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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1화

계연수의 기억 속에서 심서준은 먹는 것에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요 며칠 방 안에 들여놓은 달콤한 다과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행인차조차 입에 대는 법이 없었다. 상 위에 오른 음식들 역시 담백하다 못해 싱거워 계연수조차 젓가락이 가지 않을 정도였고, 어떤 요리든 맛이 옅었다. 게다가 심서준이 군것질을 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계연수는 그 역시 먹고 싶어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가져다준 것이니 먼저 먹어버렸고, 지금 묻는 말에도 어딘가 확신이 없었다.심서준은 찹쌀떡 위에 남은 작은 이 자국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계연수의 눈을 바라봤다.“맛이 어떤지 좀 보려고.”계연수는 몸을 돌려 새 것을 가져다주려 했지만, 심서준은 그녀의 손목을 붙든 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입을 그대로 베어 물었다.“괜찮군.”뜨거운 기운이 다시 목덜미를 타고 차오르기 시작했다. 계연수는 얼굴이 붉어진 걸 들킬까 두려워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그때 용춘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가, 후작이 부인 곁에 바짝 붙어 앉아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계연수의 몸은 거의 반쯤 그의 품 안에 기대 있었고, 방 안에는 은은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용춘은 눈치 빠르게 찻잔만 내려놓고 재빨리 물러났다.심서준의 손끝이 계연수의 아랫배를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희고 고운 귓불 끝에 엷게 번진 붉은 기운을 보고는 눈가에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의 목덜미 가까이 얼굴을 묻듯 다가가 낮게 물었다.“맛있었느냐?”뜨거운 숨결이 옷깃 안으로 파고들었다. 계연수는 이미 정신이 아득해져 있었다. 심서준의 말투는 유혹적이면서도 뜨거웠지만, 정작 그는 여전히 냉담하고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계연수는 그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그런 그녀를 보며 심서준은 작게 웃었다.“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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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계연수는 심서준에게 눌리듯 나한탑 위에 누워 있었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그의 입맞춤이 먼저 떨어졌다.심서준의 키스는 늘 그랬다. 강압적일 만큼 거침없고, 상대가 한 발 물러설 여지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계연수는 본래 강한 성정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공세 앞에서는 언제나 먼저 무너지는 쪽이 자신이었다. 그는 그녀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제 뜻대로 이끌었다.물론 계연수도 반항하려 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겨우 싹트려는 기색조차 심서준은 번번이 눌러 꺼뜨렸기에 결국 그녀는 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였다.계연수는 사금희 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지만, 심서준은 애초에 그런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결국 이루어졌다.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밀어붙이든, 상대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느끼도록 방식을 바꾸든, 결과는 늘 같았다. 결국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의 말에 따르게 만들었다.촘촘하고도 집요하던 입맞춤이 겨우 멈췄을 때, 심서준은 가늘게 숨을 몰아쉬며 제 아래에 깔린 사람을 내려다봤다.계연수는 마치 봄물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희고 매끈한 목선이 흐트러진 옷깃 사이로 드러났고, 붉어진 입술과 희디흰 치아,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까지. 사람을 홀리는 요괴처럼 눈길을 끌었다.심서준은 문득 깨달았다. 자신들의 신혼은 이제야 시작되었고, 남녀 간의 정과 몸을 섞는 기쁨 또한 이제 막 시작된 것임을.그녀를 마음껏 품고 싶었다. 그녀의 몸도, 그녀라는 사람 자체도 전부 제 것으로 삼고 싶었다. 애초에 계연수는 그의 사람이었으니까.그는 이제야 비로소 그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가 그리워 속이 타들어 가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다.그리고 이런 마음은 오직 그녀에게만 품게 되었다.단정한 춘삼이 그녀를 가리고 있자 심서준은 참지 못하고 손을 계연수의 옷깃으로 향했다. 계연수는 단번에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심서준이 이 자리에서 탐하려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휘장 밖에 아직 시중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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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계연수의 뜻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했다. 