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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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작업을 거는 것처럼 들렸다.“대표님, 저는 기소정 씨 결혼식 때문에 온 거예요. 기소정 씨께서 대표님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나는 사적인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아.”배윤호가 덤덤하게 말했다.“네. 알겠습니다.”강하율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의 대답을 예상했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배윤호가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그게 끝이야?”“...”강하율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배윤호를 올려다봤다.여기서 뭘 더 해야 하는 걸까?이때 배윤호가 몸을 살짝 기울이며 다른 한 손으로 책상을 짚었다.잘생긴 얼굴이 코 앞에 다가왔고,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나를 짝사랑한다면서. 조금은 더 노력해 봐도 되지 않나?”강하율은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짝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 배윤호가 은근히 웃고 있는 것 같았다.강하율은 억지로 말을 꺼냈다.“그러면... 가실 거예요?”“아니.”“...”강하율은 입을 비죽 내밀었다.“그러면서 왜 더 노력하라는 거예요?”배윤호는 티 나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이제는 내가 안 무서운가 보지?”강하율은 그에게 속셈을 들킬까 봐 두려운 듯이 시선을 내리깔았다.배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사람이 시켜서 온 건데 내가 왜 들어줘야 해?”“어떻게 아셨어요?”강하율은 곧바로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배윤호를 바라봤다.그녀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배윤호는 강하율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순간 두 사람은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그냥 때려 맞춘 거야.”“...”강하율은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소리에 순간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그녀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문밖에서 양승아의 목소리가 들렸다.“배윤제 씨, 무슨 일이시죠?”‘배윤제?’강하율은 정신이 번쩍 들어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배윤호는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그녀를 놓아주었다.“앉아.”“네...”감사하다는 말을 하려는데 배윤호는 이미 차가운 표정으로 자리로 가서 앉았다.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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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배윤호가 정다인의 부탁을 받아 기소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강하율은 잠시 멍해졌다.순간 자신이 우스워졌다.배윤제가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야 강하율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액자는 아무 데나 두지 마. 누가 쓰레기인 줄 알고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내가 다 고쳐놨으니까 가져가.”액자가 손에 닿는 순간, 강하율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액자 따위 가지고 싶지 않았다.강하율은 차갑게 말했다.“대표님, 그 액자는 아무 데나 둔 게 아니에요. 애초에 쓰레기여서 버리려고 한 거예요.”배윤제는 표정이 잠깐 굳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강하율, 그 액자가 어떤 건지 알기나 해?”“어떤 액자인데요?”강하율이 되물었다.사실 강하율은 그가 솔직하게 말해줄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액자가 눈에 굉장히 익던데 일단 가져가서 잘 보관해. 나중에 찾지 못하면...”“대표님, 저희 아무 사이 아니에요.”강하율이 말을 끊었다.“대표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중요하지 않은 건 버리라고. 이제는 저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죠.”“너... 하.”배윤제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서 따져 물었다.“그러니까 나에 대한 네 감정이 겨우 그 정도였다는 거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또 어느 남자한테 빌붙을 생각인데? 너 언제부터 남자한테 그렇게 환장했던 거야? 잘 생각해 봐. 네 신분이 드러난다면 널 받아줄 남자가 있을 것 같아? 어차피 평생 내연녀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배윤제는 점점 더 선을 넘으며 모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강하율은 액자를 빼앗더니 바닥에 힘껏 내팽개쳤고, 액자는 더 이상 복원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부서졌다.“이제 됐죠? 대표님은 제 상사이고 전 남자 친구일 뿐이에요. 제 인생 멘토가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제 인생에 관심 끄세요. 제 은인은 대표님 어머님이지 대표님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강하율, 주워!”배윤제의 눈이 벌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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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없는데요. 아버님 일과 관련해서는 기씨 가문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어요. 둘 사이에 접점도 없고요. 혹시 고객이었던 건 아닐까요?”탐정이 되물었다.“고객이요?”강하율은 미간을 찌푸렸다.탐정이 설명했다.“어머님이 예전에 호텔을 관리하셨잖아요. 세원시의 재벌들을 알게 되는 건 이상할 게 없죠. 물론 모든 사람을 다 깊이 알 수는 없겠지만 말이에요.”강하율은 그의 말을 조용히 듣다가 잠시 후 말했다.“알겠어요. 그러면 해외에 나가 있는 그 가족의 행적은 좀 알아냈나요?”“네, 조금은 파악했어요. 지금 계속 동향을 지켜보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누가 저를 미행하는 것 같아서 혹시라도 일이 새어 나갈까 봐 최근에는 몸을 사리고 있어요.”그 말을 듣자 강하율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배윤제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걸까?“꼭 조심하셔야 해요. 천천히 알아내도 괜찮으니까 절대 들켜서는 안 돼요.”“알겠어요. 좋은 소식을 기다리세요.”이내 전화가 끊겼다.강하율이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다른 한편, 탐정은 옆에 앉아 있던 여자를 밀어내고 주변 친구들에게 말했다.