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결혼, 진짜 신분의 모든 챕터: 챕터 691 - 챕터 700

868 챕터

제691화

강지현은 더는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다.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다.김태하는 거의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범인을 강지현 옆으로 거칠게 끌고 갔다.“자리 바꿀 수 있잖아. 네가 앉아!”김태하는 범인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세게 들이댔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머리를 뚫을 듯한 기세였다.범인은 총을 들이대고도 태연했다.“자리를 바꾸라고? 별생각을 다 하네. 무게가 조금만 어긋나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어. 게다가 나도 죽게 생겼는데 내가 왜 너희 말을 들어야 하지?”그 역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하지만 애초에 목숨을 내놓고 사는 자였다. 정말 마지막 순간이 오면 차라리 깔끔하게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김태하가 충동적으로 방아쇠를 당길까 걱정한 송준호가 곧장 말했다.“저놈은 협조 안 할 겁니다. 죽여 봐야 소용없어요. 게다가 자리를 바꾸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강지현은 숨이 심하게 가빠졌다. 그녀는 밀려오는 공포를 눌러 보려고, 좌석을 꽉 움켜쥔 채 눈을 감았다.송준호도 강지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낮게 말했다.“천천히 숨 쉬어. 너무 긴장하지 마. 아직 시간은 있어.”김태하는 이를 악물었다. 다시 범인에게 총구를 겨눴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대신 총자루로 범인의 목덜미를 세게 내리쳐 기절시킨 뒤 총을 빼앗았다.그제야 강지현 곁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무서워하지 마. 너한테 아무 일도 없게 할 거야. 우리 아이도 내가 꼭 지킬게.”강지현은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바라봤다. 위로하려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송준호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김태하는 그와 시선을 맞추고 낮게 말했다.“부탁드립니다.”구조 인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제는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었다.이곳에서 폭발 장치를 해제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송준호뿐이었다.김태하는 송준호 역시 돈을 받고 움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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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2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하늘이 그렇게까지 잔인하지는 않을 겁니다.”김태하가 희미하게 웃으며 강지현만 바라봤다.“나 믿어?”강지현은 눈물에 젖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김태하는 그녀를 끌어안듯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무게 절반가량을 강지현이 앉아 있는 좌석 가장자리에 조심스럽게 실었다.송준호가 가장 먼저 의도를 알아챘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압력 감지 장치는 한 번 무게가 늘어나면 다시 줄어들어서는 안 됐다.즉 김태하가 방금 좌석에 더한 작은 무게조차 이제는 함부로 빼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강지현도 곧바로 김태하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강지현은 세차게 떨었다.“하지 마. 제발...”김태하가 부드럽게 달랬다.“착하지. 이번 한 번만 더 내 말 들어.”겉으로는 놀랄 만큼 평온했지만 속으로는 거센 감정이 들끓고 있었다.“안 돼. 정말 안 돼...”강지현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송준호가 긴장한 목소리로 둘을 말렸다.“조심하세요. 두 사람 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김태하는 강지현의 뺨을 엄지로 쓸어 눈물을 닦아 주었다.“내 말 잘 들어.”“지현아, 너도 알잖아. 내가 너보다 몸도 더 잘 쓰고 반응도 조금 빨라. 자리를 바꾸려면 바로 그 순간의 무게 차이가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해. 움직임도 아주 빠르고 안정적이어야 하고.”“난 할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고.”“싫어...”강지현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바로 앞의 김태하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김태하가 낮게 물었다.“우리 둘은 같이 죽어도 된다고 쳐. 그럼 우리 아이는? 아이까지 포기할 거야?”그 한마디에 강지현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눈물이 둑이 무너진 듯 쏟아졌다. 여전히 고개는 젓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날 믿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김태하는 끝까지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는 강지현의 손을 꼭 잡은 채 아주 조금씩 몸을 옮겼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준호도 등줄기에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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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3화

