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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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아...”강하율이 거절하려던 찰나, 정다인이 먼저 일어서며 반박할 틈도 없이 말을 잘랐다.“가요.”정다인의 손에 들려 있는 가방을 본 강하율은 결국 속수무책으로 두 사람의 차에 올라 숙소로 향했다....숙소 앞.차가 멈춰 서자 강하율은 곧장 문을 열고 내렸다.그런데 건물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이때,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남자가 몰래 들어왔어요!”고개를 드는 순간, 3층 복도에 어지럽게 뒤엉킨 그림자를 발견했다.그녀는 서둘러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어느샌가 정다인과 배윤제도 뒤따라오고 있었다.“여자 숙소에 웬 남자일까요? 하율 씨도 3층에 사는 거로 아는데.”배윤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강하율을 훑어보고는 그녀를 지나쳐 인파 사이로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일제히 길을 내주었다.“제가 오늘 거래처랑 미팅이 늦게 끝나 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가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방금 올라오자마자 어떤 남자가 이쪽 복도로 뛰어 들어가는 걸 봤어요. 지금 어느 방으로 숨어들었는지 모르겠어요.”허지연이 대답했다.그녀는 평소 숙소에는 거의 발도 들이지 않았다.마치 싸구려 여관 같다며, 매일 왕복 4시간을 출퇴근할지언정 여기서 지내는 건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그런 사람이 하필 오늘 숙소에 묵자마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게다가 더 공교로운 점은 강하율의 방이 바로 이 복도 끝에 있다는 사실이었다.허지연이 고개를 들어 강하율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갔다.“두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예전에도 몰래 남자친구를 숙소에 들인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남자가 다른 여직원들을 훔쳐보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는데, 혹시 이번에도 그러면...”여직원들이 서로 밀착해 불안한 눈빛으로 복도를 바라보았다.“맞아, 나도 기억나. 그때 현장에 있었는데, 그 남자가 숨어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계속 훔쳐봤다니까?”“누구는 속옷까지 없어졌대. 설마 이번에도 그런 변태 아냐?”“아, 어떡해... 무서워서 잠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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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정다인과 허지연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치 정체불명의 남자를 불러들인 범인이 강하율이라도 되는 양 몰아세웠다.허지연이 비아냥거리며 쐐기를 박았다.“어쩐지 요즘 주야장천 숙소에 들락거린다 했더니, 사람을 숨겨뒀을 줄이야.”강하율은 당황하기는커녕 허지연을 차분히 응시하며 되물었다.“그럼 그 남자가 내 방으로 들어가는 걸 직접 봤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아까는 진작 말 안 하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오히려 허지연 씨가 나보다 더 시간을 끄는 것 같은데?”모두 시선이 일제히 허지연에게 꽂혔다.“어디서 생사람을 잡아요!”허지연은 허둥대며 목소리를 높였다.“동료니까 스스로 자백할 기회를 주려고 했던 건데, 끝까지 발뺌하니까 사실대로 말하는 거잖아요.”이내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강하율의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당하게 외쳤다.“여러분, 제가 똑똑히 봤어요. 그 남자, 강하율 씨 방으로 들어갔어요.”“확실해요?”강하율이 무덤덤하게 물었다.허지연은 그녀를 노려보더니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네!”강하율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정다인이 마치 중재자라도 된 듯 다가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자자, 동료끼리 그만들 싸워요.”“지연아, 하율 씨한테 분명 그럴 만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하율 씨, 여자 숙소에 남자를 들인 건 엄연한 규정 위반이에요. 지금이라도 그 사람 나오게 해요. 윤제 씨도 여기 계시니까 내가 잘 말해서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가게끔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강하율은 어이가 없었다.온갖 좋은 말 나쁜 말은 정다인이 혼자 다 해 먹고 있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변명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남자 같은 거 없어요.”강하율이 딱 잘라 부정했다.“하율 씨...!”정다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배윤제를 바라보았다.“전 그저 하율 씨를 생각해서 설득해 보려던 건데, 끝까지 그 남자를 감싸기만 하네요. 