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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291 - Chapter 300

304 Chapters

제291화

주단우 자신도 왜 현다영 같은 사람 앞에서 이런 속마음을 털어놓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애 곁에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느슨해졌다.“대표님도 꼭 바라던 걸 이루실 거예요.”현다영은 조용히 말했다. 주단우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래, 누구 하나 완전히 무고한 사람은 없다.‘너도 그렇고, 주단우. 그리고 네게 대가를 치르게 할 나 역시 마찬가지야.’주단우가 꽤 취한 것 같자, 현다영은 손을 뻗어 그의 앞에 놓인 술병을 치우고 대신 따뜻한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김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가 문득 한층 부드러워졌다.“대표님, 많이 취하셨어요. 차 좀 드시고 진정하세요.”주단우는 흐릿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불쑥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현다영은 피하지 않았다. 그에게 붙잡힌 채 그대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이봐, 토끼. 오늘은 궁금한 게 참 많네.”주단우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만 부르던 호칭을 그대로 입 밖에 내뱉고 말았다.“그런가요? 아마 이렇게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한 게 정말 오랜만이라 그런가 봐요.”현다영이 낮게 답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남자의 몸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와 옷깃에 밴 우디 향수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현다영은 미간을 아주 미세하게 찌푸렸다. 가벼운 숨결이 그의 눈가와 콧대, 입가를 스치듯 흘렀다.“밀어내는 척하면서 사람 애태우는 거야?”주단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현다영, 난 너한테 관심 있어. 그러니까 더 떠보지 마.”그러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이며 숫자를 세었다.그리고는 세 개를 들어 보였다.“나랑 잘 생각 있으면... 석 달. 석 달 정도는 만나줄 수 있어. 내가 만났던 집안 좋은 여자들보다도 훨씬 긴 편이니까. 어때, 솔깃하지 않아?”취기가 오른 탓인지 말은 점점 더 노골적이었고 손목을 쓸어내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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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아무래도 그는 현다영을 잘못 본 모양이었다.주단우는 시선을 살짝 돌리며 그녀의 표정을 찬찬히 살폈다.현다영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였지만 드물게도 꽤 침착해 보였다.“그럼 넌 얼마나 원해?”잠시 후, 주단우의 맑고도 화려한 음성이 느리게 떨어졌다.“설마 내 아내라도 되고 싶은 거야?”그의 손끝이 그녀의 팔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렸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사람을 떠보는 유혹이 묻어 있었다.“저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주 대표님 같은 분이 하는 게임은 감당할 수 없어요.”현다영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꾹 누른 채,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히 대표님의 그 옛사람처럼, 산산조각 나고 싶지도 않고요.”“지금 너랑 내 얘기 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 끌어오지 마.”그 말이 떨어지자 주단우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 몸에 밴 느슨한 기운도 단번에 사라졌다.그는 한참 동안 현다영을 말없이 바라봤다.너무 오래 바라보는 바람에, 현다영은 잠깐 자신이 쓴 가면이 들킨 줄 알았다.하지만 남자는 끝내 아무 말 없이 손을 놓았다. 그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앞에 놓인 차를 단숨에 비워냈다.“가자.”주단우가 몸을 일으켰다.취기가 오른 탓에 자세가 약간 흔들렸다.“네가 데려다줘.”현다영은 비틀거리며 앞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녹음 화면을 종료했다.결국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주단우는 생각보다 훨씬 경계심이 강했다.그래도 상관없었다.현다영은 인내심이 있었다. 반드시 주단우를 바닥까지 끌어내릴 생각이었다.그가 원하는 모든 걸 잃고, 자신이 저질러온 추악한 일들을 끝내 후회하고 절망하게 만들고 말리라....이틀 뒤, F국 남서부 국경 인근의 산악 지대.해 질 무렵이었다.김태하는 오늘 하루도 쉴 틈 없이 바빴다.강지현과는 점심 무렵 한 차례 통화한 게 전부였다.산에서 호텔까지 돌아가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데다, 너무 늦어지면 연락할 틈도 없을 것 같아 그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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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서지아는 스태프들과 밤의 산 풍경 위주로 몇 장면만 촬영했다. 김태하의 차량 행렬도 지나가는 컷으로만 간단히 담겼다.