앞선 이틀 밤 동안 심서준은 사람을 아주 녹초로 만들어 놓았다. 대체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워온 건지, 그녀를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괴롭혔고, 지금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부끄러웠다.그녀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작았다. 심서준이 가까이 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정도였다. 계연수는 또 자신을 원망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심서준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앞의 며칠만으로는 한참 부족했으니 말이다.그는 그녀의 말을 굳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약속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아까 사금희에 대해 얘기하려 했었지. 무슨 일이냐?”계연수는 원래 심서준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조금쯤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사금희 이야기가 나오자 머릿속이 순간 텅 비어버렸다. 그녀는 눈앞의 심서준을 바라봤다. 단정하고 고결한 얼굴이었다. 방금 전까지 이 나한탑 위에서 자신을 눌러 안고 입을 맞추며 옷고름까지 풀려 했던 사람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미간까지 반듯하고 냉정했다. 밖에서 사람들이 아는 바로 그 심서준의 얼굴이었다.결국 계연수는 조금 전의 감정을 억눌러 삼키고, 오늘 있었던 일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사금희의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저와 후작의 관계를 오해한 것 같아요. 다만 그 말을 밖에서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어요.”심서준은 편지를 대충 훑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은 애초에 그에게 크게 신경 쓸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나도 다 생각이 있어.”그러고는 담담히 덧붙였다.“대놓고 모함한 건 아니라 해도 법도를 어긴 건 맞지. 크게 문제 삼을 생각은 없지만, 가벼운 벌 정도는 받게 될 거다.”그 말을 마친 심서준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먼저 씻고 올 테니 오늘은 일찍 자자꾸나.”계연수는 어쩐지 사금희의 일이 막 시작되기도 전에 심서준 손에서 끝나버린 기분이었다.그가 밖으로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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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4화

최민정의 말은 단순한 빈말만은 아니었다.평남후부와 심가는 대대로 가까운 사이였고, 두 집안의 왕래도 잦았다. 이제 최민정이 시집온 위가 역시 이름난 청류 명문가였다. 그녀의 남편인 위씨 둘째 도련님은 아직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지만, 본래 관직 생활을 좋아하지 않고 자유로운 성정을 더 즐긴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다는 평도 자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둘째 도련님이 부인을 몹시 아낀다는 점이었다. 혼인한 지 벌써 사 년이 되었는데도 첩 하나 들이지 않았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최민정은 지금 진심으로 계연수를 칭찬하고 있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평남후부에서 자랐기에 계연수를 본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심가에서 멀찍이 보았는데, 작은 아이가 심 후작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분을 빚어 만든 듯 희고 동그란 얼굴에, 보기만 해도 한 번쯤 볼을 만져보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그 아이가 계가의 규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계연수의 아버지는 심가의 단골 손님이었으니까. 다만 어린 시절의 계연수는 겁이 많아 오직 심서준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결국 계연수와 심 후작이 인연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아니면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혼인이었을지도 몰랐다.처음 바깥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화리한 여인인 계연수가 무슨 수를 쓴 게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최민정만은 알고 있었다. 계연수와 심 후작은 어릴 적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다는 걸.그 시절, 어느 집 규수가 감히 사람을 가까이 두지 않기로 소문난 심 후작 곁을 따라다닐 수 있었겠는가.심 후작은 수년 내내 홀로 지냈고, 계연수가 화리하자마자 곧장 그녀와 혼인했다. 아마도 빙빙 돌아 오랜 세월 기다려온 것이리라.지금의 계연수를 바라보며 최민정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얼굴 생김새는 많이 흐려졌지만, 새하얗고 통통해서 꼭 찹쌀경단 같던 모습만큼은 아직도 또렷했다. 일곱이나 여덟 살 또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도 계연수는 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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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5화

