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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1화

어디의 풍경이 특히 아름다우니 다음에는 함께 말을 타고 가 보자고 했다가, 또 어디의 샘물은 차를 달이면 향이 유난히 맑으니 봄이 오면 함께 소풍을 가자며 들뜬 얼굴로 말을 이었다.계연수 역시 오랜만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듯 즐겁게 맞장구를 쳤다.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자 자연스레 승마 이야기가 나왔다.당장이라도 한 번 겨뤄 보자는 말이 오갔지만, 모두 화려하고 무거운 치마 차림이라 움직이기엔 불편했다.그러자 최민정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괜찮아요. 어차피 재미 삼아 타는 건데요. 치마를 입어도 말 타는 데는 큰 문제 없어요.”*정오 무렵, 심서준은 계연수를 데리러 위씨 부저의 작은 마장으로 향했다.그는 멀찍이 위씨 둘째 도련님과 나란히 서서 말을 타고 있는 여인들을 조용히 바라봤다.치맛자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말을 달리는 계연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표정만큼은 선명하게 전해졌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심서준의 굳어 있던 눈매도 어느새 부드럽게 풀어졌다.옆에 서 있던 위수혁은 괜히 머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제 부인이 원래 성격이 좀 제멋대로입니다. 지금 바로 불러 심씨 부인을 모시고 오겠습니다.”그러나 심서준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괜찮네.”위수혁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제 부인이 심씨 부인을 마구회에 초대한 일... 혹시 불편하게 여기시는 건 아닐까 걱정됐습니다. 워낙 솔직한 사람이라 혹시라도 실례가 됐을까 봐요.”심서준은 가볍게 눈썹을 치켜세웠다.“정작 자네는 부인이 마구회에 나가는 게 괜찮은 겐가?”뜻밖의 질문에 위수혁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저는 원래 자유롭게 사는 성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오르거나, 이름난 유학자가 되겠다는 뜻도 없습니다. 그러니 애초에 학문에 매달려 본 적도 없지요.”그는 잠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런 저를 부인은 단 한 번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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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심서준이 데리러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계연수는 그제야 아쉬움을 감추며 최민정 일행과 작별을 고했다.최민정은 이미 계연수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벗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직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한가득 남아 있었지만, 후작이 직접 사람을 데리러 왔으니 더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그녀는 계연수를 직접 배웅하며 함께 밖으로 나섰다.가는 길에 최민정은 조금 전 함께 둘러본 마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원래 그곳은 위수혁의 서재가 있던 자리였다.하지만 그녀가 말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수혁은 집안 어른들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서재를 헐어 그 자리에 마장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었다.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계연수는 적잖이 놀랐다.그녀는 그동안 위수혁을 그저 자유분방한 성품의 사람쯤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부인을 위해 그토록까지 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최민정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그이는 무슨 일이든 먼저 나를 생각한다. 심지어 옷을 갈아입는 일도, 세수나 몸단장을 거드는 일도 절대 내 손을 빌리지 않더구나. 처음에는 나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날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건 아닐까 싶었지. 그 일 때문에 몇 번은 토라져 다투기도 했고 말이다. 비록 나는 무장 집안에서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여덕과 여계를 배웠다. 시집가면 부군을 따르고, 부군의 일상을 돌보는 것이 부인의 본분이라고 믿었지. 내게는 그게 부인으로서의 가치이자 마땅한 책임이었는데, 그이는 그마저 하지 못하게 했으니 내가 부인 노릇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헌데 나중에 그이가 그러더구나. 부부는 본래 서로 동등한 존재라고. 함께 나란히 걸어가야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시중드는 관계가 되어선 안 된다고. 자신은 멀쩡한 사내고 손발도 있고 하인들도 있는데, 어찌 부인이 그런 일까지 하냐고. 그때는 그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이가 말하는 '평등'이라는 것도 무엇인지 몰랐고. 허나 그이는 조급해하지 않았어. 천천히 내게 가르쳐 주고,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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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사실 이런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헌데 쉽게 입 밖에 낼 수 있는 말이 아니지 않느냐. 몇 번 만나 보니 너는 마음이 참 바른 사람이라는 걸 알겠더라고. 그래서 오늘에서야 용기 내어 말한 것이다.”계연수는 그 말에 담긴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이런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사람들은 이해하기는커녕 손가락질부터 할지도 몰랐다.그녀는 최민정의 손을 마주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언니가 저를 벗이라고 생각해 주셨듯 저 역시 언니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합시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어요.”잠시 머뭇거리던 계연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언니도 되도록 다른 분들께는 말씀하지 마세요. 괜한 오해를 사거나 쓸데없는 화를 부를 수도 있으니까요.”