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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491 - Chapter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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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그럼 경찰에 신고하든가.”현다영은 더 길게 말을 섞기도 귀찮았다.이런 짓까지 저지른 마당에, 주단우와의 공방도 피차 여기까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단지 제 손으로 친구의 복수를 해주지 못한 게 아쉬웠을 뿐이었다.이 짐승 같은 놈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어야 했는데.주단우가 몸을 돌렸다. 목소리는 억눌린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나한테 빌어 봐. 그럼 혹시 알아? 내가 용서해 줄지.”“그쪽 용서 따위 바라지도 않아요. 당신 같은 쓰레기한테는 무슨 짓을 했어도 손톱만큼의 죄책감도 안 드니까.”“현다영!”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단우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냅다 집어던졌다.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에 현다영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었다.날아든 휴대폰이 정강이에 찍히며 비명이 나올 만큼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주단우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게 보였지만, 현다영은 도망치지 않았다.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고 고개를 치켜들 뿐이었다. 마치 남자가 휘두를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낼 준비가 끝난 것처럼.어차피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아버지의 그늘에서 현다영은 고통과 동행하는 법을 진즉에 배웠다.미친놈도, 악당도 두렵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그런 인간들을 상대하는 게 가장 익숙했으니까.주단우는 눈앞의 여자를 으스러뜨려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팔을 번쩍 치켜들었지만 좀처럼 손을 대지 못했다.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현다영이 짓밟은 것은 그가 억지로 버텨온 자존심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보루까지 통째로 무너뜨린 것이다.이따위 여자마저 자신을 무시하다니.어릴 적 엄경미가 내뱉었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지금 이 순간부터 넌 나 말고는 아무도 못 믿어. 주씨 가문이라는 배경만 제외하면 그저 한낱 불쌍한 고아에 불과하니까. 최하층 바닥이나 구르는, 쓰레기 같은 폐물이지.”“무능한 자는 감정을 논할 자격이 없고, 잘난 인간들은 그걸 놀잇감으로 삼을 뿐이야. 선택해. 다들 네 발밑에 꿇릴래? 아니면 그 알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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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주단우가 넋을 잃은 틈을 타 현다영은 손을 빼내어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화끈거리는 통증이 번지자, 주단우는 반사적으로 여자의 얼굴을 움켜쥐었다.당장이라도 맞받아칠 기세였다.하지만 붉어진 현다영의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을 본 순간, 치밀어 오르던 충동을 다시 참아냈다.“내가 역겹다고? 그럼 너는? 그동안 내 주변에서 알짱거리던 네 행동은 뭐 깨끗한가?”악에 받쳐 쏘아붙였지만,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화려한 연애사 속에서 여자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일 때면 늘 상대가 매달리기 일쑤였다.그런데 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차이고, 진심을 유린당한 것 같은 착각이 들까.그는 누구에게도 진심을 주지 않는다.물론 줘서도 안 되었다.“나? 당신에 비하면 난 그저 받은 대로 돌려준 것뿐이에요!”추궁하는 주단우를 보며 현다영은 소름 끼치는 혐오감을 느꼈다.영문을 모르는 남자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한 채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당신, 천루비 기억해요?”그 이름을 듣는 순간, 주단우는 움켜쥐고 있던 손을 툭 놓아버렸다.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듯, 현다영을 바라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네가 그 애를 어떻게 알아?”현다영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최대한 거리를 두며 차갑게 읊조렸다.“당연히 알죠. 내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마침내 모든 전말을 깨달은 주단우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그 애 때문에 나한테 접근한 거였어?”“당신이 그랬죠? 이 세상에 억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현다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주단우가 천루비의 죽음을 타인의 일인 양, 뻔뻔스럽게 평가하던 그 모습을.하지만 그녀의 인생을 망가뜨린 건 다름 아닌 주단우였다.