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191 - Chapter 200

497 Chapters

제191화

배윤제가 미간만 조금 찌푸려도 강하율은 밤을 새워가며 그의 머리를 계속 마사지해 주곤 했다.그러나 지금은...배윤제는 텅 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정다인은 정말로 가버렸다.배윤제는 베개 밑에서 휴대폰을 꺼내 강하율의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던 배윤제는 문득 주먹을 이마에 가져다 대면서 웃음을 터뜨렸다.그가 이렇게 적극적인 건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강하율도 이 사실을 알면 틀림없이 환하게 웃으며 즐겁게 그와 대화를 나눌 것이다.대화창을 눌러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장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도련님, 제가 도련님이 지시하신 대로 서류를 가지러 호텔에 갔다가 안혜슬 씨의 룸메이트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강하율 씨가 안혜슬 씨에게 내일 장 좀 봐달라고 했답니다.”“장을 봐달라고 했다고?”배윤제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알겠어. 내일 잘 지켜봐. 강하율이 내 별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없게 말이야.”시간을 계산해 보니 마침 그가 아프다는 이유로 내일 회의를 취소한다고 공지한 직후였다.강하율은 그에게 자신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그를 위해 조용히 애쓰고 있었다.굳이 메시지를 보낼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강하율이 알아서 핑계를 대며 찾아올 테니 말이다.그런 생각을 하자 배윤제의 두통도 조금 나아졌다. 그는 전화를 끊고 그대로 잠들었다....다음 날, 강하율은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확인해 보니 안혜슬이 보내준 채소가 도착했다는 연락이었다.강하율이 기지개를 켜며 맞은편을 바라보자 깊이 잠든 배윤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배윤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했지만 얼굴이 너무 창백해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경계심이 강한 탓일까? 강하율이 잠시 바라보고 있자 배윤호는 무언가 느낀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강하율은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일어나려던 그녀는 자신의 몸 위에 담요가 하나 덮여 있는 걸 발견했다.그리고 그녀가 어젯밤 만들어서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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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배윤제는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렸다.어젯밤 먹은 게 별로 없는 탓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는데 장천우조차 옆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였다.“도련님, 뭐라도 좀 드시는 건 어떨까요?”배윤제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필요 없어. 밖에 나가서 강하율이 겁을 먹고 못 들어오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봐.”장천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의 지시대로 집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밖에는 강하율은커녕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몇 분 더 기다렸다가 돌아온 장천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도련님, 아무도 없습니다. 강하율 씨는 여기 오지 않았습니다.”배윤제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두 주먹을 꽉 쥐어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배윤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에요?”“아침부터 왜 화가 잔뜩 나 있어?”전화 너머로 할머니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배윤제는 즉시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무슨 일이세요?”배윤제의 할머니는 바로 본론을 꺼내지 않고 평온하게 물었다.“지금 혼자 있니?”그 말에 배윤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이제 아무도 없어요.”“배윤호가 다쳤대. 꽤 심하게 다친 것 같던데.”배윤제의 할머니는 그제야 차가운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손주가 다쳤다는데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배윤제는 곧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확실한 거예요?”“그래. 배윤호의 측근이 전한 소식이야. 곧 네 별장으로 갈 테니까 잠시 뒤에 나랑 같이 문병 좀 가자.”“할머니, 저한테 어딘지만 알려주세요. 굳이 할머니께서 오실 필요는 없잖아요.”배윤제가 말했다.“너 모르니? 배윤호도 지금 네가 사는 그 단지로 이사 갔어.”그 말을 듣는 순간 배윤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 몇 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지금 어디에 있는데요?”