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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991 - Chapter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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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1화

김태하의 숨결이 따뜻하고 고르게 들려왔다. 강지현은 지친 아이를 달래듯 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야 병실 문이 살짝 열렸다.은주희는 강지현이 오래 나오지 않자 걱정돼 들여다봤다. 침대에서 김태하를 안은 채 꼼짝없이 앉아 있는 강지현을 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물러났다.다음 날 점심 무렵 눈을 뜬 강지현은 간병인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에는 담요가 포근히 덮여 있었다.옆의 김태하 침대가 비어 있는 걸 보고 놀라 곧바로 일어났다.마침 문이 열리고 김태하가 비서와 함께 들어왔다. 비서의 손에는 따끈한 아침 식사 두 개가 들려 있었다.“왜 더 안 잤어? 어젯밤에 잘 못 잤잖아.”김태하가 빠르게 강지현 곁으로 왔다.김태하는 이미 환자복을 벗었다. 새하얀 셔츠의 단추를 목까지 채우지 않았고 어깨에는 널찍한 검은 정장 재킷을 걸쳤다.눈에 띄게 야윈 것만 빼면 안색이 꽤 좋아진 듯했다.“어디 갔었어? 쉬어야지 왜 돌아다녀...”“몸이 많이 나아졌어. 방금 퇴원 밟고 왔어. 엄마랑 가족들은 먼저 돌아갔고, 너 밥 먹고 나면 우리도 가자.”강지현이 걱정하자 김태하는 서둘러 옆에 앉아 손을 잡았다.팔에는 주삿바늘을 고정했던 흔적이 남았고 손등에는 막 바늘을 뺀 듯 멍이 선명했다.“지금 퇴원하면 어떡해... 너 왜 이렇게 무모해?”“여기는 잠도 제대로 못 자잖아. 나 때문에 너까지 고생하고. 의사랑 상의했어. 집에 가서 주사 맞아도 된대.”김태하는 강지현의 말을 부드럽게 끊었다. 강지현은 불안한데 김태하는 남의 일처럼 침착했다. 이야기하면서 포장을 열어 아침을 담아 주기까지 했다.강지현은 한참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내가 의사한테 다시 물어볼게...”“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어.”김태하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오로라?”“응. 너랑 오로라도 보고 싶고, 끝없이 펼쳐진 별도 보고 싶어. 설산도, 사막도, 열대우림도 가고 싶어. 우리 둘이 아직 가 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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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2화

강지현은 갑자기 입을 다물고 김태하를 찬찬히 살폈다. 확실히 어제보다 안색은 훨씬 좋아졌다.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모습 같아 오히려 더 불안했다.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강지현은 김태하의 손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여 건넨 죽을 받아먹었다. 바다처럼 깊은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삼켰다.죽을 다 먹자 김태하가 휴지를 집어 강지현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태하는 강지현의 두 손을 거듭 꼭 쥐고 얼굴을 찬찬히 살핀 뒤 가볍게 입 맞춘 후 품에 안았다.점심 무렵 비서가 짐을 모두 챙겼다.떠나기 전 강지현은 담당 의사를 다시 만나려 했지만 김태하가 막았다.숙소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마음을 추스르고 가정부에게 풍성한 집밥을 차리게 했다.김태하는 자기 생각을 이미 은주희에게 전했다.은주희는 언제나 이해심이 깊었다. 김태하의 뜻을 이해했고, 아버지와 자신을 유독 아끼는 조부모님에게 직접 말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그래서 김태하의 결정을 대신 가족들에게 전했다.가족들은 식탁에서 치료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함께 식사하고 먼저 귀국할 예정이었다.김태하와 강지현은 노르국에 며칠 더 머물며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은 뒤,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로 했다.가족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곁을 지킬 것이다.김무언은 처음에 반대했다. 김태하가 책임져야 할 것은 자기 행복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기대와 회사의 미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정말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한다고 여겼다.반년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그 시간을 전부 자신만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은주희의 뜻은 확고했고 지순옥도 두말없이 은주희 편에 섰다.김태하는 아직 젊었고 어릴 때부터 짊어진 것이 너무 많았다. 지금 한 번쯤 자기 마음을 먼저 챙긴다고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가족이라면 진작 놓아 줬어야 했다.스스로 선택하게 해 줘야 했다.식탁에 앉은 가족들의 표정은 모두 어색했다.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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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3화

