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결혼, 진짜 신분의 모든 챕터: 챕터 821 - 챕터 830

868 챕터

제821화

민감한 부위를 건드리자 김태하가 낮게 신음했다. 그는 멋쩍은 듯 시선을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응.”“왜 여기에 숨겨둔 거야?”강지현의 귓불도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묻더니 곧 김태하의 손을 뿌리치고 그의 상의를 걷어 올려 안쪽에 숨겨진 위치추적기를 꺼냈다.드러난 남자의 피부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상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번 부상으로 생긴 상처였다.강지현이 그의 가슴을 쓸어내리자 김태하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부서진 별빛처럼 일렁였다.김태하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내가 먼저 목숨을 걸고 널 지킬 생각이었어. 적어도 누군가 와서 널 구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강지현도 김태하가 아무런 대비도 해두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의 손은 위치추적기를 꺼낸 뒤에도 자신도 모르게 그의 단단한 가슴 위에 머물렀다.위에서부터 아래로.그가 입은 상처 하나하나와 그가 겪었을 고통을 직접 어루만지며 헤아려보고 싶었다.강지현의 가벼운 손길에 김태하는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온몸의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지현은 아쉬운 마음으로 손을 거두고 다시 그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더는 다치면 안 돼. 알겠지?”낮게 가라앉은 강지현의 숨소리를 들으며 김태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응.”육운성이 세 번째 담배를 피울 때쯤, 김태하와 강지현이 손가락을 꼭 맞잡은 채 걸어 나왔다.강지현은 키가 큰 편이었지만, 훤칠한 김태하 곁에 서자 더 작고 가녀려 보였다.육운성이 인터넷에서 보았던 강지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잘 어울렸다.김태하는 안색이 창백했고 강지현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화려한 재벌가의 저택이든 폐허 같은 낡은 집이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유난히 눈부실 것 같았다.육운성이 잠시 넋을 놓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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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강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만큼은 예외였다.“너무 늦었어. 말하려면 내일 해야지. 게다가...”김태하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의 뺨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당분간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나뿐만 아니라 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겠어.”김태하의 허리가 살짝 움직이자 강지현은 그 위에 두 손을 꼭 얹은 채 그의 움직임을 따라갔다.김태하가 최동윤을 부르지 않고 육운성을 불렀을 때부터 강지현은 이미 그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강지현 역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행방을 알리지 않았기에 지금 김태하와 마찬가지로 실종된 상태였다.그녀는 아주 잠깐, 어쩌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둘만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것도 꽤 낭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강지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이번에 그녀가 사라진 건 엄경미가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증거가 부족한 상황이니 굳이 서둘러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게다가 입찰까지는 아직 며칠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김태하 역시 강지현과 같은 생각이었다.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어떤 소식도 새어나가서는 안 됐다. 결국 두 사람은 육운성에게 계속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강지현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김태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이미 다 준비해 둔 모양이네? 최동윤도 알고 있어? 혹시 주상 그룹과 미래 그룹이 이렇게 술렁이는 것도 모두 계획의 일부였던 거야?”강지현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손을 들어 김태하의 턱을 톡톡 건드리며 눈을 반짝였다.“네 생각에는?”“내 생각에는...”김태하는 고개를 숙여 코끝을 맞대며 말을 이었다.“그동안...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나도 네가 죽도록 보고 싶었어.”강지현은 말을 마치고 남자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창밖의 밤이 서서히 걷히고 가장 어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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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이를 본 주단우가 어깨를 으쓱했다.“뭔가 잘못 아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회사 업무를 대신 처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상 그룹은 주씨 집안의 그룹이기도 한데 제가 그런 일을 저지를 리가 없잖아요.”주단우는 다시 주병찬을 향해 말을 이었다.“큰아버지, 큰아버지는 진작부터 주상 그룹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잖아요. 오늘은 무슨 일로 이러시는 거죠?”“주단우, 나도 어쨌든 주씨 가문의 사람이야. 너야 좋게 말하면 주씨 가문에서 키운 양자지만, 실제로는 엄경미의 앞잡이에 불과하지. 엄경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주씨 가문에서도 훤히 알고 있어. 엄경미조차 주상 그룹을 건드리지 못하는데, 너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주병찬이 냉소했다. 주단우와 더 말을 섞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주단우는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큰아버지께서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 저를 조사하시겠다니, 좋습니다. 저도 협조해서 제 결백을 증명하면 되겠네요. 하지만 오늘 진행하던 협력 사업은 물거품이 됐으니 주상 그룹 규정에 따라 큰아버지께서 전적으로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만약 허위 신고로 밝혀지면 이사회에서 물러나셔야 하고요. 보유 지분도 전부 반환하셔야 합니다.”