사실 계연수는 방금 들은 이야기들을 심서준에게조차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심서준은 워낙 엄정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가끔 자신이 미처 그의 옷을 갈아입혀 주지 못했을 때조차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곤 했는데, 하물며 최민정이 말한 것처럼 위수혁이 부인의 발을 씻겨 주고 머리를 빗겨 준 이야기까지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선뜻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계연수의 말을 들은 최민정은 가슴이 뭉클해졌다.역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부군이 자신에게 얼마나 잘해 주는지, 그녀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함께 마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조차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였다.하지만 계연수 역시 좋은 혼처를 찾은 사람이었다.바쁜 몸에도 후작이 직접 마중을 올 정도로 아낌받고 있다는 걸 보았기에, 그녀라면 질투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그리고 지금 계연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준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며 조심하라고 당부해 주고 있었다.그 순간 최민정은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벗을 만났다는 확신이 들었다.그녀는 마치 둑이 터진 듯, 위수혁이 자신을 위해 해 준 일들을 하나하나 쏟아내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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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심서준이 자신을 부르는 것을 본 계연수는 서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하지만 시선은 자꾸만 심서준 옆에 서 있는 위수혁에게 향했다.부인을 그렇게까지 아끼고, 심지어 직접 부엌에도 들어간다는 사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것이다.계연수는 조심스레 위수혁을 살폈다.푸른 옷차림의 그는 훤칠한 키에 단정하고 수려한 용모를 지녔고, 사람 좋은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상이었으며, 검은 눈동자는 금세라도 웃음이 번질 듯 부드러웠다.특히 무표정한 심서준과 나란히 서 있으니 더욱 대비가 선명했다.심서준은 잘생긴 얼굴을 가졌으면서도 마치 사시사철 녹지 않는 빙산처럼 좀처럼 웃는 법이 없었다.계연수는 조금만 더 바라보고 싶었지만, 눈앞이 갑자기 그늘이 지는 것을 느꼈다.심서준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시선을 가로막은 것이다. 마치 속마음이라도 들킨 사람처럼 계연수는 흠칫했다.심서준은 내려다보는 눈빛마저 서늘했고, 말없이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을 압도하는 기색이 감돌았다.또 괜히 자신을 붙잡고 따질까 싶어진 계연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른 최민정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최민정 역시 그제야 심서준의 굳은 낯빛을 눈치챘다.게다가 그의 곁에 선 위수혁이 연신 자신을 향해 눈짓을 보내는 것을 보자, 조금 전 나눴던 이야기를 심서준이 전부 들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그래도 최민정은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여인들끼리 나눈 사적인 이야기였을 뿐 법을 어긴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계연수를 믿었기에 마음을 다잡았다.그녀는 계연수와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앞으로도 자주 편지를 주고받자. 다음에도 꼭 너를 초대하마.”계연수도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최민정은 꾸밈이나 속셈 없는 솔직한 사람이었고, 계연수 역시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인사를 마친 최민정은 슬쩍 심서준을 한 번 훔쳐봤다.마치 공당에서 재판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반듯하고 엄숙한 모습에 절로 겁이 났다.계연수는 저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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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위수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것 같으냐? 모두가 나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후작께서도 지금 정도면 이미 충분히 드문 분이시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차분히 이었다.“게다가 후작께서는 타고난 명문가 출신이지. 누구도 견줄 수 없는 가문에서 자랐고, 지금은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분이 쉽게 몸을 낮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도 우리와 다르지 않느냐. 여인은 부군을 보조하는 존재라는 가르침 속에서 자라셨으니, 그대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후작께서는 괜히 부부 사이를 이간하려 한다고 여기실 수도 있다. 무엇보다 후작께서는 뜻을 조정에 두고 계신 분이다. 지금의 유학에서는 나라의 큰일은 군자가 맡고, 여인은 집안을 지킨다고 가르치지 않느냐? 아무리 심씨 부인을 아끼신다 해도, 정에만 얽매이는 분은 아니다.”최민정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깜빡였다.조금 전 심서준의 얼굴이 왜 그토록 굳어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그녀는 위수혁을 바라보며 물었다.“헌데 당신도 명문가에서 같은 교육을 받았잖아요. 왜 당신은 다른 거예요?”위수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허탈한 듯 웃었다.“그래서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하나뿐이라고. 난 벼슬길에는 뜻이 없다. 그저 부인과 백년해로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부인 같은 명문가 규수가 나처럼 변변한 일도 하지 않고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나는 그 은혜만으로도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그대에게 잘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최민정은 환하게 웃었다.“사실 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란 걸요.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저는 다 좋습니다.”그 말을 들은 위수혁은 또 한 번 감격한 얼굴로 최민정을 품에 꼭 안았다.최민정은 이제 그의 이런 행동에도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처음에는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안아 오는 것이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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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계연수는 고개를 들어 심서준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마주했다.