“서두르지 마. 직접 확인한 뒤에 공개하는 게 나으니까. 그러면 내가 걔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네가 대신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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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너도 참. 곧 결혼할 애가 왜 이렇게 덤벙대니? 너희 엄마 이번 주에 돌아온다더라. 그때 다인이랑 같이 집에서 식사하자.”“네. 그런데 형 보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 얼른 가요.”배윤제는 짜증 난 얼굴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그는 할머니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배윤제의 할머니는 단순히 배윤제가 어서 빨리 배윤호가 다친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줄로 여겼다.“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이 정보는 아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알려준 거라서 배윤호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배윤제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할머니를 부축하며 배윤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그런데 왠지 모르게 점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둘의 집이 굉장히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불안함이 점점 더 강해졌다. 심지어 강하율이 지금 배윤호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맞았다.강하율은 실제로 배윤호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강하율이 기사에게서 식자재를 받아 든 뒤 곧장 주방으로 향했는데 식자재에 아침 이슬과 흙이 묻어 있어 씻을 때 주방 바닥이 더러워졌다.강하율은 손을 깨끗이 씻은 상태라 바로 치우지는 않고 서둘러 야채죽을 끓이기 시작했다.그 과정이 꽤 번거로웠는데 그사이 단단히 말라 있던 흙이 물과 섞여서 질척해지고 말았다.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죽을 팔팔 끓이고 있을 때 바닥에 흙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깜빡한 강하율은 실수로 흙을 밟아서 미끄러지고 말았다.머리가 수납장에 부딪히기 직전, 갑자기 뻗어진 손이 그녀를 구했고 강하율은 그대로 배윤호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 그의 몸에서는 옅은 소독약 냄새와 특유의 차분한 향이 함께 느껴졌다.“부딪혔어?”배윤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다급함이 느껴졌다.강하율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그녀가 말을 마치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들리는 건 죽이 끓는 소리뿐이었다.보글보글...강하율은 끓어오르는 죽처럼 자신의 심장도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배윤호가 냄비 안을 힐끗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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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강하율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멍해졌다.그러나 허리에 닿은 손길이 느껴져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사람들이 배윤호에 대해 뭐라고 떠들든 적어도 그는 그녀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배윤호는 대답을 듣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향했다.“여기는 양 비서에게 맡길 거야.”“네.”강하율은 걸음을 재촉해 그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침대 끝에 앉게 되었다.배윤호가 등을 돌리고 말했다.“옷 벗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강하율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뭔가를 떠올렸는지 겉옷과 니트를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그녀가 어떤 말을 꺼낼지 고민하는 사이, 배윤호는 피 묻은 옷을 벗어 옷장 안에 던져 넣고 그대로 이불 속으로 몸을 눕혔다.피부가 맞닿는 순간, 강하율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배윤호가 몸을 뒤집어 그녀의 위로 올라타며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쉿.”“오빠...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강하율은 그의 손을 떼어내며 물었다.“아마도.”“아마도요?”강하율은 눈을 크게 떴다.이런 일은 남자가 더 잘 아는 게 아니었나?그런데 배윤호는 애매모호하게 말했다.‘설마... 경험이 없는 건가?’강하율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눈치챈 건지 배윤호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강하율은 웃고 싶었지만 감히 웃을 수는 없어 이불을 잡은 채로 그를 살짝 밀었다.“오빠, 이건 좀 부족해요. 혹시 술 있어요?”