“다들 놀고 있어. 나는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탐정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룸을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저한테 기씨 가문의 일을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아직도 포기 안 했다니 의외네. 그럼 판을 좀 더 시끄럽게 만들어야겠어.”“알겠습니다.”...오후에 강하율은 가장 큰 파티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굳이 사무실로 돌아가서 정다인의 비꼬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웨딩 플래너와 기소정의 결혼식에 관해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고 가랑비까지 내리고 있었다.강하율은 공용 구역에 놓인 우산을 집어 들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혼자 우산을 쓰고 산길을 내려왔다.그녀는 혹시라도 자신이 놓친 게 있는 건 아닐까, 가는 길 내내 기씨 가문의 일을 생각했다.그때 앞쪽에서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날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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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강하율은 온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그러다 칼끝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등 뒤에 꽂혔을 때 앓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야 강하율은 어느샌가 자신의 뒤로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남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지 어깨에 박힌 칼을 뽑아내더니 자기가 들고 있던 칼로 강하율을 찌르려고 했다.강하율은 본능적으로 우산을 꽉 쥐고 우산 끝을 남자의 상처 부위에 그대로 찔러 넣었고, 남자는 고통 때문에 기절하듯 쓰러졌다.강하율은 겁에 질려 우산을 놓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귓가에서는 빗소리와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내, 내가 사람을 죽인 건가?’강하율은 자기도 모르게 빗속에 서 있는 배윤호를 바라보았다.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의 얼굴에 핏방울이 좀 튀었지만 곧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했다.배윤호는 몸을 돌려 강하율에게 등을 보인 채 담담히 말했다.“차에 타. 데려다줄게.”강하율은 잠시 망설였다.이때 양승아가 다가와 말했다.“저 사람들 안 죽습니다. 현장도 곧 정리될 거예요. 엮이고 싶지 않으면 빨리 떠나는 게 좋아요.”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차에 올랐다.그리고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수건이 하나 쥐어졌다.강하율은 떨리는 손으로 수건을 꼭 잡았다. 이때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고개를 돌려보니 배윤호가 담배를 든 채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놓인 칼에서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배윤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그냥 모르는 척해.”“네.”강하율은 작게 대답했고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 안.강하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양승아가 이를 갈았다.“그동안 좀 조용하다 싶었는데 또 나타났네요.”배윤호는 담배를 빨아들였다. 흰 연기 때문에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내 현상금이 워낙 높잖아. 한 번쯤은 노려보고 싶겠지.”양승아가 배윤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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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그리고 배윤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형이 그만큼 무자비하니까!”배윤호가 칼을 휘두르던 모습은, 예전에 그가 누군가의 손가락을 잘라내던 장면보다 백 배는 더 무서웠다.강하율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강하율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 떨다가 잠시 뒤 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문밖에는 야식을 들고 온 안혜슬이 서 있었다. 그녀는 강하율에게 깜짝선물을 해주려던 참이었는데 강하율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마자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이 강하율을 끌고 가서 자리에 앉혔다.“하율아, 왜 그래?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어디 아파?”익숙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강하율은 안도감이 밀려왔다.그녀는 그대로 안혜슬을 끌어안았다.“나 말이야...”강하율은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고 그저 배윤호가 위험에 처했었다는 것만 간단히 말했다.그가 사람을 죽일 뻔했다는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비록 강하율도 십 년 넘게 재벌가 딸로 살았지만 어렸을 적 그녀는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컸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악한지 평생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그리고 지금의 그녀는 안혜슬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살인이라는 건 그녀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강하율이 어떻게 이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아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안혜슬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하율아, 위험한 상황에서 우산 끝으로 상대를 찔렀다고?”“응...”강하율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와, 너 진짜 대단하다. 나였으면 아마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했을 거야.”“잠깐, 그 상황이... 무시무시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강하율은 비에 섞여 흐르던 핏물과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다.안혜슬은 턱을 괴고 강하율의 맞은편에 앉아서 말했다.“뭐 어쩌겠어?