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결혼, 진짜 신분의 모든 챕터: 챕터 841 - 챕터 850

868 챕터

제841화

서운혁의 얼굴은 새파랗게 굳어 있었다. 강지현과 김태하가 손을 잡고 회의장을 빠져나가려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성큼 다가가 두 사람 앞을 막았다.“김 대표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입찰 하나 따내겠다고 약을 원가로 풀겠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거기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이익을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지 알고나 있습니까?”김태하는 입꼬리만 아주 희미하게 올렸다.강지현이 곧바로 남편 앞을 막아섰다.“서 대표님, 태도부터 바로 하시죠. 이익이 줄어드는 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이건 미래 그룹과 주상 그룹이 국민께 받은 것을 돌려드리기 위해 하는 일이지, 입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눈썹을 살짝 치켜든 강지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서운혁도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김태하가 공개적으로 그런 약속을 한 순간 해성 그룹이 이길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그는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분위기는 해성 그룹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여기서 판돈을 더 올리는가.김태하는 강지현을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얼굴에는 다른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만족감이 가득했다.“서 대표님, 방금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셨죠. 답해 드리겠습니다.”김태하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아주 필요합니다.”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제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건 애초에 반드시 손에 들어와야 합니다. 굳이 경쟁이라는 걸 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오래 상대해 드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체면을 세워 드렸습니다.”서운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사업하는 사람들이 결국 돈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겁니까?”“맞습니다. 돈으로 밀어붙이겠다는 겁니다.”김태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쳤다.“그런데 해성 그룹도 그럴 수 있습니까?”서운혁은 단번에 말문이 막혔다.해성 그룹이 돈을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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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2화

지순옥은 두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다치고 고생했는지만 들어도 계속 눈물이 났다. 그런 상황에서 사실을 숨겼다고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김윤석도 마음 아픈 듯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는 손자를 향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해졌다.“역시 내 손자답구나. 그 정도 상처가 대수냐? 설령 정말 모든 걸 잃었다 해도 네 마음만 바로 세우고 포기하지 않으면 못 버틸 일이 뭐가 있겠어?”그는 갈수록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사는 동안은 제 뜻대로, 후회 없이, 하고 싶은 만큼 제대로 살아야지. 그래야 한평생을 허투루 산 게 아니야.”김윤석은 허리를 쭉 펴고 기세 좋게 김태하의 몸을 몇 번 두드렸다.그 순간 김태하의 중심이 살짝 흔들렸다. 강지현이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할아버지... 살살하세요.”정말 생각할 틈도 없이 나온 행동이었다.김윤석이 멈칫했고 김태하도 귀가 조금 붉어졌다. 그가 낮게 말했다.“지현아, 나 괜찮아.”그 말을 듣자 강지현도 괜히 민망해졌다. 하지만 덕분에 무겁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풀렸다.은주희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지순옥도 장난스럽게 한마디 보탰다.“자식 복은 다 제 타고난 팔자라더니. 우리 태하가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아내를 만났나 몰라. 고생 끝에 복이 온 셈이지. 아니면 누가 저렇게 말도 없는 애랑 평생을 살아 주겠어?”“할머니!”강지현은 더는 못 듣겠다는 듯 얼른 고개를 숙였다.그때 김무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김태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태하야.”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건 잠깐이었다. 김태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이번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난 뒤 아버지를 향한 오래된 원망도 조금은 풀려 있었다.강지현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그는 다른 가족을 생각하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그 후로도 두려움과 상처에 갇혀 지냈고,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까지 포기하려 했다.돌이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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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3화

