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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851 - Chapter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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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1화

“그래서 두 분이 부탁하러 갔더니, 이혼하라고 협박하신 거예요?”강지현이 현다영의 말을 이어 물었다.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하원영이 자신을 위해 이 정도까지 희생할 줄은 몰랐다.하원영이 감정에 휩쓸려 그런 결정을 내린 건 그렇다 쳐도, 주시언까지 동의했다니...“안 돼요. 이번 일은 전부 저 때문에 생긴 거잖아요. 두 분이 이혼하면 안 돼요.”강지현이 다급 해하자 주시언이 얼른 덧붙였다.“강지현, 자책하지 마. 우리가 이혼한 게 너 때문만은 아니야.”“오빠...”“맞아요. 지현 씨, 이혼은 우리 둘이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에요.”하원영도 맞장구쳤다.그녀는 주시언을 바라보며 다시 옅게 미소 지었다.사실 두 사람이 이혼을 결심한 계기가 강지현 때문이었던 건 맞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주병찬은 주시언과 크게 다툰 뒤 앓아누웠다.얼마 전 집사가 주시언을 찾아와 주병찬의 급성 심장 질환이 재발해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알렸다.하지만 주병찬은 주시언에게 화가 단단히 난 상태라 수술을 거부하고 있었다.의사도 몇 번이나 거듭 경고했다. 특히 감정적으로 더는 어떤 자극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주시언이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주병찬의 몸 상태는 실제로 좋지 않았다.애초에 주병찬은 오래전 심장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매년 두 차례씩 정기 검진도 받아 왔다. 의사는 평소 감정을 최대한 평온하게 유지하라고 진작부터 당부해 왔다.그런데 이번에는 주시언 때문에 화가 크게 난 것이다.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자 거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내내 딴생각에 빠져 있던 육운성조차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강지현은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 입을 열었지만 목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하원영이 고개를 숙였다.“시언 씨가 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면, 저도 그 사람을 위해 용기 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 둘 다 스스로 떳떳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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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아버지에게 한발 물러설 수는 있어도, 주병찬이 자신을 억지로 굴복시키려는 방식까지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주시언은 주씨 집안으로 완전히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하원영과 이혼한 이유 역시 아버지 곁을 지키며 자식 된 도리를 하기 위해서였다.김태하가 낮게 물었다.“그러니까 서류상으로만 정리한 거예요?”하원영이 대답했다.“네. 이게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당분간만 떨어져 있으려고요. 시언 씨가 집으로 돌아가면 주 회장님도 돌보기 편할 테니까요.”“그다음 일은... 그때 가서 하나씩 생각해 보려고요.”두 사람은 ‘이혼’했을 뿐, ‘사랑’까지 끝낸 건 아니었다.그 말을 듣자 모두의 굳었던 표정이 조금씩 풀렸다.강지현이 생각에 잠긴 사이 김태하가 일어나 다시 물을 한 잔 따랐다.“그렇다면 이 잔은 지금 두 사람이 보여 준 책임감과,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기회를 위해 들죠.”“좋아요.”주시언도 곧바로 술을 반 잔 따르며 미소 지었다.하원영도 다시 잔을 들어 주시언과 살며시 부딪쳤다.강지현은 서로 얽힌 두 사람의 시선과 눈 깊은 곳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빛을 바라봤다. 그제야 마음을 짓누르던 걱정이 내려앉았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밤이 깊었다.주시언은 다음 날 아침 일찍 현장 일정이 있어 하원영과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두 사람 모두 술을 마신 터라 강지현은 최동윤에게 차로 데려다주라고 했다.강지현과 김태하, 현다영도 함께 단지 입구까지 배웅했다.돌아서려던 순간, 현다영이 우연히 단지 입구에 서 있는 낯익은 인영을 발견했다.“지현 언니.”그녀가 강지현을 불러 세웠다.강지현도 현다영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 송준호가 서 있었다.이 단지는 출입 통제가 엄격해 강지현이 미리 정보를 등록해 준 사람 외에는 방문객이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송준호는 예외였다.오랜 세월 용병으로 살아온 그에게 대통령 관저쯤 되는 곳이 아니라면 못 드나들 단지는 없었다.