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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1061 - Chapter 1070

1092 Chapters

제1061화

“기다릴게. 얼마나 걸리든 기다릴게.”김태하가 대답했다.강지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들었더니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벌써 짜증이 난 듯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수화기 너머는 조용해졌지만, 전화가 끊기지는 않았다.잠시 기다리던 강지현이 다시 물었다.“김태하, 더 할 말 있어?”“아니. 네가 먼저 끊기를 기다리는 거야.”“그럼 끊을게.”강지현은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작게 대답한 뒤 통화를 종료했다.“역시 강지현, 대단하긴 하네. 그 잘난 미래 그룹 회장도 네 앞에선 순한 고양이가 돼 버리잖아. 네가 못 할 일이 있긴 해?”강지현이 휴대전화를 내려놓기 무섭게 옆에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빈정대는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역력했다.이도운은 의자 등받이에 거칠게 몸을 기댄 채 와인잔을 들어 크게 한 모금 마셨다.식당의 은은한 조명이 잘 재단된 그의 고급 정장 위로 내려앉았다. 그는 예전보다 훨씬 그럴듯한 신사 행세를 하고 있었다.고작 몇 달 못 본 사이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착한 척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이도운, 내가 너만 하겠어? 여자 덕에 외국까지 진출했잖아. 그런 후계자를 둔 집안이 참 자랑스럽겠네.”강지현도 비웃으며 이도운의 차림새를 훑었다.과시라도 하려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값비싼 명품으로 치장했다. 옆에는 고급 외제차 열쇠를 놓았고, 일부러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에는 세계적인 명품 시계 브랜드가 새로 출시한 한정판이 채워져 있었다.이도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콧등을 만졌다.“만나자마자 이렇게 날을 세우는 걸 보니 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남았나 봐?”강지현은 이도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몸을 앞뒤로 젖힐 정도였다.그제야 이도운의 얼굴이 굳었다.“뭐가 그렇게 웃겨!”“강지현, 네가 나와 우리 집안에 한 짓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야. 아직도 나를 신경 쓴다는 증거지! 나를 미워할수록 더더욱 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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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2화

강지현이 잠시 말을 멈추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애초에 너희가 나한테 진 빚이야.”이도운은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빚이라고?”이도운이 이를 악물고 한 마디씩 내뱉었다.“강지현, 넌 양심도 없어? 내가 예전에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너 때문에 백하린도, 친아들도 버리기로 했어! 그런데 넌 언제부터인지 김태하와 붙어먹고 있었잖아...”“네가 날 그렇게 배신하고도 나한테 미안한 게 하나도 없어?”강지현은 이도운을 보며 또다시 코웃음을 쳤다.눈앞의 남자가 어찌나 우스운지 한마디라도 더 반박할 마음조차 들지 않아, 그저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그 여유로운 태도는 칼날처럼 이도운의 가슴을 거듭 후벼 팠다.“강지현,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이도운의 목소리가 격한 감정에 가늘게 떨렸다.“눈만 감으면 돌아가시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눈을 뜨면 네가 날 속이던 순간들이 생각나고...”이도운이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탁자를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내가 죽기 전까진 절대 네가 편히 살게 두지 않을 거야!”강지현은 말없이 이도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에는 핏발이 섰고 얼굴 근육은 씰룩거렸다. 온몸이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했다.“이도운.” 강지현이 나직이 불렀다.“지금 네 모습이 뭐랑 똑같은지 알아?”이도운이 차갑게 노려보았다.“돈을 다 잃고도 판을 떠나지 못하는 도박꾼.”이도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강지현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날 미워해도 좋아. 복수하겠다면 그것도 네 자유야. 하지만 한 가지만 똑똑히 알아 둬.”강지현이 이도운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도운은 그 눈에서 분노든 흥분이든 광기든, 자신을 향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찾아내려 애썼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결같은 평온함만 있었다.마치 이도운에게 느끼는 감정은 지겨움과 경멸뿐이며, 그 이상의 관심은 조금도 줄 가치가 없다는 듯했다.“난 처음부터 끝까지 너한테 잘못한 게 없어.”이도운이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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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3화