주단우의 말은 순전히 주병찬을 겁주기 위한 것이었다.주병찬은 이런 수작에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보안요원과 경찰관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주단우를 데리고 나갔다.밖으로 나온 주단우는 정면에서 현다영과 마주쳤다.현다영은 차갑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분노가 어려 있는 듯했지만, 주단우는 지금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아마 통쾌함이 더 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또다시 잡혀가는 모습을 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주단우가 떠나자 회사는 다시 발칵 뒤집혔다.주병찬은 일단 회사에 남아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수습했다.현다영은 주병찬이 직접 나섰다는 사실에 한숨을 돌리면서도, 곧 하원영과 주시언을 떠올렸다.역시나 현다영이 하원영을 찾아갔을 때, 하원영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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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예전에는 늘 걱정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았거든요. 나 자신을 믿지 못했고, 다른 사람도 믿지 못했죠.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도 감히 좋아하지 못했고 원하는 게 있어도 감히 가지려 하지 않았어요. 충분히 노력해 볼 수 있는 일도 늘 무력하게 포기만 했고요.”“하지만 주시언 때문에 큰 힘을 얻었어요. 강지현 씨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요.”“억눌러둔 감정은 오히려 사람을 옭아매더라고요. 진짜 감정에는 어떤 형태도, 기한도, 족쇄도 필요하지 않은 거잖아요. 단 한 순간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후회는 없어요.”예전에 하원영은 친구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두려워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마음이 변할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늘 벽을 세운 채 사람을 대했다.하지만 사실 그녀의 내면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었고 아무런 힘도 없었다.감정을 가장 감당하지 못했던 사람은 사실 그녀였다.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때로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이제 그녀는 주시언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았고 그에게서 받은 사랑 덕분에 마음속에도 용기가 생겨났다.그래서 예전의 두려움은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힐 수 없었다.현다영은 하원영의 말에 진심으로 기뻤다.하원영도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자신이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저녁이 되어 회사에서 나온 현다영은 주상 그룹 건물 앞에 서 있는 송준호를 발견했다.송준호는 늘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기에 현다영은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무척 반가웠다.“준호 오빠, 혹시 지현 언니 소식 알아냈어요?”현다영은 송준호에게 무슨 단서라도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송준호는 고개를 저었다.현다영이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어떻게... 어떻게 오빠까지 못 찾을 수가 있어요?”현다영에게 송준호는 마지막 희망이었다.송준호의 실력을 현다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조차 강지현을 찾지 못한다면...“전에는 조직원들이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정보망이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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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현다영은 이미 맥주를 두 캔이나 마신 뒤였다. 꾹 눌러두었던 감정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송준호와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그래? 나 먹는 게 좀 거칠긴 한데.”송준호는 현다영의 말에 조금 쑥스러운 듯 손가락으로 다시 입가를 닦았다.“그래도 먹는 걸 보면 정말 맛있게 먹잖아요. 한눈팔지도 않고, 먹는 데만 집중하고.”현다영은 진심으로 송준호를 칭찬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듬직한 남자를 좋아했다.하지만 송준호는 자신이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미안해. 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보통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도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밖에 못 해.”현다영은 웃으며 맥주를 한 캔 더 따고는 송준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충분히 잘하는 거예요. 전 조용한 사람이 좋거든요.”송준호는 겉보기에는 거칠어 보였지만 가끔은 꽤 다정한 면이 있었다. 현다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없이 맥주를 몇 모금 더 마셨다.두 사람은 그렇게 작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묵묵히 음식을 먹었고 다른 한 사람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송준호가 더는 먹지 못할 때쯤 현다영에게도 술기운이 올라오면서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송준호에게 물었다.“지현 언니, 아무 일도 없겠죠?”“없을 거야.”송준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강지현은 강한 사람이니까.”현다영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잠시 후 송준호가 현다영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그런데 넌 왜 그렇게 강지현을 걱정하는 거야?”현다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송준호는 자신이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나 싶었다.“두 사람이 친한 사이라는 건 알아. 그런데 내가 보기엔 너 원래 꽤 이성적인 편이었잖아.”송준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사실 현다영이 주단우를 찾아갔던 그날 밤, 그는 현다영의 집 근처에 있었다.늦은 시간에 호텔로 사람을 만나러 간 현다영이 걱정됐던 송준호는 몇 가지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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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송준호는 자신이 이제 다시 돌아갈 곳도, 뿌리내릴 곳도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어디가 집인지도,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다 지나간 일이고 예전은 예전일 뿐이야. 