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게다가 나는 네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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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강하율은 생각에 잠긴 채 무의식적으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그녀의 상상 속 배윤제의 미소 띤 얼굴이 서서히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잠시 뒤 강하율은 이내 상대방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그건 배윤호의 얼굴이었다.그러나 더 떠올리려 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강하율은 고개를 젓다가 문득 자신이 배윤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배윤제의 집에서 지냈을 때 강하율은 배윤제와 배윤제의 어머니, 그리고 배윤제의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만 배윤호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배윤제는 겉으로는 형과 잘 지내는 척했고, 배윤제의 어머니는 배윤호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윤제의 할머니는 노골적으로 배윤호를 싫어했다.“하율아, 하율아. 무슨 생각해? 옷에 튀김 옷이 떨어졌잖아.”강하율은 정신을 차리고 휴지로 옷에 묻은 얼룩을 닦았다. 그러나 이미 옷감에 기름과 양념이 스며들어 잘 지워지지 않았다.안혜슬은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물고 휴지를 뽑아 강하율을 대신해 얼룩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강하율이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제정신이 아닌 줄 알았다.“오늘은 많이 놀랐을 테니까 일찍 자.”강하율은 얼룩을 닦다 말고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나... 별로 무섭지는 않은 것 같아.”“그래? 그런데 왜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설마 너무 놀라서 어디 잘못된 건 아니지?”안혜슬이 물었다.“아니야.”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번져나가고 있었다.안혜슬이 씩 웃었다.“그러면 혹시 배윤호 대표님 생각한 거야?”강하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배윤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안혜슬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알겠어.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그 말을 들은 강하율은 안혜슬이 또 엉뚱한 오해를 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그보다 기소정이랑 기소정 어머니 쪽은 어때?”그 말을 듣자 안혜슬의 얼굴이 곧바로 찌푸려졌다.“엄청 까다로워. 오늘 교대라서 스위트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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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게다가 그게 나한테는 과분한 일이니까 나는 반드시 받아줘야 한대. 그게 내가 아직 배윤제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야. 나는 내가 배윤제와 사귄 적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 내 인생의 오점이잖아. 게다가 자칫하면 커플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안혜슬은 질린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정말 이상하네. 너 예전에 배윤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온화한 분들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어쩌다가 둘 사이에서 배윤제 같은 사람이 나온 거지?”강하율은 어깨를 으쓱했다.안혜슬이 몸을 조금 더 기울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나는 네가 배윤호 대표님이랑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배윤호 대표님은 사람이 좀 차갑긴 해도 너한테는 꽤 잘해주잖아.”“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강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혜슬과 가볍게 장난을 주고받았다.한바탕 웃고 난 뒤, 강하율은 진지하게 당부했다.“혜슬아, 기소정 모녀 좀 지켜봐 줘. 대신 너도 조심해야 해.”“알겠어.”말을 마친 뒤 안혜슬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강하율은 양치하러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몇 번 진동했다.[강하율 씨, 지금 한 번 와줄 수 있으신가요?]시간을 보니 벌써 아홉 시 반이었다. 그냥 자는 척하면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대표님께서 다치셨는데 제가 따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해서요. 다른 사람은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이렇게 연락드리게 됐어요. 대표님께서 다치신 건 정말 몇 년 만의 일이에요. 게다가 이번에 다친 이유는...]말을 끝맺지는 않았지만 강하율은 뒤에 생략된 말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강하율은 사고 당시 배윤호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상대가 배윤호가 방심한 틈을 노려서 다친 걸까?잠시 고민하던 강하율이 답장을 보냈다.[갈게요. 그런데 여기서는 택시를 잡기가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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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강하율은 비록 재벌가의 권력 다툼을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은 있었다.가문을 장악한 사람은 집안을 떠받치는 기둥과도 같아서 조금이라도 다치면 다음 날 주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심할 때는 그 사람의 지위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양승아는 배윤호가 다치자 만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졌다. 심지어 의사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은근한 압박이 담겨 있을 정도였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멀리 있던 강하율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양승아는 강하율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강하율 씨, 대표님께서 강하율 씨를 구하기로 했다는 건 강하율 씨를 믿는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저는 대표님을 믿어요.”“...”강하율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문득 자신을 대하던 장천우의 태도를 떠올렸다. 장천우는 대놓고 그녀를 무시하고 경멸했다.