강지현은 송준호가 일부러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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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임지태는 그를 보고도 아주 담담했다.송준호는 자신을 몹시 원망할 거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임지태는 웃으며 두 사람이 함께한 지난날을 떠올렸다.예전의 두 사람은 모두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었다.송준호가 그를 가족이자 의지할 사람으로 여겼듯, 임지태 역시 송준호를 친동생처럼 생각했다.송준호가 떠났을 때부터 임지태는 언젠가 그의 칼끝이 자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런데도 끝내 송준호를 제거할 결심은 하지 못했다.지금 다시 송준호를 마주하니 임지태에게 남은 감정은 원망보다 안도와 위안에 가까웠다.송준호를 해치지 않았다는 안도, 그리고 그가 끝내 두 사람의 초심을 잊지 않았다는 위안이었다.송준호에게 임지태가 신앙 같은 존재였다면, 임지태에게 송준호 역시 자신이 지켜 주고 싶었던 과거의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여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고, 힘들게 일군 모든 것과 우리가 품었던 꿈까지 버린 게 정말 가치 있었어요?”하지만 임지태는 이미 내려놓은 듯했고, 송준호는 도저히 그러지 못했다.아직도 그는 임지태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 받아들이지 못했다.한때 두 사람이 함께 세웠던 보금자리를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다니.“넌 내가 겪은 어둠을 겪어 보지 않았으니 몰라. 우리 같은 사람은 독해지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조차 사치야. 꿈? 꿈이 뭔데. 결국 자기 위안일 뿐이야.”임지태는 웃었다. 송준호는 아직 너무 순진했다.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송준호처럼 순진함을 간직한 이는 드물었다.물론 임지태도 젊은 시절에는 송준호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그가 변한 게 아니라, 한때의 꿈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삶을 떠받치는 발판 정도로 바뀌었을 뿐이었다.어떤 것들은 분명 한때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잃은 것이 많아질수록 그런 것들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송준호, 여자 하나 때문에 이 모든 게 가치 있었냐고 물었지. 그 질문엔 대답할 수 없어. 그 사람은 내 여자가 아니야. 그저... 내 마음을 내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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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하지만 자신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강지현은 입을 열었다. 붙잡고 싶은 말이 혀끝을 몇 번이나 맴돌았지만 끝내 꺼내지 못했다.송준호가 살아가는 세계가 자신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람처럼 왔다가 떠나는 그에게 해원시는 잠시 쉬어 가는 정거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그럼... 다시 돌아오긴 할 거예요?”송준호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지.”너무 단호한 말이었다.강지현은 이유 없이 가슴이 시큰해졌다. 송준호의 목소리는 태연했지만 어딘가 설명하기 힘든 슬픔이 배어 있었다.김태하 역시 무언가 알아차린 듯 낮게 말했다.“다시 못 보더라도 몸조심해요.”그때 현다영이 몇 걸음 앞으로 나와 강지현을 지나 송준호를 바라봤다.강지현은 현다영이 무의식적으로 옷자락을 비트는 손과, 송준호의 얼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라보는 시선, 하얗게 질린 입술을 보았다.송준호도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그의 눈빛이 아주 짧게 현다영의 얼굴에 머물렀다. 너무 짧아 착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이내 송준호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검은 상자를 하나 꺼내 강지현에게 내밀었다. 아무 표식도 없는 상자였다.“조카 줄 거야.”짧게 말했다.“비싼 건 아니고, 호신용이야.”강지현이 받아 들자 묵직한 무게와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아마 직접 만든 단검 같은 물건일 것이다.강지현은 굳이 열어 보지 않았다.“고마워요.”“응.”송준호는 짧게 대답했다. 더 할 말은 없는 듯했다.그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송준호 씨.”강지현이 다시 그를 불러 세운 뒤, 곁에서 할 말이 있어 보이는 현다영을 한번 바라봤다.“다영아, 송준호 씨 좀 배웅해 줘. 나랑 태하는 먼저 들어갈게.”현다영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등의 가벼운 힘을 느낀 순간 강지현에게 떠밀려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있었다.“...”현다영은 송준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강지현은 몇 걸음 가다가 또 멈췄다.