네 친구가 네가 지금까지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안다면 분명 행복해할 거야.”송준호는 진심으로 현다영을 위로했다. 하지만 말을 마치고 보니 현다영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현다영은 품에 빈 맥주 캔을 안고 있었다.그는 가까이 다가가 맥주 캔을 치운 뒤, 그대로 그녀를 안아 들어 침실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송준호는 테이블 위의 쓰레기를 간단히 정리한 뒤 소파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다음 날 아침, 현다영이 눈을 떴을 때 송준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현다영은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을 바라보며 한동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어젯밤 나를 방까지 데려다준 게 송준호인가? 언제 떠난 거지?’소파에 앉은 현다영은 어젯밤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송준호를 떠올리자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어젯밤 도대체 왜 그런 거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자를 집에 데려와 하룻밤을 보내고 심지어 그 사람 앞에서 취하기까지 한다니... 현다영, 너 미친 거야?’...아침부터 주상 그룹 건물 밖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현다영은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찡그린 채 창가로 다가갔다.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찰차와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어제 끌려갔던 주단우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차에서 당당하게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그는 손을 들어 마치 레드 카펫을 밟는 스타처럼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주변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를 맞이했고 마치 스타를 에워싸듯 그와 함께 주상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무슨 상황이죠? 주단우 씨, 어제 조사받으러 끌려간 거 아니었어요?”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주단우가 풀려나다니. 설마 주병찬의 고발 내용이 전부 거짓이었던 걸까?’현다영은 직접 상황을 확인하러 달려가고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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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설마 주단우는 애초에 주병찬이 나설 것까지 예상하고 판을 짜둔 걸까?’주병찬은 주단우에게 밀려나면서 이미 체면을 구겼다. 그런 그가 다시 주단우를 상대할 방법을 찾는 건 더욱 어려워질 터였다.하원영은 현다영이 다급해하는 것을 알고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달랬다.엄경미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주단우 역시 주상 그룹에서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상황을 뒤집을 기회가 있을지도 몰랐다.주단우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엄경미의 전화를 받았다.주단우 쪽에서 벌어진 일은 엄경미도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다.모든 것은 그녀의 계획 안에 있었다. 주단우가 주상 그룹으로 돌아와 대놓고 움직이면 반드시 주씨 가문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될 터였다.주병찬이 아니더라도 주단우는 필연적으로 조사받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엄경미는 미리 주단우와 계획을 세워두었다.그녀가 지금 주상 그룹의 자산을 서둘러 모조리 빼내려 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주단우가 겉으로 벌이는 일들은 엄경미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주상 그룹이 수년간 보유해 온 핵심 특허였다.그것들은 어떤 프로젝트나 자산보다도 훨씬 가치가 있었다.게다가 강지현의 자산은 이미 그녀의 손에 넘어와 있었다. 강지현이 완전히 사라지기만 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모든 게 제 손안에 있으니 엄마는 걱정하지 마세요.”주단우는 전화를 끊고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서는 데이터가 한창 복사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도 곧 사라졌다.엄경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집사에게서 다른 전화를 건네받았다.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임지태였다.두 사람은 지금 암호화된 보안 회선을 이용해 연락하고 있었다.임지태는 이미 국내로 돌아온 상태였고 엄경미의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함께 떠날 예정이었다.엄경미는 시간을 확인했다. 주단우가 데이터를 모두 전송하려면 적어도 내일 정오까지는 기다려야 했다.하지만 그녀는 주단우를 그다지 믿지 않았고 마지막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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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주단우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사무실 안은 불도 켜지 않은 채 칠흑같이 어두웠고 컴퓨터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현다영이 주단우가 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사무실 밖에서는 안에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그런데 현다영이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있던 순간,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입을 손으로 힘껏 틀어막았다.“읍!”“소리 내지 마.”주단우가 낮게 경고했다.현다영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바로 그때 사무실 문밖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잠시 문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은 곧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주단우는 현다영을 시야에서 벗어나는 곳으로 재빨리 끌어당긴 뒤, 두 팔로 그녀를 꽉 붙잡았다.현다영은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아니면 주단우의 말대로 가만히 있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지금 그녀는 주단우의 품에 바짝 붙어 있었고 그의 심장도 빠르게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러는 거지? 