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주병찬이 강지현을 조카딸처럼 아끼려 한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더는 가까이하지 않을 터였다.주병찬은 엄경미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결국 승낙했다.이제 와서 두 여자 사이의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기엔 기력이 부쳤고, 무엇보다 엄경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난적이었다.그에게 주시언만이 삶의 전부였기에 몸을 사리며 제 안위만 보전할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반면, 강지현은 김태하라는 거대한 그늘에서도 끝내 엄경미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타고난 팔자라고 치부해 버렸다.그렇게 스스로를 모질게 설득했지만 막상 강지현의 처참한 몰골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그는 강지현에게 티슈를 건네며 위로했다.“지현아, 너무 걱정하지 마. 하늘이 도울 테니 김태하도 분명 무사할 거다. 무엇보다 네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그러다 몸 상할라.”주병찬의 목소리에 강지현은 무언가 생각난 듯, 초점이 흐릿하던 눈동자에 찰나의 생기가 돌아왔다.“큰아버지, 아시다시피 지금 주상 그룹은 더없이 중요한 시기잖아요. 회사 쪽은 제가 어떻게든 살피겠지만 이번 프로젝트에는 큰아버지의 지분도 걸려 있지 않아요? 부디 저 좀 도와주세요. 절대 무슨 일이 생겨선 안 돼요.”강지현은 지금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선택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신약 출시라는 중대한 과업을 목전에 둔 상황이 아니던가.물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라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했다.하지만 최종 검토와 승인만큼은 반드시 그녀가 직접 확인하고 서명해야 하는 절차였다.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무작정 자리를 비우게 된 지금, 주변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주병찬밖에 없었다.그 역시 주씨 가문의 일원인데다 주상 그룹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든든한 동지였기 때문이다.“걱정 말거라, 내가 잘 챙기마.”주병찬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꿀렁였다.찔리는 마음으로 내뱉은 대답이었으나, 강지현은 그의 얼굴에 스치는 찰나의 흔들림을 알아챌 여유가 없었다.그저 간절한 고마움을 담아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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