김무언은 머쓱한 듯 팔을 내려놓았다.김태하가 자신을 거부하는 모습은 가슴 아팠지만 자업자득이었다.수십 년 동안 김태하는 그의 성질을 묵묵히 받아 냈다. 속이 곪을 만큼 참으면서도 아버지에게 화 한 번 제대로 쏟아 낸 적이 없었다. 이제 와 부자 사이가 멀어진 건 누구 탓도 아닌 자신의 탓이었다.“오늘...”김무언이 돌아서려는 순간 김태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그가 멈춰 섰다.“오늘 저와 지현이가 내린 결정은 즉흥적이었습니다. 미래 그룹의 장기적인 수익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김무언은 잠시 놀란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지금 김태하가 자신의 의견을 묻고 있는 걸까.김태하는 여전히 아버지 쪽을 보지 않은 채 천천히 말했다.“그래도 저와 지현이에게는 같은 바람이 있습니다. 희망을 잃고 벼랑 끝까지 몰린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옆에서 듣던 강지현이 조용히 웃었다.분명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특히 강지현은 주승호가 주상 제약을 키운 이유를 알게 된 뒤, 자신에게 그 뜻을 이어 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주승호는 주호석과 등을 지고 엄경미의 원한을 사면서까지 주상 그룹을 지켜 냈다. 그에게 주상 그룹은 단순히 해원시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국가와 국민을 향한 하나의 약속이었고, 평생을 바친 이상이었다.주상 그룹은 좋은 약을 만들고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약을 만들어야 했다.주승호는 평생 모든 힘을 쏟아 일군 막대한 자산을 수많은 가정의 행복과 희망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강지현은 그의 딸이자 천문학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끝내 이루지 못한 이상을 이어 가는 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몫이 됐다.남편인 김태하 역시 같은 뜻이었다.미래 그룹이 오늘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단순히 이익만 좇지 않고 책임과 신뢰를 쌓아 왔기 때문이었다. 김태하는 미래 그룹과 주상 그룹의 앞날이 돈에만 갇혀 있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가족들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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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4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하의 손바닥에 얇게 식은땀이 배기 시작했다.강지현이 눈을 뜨고 보니 김태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얼굴에서 핏기까지 빠져 있었다.“어디 불편해?”“응. 피곤해.”김태하는 강지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목소리에도 지친 기색이 숨겨지지 않았다.강지현이 어디가 어떻게 힘든지 하나씩 물었고 김태하도 이제는 굳이 감추지 않았다. 오늘은 그의 몸이 감당하기엔 움직임이 너무 많았다. 전날 밤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곧바로 입찰장까지 다녀왔으니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무리가 갈 만했다.강지현은 최동윤에게 차를 돌려 병원으로 가자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김태하가 손을 꽉 잡았다.그는 눈을 감은 채 강지현의 귀 가까이에서 낮게 말했다.“지현아, 집에 가고 싶어.”“그래.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강지현은 김태하의 얼굴을 가볍게 쓸어 주며 다정하게 대답했다.김태하가 지금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걸 알았다. 평소에는 짊어진 것이 너무 많아 누구 앞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적어도 강지현 앞에서는 더 이상 억지로 버티지 않았다....두 사람만의 집으로 돌아오자 김태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지현의 휴대폰을 가져가고 자신의 휴대폰까지 전원을 끄는 것이었다.떨어져 있었던 건 며칠뿐이었지만 그에게는 반평생처럼 길었다. 그리움은 쌓일 만큼 쌓여 있었다. 겨우 둘만의 시간을 되찾은 지금은 다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강지현을 온전히 자기 곁에 두고 싶었다.강지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김태하의 옷을 벗기는 것이었다.육운성의 집에 있을 때 이미 한 번 살펴보긴 했지만 김태하의 몸에는 새 상처가 적지 않았다. 모두 아물기는 했어도 흉터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제대로 씻거나 약을 갈아 주기도 불편했을 테니 집에 돌아온 지금만큼은 직접 몸을 살피고 씻겨 주고 싶었다.하지만 강지현이 옷을 절반쯤 벗겨 냈을 때 김태하가 먼저 참지 못했다.팔에 걸쳐 있던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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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5화