설마 일이 커져서 호텔 명성에 먹칠이라도 해야 정신을 차리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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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허지연이 이때다 싶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강 팀장, 아무리 자기 애인이 소중해도 그렇지, 동료들 안전까지 나 몰라라 하면 어떡해요?”그야말로 군중의 분노에 불을 지핀 격이었다.누군가 타일렀다.“팀장님, 그냥 좋게 말할 때 그 사람 데리고 나가요. 다신 안 그러겠다고 약속만 하면 돼요. 우리도 잠 좀 편하게 자고 싶어요.”심지어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팀장님 정도면 연봉도 꽤 받을 텐데 밖에서 방 잡을 돈이 그렇게 아까웠나?”이 말이 도화선이라도 된 듯 배윤제의 눈빛이 순식간에 살기등등하게 변했다.그는 인파를 헤집고 강하율의 방으로 직행하려 했으나 배윤호에게 제지당했다.“여긴 여직원 전용 숙소야. 호텔 규정상 모든 점검은 사전에 알려야 해. 설사 확인한다 해도 본인 동의가 필수지.”수많은 사람이 기를 쓰고 윌른 호텔에 입사하려는 이유는 높은 연봉 외에도 직원 복지가 훌륭하기 때문이었다.특히 여성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강하율이 단호하게 말했다.“전 동의 못 해요. 숙소에 남자를 들인 적도 없으니까. 정 확인하고 싶으시면 경찰부터 불러주세요. 제3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사받을게요.”배윤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좋게 말할 때 알아들으라는 무언의 경고였다.그는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왜, 겁나? 경찰까지 끌어들이겠다는 거 보니까 우리가 그 남자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두려운 모양이지?”“아니...”“동의하고 말고 할 거 없어! 여긴 호텔 자산이지, 네 개인 소유물이 아니야.”말을 마치고는 배윤호의 팔을 밀쳐내려 했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배윤호는 길길이 날뛰는 배윤제를 가뿐히 무시한 채 강하율을 내려다보며 의견을 물었다.강하율은 창백해진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만약 아무도 안 나오면 저한테 사과하셔야 할 거예요.”“알았어.”배윤호가 즉각 대답했다.검은 눈동자가 주변을 훑자 감히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배윤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배윤호의 팔을 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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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그리고 서늘한 경고를 내뱉음과 동시에 옷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안에는 가지런히 걸린 옷들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강하율은 무미건조한 눈으로 배윤제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했다.슬프다기보다 그저 가소롭고, 한편으론 화가 치밀어 올랐다.외간 남자라니?배윤제가 도대체 무슨 염치로 그런 단어를 써가며 자신을 몰아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정다인과 바람을 피웠을 때 본인 역시 ‘외간 남자’ 처지 아니었나?애초에 그녀와의 관계를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누구를 만나든 무슨 상관인가.더 비참한 건 지난 10여 년의 세월이었다. 그녀가 매달리는 사실은 믿어도 인성만큼은 끝까지 의심했다.10년 넘게 개 한 마리를 키웠어도 이보다는 더 신뢰했을 터였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게 인심이었다.강하율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안 그러면요? 옷을 다 헤집어서 확인해 보시게? 혹시 알아요? 그 남자가 뼈라도 깎아서 이 안에 숨어 있을지?”그야말로 망신을 주려고 작정한 말이었다.예상대로 배윤제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아마 그녀가 예전처럼 굴 거라 굳게 믿었겠지.설령 제 잘못이라 해도 스스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지어내며 어떻게든 자신을 다독이고 합리화할 테니까.그는 그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착하다’ 한마디만 해주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이제 강하율은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그녀는 곧장 정다인과 허지연을 바라보며 서늘하게 물었다.“두 분, 아직 할 말이 남았나요?”상식적으로라면 이 시점에서는 당황해야 정상이었다.하지만 두 여자의 얼굴에는 오히려 본경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의기양양한 기색이 가득했다.“강 팀장, 우리가 너무 성급해서 그랬나 봐요. 제가 옷 정리하는 거 도와드릴게요.”허지연이 한 발짝 나서서 옷장 문을 붙잡았다.그녀는 아까 본 옷자락을 집어 들더니 정리하는 척하다가 몰래 힘을 주어 옷을 확 잡아당겼다.동시에 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렸다.옷 사이에 숨겨져 있던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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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좋아요. 난 약속을 지켰으니, 여러분도 내뱉은 말은 꼭 책임지길 바랄게요.”그러고 나서 배윤호를 쳐다보았다.배윤호는 배윤제의 손을 놓아주었다.그 틈을 타 배윤제는 액자를 가로채 사람들 앞에서 뒤집었다.