설마 들어온 사람이 주단우와 한패가 아닌 건가?’현다영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그녀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사무실 안을 살펴보려 했지만 들려오는 것은 책상으로 다가가는 발소리뿐이었다.곧이어 희미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현다영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길게 빼 주단우를 바라봤다. 주단우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어둠 속이라 남자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현다영의 직감 역시 상대의 말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한참이 지나자 상대가 컴퓨터를 껐다.하지만 그는 그대로 떠나지 않고 갑자기 사무실의 불을 켰다.다행히 주단우는 조금 전 현다영을 붙잡은 채 수납장 뒤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상대는 사무실 한가운데 서 있었기에 두 사람을 바로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눈치챈 듯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현다영은 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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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모든 것은 역시 강지현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엄경미는 주단우가 전송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단우는 강지현의 단말 데이터 저장소에 미리 손을 써둘 수밖에 없었다.데이터 전송이 완전히 끝나는 순간 자동으로 데이터를 삭제하도록 장치를 걸어둔 것이다.그리고 방금 사무실에 들어왔던 사람이 바로 엄경미가 보낸 사람이었다.엄경미는 주단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일 사람을 보내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를 확인하게 했다.그래서 주단우는 마지막 순간에 손을 쓴 것이었다.그는 데이터를 두 개의 복사본으로 만들어두었다. 하나에는 장치를 걸어두고 다른 하나는 그대로 남겨두었다.장치를 걸어둔 것은 전송 중인 데이터였고 손대지 않은 것은 원본 데이터였다. 엄경미가 또 다른 수를 남겨두고 수시로 확인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주단우는 엄경미가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은 몰랐다. 자기 일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입막음을 위해 사람을 죽이려 들 줄이야.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엄경미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증거가 생길 테니까.현다영은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주단우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만큼은 알아차렸다.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주단우와 함께 지하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엄경미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건물 안에서 방해가 될 만한 사람들도 이미 모두 정리해 두었을 터였다.현다영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야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얼마나 내려왔는지도 모를 만큼 계단을 내려갔을 때, 주단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숨을 곳을 찾아. 안전을 위해 내일 아침, 건물 안의 신호가 복구된 다음에 나와. 내가 말한 대로 해.”현다영은 순간 멈칫했다. 그녀 역시 주단우의 뜻을 이해했다.그들이 건물 안의 신호까지 차단할 수 있다면 지하실과 출입구에는 이미 사람들이 배치되어 삼엄하게 지키고 있을 터였다.그들의 목표가 주단우라면 그가 붙잡히는 순간 현다영은 안전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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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강지현과 김태하였다.강지현은 화려하면서도 얇은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제야 속았다는 걸 알았어? 너무 늦었네.”그녀의 가느다란 손에는 검은 권총 한 자루가 꽉 쥐어져 있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총구는 남자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김태하는 훤칠한 몸으로 강지현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미간에는 오히려 약간의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남자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 김태하가 한발 앞서 팔꿈치로 상대를 가격했다.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듯 손쉽게 상대의 총을 빼앗은 그는 그대로 강지현에게 건넸다.강지현은 양손에 총을 하나씩 들고 김태하를 향해 달콤하게 웃었다.“총을 들고 있으니까 이렇게 짜릿한 기분이구나. 어쩐지 저 범죄자들이 그렇게 기세등등하더라.”김태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조심해. 오발하면 안 돼.”강지현은 그저 한번 실컷 즐겨보고 싶었지만, 김태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강지현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너희... 이렇게 하면 무사할 줄 알았어? 잘 들어. 오늘 밤 너희는 반드시 죽...”남자가 차갑게 비웃었다.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몸이 꽁꽁 묶인 사람들이 몇 명이나 내던져졌다.육운성이 부하들을 데리고 걸어 들어오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네 사람들은 전부 여기 있어.”곧이어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까지 별장 안으로 들려왔다.남자는 분노로 눈을 부릅뜬 채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육운성의 사람들이 남자를 제압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강지현은 만족스럽게 무기를 내려놓고 김태하의 팔에 팔짱을 꼈다.한 번 당해본 이상 같은 수에 또 당할 리는 없었다. 공회 사람들이 육운성을 너무 얕본 것이었다.해원시에서 공회의 세력은 크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김태하의 행방을 알아냈더라도 감히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강지현이 일부러 실종된 상태라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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