팀이 함께 움직인 덕분에 촬영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끝났다.촬영이 끝날 즈음에는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김태하의 차가 막 출발하려던 순간, 서지아가 다가와 차 문을 두드렸다.최동윤이 창문을 내리며, 백미러로 뒷좌석에서 눈을 감고 있는 남자를 힐끗 확인한 뒤 정중하게 물었다.“서지아 씨, 무슨 일이십니까?”“차에 자리가 좀 모자라서요. 호텔까지 같이 타고 가도 될까요?”서지아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슬쩍 김태하 쪽으로 보냈다.“대표님, 마침 내일 일정도 차에서 같이 정리하면 될 것 같아서요. 따로 방에 찾아가서 번거롭게 해드리지 않아도 되고요.”그 말을 듣고서야 김태하가 눈을 뜨고는 최동윤에게 고개로 신호를 보냈다.최동윤이 문을 열자, 서지아는 자연스럽게 김태하 옆자리에 앉으려 했다.“앞자리 비어 있습니다.”남자가 낮게 잘라 말했다.김태하가 타고 있는 건 7인승 차량이었고 뒷좌석도 넉넉히 남아 있었다.서지아의 얼굴에 잠깐 어색한 기색이 스쳤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앞쪽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일부러 김태하와 두 칸이나 거리를 두었다.“이 정도면 괜찮으신가요?”김태하는 대답 대신 손짓으로 시작하라는 신호만 보냈다.차는 굽이진 산길을 따라 조용히 달렸다.차 안에는 작은 북라이트 하나만 켜져 있어, 어스름한 빛이 은은하게 퍼졌다.서지아는 태블릿을 꺼내 내일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김태하는 대부분 눈을 감은 채 듣고 있다가, 가끔씩만 눈을 떠 핵심적인 부분에 짧게 질문을 던졌다.말은 적었지만 정확히 핵심을 짚어냈다.“...마지막으로 이 부분인데요.”서지아가 태블릿을 김태하 쪽으로 돌렸다.“내일 아침에 일정이 하나 추가됐습니다. 새벽에 전망대 쪽 촬영이...”그때 차가 커브를 돌면서 그녀의 몸이 흔들렸고 태블릿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순간 김태하가 팔을 살짝 들었지만, 그녀를 붙잡는 대신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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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서지아는 그의 눈빛에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심지어 억지로 입꼬리까지 올려 보였다.“결국 너도 지현 씨를 그렇게까지 믿는 건 아니잖아? 그 정도 압박을 버텨낼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만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배신을 그렇게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마.”김태하의 목소리는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었다. 그 안에 실린 압박감에 서지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리고 난 단 한 번도 죄 없는 사람을 해친 적 없어.”최동윤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상사의 눈빛 아래 폭풍이 일렁이는 걸 본 그는 다급히 다시 한번 서지아를 제지했다.“서지아 씨, 이쯤 하시죠. 이번 일정은 출장입니다. 대표님 개인사까지 여기서 거론하시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돌아가 주세요.”서지아의 눈가가 붉어졌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또 울고 싶지도 않았고.그러니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난 널 배신한 게 아니야. 네가 너무 냉정했던 거지...”“내 입장은 이미 충분히 말한 것 같은데.”김태하가 낮게 말했다.“그리고 강지현과 나 사이의 일은...”그는 말을 끊고 불쑥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최동윤을 지나쳐 바로 서지아 앞까지 다가선 순간, 그녀는 오히려 더 선명한 공포를 느꼈다. 마치 금방이라도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눈빛이었다.서지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고 반사적으로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김태하는 아주 천천히 숨을 골랐다.깊은 밤의 찬 기운이 그의 목소리에까지 스며드는 듯했다.“그 사람이 끝내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그 말을 끝으로 그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최동윤은 그제야 겨우 숨을 돌렸다.진작부터 식은땀이 등에 흥건했는데, 김태하가 먼저 돌아서는 걸 보고 나서야 심장이 제자리를 찾는 기분이었다.“서지아 씨는 알아서 하시죠.”그 역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드물게 차갑게 한마디만 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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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고마워.”“갑자기 왜 이렇게 예의 차려?”강지현은 눈을 비비다가, 문득 남자의 목소리에 평소와는 다른 기색이 묻어 있다는 걸 알아챘다.김태하가 낮게 웃었다.“그냥...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날 기다려준 사람이 한 번도 없었거든.”“그래?”강지현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그럼 앞으로는 내가 그 역할 맡을게. 네가 좋으면 그걸로 됐어.”“지현아...”김태하가 문득 그녀를 불렀다.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끝에 물었다.“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게 의무감 때문이야? 