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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301 - Chapter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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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이 담긴 다섯 장의 사진이 강지현의 눈앞에 펼쳐졌다.사진 속 남자가 김태하라는 사실을 그녀는 단번에 알아차렸다.그와 함께 있는 사람은 서지아였다.두 사람이 나란히 차에 오르는 모습부터 깊은 밤 호텔 입구에서 밀착해 서 있는 순간, 그리고 산간 지역에서 손을 잡은 채 다정하게 몸을 맞댄 장면까지.멀리서 찍힌 탓에 구도는 비슷했고, 마치 기자가 몰래 촬영한 파파라치 컷 같았다.누가 보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연인’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강지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는 다시 한번 기사 제목을 훑어내렸다.[서지아, 공익 활동 중 의문의 재벌가 대표와 산행. 재결합설 솔솔?][완벽한 옆태의 남성을 향한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그동안 온라인상에서는 은퇴 후 서지아를 슬럼프에 빠뜨린 ‘전 남자친구’의 정체를 두고 추측이 난무했었다.이번 보도가 터지기 무섭게 세간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김태하에게로 쏠렸다.김태하는 국제무대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미래 그룹 또한 상당히 베일에 싸인 재단이었다.그렇기에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 자체가 드물었으며, 간혹 모습을 보이더라도 극소수만이 참석하는 최상위 국제 행사에 한정될 뿐 대외적으로 홍보되는 법이 없었다.그런 남자가 서지아와 나란히 서서 밀착해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고 희귀한 장면이었다.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소재였다.게다가 김태하의 비주얼은 압도적이었다.화질이 선명하지 않은 사진 속에서도 훤칠한 피지컬과 찰나에 포착된 분위기만으로 독보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세상은 언제나 선남선녀의 조합에 열광한다.옆모습 하나만으로 웬만한 톱스타들을 압살하는 김태하의 미모는 네티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물론 일각에서는 서지아를 향해 “남자에 눈이 멀어 인생을 허비한다”,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연애질이냐”라며 그녀의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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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바로 그때, 벨 소리가 울리자 강지현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짧게 통화를 마친 그녀는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현재 주상 그룹은 10년의 개발 기간과 3년의 가혹한 테스트를 거친 신제품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연구팀의 피와 땀이 어린 이 회심작은 며칠 내로 진행될 전담 요원들의 검수를 앞둔 상황이며, 여러 국제 투자사와의 본계약 체결도 예정되었다.강지현은 그룹의 대표로서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해야 했다.특히 제품 검수는 기업 기밀은 물론 의약품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라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될 수 없다.회의가 시작되었지만 마음은 자꾸만 겉돌았다.강지현은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붙잡느라 애를 먹었다.머릿속에는 김태하와 작별하던 순간이 맴돌았다.그녀의 손을 꼭 쥐고 하루 세 번은 목소리를 들려주겠다며,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노라 다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자신을 믿고 기다려 달라고, 돌아오면 정식으로 식을 올리고 서로에게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주자고 약속했다.절절한 눈동자에 일렁이던 진심만큼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강지현 역시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과거 이도운의 끈질긴 구애에 흔들렸던 고마움이나 의존과는 근본부터 결이 다른,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순수한 사랑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타인에게서 구걸하듯 안도감을 얻고 싶지 않았다.김태하를 향한 감정은 그저 순수한 동경이자 설렘, 그리고 연모였다.단지 그와 손을 맞잡고 남은 생을 함께 마주하고 싶을 뿐이었다.앞에 어떤 길이 놓여 있든 같이 걷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다만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었다. 적어도 자신을 속이는 사람만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대표님?”조심스레 부르는 소리가 몇 차례 반복되고서야 강지현은 정신을 차렸다.자신이 또다시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화면에는 그녀의 결단을 기다리는 제안서가 띄워져 있었다.강지현은 순식간에 페이스를 되찾고는 서류를 훑어내리며 몇 가지 핵심적인 주의 사항을 짚어냈다.회의를 마치고 복도를 지나가던 중,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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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현다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밀려드는 씁쓸한 기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강지현이 담담한 겉모습 뒤로 속내를 감추는 데 얼마나 능숙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과거 이도운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조차 회사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을 유지했었다.마음 한구석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지금도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수년간 믿어온 감정이 기만과 배신으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복수를 완수하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을 담담히 내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그런 강지현을 진심으로 경외했다.자신은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장 분노를 가라앉히기 힘든데.현다영은 강지현이 또다시 같은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기만을 바랐다.