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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춘귀의 모든 챕터: 챕터 641 - 챕터 650

721 챕터

제641화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다.뜨거운 숨결도 함께 가까워졌고, 사람을 압도하는 그 눈빛 역시 낮게 가라앉았다.계연수는 당황한 얼굴로 자신 위로 내려온 심서준을 올려다봤다. 손끝은 본능처럼 그의 가슴팍을 짚고 있었다.심서준은 낮게 시선을 내리깔고 제 아래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살짝 흐트러진 비녀 아래로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고, 화려한 비단옷은 계연수를 더욱 곱고 얌전하게 보이게 했다. 가늘게 휘어진 눈썹 아래의 눈동자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사람을 유혹하고 있었다.심서준은 손을 뻗어 계연수의 뺨을 천천히 쓸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비취 귀걸이가 눈에 들어왔다.문득 자신이 그녀를 위해 만들었던 그 귀걸이가 떠올랐다. 아직도 서재 서랍 안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예전에 일부러 계연수에게 자신의 서재를 정리하라고 시킨 적도 있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그 귀걸이를 발견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계연수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그의 물건에는 손 하나 대지 않았다. 사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는데도.심서준은 다시 몸을 조금 더 낮춰 계연수를 눌렀다. 그녀 얼굴 위로 스쳐가는 사소한 표정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넌 한 번도 먼저 내게 다가온 적이 없지.”그건 심서준이 오래전부터 계연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예전에는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원래 욕심이 끝이 없는 법이라 하나를 얻고 나면, 더 많은 걸 원하게 된다.당황으로 흔들리는 물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심서준은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서로의 코끝이 거의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마차 밖은 제법 소란스러웠지만, 그의 낮고 느린 목소리는 유혹처럼 또렷하게 귀에 스며들었다.“예를 들면… 먼저 입맞춤 해준다든지.”계연수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심서준을 바라봤다.이런 일까지 자신이 먼저 해야 하는 건가.뺨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가슴을 짚고 있던 손끝도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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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2화

심서준의 그 말은, 순식간에 계연수의 머릿속에 그와 얽혀 있던 수많은 아찔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했다.심서준의 손바닥은 뜨거웠고, 그녀의 목덜미를 감싼 손은 천천히 힘을 더해가고 있었다. 눈앞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가 있었다.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에 갇힌 기분이었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반드시 그의 뜻대로 해야만 할 것 같았다.심서준의 행동도, 눈빛도 끊임없이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순순히 자신에게 굴복하라고.계연수는 가슴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심서준의 손길을 따라 천천히 몸을 숙였다. 서툴고 조심스러운 입맞춤이 그의 입술 위로 떨어졌다.하지만 심서준은 전혀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스스로 그의 입술을 열길 바랐다. 먼저 다가와 얽히고 매달리길 원했다.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마차는 어느새 성 안을 또 한 바퀴 돌고 있었다.그리고 다시 멈춰 섰을 때, 마차 안의 풍경은 이미 처음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계연수의 옷깃은 반쯤 흐트러져 있었고, 그녀는 심서준의 위에 올라탄 채 금방이라도 그의 품 안으로 힘없이 무너져 내릴 듯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심서준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조금도 물러나지 못하게 했다.문하는 차마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주변 호위들까지 멀찍이 물러나게 했다.결국 계연수가 심가로 돌아왔을 때는, 심서준이 직접 그녀를 안고 내려 침상까지 데려다주었다.침상 위에 내려놓였을 때에도 그녀 뺨의 붉은 기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고, 몸에는 옅은 땀이 배어 있었다.계연수는 다시 떠나려는 심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주 잠깐 더 그를 붙잡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입술을 가볍게 깨문 채, 물기 어린 살구빛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또 가셔야 하나요?”심서준은 걸음을 멈췄다.고개를 돌려 바라본 계연수는 이제 막 사랑을 나눈 뒤의 나른한 기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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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3화

