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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451 - Chapter 460

472 Chapters

제451화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꾹 누르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응.”곁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든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긴장이 완전히 풀리는 순간이었다.처음 지순옥에게 김태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그는 남몰래 골머리를 앓았었다.마음의 상처는 치유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누구나 그렇듯, 상처는 영원한 상처로 남게 된다. 난데없이 생겨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영영 사라지지도 않는다.치유란, 결국 그 상처로부터 스스로 걸어 나오는 수밖에 없다. 본인이 거부한다면 고통은 그저 끝없이 반복될 뿐이었다.김태하는 PTSD를 앓고 있어 완벽한 회복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애써 외면하지 않고 감정을 마주하기만 한다면, 어떤 문제든 풀어낼 수 있었다.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헤어 나오지 못할 고통 역시 없는 법이니까.분명 심리 검사지를 작성하는 자리였는데, 어느새 두 사람의 달콤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검사가 끝난 후, 이든은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가 김태하가 처음 발작을 일으켰던 당시의 일을 물었다.다행히 이번에 김태하는 한결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받아들였다.그가 처음으로 이성을 잃고 사람을 다치게 했던 건, 은주희 때문이었다.어느 가족 모임 자리에서 은주희가 친척들과 크게 부딪치는 일이 있었다.그녀는 몸이 약해 아이를 가질 수 없었고, 김무연과 결혼한 뒤 졸지에 김태하의 새어머니가 되었다.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 상대는 은주희에게 ‘새엄마', ‘애도 못 낳는 여자'라며 모욕을 주었다.그건 은주희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른 말이었다.평소 성격 좋던 그녀도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맞서 싸웠다.김태하는 평소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라 은주희에게도 늘 예의를 갖춰 대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함께 지내며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녀를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런 은주희가 모욕당하는 걸 봤는데, 참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그는 그 자리에서 상대방의 얼굴에 술을 끼얹었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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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이든은 강지현이 걱정하는 바를 이해한다는 듯, 눈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그럼...”“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듯이, 김 대표님은 이성을 잃은 순간에도 강지현 씨만큼은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강지현은 멍하니 굳어졌다. 무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이든은 다시 김태하를 바라보았다.“김 대표님, 그 일들은 전부 대표님 탓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대표님은 어머니를 지켰고 사랑하는 사람도 지켜냈습니다. 사람은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이성을 잃기도 하지만, 반대로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상처 입히는 일을 멈추기도 합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게다가 이제는 곁에 지켜주고 싶은 사람도 생겼으니, 대표님은 분명 조금씩 더 좋아지실 겁니다.”이든의 말이 끝나자 방 안에는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하지만 이번 침묵에는 차가운 무게 대신 따뜻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강지현은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 어린 눈으로 김태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들었지?”“앞으로도 날 지켜줘. 설령 이성을 잃는 순간이 와도, 날 위해 멈춰줄 거잖아. 그러니 이제 더는 두려워하지 마.”“...응.”김태하는 눈앞의 아내를 가만히 응시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떤 말도 빛을 잃는 듯했다.그녀의 말에 응답하는 일이라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기꺼이 할 수 있었다.그는 다시 한번 입술로 그녀의 코끝과 뺨을 가볍게 스쳤다. 떨릴 만큼 조심스럽고 애틋한 입맞춤이었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지순옥도 비서와 함께 돌아왔다.다섯 사람은 함께 간단히 식사를 했고, 일정이 빡빡했던 이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지현과 김태하가 직접 아래층까지 내려와 배웅했고, 이든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두 사람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이해만큼 좋은 약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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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강지현!”권미숙은 경비들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강지현이 있는 쪽으로 가려고 발버둥 쳤다.그녀가 데려온 사람들까지 가세해 몸싸움이 벌어지자, 경비팀장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어르신, 연세도 있으신데 저희도 거칠게 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 입주민께서 외부인 면회를 원치 않으십니다. 심지어 신분도 귀합니다.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마시고 돌아가 주십시오.”“입주민? 무슨 입주민이야! 걔는 내 며느리야!”권미숙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고 그 바람에 경비팀장의 얼굴에 침까지 튀었다.“신분이 귀해? 웃기고 있네! 걔가 사는 집, 전부 우리 아들이 사 준 거야!”권미숙은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지르며 가방을 경비팀장에게 사정없이 휘둘렀다. 