“옆에 술장에 있어.”배윤호가 가리킨 유리로 된 술장 안에 각종 술이 진열돼 있었다. 조명이 여러 가지 색을 지닌 술병을 통과하며 묘하고도 위험한 빛을 흩뿌렸다.강하율은 침대 끝에 있던 담요를 몸에 두르고 술 두 병을 꺼냈다.그녀는 우선 테이블에 술을 조금 흘린 뒤 술잔 안에 술을 채우고 다른 술잔은 쓰러뜨렸다.곧이어 강하율은 주머니에서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바른 뒤 잔 가장자리에 입술 자국을 몇 개 남겼다.순간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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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배윤호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뭘 모른다고?”“...”강하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라고 한 적은 없었다.강하율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담요 한 장이 놓였다.배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거즈에 피가 묻어 있어. 네 몸에 묻으면 안 되니까.”그 한마디에 강하율의 당혹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온몸을 감싸는 보호막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녀가 고맙다고 말하려는 찰나, 밖에서 발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문밖.양승아가 계단을 막고 서서 말했다.“어르신, 배윤제 씨. 지금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배윤제가 불쾌한 기색으로 말했다.“할머니께서는 오늘 형이 회사에 안 나갔다고 걱정돼서 오신 건데 왜 안 된다는 거죠?”양승아가 설명했다.“그게... 지금은 두 분을 뵐 상황이 아닙니다.”“비켜요.”곧이어 밀치는 소리가 들렸다. 배윤제가 억지로 들어오려는 게 분명했다.그다운 행동이었다. 배윤제는 한번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양승아는 꿋꿋이 버텼다.“죄송하지만 정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차가운 코웃음이 들렸다.“돌아오더니 아주 거만해졌어. 어른 앞에서도 이렇게 건방을 떠는 걸 보면 말이야. 자기한테 권한이 좀 생겼다고 제멋대로 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건 강하율이 평생 잊지 못할 음성이었다.바로 배윤제 할머니의 목소리였다.배윤제의 할머니는 강하율을 볼 때면 말조차 하기 귀찮은 건지 코웃음을 치면서 경멸에 찬 눈빛으로 강하율을 바라봤었다.지금 이 순간 강하율은 그녀의 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그런데 이 방의 주인은 배윤호이고 배윤호는 그녀의 친손자인데 배윤제의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하면서 화를 내는 걸까?한때 배씨 가문에서 지냈던 강하율은 배윤제의 할머니가 배윤제를 얼마나 아끼는지 직접 옆에서 봐왔었다.배윤제가 원하는 건 모두 구해주고, 심지어 그가 해외로 출장을 가면 음식이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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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강하율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벗겨지려는 순간, 배윤호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이불을 단단히 눌러 고정했다.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눌러서 숨겨줬다.강하율은 뜨거운 체온에 순간 움찔했지만 상황이 급박한 만큼 그대로 몸을 밀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열기가 그의 체온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달아오른 얼굴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강하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배윤호는 천천히 시선을 들며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동자로 배윤제를 바라봤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주변 공기가 한층 무겁게 가라앉았다.“배윤제, 네가 언제부터 내 일에 간섭하기 시작했지?”“형... 나는 그냥 이상한 여자가 형한테 접근할까 봐 걱정됐을 뿐이야.”배윤제는 여전히 이불 끝을 붙잡은 채 배윤호의 품에 숨은 여자를 노려보았다. 마치 그 여자를 꿰뚫어 버릴 듯한 눈빛이었다.배윤호가 차갑게 웃었다.“네 여자나 잘 챙겨. 아직 배씨 가문 문턱도 못 넘은 사람이 벌써 우리 집안 이름을 팔아서 설쳐대던데 말이야.”“형, 다인이는 아직 어려서 그래. 나쁜 마음은 없어.”배윤제는 본능적으로 반박했다.그는 굉장히 고집스러운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모욕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그 상대가 형이라 해도 말이다.배윤호가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렇게 급하게 변명하는 걸 보니 내 말이 맞나 보네.”“그건...”배윤제는 말문이 막혔다.그 광경을 본 배윤제의 할머니가 앞으로 나서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배윤호, 어떻게 동생한테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어? 윤제는 널 걱정해서 여기 온 거야!”“정말 제가 걱정됐다면 이렇게 연락도 없이 제 집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제 이불을 들출 생각은 안 했겠죠. 