사씨 둘째 부인은 급히 몇 걸음 앞으로 나와 이백주를 바라봤다.“네 어머니가 계연수를 건드렸다가 지금 도찰원에 끌려갔다고? 대체 무슨 일로 그런 충돌이 생긴 것이냐?”이백주는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임씨를 바라봤다.“어머니께서 어제 큰 외숙모께 이야기를 좀 들으셨습니다. 큰 형수님이 화리한 뒤 심 후작의 첩이 되었고, 계속 사가를 겨냥하고 있다고요. 어머니께선 그 말을 듣고 오늘 마침 형수님을 만나게 되자 몇 마디 거슬리는 말을 하셨습니다. 헌데 그 자리에 심 후작도 계셨던 터라, 곧바로 명을 내리셨어요. 어머니께서 이품 고명부인을 모욕했다며 죄를 물으시겠다고요. 아버지께서도 어쩔 방법이 없어, 저더러 급히 돌아와 외조모께 방법이 있는지 여쭤보라 하셨습니다.”그 말에 방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임씨를 향했다.지금 사가 살림을 맡고 있는 건 둘째 부인이라 자연히 전보다 기세도 생겼다. 예전엔 늘 임씨에게 눌려 지냈고, 아들 역시 사옥현만큼 뛰어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큰방은 이미 엉망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이방이 더 나은 형편이었다.사가 둘째 부인은 얼굴에 노골적인 책망을 띤 채 말했다.“형수님은 정말 갈수록 분별이 없어지시는군요. 예전엔 이명유 일로 큰 도련님을 망치더니, 이제는 또 헛소리로 큰 아가씨까지 해치셨네요. 이 일을 이제 어쩌실 겁니까?”임씨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전부 그녀를 탓하고 있었다. 임씨는 곁의 작은 탁자를 붙든 채 서 있었지만,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때 이백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오늘 도찰원에 끌려간 건 제 어머니만이 아닙니다. 큰 누님도 함께 잡혀갔습니다. 듣자 하니 큰 누님께서 어제 심가에 다녀오신 뒤 몸져누우셨다는데, 오늘 순성어사 쪽 사람들이 직접 병상에서 끌어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심문받게 될 거라고요. 최소한 조정의 고명부인을 모욕하고 헐뜯은 죄는 받게 될 거랍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임씨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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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4화

사씨 노부인은 바닥에 무릎 꿇고 울부짖는 임씨를 차갑게 내려다봤다.임씨의 통곡 소리는 귀를 찢을 듯 날카로웠고, 방 안 사람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짙은 혐오가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씨는 그저 울고불고하기만 했다.마침내 사씨 노부인도 그 소리를 더는 견디지 못한 듯 호통쳤다.“입 다물어라!”임씨는 그 일갈에 몸을 크게 떨었다. 더는 감히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그제야 사씨 노부인은 차갑게 눈을 내리깔며 임씨를 바라봤다.“이제 와 귀신 곡하듯 울면 뭐가 달라지느냐? 그토록 좋은 며느리였던 연수를 누가 몰아냈지? 사람은 밖에서 사가 욕 한마디 한 적 없는데, 정작 너는 뒤에서 온갖 말을 꾸며냈구나. 심 후작의 첩이라 떠들고 다녔지. 집 안에서 헛소리한 것도 모자라 밖에까지 퍼뜨렸다. 대체 무슨 심보였느냐? 남의 명예를 짓밟으려 한 것 아니더냐! 이제 와서 일부러 보복한다고? 네가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데! 일이 터지고 나서야 무서운 줄 아느냐? 그런 짓 할 때는 왜 두렵지 않았느냐? 내가 보기엔 사금희도 너 같은 어미 밑에서 자라 저리 망가진 거다. 결국 네가 딸까지 망친 거야! 이제는 내 딸까지 끌어들였으면서, 네가 무슨 낯으로 여기서 울고 있는 것이냐!”사씨 노부인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단호했다.임씨는 그 말들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사씨 노부인은 평소 좀처럼 이렇게 화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불교에 몸담아온 사람답게, 말투나 행동에는 늘 자비로운 기색이 배어 있었다.게다가 살림을 내려놓은 뒤로는 집안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가문의 화목을 위해 일부러 손을 떼고 살아왔던 사람이었다.그런 그녀가 지금 이토록 대놓고 임씨를 꾸짖는 건, 이미 마음 깊이 임씨에게 질려버렸다는 뜻이었다.임씨 역시 노부인의 눈에 담긴 노골적인 혐오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움츠러든 채 마른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그런 일들은 다 지난 일이에요… 지금 제 딸은 병든 몸으로 도찰원에 끌려가 있잖아요.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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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5화

