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하는 또다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안에는 씁쓸한 자조가 배어 있었다.하지만 그가 애써 가볍게 넘기려 할수록 주호석이 던진 말들이 얼마나 무겁고 날카로운 상처로 남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김태하는 늘 마음에 짊어진 무거운 압박을 장난스러운 말투 뒤에 숨기곤 했다.강지현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고 그의 단단한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할아버지가 대체 너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듣기 힘든 말을 쏟아내면서 네 마음을 헤집어 놓은 건 아니지?”“아니야.”김태하는 강지현의 부드럽고 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마치 여린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보듬어주듯, 그의 손길은 다정하고 세심했다.“그보다 훨씬 심한 말도 수없이 들으며 버텼어. 네 할아버지는 오히려 나를 꽤 정중하게 대해 준 편이지.”“늘 입으로만 강한 척은...”“진심으로 네 할아버지 마음이 이해가 가긴 해. 내 아버지에게 쌓인 원한이 깊으실 텐데 정작 가장 아끼는 손녀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으니... 어르신으로서는 속이 뒤집힐 만도 하지.”진지하게 말을 꺼내던 김태하의 목소리 끝에는 어느새 얄궂은 장난기가 묻어났다.“김태하, 넌 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뻔뻔해지는 거야?”“내가 틀린 말 했어?”김태하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의 따뜻한 숨결이 강지현의 귓가를 스치듯 파고들자 그녀는 간질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살짝 몸을 움찔했다.그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려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마음 쓰고 아파할까 봐 일부러 심각한 상황을 가볍게 포장하려는 것이었다.그렇기에 강지현 역시 더는 집요하게 캐묻지 않았다.깊은 밤, 주호석의 서재를 나온 엄경미는 곧장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 리조트를 빠져나왔다.그녀는 뒷좌석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내내 가슴속에 억눌러 두었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오늘 밤 주호석이 자신을 부른 목적은 분명했다.그녀에게 악역을 자처해 강지현과 김태하를 하루라도 빨리 갈라놓을 방법을 찾아내라는 것이었다.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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