강지현은 다시 김태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흉터의 굴곡까지 하나하나 손끝으로 확인했다.한참 뒤에야 샤워 볼에 보디워시를 짜 거품을 충분히 낸 뒤 김태하의 등에 조심스럽게 펴 발랐다.“나 이제 정말 안 아파.”강지현의 마음을 알아챈 듯 김태하가 담담히 말했다.뒤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강지현의 눈가가 수증기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김태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 쪽으로 끌어왔다. 거품이 묻은 손으로 턱을 살짝 받쳤다.“씻겨 준다더니 왜 가만히 있어?”“마음이 아파서 그래. 네가 이제 안 아프다고 해도 나는 아직...”강지현은 두 팔로 김태하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다 지난 일이야.”김태하는 엄지로 강지현의 뺨을 천천히 문질러 묻은 거품을 닦아 냈다.“그보다 계속 이렇게 꾸물거리면... 물 다 식겠다.”아이를 달래듯 손을 덮어 잡고 말했지만, 강지현은 그 순간 김태하의 가슴 가까이에 옅은 흉터 하나를 또 발견했다.곧바로 손을 얹었다.“여긴 왜 또 다쳤어?”“나뭇가지에 긁혔어.”김태하가 낮게 대답했다.“이런 작은 상처는 몸 여기저기에 더 있어. 하나씩 전부 물어보면 오늘 안에 목욕 못 끝낼걸.”강지현은 귓불이 뜨거워져 얼른 정신을 차렸다.“돌아서.”김태하는 순순히 등을 돌려 욕조 가장자리에 두 손을 짚었다.강지현은 다시 정성스럽게 몸을 씻겨 주기 시작했다. 넓은 등에서 잘록한 허리선을 따라 더 아래로 손을 움직였다.그때 김태하가 아주 가볍게 물었다.“거기도 확인하려고?”입가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웃음이 걸려 있었다.강지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응.”“그럼 꼼꼼히 봐 줘.”김태하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끝이 살짝 잠긴 목소리가 괜히 사람을 긴장시켰다.강지현은 손끝을 한 번 떨고서야 다시 움직여 단단한 허벅지까지 살폈다.실제로 오른쪽 허벅지 바깥쪽에도 흉터가 하나 남아 있었다. 아직 완전히 옅어지지 않아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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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6화

강지현은 자신이었다면 그 절망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흉터 하나하나가 사실은 김태하가 죽음과 맞서 버텨 낸 흔적이었다.“무서웠어.”김태하가 잠시 뜸을 들인 뒤 솔직하게 말했다.“다시는 널 못 볼까 봐.”그 한마디에 강지현이 끝까지 참던 눈물이 결국 떨어졌다. 눈물은 욕조의 물속으로 그대로 섞여 들었다.김태하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 눈물 자국에 입을 맞췄다.“울지 마.”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움직임은 한없이 다정했다.“나 이렇게 멀쩡히 네 앞에 돌아왔잖아.”“어디가 멀쩡해?”강지현은 김태하의 몸을 손끝으로 훑으며 새것과 오래된 것이 뒤섞인 흉터들을 하나씩 가리켰다.“여기도, 여기에도... 또 여기까지. 전부 증거잖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태하가 다시 입술을 막았다.물속에서 두 사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강지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져 손을 빼려 했지만 김태하가 놓아주지 않았다.김태하가 한층 깊어진 눈으로 강지현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피부를 타고 내려온 거품이 수면 위로 번지며 잔잔한 물결을 만들었다.“계속 씻겨 줘.”낮고 단호한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온기가 배어 있었다.“아까 안팎으로 깨끗하게 씻겨 준다고 했잖아.”강지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손바닥을 그의 단단한 배에 댔다. 김태하의 숨이 점점 무거워졌고 물속의 손도 강지현의 허리를 천천히 더듬었다.“여기도 씻어야지...”김태하가 갑자기 강지현의 손을 잡아 아래로 이끌었다.놀란 강지현의 손에서 샤워 볼이 툭 떨어져 물속으로 가라앉았다.“이제 네가 직접 씻어.”“벌써 마음 바뀌었어?”김태하가 가까이 다가와 코끝을 강지현의 턱에 댔다.“태하야...”강지현은 온몸이 뜨거워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김태하의 숨이 갈수록 거칠어졌다.“지현아...”“응?”강지현은 모르는 척 손을 멈추지 않았다.“여기는 더 깨끗이 씻어야겠네.”결국 김태하가 먼저 참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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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7화