몰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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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자신은 영원히 남의 이야기나 들어주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어떤 감정은 이유 없이 싹이 트고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났다.“난 괜찮아.”송준호가 담담히 말하며 주머니 속 손을 더 깊이 숨겼다. 마치 그곳에는 처음부터 상처도, 품어선 안 될 기대도 없었던 것처럼.“안 다쳤어요?”현다영이 눈을 크게 떴다.송준호가 웃었다.“당연히 다쳤지. 내가 신선도 아니고.”현다영의 표정이 곧바로 긴장하자 그제야 덧붙였다.“맨손으로 칼을 막았으니 피부 좀 찢어진 건 당연한 거야.”“정말 그 정도예요?”“응.”송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밤바람이 빳빳하게 세운 옷깃을 흔들었다. 그 모습은 한층 더 자유롭고 거침없어 보였다.“미안해요.”그녀가 갑자기 작게 말했다.송준호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왜 사과해?”“그날 밤에... 전 주단우만 챙겼잖아요.”현다영은 송준호의 앞에 서서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바라봤다.가로등 아래 그녀의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오빠도 다쳤는지 봤어야 했는데. 정말 그때는 너무 당황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어요...”송준호의 마음 한쪽이 가볍게 흔들렸다.현다영이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도, 그 일 때문에 사과할 줄도 몰랐다.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더 많이 다친 사람부터 챙기는 게 맞지.”그는 시선을 돌려 앞쪽의 텅 빈 거리를 바라봤다.“그리고 주단우... 너한테 정말 잘해 주는 것 같던데.”“오해하지 말아요! 저랑 주단우는 그냥 평범한... 평범한 직장 동료예요.”현다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급해졌다.“아무튼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전 그 사람 조금도 안 좋아해요.”말을 끝낸 후 본인도 잠시 굳었다.‘이런 말을 왜 송준호에게 설명하고 있지?’송준호도 멈칫했다.“안 좋아한다고?”“네. 안 좋아해요.”두 사람 사이에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현다영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솔직히 전 그 사람이 정말 싫어요.”송준호가 궁금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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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현다영은 몇 걸음 따라가 그의 등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뭔데?”“혹시... 안 가면 안 돼요?”현다영의 목소리가 조금 메말랐다. 자신이 얼마나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 자신도 알고 있었다.송준호가 잠시 침묵했다.“왜?”“왜냐하면... 오빠도 돌아갈 집이 없다고 했잖아요. 친구를 갖고 싶다고도 했고. 해원시에 남으면 지현 언니랑 다른 사람들도 친구가 되어 줄 거고...”말끝이 점점 작아졌다.“저도 있고요.”“다영아, 마음은 고마워.”송준호는 그녀가 끝까지 말한 뒤에야 낮게 대답했다.아까보다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지나칠 만큼 예의 바르고 절제되어 있었다.“그런데 우리... 원래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이야.”그 말이 떨어진 순간 공기까지 멈춘 듯했다.불과 한 걸음뿐이던 두 사람 사이에 송준호의 몇 마디가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 낸 것 같았다.“알아요.”현다영은 조용히 말했다. 차분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고집스러운 목소리였다.“오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고,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요. 비밀이 많고... 오빠가 사는 세계가 위험하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게... 오빠와 친구가 되는 데 아무 상관도 없어요.”밤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멀리 도시의 희미한 소음을 실어 왔다.현다영은 쓸쓸한 듯 고개를 숙였다.그때 갑자기 송준호가 돌아서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남자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지나치게 친밀하지는 않았다. 오랜 친구가 작별하며 건네는 가벼운 포옹처럼 보였다.현다영이 놀란 순간 그의 낮고 쉰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현다영, 여기까지만 배웅해.”“앞으로... 어디로 갈 거예요?”현다영은 감히 그의 등을 감싸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아직 못 정했어.”송준호가 솔직하게 답했다.“그래도 일단 해원시부터 떠날 거야.”“많이 멀리요?”“응.”“그러면...”