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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481 - Chapter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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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1화

백하린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이도운은 이기적이고 냉정한 데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뼛속까지 다정한 귀공자 같은 인물은 아니었다.이도운이 말을 꺼냈을 때, 백하린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희고 매끄러운 등이 그를 향해 그대로 드러났다.백하린은 가볍게 대답하며 오늘 저녁에 입을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오늘 주상 그룹 대표가 저녁 사겠대. 와서 봐 줘. 뭐 입는 게 좋을까?”이도운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팔을 뻗어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나도 데려가.”그는 백하린이 무엇을 입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낮게 속삭이며 그녀의 귀를 가볍게 깨물 뿐이었다.예전의 이도운은 백하린 앞에서 이렇게 강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하고 부드러운 쪽에 가까웠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달라져 있었다.더 거칠고, 더 차가워졌다. 강지현을 향한 증오가 그를 완전히 사납게 바꿔 놓은 듯했다.“거긴 왜 가려고? 주씨 집안 사람들 보고 싶어?”백하린은 농담처럼 말하며 뒤로 손을 뻗어 그의 몸을 어루만졌다.“그래.”이도운이 낮게 숨을 들이켰다.그는 정말 주씨 집안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정확히는, 강지현이 자신을 마주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직접 보고 싶었다.주씨 가문의 딸이면서도 그녀는 몇 번이고 자신을 속이고 농락했다. 심지어 할머니의 죽음까지 몰고 왔다.그는 그녀가 과연 어떤 얼굴로 자신 앞에 설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물론 이것 역시 이도운의 악취미였다.백하린은 아직 강지현이 주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도운도 그 사실을 이렇게 빨리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면, 백하린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테니까.백하린도 자신처럼 절망해 봐야 했다. 그래야 감정이니, 새출발이니 하는 말을 다시 입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강지현이 해성 그룹에서 보낸 사람이 백하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백하린 역시 이씨 가문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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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주단우는 이도운 부부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강지현을 상대하기 위해, 이미 그들의 과거를 밑바닥까지 샅샅이 조사해 둔 상태였다.그에게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 같은 것이 없었다. 중요한 건 오직 어느 편에 서느냐뿐이었다.적의 적은 곧 친구였다.이도운이 강지현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만 있다면, 주단우는 기꺼이 그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한패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씨 가문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무너졌다. 주단우도 한때는 일부러 힘을 실어 주려 했지만, 상대가 워낙 쓸모가 없었다.무엇보다도 강지현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돌린 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도운이 더 이상 강지현에게 감정적으로 매달릴 수 없다면, 그에게는 이용 가치가 조금도 남지 않았다.지금 엄경미가 해성 그룹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이유는 뻔했다. 강지현을 건너뛰고 회사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것이다.거기에 백하린까지 끼어들었으니, 앞으로 더 볼만해질 터였다.강지현이 해성 그룹과의 협력을 거절하면, 주상 그룹의 이익을 저버리고 주승호에게 맞서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제 손으로 또 하나의 적을 들이는 셈이었다.엄경미의 수법은 늘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했다. 설령 강지현을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하더라도, 주상 그룹 안에서 편히 지내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백하린과 이도운, 그 두 사람은 가장 무딘 칼이었다.생각하다 보니, 주단우조차 강지현이 조금 불쌍해질 지경이었다.주단우는 외투를 갈아입고 막 사무실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현다영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무언가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그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혐오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고스란히 어려 있었다.“뭐 하는 거야? 사무실 앞에서 수상쩍게 서서는. 엿듣고 있었어?”주단우가 곧장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정말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현다영이라, 조금 참을 수 있었다.특히 그녀의 손에 보온병이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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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주단우의 자아도취 섞인 말에, 현다영은 속이 다 메스꺼워졌다.하지만 이번에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주단우가 보온병을 열고 따뜻하게 데워진 새까만 차를 컵에 따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바라보자, 현다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마셔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주단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코끝을 맴도는 고약한 냄새에 한참이나 입술만 달싹이던 그는 결국 한발 물러섰다.