경비들은 상대가 노인인 탓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악다구니에 밀려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경비팀장은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몇 명이 계속 권미숙을 막아서는 사이, 한 경비원이 재빨리 강지현 일행 쪽으로 뛰어갔다.강지현 역시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를 희미하게 듣고 막 고개를 돌리던 참이었다. 그때 제복을 입은 경비원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지현 씨, 김 대표님.”경비원은 두 사람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단지 입구 쪽을 가리키며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저기 단지 입구에 어떤 어르신께서 오셨는데요. 본인이 지현 씨 할머니라면서 무조건 만나야겠다고 난리를 치고 계십니다. 어떻게 할까요?”이도운이 강지현을 끈질기게 괴롭힌 뒤로, 김태하는 이미 관리사무소에 손을 써 두었다. 강지현이 사는 이 단지에는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막도록 조치한 것이다.김태하 본인과 그의 가족, 그리고 강지현이 직접 데려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들이지 말 것. 사전 연락조차 할 필요 없다고 엄포까지 놓아 둔 상태였다.만약 오늘 강지현이 마침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면, 경비들은 평소처럼 권미숙을 단호하게 돌려보냈을 터였다.시선을 돌리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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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할 말이 있으시면 여기서 하시면 됩니다.”경비팀장이 냉랭하게 가로막았다.“강지현, 너 참 대단한 재주가 있구나! 이놈이랑 바람났니? 그래서 그동안 도운이한테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던 거니? 너 때문에 도운이가 밤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다가 결국 병까지 났다는 건 알기나 해?”권미숙의 목소리는 아주 날카로웠다. 의사가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그런 말이 들릴 리 없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강지현을 찢어 죽일 듯한 기세로 손가락질 해댔다.“말조심하세요. 이 사람은 제 합법적인 남편이고, 당신들이 감히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사람 아니에요.”권미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현이 입을 열었다.그녀는 김태하의 단단한 손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그의 품에 더 깊이 안겼다. 그 다정한 모습은 권미숙의 눈에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권미숙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녀가 악에 받쳐 쏘아붙였다.“합법적인 남편? 도운이랑 헤어진 지 몇 달이나 됐다고 벌써 남편이 생겨? 강지현, 너 정말 얼굴에 철판을 깔았구나! 내가 사람을 아주 잘못 봤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을 데려와 놓고 감히 이씨 가문이 범접도 못 한다고 큰소리야?”“대체 어떤 놈이길래 눈이 멀어서 정신을 못 차려? 네가 그 더러운 수작으로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 내지만 않았어도, 저런 놈이 어떻게 사람 탈을 쓰고 네 옆에 뻔뻔하게 서 있을 수 있었겠니? 네가 우릴 등쳐먹은 돈으로 저런 놈이랑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아?”권미숙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 독기 어린 말을 마구 쏟아냈다.“말씀 다 하셨어요?”강지현은 화가 치밀어 결국 참지 못하고 맞받아쳤다.“이도운은 사기 결혼을 저지른 사람이에요. 술집에서 일하는 남자보다 더 비열하고 악랄한 짓을 해 놓고, 감히 제 남편이랑 비교해요? 제 남편은 당신이 말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집안, 능력, 인품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당신들 이씨 가문 사람들을 다 합쳐도 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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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당신들 눈에는 사기 결혼에 불륜, 횡령, 그리고 남을 무자비하게 모욕하는 짓거리들이 전부 과분한 복으로 보이나 보죠? 그런 복이라면 당신들이나 실컷 누리세요.”김태하는 마치 연약한 아기 고양이를 품에 안듯, 강지현을 제 품으로 쏙 끌어당겼다.그는 그녀의 머리를 제 가슴에 기대게 한 뒤, 커다란 손으로 머리칼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저 지저분하고 번잡한 소음으로부터 그녀를 완전히 격리하려는 듯한 행동이었다.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이 서슬 퍼렇게 눈을 뜨고 서 있는 오늘 같은 날에, 어떻게 저런 인간들이 감히 강지현을 괴롭히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는가. 그동안 강지현이 홀로 버텨왔을 날들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려오는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그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김태하가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자, 기세등등하던 권미숙도 순간 주춤했다. 등줄기까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매서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면서도 여전히 강지현을 품에 끌어안고 있었다. 권미숙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다시 악을 썼다.“난 강지현 저 계집애랑 얘기하고 있어! 네까짓 게 어디서 끼어들어!”“네가 살고 있는 이 집, 누구 돈으로 산 건 줄 알아? 전부 우리 도운이가 번 돈이야!”“네 옆에 붙어 있는 저 화상, 우리 집 돈으로 널 데리고 사는 거라고!”권미숙은 악에 받쳐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든 두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려 망신을 주겠다는 심산이었다.김태하는 코웃음을 치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권미숙을 향한 그의 시선은 살갗을 베는 칼날처럼 차가웠다.권미숙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흥, 겉만 번지르르하게 차려입었을 뿐이지. 저런 년이랑 붙어먹는 놈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어? 허우대만 멀쩡하지, 속은 구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닐 게 뻔해.’“제 아내가 절 먹여 살리겠다는데, 저는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고작 이씨 가문의 푼돈으로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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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아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는데...”