아니면... 정말 그만큼 날 좋아하는 거야?”조금 전까지만 해도 졸음이 남아 있던 강지현은 그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의무라면 잘해주는 게 맞긴 하지. 그래도...”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아주 작게 덧붙였다.“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이렇게 못 해.”마지막 말은 하고 나서 본인이 더 민망할 정도였다. 정말이지 김태하는 왜 이렇게 자꾸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지...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몇 초 뒤, 김태하의 낮고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네가 한 말, 평생 기억할 거야.”부드러운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그 말에는 사람 마음을 곧장 건드리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강지현은 가슴 한쪽이 살짝 간질간질해졌다.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김태하가 다시 말했다.“이제 얼른 자.”“응, 너도 너무 늦지 않게 쉬어.”강지현이 조용히 말했다.“내일 너 기다리고 있을게.”“그래.”전화를 끊고 나자 김태하의 눈빛에는 다시 온기가 차올랐다.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여기 일을 하루빨리 끝내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그 집으로 돌아가는 것....다음 날 아침, 산악 지대 전체가 옅은 안개에 잠겨 있었다.날씨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구름도 낮게 깔려 있었다.그런데 오히려 그런 황량하고 묵직한 색감이야말로 함께 힘을 모아 발전해 나간다는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와 더 잘 어울렸다.김태하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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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조심하세요! 낙석입니다!”누군가 다급하게 외쳤다.김태하가 뒤를 돌아본 순간,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옆 위쪽 비탈에서 흙더미를 휩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은 놀라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그런데 낙석이 떨어지는 방향 바로 아래,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겁에 질린 채 그 자리에 넘어져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흙과 돌을 멍하니 올려다볼 뿐,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한 듯했다.“위험해!”여자아이는 김태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거의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돌려 곧장 아이 쪽으로 뛰어들었다.“김태하!”앞서 달아나던 서지아가 뒤를 돌아보다 그 장면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대표님!”최동윤 역시 얼어붙었다.하지만 너무도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 앞에서 그는 공포에 짓눌린 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다른 경호원들과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모두가 그 아이를 봤지만 김태하만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들었다.바위가 굴러떨어지는 굉음 속에서 김태하는 아이를 있는 힘껏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등을 마지막 방패처럼 세운 채, 옆으로 몸을 던졌다.쾅!귀를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날카로운 거대한 바위가 김태하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 바닥에 처박혔고, 튀어 오른 자갈과 파편들이 총알처럼 그의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엄청난 충격에 눈앞이 새까매졌다. 그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땅바닥에 세게 나뒹굴었다.극심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을 집어삼켰고 따뜻한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며 시야를 번졌다.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대표님!”흙먼지가 자욱하게 흩날리는 가운데, 최동윤과 경호원들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들은 맨손으로 김태하 몸 위를 덮친 작은 돌덩이들을 다급하게 치워냈다.김태하의 품 안에 단단히 보호받고 있던 여자아이는 극심한 공포와 충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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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정오 무렵, 이씨 가문 본가.백하린은 이윤후를 데리고 병원에서 돌아왔지만, 얼굴에는 피로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엄마, 아빠는 많이 피곤한 거예요? 이틀째 계속 자고 있잖아요!”이윤후는 고개를 들고 위층 방 쪽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궁금한 듯 백하린에게 물었다.