이제는 송준호조차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자 김태하는 곧바로 강지현을 바라봤다.“지현아, 한민혁 데리고 먼저 내려. 안전한 곳으로 가.”“싫어... 나도 너랑 같이 있을 거야.”강지현은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김태하는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깊게 입을 맞췄다. 마지막 인사라도 되는 듯 쓰고 애틋한 입맞춤이었다.강지현이 몸부림치자 김태하가 그녀의 입술을 아주 살짝 깨물었다.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입술을 깨문 것이지만 끝내 세게 물지는 못했다.“아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지금은 네 몸부터 지켜야 해.”김태하는 다시 강지현의 얼굴을 감싸고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로 깊이 넣었다.“우릴 해치려는 사람한테는 절대 약해지면 안 돼. 지지도 말고.”“지금까지도 잘했잖아. 앞으로도 그렇게 해.”김태하가 한마디 한마디 할수록 강지현은 오히려 더 버티기 힘들어졌다.그때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이 버스 안으로 쏟아졌다.한민혁은 화들짝 놀라 송준호 뒤로 숨었다.“준호 형님, 저 죽이려던 놈들이 또 온 거 아닐까요...?”송준호는 대답 대신 곧바로 총을 들었다.강지현과 김태하도 빛이 비치는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버스에 올라온 사람은 두 손을 먼저 들어 보이며 다급하게 외쳤다.“대표님, 지현 씨! 접니다!”엄경미 쪽 사람이 아니었다.최동윤이었다.은주희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최동윤은 곧바로 김태하와 강지현을 찾으러 나섰다.김태하가 보낸 위치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고 그 뒤로 연락까지 끊겨, 최동윤은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 주변을 계속 수색했다.다행히 도중에 버스에서 먼저 내린 사람들을 만나 겨우 이곳을 찾아낸 것이다.김태하가 곧바로 명령했다.“지현이랑 증인 데리고 여기서 나가.”최동윤은 아직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범벅이 된 강지현의 얼굴만 봐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대표님, 그게 무슨...”삐삐.바로 그때 송준호가 지니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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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4화

송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기절해 있는 두 범인의 몸을 재빨리 뒤져 쓸 만한 도구를 챙긴 뒤, 두 사람을 끌고 가 발로 밀어 버스 밖으로 내던졌다.그러고는 다시 김태하 곁으로 돌아왔다.김태하가 미간을 좁혔다.“송준호 씨.”송준호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나 원래 영웅 노릇하는 사람 아닙니다. 그래도 오늘 일은... 나한테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요.”김태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책임이요?”송준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임지태는 오랫동안 그가 믿고 따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직이 지금처럼 변해 버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마저 부끄러웠다.하지만 그런 사정까지 김태하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김태하도 더 묻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 죽음을 앞둔 순간에는 많은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법이었다.이대로 생이 끝난다 해도 김태하는 후회가 없었다. 부와 권력도 누려 봤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힘으로 아내와 아이를 지킬 수 있었다.그것만으로 충분했다.송준호는 긴장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려는 듯 말을 걸었다.“솔직히 말하면 김 대표님, 꽤 마음에 듭니다. 요즘은 부부라도 서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하물며 김 대표님은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김태하가 옅게 웃었다.“사랑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지현이는 내가 모든 걸 걸고 지킬 만한 사람이에요.”목소리는 부드럽고 담담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사실 김태하도 병을 알게 된 직후에는 죽음이 두려웠다. 지금 누리는 하루하루가 너무 아까웠고 마지막 순간 혼자 남겨질 것 같은 외로움과 억울함도 무서웠다.하지만 강지현의 임신 소식을 들은 순간, 그는 새 생명이 주는 벅찬 기쁨을 처음 알았다.세상의 모든 공포를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가장 진실한 마음일 것이다.강지현을 만나고 나서야 김태하는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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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5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강지현은 속이 뒤집히는 듯해 계속 헛구역질을 했다. 아까는 극도의 긴장 탓에 버텼지만 위험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몸이 한꺼번에 반응하는 듯했다.온몸이 식은땀에 젖었다. 눈을 감기만 하면 버스가 폭발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이 떠올랐다.불길한 예감은 갈수록 짙어졌다. 김태하를 혼자 두고 온 일이 미친 듯이 후회되기 시작했다.“최 비서님... 부탁드릴게요. 우리 다시 돌아가요.”최동윤의 마음도 엉망이었다. 그 역시 김태하가 걱정돼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아직 완전히 안전한 상태가 아니었다.그 조직의 사람들이 뒤쫓아 올 가능성도 충분했다. 김태하를 위해서라도 최동윤은 강지현부터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야 했다.“지현 씨,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은 반드시 무사하실 겁니다.”최동윤은 차를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여 길을 내달렸다.강지현의 휴대폰은 이미 배터리가 다 닳아 꺼진 상태였다. M국은 구조 요청을 해도 대응이 느렸고 경찰도 믿기 어려웠다. 그러니 그런 불법 조직이 대놓고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었다.그래도 강지현은 앞서 주호석과 지현우에게 모두 구조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왜 김태하 쪽 사람만 도착한 걸까.생각할수록 절망이 깊어졌다. 지금 되돌아가는 게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은 강지현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김태하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대신해 그 자리에 앉았다는 생각만 하면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옆에서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있던 한민혁조차 강지현이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우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준호 형님이랑 김 대표라면... 분명 무사하실 겁니다. 좋은 분들은 하늘이 돕는다고 하잖아요. 일단 여기서 먼저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차는 계속 빠르게 달렸다.심한 메스꺼움과 슬픔이 겹친 강지현은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 여러 대와 고급 승용차들이 앞길을 막아섰다.차에서 내린 사람은 지현우였다. 강지현의 메시지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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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6화

