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차가 엑스에이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는 아까보다 훨씬 거세졌다.엑스에이지 주차장은 덮개가 없는 공간이라 차에서 내려 입구까지 가는 거리만큼은 비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민도하는 먼저 내려 우산을 펴 들었고, 잠시 후 내린 노아리에게 자연스럽게 우산을 씌워주며 함께 걸어갔다.하지만 한 번도 강서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강서이는 놀라지도 않았다.‘원래 한 사람 우산만 챙기는 남자였지.’굳이 또 원망해 봐야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강서이는 조용히 차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비를 맞는 거리 자체는 길지 않지만, 늦가을의 차가운 빗물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강 비서님, 잠깐만요!”입구 쪽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송이호였다. 우산을 들고 직접 달려 내려온 모양이었다.“이 비에 젖으면 금방 감기 듭니다.”송이호는 우산을 강서이 쪽으로 더 바짝 기울이며 덧붙였다.“특히 여자분들은 찬 기운 들어오면 바로 탈 나요. 조심하셔야죠.”“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송 대표님.”강서이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송이호는 웃으며 말했다.“강 비서님하고 제가 무슨 인사예요. 지난번에 소개해 준 한의사 선생님 덕분에 우리 집사람 몸이 많이 나아졌어요. 한약 두 첩 먹고 차도가 보인다니까요. 오늘 밤에 꼭 식사 대접하라더군요. 기어코 보답하라고.”“사모님이 너무 과찬하신 겁니다. 별일 아니었어요.”두 사람은 우산 아래에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입구로 향했다.보기에 참 안정되고 조화로운 그림이었다.입구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노아리는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올리며 민도하에게 말했다.“강 비서님이랑 송 대표님 사이, 생각보다 가까운가 보네? 어쩐지 송 대표님이 어제 계속 강 비서님 오셔야 협상 계속한다고 고집하더라.”말투와 억양에 담긴 뉘앙스는 누가 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의도적으로 흘리는 말, 의심을 유발하는 말.그러나 민도하의 반응은 너무 밋밋할 정도로 차가웠다.잠시 바라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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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프로젝트 실사를 할 때 강서이는 엑스에이지에 여러 번 들렀던 터라, 내부 구조와 작업 환경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래서 생산라인과 사무동을 소개할 때도 막힘이 없었고,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전문적이었다.그렇다 보니 송이호의 시선에도 자연스레 감탄과 신뢰가 번졌다.엑스에이지 직원들 역시 강서이를 반갑게 맞았다.수석엔지니어에서부터 경비원, 청소 아주머니까지, 강서이가 지나갈 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강 비서님, 오늘도 오셨네! 오늘 안 가시나요? 안 가시면 우리 집 가서 저녁 드세요. 우리 아내가 꼭 인사드리라고 했거든요. 그날 학교 같이 알아봐 주신 덕분에 우리 아들이 진짜 살았다고요.”엑스에이지의 수석 엔지니어 주형석이 일부러 뛰어와 감사 인사를 했다.강서이는 자연스럽게 물었다.“아드님은 새 학교 잘 적응하고 있나요?”“아주 잘해요! 좋아하던 e-스포츠 전공이라 그런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좋대요. 예전엔 게임만 한다고 걱정했는데... 강 비서님이 아니었으면 게임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린 평생 몰랐을 겁니다. 이 은혜는 평생 못 잊어요!”강서이는 가볍게 웃었다.“과찬이세요. 제가 마침 e-스포츠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조금 더 알고 있었을 뿐이에요. 도움이 됐다면 저도 기쁘죠. 사모님께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라고 전해주세요.”“아니에요, 절대 부담 아닙니다. 정말 큰 도움이었어요!”“오늘은 B시로 바로 돌아갈 것 같아요. 마음만 받을게요.”“오늘 바로 돌아간다니 아쉽네요...”그때 송이호가 나서며 웃었다.“엑스에이지랑 프라임로드투자가 협력하게 됐으니, 앞으로 강 비서님 모실 기회 많습니다. 오늘이 아니어도 되죠.”“그렇죠, 제가 서두른 거네요. 다음에 꼭 모시겠습니다, 강 비서님!”강서이는 웃었지만, 뚜렷하게 대답하지 않았다.곧 프라임로드투자를 그만둘 예정이었기 때문이다.민도하가 동의하든 말든, 강서이는 이미 결심했다.그때 노아리가 다가와 한마디했다.“강 비서님, 여기 직원분들한테 인기 굉장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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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혼란이 조금 가라앉자,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민도하와 노아리를 들어 올리듯 구해냈다.