이도운은 목소리를 낮추며 몸을 돌려 강지현을 올려다보았다.지금의 강지현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대학생 특유의 풋풋함도, 자신과 함께하던 시절의 수수한 아름다움도 사라졌다. 이제는 아무리 평범하게 입어도 감출 수 없는 우아함과 눈부신 매력이 흘러넘쳤다.언제나 완벽하고 당당해 보이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워져 사람의 넋을 빼놓았다.한때 자신이 애지중지 지키던 꽃은 결국 다른 남자의 곁에서 활짝 피어나고 말았다.“네 여자가 되라고?”그런 역겨운 말을 할 줄은 짐작했지만, 막상 듣고 나니 강지현은 속이 뒤집혔다.“그래. 내 여자가 돼.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어도 난 옛정을 생각하고 있어. 내 곁에서 얌전히 죗값을 치르면 주상 그룹은 놓아줄 수도 있지.”이도운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강지현의 굴곡진 몸매를 노골적으로 훑었다.머릿속에는 벌써 강지현이 자신의 아래 깔려 쾌락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떠올랐다.지난 수많은 낮과 밤 동안 이도운은 그 순간만을 꿈꿨다. 머릿속으로도, 꿈속에서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서로 사랑한다던 새 여자 친구는 어쩌고?”“그 여자는 내 아내가 되고, 넌 내 애인이 되는 거지. 아무 문제 없잖아.”이도운이 일어나 강지현에게 바짝 다가섰다. 강지현은 두 걸음 물러나다 탁자 모서리에 막혔다. 그러나 곧장 포크 하나를 집어 가슴 앞에 겨누며 거리를 벌렸다.포크 끝이 이도운의 가슴을 찔렀다. 이도운이 조금만 더 다가와도 깊숙이 박힐 판이었다.“이도운, 겁도 없네. 네 여자 친구가 Y국 왕족이라면서? 네가 이러는 걸 알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은 해 봤어?”이도운이 미간을 찌푸렸다.“난 이미 모든 걸 잃었어. 더 잃을 것도 없지. 하지만 넌 달라. 네 뒤에는 친구와 가족, 사랑하는 사람까지 있잖아... 네 행복 때문에 그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게 할 만큼 이기적이진 않겠지?”강지현이 잠시 얼어붙은 사이 이도운이 포크를 움켜쥐고 거칠게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이미 결심한 줄 알았는데.”이도운이 차갑게 말하고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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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4화

“그럼 실망하게 해 드려야겠네. 난 남한테 부탁하는 법을 잘 몰라서 말이야. 더구나 천해 그룹 정도로는 내가 고개 숙일 이유도 없고.”“내 명의로 된 자산만 수십조야. 미래 그룹까지 합치면 외국 기업 하나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까? 이도운, 정 그렇다면 어디 한번 붙어 보자. 해원시에서 누가 먼저 알거지가 되는지.”강지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기세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이도운도 알고 있었다. 천해 그룹이 Y국의 자본과 권력을 등에 업고 있다 해도 실제 영향력은 주상 그룹이나 미래 그룹보다 한참 못하다는 사실을.정면으로 붙는다면 그다지 유리할 게 없었다.게다가 이런 기업 간의 소모전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그의 진짜 목적이 아니었다.이도운이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은 오직 강지현뿐이었다.“그러니까 김태하가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거야?”“당연히 상관있지. 김태하가 아니었다면 넌 평생 나하고 협상할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도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거나 놓아주고 행복을 빌어 주는 것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거 알아?”강지현이 여광으로 이도운의 창백해진 얼굴을 살피며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바로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거야. 그리고 그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친 놈에게 반드시 직접 복수할 거야.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예상대로 이도운의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 그는 입꼬리가 몇 번 씰룩이더니 숨까지 거칠어졌다.“너...”강지현이 도발하듯 입꼬리를 올렸다.강지현은 이도운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런 인간은 감사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몰랐다.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야생동물처럼 본능만 남아 타고난 욕망과 악의에 끌려다닐 뿐이었다.하지만 그런 짐승의 약점을 찌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아무리 원해도 결국 손에 넣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가까스로 주워 모은 자존심마저 철저히 짓밟으면 그만이었다.이도운이 강지현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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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5화