“모르겠어...”강지현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모기에 물린 자국인가?”김태하가 웃으며 몸을 숙여 매끈한 피부에 뺨을 살짝 비볐다.상처가 아니라 허리 뒤에 살짝 들어간 보조개였다. 옅은 분홍빛이 돌아 유난히 귀여워 보였다.간지럼을 심하게 타는 강지현은 온몸을 한 번 떨더니 얼른 수건을 끌어와 몸을 감쌌다.김태하는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손바닥을 살짝 불러온 배 위에 올렸다.“아기는 요즘 잘 지내? 나 보고 싶어 했을까?”“...아니.”강지현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짧게 대답했다.“왜 안 보고 싶어 해?”김태하가 웃으며 물었다.“아빠가 자기를 버린 줄 알았을 테니까. 이렇게 오래 안 보러 왔잖아.”그 말을 들은 김태하가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강지현을 뒤에서 감싸 안았다.“내가 잘못했네.”그리고 배를 살살 어루만지며 말했다.“그래도 분명 나 많이 보고 싶어 했을 거야. 이제부터는 매일 잘 자라고 인사해 줄게. 태어난 다음에 엄마만 찾고 아빠는 모른 척하면 안 되니까.”강지현의 마음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욕실 조명이 김태하의 뒤에서 은은하게 번져 그의 큰 몸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마음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안해졌다.“김태하, 평생 다시는 이렇게 오래 나를 떠나 있지 마.”“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그 말도 하지 마.”강지현이 곧바로 말을 끊었다.서로 무슨 말을 삼킨 건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김태하는 피하지 않고 강지현을 바라봤다. 깊은 눈빛 속에 숨길 생각조차 없는 애정이 가득했다.“됐어, 얼른 옷 입자. 이러다 정말 감기 걸려.”강지현은 코끝이 시큰해져 얼른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김태하가 턱을 부드럽게 잡아 다시 마주 보게 했다.“아직 말 안 끝났어.”그가 이마를 맞댄 채 물었다.“너는? 나 보고 싶었어?”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눈을 보고 있자 강지현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김태하가 듣고 싶은 말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해 주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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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8화

의사는 만약 몸 상태가 크게 나빠질 경우 신경 손상이 다시 나타나거나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미리 설명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강지현은 오히려 더 담담하고 긍정적이었다.지금 모든 것이 괜찮다면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살 필요는 없었다. 누구나 늙고 병들고 언젠가는 죽는다. 무슨 일이 생기든 둘이 함께 마주하면 그만이었다.육운성은 강지현이 이렇게 털털하고 낙관적인 사람일 줄 몰랐다.원래 육운성은 여자에 대한 편견이 꽤 심했다. 많은 여자가 우유부단하고 걱정이 많으며 쉽게 약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지현은 전혀 달랐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담대했고 쉽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육운성은 그녀가 새삼 마음에 들었다.“김태하, 네 아내가 너보다 훨씬 낫다. 상황을 제대로 보고 계시네.”육운성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태하를 놀렸다.“병 좀 앓는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곁에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괜찮다고 하는데 너 혼자 괜히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그는 계속 떠들었다.“앞으로는 제일 좋은 의료진만 찾아다니면 되지. 가진 게 없는 것도 아닌데 설마 치료 못 받아서 고생하겠어?”말을 다 하고 난 육운성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강지현 앞에서는 김태하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김태하가 싸늘한 눈으로 한 번 쳐다보자 육운성은 당장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았다.“흠흠...”육운성은 괜히 두 손을 비비며 얼른 입을 다물었다.이번에 김태하가 해원시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것으로 육운성의 역할은 일단 끝났다. 그는 며칠 뒤 M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다만 떠나기 전 김태하의 위 종양을 치료할 더 좋은 의료진을 찾아 주고 싶다고 했다.강지현은 육운성에게 그쪽 인맥과 자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적극적으로 상의했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원래 강지현은 김태하와 함께 노르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육운성도 그 선택이 나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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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9화