강서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 벽 쪽으로 떠밀렸다.몸이 한 번 크게 흔들렸고,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시야엔 사람들만 가득했지만, 강서이의 눈에는 민도하가 노아리를 품에 안은 모습만 또렷하게 보였다.단단하게 감싸며 지키고 있는 팔, 등에 떨어지는 자재들.팔에 찢긴 상처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강서이는 천천히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며 뭔가가 허탈하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아까까지 마음을 조이던 긴장과 걱정, 공포가 차갑게 식어갔다.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는 느낌이었다.‘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지.’‘아까 위험했을 때도 가장 먼저 몸이 움직인 건, 민도하를 지키려는 버릇 때문이었어.’3년 전 일이 스쳤다.부동산 프로젝트 실사 때, 현장에서 민원인과 충돌이 생겨서 과일과 쓰레기가 날아오던 날.강서이는 몸으로 막아섰고, 두 번째로 던져진 상한 계란은 파리채처럼 손바닥으로 쳐냈다.그 한 방으로 주가가 폭등했고, 강서이는 전설처럼 회자되었다.그런데 그때 강서이가 목숨 걸고 지킨 민도하는 지금 다른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송이호는 민도하의 상태를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한편 노아리는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도하야... 많이 아파? 괜찮아?”“별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민도하는 집요하게 노아리를 달랬다.“아니야, 피까지 났잖아... 어떻게 안 아플 수 있어? 나랑 같이 병원 가자.”“안 가도 돼.”“아니, 가야 해. 내 말 좀 들어줘... 응?”노아리의 울먹임과 애교 섞인 고집에 결국 민도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엑스에이지 현장에서 사고가 난 만큼 송이호도 당연히 동행해야 했다.송이호는 바로 차를 준비해 민도하를 부축했다.사람들이 모두 차에 오르고 나서야 송이호는 무언가 생각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어... 강 비서님은요? 아까 정신없어서 못 봤는데, 혹시 다친 데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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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러고 보니, 강서이 같은 인재는 잘 붙잡아 둬야 해. 밖에서 노리는 사람 꽤 있어. 지동경 대표도 계속 눈독을 들이고 있다더라.]남유환의 말은 농담 같지만 진심이 묻어 있었다.민도하는 태연하고 단정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강서이는 안 가. 누구한테도 안 가.”유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강서이가 7년 동안 보여온 헌신과 희생, 민도하에게 쏟아부은 마음을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뒷말로 그랬다.“민도하한테 충성도 200%인 여자.”“욕은 할지언정 떠날 수 없는 사람.”“차였다가도 다시 돌아갈 타입.”“...”그리고 그런 말조차 강서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민도하만 바라보고 달려온 7년이었다.유환이 다시 말했다.[아, 한승이 돌아왔대. 오늘 밤에 한잔할래?]서류에 사인하던 민도하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몇 시?”[8시. 매번 가던 거기.]“알았어.”짧은 대답이었지만, 가겠다는 뜻이었다....유환이 말한 장소는 EVERYDAY였다.우스운 건, 그 시각 강서이도 그곳에 있었다.물론 강서이는 민도하를 보러 온 게 아니었다.조규찬이 강서이를 불러낸 것이었다.조규찬 말로는 스마트의 지동경 대표가 중요한 고객을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강서이에게 그 자리에 같이 와달라는 요청이었다.둘이 도착했을 때 중요한 고객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동경 대표는 흔쾌히 둘을 안으로 들였다.강서이는 그 여성을 알아보았다.예채정이었다.지난 S시 투자 포럼에서 한 번 마주친 그 유명한 사업가였다.예채정도 바로 알아보고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 비서님? 오랜만이에요!”“예 대표님, 안녕하세요.”지동경 대표가 놀라서 물었다.“두 분이 아시는 사이예요?”예채정은 곧바로 웃으며 설명했다.“작년 S시 포럼에서 강 비서님과 잠깐 만났어요. 그때 강 비서님이 제게 정말 큰 도움을 주셨죠. 그때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렇게 다시 뵙네요!”강서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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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서한승이 무심하게 말했다.“모르는 사람인데. 아마 말 걸려고 온 모양이지.”