장천우는 배윤제의 비서였기에 강하율은 장천우의 태도를 통해 배윤제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그건 양승아도 마찬가지였다.그렇다는 건 배윤호가 그녀를 정말 신뢰한다는 걸까?강하율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양승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강하율 씨, 저는 지금 당장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대표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님께서는 아직 식사도 못 하셨어요. 주방에 제가 조금 전에 주문해 둔 음식이 있으니 그걸 드리면 돼요.”“네.”강하율은 양승아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배달된 음식을 열어보니 이미 식어 있었고, 소화가 잘되지 않을 법한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은 열이 날 때면 간이 약한 음식을 먹어야 소화가 잘 되었다.강하율은 뚜껑을 덮고 소매를 걷은 뒤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마자 냉장고 안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와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잠시 굳어버렸다.누가 냉장고 안에 카메라를 달아놓는단 말인가?게다가 식재료는 카메라가 설치된 구역에만 모여 있고 다른 곳에는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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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그러나 배윤호는 조용히 모든 일을 해결했다.강하율의 말을 들은 배윤호는 검은 눈동자로 강하율을 지긋이 바라봤다.“후회 안 해?”“네. 후회 안 해요.”강하율은 고개를 저었다.배윤호는 강하율을 놓아주었다.“나 잠깐 잘 거니까 편히 있어.”말을 마친 뒤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강하율은 조금 놀랐지만 그의 손바닥에 선명하게 남은 손톱자국을 보고 조금 전 그가 억지로 태연한 척했음을 알 수 있었다.강하율은 시선을 들어 배윤호의 잘생긴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한참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배윤호를 무려 십여 분이나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강하율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소파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 배윤호에게 덮어주고,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아까 꺼내놓았던 채소가 그대로 있었다. 강하율은 토마토 두 개를 집어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볼에 갖다 댔다.“원래 잘생긴 남자를 보면 다들 넋을 놓는 법이야.”곧이어 그녀는 정신을 다잡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야채를 씻을 때 보니 꽤 오래 보관한 채소들인지 물에 닿자마자 채소가 금세 시들어버렸다.결국 강하율은 어쩔 수 없이 그냥 흰죽을 끓이기 시작한 뒤 기숙사에 있는 안혜슬에게 전화를 걸었다.“혜슬아, 내일 아침 수업 들으러 가기 전에 채소 좀 사다 줄 수 있어?”안혜슬은 잠결에 그 말을 듣자 무슨 스위치라도 눌린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채소를 사다 달라고? 너 설마 또 사랑에 눈이 먼 거야? 미쳤어? 또 배윤제를 돌봐주러 간 거야?”“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강하율은 어리둥절했다.안혜슬이 설명했다.“방금 우리 객실팀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어. 내일 아침 회의를 취소한다고. 내 동료 말로는 배윤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던데.”그제야 강하율은 현재 호텔에 부대표가 두 명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한 명은 배진 그룹에서 특별히 모신 호텔 경영 전문가였고 다른 한 명이 바로 배윤제였다.업무 분담 때문에 배윤제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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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야채죽.그 세 글자에 정다인의 안색이 바뀌었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컵을 들고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분명히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또 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배윤제는 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무심하게 강하율을 언급했다. 마치 그의 삶 곳곳에 강하율이 녹아든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정다인은 차마 뭐라 하지 못했다.“윤제 씨, 좀 쉬어요. 제가 아줌마랑 같이 준비해 볼게요.”“응.”배윤제는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방을 나서자마자 정다인은 아줌마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들어갔다.“강하율이 자주 와서 요리했다면서요? 조금은 보셨을 거 아니에요. 빨리 죽을 끓이세요.”가사도우미는 난감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처음에 옆에서 보긴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손이 너무 많이 가는 데다가 인내심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보지 않았어요. 그 야채죽은 진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게다가 도련님 입맛에 맞춘 거다 보니 저는 못해요.”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면 배윤제도 굳이 찾지 않았을 것이다.정다인은 입술을 깨물었다.“파는 데가 있겠죠. 지금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윤제 씨가 정말 언짢아한다면 아줌마도 곤란해질 거예요.”가사도우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서둘러 나갔다.한 시간 뒤, 가사도우미는 기억을 더듬어 그나마 가장 비슷해 보이는 야채죽을 사 왔다.정다인은 그것을 그릇에 담고 예쁘게 꾸민 뒤 일부러 머리카락에 물까지 살짝 묻히고 위층으로 향했다.“윤제 씨, 야채죽 가져왔어요.”배윤제는 약을 먹은 뒤에도 머리가 아파서 아주 작은 소리조차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야채죽이라는 말에 그는 짜증을 꾹 참고 몸을 일으켰다.“네가 한 거야?”“아줌마랑 같이 했어요. 어서 먹어봐요.”정다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숟가락을 건넸다.배윤제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강하율이 없어도 그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고 먹고 싶은 것도 여전히 먹을 수 있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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