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최동윤의 일 처리 속도는 기대 이상이었다.강지현과 김태하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전화가 걸려 왔고 조상욱이 직접 모든 내막을 털어놓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조상욱은 애초에 이렇다고 할 기개나 배짱조차 없는 위인이었다.김태하의 수하들에게 덜미를 잡혀 끌려가는 순간부터 이미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애원했다. 그 뒤로는 묻는 말마다 막힘없이 털어놓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낱낱이 자백했다.전체적인 경위는 강지현 일행이 짐작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조상욱은 오랜 세월 김무언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살아왔다.김무언이 자신에게 건네던 자금줄을 매정하게 끊어버리자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단지 내에서 발생했던 독성 가스 누출 사고 역시 김무언을 완전히 매장하기 위해 조상욱이 꾸민 자작극이었다.다만 당시 조상욱 본인도 겁에 질려 허둥댔고 계획 자체도 치밀하지 못했던 탓에 그가 의도했던 만큼 치명적인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그 후 몇 년 동안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는 궁지에 몰린 끝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김무언을 찾아갔다.하지만 김무언은 일말의 온정조차 베풀지 않았고 과거 조상욱에게 품었던 친구로서의 미안함마저 이미 깨끗이 털어낸 뒤였다.조상욱은 배신감과 분노에 눈이 뒤집혔고 결국 다크웹을 통해 청부업자를 고용해 김태하를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던 중 우연히 김씨 가문과 주씨 가문 사이에 얽힌 관계를 알게 되었고 잔머리를 굴린 끝에 엄경미에게 은밀히 접근했다.조상욱이 건넨 뜻밖의 단서로 인해 엄경미는 주승호의 죽음이 김무언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하지만 엄경미 역시 얄팍한 사기극에 쉽게 넘어갈 만큼 허술한 여자가 아니었다.그녀는 즉시 사람을 풀어 조상욱의 과거 행적과 신분을 샅샅이 조사했다.김무언에게 그토록 뼈에 사무친 원한이 있고 정말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면 조상욱의 성격상 진작 김무언의 멱살을 잡고 협박했을 터였다.그러나 엄경미에게 조상욱이 과거에 무
엄경미는 강지현이 이미 많은 내막을 파악했으리라고 짐작했고 어쩌면 자신의 뒤를 밟으며 마지막 발악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렇게 대담한 수를 들고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강지현은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사람을 빼앗아 갔다.“강지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한테서 중요한 증인을 빼앗아 간다고 해서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시퍼렇게 질린 엄경미가 독설을 내뱉었지만 강지현은 오히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받아쳤다.“중요한 증인이라니요? 설마...”“대표님도 태하의 아버지에게 원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 사람은 개인적인 원한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김씨 가문을 무너뜨리려 했고 과거에는 다크웹을 통해 청부업자까지 고용해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죠.”“아, 이름이 조상욱이었던가요?”강지현이 느긋하게 그 이름을 내뱉는 순간, 엄경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붉게 충혈된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번뜩였다.김태하는 차갑게 엄경미를 바라보며 강지현의 손을 움켜잡았다.그녀가 한창 엄경미를 몰아붙이며 말을 이어가고 있을 때 김태하는 힘주어 강지현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엄 대표님.”김태하는 강지현의 말을 이어받아 한층 더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조상욱의 말은 믿을 만한 게 못 됩니다. 만약 그 사람이 대표님을 찾아갔다면 어떤 의도로 접근한 것인지 잘 판단하셔야겠죠. 하지만...”“그 사람은 이미 궁지에 몰린 쥐나 다름없습니다. 고문과 회유 앞에서 버틸 수 있을 리 없고 남을 해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배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진실을 듣는 건 어렵지 않겠죠.”김태하의 말 하나하나에는 날카로운 의미가 담겨 있었다.엄경미는 두 사람이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 자신을 압박하는 모습에 기가 막혀 헛웃음까지 흘렸다.하지만 김태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하가 뒤에서 걸어 나오자 그의 기척을 느낀 수행원들이 곧바로 엄경미의 앞을 가로막았다.김태하는 예의를 갖추듯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지금 지현이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김태하의 말에 엄경미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자 강지현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엄 대표님, 제가 오늘 찾아온 건 아버지를 둘러싼 일 때문이에요. 마침 손에 넣은 단서도 몇 가지 있어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그녀는 엄경미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게다가 약속하셨던 열흘이라는 기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대표님께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고요.”엄경미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우리 사이에 한가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을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더군다나 모든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 전까지는 주승호를 죽인 용의자의 가족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이 같다면 사적인 감정은 잠시 내려놓으셔야죠.”강지현은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믿고 안 믿고는 대표님께서 직접 판단하실 몫이에요. 하지만 대표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다는 제 아버지를 해친 진범이 아무런 죗값도 치르지 않은 채 활개 치고 다니는 모습을 대표님 역시 두고 보지는 못하실 텐데요?”엄경미는 강지현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강지현도 나한테서 순순히 답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혹시 무슨 소식을 듣고 일부러 내 발을 묶어두려는 건가?’두 사람은 한동안 호텔 입구에서 팽팽한 대치를 이어갔다.사방을 감도는 기류는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날카로웠다.엄경미 곁을 지키는 경호원들은 언제든 움직일 기세로 몸을 굳혔고 김태하 측 사람들 역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맞섰다.하지만 엄경미에게는 오래 버틸 인내심이 없었다.조금 전 임지태는 그녀에게 송준호와 한민혁이 막 헤어졌고 한민혁이 있는 곳이 자신과 그