정다인과 허지연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정작 배윤제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강하율이 친절하게 한마디 보탰다.“놓치지 말고 똑똑히 봐요. 그러다 ‘외간 남자’가 도망이라도 가면 큰일이니까.”그녀의 말에는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배윤제더러 액자 자체를 제대로 살펴보라는 뜻이었다.만약 아까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다면 단번에 알아챘을 것이다. 이 조악한 액자가 과거 그가 직접 만들어 줬던 선물이라는 사실을.용도는 두 사람의 사진을 넣기 위함이었다.이 액자는 배윤제가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주었던 유일한 선물이었다.손수 만든 것이라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흔적이 남았고, 뒷면은 차마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였다.길거리 노점에 내놓아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강하율은 보물처럼 여겨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 왔다.안타깝게도 배윤제는 아직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배윤제가 얼빠진 듯 가만히 있자 정다인이 액자를 덥석 뺏어 높이 치켜들었다.“대체 누군지 어디 한 번...”사람들의 반응도 그녀의 예상과 달랐다. 경악하는 대신 하나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정다인은 급히 사진을 확인했다.원래의 남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별똥별 사진 한 장만 덩그러니 들어 있었다.“말도 안 돼, 이럴 수가!”허지연도 가까이 다가와 사진을 확인하더니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아니야! 분명 사진 속에는...”그러다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강하율이 차갑게 되물었다.“분명 뭐요?”허지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아무것도 아니에요.”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정다인이 다시 한번 수습을 위해 나섰다.“정말 다행이에요! 오해가 드디어 풀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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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강하율도 더 이상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허지연 씨, 아까 남자가 제 숙소로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다고 했죠? 그때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여러 사람 앞에서 한 말이라 허지연은 부정할 수 없었다.그녀는 강하율이 숙소에 남자가 없었다는 걸 문제 삼으려는 거로 생각하고 태연하게 웃었다.“저는 진짜로 봤어요! 제가 올라올 때 마침 복도 센서 등이 켜졌는데 그때 그 남자가 강하율 씨 숙소로 들어가더라고요. 문이 다 똑같이 생겨서 제가 잠깐 헷갈린 걸 수도 있고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미소 띤 얼굴로 사과하는 허지연의 모습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강하율은 그녀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몸을 돌려 양승아를 바라보았다.“양 비서님, 혹시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양승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말씀하세요.”“허지연 씨가 말한 동선대로 움직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뭐가 진실인지 바로 드러날 거예요. 대신 다른 분들께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말아 주세요.”강하율이 말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 다들 협조하겠다고 했다.그렇게 양승아는 문밖으로 나가 허지연이 말한 대로 다시 걸어보기 시작했다.그가 계단 입구에 다다르자 첫 번째 센서 등이 켜졌고,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센서 등도 켜졌다.그러나 양승아가 강하율의 숙소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네 번째 등은 켜지지 않았다.어둠 속에 서 있는 탓에 양승아의 실루엣만 어렴풋이 보일 뿐, 얼굴은커녕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그 광경을 본 허지연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아까는 분명히 불이 켜졌어요. 다들 보셨잖아요.”“그래요?”강하율은 그렇게 말한 뒤 옆에 있던 두 동료를 끌고 앞으로 걸어갔고, 그제야 등이 켜졌다.한 동료가 그제야 떠올렸다.“생각났어요! 이 센서 등은 얼마 전에 고장 나서 여기를 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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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그사이 배윤제는 서둘러 정다인을 감싸안았다.그 모습을 본 강하율은 그대로 액자를 놓아버렸고, 이내 ‘탁’ 소리와 함께 조잡하게 만든 액자가 산산이 부서졌다. 강하율과 허지연은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몇 번이나 서로의 발을 밟았다.그래도 걸리적거리는 게 사라지니 허지연을 때리기가 더 편해졌다.역시 쓰레기는 진작 버려야 했다. 안 그러면 자기 발목만 잡는 법이다.