“알았어요.”강지현은 별말 없이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방에는 의료진 몇 명이 서서 김태하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김태하는 침대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앉아 팔에 주사를 꽂고 약을 맞는 중이었다.다른 손에는 여전히 휴대전화를 쥐고 있었다.강지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김태하의 전화였다.배웅이 너무 길어졌다. 김태하가 여러 번 전화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다.김태하는 걱정되기 시작했다.“나 왔어.”강지현은 미간을 펴고 다정한 표정으로 다가가, 김태하의 다른 팔을 잡고 휴대전화를 받아 내려놓았다.김태하는 강지현을 빤히 바라봤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배웅했잖아.”“누구랑 그렇게 오래 통화했는데?”김태하가 나직이 물으며 강지현의 입술 가까이 다가왔다.“회사. 현다영이 전화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하길래 좀 오래 이야기했어.”강지현은 김태하가 더 묻지 못하도록 바로 되물었다.“뭐야? 이제부터 너한테 꽉 잡혀 사는 거야? 잠깐 늦었다고 잔소리까지 듣게 생겼네?”장난스럽게 말하며 눈꼬리를 접고 웃었다.김태하의 눈에 어린 의심도 곧 사라졌다. 하지만 일부러 단호한 목소리로 장단을 맞췄다.“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네 시간은 전부 내 거야.”“난 아직 허락 안 했는데? 주상 그룹에 무슨 일 생기면 널 놔두고 돌아갈 수도...”“안 돼.”김태하는 드물게 고집을 부렸다.목소리는 조금 커졌고 눈빛도 가라앉았다. 농담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얼굴이었다.“그것도 안 돼?”“안 돼. 무슨 큰일이 있든 주상 그룹이든 미래 그룹이든 지금은... 나보다 중요하지 않아.”김태하는 강지현에게 바짝 다가와 마지막 말을 이를 악문 듯 힘주어 말했다. 그러더니 떨리는 숨을 내쉬며 입가에 살짝 입 맞췄다.강지현이 웃었다.“김 대표님,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으면 결혼 안 했을 텐데.”“이제 후회해도 늦었어.”김태하가 한쪽 팔로 강지현을 품에 끌어안았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의료진도 눈치껏 문가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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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4화

주상 그룹은 제약회사였고 국내의 뛰어난 특허 기술도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그래서 강지현은 의사가 말한 기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다.국내 전체를 뒤져 비슷한 기술을 찾아도 실제로 활용하는 곳은 아직 없었다.비용도 엄청날 터였다.그런데도 의사는 어렵지만 가능한 길을 하나 알려 주었다.“우리 병원에는 그 기술이 없어요. 전 세계에도 보유한 곳은 두 군데뿐인데 둘 다 군 소속 기관이라 외부에 기술을 제공하지 않아요.”담당 의사는 강지현과 김태하에게 T7을 구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주상 그룹에 그 기술이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했다.그렇지 않다면 위험을 감수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유일한 희망이 또 막막해졌지만, 강지현은 김태하를 살릴 기회를 주려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어쩌면 김무언 말대로 여기까지가 운명인지도 몰랐다.언제나 딱 한 걸음이 모자랐다.하지만 그 작은 희망 때문에 강지현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도저히 포기하자고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4시간 안에 제조를 끝내야 한다고... 4시간...’그 순간 하원영의 어머니가 남긴 특허 기술이 떠올랐다. 그것도 약을 제조할 때의 시간과 관련된 기술이었다.예전에 하원영과 이야기하다 들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여러 차례 기술을 개선했고 국제기관 여러 곳과 비밀리에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핵심 연구를 이끌며 기초 기술을 제공한 뒤 홀로 귀국해 추가로 기술을 발전시켰다고 했다.그 일로 여러 나라에서 계약 위반을 이유로 연구 활동을 제한하기도 했다.한때 하원영은 어머니의 구형 특허만으로도 주시언을 M국의 구금에서 쉽게 풀어 준 적이 있었다.주시언은 그 특허가 세포 추출물의 활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었다.바로 그때 이메일이 도착했다.강지현이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던 자료가 제때 온 것이다.자료를 열어 보니 역시 기억이 맞았다. 하원영의 어머니가 연구한 특허는 의사가 말한 바로 그 기술이었다.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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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5화