남자 하나에 인생을 거는 것은 너무나도 부질없는 짓이다.마치 그녀의 친구처럼. 누구보다 집안도 좋고 앞날도 창창해 훨씬 더 눈부신 삶을 살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강지현이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걱정은 그칠 줄 몰랐다.지나치게 강한 것은 도리어 부러지기 쉬운 법.오랜 세월 홀로 버텨온 강지현에게 가장 위태롭고 취약한 순간 나타난 김태하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심지어 김태하를 보고 있으면 자신조차 사랑이라는 감정에 잠시나마 설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지현 언니.”“응?”강지현은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아까 단톡방에 올라온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잖아요. 그리고 전 언니 판단을 믿어요.”고개를 들자 촉촉이 젖은 눈망울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현다영이 보였다.그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새어 나왔다.“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난 괜찮아. 김태하가 서지아와 다시 엮일 만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현다영은 자신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기에 강지현도 솔직히 털어놓았다.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슴 한구석이 옥죄어오는 괴로움을 느꼈던 건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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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언니를 사지에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요.”현다영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주단우와 너무 깊게 엮일 생각은 없어요. 그자가 저한테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는 걸 이용해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약점을 잡거나 정보를 캐내면 되니까. 그리고...”그녀는 말을 아꼈다. 친구의 비극까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주단우가 저지른 파렴치한 짓들은 죽어 마땅한 죄였으나, 동시에 절친의 명예도 지켜줘야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또 뭐?”“저 그 사람 정말 싫어해요. 내 손으로 직접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싶어요.”현다영의 목소리에 난생처음 보는 살기가 서렸다.강지현은 내심 적잖이 놀랐다.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주단우에게 당했던 수모가 그녀에게 이토록 처절한 증오심을 심어주었을 줄이야.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주단우는 그만큼 질 나쁜 인간이었고, 현다영같이 젊고 순수한 아가씨가 그런 비열한 모욕을 온전히 견뎌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였다.“다영아, 걱정 마. 주단우는 내가 꼭 응징할게. 하지만 그런 부류의 인간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쓰레기 같은 남자와 엮이다 보면, 결국 가장 크게 다치는 건 너 자신이 될 거야.”강지현은 현다영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며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다독였다.다만 그녀의 간곡한 설득이 무색하게도 현다영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언니가 저 아껴서 하시는 말씀인 거 잘 알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거든요. 언니는 이미 저한테 과분할 정도로 잘해주셨어요. 오늘 미리 말씀드리는 건, 나중에라도 오해하는 일이 생길까 봐... 앞으로 주단우랑 아무리 가깝게 지내도 전 언제나 언니 편이라는 거 꼭 알아주셔야 해요.”그러고는 강지현이 다시 만류하기도 전에 말을 마치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갔다.강지현은 차마 그녀를 붙잡지 못한 채 망연자실한 기분에 휩싸였다.‘다영이가 어쩌다 주단우 같은 인간이랑 엮일 생각을 한 거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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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주병찬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김태하 사고당했어.”강지현의 몸이 미세하게 휘청였다. 그녀는 급히 테이블을 움켜쥐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사고라니요? 대체 무슨...”주병찬은 차마 강지현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산간 지역에서 예기치 못한 중상을 입었다더구나.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아. 만약 이대로 버티지 못한다면 당장 네 정략결혼부터가 문제 아니겠니.”“버티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강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주병찬의 말을 가로챘다.김태하가 잘못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 머릿속으로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그날 오후.엄경미가 막 귀가했을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주단우를 발견했다.그녀는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고 뒤를 따르던 비서를 돌려보냈다.이내 들고 있던 가방과 외투를 주단우에게 건네주었다.“일은 잘 처리됐니?”“네, 다 끝났습니다. 엄마 예상대로 김씨 가문 쪽에서도 슬슬 첩보를 입수했을 겁니다.”주단우가 나지막이 대답했다.며칠 전, 엄경미가 비밀리에 연락책과 접촉해 김태하의 상세 일정을 넘기라고 지시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불길한 전조를 읽고 있었다.비록 경영 수완은 내세울 게 없었으나, 흑백 양도를 가리지 않고 뻗은 그녀의 인맥만큼은 가히 독보적이었다.특히나 국제적인 무대라면 더더욱 그랬다.주단우조차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승호와 결혼하기 전 엄경미는 국제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과 내밀한 관계였다.그 상대는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엄경미는 합법적인 수단이 막히면 언제나 정공법 대신 변칙수를 썼다.과거 주승호가 주상 그룹을 앞세워 해원시 제약 업계를 독점하던 시절에도, 그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컸다.서재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근 주단우가 보고를 이어갔다.