그리고 그동안 쌓아왔던 분노 또한 이제는 터뜨릴 때가 됐다.강하율은 먼저 하이힐로 허지연을 한 번 걷어찬 후 이어서 실수인 척 주먹을 휘둘러 허지연의 성형한 코를 정확히 가격했다.허지연은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밀쳐냈다.하이힐을 신은 강하율이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누군가 강하율의 허리를 받쳐 주었고 곧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이쯤이면 충분히 때린 거 아니야?”강하율은 말문이 막혔다.또 배윤호에게 들켜버리다니.허지연은 코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한 듯이 큰 목소리로 하소연했다.“저는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그냥 검은 그림자 하나를 봤고 그게 남자인 줄 알았을 뿐이에요! 강하율 씨가 팀장으로 승진한 게 조금 부러워서 괜히 심술이 난 것뿐이라고요. 제가 잘못했어요. 진짜 잘못했어요.”강하율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정다인이 또다시 중재자인 척 나섰다.“강하율 씨, 그래도 동료잖아요. 잘못을 인정했으니 그냥 이쯤에서 끝내는 게 어때요? 괜히 일을 키우면 별장 이미지에도 좋지 않잖아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배윤제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배윤제는 강하율에게 숨겨둔 남자가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다시 예전 같은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강하율, 이제 그만해. 난 호텔 명성을 해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어.”아주 그럴듯한 명분이었다.그러나 강하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대표님,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호텔 명성을 해친 사람은 제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정다인 씨도 잘못했으면 인정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당사자가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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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강하율은 다시 한번 배윤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인지 실감했다.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그는 매번 한발 앞서 모든 걸 꿰뚫어 보았고, 정작 그의 속내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강하율은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주워 들며 웃어 보였다.“오빠... 아니, 대표님이 SNS에 올리신 별똥별 사진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출력해서 액자에 넣어 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오해할 줄은 저도 몰랐어요.”“그래?”배윤호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바보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강하율을 바라봤다.강하율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그녀와 배윤제의 투 샷이었는데 허지연이 그 사진 대신 강하율과 배윤제가 애정행각을 벌이는 사진으로 바꿔치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그건 누가 봐도 어설픈 AI로 합성한 사진이었다.사실 제대로 만들려면 만들 수 있었겠지만 허지연은 일부러 허술하게 만들었다.강하율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배윤제를 두고 엄한 상상을 하는 여자로, 망상에 빠진 여자로 몰아가려고 말이다.그렇게 되면 호텔의 부대표인 배윤제는 본인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강하율을 해고할 것이고, 팀장의 자리는 허지연의 것이 될 것이다.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그 속에는 정다인의 진짜 목적이 감춰져 있었다.강하율이 배윤제에게 사심을 품었다는 인상을 굳혀 버리면 앞으로 강하율과 배윤제가 한때 연이었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말이다.애초에 외간 남자는 존재하지 않았다.정다인이 멍청하게 CCTV가 가득한 숙소에서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었다. 숙소를 수색하겠다는 것은 핑계였을 뿐, 사진만 나온다면 사람들은 그 외간 남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 말이다.다행히 강하율은 숙소에서 쥐가 출몰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옷장 속 사진을 떠올렸다.그러나 그것이 AI로 합성한 강하율과 배윤제의 망측한 사진으로 바뀌었을 줄은 강하율도, 안혜슬도 생각지 못했다.강하율과 안혜슬은 어떤 사진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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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그 장면을 상상한 강하율은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내 친구답네. 정말 섬세하다니까. 그러면 이따 내려갈 때 이 쓰레기도 같이 버려 줘.”