명씨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백씨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사실 그녀 역시 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자질구레하고 손이 많이 가는 부엌 일을 계연수에게 넘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큰 형수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백씨는 주변을 한번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오늘 사가 쪽 사람들은 안 왔습니까? 형수님은 사가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없으세요? 사람 시켜서 계연수에 대해 좀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명씨는 어이없다는 듯 백씨를 바라봤다.“넌 정말 정신이 없구나? 오늘 사가 사람은 안 왔다. 게다가 네 그 동서가 오는 자리에 누가 일부러 사가 사람까지 불러서 사람 기분을 상하게 하겠느냐? 괜히 네 다섯 째 도련님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지. 요즘 경성에서 이름 좀 있는 연회는 말이야, 네 동서만 참석한다 하면 사가는 아예 초대도 안 한다. 그리고 사가가 아무리 청류 명문이라 해도 네 다섯 째 도련님만 하겠느냐? 누가 감히 심 어사를 불쾌하게 만들 위험을 감수하겠느냐? 정말 탄핵당해도 상관없는 사람 아니면 못 그러지.”그제야 백씨는 정신이 번쩍 든 듯 이마를 짚었다.“제가 정말 정신이 나갔었네요. 그걸 잊고 있었다니.”명씨는 다시 백씨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제일이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거라. 이제 막 혼인해서 한창 정이 깊을 때인데, 네가 지금 발목 잡으려 들면 괜히 네 손해만 커진다. 남자들 중에 한결같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나중에 심 후작 마음이 식고 나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아. 게다가 네 셋째 동생은 아직도 옥에 갇혀 있지 않느냐. 네가 괜히 수상한 움직임 보였다가 심 후작 눈에라도 들면, 그 아이는 언제 나오겠느냐?”백씨는 그제야 잠에서 깬 사람처럼 정신을 차렸다. 문득 동생 생각이 떠오르자, 차가운 옥에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지 마음이 불안해졌다.지금은 정말 함부로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우선 동생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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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심소연 곁에 앉아 있던 다른 규수들도 그녀가 먼저 인사를 올리는 걸 보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수에게 예를 갖추었다. 이수옥을 제외하면, 지난번 심가 시회에서 만났던 규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감히 계연수를 얕보지 못했다.계연수는 모두에게 한결같이 온화하게 응대했다. 얼굴에는 시종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반면 이수옥은 잔뜩 움츠러든 채 계연수의 눈에 띄지 않기만 바라고 있었다. 얼굴은 화끈거릴 만큼 달아올랐다. 본래 그녀 역시 심가로 시집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 또한 예전부터 심가의 큰방과 가까운 사이였기에 은근히 혼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계연수가 자신을 미워해 심가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말을 흘릴까 두려웠다. 괜히 욕심부렸다가 손해만 보는 꼴이 될까 겁이 났다.그때 심서준의 두 사촌 형수들이 계연수 쪽으로 걸어왔다.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다가와 무척 친근한 척 계연수의 손을 잡고 말을 붙였다.비록 심서준의 사촌 형수들이긴 했지만, 둘 다 이미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길 하나 건너 맞은편 저택에 살고는 있었지만, 계연수는 사실 이들과 그다지 왕래가 없었다. 게다가 지난번 뒤에서 자신과 사가 이야기를 수군거리던 일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가까워지려 한 적도 없었다.하지만 어쨌든 한집안 친척이었다. 계연수 역시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하고 공손하게 말을 받았다. 몇 사람이 서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옆 정자에 가 앉아서 더 이야기하자며 자리를 옮겼다.연회가 끝날 즈음에도 계연수는 여전히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오늘 그녀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계연수 역시 그들이 모두 심서준의 체면을 보고 그러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깥에서 괜한 흠이라도 잡히지 않으려 애썼다. 아무리 피곤해도 내색하지 않았고, 끝까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때 한 하녀가 다가와 계연수 곁에서 조용히 말했다.후작께서 뒷문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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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7화