하씨 집안은 그동안 그 사실을 핑계로 다른 나라에 특허를 팔지 않았다. 사실은 최고 수준의 기술로 투자를 유치해 주상 그룹을 대신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막상 손에 넣으려니 너무 위험한 특허였다. 하씨 집안은 이를 통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과소평가했다.하원영의 상속권을 빼앗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여러 세력이 몇 년째 그 기술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특허에 손을 대는 순간 회사에 화가 닥칠 수도 있었다. 어떤 결과가 생길지 상상할 수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시간이 갈수록 하씨 집안도 사정을 깨달았다.어쩌면 하원영의 어머니가 기술을 맡긴 건 자신들을 믿어서가 아닐지도, 오히려 하씨 집안을 이용했을지도 몰랐다.홀로 남겨진 하원영은 기댈 곳도 힘도 없었다. 어머니의 연구와 재산을 물려받더라도 목숨조차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두 대기업이 해원시의 경제를 쥐고 있고 하원영은 주시언의 보호까지 받고 있었다. 더 기다렸다간 상속권은커녕 특허까지 고스란히 넘겨줘야 할 판이었다.천해 그룹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결국 그 특허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주상 그룹뿐이었다.하원영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꾸민 계획이 무너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강지현과 하원영이 어른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하지유는 더 화가 났다.강지현의 결혼식을 보고 몇 번이나 미쳐 버릴 것 같았다.‘주상 그룹 사람들이야 강지현의 가식적인 얼굴에 속았다고 치자. 그런데 김태하까지 속아 넘어가다니! 그렇게 완벽한 남자를 서지아도, 나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뭔데?’하원영 생각만 해도 하지유는 화가 치밀었다.‘그 계집애는 강지현만 믿고 인생이 달라질 줄 아는 모양인데, 꿈도 야무져! 하지만 이제 천해 그룹이 생겼으니 강지현과 하원영의 좋은 시절도 곧 끝날 거야.’하지유가 생각에 잠긴 사이 하석철이 안내를 받고 휴게실로 돌아왔다.하지유는 눈빛을 반짝이며 얼른 다가갔다.“아빠, 어떻게 됐어요?”하석철의 표정은 심각했다.“집에 가서 얘기하자.”하지유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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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6화

“그런데 하원영이 스스로 상속권을 포기하게 하라니, 말이 돼?”하지유는 천해 그룹 사람들이 일부러 곤란하게 군다고 생각했다.지금 자신들은 하원영 어머니의 특허를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상 그룹까지 하원영을 지키고 있으니 대놓고든 몰래든 손을 대기 어려웠다.반면 천해 그룹은 제삼자자, 주상 그룹의 공공연한 경쟁사였다.하원영을 노리고 특허를 빼앗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터였다.그런데 천해 그룹은 협력하고 싶어도 특허 소유권이 하씨 집안에 없으니 난처하다는 말만 했다.하지유는 분통이 터졌지만 아버지는 냉정했다.“천해 그룹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쪽과 손잡으려면 그쪽 규칙을 따라야지.”“아직 자리도 못 잡았으면서 뭐 그렇게 거만하대요?”하지유가 불만을 터뜨리는 사이 하석철은 벌써 전화를 걸어 사람을 시켜 하원영과 만날 약속을 잡게 했다.“정말 그냥 양보할 거예요? 하원영이 말이 통하는 애도 아닌데 우리가 먼저 나서면 우릴 우습게 알면 어떡해요?”“말이 안 통해도 괜찮아. 충분히 이익을 주면 결국 동의할 거야.”“걔한테 고개 숙일 바에는 천해 그룹이랑 손잡지 말죠!”딸이 감정적으로 나오자 하석척은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였다.하지유가 하원영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딸이 미워하는 상대이니 자신도 하원영에게 이득을 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면 당장 눈앞의 승부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특허만 손에 넣으면 우리가 유리해져. 천해 그룹과 협력하든 안 하든 우리 손해는 없어. 하원영 어머니가 남긴 것 중 가장 값진 게 그 특허잖아. 그다음에 천해 그룹과 주상 그룹을 무너뜨리기까지 한다면 집안도 없는 애 하나 처리하는 게 어렵겠니?”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하지유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역시 아버지는 멀리 볼 줄 알았다.‘하원영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어머니 물건도 되찾지 못하고 주씨 집안에 기대어 사는 주제에. 그 집안이 망하면 하원영 하나쯤 손쉽게 치워 버릴 수 있지 않겠어?’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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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7화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것.’“원영아, 엄마 아빠를 보고도 인사 안 하니? 아직도 화가 나 있어?”이연화는 미소를 지으며 하원영의 옆에 앉아 직접 따뜻한 차를 따라 주었다.“화요? 제가 두 분한테 뭐가 화나겠어요?”이연화가 말을 걸자 하원영은 그제야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앞에 놓인 찻잔과 식탁에 차려진 화려한 요리와 디저트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하씨 집안 사람들에게 화낼 나이는 이미 지났다.인간의 추악함을 잘 알았다. 이 집안을 미워해 봐야 똑같은 진창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이었다.이제 원하는 건 자기 것을 되찾는 것 하나뿐이었다.어제 강지현에게 연락을 받았다.김태하의 상태가 좋지 않아 지금은 어머니의 특허만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강지현의 일이니 하원영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애초에 하씨 집안은 자기 것을 돌려줘야 마땅했다.“화 안 났으면 됐어.”이연화는 하원영의 성격을 잘 알아 따지지 않고 웃었다.“요즘 잘 지냈니? 주병찬 씨가 주시언과 결혼하는 것도 허락했고 주상 그룹 평가도 통과했다면서. 괜한 걱정을 했나 봐. 우리 원영이가 정말 다 컸네.”“같이 산 세월이 몇 년인데요. 오늘 여기에는 남도 없으니 서로 무슨 생각 하는지 숨길 필요 없겠죠.”하원영은 숨을 가볍게 들이쉬며 이연화를 돌아봤다.이연화는 입술을 꾹 다물고도 예의 바른 미소를 유지했다.하석철이 손짓하자 룸에 서 있던 직원들과 임원들이 눈치를 채고 빠르게 나갔다.셋만 남자 하석철이 말했다.“원영아, 네가 지금 우리에게 적대적인 건 알아. 하지만 우리와 네 어머니는 정말 절친한 사이였어. 그동안 오해가 있었다 해도 네 어머니와의 인연, 그리고 우리가 널 키운 정을 생각해서 지난 일은 털어 버렸으면 좋겠다.”“음식은 안 나와요? 밥 사 주신다고 해서 왔는데 배고파요.”하석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원영은 젓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소 갈빗살을 집어 먹었다.아무렇지 않은 태도가 두 사람의 신경을 일부러 긁는 듯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두 사람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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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8화