“사람들이 증거까지 갖고 사람을 잡아갔는데, 대체 누구한테 가서 빌겠다는 거냐!”사씨 노부인의 뜻은 분명했다.지금 이 일은 평남후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를 찾아가 사정한다 해도 소용없을 가능성이 컸고, 감히 나서서 이 일에 끼어들 사람도 없었다.노부인의 말이 한마디씩 떨어질 때마다 임씨의 눈앞은 점점 더 캄캄해졌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그녀는 마지막 남은 기운으로 겨우 고개를 들어 사씨 노부인을 바라봤다.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제가 어리석었고 잘못한 건 맞아요… 헌데 지금 어쩌란 말입니까? 정말 금희를 그런 곳에 그냥 내버려 두실 건가요?”사씨 노부인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지금 그녀가 임씨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미 혐오에 가까웠다. 보기만 해도 싫을 정도였다. 혼자 어리석은 것도 모자라, 자기 딸까지 망쳐놓았다.하지만 지금의 사가에는 조정에서 힘을 쓸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그때 사씨 둘째 부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임씨를 힐끗 보며 어딘가 통쾌하다는 듯 말했다.“제 생각엔 지금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형수님께서 직접 심가로 가 계연수에게 사정하는 수밖에요. 후작부인께 빌어서 사금희와 큰 아가씨만이라도 봐달라고 해야죠.”예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며느리에게 이제 와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니, 그것만으로도 임씨에겐 충분한 치욕이었다.이방 사람들은 바로 그런 꼴을 보고 싶어 했다. 큰방의 망신이 클수록 이방이 얻는 이익도 커질 테니까.사씨 노부인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사실 그녀 역시 잠시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하지만 심가의 문턱이 어디 보통 높던가. 임씨가 무턱대고 찾아간다 해서 만나주리란 보장도 없었다. 심가가 일부러 트집이라도 잡는다면, 소란을 피웠다는 죄목 하나 더 얹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게다가 심씨 큰 어른은 통정사에 몸담고 있었고, 심씨 대감의 문생들도 조정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러니 사가 같은 집안을 압박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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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6화

사씨 노부인의 말은 거대한 망치처럼 임씨를 내리쳤다.임씨는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곁에 있던 시녀들이 다급히 달려들어 그녀를 부축했지만, 힘없이 축 늘어진 몸은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었다. 결국 다른 하녀들까지 더 불러와 겨우 사람을 붙잡았다.사씨 둘째 부인은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관사를 시켜 의원을 부르게 하고, 곁의 어멈들에게도 손을 보태라 지시해 임씨를 방으로 데려가게 했다.앞청은 한동안 또 소란스러웠다.임씨가 부축받아 떠난 뒤에야, 이백주가 상석의 사씨 노부인을 바라봤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사씨 노부인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친정인 정국공부에 도움을 청해 사람을 움직여 보려는 마음이었다. 정국공부도 한때는 이름을 날리던 가문이니, 아직 남은 인맥쯤은 있었을 테니까.하지만 사씨 노부인은 그저 피곤하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는 법이다. 나는 도와줄 수도, 도와줄 방법도 없구나. 이미 도찰원에 들어간 이상, 저쪽은 사람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 네 어머니는 남의 말 몇 마디에 휘둘려 일을 키웠으니, 이번에라도 제대로 교훈을 얻는 게 낫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도 다 내려놓았다. 지금의 사가를 보면, 앞으로 더 깊이 무너져갈 일만 남은 듯하구나.”이백주는 멍하니 노부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노부인의 얼굴에 드리운 깊은 슬픔을 보고 있자니,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들도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그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사씨 노부인은 더는 말을 잇고 싶지 않은 듯 곁의 어멈 손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사씨 둘째 부인은 급히 곁으로 다가가 노부인을 부축했다.둘은 함께 밖으로 나갔고, 호숫가에 이르러서야 사씨 노부인이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곁의 사씨 둘째 부인을 바라보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사가는 사람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못했다. 너 역시 큰방 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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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7화