“루비가 바보같이 사랑에 눈멀어서 제 발로 수렁에 빠진 거니까 억울한 것도 없다 쳐요. 그럼 남의 감정을 짓밟고 갖고 논 당신은 뭐가 그렇게 당당하고 떳떳한데요?”현다영의 감정이 격해지자, 주단우는 기가 죽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나랑 그 애 사이에... 감정 같은 건 없었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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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그래, 나 돈 많고 집안 좋은 거 맞아. 근데 그게 죽을죄야?”“돈 많은 건 죄가 아니죠. 하지만 당신은 본인 잇속 챙기겠다고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남의 인생 짓밟는 짓도 서슴지 않잖아요.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 무슨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살아 있어야 하죠?”현다영은 눈 한 번 깜빡 않고 맞받아쳤다.비수를 꽂는 싸움이라면 사실 그녀의 완승이었다.주단우의 가슴은 텅 비어 있었고, 유년 시절에 입은 상처는 진작에 피가 말라붙은 지 오래였다.하지만 현다영은 고작 몇 마디 말로 그의 내면을 다시금 난도질했다.주단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마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한참 동안 웃어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현다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번만큼은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늘 입에 달고 살던 악독하고 음산한 경고도, 협박도 전부 막혀버렸다.현다영은 그를 저주했고, 자신이 죽기를 바랐다.악담이 귓가를 파고들어 신경을 마비시키는 순간, 몸속 깊은 곳부터 통증이 일었다.타인의 말이 이토록 공격적으로 다가온 적은 평생 처음이었다.주단우는 침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현다영이 우두커니 서 있는 사이, 쾅 하는 문소리와 함께 남자는 떠나버렸다.조마조마했던 심장이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가라앉았다.주단우가 정말 폭력을 쓰거나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집 안에 진작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둔 참이었다.설마 그것까지 눈치채고 억지로 분노를 삼킨 걸까?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오늘로 주단우와는 완전히 파국을 맞이했다.이제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해 올 것이다.게다가 주단우의 휴대폰 데이터까지 몰래 빼돌린 마당에 그냥 넘어갈 리 만무했다.현다영은 자신이 무심코 던진 돌이 마침내 거대한 해일이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음을 직감했다....강지현은 설마 이 꼭두새벽에 현다영에게서 연락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김태하를 깨우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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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그 누구도 강지현을 괴롭히게 둘 순 없다. 설령 그게 주상 그룹이라 할지라도.김태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김무언의 원칙마저 저버릴 용의가 있었다.강지현 역시 김태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해성 그룹과 주상 그룹이 정상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라면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사적인 감정에 휘둘려 반기를 드는 거라면, 무슨 자격으로 주상 그룹의 수장 자리에 앉아 있겠는가.다만 해성 그룹의 대표로 나서는 게 백하린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어쩌면 엄경미는 그녀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알겠어.”현다영과의 통화 덕분에 강지현은 마침내 갈피를 잡았다.백하린이 해성 그룹을 대표해서 나설 수 있었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이도운이 그녀가 연구했던 데이터들을 전부 백하린에게 넘겨준 것이었다.‘그따위 짓을 해놓고 감히 날 속여?’자신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이며 잘못을 빌던 이도운의 모습이 떠오르자 구역질이 밀려왔다.평소에는 불쾌한 느낌으로 치부하고 넘겼을 텐데 오늘만큼은 정말로 토할 것만 같았다.“지현 언니, 괜찮아요?”수화기 너머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현다영이 걱정스레 물었다.“난 괜찮아. 그보다 너... 주단우 휴대폰 몰래 본 거잖아. 별일 없었어?”강지현은 현다영이 이런 위험한 짓까지 감수하길 바라지 않았다.넌지시 흘린 말에 현다영이 이토록 무모하게 뛰어들 줄 알았다면, 애초에 입도 뻥끗 안 했을 텐데.주단우가 추궁하는 순간,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어떻게든 현다영을 지켜내리라 마음을 굳힌 참이었다.“그게...”현다영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거짓말로 얼버무렸다.“아직은 눈치채지 못했어요. 참, 내일 오전이면 해성 그룹이 저희랑 계약을 체결할 텐데... 우리 정말 가만히 있어도 돼요?”“응, 아무것도 하지 마. 넌 이미 할 만큼 했어. 나머진 나한테 맡겨.”속이 심하게 뒤집히기 시작한 강지현은 통화를 길게 이어가지 못하고 서둘러 끊었다.