하원영이 담담히 받아쳤지만 이연화는 여전히 친절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너나 지유나 똑같이 소중하지. 예전에 너희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다 우리 부모 잘못이야. 네가 어릴 때 장난이 심하고 지유도 성격이 세서 널 너무 엄하게 키웠지. 그래서 편애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카드를 하나 줄게. 하씨 집안에서 운영하는 매장 어디서든 쓸 수 있어. 그럼 마음이 좀 놓이겠니?”하석철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이연화가 말을 꺼낸 이상 곧바로 휴대전화를 집어 실행에 옮기려 했다.“원영아,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사람 시켜 마련해 줄게. 곧 결혼도 하잖아. 친정에서 준비해 줄 혼수도 원하는 대로 얘기해.”“괜찮아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하원영은 웃음이 터져, 볼이 빵빵해지도록 입에 넣었던 음식을 한참 만에 다 삼켰다.오늘 음식은 분명 맛있었다. 함께 먹는 사람이 문제였을 뿐.이제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사양하지 마. 지유보다 먼저 시집가는데 혼수는 넉넉히 해 줘야 우리 집안 체면도 서지.”이연화는 하원영이 마음을 푼 줄 알고 한층 더 다정하게 말했다.하지만 하원영이 입가를 닦고 꺼낸 말에 이연화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다.“혼수는 필요 없어요. 하지유가 직접 와서 제 앞에 무릎 꿇고 어릴 때부터 저를 괴롭힌 일 전부 사과했으면 좋겠어요.”“...”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하석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참지 못하고 식탁을 쾅 내리쳤다.이연화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웃었다. 하원영이 아무 조건도 제시하지 않는 게 가장 걱정이었으니까.요구하는 게 있다면 아직 협상할 여지가 있었다.“원영아, 굳이 지유한테 그렇게까지 해야겠니? 차라리 돈을 받는 게 낫지 않겠어? 어릴 때 네가 장난이 심했고 지유도 성질이 급했지. 우리도 널 잘 키우려는 마음에 너무 엄하게 굴어서 서운하게 한 것 같아. 편애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우린 정말 네가 잘못된 길로 갈까 봐 걱정해서...”“그럼 다 두 분 잘못이네요. 하지유는 용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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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9화