지현우는 목이 바짝 말랐다. 조금 전까지 절박하게 김태하를 구해 달라고 매달리던 강지현의 모습이 떠오르자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그는 잠긴 목소리로 지시했다.“수색 범위를 더 넓히세요. 어떻게든... 김 대표님을 찾아야 합니다.”희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지현우 자신도 알고 있었다.불타는 잔해에서는 계속 탁탁 터지는 소리가 났고 주변에는 매캐한 탄내가 가득했다. 저 안에 있었다면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없었다.한편 소식을 들은 주호석은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왔다.강지현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링거를 맞고 있었다.의사의 진단으로는 몸에 큰 이상은 없었다. 다만 임신 중인 데다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에서 지나치게 큰 충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뇌혈류가 부족해지면서 쓰러진 것이었다.주호석이 놀라 되물었다.“뭐라고? 지현이가 임신했다고?”그는 곧바로 배아름을 바라봤다. 주호석은 그동안 배아름에게 강지현 곁을 한시도 떠나지 말라고 지시했다.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고 했는데, 임신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배아름이 곧장 고개를 숙였다.“제 불찰입니다, 회장님.”그때 은주희가 최동윤과 여러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도착했다. 소식을 들은 뒤 자신의 상태는 돌볼 겨를도 없이 곧바로 달려온 참이었다.병실 밖에서 주호석을 발견하자 은주희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그들 뒤에는 한민혁도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은주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주 회장님, 이제 만족하십니까?”“지현이 외할아버지이시고 자식까지 키워 보신 분이잖아요. 우리 김씨 가문이 주승호 씨를 일부러 해칠 리 없다는 건 둘째 치고, 윗세대에 원한이 있었다 해도 그 원한을 아이들한테까지 이어 가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남의 말만 믿고 친손녀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여기 서 계실 낯이 있으세요?”말을 이을수록 은주희의 감정은 더 격해졌다. 평소라면 지켰을 체면도 예의도 이미 안중에 없었다.정말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악인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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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7화

주호석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은주희를 가만히 살폈다.강지현이 왜 그토록 김씨 가문 편을 드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김씨 가문 사람들 이야기만 나오면 늘 좋은 말만 늘어놓지 않았던가. 확실히 사람 마음을 붙잡는 데는 재주가 있는 집안이었다.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자란 강지현 같은 아이는 서로 살뜰히 챙기는 가족의 모습에 약할 수밖에 없다고 주호석은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이미 수많은 일을 겪어 본 사람이었다.재벌가에서 가족애란 이해관계와 계산, 이기심 앞에서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었다. 진심 같은 게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김태하가 강지현에게 보이는 마음도 한때의 사랑놀음이라고 여겼다.은주희는 친어머니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아이를 아낀다는 말은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주호석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보상하길 바라나? 나중에 지현이가 결혼할 때 내 재산 일부라도 떼어 혼수로 보태라는 뜻인가?”말속에 담긴 비아냥을 알아챈 은주희는 오히려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두 사람이 더 언쟁을 벌이기도 전에 병실 문이 열렸다.간호사가 강지현이 깨어났다고 알렸다. 은주희는 주호석과 더 따질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병실로 들어갔다.의식을 되찾은 강지현은 가장 먼저 김태하부터 찾았다.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에 김태하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지현은 은주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어머님, 태하는요...?”은주희도 순간 말문이 막혀 최동윤을 바라봤다. 최동윤이 김태하와 강지현을 데리러 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자신이 도착했을 때 들은 건 강지현이 쓰러졌다는 소식뿐이었다. 김태하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강지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설마... 무슨 일 생긴 거예요?”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링거 줄이 빠질 뻔했고 간호사와 주변 사람들이 서둘러 말렸다.최동윤도 곧장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지현 씨, 진정하세요. 지 대표님이 구조하러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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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8화