그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이도운의 가슴에 꽂혀,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팠다.이도운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아니야, 못 믿어! 어차피 곧 죽을 김태하를 네가 얼마나 사랑한다는 건데? 너희는 그냥 서로 필요해서 맺어진 쇼윈도 부부일 뿐이야!”“못 믿겠으면 시험해 봐. 내가 정말 김태하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강지현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이도운이 낮게 내뱉었다.“좋아. 네 요구를 받아들이지.”“내일 당장 그놈과 이혼해...”“이도운, 이미 합의했잖아. 먼저 네가 약속한 일을 처리해. 그럼 나도 약속을 지킬 테니까.”강지현이 말을 끊었다. 차가워진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이도운은 다시 몸을 곧게 세웠다. 그는 피식 웃더니 강지현의 뒤로 다가가 갑자기 부드럽게 말했다.“헤어지는 건 언제나 괴로운 법이지. 네가 정 못 하겠으면... 내가 김태하한테 대신 얘기해 줄 수도 있어.”강지현이 홱 돌아보았다. 그제야 얼굴빛이 달라졌다.“어디 한번 해 봐!”“김태하한테 오늘 협상 내용을 조금이라도 알렸다간 전부 없던 일로 할 거야.”강지현의 반응을 보자 이도운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그러나 곧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온몸을 휘감았다.아까까지 강지현은 태연한 척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얼굴에 드러난 증오만큼은 진짜였다.강지현은 당장이라도 이도운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이도운은 서서히 웃음을 잃었다.이제는 자신을 증오하는 것마저 다른 남자 때문이었다.이번에는 강지현이 더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가 버렸다.문이 세차게 닫히는 순간, 이도운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넓은 룸은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했다.실내에는 밝은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어둠이 파도처럼 밀려와 순식간에 이도운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던 이도운은 그제야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다.오늘 주문한 음식은 전부 강지현이 예전에 좋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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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6화

그 미세한 움직임조차 김태하는 놓치지 않았다.다만 내색하지 않고 강지현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오래 기다렸어. 오늘은 정말 너무 늦었잖아.”강지현도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바쁘다고 말해 두었는데도 김태하는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너무 걱정할까 봐 강지현은 몇 번 건성으로 답장을 보냈다.그 뒤로 연락이 없기에 지쳐서 잠든 줄 알았다.그런데 김태하는 피곤한 몸을 억지로 버텨 가며 강지현을 기다리고 있었다.강지현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동안 안고 있던 김태하가 팔을 풀고 고개를 숙여 강지현의 눈을 바라보았다.“무슨 일 있어?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강지현이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임신한 몸으로 무리하면 안 되잖아.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김태하는 캐묻고 싶지 않았지만 강지현의 모습이 너무 걱정스러웠다.“회사 일 때문이야. 사실 별일 아니야.”“아직도 주시언 때문에 신경 쓰여?”“...”강지현은 대답하지 않고,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시 서 있다가 김태하를 밀어내고 가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먼저 쉬고 있어. 난 샤워 좀 할게.”김태하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강지현은 욕실 문을 닫아 버렸다.강지현이 자신을 피하는 듯하여 보이자 김태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강지현이 씻고 나왔을 때도 김태하는 잠들지 않았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강지현이 화장대 앞에서 평소처럼 차근차근 피부 관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지현아.”김태하가 불렀다.강지현은 돌아보지 않고 대답만 했다.“대체 무슨 일인데?”김태하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강지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이내 침대로 돌아와 옅게 미소 지었다.“아무 일도 없어. 괜히 신경 쓰지 마. 정말 피곤해서 그래. 얼른 자자.”“강지현.”김태하는 속에 쌓인 감정이 더는 참기 힘들었다. 손을 뻗어 강지현을 잡아당기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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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7화