용춘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빛이 변하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계연수가 손으로 그녀를 막아 세운 뒤 사씨를 바라보며 차분히 물었다.“누가 그런 말을 한 겁니까?”어제 사금희가 이미 경고를 받긴 했지만, 대체 누구에게까지 말을 흘렸는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었다.계연수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담담했다. 오히려 그 침착함에 사씨는 자신도 모르게 계연수를 다시 한번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계연수의 차림은 무척 정교하고 고급스러웠다. 목에는 둥글고 윤기 흐르는 진주가 걸려 있었고, 귓가에는 옅은 분홍빛 옥 장식이 흔들렸다. 머리에는 금비녀와 옥잠이 단정하게 꽂혀 있었는데, 어느 하나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사씨 자신조차 그렇게 값비싼 장신구는 쉽사리 사지 못할 정도였다.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자, 피부는 눈처럼 희었고 그 위로 옅은 혈색이 감돌았다. 물기 어린 살구빛 눈 아래 자리한 붉은 입술은 유난히도 아름다웠다.원래부터 계연수가 고운 얼굴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계연수는 이전과는 어딘가 달랐다.온몸에 귀하게 길러진 여인의 기품이 배어 있었다. 버들가지처럼 가냘프고 연약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마치 강남의 화사한 꽃처럼 정교하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했다.순간 사씨는 눈앞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예전 계연수에게 있던 조용하고 눌린 듯한 기색도 어느새 사라진 듯했다.늘 하찮게 여겼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그러나 계연수의 되묻는 말에 사씨는 곧 예전 일을 떠올렸다. 과거 자신 앞에서 한껏 몸을 낮추고 비위를 맞추던 계연수를 생각하자 다시 냉소가 떠올랐다.“누가 말했는지가 중요하느냐? 옥현이가 예전엔 널 다시 데려오려 했던 것도 모르고 있나 본데, 넌 스스로 천해지는 길을 택했다. 이제는 사가까지 건드리고 있고. 네가 오래 갈 것 같으냐? 괜히 욕심부렸다가 모든 걸 잃지나 말거라.”계연수는 미간을 좁힌 채 사씨를 바라봤다.“속이 더러운 사람 눈에는 세상도 더럽게 보이는 법이죠.”그러고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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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8화

계연수가 이렇게까지 참고 상대해준 건, 사씨가 밖에까지 떠들고 다녔는지, 아니면 사가 사람들이 이미 소문을 퍼뜨렸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그런데 사씨는 애초에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계연수의 눈빛이 드물게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미간을 좁힌 채 사씨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 했다.바로 그 순간, 용춘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후작께서 오셨어요.”계연수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그곳에는 심서준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위씨 큰 도련님 위지환도 함께였다.심서준은 가까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계연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날카로운 칼끝 같은 눈빛으로 맞은편의 사씨를 바라봤다.그의 시선은 원래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사씨는 그 눈빛을 받자마자 얼굴빛이 변했다. 순간 기가 눌린 듯 허둥지둥 몸을 숙여 예를 올렸다.심서준은 그런 그녀를 더 이상 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내려 계연수를 바라봤다.“왜 아직 안 온 것이냐?”계연수는 사씨를 한번 힐끗 본 뒤 심서준에게 조용히 말했다.“이분이 제가 후작님의 첩이라고 하시더군요. 어디서 그런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밖에도 그런 헛소문이 퍼졌을까 걱정돼서 확인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씨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계연수가 방금 한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헛소문이라고? 그럼 계연수는 심서준의 첩이 아니라는 말인가?게다가 지금 심서준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것도 위씨 도련님 앞에서 거리낌 없이 계연수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그 순간 사씨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심서준은 사씨를 한번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정이품 대신의 정실은 곧 정이품 고명부인이다. 고명부인을 모욕하고 헛소문까지 퍼뜨렸다면, 누가 그런 말을 전했는지도 포함해 반드시 조사해야겠군.”그는 뒤에 서 있던 수행인에게 낮게 한마디 지시를 내렸다.수행인이 물러난 뒤, 심서준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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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화