예전 같았으면 차마 이런 말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괜히 그의 비위를 거슬러 사이가 어색해질까 두려웠고, 그래서 마음에 담아 둔 채 혼자 참는 날이 더 많았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심서준이 예전보다 많이 변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기에, 계연수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이 서운한지 이제는 그와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런데 심서준이 또다시 고집을 부리려는 기색을 보이자 계연수는 가늘게 눈썹을 늘어뜨렸다.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부군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얼굴이 다 빨개질 만큼 꼬집어 놓고도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계연수의 생김새는 어머니를 닮아 본래부터 여린 인상이 있었다.평소에는 크고 맑은 눈동자 덕분에 그 부드러운 분위기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살짝 눈을 내리깔기만 해도 그 연약함과 애처로움이 저절로 피어났다.형벌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심서준이었다. 늘 자신의 의지가 굳세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 여겨 왔지만, 그런 계연수 앞에서는 번번이 속수무책이었다.순간 그는 반사적으로 그녀를 달래고 사과하는 말이 목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문득 깨달았다. 이제 계연수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조금 전만 해도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낮추며 달래 줄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예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그는 원래 여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내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집안의 가장이자 계연수의 버팀목인 자신이 그녀를 아끼고, 무슨 일이든 맞춰 주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양보하는 것은 괜찮았다.하지만 지나치게 몸을 낮추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가장의 위엄이 있어야 집안의 아랫사람과 후손들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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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심서준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도 계연수는 여전히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오늘은 심서준이 미리 시녀들에게 자신이 왔다는 말을 전하지 말라고 일러둔 터라, 계연수는 그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이미 몸을 씻고 단출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얇은 비단 옷을 걸친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더운 여름이라 옷차림은 가벼웠고, 길게 늘어진 머리는 비녀 하나로 느슨하게 틀어 올렸다.분홍빛 넓은 소매 아래로는 눈처럼 흰 손목이 드러났고, 그 위의 금팔찌는 그녀가 붓을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빛을 흘리며 가볍게 흔들렸다.계연수는 내일 창고에 가서 하나하나 대조해야 할 부분을 적느라 정신이 팔려, 휘장 곁에 서서 한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심서준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다.그때 작은 탁자 위에 상자 하나가 조용히 내려놓였다.계연수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심서준은 아직 관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계연수가 일어나려 하자 심서준이 먼저 그녀의 옆에 앉았다.몸을 바짝 붙인 그는 자연스럽게 계연수의 손목을 감쌌다.크고 마디가 뚜렷한 손이 가느다란 손목을 한 번 감싸 쥐자 그대로 그의 손안에 들어왔다.심서준은 계연수에게서 은은하게 풍겨 오는 향기를 들이마시며 낮게 말했다.“열어 보거라.”등 뒤에서는 먹향과 침향이 섞인 심서준의 체온이 은은하게 감돌았다.그 분위기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기세가 있었지만, 동시에 선비다운 품격도 배어 있었다.낮고 잠긴 목소리에는 늘 그렇듯 거부하기 어려운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계연수는 붓을 내려놓고 작은 탁자 위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뚜껑을 연 순간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상자 안에는… 솔직히 보기에도 썩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떡 두 조각이 들어 있었다.무슨 떡을 만들려 한 것인지조차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계연수는 망설이다가 슬며시 심서준을 돌아봤다.심서준은 여전히 태연하고 고고한 얼굴이었다. 마치 명령이라도 내리듯 담담하게 말했다.“먹어 보거라.”계연수는 속으로 이 떡이 혹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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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부드럽고 말랑한 분홍빛 입술이 닿는 순간, 심서준은 이미 깊게 숨을 들이켰다. 하물며 귓가를 간질이는 계연수의 유혹 어린 말까지 더해졌으니 더는 버틸 도리가 없었다.평소 누구보다 절제에 능한 심서준이었지만, 지금 눈앞의 요염한 계연수 앞에서는 그 절제마저 힘을 잃었다. 그는 그녀의 등을 감싸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 붙들고, 턱을 살며시 들어 올린 뒤 그대로 입을 맞췄다.입맞춤은 거칠 만큼 깊고 진했다. 계연수가 숨이 가빠질 정도가 되어서야 심서준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희미한 웃음을 머금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물었다.“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이냐?”계연수는 심서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담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의 옷깃을 꼭 움켜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고, 촉촉하게 빛나는 눈동자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매혹이 어린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 심서준의 마음은 완전히 흔들렸다.