조 어멈은 사씨 노부인을 부축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씨 노부인의 뜻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지금 사가에 들이닥친 이 모든 화근은 결국 그 아가씨 하나로부터 비롯된 것 아니던가.예전의 작은 마님은 얼마나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던가. 다투려 들지도, 앞에 나서려 하지도 않았는데, 큰방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먼 듯 친정이 기울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끝없이 업신여겼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내쳐졌던 사람이 이제는 심가에 고명한 며느리로 시집가게 될 줄을.이제 와 돌아보니, 큰방은 결국 제 손으로 제 복을 걷어찬 셈이었다.사옥현은 오후가 되어서야 이 일을 전해 들었다. 사씨 둘째 부인은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가서 네 어머니를 좀 뵈어라. 그리고 잘 타일러 드리고. 연수가 지금 저리 좋은 집안에 시집갔다고 해도, 설령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뒤에서 사람을 헐뜯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데도 어머님께서는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하셨다. 헌데 사가 사람들 중 누가 무슨 낯으로 심가에 가서 선처를 구하겠느냐. 어머님께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라고 어찌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직접 생각해 보거라. 무슨 방법이 남아 있는지.”그 말을 마친 뒤, 사씨 둘째 부인은 두루마리 하나를 사옥현의 손에 쥐여 주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이건 어머님께서 네게 전하라며 보내신 거다. 네 어머니께 가져다드리라 하셨다. 나는 열어보지 않았다. 다만 어머님께서, 너는 열어봐도 된다고 하시더구나.”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은 채 먼저 자리를 떠났다.사옥현은 넋을 잃은 얼굴로 손안의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안의 내용을 펼쳐 본 순간, 얼굴빛이 크게 흔들렸다. 손끝에 힘이 풀려 거의 놓칠 뻔할 정도였다.그는 한참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어머니의 처소로 향했다.방 안으로 들어서자, 임씨는 창백한 얼굴로 침상에 기대어 있다가 그를 보자 손을 내밀었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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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8화

임씨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사옥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 아들의 눈 속에 서린 노골적인 혐오를 똑똑히 마주한 순간, 심장이 칼로 저며지는 듯 아파 왔다.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어미가 정말 무슨 잘못을 했다 한들… 그래도 나는 네 어머니인데…”사옥현이 참지 못하고 울부짖듯 외쳤다.“차라리 당신이 내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임씨는 넋이 나간 얼굴로 사옥현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단 한 번도 그녀의 속을 썩인 적 없던 아들이었다. 늘 믿음직하고 걱정할 일 없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피폐하고 낯선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곧이어 사옥현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니는 예전에 연수를 그렇게 몰아붙였잖습니까. 그렇게까지 괴롭혔잖아요. 이제 만족하십니까? 우리 모두 이렇게 망가졌는데, 이제 속이 시원하십니까!”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임씨 앞에 내던졌다.“이건 조모님께서 어머니께 전하라고 하신 겁니다. 이제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만족하시는 겁니까? 지금 제게 남은 게 뭐가 있습니까? 아니면 제가 심가 대문 앞에 무릎 꿇고 선처를 빌기라도 바라십니까? 그러다 심 후작의 노여움을 사서, 겨우 붙들고 있는 이 팔품 벼슬마저 빼앗기면 그제야 만족하시겠습니까?”임씨는 몸을 떨며 눈물을 훔쳤다. 목이 메어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네가… 어쩌다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이냐? 그 애는 네 친누이란 말이다.”사옥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핏발 선 눈으로 임씨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선택할 수만 있었다면, 저는 차라리 처음부터 이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그 말을 끝으로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임씨는 멍하니 사옥현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퍼뜩 정신이 든 듯 손에 들린 긴 두루마리를 내려다보았다.다급하게 펼쳐 든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너무도 선명한 세 글자였다.화리서.이미 그 문서에는 사씨 대감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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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9화