하석철의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다.듣기에는 하원영만 이득을 보는 것 같았다.이연화도 거들었다.“그래. 그 특허는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 아빠 말 듣고 확실히 손에 쥘 수 있는 걸 받는 게 좋아.”“그 특허, 천해 그룹에 팔려고요?”하원영이 나직이 물었다.“원영아...”“엄마 특허를 천해 그룹에 팔아서 주상 그룹 사업을 빼앗게 돕고, 나중에 주상 그룹이 망하면 거기에 기대 사는 일개 직원인 저까지 손봐 주시려고요?”하원영은 비웃음을 담아 몇 마디로 두 사람의 속내를 꿰뚫었다.이연화의 얼굴이 붉어졌고 하석철도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팔기는 뭘 팔아. 협력이지. 천해 그룹에는 왕실의 지원도 있고 세계적인 자원도 있어. 네 어머니 특허는 거기에 가야 가장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어. 언제까지 재단 계좌에서 썩히기만 할 거냐?”이연화는 한숨을 쉬며 다시 애처롭게 타이르는 척했다.하원영은 이미 무언가 알아챈 게 분명했다.억지로 변명해 봐야 소용없었다.정에 호소하는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솔직한 조건을 내밀 수밖에.“제 거예요.”하원영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엄마가 저한테 남긴 거라고요. 썩든 말든 제 거예요. 두 분이 멋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에요!”“원영아, 지금은 주씨 집안이 널 지켜 주겠지. 그런데 평생 지켜 줄 수 있을까? 주상 그룹도, 김씨 집안도 만능은 아니야. 게다가 강지현이랑 김태하는 지금 국내에 없잖니. 너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겠어?”이연화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눈빛과 다정한 말투를 유지했지만 말의 의미는 달라져 있었다.하원영을 협박하는 것이었다.“그럼 이렇게 하죠.”하원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서류를 내려쳤다.“다른 재산은 전부 포기할게요. 특허만 주세요. 저도 많이 양보하는 거예요.”“...”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연화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차가움만 남았다.좋게 말해도 협박해도 듣지 않으니 더는 설득할 마음이 없었다.하석철이 비웃었다.“끝까지 엄마 아빠랑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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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0화

말이 끝나자마자 이연화가 식탁 위 호출 버튼을 두 번 눌렀다.룸 문이 벌컥 열리고 밖에 있던 남자들이 달려 들어와 하원영을 에워쌌다.한 남자가 하원영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힘이 빠진 하원영은 저항할 수 없어 하석철을 노려볼 뿐이었다.“계약서를 위조하더니 이제 더러운 짓까지 하려고요?”이연화가 가볍게 웃었다.“뻔하잖아. 결혼한 네가 주씨 집안 몰래 더러운 짓을 하면 계약을 어기게 되는 거지.”“그런 수법을 누가 믿어요? 경찰에 신고하면...”“믿든 말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계약 위반이야. 게다가 네 평판이 어떤데 누가 네 말을 믿겠니? 주시언이 널 믿는다고 해도 증거는?”이연화가 비웃었다.하원영은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냈지만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처음부터 모든 걸 준비해 놓았다.“쓸데없이 애쓰지 마. 하원영, 함정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걸 어릴 때 아무도 안 가르쳐 주던?”이연화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손목에 찬 반짝이는 시계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하원영은 우리가 망쳐 놓은 철없는 애야. 얼마나 능력이 있고 어떤 성격인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아. 머리는 텅 비고 성질만 급한 데다 아무 능력도 없는 바보지!’신호를 차단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호텔로 오는 내내 사람을 붙여 하원영이 혼자 왔는지 철저히 확인했다.게다가 주시언은 오늘 해원시에 없었다. 그는 주병찬과 함께 다른 지역에 갔다.하원영은 아무리 소리쳐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처지였다.증거만 남기지 않으면 모두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도 어쩔 수 없을 터였다.강지현과 김태하도 해원시에 없으니 필요한 곳에 손을 쓰는 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큼 쉬웠다.이연화는 손을 들어 옆에 선 남자들에게 시작하라고 신호했다.그런데 하석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하원영, 한때 부녀로 지낸 정을 생각해서 마지막 기회를 주마. 특허를 포기한다면 네 어머니가 남긴 재단 돈을 줄게. 그 돈으로 주시언이랑 편하게 살면 되잖아. 그게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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