현다영이 다시 낮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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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강지현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김태하가 육운성을 놀리고 있었다.그런데 사람을 놀리는 와중에도 김태하가 너무 진지해서 그녀마저 진짜인 줄 속을 뻔했다.“이 장면 봐.”육운성이 화면을 멈추고 주인공이 낡은 아파트에서 단서를 발견하는 장면을 가리켰다.“어둡고 혼란스러운 공간과 뒤죽박죽인 단서들은 신에너지 분야의 정보 혼란을 상징하는 것 같아. 주인공이 조급해하다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으니까 계속 틀리잖아.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엄청난 격차가 되는 거지. 결국 정보가 많을수록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야.”강지현은 육운성이 대충 갖다 붙이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진지해서 당황했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육 대표님 말 듣고 보니... 진짜 좀 그럴듯하네요.”말을 마치자마자 팔꿈치로 김태하를 재빨리 찔렀다.그제야 김태하가 눈을 들었다.“괜찮네. 혼란 속의 질서를 볼 줄 아는 게 첫 단계야. 정말 광범위하게 투자하고 싶다면 어떤 정보가 잡음이고 어떤 정보가 진짜 가치 신호인지 먼저 판별해야 해.”강지현은 할 말을 잃었다.저 말은 말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구분조차 안 됐다.김태하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아무 말이나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건 처음 봤다.하지만 저 표정과 분위기로 말하면 무엇이든 전문가의 권위처럼 들렸다.강지현이 업계 사람이 아니었다면 정말 맞는 말인 줄 믿었을지도 모른다.육운성은 중요한 가르침이라도 얻은 듯 깊이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그 장면을 돌려 봤다.강지현은 몰래 김태하의 손등을 건드리며 목소리를 낮췄다.“인제 그만 좀 해. 친구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야? 진짜 못됐다.”“난 특별한 말 한 것도 없는데.”김태하는 강지현을 품에 끌어안고 귓가에 나직이 답했다.그때 육운성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는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창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몇 마디 짧게 대화를 나눈 뒤 조금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처리할 일이 생겼어. 먼저 가 봐야겠다.”육운성은 아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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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김태하가 이번에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서운혁은 애초에 상대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그 생각을 하다 강지현은 문득 떠오른 일이 있어 물었다. “맞다. 전에 서운혁을 협박했다던 건 무슨 일이었어?”“서운혁을 협박한 일?”김태하는 잠시 기억을 더듬은 뒤 서씨 집안에서 캐낸 비밀을 강지현에게 설명했다.그는 서운혁이 입찰에 관심을 보이기 전부터 사람을 시켜 서씨 집안과 서운혁의 과거를 철저히 조사했다.그런 명문가나 대가문에 비밀이 없을 리 없었다.김태하가 원한 것은 서운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하는 비밀이었다.서운혁은 어릴 때부터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자가 많고 집에도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머니와만 정이 깊었다.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남편 문제로 오래 정신적으로 힘들어했고, 서운혁이 여섯 살 때 우울증 끝에 세상을 떠났다.몇 년 전부터 서운혁은 사설탐정을 고용해 비밀리에 여동생 한 명을 찾고 있었다.김태하가 조사해 알아낸 사실에 따르면, 서운혁의 어머니는 서씨 집안 아버지와 혼인 관계를 유지하던 중 밖에서 딸 하나를 낳았다.그 혼외자의 존재가 세상에 공개되면 다른 건 몰라도 서운혁 어머니의 명예에는 큰 타격이 갈 수밖에 없었다.서운혁은 절대로 그 사실이 알려지는 걸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또 혼외자네...”그 단어가 강지현의 마음을 묘하게 건드렸다.따지고 보면 그녀 역시 주승호가 밖에서 낳은 혼외자였다.그녀의 존재 때문에 주씨 집안에는 한동안 계속 폭풍이 몰아쳤고, 엄경미는 주승호와 그녀를 뼛속까지 미워했다.가끔은 강지현도 자신을 괴롭혔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축복받지 못한 실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아이는 죄가 없어. 잘못한 건 책임지지 않은 부모들이야.”김태하는 그녀의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느끼고 곧바로 말했다.“알아.”강지현은 김태하의 어깨와 목 사이에 얼굴을 묻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의 몸에서 나는 맑고 좋은 향은 언제나 그녀를 가장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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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김태하가 미소 지었다.