이제 경성의 연회에서는 더 이상 사가를 초대하지 않았다. 사씨 노부인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임씨가 계속 사가에 남아 있는 한, 사가는 앞으로도 점점 더 몰락할 터였다. 심하면 자손들의 벼슬길까지 막히게 될지도 몰랐다.저 화근은 더는 남겨 둘 수 없었다.다시 한 번 화리서가 임씨 앞에 놓였다. 그리고 사씨 노부인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따랐다.“지금 당장 쓰지 않아도 된다. 헌데 잘 생각해 보거라. 이것마저 찢어 버리면, 네게 남는 건 휴서뿐이다. 내가 집안일에는 손을 떼고 있다 해도, 너를 명분 있게 내쫓을 방법 정도는 아직 있다.”임씨는 떨리는 손으로 눈앞의 화리서를 받아 들었다. 그 위에 적힌 대감의 필체는 너무도 익숙했다. 이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세월 동안 수없이 보아 온 글씨였다.그 순간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사씨 노부인은 그런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임씨를 끌어내라 명한 뒤, 차갑게 한마디만 남겼다.돌아가서 잘 생각해 보라고.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임씨를 처소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일렀다.임씨는 울부짖으며 사씨 노부인에게 용서를 빌려 했지만, 이미 명을 받은 어멈들은 그녀를 거칠게 붙들어 질질 끌어내 버렸다.임씨가 끌려 나간 뒤에야, 사옥현이 병풍 뒤에서 비틀거리듯 걸어 나왔다.사씨 노부인은 그를 바라보며 그제야 얼굴빛을 조금 누그러뜨렸다.“옥현아, 요즘 사가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도 다 느끼고 있겠지. 사가가 예전만 못해졌다는 것도.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인지, 너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게다. 네 어미를 계속 두었다가는 앞으로 사가가 경성 세가들 사이에 다시 끼어들기 어려워질 거다. 네 어미를 내보내는 건 적어도 심가에 우리의 태도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어쩌면 몇 년 지나면 이 일도 서서히 잊히겠지.”사씨 노부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옥현아, 이 할미의 마음을 이해하겠느냐? 이것도 다 네 앞날을 위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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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0화

이틀이 더 흘렀다.그동안은 비교적 조용했지만, 오늘 이른 아침 궁에서 갑작스레 태후의 하교가 내려왔다. 계연수를 입궁시키라는 명이었다.이 일은 심씨 노부인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태후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궁에서는 사람을 태울 가마까지 직접 보내 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 반드시 사람을 데려가겠다는 뜻이 분명했다.계연수는 서둘러 몸가짐을 단정히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떠나기 전, 심씨 노부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 태후 마마께서 네게 말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거겠지. 다른 명부들이 와 있을 수도 있고, 궁 안에는 황후 마마도 계시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계연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가마에 올랐다.이번 입궁은 지난번 황후를 알현하러 갔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시녀 하나 곁에 둘 수 없었다.가마 안에 앉은 계연수는 마음 한편이 조금 불안했다. 태후가 아침부터 갑자기 자신을 부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며칠 전 심서준이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는 당분간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었다.심서준은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그녀가 어디를 가든 심서준은 직접 데리러 오거나, 아니면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이하게 했다. 그 모든 행동이 마치 폭풍이 몰려오기 전의 적막처럼 느껴졌다.태후의 곤녕궁에 도착하자, 문 앞에서 손보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손보경은 계연수를 보자 먼저 몸을 굽혀 예를 올렸고, 곧 웃으며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심씨 부인께서 오신다기에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네요.”마치 두 사람이 이미 꽤 가까운 사이인 듯한 말투였다.계연수 역시 예의 바르게 응대했다. 그러다 시선을 들어 올리자 한쪽에 서 있는 봉녕군주가 보였다. 그녀는 예를 갖춰 먼저 인사를 올렸다.봉녕군주는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어떤 감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기색이 스쳤다. 고개를 낮춘 채 얌전하고 단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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