그 말에 노아리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한승이를 ATM으로 봤나 보네. 이런 여자들 많이 봤어.”서한승은 노아리의 말엔 굳이 답하지 않고, 그녀 뒤에 서 있던 민도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오랜만이다.”민도하는 담담하게 받아쳤다. “오랜만이야.”서태우는 민도하와 노아리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미리 나왔다가, 마침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자 장난스럽게 말했다.“너희 언제부터 이렇게 내외하는 사이였어? 아니면 연적끼리 눈빛만 봐도 불편한 거냐?”노아리가 바로 정리했다.“태우야, 그만해.”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아리의 표정은 못 숨기는 여유와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민도하와 서한승, 이 시대의 동년배 중 가장 뛰어난 두 남자.한 명은 노아리의 전 남자친구.다른 한 명은 곧 노아리의 새 연인이 될 사람....그날 자리에서 강서이와 지동경 대표의 분위기는 괜찮았다.하지만 프라임로드투자와의 계약 해지를 아직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강서이는 지동경 대표에게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지동경 대표는 직접 EVERYDAY 입구까지 강서이를 배웅했다.강서이는 대리기사를 불러놓은 상태라, 술이 좀 오른 지동경 대표를 먼저 배웅하겠다고 했다.차를 기다리던 강서이는 문득 눈에 익은 번호판을 보았다.민도하의 차였다.예전에 강서이가 자주 몰았던 차.그리고 룸미러 옆에는 강서이가 보탁산에서 민도하를 위해 받아온 평안부적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검은색 마이바흐가 강서이 앞에 천천히 멈췄고, 창문이 내려가며 민도하의 균형 잡힌 얼굴이 드러났다.멀지 않은 거리에 마주 선 시선.착각일까?아니면 깊어진 밤의 분위기가 만드는 환영일까?민도하의 눈빛이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다.강서이는 자신의 심장이 한 박자 놓친 것을 똑똑히 느꼈다.짙은 밤과 맞닿았던 과거의 날들.엇갈리고 매달리고 얽히던 순간들 속에서 강서이는 수없이 민도하의 눈을 바라보며 그 속에서 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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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민도하가 너무 가까이 들이닥쳤다. 뜨거운 숨이 강서이의 귓가에 닿아 번지며 아무 말 없이 자극했다.예전 같았으면 강서이의 몸이 먼저 풀렸겠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달랐다.오히려 어딘가 깊은 곳에서부터 메스꺼움이 올라왔다.강서이는 손을 뻗어 민도하를 밀어내려 했다.그러나 손바닥이 남자의 가슴에 닿기도 전에 민도하가 고개를 틀어 입으로 강서이의 입술을 덮었다.예고도 없는, 불시에 떨어진 키스였다.피할 틈도 없이 강서이는 그대로 키스를 받아냈다.과거의 강서이라면 누구보다 이 키스를 좋아했다. 심지어 민도하와의 키스에 중독되어 있었다.민도하는 삶 전체가 절제 그 자체였다.담배도, 술도 하지 않는 사람.그와 입맞춤하면 마치 박하 향이 섞인 새벽 안개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늘 취해버렸다.하지만 이번엔 달랐다.민도하가 더 깊이 들어오기도 전에 강서이는 고개를 돌렸다.민도하는 강서이가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입술이 강서이의 귀밑을 스쳐 지나가며 얕게 닿았다.말할 때마다 뜨거운 숨이 부딪혔다.“끝난 거야?”둘 사이 거리가 너무 좁아졌고, 그로 인해 민도하의 반응이 그대로 느껴졌다.‘설마... 요즘 노아리가 이 남자를 만족시키지 못한 건가?’강서이의 마음이 멀어져 있다는 걸 그제야 민도하가 알아차린 듯, 큰 손이 강서이 허리를 움켜쥐었다.그리고 강서이를 식탁 모서리에 더욱 깊숙이 밀어붙이며 거리는 더욱 좁아졌다.“대답 안 하면 내가 직접 확인한다.”남자의 손이 허리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강서이는 급히 그 손을 잡아 막았다.그제서야 민도하가 말한 ‘끝났냐’라는 말이 생리 주기를 묻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강서이가 입을 열려던 순간, 갑작스럽게 민도하의 핸드폰이 울렸다.조용한 방 안에서 지나치게 또렷하게 울린 벨 소리.강서이는 그 소리가 민도하의 개인 번호 착신음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그래서 민도하는 주저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화면에 뜬 이름이 시야에 들어왔다.노아리였다.그 순간, 강서이는 마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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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민도하의 위로가 있었기에, 노아리의 숨도 한결 고르게 쉬어졌다.“검사 결과가 좋게 나오면 좋겠다.”노아리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민도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쪽엔 내가 미리 얘기해 놨어. 필요하면 바로 곽 원장님한테 말해.”민도하는 늘 그랬듯, 모든 걸 빠짐없이 챙겨두었다.“고마워, 도하야.”