“해성 그룹은 독점 기술로 시장을 단숨에 흔들려고 하지만, 어떤 시장은 돈만 쏟아붓는다고 열리지 않아. 우리에겐 더 단단한 중심축이 필요해.”“네가 그 중심축이 되려고?”“우리가.”김태하가 바로잡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미래 그룹과 주상 그룹이 손잡은 순간부터 이미 시작됐어.”강지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단순한 기업 간 경쟁보다 훨씬 큰 구상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꿈꾸던 사업의 방향과도 맞았다.입찰장에서 한 행동들조차 김태하는 이미 더 긴 미래를 내다보고 움직인 것이었다.“하지만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 편도 더 많아야겠네.”강지현은 지현우가 떠올랐다. 주상 그룹을 해외까지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의 프로젝트 통합 능력은 분명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맞아.”김태하가 입꼬리를 올렸다.“육운성도 해외 인맥을 많이 쥐고 있으니 꽤 좋은 연결점이 될 수 있어.”강지현이 그제야 깨달았다.“그래서 오늘 그 사람을 놀린 게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네?”“반반.”김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재미있긴 했어.”“계산이 정말 빠르네.”강지현이 웃었다. 그제야 진짜 노련한 사업가란 어떤 사람인지 실감했다.장사꾼의 계산을 뼛속까지 익힌 사람은 얼굴에 영악함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다.오히려 김태하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신뢰를 받는 쪽에 가까웠다.“서로 이익을 보는 거지.”김태하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강지현은 그의 입술을 바라보다 잠시 말을 잃었다.분위기가 갑자기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고 남자의 숨결도 조금 느려졌다.창밖에는 밤이 더 깊어졌지만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화려했다.현다영은 텅 빈 거리에 한참 서 있다가 결국 몸을 돌려 떠났다.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는 송준호가 야간열차에 올라탔다. 창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며,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의 마음속 방어선까지 조금씩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반면 환하고 깨끗한 침실에서는 강지현과 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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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의아함을 느낀 현다영은 곧바로 주단우에게 전화를 걸며 주씨 집안 별장으로 향했다.하지만 별장은 이미 압류된 상태였다.엄경미의 사건 수사가 끝나지 않은 데다 관련 사건과 배상액 정리가 끝나면 별장을 경매에 넘길 예정이었다.집사와 도우미들도 모두 해고된 상태라 주단우가 집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현다영은 한때 화려했던 별장이 순식간에 적막하고 쓸쓸해진 것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씁쓸해졌다.그때 마침 주단우에게서 전화가 돌아왔다.“왜 찾았어?”쉰 목소리에 힘도 없었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현다영은 잠시 멈췄다가 곧장 물었다.“지금 어디예요?”“왜, 또 나한테 부탁할 일이라도 있어?”주단우가 자조적으로 웃더니 가볍게 기침했다.“그런데 지금은 뭘 도와줄 힘도 없어.”“주단우 씨, 지금 많이 다쳤잖아요. 멋대로 퇴원하면 안 돼요. 주소 보내 줘요. 제가 가 볼게요.”현다영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주단우 주변에는 친구라 부를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도 아마 혼자일 것이다.당장 쓸 돈이 좀 남아 있다 해도 아무도 돌봐 주는 사람 없이 혼자 부상을 회복하는 건 꽤 처량할 터였다.주단우가 웃더니 여전히 장난기 어린 말투로 내뱉었다.“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네가 날 보러 온다고? 혹시 칼 한 번 더 꽂으러 오는 거 아니야?”“정말 절 보기 싫다면 관둘게요. 이번엔 진심으로 가려던 건데.”현다영이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 하자 마지막 순간 주단우가 바로 주소를 불렀다.“남평대로 4567번지.”“콜록... 아직 밥도 못 먹었으니까 올 거면 빨리 와.”“...”순식간에 당연한 듯 부려 먹으려 드는 주단우를 보니 현다영은 방금 마음이 약해진 걸 조금 후회했다.그래도 곧바로 그가 알려 준 주소로 향했다.교외에 있는 주단우의 새집은 주상 그룹에서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였다.갈색 외벽의 아담한 별장이었고 안으로 들어가면 화려한 정원이 펼쳐졌다. 색감도 따뜻해 생활감이 가득했다.웅장하고 정돈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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