혹시 뭐 다른 목적이라도 있어요?”배윤호는 강하게 밀어붙였다.배윤제의 할머니는 주먹을 꽉 쥐었다.“너 왜 이렇게 버릇이 없어? 어떻게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배윤제는 다가가서 할머니를 부축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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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배윤제는 그들의 기세에 압도당하지 않고 침대 옆에 서서 차갑게 말했다.“형, 다쳤으면서 왜 말을 안 했어?”언성을 높이던 집안 어른들은 일제히 멈칫하며 배윤호를 바라봤다.“윤호야, 다친 거냐?”“아니요.”배윤호는 단호하게 부인했다.“흥.”배윤제의 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배윤호, 우리는 너를 걱정한 것뿐인데 그게 잘못이니? 대체 무슨 속셈이길래 이렇게 숨기는 거야?”배윤호가 냉담하게 받아쳤다.“숨기지 않으면 여기서 다들 구경할 수 있게 보여드리기라도 해야 하나요?”어른들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정말 다쳤다면 왜 여자를 찾겠어?”배윤제가 곧장 반박했다.“여자를 찾은 이유가 다친 걸 감추기 위한 거라면요?”그는 그렇게 말한 뒤 침대 위 여자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명령조로 말했다.“지금 당장 이불 안에서 나와. 그러면 책임을 묻지 않겠어.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강하율은 순간 놀라 본능적으로 몸이 경직됐다.설마 그녀를 알아본 걸까?그러나 배윤호는 그녀를 더 단단히 끌어안으며 낮게 비웃었다.“배윤제, 이제는 내 사람한테까지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이야?”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강하율은 보지 못했지만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만 같았다.“형, 언제부터 이렇게 소심해진 거야? 설마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거야?”“그럴 리가. 나는 그냥 너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뿐이야.”배윤호는 차가운 목소리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을 이어갔다.“자꾸 나를 자극하는데 혹시 누구한테 무슨 얘기라도 들은 거야?”배윤제가 잠시 흠칫했다.“형, 그게 무슨 말이야?”배윤호는 여전히 강하율을 감싸안은 채 태연히 문 쪽을 바라봤다.“저 사람한테 물어봐.”사람들이 돌아보자 양승아가 사람 한 명을 끌고 들어왔고, 이내 그 사람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다.“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과장해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요즘 운이 안 좋아서 돈을 좀 빚지게 되어 대표님께서 다쳤다고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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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강하율?”배윤제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자 강하율은 화들짝 놀랐다.예전 같았으면 배윤제가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기뻐했을 텐데 지금은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강하율은 본능적으로 배윤호의 가슴에 얼굴을 더 바짝 붙였다. 배윤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그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배윤제가 손을 뻗는 순간 배윤호가 그의 손목을 낚아채듯 움켜쥐었다.“배윤제, 선 넘지 마.”“형, 여자일 뿐이잖아. 왜 그렇게 감싸는 거야?”배윤제는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두 남자가 신경전을 벌였고, 잠시 뒤 두 사람의 손등에 모두 핏줄이 도드라졌다.처음에 강하율은 눈치채지 못했는데 허리 쪽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감각에 시선을 내리자 그제야 배윤호가 팔에 힘을 주는 바람에 상처에서 피가 아까보다 더 많이 흐르고 있는 게 보였다.그녀는 이대로 가면 분명 이상한 낌새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를 악물었다.그녀는 배윤호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저 너무 무서워요.”만약 얼굴을 마주 보고 그렇게 말하라고 했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그 목소리를 듣고서 배윤제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손목을 뺐다.절대 강하율일 리가 없었다.그토록 고집이 센 강하율이 이렇게 몸값을 낮추는 짓을 할 리 없다고 그는 확신했다.배윤제는 손목을 문지르며 미소를 지었다.“미안, 형. 내가 잘못 들었나 봐. 그럼 좋은 시간 방해하지 않을게.”“그래.”배윤호의 허리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시선조차 흔들리지 않았다.배윤제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방을 나섰고 서둘러 할머니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배윤제의 할머니는 주먹을 쥔 채 중얼거렸다.“이상해. 뭔가 수상해.”배윤제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형은 안 다쳤어요. 