백하린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린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한참 뒤에야 그녀는 아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가 많이 지쳐서 그래. 조금 더 쉬면 괜찮아질 거야. 요즘 집안에 일이 많으니까, 우리 윤후가 더 씩씩하고 말 잘 들어야 하는 거 알지?”이윤후는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백하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집안 분위기가 계속 좋지 않다는 것쯤은 어린애인 그도 느끼고 있었다. 분명 또 강지현 그 나쁜 여자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나중에 자기가 크면 꼭 아빠랑 엄마를 도와 그 나쁜 여자를 혼내주겠다고 마음먹었다.백하린은 이윤후를 하인에게 맡긴 뒤에야 위층으로 올라가 이도운을 찾았다.이틀 사이 이규진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후유증이 심해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형편이었다.문수정은 울고 또 울며 하루 종일 병상을 지켰다. 하룻밤 사이, 사람을 몰아붙이던 그 독한 귀부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초췌하고 초라한 여자만 남아 있었다.이민지도 산후조리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라 아버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갔다.문수정과 교대로 곁을 지키기 시작한 덕분에 백하린은 더 이상 병원에 상주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 남아 이윤후와 권미숙을 돌보고 있었다.그리고 또 하나, 이도운도 있었다.이도운 역시 충격이 컸다. 이규진이 깨어난 뒤로 그도 열이 올라 이틀째 앓아누운 상태였다.강지현은 늘 사람의 가장 약한 곳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경 그룹을 향한 그녀의 손길은 이제 대놓고 숨통을 끊겠다는 듯 집요했다.이규진이 중병으로 쓰러진 틈을 타, 어디서 끌어왔는지도 모를 거액의 자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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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하지만 이도운의 머릿속은 온통 강지현 생각뿐이었고 이 순간만큼은 이성도 남아 있지 않았다.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차라리 회사 앞에서 기다리면 됐다. 강지현이 결국 지나갈 수밖에 없는 길목에서 무작정 버티고 서 있으면 그만이었다.꼭 다시 그녀를 만나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이번만큼은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회사를 되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씨 가문 때문도 아니었다. 오직 그녀를 붙잡기 위해서.그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마음이었다. 자신조차 쉽사리 놓지 못하는데, 강지현이 어떻게 그렇게 단번에 끊어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이번에는 이도운의 예상이 맞았다.요 며칠 강지현은 이경 그룹 문제를 마무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전에는 주상 그룹에 있다가, 오후가 되면 곧장 이경 그룹으로 오곤 했다.그리고 마침내 회사 정문 앞에 강지현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이도운은 마치 죽어가던 사람에게 강심제를 꽂아 넣은 것처럼 벌떡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지현아!”그는 몇 걸음 만에 강지현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기도 전에 회사 주변에 배치된 경비원들에게 가로막혔다.강지현과 동행하던 경호원 한 명도 곧바로 그녀 앞을 막아섰다.강지현은 뒤를 돌아, 정문 앞 계단 아래에 선 이도운을 내려다봤다.불과 이틀 만이었다. 그런데 이도운의 모습은 눈에 띄게 망가져 있었다. 늘 체면과 겉모습을 챙기던 사람이 오늘은 수염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였다.셔츠 깃은 흐트러져 있었고 양복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온몸에서는 기운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피로와 무기력이 묻어났다.실제로도 그는 고열이 막 내린 뒤라 몸이 아직 성하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다 차가운 공기까지 들이마신 탓에 누가 팔이라도 한 번 건드리자 곧바로 허리를 숙인 채 기침을 쏟아냈다.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맺혀 있었다.그런데도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애원으로 가득 찬 눈으로 강지현만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부탁이야. 잠깐만, 정말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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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애초에 이씨 가문도 백하린을 내 아내로 받아들인 적 없어. 걔가 원하든 말든, 내 마음까지 바꿀 수는 없어. 난 너랑 함께 있고 싶어. 윤후는 백하린한테 두면 돼. 우리는 우리만의 아이를 낳으면 되잖아.”