계연수는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위씨 큰 부인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번 일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에요. 저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건 원치 않아요. 그러니 잠시만 이곳을 잘 막아주실 수 있을까요? 괜한 말이 또 퍼지지 않게요.”위씨 큰 부인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심씨 부인께선 걱정 마세요. 제가 오는 길에 이미 사람들 접근 못 하게 해두었어요. 방금 일도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역시 대가문의 부인들은 일 처리 하나만큼은 빈틈이 없었다. 계연수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얼굴로 심서준의 소매를 살짝 잡고 조용히 물었다.“후작께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심서준은 담담한 눈으로 계연수를 바라봤다.“벌을 주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없겠지.”그러고는 낮게 덧붙였다.“이 일은 신경 쓰지 말거라.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그는 더 이상 맞은편의 사씨를 보지도 않았다. 대신 위지환에게 가볍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 계연수에게 함께 나가자고 했다.계연수는 밖에서는 늘 심서준의 뜻을 따랐다. 이미 그가 생각을 정한 이상 더 말하지 않았고, 위씨 큰 부인에게도 조용히 인사를 남긴 뒤 자리를 떴다.사씨는 허둥지둥 계연수 뒤를 쫓아가려 했지만, 어느새 위씨 하녀들이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계연수의 옷자락 끝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뒤쪽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오자 계연수는 무심코 돌아보려 했다. 하지만 심서준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움켜쥔 채 품 안으로 끌어당기며 느긋하게 말했다.“미친 여자 하나인데 뭘 그렇게 보는 것이냐.”그 말투에는 심서준 특유의 서늘하고 무정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미친 여자’라 말할 때조차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방금 일은 그의 감정을 조금도 움직일 가치가 없다는 듯했다.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를 타고난 냉혈한이라 여겼다. 인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계연수도 결국 뒤돌아보지 않고 심서준을 따라 마차에 올랐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요즘 그렇게 바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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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0화

계연수는 그 순간 심서준에게서 짙은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요즘 그는 몹시 바빠 보였다. 밤에는 늘 늦게 돌아왔고, 아침이면 해도 채 밝기 전에 다시 나가곤 했다.품 안으로 끌어안는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목덜미를 스치는 숨결은 뜨겁기만 했다. 계연수는 고개를 살짝 젖힌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후작께서… 많이 피곤하신 건가요?”계연수의 목소리는 가늘고 부드러웠다. 사람 마음을 자연스레 풀어주는 힘이 있었다.심서준은 원래 남들 앞에서 피곤한 기색이나 한계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늘 냉정한 표정과 기세로 사람을 눌렀다. 얼굴은 아직 젊었지만 관직에선 누구보다 매서운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고, 그래서 누구도 감히 그를 얕보지 못했다.그건 심서준이 벼슬길에 오른 뒤 몸에 밴 습관이었다.그는 열일곱에 입조했고, 스물하나에 좌도어사 자리에 올랐다. 황제가 수많은 반대를 억누르고 직접 그 자리에 앉힌 것이었다.당시 조정은 혼탁했고, 황제는 기강을 바로잡고 싶어 했다. 그 무거운 책임을 심서준에게 맡겼다는 건, 그만큼 황제가 그를 깊이 신뢰했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뒤에서는 말이 많았다.누군가는 그가 장녀 덕에 그 자리에 오른 거라고 수군거렸다. 겉으로만 그를 두려워할 뿐, 속으로는 젊고 경험도 부족한 그를 얕봤다. 조정 밑바닥에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들을 아직 모를 거라 생각한 것이다.그러나 심서준은 곧 그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그는 눈빛이 감정을 드러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선 이상,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심어야 할 건 두려움이었다. 그래야 규율을 지키고,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두려워해야 실수를 하고, 실수를 해야 틈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는 늘 빈틈없는 긴장 속에 사람들을 몰아넣었다.하지만 계연수 곁에만 오면 달랐다. 그녀 곁에서만은 몸의 긴장이 천천히 풀렸다.계연수는 완전히 그의 사람이었다.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람,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사람, 끝까지 제 곁에 남아줄 사람.심서준은 눈을 감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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