김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김태하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지순옥과 은주희가 사고 현장으로 향했고, 김무언은 현재 국제 정상회의 참석 중이라 아직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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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엄경미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강지현이 김태하를 위해 자리를 비운다면, 그것은 정확히 엄경미가 설계한 함정에 빠지는 꼴이었다.반대로 강지현이 김태하의 일을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았다. 김씨 가문 사람들 역시 그녀의 냉정함에 등을 돌릴 터였다.결국 김씨 가문이라는 방패막이를 잃게 된 강지현을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강지현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 끝은 이미 정해진 파멸뿐이었다.주단우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오만하기 짝이 없는 강지현이라도 엄마의 상대는 되지 못하네요. 본인도 조만간 후회하겠죠. 진작 엄마 말씀 듣고 주상 그룹의 후계권을 포기하지 않은 걸 말이에요.”엄경미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주단우를 쓱 훑어보았다.“가서 쉬거라.”“네.”주단우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문이 닫히자마자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머릿속으로는 문득 강지현이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렸다.‘엄경미 같은 여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주 대표님을 입양했을 리 없잖아요.’...한편, 강지현은 비서에게 가장 빠른 항공편을 예약하라고 지시하며 곧장 김태하에게 달려갈 채비를 했다.주병찬에게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머릿속은 오직 당장 김태하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의 안위와 상태를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만약 주병찬의 말이 과장된 것이고 부상이 그리 심각한 게 아니라면 분명 자신에게 전화할 텐데.연락이 닿지 않던 초조한 시간과 최동윤의 미심쩍은 회피가 떠오르자, 걷잡을 수 없는 공포가 강지현의 이성을 송두리째 집어삼켜 더는 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주병찬과 대화를 이어갈 여력조차 사라진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바닥으로 주저앉을 뻔했다.주병찬은 충격에 휩싸여 넋이 나간 강지현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예상보다 훨씬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그녀의 모습에 서둘러 위로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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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설령 주병찬이 강지현을 조카딸처럼 아끼려 한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가까이하지 않을 터였다.주병찬은 엄경미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결국 승낙했다.이제 와서 두 여자 사이의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기엔 기력이 부쳤고, 무엇보다 엄경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난적이었다.그에게 주시언만이 삶의 전부였기에 몸을 사리며 제 안위만 보전할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반면, 강지현은 김태하라는 거대한 그늘에서도 끝내 엄경미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타고난 팔자라고 치부해 버렸다.그렇게 스스로를 모질게 설득했지만 막상 강지현의 처참한 몰골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그는 강지현에게 티슈를 건네며 위로했다.“지현아, 너무 걱정하지 마. 하늘이 도울 테니 김태하도 분명 무사할 거다. 무엇보다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그러다 몸 상할라.”주병찬의 목소리에 강지현은 무언가 생각난 듯, 초점이 흐릿하던 눈동자에 찰나의 생기가 돌아왔다.“큰아버지, 아시다시피 지금 주상 그룹은 더없이 중요한 시기잖아요. 회사 쪽은 제가 어떻게든 살피겠지만 이번 프로젝트에는 큰아버지의 지분도 걸려 있지 않아요? 부디 저 좀 도와주세요. 절대 무슨 일이 생겨선 안 돼요.”강지현은 지금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선택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신약 출시라는 중대한 과업을 목전에 둔 상황이 아니던가.물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라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했다.하지만 최종 검토와 승인만큼은 반드시 그녀가 직접 확인하고 서명해야 하는 절차였다.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무작정 자리를 비우게 된 지금, 주변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주병찬밖에 없었다.그 역시 주씨 가문의 일원인데다 주상 그룹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든든한 동지였기 때문이다.“걱정 말거라, 내가 잘 챙기마.”주병찬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꿀렁였다.찔리는 마음으로 내뱉은 대답이었으나, 강지현은 그의 얼굴에 스치는 찰나의 흔들림을 알아챌 여유가 없었다.그저 간절한 고마움을 담아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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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분풀이가 덜 되셨다면, 제가 손을 좀 써서 연씨 가문 그 계집애가 고생을 더 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제수씨.”주병찬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연씨 가문이 어떻게 되든 난 상관없어요. 단지 시언이가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랄 뿐.”“아주버님, M국 쪽 협상은 제가 알아서 다 조치해 뒀어요. 우리를 협박한 연씨 가문 놈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건 아니죠? 굳이 그쪽 자존심까지 챙겨줄 이유 전혀 없잖아요. 안 그래요?”엄경미의 말에 주병찬은 머릿속이 하얘졌다.그제야 자신이 철저히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엄경미가 연씨 가문을 좌지우지할 정도라면, 주시언을 M국에서 빼내는 것쯤은 말 한마디면 끝날 일이었다.하지만 조용히 해결하는 대신, 오히려 연씨 가문과 정면충돌을 선택하며 판을 키웠다.이건 도움을 주기는커녕 완전히 진흙탕 싸움으로 만드는 짓이었다.하지만 명분만큼은 완벽했다. 주시언의 복수를 대신하고 가문의 위신을 세워준다는 허울을 쓰고 있었기에 그녀를 탓할 구실조차 마땅치 않았다.결국 주시언의 생사는 여전히 엄경미의 손아귀에 쥐여 있는 셈이었다.“제수 씨나 나나 알 만한 사람들끼리 왜 이럽니까. 대체 목적이 뭐죠? 