지금의 이도운은 반쯤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어떻게든 강지현을 다시 붙잡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정말 뭐든 내놓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다 들었죠, 백하린 씨?”하지만 이도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지현이 피식 웃었다.“당신 남편, 지금 당신이랑 이혼하겠다고 아주 단단히 마음먹었네요.”그 말에 이도운은 순간 멍하니 굳었다.강지현의 시선이 제 어깨 너머 어딘가에 꽂혀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는 급히 뒤를 돌아봤다.그곳에는 어느새 백하린이 서 있었다.백하린은 이도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지현의 조롱이 귀에 들어올 겨를도 없이, 그저 온몸이 찢어지듯 아팠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절망이 조용히 차올랐다.이것도 결국 제 업보일까. 처음 이도운과 얽히기 시작한 것도 이철호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그 늙은이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저주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도운의 지독한 집착과 사랑을 끝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믿었다.죽을 만큼 애써서 얻어낸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이렇게도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니.“하린아...”이도운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목은 꽉 막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정말 나랑 이혼할 거야?”백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윤후까지 버리고 결국 널 망가뜨린 그 독한 여자한테 가겠다는 거야?”침착하게 말하고 싶었다. 끝까지 체면만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입을 열자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려 나왔다.이도운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그는 강지현을 한번 바라봤다. 차갑고 조소 어린 눈빛이었다.이내 다시 백하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한 사람은 한때 모든 걸 버리고서라도 붙잡고 싶었던 여자였고, 다른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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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김태하가 하루 종일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을 리 없었다.강지현은 어쩔 수 없이 최동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연달아 걸었지만 최동윤 역시 받지 않았다.그러다 한 시간쯤 뒤, 최동윤에게서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죄송합니다, 지현 씨. 방금 전까지 업무가 있어서 연락을 못 받았습니다. 대표님 쪽에 조금 급한 상황이 생겨 당분간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직접 연락드릴 여유도 없으신 상황이라, 정리가 되는 대로 대표님께서 직접 연락드릴 겁니다.]최동윤의 답장을 받고도 불안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이상했다.김태하는 오늘 돌아오겠다고 분명 말했었다. 아무리 일이 생겼다고 해도, 이 정도로 늦어지면 최소한 직접 한마디는 했을 사람이었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연락할 틈조차 없는 걸까.강지현은 김태하에게 걸었던 열 통의 전화와 답이 오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여러 개의 메시지를 바라봤다.그럴수록 마음속 불안은 점점 더 짙어졌다. 다시 최동윤에게 메시지를 보내 상황을 물었지만 이번에는 답이 오지 않았다.정말 중대한 일이 벌어진 거라면 계속 캐묻는 것도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이상했다.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안한지, 자신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강지현은 밤새 온갖 생각에 시달렸고 결국 깊이 잠들지 못한 채 몇 번이나 뒤척였다.다음 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눈을 떴다.가장 먼저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김태하와의 대화창은 여전히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서 멈춰 있었다.강지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침 여덟 시가 되자마자 다시 최동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강지현이 아침 일찍 차를 몰고 주상 그룹 본사에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야, 최동윤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내용은 어젯밤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벨이 오래 울린 끝에야 최동윤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유난히 낮았다. 어딘가 불안하고 괜히 눈치를 보는 기색도 묻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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