“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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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강지현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알아챈 김태하가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 슬며시 손을 빼냈다.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품으로 끌어당겼다.“밤엔 춥잖아. 네가 없으니까 침대가 하나도 안 따뜻하더라.”“못살아, 진짜. 감기 걸려 놓고 옷은 또 왜 이렇게 얇게 입었어? 방금 밖에서 계속 서 있었던 거지?”강지현은 남자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타박을 늘어놓았다.최근 기온이 뚝 떨어진 데다, 김태하는 얇은 잠옷 한 장만 걸쳤다.조금 전 욕실 밖에서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기다렸을 게 뻔했다.항상 이런 식이었다. 매사 남을 배려하면서, 정작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마음을 쓰이게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모른다.“아니야.”걱정 어린 강지현의 목소리에 김태하는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이내 그녀의 눈썹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었다.“지현아, 아까 어디 안 좋아 보이던데 괜찮은 거야?”강지현은 까맣게 잊고 있다가 김태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살짝 메슥거렸는데, 그냥 잠깐 그러다 말았어. 이젠 괜찮아.”“속이 안 좋아?”김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의사를 부르러 가려는 게 뻔히 보여 강지현은 곧바로 만류했다.“마음이 심란해서 그랬나 봐. 나 진짜 괜찮아.”“그래도 병원 가서 검사 한번 받아 보자. 그래야 나도 한시름 놓지.”김태하의 말에 강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돌아가면 바로 검사받을게.”그녀가 순순히 응하고 나서야 김태하는 다시 몸을 돌려 누웠다.어느새 온기가 돌아 따뜻해진 커다란 손이 잠옷 위에 닿았다. 이내 아랫배를 조심스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내가 좀 만져 줄게.”강지현은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지금은 딱히 아프지 않은데도 마치 응석을 부리는 아이처럼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김태하는 그녀를 끔찍이도 아꼈다.강지현이 허리를 주물러 주겠다고 나설 때면 밀어내기 바쁘면서, 정작 그녀의 아랫배를 문지르는 손은 좀체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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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해성 그룹의 대표가 백하린이라는 걸 알면 강지현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도운은 은근히 설렜다.강지현이 백하린을 어떻게 처리할지,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상대할지 기대됐다.사랑이 없다면, 차라리 증오라도 남아야지....백하린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VIP 접견실로 들어섰다.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탓에 주단우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비서가 급히 연락했지만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그 시각, 주단우는 이제야 겨우 호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옆에서 요란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본체만체하며 곧장 욕실로 향했다.어젯밤 현다영의 집에서 나온 뒤, 술집에서 밤새도록 술을 들이켰더니 속이 쓰라렸다.샤워를 마치고 정신이 좀 들어서야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비서에게 백하린을 먼저 응대하고 있으라 이르고, 자신도 곧장 가겠다고 전했다.통화를 마친 주단우는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용케 잘도 버티네.’밤새도록 현다영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하지만 이쯤 되니 요동치던 감정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동시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현다영이 제 휴대폰을 가져간 목적이 무엇인지, 비로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안에 든 것이라곤 고작 해성 그룹과의 협력 프로젝트가 전부일 터였다.하지만 그 프로젝트를 샅샅이 들여다본들, 모든 게 합법적이고 완벽한데 그녀가 대체 뭘 어쩌겠는가....똑똑.백하린이 서운혁과 통화를 끝내자마자, 문밖으로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렸다.주단우가 벌써 도착했나 싶어 그녀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문밖에 서 있는 것은 전혀 낯선 얼굴이었다.차가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에, 서늘할 정도로 예리한 아우라를 풍기는 여자였다.그녀는 문이 열리자마자 거침없이 걸어 들어왔다.접견실 안에는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들과 백하린뿐이었다.약속 시간이 아직 제법 남은 탓에 동행했던 해성 그룹 직원들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백하린 씨 맞아요?”