“됐다. 이건 나중에 마시지.”그는 컵에 따른 차를 다시 보온병에 부어 넣고는 곧장 뚜껑을 닫았다.“가자. 데려다줄게.”주단우는 사무실 문을 잠그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현다영은 그의 뒷모습을 차갑게 바라보다가, 이내 목소리를 한결 부드럽게 낮췄다.“부대표님, 지금 저 데려다주실 시간은 있으세요? 어디 가시려던 거 아니었어요?”“가는 길이야. 네 집이랑 멀지 않고.”주단우가 가볍게 웃었다. 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널 내려 주고 나서 다른 일 보러 가면 돼.”백하린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호텔 쪽에는 이미 두 사람을 맞이할 사람을 보내 둔 상태였다. 가는 길에 현다영을 잠깐 데려다주는 정도는 시간을 잡아먹을 일도 아니었다.현다영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차가 출발한 뒤, 주단우의 휴대폰 화면이 몇 번이나 켜졌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결국 현다영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부대표님, 바쁘시면 저 근처에 내려 주셔도 돼요.”“괜찮아. 거의 다 왔어.”주단우는 앞만 바라본 채 대답했다.밤길의 불빛이 그의 얼굴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빛 때문인지 평소의 느끼한 기운은 조금 덜했고 드물게 차갑고 단정해 보이기까지 했다.하지만 현다영은 그의 얼굴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해야 주단우에게서 쓸 만한 정보를 캐내 강지현에게 전할 수 있을지로 가득했다.지금 강지현이 회사에 없는 만큼, 적들이 뒤에서 무슨 짓을 벌이는지 더더욱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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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내가 안 이랬으면, 넌 강지현한테 말 안 했을 것 같아? 아니잖아.”주단우의 한마디에 현다영은 말문이 막혔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내 사무실 앞에서 엿들어 놓고, 어쩜 그렇게 당당해? 내가 너한테 이렇게 잘해 주는데, 넌 끝까지 강지현 첩자 노릇이나 하려고 하고. 나 진짜 상처받았어.”주단우의 목소리는 잔잔했다. 웃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 안에는 온통 놀리듯 비꼬는 기색뿐이었다.그가 현다영을 놀리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처음에는 건강차를 가져온 걸 봐서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이 틀어지면 그 뒷감당은 결국 자신이 해야 했다.현다영은 그를 떠볼 때도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더는 맞춰 줄 필요가 없었다.현다영의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엿들은 거 아니에요. 전 그냥 건강차 가져다주러 온 거예요...”“그래서 뭘 들었는데?”주단우가 말을 끊었다. 하지만 현다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뭐, 상관없어. 이 거래가 끝날 때까지 넌 계속 나랑 같이 있으면 돼. 딱히 너한테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건 아니니까.”“진짜 양심도 없어요? 이런 식으로 약점 잡는 게 어디 있어요. 제가 부대표님 믿고 차에 탄 걸 이용하는 거예요?”현다영은 다급한 와중에도 억울하고 가엾은 표정만은 잃지 않았다.주단우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다. 그리고 현다영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억지로 휴대폰을 빼앗았다.현다영이 이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면, 그는 정말로 자신이 지나쳤다고, 순진한 여자를 또 한 번 상처 준 거라고 착각할 뻔했다.“이 나쁜 자식!”현다영의 힘으로는 주단우를 당해낼 수 없었다.그가 거칠게 나오자, 그녀에게는 맞설 틈조차 없었다.휴대폰을 빼앗은 주단우는 화면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전원을 꺼 버렸다. 그리고 제 주머니에 넣었다.“그래, 나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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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백하린은 주상 그룹에서 이번 자리에 보낼 사람이, 베일에 싸인 주씨 가문의 딸이거나 주승호의 아내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녀도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현재 주상 그룹의 실무를 쥐고 있는 사람은 주씨 가문의 딸이지만, 주씨 가문 안에는 부대표 직함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다고 했다.그중에는 주승호의 양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들었다.아마 눈앞의 남자가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맞습니다. 제가 주상 그룹 부대표, 주단우입니다.”주단우는 백하린과 악수하면서도 곁눈으로 이도운을 살폈다.주단우의 소개를 듣는 순간, 이도운도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다.“부대표님,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해원시에 이경 그룹이라는 회사는 이제 없습니다. 저도 더는 대표가 아니고요.”그는 그동안 자신이 주상 그룹의 딸과 연이 닿았다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강지현이 주씨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깨달았다. 애초에 이경 그룹에 투자하려 했던 사람은 강지현이 아니었다.지금 주단우가 이렇게 나오는 걸 보니, 답은 분명했다. 이씨 가문에 손을 내밀었던 사람은 주단우였다.이도운도 주상 그룹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본 적이 있었다. 주승호의 양자는 결혼을 계기로 주씨 가문 쪽에 몸담게 된 사람이라고 했다.공개된 자료만 봐도 주승호의 재산 대부분은 친딸에게 돌아간 것으로 나와 있었다.그 정도면 충분했다. 주단우와 강지현의 사이가 좋을 리 없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강지현이 버젓이 있는데도 주단우가 이경 그룹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이도운의 추측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다만 양자는 결국 친딸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경 그룹이 이렇게 빨리 파산 절차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래도 이도운은 이제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세를 낮추는 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적어도 이제는 영문도 모른 채 정체 모를 힘에 짓눌려 당하기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이 대표님, 너무 낙담하실 필요 없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늘 돌고 도는 법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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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현다영을 데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하원영이었다.