노아리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했다.하지만 이번엔 목소리도, 바라보는 눈빛도 조금 달랐다.말끝에 얹힌 감정이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병원을 나온 민도하는 가는 길에 강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 목적은 단순했다.강서이가 며칠을 더 쉬는지, 언제 회사로 복귀하는지 물어보려고.강서이가 없자, 대신 나온 김설이 일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고, 민도하는 그게 영 못마땅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강서이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7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민도하의 이마에 주름이 진하게 잡혔다.강서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처음으로 자각한 순간이었다.어디가 달라진 건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강서이는 3일을 쉬고서야 회사에 모습을 드러냈다.자리에 앉자마자 김설이 달려왔다.“언니 드디어 오셨네요. 안 오셨으면... 전 이 귀여운 얼굴로 이 세상 떠났을 거예요.”“무슨 일인데 그래?”강서이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7년 동안 일만 하다가, 이제야 느껴보는 자기 삶의 여유가 나쁘지 않았다.며칠 동안 가라앉아 있던 마음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무슨 일이긴요, 언니도 아시잖아요. 민 대표님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저, 이 며칠 동안 진짜 정신병 걸릴 뻔했어요!”김설은 진짜 지친 기색이었다.만나는 사람마다 민도하를 욕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정도였다.“그렇게 힘들었어?”강서이가 달래듯 말하자 김설은 거의 울먹였다.“그럼요! 언니도 잘 아시잖아요, 민 대표님 스타일... 요구는 많지, 지적은 날카롭지, 일에 조금이라도 실수 있으면 바로 폭격 들어오고! 언니는 그동안 그걸 어떻게 버티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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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강서이는 민도하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안에서 짧은 허락이 떨어진 뒤에야 강서이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민 대표님.”목소리는 철저히 사무적이었다.민도하가 곧바로 말했다.“이따 병원에 환자 보러 가야 돼. 너는 우리 본가 가서 전에 고객이 준 백년산삼이랑 영양제 챙겨와. 인자 이모님한테 얘기해 놓았으니까 그냥 받아오면 돼.”“네, 알겠습니다”강서이는 담담히 답했다. 일의 연장이라 생각하면 되는 부분이었다.‘백년산삼 같은 귀한 걸 선뜻 내놓는 거 보니... 중요한 사람이겠지.’강서이는 더 캐묻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은 사표 제출 이후의 상황으로 복잡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민도하에게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내 사표... 민도하... 눈치를 못 챈 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그래서 강서이는 오늘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민도하의 태도를 확인해야 이후 계획을 정할 수 있으니까.바로 그때, 책상 위에 놓인 민도하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환하게 뜬 이름은 ‘노아리’였다.강서이의 미간이 아주 작게 모였다.‘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전화받고, 그것도 스피커폰으로?’‘나를 신경 쓰지 않는구나.’‘하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첫사랑이었으니까.’‘드디어 이루어질 것 같으니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도 당연하려나.’‘나는 7년 동안 네 그림자였구나...’[도하야, 나 방금 일어났어. 너 메시지도 지금 봤어.]노아리의 목소리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코맹맹이였고, 부드럽고 느슨했다.아침 햇빛에 젖은 명주 같은 결,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늘어지는 어투.남자의 귀를 잡아끄는 기교였다.여자인 강서이는 그 정도는 단번에 알아챘다.민도하는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이는 표정은 꽤나 만족스러워 보였다.“알았어. 그래서 깨우지 않았어.”[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지 그랬어.]코 끝에 힘이 쏠린 목소리에 강서이는 소름이 돋았다.“크게 중요한 건 아니고. 잠깐 말하려고 했어. 이따 너희 어머님 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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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민두해와 민도하의 부자 사이는 원래도 원만하지 않았다.