하원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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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애초에 하원영은 누군가의 발목을 붙잡을 줄 몰랐다. 그녀의 사전에서 개념 없는 인간들은 오직 ‘매가 약’이었다.그래서 지금 제 말투가 얼마나 거친지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말을 마친 하원영은 상대의 대답도 듣지 않고 팔부터 잡아끌었다.하지만 순순히 응할 백하린이 아니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 손 놔요!”“내가 밥 산다니까?”하원영은 쌀쌀맞게 쏘아붙이며 백하린의 팔을 강제로 꺾어 쥐었다.가냘픈 팔이 하원영의 악력을 당해 낼 리 만무했다.백하린은 비명을 내지르며 테이블 모서리를 붙잡고 하원영과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자꾸 이러시면 저 진짜 사람 불러요?”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던 중, 하원영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이내 테이블 끝에 놓인 찻잔을 넘어뜨리자, 쏟아진 홍차가 백하린의 옷에 튀었다.하필이면 하얀색 스커트였다. 진한 찻물이 스며들며 아랫배 한복판을 보기 흉하게 적셔 버렸다.그제야 하원영이 손을 놓았고, 두 사람은 반동에 휘청거리며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하원영은 테이블 모서리에, 백하린은 의자에 엉덩이를 부딪쳤다.백하린이 악을 쓰며 옷에 묻은 홍차를 털어내기 바빴다.“이 미친...!”욕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삼켜냈다.이내 씩씩거리며 하원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밖에 있던 사람들이 우당탕거리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안으로 들이닥쳤다.해성 그룹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백하린의 몰골을 보고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서운혁이 보낸 비서 역시 급히 앞으로 나서며 백하린에게 티슈를 건넸다.졸지에 투명 인간 취급당한 하원영은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미안하게 됐네요, 백하린 씨.”건성으로 내뱉은 사과는 영혼이 하나도 없었다.백하린은 속이 뒤집혔지만, 사람들 앞이라 대놓고 화를 내지도 못했다.이때, 비서가 급히 제안했다.“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까 근처 백화점 가서 옷 새로 한 벌 사 입으실래요?”명색이 주상 그룹과의 계약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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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상대의 구체적인 인상착의를 전해 들은 주단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백하린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다가갈 여자는 사내에 둘밖에 없었다.현다영 혹은 하원영.냉정하고 도도한 상사 같은 분위기라는 말에 주단우는 단번에 하원영이라고 확신했다.주단우는 곧장 사람들을 이끌고 하원영의 자리로 향했지만 아무도 없었다.이내 곰곰이 생각하다가 즉시 걸음을 돌려 휴게실로 돌진했다.옷을 갈아입으러 갔다면 십중팔구 사내 탈의실일 터였다.직원 탈의실은 남녀로 나뉘어 있었다.주단우가 거침없이 여자 탈의실 쪽으로 직진하자 순식간에 수많은 시선이 쏠렸다.하원영의 동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앞서 하원영이 앞만 보고 달리는 성격이라 적을 만들기 쉬우니 잘 좀 봐달라는 강지현의 부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주단우가 마치 사달이라도 낼 기세로 찾아가니 다들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하원영 씨,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죠?”안 그래도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주단우는 탈의실 앞을 지키고 있는 하원영을 보자마자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주단우가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이야.하원영은 내심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그의 앞을 막아섰다.“여긴 여자 탈의실이에요. 길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만.”그녀는 시치미를 뚝 뗐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했다.바로 그때, 문 너머에서 주단우의 목소리를 포착한 백하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주 대표님 맞으세요?”그리고 문이 부서져라 두드렸다.“저 여기 갇혔어요!”“문 열어요.”서늘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하원영을 바라보는 주단우의 눈빛에 살기가 번득였다.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현다영에 이어 하원영까지, 미친 여자 둘이 번갈아 가며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태어나서부터, 그리고 주상 그룹에 몸담아 온 오랜 시간 동안 이토록 몰상식한 일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엄경미의 말이 맞았다. 강지현이 돌아온 뒤로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물 흐려진 게 확실했다.