이도운은 이서의 팔을 움켜쥐어 제 곁으로 끌어당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서가 말했다.“도운 씨... 저예요... 이서예요...”그러나 이도운은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깊이 잠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서의 손목만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이서는 누군가 머리에 얼음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 한참 뒤에야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강지현...”이도운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는 바로 그 여자였다.그날 밤 이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방금 본 사람은 자신이 알던 이도운이 아니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도운은 늘 절제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원래 오늘 저녁에는 함께 데이트할 예정이었지만 이도운이 친구를 만나야 한다며 중간에 약속을 취소했다.이도운은 늘 이서에게 세상 무엇도 누구도 이서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그러나 이서는 이해심이 많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충분한 자유와 믿음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밤새도록 이도운을 기다렸다.그런데 돌아온 이도운은 만취했을 뿐 아니라 다른 여자의 이름을 계속 불러 댔다.‘취중 진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혹시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여자일까? 그렇다면 오늘 밤 만나고 왔다는 친구는... 대체 누구였을까?’이서는 잠을 설친 탓에 다음 날 늦게 일어났다. 눈을 떴을 때 이도운은 이미 아래층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이서가 나타나자 이도운은 평소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자리에서 일어나 이서를 끌어안고 달콤하게 입을 맞췄다.이서는 웃으며 이도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자세히 살폈다. 어젯밤의 망연자실한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왜 그렇게 빤히 봐?”이도운이 부드럽게 물으며 이서의 뺨을 쓰다듬었다.이서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그냥 보고 싶어서요. 어젯밤 잘 잤어요?”밤새 고민했지만 이서는 결국 어젯밤 일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사랑하기로 한 사람이라면 온 마음을 다해 믿어야 했다.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특히 이도운처럼 복잡한 과거가 있는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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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8화

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도운은 다시 이서를 품에 안고 다정하게 달랬다.하지만 그런 위로를 받을수록 이서의 마음은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남자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마치 이런 질문을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표정도 지나치게 능숙했다.“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외출하기 전, 이도운은 자신의 넥타이를 매만져 주던 이서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내 친구들한테 널 제대로 소개해 주고 싶어.”이서는 이도운의 애정 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마음속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어쩌면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한 걸지도 몰랐다.‘도운 씨는 이렇게나 나를 아끼는데...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아?’그날 저녁, 해원시 중심가의 호화로운 회원제 레스토랑.이서가 도착했을 때 이도운의 친구들은 이미 모두 모여 있었다.남녀가 섞인 동창 무리가 이도운을 둘러싸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다가 이서가 들어오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이서 씨,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직접 뵈니 정말 아름답고 기품 있으시네요!”잠시 뒤 정장 차림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서둘러 이서를 맞았다.이서는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이도운이 일어나 직접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모두의 앞에 세워 소개했다.“내 약혼녀 이서야.”이도운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떠올랐다.말을 마친 이도운이 이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손가락을 깍지 꼈고 이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순식간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환호하며 두 사람을 놀렸다.누군가는 천생연분이라 외쳤고 누군가는 요란하게 휘파람을 불었다.이서가 평소 어울리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볼 수 없는 반응이었지만, 이서는 그 호들갑마저 즐거웠다.이도운의 친구들은 두 사람에게 가운데 자리를 내주었다. 이서를 형수님이라 부르며 차와 물, 과일까지 챙겨 주는 통에 이서는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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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9화