김태하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걸 축하하고, 그동안 고생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강지현이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김태하의 몸 상태를 생각해 밖에서 모이지 않고 집에서 먹기로 했다. 가정부가 주로 요리하고 최동윤과 현다영, 강지현이 곁에서 손을 보탰다.김태하는 임신한 강지현이 일을 하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강지현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기분이 너무 좋은 날이라 직접 요리 하나쯤은 꼭 하고 싶었다.김태하가 계속 따라다니며 말릴 게 뻔해 강지현은 육운성에게 잠깐 김태하를 붙잡아 달라고 부탁했다.하지만 육운성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김태하는 그와 계속 떠드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이 나았다.결국 어쩔 수 없이 프로젝터를 켰다.“영화 볼래?”해원시에서 어떤 사업에 투자하면 좋을지 김태하에게 물어보려던 육운성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리둥절해졌다.“너 영화도 봐?”“왜. 내가 영화 보면 안 돼?”김태하는 대수롭지 않게 목록을 훑다가 육운성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공포 영화 한 편을 골랐다.육운성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아니, 나는 영화 보자는 게 아니라 너랑 투자 얘기를...”“일단 봐.”김태하가 말을 끊었다.“이 영화 다 보고 나면 네가 물어본 것도 자연스럽게 답이 나올 거야.”김태하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자 육운성은 반신반의하면서도 화면을 보기 시작했다.영화가 시작되자 음산한 분위기가 금세 방 안을 채웠다. 육운성은 이게 투자와 무슨 상관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어느새 내용에 빠져들었다.그 옆에 앉은 김태하의 시선은 조용히 주방 쪽으로 향했다.주방에서는 가끔 강지현과 현다영, 최동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김태하는 마음이 편안하고 충만해졌다.“으...”갑자기 무서운 장면이 튀어나오자 육운성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미간까지 잔뜩 찌푸려졌다.원래 육운성은 갑자기 사람을 놀라게 하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자신이 놀란 모습을 김태하가 본 것 같자 육운성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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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0화

강지현도 현다영이 여분으로 꺼내 놓은 그릇과 수저를 봤다.“그냥 둬. 조금 있다가 올지도 모르잖아.”김태하는 강지현을 바라보다 두 사람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짐작했다.강지현에게서 송준호가 무사히 해원시로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강지현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송준호가 곁에서 힘을 보태 준 덕이 컸다.김태하와 송준호는 생사를 함께 넘긴 사이였다. 김태하는 이미 그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워낙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보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얼마 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시작했다.주시언이 먼저 술 대신 음료를 들어 강지현과 김태하의 무사 귀환을 함께 축하하자고 제안했다.마침 그날 아침 주최 측은 올해 국가급 에너지 사업의 최종 사업자로 미래 그룹을 선정했다고 서둘러 발표했다.사실 결과에는 거의 이변이 없었다.전날 김태하와 강지현이 생중계에서 내건 약속은 온라인 전체를 뒤흔들 만큼 강렬했다. 인터넷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응원하는 사람도, 두 사람의 사업 행보를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부부가 진심으로 사회에 혜택을 돌리겠다는 선택을 응원하는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민생을 위한 사업은 결국 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기업이 미래 그룹이라면 미래 그룹이 가장 자연스러운 답이라는 분위기가 굳어졌다.김태하가 잔을 들었다.“이건 다 여러분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현이 덕이 컸고요.”“감사합니다.”김태하는 사람들과 잔을 맞댄 뒤 따로 한 번 더 잔을 들어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술은 마실 수 없어 강지현이 준비한 건강 과채 주스를 한 번에 마셨다.너무 급하게 들이키자 강지현이 바로 말했다.“천천히 마셔.”주시언은 김태하에게 느끼는 호감과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직접 가져온 레드와인을 꺼내 자신의 잔에 따랐다.“저는 술로 한잔하겠습니다. 김 대표님이 제 동생을 이렇게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걸 보니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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