“키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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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주위 사람들은 하원영이 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지켜보았다.내막을 모르는 직원들이 낮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하원영이 밖에서 왜 소문이 안 좋은지 이제야 알겠다며, 감히 거래처 손님한테까지 행패를 부릴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저런 안하무인 재벌 아가씨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다고 뽑아 놓은 건지, 그야말로 국제적 망신이라며 혀를 찼다.사방에서 쏟아지는 조롱과 비난 속에서 하원영의 얼굴도 점차 구겨졌다.주단우는 끝까지 가 볼 생각인지, 경호원들을 시켜 하원영을 억지로 백하린 앞으로 끌고 왔다.그제야 백하린은 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하원영 씨, 안 그래도 소문은 익히 들었어요. 해원시에서 아주 유명하더라고? 하이 토이에서 하원영 씨 같은 입양아 때문에 속 꽤 썩었을 것 같아요. 안 그래요?”“당신이 뭔데 날 평가하지?”하원영은 사지가 잘려도 입만은 살아서 나불댈 인간이었다.백하린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주단우 앞이라 최대한 체면을 차리며 말했다.“주 대표님, 하원영 씨는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나 봐요. 하지만 이런 몰상식한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 해성 그룹 입장에서는 주상 그룹이 계약을 깨려는 걸로 오해할 수 있어요. 주상 그룹 직원들은 죄다 미치광이뿐이라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회사 이미지에 완전 악영향 아니겠어요?”주단우 역시 여자들의 싸움에 엮이기 싫었다.적당히 사과시키고 무마하려던 참이었는데, 눈치 없는 하원영이 똥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판이 커지고 만 것이다.그래서 감싸줄 마음이 싹 사라졌다.이내 눈짓을 보내자, 하원영을 붙잡고 있던 경호원들이 강제로 그녀의 허리를 90도로 꺾어버렸다.백하린에게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 작정이었다.“그 손 놓지?”하원영이 한계에 다다라 굴복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서둘러 양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터주었다.경호원들이 당황한 틈을 타서 하원영은 재빨리 손아귀에서 벗어났다.사람들의 시야에 훤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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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주시언이 덤덤하게 받아쳤다.그의 입에서 나온 ‘강 대표’라는 호칭에 백하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강 대표라니, 주상 그룹의 금지옥엽 외동딸 성씨가 강 씨였던가?’머릿속으로 순간 강지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지만, 이내 말도 안 된다며 스스로 비웃었다.‘그럴 리가. 강지현이 주상 그룹 딸일 리가 없지.’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원영이가 회사 고객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건 네 오해야. 다 내가 시킨 거거든. 주단우,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와서 따져.”주시언의 어조는 차분하면서도 상대를 은근히 깔보는 기색이 묻어났다.뒤에 서 있던 하원영은 순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지금 이 공간을 감도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때문이 아니었다.그저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조금 전 사람들 앞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음에도, 지금은 그 모든 고초가 달콤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그녀가 예전에 알던 주시언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얌전하고 착해서 어른들에게 의지할 줄만 알던 꼬마 아이에서, 이제는 홀로 서서 상대를 압도할 만큼 강인하고 용기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반면 자신은 여전히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늘 사고만 치는 철없는 아이로 남아있는 듯했다.두 사람의 격차는 너무나도 극명했다.그의 곁에 서면 그동안 붙잡고 있던 자존심마저 전부 무너져 내린다는 걸, 하원영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순간, 어린 시절 주시언이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이고 건넸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원영아, 내가 나중에 어른 되면 너 꼭 지켜줄게.”“참나, 오빠한테 보호받을 일이 없거든요? 약해빠진 주제에. 착한 어린이는 그냥 부모님 말씀이나 잘 들으세요.”“지금은 안 믿어도 괜찮아. 나 원래 한 번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니까.”“...그럼 오빠가 진짜 어른이 되면 어디 한 번 두고 보죠.”...거친 마찰음에 하원영은 번쩍 정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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