송준호가 은주희에게 연락을 취한 시점을 고려하면 이번 실종 사건은 한민혁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고 이미 다른 세력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송준호는 상대보다 먼저 한민혁을 확보한 것으로 보였다. 만약 예상이 맞다면 혼자 움직인 그가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도 컸다.김태하는 즉시 수하들을 보내 그를 돕고 싶었지만 송준호는 워낙 행적을 숨기는 데 능해 뒤를 쫓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게다가 자기 일에 타인이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었고 더군다나 지금은 통신마저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강지현은 더 이상 손을 놓고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곧장 수하들을 움직여 엄경미의 동태를 샅샅이 파악하도록 지시했다.송준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면 엄경미 측에서도 반드시 눈에 띄는 움직임이 포착될 터였다.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지현의 손에 사진 몇 장이 들어왔다.엄경미는 최근 며칠 동안 리조트에 머물지 않고 리조트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한 호텔에서 누군가를 접대하고 있었다.아무리 중요한 손님이라고 해도 엄경미가 매일 밤 직접 찾아가 접대할 리는 없었다.진작부터 그들은 조상욱이 호텔 내부에 억류되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만약 송준호가 한민혁과 감시 영상이 담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조상욱이야말로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강지현의 의중을 알아차린 김태하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때로는 정공법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지.”엄경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떳떳한 자들이 아니었고 조상욱 역시 다르지 않았다.악으로 악을 제압한다면 그들이 당했던 수모를 그대로 돌려주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강지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결국 결심을 굳혔다.“내가 직접 엄경미를 만나야겠어.”그녀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김태하는 짧은 시선만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그녀의 뜻을 그대로 알아차리고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곁에 있던 은주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어머니, 집에서 기
김태하는 또다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안에는 씁쓸한 자조가 배어 있었다.하지만 그가 애써 가볍게 넘기려 할수록 주호석이 던진 말들이 얼마나 무겁고 날카로운 상처로 남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김태하는 늘 마음에 짊어진 무거운 압박을 장난스러운 말투 뒤에 숨기곤 했다.강지현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고 그의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할아버지가 대체 너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듣기 힘든 말을 쏟아내면서 네 마음을 헤집어 놓은 건 아니지?”“아니야.”김태하는 강지현의 부드럽고 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마치 여린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보듬어주듯, 그의 손길은 다정하고 세심했다.“그보다 훨씬 심한 말도 수없이 들으며 버텼어. 네 할아버지는 오히려 나를 꽤 정중하게 대해 준 편이지.”“늘 입으로만 강한 척은...”“진심으로 네 할아버지 마음이 이해가 가긴 해. 내 아버지에게 쌓인 원한이 깊으실 텐데 정작 가장 아끼는 손녀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으니... 어르신으로서는 속이 뒤집힐 만도 하지.”진지하게 말을 꺼내던 김태하의 목소리 끝에는 어느새 얄궂은 장난기가 묻어났다.“김태하, 넌 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뻔뻔해지는 거야?”“내가 틀린 말 했어?”김태하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의 따뜻한 숨결이 강지현의 귓가를 스치듯 파고들자 그녀는 간질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살짝 몸을 움찔했다.그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려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마음 쓰고 아파할까 봐 일부러 심각한 상황을 가볍게 포장하려는 것이었다.그렇기에 강지현 역시 더는 집요하게 캐묻지 않았다.깊은 밤, 주호석의 서재를 나온 엄경미는 곧장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 리조트를 빠져나왔다.그녀는 뒷좌석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내내 가슴속에 억눌러 두었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오늘 밤 주호석이 자신을 부른 목적은 분명했다.그녀에게 악역을 자처해 강지현과 김태하를 하루라도 빨리 갈라놓을 방법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아무리
배아름은 감히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정강이를 그대로 걷어차였다.극심한 통증에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아낸 뒤 곧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너까지 나를 배신하는 거냐? 내가 너한테 잘해주지 않았어?”주호석이 천천히, 한 걸음씩 배아름 앞으로 다가가자 곁에 있던 사람이 서둘러 지팡이를 다시 건넸다.배아름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도 못한 채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회장님께서는 제게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저는 평생 회장님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주호석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왜 강지현을 막지 않았지?”“지금 이 자리와 상황에서는 회장님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강지현 씨를 강제로 가둘 수는 없었습니다.”배아름이 다급히 설명했다.사실 주호석 역시 지금의 강지현을 억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수록 그의 분노는 더 커졌다.배아름은 그저 우연히 그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주호석은 한동안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다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가서 엄경미를 데려와.”평소라면 배아름을 아끼고 편애하던 주호석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녀가 다리를 절며 걷는 모습을 보고도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배아름은 낮게 대답했다.“네.”...술집을 뛰쳐나온 강지현은 김태하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이미 떠난 줄 알고 호텔 입구에 도착한 순간, 차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김태하가 눈에 들어왔다.강지현은 곁에 있던 수행원이 차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직접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김태하! 제대로 설명해 봐!”차에 타자마자 그녀는 김태하의 팔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김태하는 갑작스러운 강지현의 추궁에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뭘 설명하라는 거야?”그는 잠시 망설이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강지현의 붉게 달아오른 두 뺨을 본 김태하는 미간을 좁히며 곧바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할아버지가 너를 곤란하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