하원영이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건지는 몰라도, 그녀는 처음부터 주단우 일행을 뒤따라오고 있었다. 현다영이 주단우 사람들에게 호텔에 붙잡히자마자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사람들을 데리고 와 문을 부순 뒤 현다영을 데려갔다.덕분에 주단우의 사람들은 아직도 경찰서에 붙잡혀 있었고, 그가 직접 가서 수습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물론 주단우는 그런 일까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전화 몇 통 더 돌리면 끝날 일이었다.정작 그를 짜증 나게 한 건, 현다영을 데려간 사람이 하원영이라는 사실이었다.하원영, 그 여자는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왜 굳이 끼어들어 일을 귀찮게 만든단 말인가.시간은 이미 늦어 있었다. 이 밤중에 하씨 가문까지 찾아가 사람을 끌고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초에 하씨 가문과 별다른 친분도 없었다. 일이 커지면 하원영도 좋을 게 없겠지만, 자신 역시 괜히 구설에 오를 수 있었다.하원영은 하씨 가문 안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러니 현다영을 하씨 가문으로 데려갔을 리는 없었다.결국 주단우는 현다영의 집 앞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역시나 현다영은 집에 없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주단우는 그녀의 집 문을 걷어차고 나서야, 현다영의 휴대폰이 아직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하지만 전원을 켜도 잠금을 풀 수가 없었다. 한참을 이것저것 눌러 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곧 잠금 화면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찍은 듯한 현다영의 사진이었다.햇살 좋은 오후, 그녀는 몸을 살짝 돌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린 모습은 생기 넘쳤고 온몸은 따뜻한 햇살에 감싸여 있었다.주단우는 화면 속 현다영을 바라보다가, 벽에 등을 기댄 채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현다영이 사는 곳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얼마 지나지 않아 센서 등마저 꺼지자, 주단우의 모습은 그대로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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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고집 센 여자는 귀했다. 적어도 주단우에게는 충분히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었다.그렇게 보자, 치밀어 오르던 화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대신 정복욕이 고개를 들었다. 주단우는 힘을 주어 현다영의 팔을 확 끌어당겼다. 그녀의 몸이 그대로 그의 가슴팍에 부딪혔다.현다영은 예전처럼 거세게 밀쳐 내지는 않았다. 다만 손바닥을 그의 가슴에 가볍게 대고, 억지로라도 둘 사이에 조금의 거리를 만들었다.“내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아?”차갑게 가라앉은 숨결이 얼굴 가까이 닿자, 현다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주단우의 말투는 묘하게 끈적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는 현다영의 귀 뒤로 흘러내린 잔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주단우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애매한 선을 넘나드는 사이였으니까.“부대표님 속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현다영은 입꼬리만 희미하게 올렸다. 눈빛에는 아무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저는 그저 제가 부대표님을 그렇게 믿었다는 것만 알아요. 지현 언니가 말리는데도 부대표님하고 따로 만나려고 했고요. 그런데 부대표님은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셨잖아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덧붙였다.“저, 이제 퇴사하고 이사까지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그래야 부대표님이 저를 좀 놔주실까요?”“하.”주단우가 웃음을 터뜨렸다.뒤집어씌우는 솜씨 하나는 제법이었다.먼저 다가오고 떠보고 강지현에게 일러바치려 한 사람은 현다영이었다. 그런데 말 몇 마디로 자신을 그에게 농락당한 가엾은 피해자처럼 포장해 버렸다.주단우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휘두르는 여자들을 안 만나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다영처럼 뻔뻔한데도 이상하게 진심처럼 보이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현다영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정말 내가 널 놔줬으면 좋겠어?”현다영은 여전히 차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부대표님, 시간 늦었어요. 저 이제 들어가 봐야 해요.”말을 마친 현다영은 주단우를 밀어내고 돌아서서 현관문을 열었다.주단우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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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오늘 강지현한테 무슨 말 했어? 그리고 하원영 그 여자는? 한 번 영웅 노릇 했으면 끝까지 데려다줄 일이지, 왜 너 혼자 보냈대?”주단우가 아무리 현다영에게 휘둘리는 듯 보여도, 여자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사람은 아니었다.현다영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일이 정리됐다는 뜻이었다.현다영은 보기보다 영리했다. 강지현이 아직 주상 그룹에 남아 있는 한, 주단우가 자신에게 함부로 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엄경미 역시 그에게 단단히 일러둔 터였다. 강지현을 완전히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괜한 일을 벌이지 말라고.특히 이런 식의 하찮은 문제는 더더욱 피해야 했다.현다영은 주단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솔직하게 말했다.“제가 지현 언니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그걸 부대표님께 말씀드릴 리가 없잖아요.”