제가 전력을 다했는데도 멀쩡했거든요. 평범한 사람들도 못 버티는데 다친 사람이 그걸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죠. 방도 살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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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오빠, 왜...”“윽.”배윤호가 헛숨을 들이키며 침대 위로 쓰러졌다.강하율은 배윤호의 허리 쪽에 두르고 있던 붕대가 피로 빨갛게 물든 걸 보고 말을 삼켰다.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입은 뒤 침대에서 내려와 허리를 숙이고 배윤호의 상처를 살폈다.붕대를 풀자 강하율은 순간 당황했다.그녀는 배윤호처럼 몸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다쳐도 그렇게 심각하게 다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그런데 칼에 깊이 찔린 데다가 봉합도 잘되지 않은 듯했다.의사도 비싼 돈을 받고 일할 텐데 이렇게 대충 처치하다니.“그냥... 병원에 가는 게 어때요?”“괜찮아. 문제없어. 너는 먼저 내려가.”배윤호는 덤덤히 말하며 눈짓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강하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일어섰다.그러나 몇 걸음 걸은 뒤 몸을 돌려 보니 배윤호가 서랍을 열어 약상자를 꺼내고 있는 게 보였다.강하율은 그 모습에 순간 마음이 아렸지만 정작 배윤호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이미 익숙해진 사람처럼 말이다.결국 강하율은 다시 돌아와 몸을 숙이고 손을 뻗어 붕대를 집어 들었다.“제가 할게요.”배윤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보답하려는 거면 필요 없어.”“보답이 아니에요.”강하율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녀의 손놀림은 망설임이 없었다.집안이 망했을 때 눈이 뒤집힌 사람들은 외동딸인 강하율에게 부모가 뭔가를 남겨놨을 거라 확신하며 겨우 열네 살이었던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강하율은 계속 숨어 다니다 몇 번 다치기도 했고,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혼자 몰래 약을 발랐었다.그 순간 강하율은 문득 배윤호의 신분을 제쳐두면 그 역시 본인처럼 부모를 잃은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다.배윤제의 어머니가 아무리 잘해줘도 친어머니는 아니었고, 배윤제의 할머니는 배윤제를 편애했다.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배윤호의 외가 쪽 집안도 관계가 복잡하다고 한다.분명히 가족임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을 강하율도 잘 알고 있었다.다시 붕대를 감자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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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강하율은 전화를 끊은 뒤 양승아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배윤제 씨인가요?”“네.”강하율은 다른 사람에게 둘 사이의 과거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얼버무렸다.“일 때문에 연락하셨어요.”양승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하고픈 말이 있었지만 끝내 꺼내지 않았다.강하율은 인사를 건넨 뒤 문가로 걸어갔다. 그러나 배윤제의 별장이 근처에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멈춰 섰다.혹시 배윤제가 갑자기 그녀를 부른 이유가 그녀를 떠보기 위함이라면?만약 들킨다면 아까의 노력은 전부 수포가 될 것이다.강하율이 생각에 잠긴 사이 그녀의 앞에 종이봉투 하나가 내밀어졌다.양승아가 설명했다.“이걸로 갈아입으세요. 제가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강하율이 봉투를 건네받자 양승아가 덧붙였다.“대표님 뜻입니다. 강하율 씨에게 불똥이 튀는 걸 원치 않으시거든요.”“대표님이요?”강하율은 반사적으로 위층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괜한 오해를 하지 않고 정중히 말했다.“양 비서님, 대표님께 전해주세요. 함부로 입을 놀리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에요.”양승아는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강하율은 옷을 갈아입으러 간 뒤였다.“둘이 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잠시 후 다시 나타난 강하율은 양승아와 똑같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모자 안에 넣고, 마스크까지 착용했다.강하율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걸로 속일 수 있을까요?”양승아가 설명했다.“배윤제 씨 사람들은 이곳에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제 차를 타고 빠르게 빠져나가시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차는 근처 주차장에 세워두시면 퇴근 후 제가 찾으러 가겠습니다. 키는 따로 보관 맡기시면 되고요.”“알겠습니다.”강하율은 머리를 정리한 뒤 고개를 숙인 채 차를 타고 빠르게 떠났다.거의 동시에 배윤호가 위층에서 내려왔다. 그는 강하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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