계속 중얼거렸지만 숨소리는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함께 온 사람들이 서둘러 그녀를 달래며 어떻게든 감정이 더 격해지지 않게 하려 했다.하지만 권미숙은 옆에 있던 사람을 거칠게 밀쳐 내고 억지로 버텨 섰다. 몸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헛소리하지 마. 네가 어떻게...”권미숙이 끝내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자, 경비팀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원래 입주민 신분은 저희가 함부로 밝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김 대표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으니, 저희도 더는 감출 필요가 없겠네요. 어르신, 지금 앞에 계신 분이 바로 미래 그룹의 김태하 대표님입니다. 두 분은 법적으로도 정식 부부시고요. 다만 그동안 조용히 지내셨을 뿐입니다.”경비팀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이 단지와 관리 업체도 전부 김 대표님 쪽 소유입니다. 지현 씨가 여기 살면서 왜 이씨 가문 돈을 쓰겠습니까? 그런 말씀은 어디 가서 하시면 웃음거리밖에 안 됩니다.”경비팀장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건 권미숙의 얼굴을 세게 후려치는 거나 다름없었다.권미숙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강지현과 저 남자가 아무리 거짓말을 한다 해도, 관리사무소 사람들까지 작정하고 자신을 속일 리는 없었다.강지현도 이곳이 김태하의 소유라는 사실은 처음 듣는 눈치였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김태하를 바라보았다. 김태하의 눈가에는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두 사람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아차렸다.어쩐지, 그때 분양 사무소에서 그를 만났을 때 직원들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더라니.“대단하네, 김태하. 일부러 그랬지? 네 집이면서, 나한테 돈까지 내게 했어?”강지현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김태하는 그녀의 턱을 가볍게 붙잡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집은 내 거지만, 나는 네 거잖아. 내 이름으로 된 건 전부 네 거야.”당시 두 사람은 아직 결혼 전이었다. 김태하가 그곳에 갔을 때, 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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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주씨 집안 딸이라고? 말도 안 돼. 강지현이 어떻게...”상대의 말은 또렷했다. 그런데도 권미숙에게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낯설기만 했다. 아무리 들어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그녀는 방금 들은 말을 입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얼굴은 푸르죽죽하게 질려 있었다.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이씨 가문에서 2년이나 며느리로 살았던 애였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고아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해원시 최고 부호의 딸이 된단 말인가.이도운에게 기대어 겨우 이씨 가문에 들어왔고 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살아야 했던 그 애가, 그때마다 자신이 감싸 줘야 한다고 여겼던 그 고아가 어떻게 최고 부호의 딸일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얼마 전, 권미숙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주씨 집안에서 잃어버렸던 딸을 찾았다고 했다. 시기를 따져 봐도, 강지현이 이씨 가문을 떠난 때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권미숙의 눈에서 조금씩 빛이 꺼졌다. 흐려진 눈동자는 더는 한곳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강지현이 정말 주상 그룹의 딸이라면, 그렇다면 이씨 가문은 그저 강지현의 계략에 말려든 게 아니었다. 애초에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린 것이었다.권미숙은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옆에서 사람들이 붙잡아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어쩐지, 어쩐지 주상 그룹이 갑자기 우리와 거래를 끊더라니. 어쩐지 회사가 속 빈 껍데기처럼 무너져 내리더라니...”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강지현이 어떻게 불과 몇 달 만에 이씨 가문을 파산 직전까지 몰아넣을 수 있었는지. 왜 모든 거래처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씨 가문을 피했는지.그건 사업판이 원래 냉정해서가 아니었다. 이씨 가문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기 때문이었다.그런 권미숙을 보면서도 강지현은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강지현이 몸을 살짝 움직이자, 김태하가 조용히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현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경비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 주었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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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권미숙은 다급해진 나머지 저도 모르게 본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말을 끝맺기도 전에 깨달았다. 강지현 곁에 선 저 남자 또한, 자신이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사랑이요? 이도운은 저를 사랑한 적 없어요. 이씨 가문이 그렇게 키워 낸 사람이잖아요. 사랑할 줄도 모르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도 모르고. 가족분들과 똑같이요.”그녀는 김태하 곁으로 걸어가 그의 팔을 꼭 붙잡았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가 그 순간 한결 부드러워졌다.“게다가 전 이미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을 만났어요.”강지현은 고개를 들어 김태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이씨 가문과 이도운을 겪고 나서야, 강지현은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자신의 삶을 온전히 채워 주는 사람. 같은 곳을 바라보며 어떤 문제 앞에서도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 몇 번이고 다시 설레게 하는 사람.