세 시간 전, 현다영은 하원영을 따라 호텔에서 빠져나왔다.하원영은 회사를 나서던 길에 현다영이 주단우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현다영은 강지현 쪽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주단우와 가까이 지낸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호기심이 많은 하원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두 사람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현다영이 주단우의 사람들에게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하원영은 곧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현다영이 있는 방 번호를 확인한 뒤, 주단우가 다시 식당으로 향하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프런트로 가 상황을 알아보려 했다.하지만 그 호텔은 엄씨 일가 계열이었다. 하원영이 직접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잠시 고민하던 하원영은 주시언에게 전화를 걸었다.늦은 시간이었지만 주시언은 아직 잠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지방 출장 중이었고 마침 접대 자리에 있었다.하원영이 상황을 설명하고 호텔 이름을 알려 주자, 주시언은 곧장 사람을 알아봤다.그의 지인 중에는 해원시 대형 호텔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호텔 내부 사람을 찾는 건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밤 예약된 VIP 정보를 간단히 확인하는 정도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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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현다영, 강지현 곁에 있는 게 그렇게 좋아?”주단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강지현이 현다영의 친언니도 아니지 않은가. 고작 한번 도와준 게, 권력과 돈이 주는 달콤함보다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현다영은 담담하게 받아쳤다.“부대표님은요? 엄 대표님 밑에서 남한테도 해롭고 본인한테도 득 될 것 없는 일을 하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하.”주단우가 또 한 번 코웃음을 쳤다.“엄 대표는 내 어머니야. 게다가 그 사람에게도 나름의 입장이 있고. 강지현과 맞서는 게 왜 꼭 남에게도 해롭고 나한테도 득 될 것 없는 일이 되지?”“주상 그룹이 한 사람만의 회사는 아니잖아요. 부대표님하고 엄 대표님만 마음을 바꾸면, 얼마든지 같이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현다영은 그렇게 말하며 침실로 들어가 이불을 갈기 시작했다.주단우와 같은 침구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빨려고 빼 두었다가 버리려던 이불이 한 벌 있었다. 더러운 건 아니니, 그걸 다시 깔아 하룻밤만 쓰게 할 생각이었다.자신은 소파에서 자면 그만이었다.주단우는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집에서는 늘 가정부가 그의 침대를 정리해 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도련님으로 사는 데 익숙했다.하지만 지금껏 가족 중 누구도 그를 위해 이런 일을 해 준 적이 없었다.현다영에게서 풍기는 소박한 생활감 때문일까. 묘하게 가족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그녀가 자신을 위해 이불을 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주단우는 코끝을 문질렀다. 현다영 때문에 생긴 불쾌감도 어느새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잘 지내는 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주상 그룹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우리 어머니 공도 절반은 있어. 그런데 주승호의 유언장은 배신이나 다름없었지. 너라면 어때? 반평생 바쳐 일군 걸 남에게 순순히 넘겨줄 수 있겠어?”“그건 주승호 회장님의 잘못이지, 지현 언니가 짊어질 일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언니도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어요. 이제야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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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주단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현다영은 재빨리 방으로 돌아가 주단우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현다영의 집 근처에는 휴대폰 수리점이 하나 있었다. 그곳 사장은 기계 쪽에 워낙 밝아서, 예전에 그녀의 휴대폰이나 노트북 잠금을 풀어 줬던 적도 몇 번 있었다.하지만 남의 휴대폰 안에 든 자료를 몰래 들여다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당한 일이 아니었다.한참을 망설이던 현다영은 결국 마음을 독하게 먹고 수리점으로 향했다.주단우의 휴대폰 잠금은 현다영이 쓰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사장도 한참을 붙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잠금을 풀었다. 다만 우회 프로그램을 이용한 탓에, 열린 상태가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고 했다.휴대폰을 돌려받은 현다영은 곧장 구석진 곳으로 가 해성 그룹 관련 프로젝트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일단 눈에 띄는 건 닥치는 대로 녹화해 강지현에게 보냈다.그 뒤, 현다영의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 심장도 아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들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주단우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현다영은 연락처, 메시지, 사진첩까지, 사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을 만한 곳은 전부 훑어보았다.그런데 뜻밖에도, 온갖 약점이 줄줄이 나올 것 같던 주단우의 휴대폰은 놀랄 만큼 깨끗했다.대부분은 업무 자료였고 나머지도 별것 아닌 일상 기록뿐이었다.사진첩에도 지저분한 사진은 없었다. 다만 주단우는 자기 몸을 찍는 걸 꽤 좋아하는 듯했고, 각종 카드와 멤버십 카드 사진도 많았다. 아마 사진첩을 메모장처럼 쓰는 모양이었다.현다영은 주단우의 사생활 따위에 관심 없었다.그녀가 찾고 싶은 건 단 하나였다. 친구의 흔적, 그리고 머릿속에 맴돌던 의심을 확인해 줄 증거.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나오는 건 없었다.거의 포기하려던 그때, 현다영의 눈에 주단우의 카톡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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