강지현은 끝내 주호석을 바라보지 않았다.입술을 세게 깨물던 강지현은 문득 자신이 미워졌다. 자신이 굳이 끝까지 결백을 증명하려 들지 않았더라면, 엄경미와 기어코 승부를 보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김태하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강지현이 차갑게 말했다.“나가 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누구를 지목하진 않았지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분명했다.배아름이 곧바로 분위기를 수습했다.“회장님, 저희도 나가 있죠. 강지현 씨는 지금 충분히 쉬셔야 합니다.”주호석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었다. 잠시 강지현을 바라보던 그는 결국 먼저 병실을 나갔다.은주희도 강지현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보고 사람들을 데리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현우가 병원에 도착했다.강지현은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만으로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그녀는 최동윤에게 몇 번이고 상황을 물었고 주변 지역의 뉴스까지 계속 찾아봤다.하지만 버스 폭발에 관한 기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식이 없다는 건 좋은 소식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그런데 지현우가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최동윤도 은주희도 함께 들어오지 않았다.지현우 혼자였다.강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태하는요? 혹시... 다친 건가요?”두려움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지현우는 시선을 피한 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후 내내 수색한 결과 버스 주변에서 여섯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하지만 심하게 훼손돼 신원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정도 폭발에서 김태하가 살아남았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다.그렇다고 임신한 강지현에게 지금 그 말을 그대로 전할 수도 없었다.은주희조차 소식을 듣고 무너졌는데 강지현이 어떻게 버티겠는가.하지만 숨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곧 뉴스에 알려질 테니 오래 감출 수도 없었다.지현우는 마른 침을 삼키고 침대 가까이 다가간 후,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지현 씨, 우선 진정하시고 제 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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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9화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강지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직 아무런 변화도 없는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그 안에는 자신과 김태하가 함께 만든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김태하가 자신에게 남긴 유일한 흔적일지도 몰랐다.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 사이에서 강지현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결국 강지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서럽게 무너졌다.지현우도 그런 모습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하지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떤 위로도 지금은 공허할 뿐이었다. 그저 강지현이 마음껏 울 수 있도록 곁을 지켜 주는 수밖에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강지현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표정은 놀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그녀가 지현우를 똑바로 바라봤다.“도와주세요.”지현우가 조용히 물었다.“무엇을 하면 됩니까?”강지현은 잠긴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발견된 시신들의 신원을 최대한 빨리 확인해 주세요.”“살아 있다면 반드시 찾아야 하고... 죽었다면, 그래도 제가 직접 태하를 확인해야겠어요.”지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강지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했다.“그리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태하에 관한 소식은 전부 막아 주세요. 미래 그룹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금세 냉정을 되찾은 강지현을 보고 지현우는 놀랐다.슬픔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강한 감정이 잠시 슬픔을 억눌렀을 뿐이었다. 김태하가 지켜 온 것을 대신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지현우가 병실에서 나오자 은주희가 다시 다가왔다. 그녀 역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김태하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은 자신이 버텨야 했다. 강지현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은주희는 이미 김무언에게 연락해 당장 M국으로 오라고 했다. 대신 지순옥과 김윤석에게는 아직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두 사람 모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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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0화

간호사가 안심시키듯 미소 지었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선생님께서 확인하셨는데 지금은 아기에게 큰 문제가 없습니다.”“다만 산모 몸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당분간은 침대에서 충분히 쉬셔야 해요. 무리하시면 유산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감정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셔야 하고요.”강지현은 힘없이 입꼬리를 올렸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침대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건 직접 김태하를 찾으러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강지현이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밤이 깊어졌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 무렵 은주희와 최동윤이 다시 병실을 찾아와 뭐라도 조금 먹으라고 권했다.현재는 도시 전역에 대규모 경찰력이 투입돼 김태하와 강지현을 습격한 조직을 추적하고 있었다.다만 엄경미의 행방은 아직 찾지 못했다. 엄경미가 정말 도주했다면 사실상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평생 좇아온 명예와 돈, 권력도 모두 잃게 될 것이다.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강지현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싶은 건 오직 김태하의 소식뿐이었다.그래도 은주희 앞에서는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음식을 먹었고 조금씩 침착함도 되찾았다.오히려 은주희가 괜찮은지 먼저 챙길 정도였다. 겉으로만 보면 김태하가 사고를 당했다는 현실을 이미 받아들인 사람처럼 보였다.하지만 강지현이 조용하고 차분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더 불안했다.다음 날 오전 김무언이 병원에 도착했다. 주병찬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찾아왔다.두 사람은 차례로 강지현의 병실을 방문했다.두 사람 모두 오는 길에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설마 김태하가 이런 일을 당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공식적으로는 아직 실종 상태였다. 그렇지만 버스가 그 정도로 폭발한 상황이라면 사람이 무사하기 어렵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주병찬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무언은 강지현을 만나고 나온 뒤 그동안 억지로 버티다 결국 완전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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