김태하는 언제나 그녀의 삶 가장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강지현 역시 그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긴 어둠 속에서도 기꺼이 불을 밝혀 줄 수 있었다.김태하는 다시 강지현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소중한 것을 감싸듯 그녀를 안고 걸음을 옮기던 그는, 두어 걸음도 채 가지 않아 문득 멈춰 섰다.그의 시선이 다시 권미숙에게 향했다.“어르신은 평생 살아오시면서, 진정으로 어울리는 인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건 신분이나 배경이 맞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서로의 능력과 인품, 가치관이 맞아야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아껴야 하는 겁니다.”“지현이가 설령 주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어도, 저는 여전히 지현이에게 끌렸을 겁니다. 제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껴 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괴롭힘 당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김태하가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권미숙의 얼굴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김태하의 마지막 말은 권미숙을 완전히 절망으로 몰아넣었다.“제 아내는 이씨 가문에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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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강지현은 더는 창밖을 보지 않고 돌아서서 김태하를 끌어안았다.김태하는 자신의 상처에는 늘 무심했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위협받는 순간에는 예민하게 반응했다.하지만 이제는 그녀가 곁에 있었다. 그녀는 그의 불안을 잠재워 주는 유일한 안식처였고, 덕분에 그는 더 이상 오래 어둠 속에 머물지 않게 될 터였다.“좋아. 다 네 말대로 할게.”김태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자신을 걱정해 주는 그녀의 다정한 마음은, 세상을 향해 세워 두었던 그의 차가운 벽마저 조금씩 녹여 내리고 있었다.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따스한 체온을 가만히 느꼈다. 마치 제 삶 전부를 그녀에게 온전히 맡긴 듯한 기분이었다.밖에는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 그의 마음에 외로움이 스며들 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권미숙이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이씨 가문 전체에 퍼졌다.이도운이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병실 앞에는 이민지와 진태웅이 서 있었다. 이민지는 한바탕 울고 난 듯 눈가가 새빨갛게 부어 있었고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던 진태웅은 이도운을 보자 조용히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들어가 봐요. 할머님 뵈어야죠.”이민지는 이도운을 보는 순간 간신히 참아 오던 눈물을 끝내 터뜨렸다.“오빠, 할머니가... 할머니가...”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도운은 거칠게 병실 문을 밀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권미숙은 각종 의료 장비와 호스를 몸에 단 채 위태롭게 누워 있었다. 문 앞에는 경호원들이 지켰고 침대 곁에는 문수정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간병인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을 닦아 드렸고, 옆에서 상태를 설명하던 의사는 이도운이 들어오자 말을 멈췄다.문수정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의사에게 가볍게 눈짓했다.의사가 자리를 뜨려 하자, 이도운이 다급히 앞을 막아섰다.“의사 선생님, 저희 할머니 괜찮으신 거죠? 큰일 아닌 거죠?”의사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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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그는 계속 침대에 누운 채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하지만 권미숙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그렇게 화를 내고도 쓰러지지 않았었다.“강지현이야. 오늘 그 여자를 만나러 갔어.”문수정이 차갑게 말했다.그녀에게 연락이 왔을 때, 권미숙은 이미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진 뒤였다. 나중에야 권미숙을 따라갔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알았다. 권미숙이 찾아간 사람이 강지현이었다는 것을.“네 할머니는 너 때문에 간 거야. 네가 강지현한테 이렇게 당하는 걸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대신 분풀이라도 해 주려고 가신 거라고. 그런데 설마...”“제가 찾아가겠습니다!”이도운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문수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몸은 말이 아니었다. 일어서는 것조차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누구를 찾아가 따질 형편은 더더욱 아니었다.“누구한테 따지겠다는 거니? 너, 강지현이 주상 그룹 딸이라는 건 알고 있어?”문수정의 한마디에 이도운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췄다.그는 돌처럼 굳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바라보았다.“뭐라고요?”“강지현이, 주상 그룹의 딸이라고 했다.”문수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도운이 오기 전, 그녀는 이미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자신이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며느리가 이씨 가문을 속 빈 껍데기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하루아침에 해원시 최고 부호의 딸로 돌아왔다는 사실을.하지만 연이어 닥친 충격이 너무 컸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노인이 눈앞에 누워 있는 지금, 아무리 분하고 원통해도 그 감정을 억지로 눌러 삼킬 수밖에 없었다.문수정은 휴대폰을 내밀었다.화면에는 주상 그룹 딸과 관련된 기사가 떠 있었다. 사진 속에는 강지현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주상 그룹의 딸은 줄곧 조용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왔다.주승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주상 그룹의 딸에 관한 소식은 간간이 흘러나왔지만 공개석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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