이도운은 이서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입에 올리지 말라고 미리 단단히 당부해 두었다.사람이란 현실적인 법이다. 예전에는 그저 친구였지만 이제는 성공한 이도운의 도움을 받고 싶어 다들 비위를 맞추려 했다.그런데 이 한마디가 분위기를 완전히 깨뜨렸다.다른 사람이 얼른 취한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수습했다.“과거는 무슨 과거야. 이 대표는 해외에서 사업을 키운 거지!”“맞아, 맞아. 해외가 훨씬 낫지! 해원시 같은 좁은 동네에서 뭘 하겠어. 밖으로 나가야 더 크게 날아오르지!”다른 이들도 앞다퉈 말을 거들었다.그러나 취한 남자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계속 떠들었다.“그러니까! 강지현이 뭐 대단하다고? 유산 좀 물려받았다고 설치는 촌뜨기지, 실력은 하나도 없잖아. 역시 진짜 대단한 건 이 대표야. 아무것도 없이 다시 일어섰잖아!”“...”아무리 말리려 해도 입을 막지 못하자 모두가 얼어붙었다.이도운의 안색도 나아지기는커녕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손목을 움직여 이서에게 주려던 과일을 탁자에 도로 내려놓았다.모두의 가슴이 철렁했다.오직 취한 남자만 여전히 이도운에게 술잔을 내밀었다.이서도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챘지만 이도운이 마음 아파하거나 기분 상하는 걸 원치 않아 얼른 그의 팔을 감쌌다.“괜찮아요. 도운 씨, 다들 말하는 것처럼 지난 일은 잊어버려요...”이도운은 이서를 바라본 뒤에야 남자가 내민 술잔을 받았다.“네 말이 맞아.”그러나 술은 마시지 않았다. 대신 종업원을 불러 그 남자 앞으로 비싼 술을 몇 병 더 주문했다.남자는 술을 무척 좋아했지만 술버릇이 나빴다. 이도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술을 잔뜩 시켰다. 이미 정신이 흐릿해진 남자는 신이 나서 병을 따는 족족 마셔 댔다.다른 사람들은 속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도운이 저 친구를 술로 죽일 작정인가?’저렇게 음흉하게 굴 바에는 차라리 화를 내고 내쫓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남자가 너무 취하자 누군가 말리려 했다. 하지만 이도운이 매서운 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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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0화

이도운은 짜증스럽게 룸 쪽을 흘끗 봤다.“갑자기 움직이면 부자연스러워. 이미 사람을 시켰으니 이틀만 더 기다려.”“그럼 공회 명단은?”강지현이 다시 물었다.“공회는 내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당장은 못 줘.”“약속을 어기겠다는 거야?”“당장은 안 된다고 했잖아!”이도운이 이를 악물었다.저 여자가 자신이 죽기를 바란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 상대해 줘야 했다.이도운 자신도 굴욕스러울 지경이었다.“하지만 난 기다릴 생각 없어. 오늘 밤까지 명단을 못 받으면... 내가 직접 찾아갈까?”강지현은 나직이 말하더니 이도운이 대답할 틈도 없이 그가 있는 레스토랑의 위치를 읊었다.“강지현!”이도운이 분노해 소리치려는 순간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룸에서 기다리던 이서는 자꾸만 문 쪽을 돌아보았다.조금 전까지 근처에 있던 이도운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이서가 일어나려 하자 옆에 앉은 동창이 말을 걸며 붙잡았다.그렇게 어느새 30분이 지났지만 이도운은 돌아오지 않았다.참다못한 이서가 밖으로 나가 레스토랑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도운은 없었다.전화까지 걸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다.그렇다고 그의 친구들을 두고 혼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사람들은 이도운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익숙한 듯 오히려 이서를 달랬다.“이서 씨, 이 대표는 원래 바쁜 사람이에요. 예전에도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나가곤 했죠. 이해해 주세요!”“맞아요. 저희가 같이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예전에도 그랬다고요?”이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전에도 여자 친구를 이렇게 혼자 두고 나갔나요?”“예전에는 강지현한테 이렇게 살갑게 굴지도 않았죠. 강지현은 말도 잘 듣고 얌전했는데도 말이에요. 남자가 사업에 마음이 가 있으면 여자한테 매달릴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마음이 식으니까 그 여자가 복수니 뭐니 하고 나섰죠. 같은 여자라는 게 창피할 정도예요!”아까 술에 취한 남자는 아직도 병을 끌어안고 거리낌 없이 떠들었다.이서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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