정신마저 그녀에게 사로잡힌 그는 계연수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나한탑 쪽으로 밀어붙였다. 가운데 놓여 있던 작은 탁자는 한쪽으로 밀려났고, 언제나 다정한 순간에도 어딘가 서늘함을 품고 있던 그의 눈동자에는 이제 애틋한 정과 사랑이 조금도 숨김없이 드러났다.그는 손가락을 계연수의 느슨하게 풀어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스며들게 하며 나직하고도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이것만으로도 아직 부족하단 말이냐? 또 뭘 더 갖고 싶은 것이냐?”계연수는 멍하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늘 차갑던 눈동자를 덮고 있던 장막이 걷히자, 그 안에 담긴 깊은 애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가슴이 쿵 내려앉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 그녀를 뒤흔들었다.계연수는 두 팔로 심서준의 목을 감싸 안고, 응석 부리듯 부드럽게 속삭였다.“부군께서 주시는 거라면… 전 뭐든 다 받을래요.”그 한마디에 심서준은 자신의 심장이라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줄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내주었다.마음도, 사랑도, 재산도, 스스로 자부하던 고고함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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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입술이 심서준에게 붙들린 탓에 계연수는 더듬더듬 그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하지만 심서준의 옷깃을 겨우 조금 풀어 놓았을 뿐인데, 어느새 흐트러진 것은 오히려 자신의 옷차림이었다.심서준은 그녀의 두 다리를 들어 올린 채 망설임 없이 몸을 겹쳐 왔다.*다음 날 아침.계연수는 허벅지 안쪽에 남은 푸른 자국을 내려다보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심서준의 손을 잡아끌었다.“다음부터는 좀 살살 잡아 주세요.”심서준은 그 자국을 힐끗 바라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그럼 내가 불어라도 줄까?”그 한마디에 계연수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도무지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를 서둘러 밖으로 내몰고는, 용춘을 불러 방 안을 정리하게 했다.아침 문안을 드리러 심씨 노부인의 처소를 찾았을 때는, 그토록 쓰디쓴 약이 더는 올라오지 않았다.심씨 노부인은 계연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태의가 네 몸에는 보약이 맞지 않는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방에서 푹 쉬어라. 자꾸 몸을 앓아서야 되겠느냐.”그제야 계연수는 심서준이 이미 노부인에게 다 말씀드렸다는 걸 깨달았다.아마 어젯밤 다녀온 모양이었다.그러면서도 자신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니.계연수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명심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백씨는 오늘 약이 올라오지 않은 것까지 확인하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손에 쥔 손수건만 조용히 움켜쥐었다.심씨 노부인은 다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장원 일은 네게 맡겼다. 그동안 장부도 좀 살펴봤을 텐데, 생각해 둔 게 있느냐?”계연수는 노부인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노부인이 묻지 않았더라도, 원래 먼저 말씀드릴 생각이었다.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저도 나름대로 생각해 본 바가 있습니다. 예전 사례들도 살펴봤는데, 마침 형수님과 어머님도 계시니 함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백씨는 이유도 모른 채 눈꺼풀이 불안하게 떨렸다.계연수는 그대로 말을 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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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심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볼수록 신기한 아이였다.예전에는 어떻게 봐도 그저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규수로 보였는데, 지금은 하는 일마다 달랐다.무엇보다 계연수에게는 새 규정을 만들 만큼의 결단력도, 추진력도, 머리도 있었다. 주방 물품 구매 규정을 새롭게 손본 뒤로는 주방 운영도 한층 질서를 잡았고, 지금껏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이제는 안심이 됐다.훗날 이 아이가 이 집안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며느리라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게다가 손자까지 안겨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손자가 태어나는 날, 집안의 모든 살림은 자연스레 계연수에게 넘겨질 터였다.심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어 보니 제법 빈틈이 없구나. 절차도 분명하고, 괜한 분란이 생길 일도 적겠어. 다만 장원에 보내 초검을 맡길 사람만큼은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공정해야 하고, 물건도 볼 줄 알아야 하며, 집안의 체면을 세울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계연수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어머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자리는 감히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없으니 어머님과 형수님의 의견을 여쭙고자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외원 회사처의 임 관사가 오랫동안 집안을 맡아 온 데다 각 장두들과도 안면이 있으니 적임자일 듯합니다. 여기에 주방의 장 관사를 함께 붙여 정산을 맡긴다면 더 좋겠지요. 워낙 꼼꼼한 사람이니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제 쪽에서는 방 어멈의 조카 진복만을 함께 보내려 합니다. 여러 곳을 다녀본 경험도 있고, 줄곧 창고를 맡아 와 물품도 제법 볼 줄 아니, 함께하면 좋을 듯한데 어떠신지요?”장 관사는 심씨 집안의 오랜 사람이었지 계연수의 사람이 아니었다.반면 진복만은 심서준의 사람이었다.노부인 입장에서는 흠잡을 이유가 없는 인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사사로운 정을 앞세운 흔적은 없었으니까.물론 계연수에게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심씨 노부인이 반드시 이 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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