안혜슬은 쓰레기봉투를 힐끗 보더니 안에 들어 있는 액자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그렇게 아끼던 걸 그냥 버리려고?”“응. 내가 이걸 고치겠다고 밤새 애를 쓴다면 네가 가만 안 있을 거잖아.”강하율이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냥 버리자. 이런 건 눈에 안 보이게 치워두는 게 좋아. 그런데 정다인이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가져가 버렸으니 이제 네게는 증거가 하나도 안 남았네.”안혜슬은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하율을 바라봤다.예전에 안혜슬은 배윤제가 좀 거만한 재벌가 도련님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도 집안이 그만큼 좋으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얼굴도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능력도 있으니 딱히 흠잡을 만한 것이 없었다.그러나 조금 전 배윤제가 강하율에게 한 말들은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는 수준이었다.아무리 마음이 식었다고 해도 기억을 잃은 척하면서 과거의 모든 감정을 지워내고 마음대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건 상도덕이 없는 짓이었다.게다가 안혜슬은 아까 배윤제가 강하율을 바라보던 눈빛을 보았었다.헤어진 뒤의 냉담한 눈빛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집요한 눈빛이었다.안혜슬은 혹시 나중에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강하율이 비장의 카드가 없어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당할까 봐서 걱정이었다.그러나 강하율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배윤제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다인이 알아서 막아줄 테니까. 그리고 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안혜슬은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그러다 우연히 곁눈질로 책상 위의 별똥별 사진을 보고는 말했다.“이 사진 진짜 전문가가 찍은 것 같아. 딱 봐도 정성이 느껴지잖아. 그래서 이걸 쓴 거구나. 그런데 이 사진은 어디에서 난 거야?”“배윤호 대표님이 SNS에 올렸던 사진이야.”강하율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안혜슬은 순간 흠칫했다.“배윤호 대표님?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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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안혜슬은 강하율과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인 숙소로 내려갔다. 안혜슬은 1층에 살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기가 편했다.그런데 숙소 건물을 나서자마자 쓰레기봉투가 튀어나온 나무 가시에 찍혀 찢어졌고, 그 탓에 안에 있던 산산조각 난 액자도 바닥으로 떨어졌다.안혜슬은 귀찮아서 손으로 주워 그걸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었다.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차 안에서 정다인이 오늘 있었던 일을 해명하느라 애쓰고 있었다.“윤제 씨,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저도 강하율 씨 문제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미 사과도 했잖아요. 그러니까 화 풀어요, 네?”배윤제는 미간을 주물렀다. 왠지 모르게 그런 말들이 점점 짜증스럽게 들렸다.그러다 고개를 든 그는 문득 쓰레기를 버리는 안혜슬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저건...’다음 순간, 배윤제는 정다인의 말을 끊고 장천우를 향해 말했다.“장 비서, 방금 안혜슬이 버린 거 가져와.”장천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정다인은 그 말을 듣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윤제 씨, 왜 그러는 거예요?”배윤제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정다인을 바라봤다.“왜 그러냐고? 설마 너랑 허지연이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저... 저는 그런 적 없어요!”정다인은 화들짝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잘 생각해 봐.”배윤제는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마침 장천우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돌아왔고 안혜슬도 함께 따라왔다.안혜슬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무슨 일이세요?”배윤제는 장천우에게서 물건을 건네받더니 손으로 만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액자를 본 순간,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걸 왜 버려요? 그게 강하율한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아요?”안혜슬은 어이없는 상황에 눈을 크게 떴다.하지만 강하율이 배윤제가 기억을 잃은 척하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으려고 하니 안혜슬도 일부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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