지금 나를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주병찬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호통쳤다.“아주버님,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걱정 마세요, 일주일 안에 시언이는 반드시 무사히 귀국할 테니까. 다만...”엄경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나긋해졌다.“요즘 주상 그룹 신약 출시 건으로 바쁘잖아요. 아주버님께서 작은 도움 하나만 더 주셨으면 해서.”“적당히 좀 하지? 주승호 하나 없다고 이 집안이 우스워 보여요?”격분한 주병찬은 충동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엄경미가 감히 자신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협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처음 주승호에게 시집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현모양처의 전형이자, 유순하고 온화한 가문의 영애 그 자체였다.하지만 주병찬은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보통내기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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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하지유는 주시언의 불행이 못내 즐거웠다.이제 제멋대로 하원영을 짓밟아도 그녀를 보호해 줄 방패막이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하지만 하원영이 주시언의 소식을 듣자마자 자존심도 내팽개친 채 제 앞에 무릎을 굽히며 매달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사실 하지유도 주시언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닥쳤는지는 알지 못했다.그저 하원영이 간절해질수록 더 애타게 할 심산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결국 그녀가 기댈 곳은 주병찬이었다.그가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본래 성격대로라면 남의 냉대를 견디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았고, 주씨 가문에 제 발로 기어들어 와 수모를 자처하는 짓 따위는 죽어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네가 반가운 손님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 잘 알 텐데. 이만 실례하지. 배웅은 생략하마.”주병찬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기에 간신히 인내심을 쥐어짜며 최소한의 예의를 갖췄다.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뜨려 했다.“방금... 엄경미랑 통화하신 거죠? 제 짐작이 맞다면, 그 여자 시언 오빠를 빌미로 아버님을 협박하고 있지 않나요?”하원영은 지금 이 순간 주병찬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따질 겨를도 없이 그가 감추려던 치부를 들춰냈다.주씨 가문의 일에 연루된 사람치고 끝이 좋았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하원영에게는 더욱 뼈아픈 사실이었다.주병찬의 몸이 움찔했다.하원영을 돌아보는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이더니, 이내 형언할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을 뿜어냈다.“엿듣지 말아야 할 일은 잊어버리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이건 내가 원영 씨한테 주는 마지막 충고니까.”“저에 대한 오해가 깊으신 거 잘 압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제발 이것만은 믿어주세요. 저 역시 시언 오빠가 잘못되는 건 원치 않아요. 오늘 여기 온 이유도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 해서예요.”하원영은 용기를 내어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손바닥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가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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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엄경미가 강지현을 해치려 한다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하원영은 누구보다 그 내막을 잘 알았다.주병찬이 엄경미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면 이유는 오직 강지현뿐일 것이다.물론 강지현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애초에 그녀에게 친구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타인의 호의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고, 진 빚은 반드시 청산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게다가 강지현은 주시언의 동생이기도 했다.하원영이 아는 주시언은 가정의 화목을 중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삼을 리 없었다.“뭘 하려는 거지?”하원영의 태도가 농담처럼 보이지 않자 주병찬의 표정도 한결 진지해졌다.“아버님, 제게 사흘만 시간을 주세요. 주시언은 제가 구하겠습니다.”하원영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결연함을 대신했다.이내 주병찬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새벽녘, 서남쪽 접경지대의 공항.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강지현은 최동윤에게 연달아 문자하고 전화했다.최동윤은 그녀가 이미 상황을 눈치 챌 줄 몰랐고,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대표님께서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셨어요. 하지만 고비는 넘기셨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최동윤은 강지현을 안심시킨 뒤 곧바로 위치를 전송했다.현장에는 김씨 가문 사람들도 와 있는 듯했다. 지순옥은 여독을 이기지 못해 잠시 자리를 비웠고, 전화를 받은 건 은주희였다.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고, 분명 한참을 울었을 테지만 강지현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감동과 우려가 뒤섞인 말투로 애써 담담한 위로를 건넸다.통화를 마친 강지현은 차 안에서 더는 참지 못하고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떨리는 어깨를 보며 비서 역시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하지만 위로의 손길을 내밀려다가도 대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어쩌면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위로일지도 모른다.강지현은 미칠 것 같은 불안과 초조함에 짓눌려 있었다.비보를 접하고 길을 나서기까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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