강서이가 민도하를 처음 알던 때는 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시기였다.민두해는 민도하가 민씨 가문의 가업을 물려받길 바랐고, 민도하는 자기 힘으로 독립해 사업을 하겠다고 고집했다.진인자의 말에 따르면, 그날 밤 두 사람은 거세게 부딪혔다.서재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값비싼 골동품들이 깨져 나갔다.마지막엔 민도하가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다고 했다.그 뒤로 민두해는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민씨 가문과 민두해의 이름을 걸고 프라임로드투자를 도와주는 이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덕분에 초창기 2년 동안 프라임로드투자는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텼다.민도하가 민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임에도, 사소한 특혜도 얻지 못했다.그러다 최근 몇 년, 강서이가 중간에서 뛰어다니고 애쓴 덕분에 그나마 부자 사이가 조금씩 누그러졌다.사실 처음엔 민두해도 강서이를 탐탁지 않아 했다.늘 냉랭했고, 목소리는 딱딱했으며, 표정엔 온기가 없었다.그제야 강서이는 ‘민도하가 누구를 닮았는지’ 똑똑히 깨달았다.하지만 강서이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얼굴 들이밀며 다정하게 굴어도 차갑게 돌아오는 태도에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그럴수록 더 버텼다.그 뚝심과 꾸준함이 결국 민두해의 마음을 움직였다.민두해의 태도는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어느새 강서이를 신뢰하기 시작했다.진인자는 종종 말했다.“회장님이랑 대표님 사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건 다 강 비서 덕분이에요.”“강 비서가 중간에서 조율 안 했으면, 두분 화해는 요원했을 거예요.”그 말은 절반이 아니라 거의 전부 사실이었다.“회장님, 물고기 밥 주고 계세요?”강서이는 대문을 들어서기 전 일부러 숨을 고르고, 환하게 웃으며 마당으로 걸어갔다.“응.”민두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강서이는 손에 들고 온 약과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방금 나온 약과예요. 지금 드셔야 바삭하고 맛있어요.”민두해는 물고기 밥그릇을 내려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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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민두해가 말을 마치자 진인자가 집 안에서 걸어 나왔다.두 손에는 오래된 나무 향기가 스며든 보석함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강서이는 그 보석함을 보는 순간, 마음속이 알싸했다.진인자는 보석함을 강서이의 앞 탁자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민두해가 말했다.“도하 엄마가 물려준 거다. 며느리를 맞을 때 주라고 한 예물이지. 이제 자네한테 줄 때가 됐다.”진인자는 옆에서 더없이 기쁜 얼굴로 말했다.“왜 멍하니 있어요? 얼른 열어보세요!”강서이는 손끝으로 보석함의 매끄러운 자단나무 결을 천천히 쓸었다.하지만 목이 꽉 조여 말을 잇기 어려웠다.예전 같았으면 감격했을 것이다.민두해에게 인정받는다는 의미니까.7년 동안 버텨온 시간의 보상이니까.하지만 지금은 기쁨이 아니라 씁쓸함뿐이었다.강서이는 조용히 숨을 들이쉰 뒤, 보석함을 민두해 쪽으로 밀어 돌려놓았다.그리고 비즈니스 현장에서 다져온 흔들림 없는 말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마 회장님의 뜻을 저는 받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진인자가 급히 다가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싸웠어요?”그리고 곧바로 스스로 답을 달며 잔소리를 이어갔다.“커플이 싸우는 건 흔한 일이지, 별일 아니에요. 너무 마음 쓰지 마요.”강서이는 고개를 저었다.“싸운 게 아니에요.”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헤어졌어요.”민두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주름진 미간이 깊어지고, 강서이를 찬찬히 훑어보며 진위를 확인하려는 듯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강서이는 피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반응이었다.그게 오히려 더 민두해의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본래 날카로운 인상이 더 가파르게 굳어졌다.강서이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약과 쇼핑백을 진인자에게 건네며 말했다.“이모님, 여기 약과예요. 회장님 드시고 싶으실 때 전화만 하시면 되게 연화당에 부탁해놨어요. 따로 줄 서실 필요 없어요.”진인자의 눈가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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