대고 싶었고, 그녀의 온기 속에 빠져들고 싶어졌다.이제 심서준은 여인이 얼마나 좋은 존재인지 점점 더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그는 밤이면 그녀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 향기롭고 부드럽고, 몸 어디 하나 매끄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손끝이 그녀 몸에 닿아 있지 않으면, 마음속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하기까지 했다.예전에는 관아에서 일을 더 많이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 그녀를 보고 싶었다.부하들이 예전에 퇴근만 기다리던 심정을 이제야 자신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다만 최근엔 일이 너무 많아, 늘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했다.향기로운 몸이 품 안에 바싹 닿아오자 심서준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차올랐고, 온몸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그는 계연수 허리를 감싸 쥔 채 익숙하다는 듯 손끝으로 천천히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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